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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os los capítulos de 회귀한 대군의 후회: Capítulo 191 - Capítulo 200

231 Capítulos

[188화] 호박(琥珀) 등불(1)

 깊은 밤, 대군저 안채의 마당.매서운 겨울바람이 앙상한 나뭇가지를 할퀴고 지나가며 스산한 울음소리를 냈지만, 서연의 방 안에서는 희미한 호롱불 빛이 얇은 창호지 문을 뚫고 늦도록 새어 나오고 있었다.“…….”문지방 밖 차가운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던 이헌의 고개가 천천히 들렸다.그의 핏발 선 시선이 굳게 닫힌 창호지 문 너머로 어른거리는 서연의 그림자를 향해 끈질기게 닿아 있었다.삼경(三更)을 훌쩍 넘긴 늦은 시각이었다.하지만 그림자는 이부자리에 눕지 않고 서안(書案) 앞에 꼿꼿하게 앉아, 미세하게 고개를 숙인 채 서책의 장을 넘기고 있었다.서연은 최근 들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매캐한 기름 냄새가 나는 싸구려 호롱불 밑에서 밤을 새워 책을 읽는 날이 부쩍 잦아졌다.형조 옥사와 대군저에서 겪은 지독한 악몽이 그녀의 수면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밤새 문밖을 지키는 이헌이 모를 리 없었다.‘저리 어둡고 침침한 불빛 아래서 매일 밤을 지새우시면…… 옥안(玉眼)이 상하실 터인데.’이헌은 자신의 손에 감긴, 서연이 묶어준 낡은 무명천을 꽉 쥐었다.방 안의 일렁이는 불빛과 그을음이, 가뜩이나 핏기 없이 창백한 그녀의 눈가에 깊은 그늘을 남길까 봐 그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가 불을 끄고 주무시라 애원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불쑥 다가선 기척이 오히려 그녀의 밤을 더 소스라치게 만들까 두려워 감히 움직이지도 못했다.결국 그는 흙바닥에서 소리 없이 몸을 일으켰다.그리고는 마당 한구석에 서 있던 흑위대장에게 다가가 아주 은밀하고도 단호한 하명을 내렸다.“당장 내수사의 창고를 열어라. 명나라 황실에서 진상했던, 그 최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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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화] 호박(琥珀) 등불(2)

 티 없이 맑은 최고급 호박을 깎아 만든 덮개 안에서, 촛불이 일렁이며 만들어내는 빛은 이전에 보던 그 어떤 불빛과도 달랐다.그것은 전혀 눈부시지 않았고, 마치 가을날의 부드러운 달빛처럼 방 안의 매서운 어둠을 따스하게 밀어내고 있었다.“아가씨께서 며칠째 밤을 지새우시며 책을 읽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이헌이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갈라진 목소리로 고했다.“그 어둡고 매캐한 불빛 아래서 옥안이 상하실까 두려워…… 주제넘게 호박 원석을 깎아 등불을 하나 만들어 보았습니다.”“당신이…… 이것을 직접 깎았다고요.”“예. 이 덮개의 상단을 살짝 돌리시면, 책을 읽으실 때는 눈이 아프지 않게 환하게, 그리고 마침내 주무실 때는 수면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빛이 아주 어둡게 줄어들게끔 장치를 만들어 두었습니다.”이헌은 흙바닥에 이마를 댄 채,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낭자의 그 어두운 밤을…… 이 비천한 짐승이 아주 조금이나마 밝혀주길 바랍니다. 혹여 제 불찰과 기척 탓에 잠을 이루지 못하시는 것이라면, 부디 이 등불 아래서만이라도 평안한 단잠에 드시옵소서.”“…….”서연은 문틀을 잡은 채, 발밑에 놓인 호박 등불과 바닥에 엎드린 이헌의 넓고 굽은 등을 번갈아 내려다보았다.그녀의 가슴 한복판이, 둔탁한 망치로 세게 얻어맞은 듯 먹먹하게 울렸다.자신이 며칠 밤을 새우며 책을 읽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매캐한 연기에 가끔 눈을 비볐다는 그 미세한 기척까지.이 남자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문밖에서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는 뜻이었다.자신을 감시하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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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화] 비 내리는 마루(1)

 추적, 추적.겨울의 끝자락, 차갑고 무거운 비가 대군저 안채 마당을 촉촉하게 적시고 있었다.마당 한가운데 일구어진 화원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며, 마른 흙냄새와 물기를 머금은 옅은 풀내음이 뒤섞여 공기 중으로 번져나갔다.“…….”서연은 창호지 문을 완전히 열어젖히고, 대청마루 끝에 고즈넉이 앉아 비 내리는 화원을 구경하고 있었다.가혹했던 겨울의 혹한이 한풀 꺾이긴 했으나, 비를 머금은 바람은 여전히 옷깃을 파고들 만큼 서늘했다.그녀는 무릎 위로 치맛자락을 끌어당기며, 상념에 잠긴 듯 멍한 시선으로 마당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응시했다.그녀의 시야 끝, 마루 아래의 흙바닥.이헌은 어김없이 그곳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었다.정무를 비운 것인지, 아니면 궐에서 일찍 돌아온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처마 밑으로 간신히 몸을 숨긴 채 묵묵히 마당을 지키고 있었다.“……콜록.”갑자기 불어온 차가운 돌풍에, 서연의 어깨가 움츠러들며 작고 옅은 기침 소리가 새어 나왔다.그녀가 무의식적으로 양팔을 쓸어내리며 몸을 웅크리던 찰나였다.“……!”펄럭-!마루 아래 엎드려 있던 이헌이 짐승 같은 반사 신경으로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그는 서연의 기침 소리가 공기 중에 채 흩어지기도 전에, 자신이 입고 있던 두꺼운 흑색 겉옷을 순식간에 벗어 던지듯 풀어헤쳤다.그리고는 마루 위로 성큼 올라서, 서연의 가녀린 어깨 위로 자신의 겉옷을 살포시, 아주 조심스럽게 덮어주었다.“대군…….”서연의 눈동자가 작게 흔들렸다.이헌의 체취가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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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화] 통제된 본성(1)

 대군저 안채 마당에 짙은 약재 달이는 냄새가 훅 끼쳐왔다.서연이 오랫동안 고립된 탓에 기력이 쇠해지자, 어의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기혈을 보충하는 진귀한 탕약을 처방했다.그리고 이 탕약을 서연의 처소로 나르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가장 천한 흙바닥에 엎드린 채 그녀의 문이 열리기만을 묵묵히 기다리는 이헌의 절대적인 몫이었다.“대령하였사옵니다, 자가.”주방 나인 하나가 소반 위에 탕약 사발을 받쳐 들고 덜덜 떨며 마당으로 들어섰다.이헌은 흙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말없이 탕약 사발을 향해 붕대 감긴 거친 손을 뻗었다.그런데.“……앗.”이헌이 사발을 감싸 쥐는 순간, 그의 굳은살 박인 두꺼운 손바닥조차 화끈거릴 만큼 지독한 열기가 훅 끼쳐왔다.사발 안에서 펄펄 끓어오르는 탕약은, 당장이라도 입술과 식도를 끔찍하게 데게 만들 만큼 비정상적으로 뜨거웠다. 누군가의 치명적인 태만과 실수였다.“…….”이헌의 핏발 선 시선이, 탕약 사발에서 바닥에 엎드린 주방 나인을 향해 천천히, 그리고 아주 서늘하게 돌아갔다.“이것이 무엇이냐.”이헌의 목소리는 한겨울의 꽁꽁 언 얼음장보다 더 차갑고 낮았다.“아, 아가씨께서 드실 탕약이옵니다…….”“누가 그것을 묻더냐.”이헌이 사발을 쥔 손에 서서히 힘을 주었다.“아가씨의 그 연약하고 고운 입술과 식도에, 이 펄펄 끓는 독살스러운 물을 들이부으려 한 네년의 저의가 무엇인지 묻지 않느냐.”“히익! 소, 송구하옵니다! 아궁이 불조절을 잠시 잘못하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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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화] 통제된 본성(2)

 펄펄 끓는 사기그릇의 끔찍한 화상과 겨울 얼음물의 지독한 한기가, 그 찢어진 상처를 동시에 무자비하게 난도질할 터인데도.이헌은 짐승의 앓는 신음조차 내지 않았다.그는 묵묵히 찬물 속에서 사발을 잡고 흔들며, 오직 서연이 마시기 딱 좋은 온도가 맞춰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참으로.”서연은 치마폭을 쥐고 있던 하얀 손끝에 피가 안 통할 정도로 강하게 힘을 주었다.그녀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잘게 요동쳤다.자신이 지금까지 뼈저리게 겪어온 사내였다면, 이 상황에서 나인의 사지를 찢어버리며 폭군의 위용을 뽐내고 공포로 지배하려 들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얼음물에 손을 담그고 있는 이 남자는.자신의 그 끓어오르는 잔혹한 본성과 살육의 본능마저, 오직 그녀가 피비린내를 싫어한다는 그 작은 사실 하나 때문에 완벽하게 억누르고 통제하고 있었다.폭군으로서의 자아를 완전히 버리고, 자신의 손바닥이 화상을 입고 얼어붙어 문드러지는 한이 있어도.그는 기어이 ‘그녀가 허락한 선’ 안에서만 숨을 쉬고 움직이는 완벽하고 맹목적인 충견으로 스스로의 영혼을 옭아매고 있었다.“……다 되었습니다, 아가씨.”잠시 후.이헌은 찬물에서 손을 빼내어, 딱 먹기 좋은 온도로 알맞게 식은 탕약 사발을 수건으로 정성스레 닦아내었다.그의 두 손은 극심한 온도 차이와 상처의 고통으로 인해 기괴할 정도로 퉁퉁 붓고 붉게 달아올라 있었으나, 그의 입가에는 그녀에게 바칠 탕약이 완벽하게 준비되었다는 순수한 기쁨만이 가득했다.“입에 대시기에…… 이제는 결코 뜨겁지 않으실 겝니다.”이헌이 덜덜 떨리는 두 손으로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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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화] 폭설(暴雪)을 뚫고 온 사내(1)

 ‘……오지 않겠지.’서연은 무의식적으로 치맛자락을 꽉 틀어쥐었다.이런 미친 날씨에 궐에서 대군저까지 산길을 뚫고 말을 달리는 것은, 제정신이 박힌 인간이라면 결코 할 수 없는 자살 행위였다.당연히 궐에서 따뜻하고 안전하게 밤을 보낼 것이라 이성적으로 판단하면서도, 그녀의 시선은 자꾸만 굳게 닫힌 문을 향해 안타깝게 돌아가고 있었다.그때였다.쿵, 쿵, 쿠당탕!마당의 대문 쪽에서 무언가 무거운 것이 거칠게 부딪히고 진흙탕에 넘어지는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그리고.“하아…… 하아아…….”문풍지를 뚫고, 폐부가 찢어질 듯이 가파르고 거친, 짐승의 앓는 소리 같은 숨소리가 툇마루 아래 흙바닥으로 기어들어 왔다.“……!”서연의 심장이 벼락을 맞은 듯 덜컹 내려앉았다.그녀는 반사적으로 이불을 걷어차고 벌떡 일어나, 덜덜 떨리는 하얀 손으로 창호지 문을 밀어 열었다.“아…….”문이 열리자마자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 매서운 눈보라 속에서, 서연의 입술 사이로 경악에 찬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마루 아래, 차가운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는 사내.아니, 그것은 사내라기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눈사람, 혹은 처참하게 부서진 짐승에 가까웠다.이헌이었다.그의 흑색 철릭은 눈보라에 흠뻑 젖어 뻣뻣한 얼음장처럼 굳어 있었고, 그의 흩어진 머리카락과 굳게 감긴 속눈썹 위로는 하얀 눈송이와 고드름이 처참하게 매달려 있었다.얼마나 험하게 눈길을 뚫고 굴러가며 달려온 것인지, 그의 창백한 뺨과 이마에는 앙상한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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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화] 젖은 온기(1)

 드르륵, 탁-!서연의 처소 문이 다시금 아주 무겁고 단단하게 닫혔다.매서운 눈보라와 살을 에는 칼바람이 몰아치던 마당의 지독한 냉기가 완벽하게 차단되고, 참나무 장작이 타오르는 아궁이의 훈훈한 열기가 방 안의 공기를 빈틈없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밖의 폭설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평온한 침묵이 내려앉았다.“…….”방 안은 이헌이 밤을 새워 깎아 만든 호박 등불이 뿜어내는 따스한 황금빛으로 아스라하고 고즈넉하게 물들어 있었다.하지만 그 고요하고 성스러운 성역(聖域) 한가운데 선 이헌은, 마치 자신의 발밑에 날카로운 가시밭이나 시뻘건 숯불이라도 펼쳐진 양 문지방에서 단 한 걸음도 안으로 내디뎌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그저 굳게 닫힌 문에 등을 기댄 채 짐승처럼 거친 숨만 헐떡였다.뚝, 뚝, 투둑.그의 꽁꽁 언 머리카락과 뻣뻣하게 얼어붙은 흑색 철릭에서 녹아내린 눈송이들이, 흙먼지와 뒤섞인 시커먼 물방울이 되어 방 안의 깨끗하고 정갈한 장판 위로 흉하게 떨어져 내렸다.“아…….”이헌의 핏발 선 눈동자가 바닥에 떨어진 시커먼 흙탕물을 발견하고 경악과 공포로 크게 팽창했다.그는 사색이 된 창백한 얼굴로 다급하게 바닥에 주저앉아, 자신의 젖고 얼어붙은 흑색 소매로 그 흙탕물을 미친 듯이 문질러 닦아내기 시작했다. 거친 천이 방바닥을 박박 긁는 소리가 적막을 찢었다.방 안으로 허락받았다는 벅찬 환희는 온데간데없고, 오직 자신이 이 공간을 더럽혔다는 죄악감만이 그를 사로잡았다.“소, 송구합니다, 아가씨……! 제, 제가 감히 아가씨의 고결한 성역에 흙을 묻히다니…….”이헌의 목소리는 지독한 추위로 덜덜 떨리는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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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화] 젖은 온기(2)

 자신의 그 더럽고 비참한 몰골을 조금도 역겨워하지 않고, 오히려 화를 내며 걱정해 주는 이 처절하고 맹목적인 구원의 손길. 이 손길을 얻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오랜 시간 지옥을 기어 다녔던가.“낭자께서…… 저를 이리 걱정해 주시니.”이헌이 덜덜 떨리는 갈라진 목소리로 오열하며 읊조렸다.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려 서연의 손가락 사이를 흠뻑 적셨다.“제가 천 번을 저 끔찍한 눈보라 속에 파묻혀 뼈가 으스러지게 얼어 죽는다 한들…… 저는 이제, 단 한 점의 여한도 없습니다.”“시끄럽습니다.”서연이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힌 눈으로 그의 절박한 고백을 차갑게 끊어내며 깊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 타박 속에는 과거와 같은 어떤 적의도, 혐오도 담겨 있지 않았다.“그런 끔찍하고 불길한 소리는 다신 내 앞에서 입에 올리지 마십시오.”서연은 그의 머리를 정성껏 닦던 수건을 바닥에 내려놓고, 꽁꽁 얼어 동상에 퍼렇게 질려있는 이헌의 두 손을 자신 쪽으로 왈칵 끌어당겼다.그녀는 그 젖고 얼어붙은 거친 무명 붕대 위로 마른 수건을 덧대어 꽉 감싸 쥐고는, 자신의 따뜻한 체온을 남김없이 나누어주려는 듯 양손으로 아주 단단히 틀어쥐었다.“당신이 죽으면…… 나는 이 지독한 밤에 또 누구에게 화를 내고, 누구에게 내 밤을 온전히 맡긴단 말입니까.”“……!!”이헌의 심장이 흉곽을 갈기갈기 부수고 튀어나올 듯 거세게 요동쳤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며 오직 그녀의 목소리만이 거대한 북소리처럼 귓가를 울려 퍼졌다.‘내 밤을 맡긴단 말입니까.&rsquo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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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화] 스며드는 영혼(1)

 그저 거룩한 신상(神像)을 모시는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사제처럼, 그녀가 책을 읽고 바느질을 하며 규칙적으로 숨을 쉬는 그 평범하고도 찬란한 일상의 기척들을 경이롭고 황홀한 눈빛으로 숭배하듯 지켜볼 뿐이었다.그가 앉은 자리는 여전히 방 안에서 가장 춥고 외진 문틈이었지만, 이헌의 핏발 선 눈동자에는 세상을 다 얻은 자의 처절하고도 맹목적인 기쁨만이 일렁이고 있었다.자신의 시야 안에 그녀가 무사히 숨 쉬며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의 막힌 숨통은 비로소 트였다.사각, 사각.서연은 명주천을 꿰매던 바늘을 잠시 멈추고,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돌렸다.“…….”그녀의 등 뒤에서 느껴지는 육중하고 묵직한 사내의 숨죽인 기척.이헌에 대한 공포에 완벽하게 사로잡혀 있던 과거 같았다면, 그 기척만으로도 숨이 막히고 온몸의 털이 소름 끼치게 곤두섰을 터였다.자신을 언제라도 감시하고 틈이 보이면 목을 조를지 모르는, 역겨운 포식자의 살기 어린 숨결이라 여기며 몸서리쳤을 테니까.그가 내뿜는 피 묻은 권력의 냄새만으로도 구역질이 나 당장이라도 밖으로 내몰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서연의 어깨는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게 이완되어 있었다.오히려.‘저 사내가…… 묵묵히 내 뒤를 지키고 있다.’그녀의 핏기 없는 입술 끝에 아주 희미하고도 깊은 안도감이 스쳤다.방 한구석에 웅크린 이헌의 그 무겁고 집요한 시선이 더 이상 불쾌하거나 두렵지 않았다.그가 뿜어내는 그 맹목적인 순종과 숭배의 기운이, 오히려 그녀가 겹겹이 고립된 이 대군저 안에서 유일하게 온전히 의지할 수 있는 거대한 성벽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그가 자신의 등 뒤 가장 어두운 곳에 엎드려 자신의 숨결을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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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화] 닿지 못한 손(1)

 어느덧 계절은 길고 혹독했던 겨울의 끝자락을 지나고 있었다.대군저 안채 마당의 꽁꽁 얼어붙었던 흙바닥이 서서히 풀리며, 낮이면 처마 끝에서 눈 녹은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독했던 언 땅이 녹으며, 아주 조금씩 봄이 오고 있었다.하지만 밤공기는 여전히 뼛속을 스미듯 서늘했고, 아궁이에는 어김없이 이헌이 직접 팬 참나무 장작이 타오르고 있었다.“…….”이헌이 밤을 새워 깎아 바친 호박(琥珀) 등불이, 따스하고 영롱한 황금빛을 뿜어내는 고요한 방 안.서연은 벽에 등을 비스듬히 기댄 채 서책을 읽다, 밀려오는 수마(睡魔)를 이기지 못하고 까무룩 잠이 들어 있었다.그녀의 고개가 옆으로 힘없이 툭 꺾이며, 하얀 손에 들고 있던 얇은 서책이 무릎 위로 사르르 미끄러져 내렸다.사락.그 미세한 종이 스치는 소리에, 방 한구석 가장 어두운 문틈에서 숨죽여 앉아 있던 이헌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아가씨.”그가 아주 작고 갈라진 목소리로 서연을 조심스럽게 불렀다.하지만 서연은 깊은 단잠에 빠져든 듯, 규칙적이고 편안한 숨소리만 낼 뿐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그녀의 핏기 없던 뺨은 아궁이의 훈기와 호박 등불의 빛 덕분에 아주 옅고 사랑스러운 복숭아빛으로 달아올라 있었다.‘주무시는구나.’이헌은 굳게 쥐고 있던 주먹에 스르륵 힘을 풀었다.그는 덜덜 떨리는 숨을 꿀꺽 삼키며, 자리에서 소리 없이 몸을 일으켰다.이헌의 거대하고 묵직한 발걸음이, 잠든 서연을 향해 아주 느리게 다가갔다.방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허락받았으나, 그는 결코 그녀가 누워있는 이부자리나 그녀의 신체 근처로는 감히 다가가지 않았었다.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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