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os capítulos de 첫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Capítulo 71 - Capítulo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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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떠나던 날

휘웅은 캔 커피를 두 손으로 감싼 채,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그날, 놀이공원에 다녀온 다음 날이었어.”지호의 시선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그날이 어떤 날을 말하는 건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 눈치였다.불꽃놀이 아래에서의 입맞춤, 그리고 그가 나직하게 불러 주던 노래. 두 사람 모두에게 그날은 오랫동안 마음에 걸려 있던 하루였다. 그 하루가 이렇게 다시 소환될 줄은, 두 사람 다 예상하지 못했다.이미 며칠 전부터, 미선의 상태는 눈에 띄게 나빠져 있었다. 휘웅은 그때 이미 마음을 굳혔다. 미선을 책임지기로, 그리고 지호와는 여기서 끝내기로.그 결심을 세운 뒤에야, 그는 지호에게 놀이공원에 가자고 먼저 청했다. 마지막이 될 걸 알면서도, 아니, 마지막이기 때문에 더더욱 평범하고 행복한 하루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지호에게는 그저 평범한 데이트로 남기를 바랐다. 자신에게만, 이 하루가 작별 인사라는 걸 알고 있었다.불꽃놀이가 터지는 순간, 휘웅은 문득 오래전 약속 하나를 떠올렸다. 사귄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지호가 지나가듯 했던 말이었다. 남자 주인공이 오빠를 모델로 한 노래니까, 언젠가 오빠가 직접 불러 줘야 한다고. 그때는 웃어넘기고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 말을, 그는 하나도 잊지 않고 있었다.그는 아무 말 없이, 그 노래를 나직하게 부르기 시작했다. 지호의 눈이 순간 커지더니, 이내 붉어졌다. 스치듯 던졌던 그 말을 그가 여태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지호에게는 벅찬 순간이었다. 그게 마지막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휘웅은 오히려 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려고 애썼다.그날 밤, 휘웅은 방 안에 홀로 앉아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결심은 이미 끝나 있었다. 미선을 책임지기로, 지호와는 여기서 정리하기로. 흔들릴 여지가 없는 결정이었다. 다만 그 결정을 지호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 그것만이 남은 문제였다.전화를 걸어 마지막 인사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는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곧 고개를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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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아기 고양이

휘웅이 돌아간 뒤에도, 지호는 한동안 식탁 앞을 떠나지 못했다.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 뒤로도, 방 안에는 여전히 그의 목소리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지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조금 전까지 그가 앉아 있던 맞은편 의자를 바라봤다.그가 앉았던 자리에는 손도 대지 않은 캔 커피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표면에 맺혀 있던 물방울은 이미 다 말라 버렸고, 캔은 서늘하던 처음과 달리 완전히 미지근해져 있었다.지호는 그 캔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가 앉아 있던 자리는 이제 텅 비어 있었지만, 그 온기의 흔적만큼은 아직 식탁 위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문득 낯선 생각이 들었다.'나는 왜 이 순간을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을까.'십 년이었다. 그 긴 시간 동안, 지호는 수도 없이 그를 떠올렸다. 하지만 정작 그를 다시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는 구체적으로 그려 본 적이 없었다. 재회 자체를 아예 상상 밖의 일로 밀어 두고 살아왔다.어쩌면 그건, 재회라는 게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스스로 못 박아 두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 삶이 자신의 삶과 다시 겹쳐질 거라고는 단 한 번도 믿지 않았다. 믿지 않으면 기대하지 않아도 됐고,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었다.그런데 이제, 그 상상 밖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지금 이 순간이 오기까지, 지호는 마음의 준비를 해 본 적이 전혀 없었다. 준비되지 않은 채로 맞이한 재회였기에, 지금 이 감정들이 더 낯설게 다가왔다.지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원망의 말을 쏟아 놓을 줄 알았는데.'아니면 십 년 치 눈물을 한꺼번에 쏟아 내며 펑펑 울게 될 줄 알았는데.그런데 지금 이 마음은,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그토록 오랫동안 쌓아 온 감정이라면, 한 번쯤은 격렬하게 터져 나와야 정상일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그 안에 있던 건 분노도 원망도 아니었다. 그저 오랫동안 막혀 있던 숨통이 조금 트이는 듯한, 낯설고도 조용한 안도감이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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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아직은 아니야

지호는 늘 진섭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일방적인 감정을 받아 내는 일이 얼마나 지치는 일인지, 지호는 잘 알고 있었다. 이유도 모른 채 홀로 남겨진다는 게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하는지, 지호는 지난 십 년 동안 몸으로 겪어 봤다.그런데도 그 마음을 알면서, 확실한 답을 주지 못한 채 계속 곁을 내주고 있었다. 그게 진섭에게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도 잘 알면서.그렇다고 마음을 활짝 열어 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도 아니었다. 아직은 그럴 수 없었다. 마음이라는 게 머리로 정리한다고 그렇게 쉽게 정돈되는 게 아니라는 걸, 지호는 이제야 조금씩 알아 가고 있었다.그런데 진섭이 없는 삶을 상상해 보면, 그것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촬영장에서, 힘든 순간마다, 그가 없었다면 자신이 지금 이렇게 버티고 있을 수 있었을까.애매한 마음이었다. 밀어낼 수도, 온전히 받아들일 수도 없는.이런 마음을 언제까지 끌고 갈 수 있을지, 지호도 알 수 없었다. 진섭에게도, 자신에게도 언젠가는 답을 줘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순간이 언제가 될지, 아직은 확신이 서지 않았을 뿐이었다.주변 사람들은 종종 지호에게 물었다. 두 사람 대체 무슨 사이냐고. 그때마다 지호는 웃음으로 얼버무리곤 했지만, 속으로는 그 질문에 스스로도 답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잘 알았다.그날도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지호는 평소처럼 촬영장으로 향했다.요즘 들어 진섭과는 부쩍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었다. 촬영이 끝나면 저녁을 같이 먹었고, 주말이면 가끔 근교로 드라이브를 다녀오기도 했다. 사귀는 사이라고 못 박은 적은 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이미 둘을 은근히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지호 스스로도 요즘 들어 부쩍 헷갈렸다. 이게 정말 그저 편안한 친구 사이인지, 아니면 이미 그 이상의 무언가로 넘어가 버린 건지. 명확한 선 하나 긋지 못한 채, 시간만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었다.주변에서 두 사람을 볼 때마다 은근한 미소를 짓는 것도, 지호는 알고 있었다. 스태프들 사이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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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눈치 보지 않아도 돼

요즘 휘웅은 거의 매일 촬영장에 나오고 있었다.명목은 늘 있었다. 제작 진행 상황을 점검한다거나, 스태프들과 회의를 잡는다거나.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송경숙과 지호 사이에 또 한 번 부딪히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그 걱정이 그를 계속 이 자리로 끌어당겼다.유경훈에게 넌지시 물어봐도, 요즘 송경숙의 근황은 알기 어려웠다. 촬영 일정에 맞춰 나타났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게 전부였고, 예전처럼 활기찬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휘웅은 그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지금 그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그저 조용히 지켜보는 것 말고는, 딱히 취할 수 있는 행동이 없다는 사실이 그를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그런데 정작 걱정했던 송경숙은 요즘 통 보이지 않았다. 대신 다른 사람이 눈에 밟혔다.멀대같이 키 큰 남자 배우. 진섭이었다. 그는 촬영이 없는 시간에도 늘 지호 근처를 맴돌고 있었다. 대본을 함께 보기도 하고, 커피를 건네기도 하고, 별것 아닌 농담에도 지호를 웃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휘웅은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눈이 그쪽으로 향했다.특히 진섭이 지호를 향해 스스럼없이 웃어 보일 때마다, 휘웅은 자신도 모르게 턱에 힘이 들어갔다. 저 편안함이, 저 자연스러움이 부러웠다. 자신은 여전히 지호 앞에서 조심스럽고 어려운데, 저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한번은 두 사람이 촬영 사이 짬을 이용해 벤치에 나란히 앉아 도시락을 나눠 먹는 모습을 본 적도 있었다. 별것 아닌 풍경이었는데, 휘웅은 그 자리에서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시간을, 저 남자는 자연스럽게 채워 가고 있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도, 나름의 용기가 필요했다.예전 같았으면, 두 사람 다 휘웅의 시선을 눈치채고 슬쩍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달랐다. 지호도, 진섭도 더 이상 그의 시선을 신경 쓰는 기색이 없었다.'이제는 아예 신경도 안 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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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워크숍이라는 이름의 계획

〈가면의 집〉이 드디어 방영을 시작했다.지난 몇 달간의 촬영이 마침내 화면 위로 옮겨지는 순간이었다. 지호는 첫 방송이 나가던 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혼자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자신이 쓴 대사들이 배우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걸 지켜봤다. 십 년 만에 처음으로, 온전히 자신의 이야기가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이기도 했다.시청률은 예상보다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첫 회부터 화제성도 나쁘지 않았지만, 정작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예상 밖의 인물들이었다.상간녀 역을 맡은 젊은 배우와 그 상대역인 송경숙. 두 사람의 팽팽한 연기가 방송 직후부터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정작 남녀 주인공보다, 이 두 사람의 대립 장면이 매회 화제의 중심에 섰다.특히 송경숙이 상간녀를 마주하고 조용히 무너지는 장면은, 방송 다음 날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정도로 큰 반응을 얻었다. 아무도 몰랐다. 그 장면 속 무너짐이, 연기가 아니라 진짜였다는 사실을. 시청자들은 그저 명연기라며 찬사를 보냈지만, 진실을 아는 이는 이 자리에 몇 명뿐이었다.“요즘 기사 보셨어요? 완전히 두 분 얘기뿐이더라고요.”유경훈이 싱글벙글한 얼굴로 보고했다. 휘웅은 그 반응을 들으며 옅게 웃었다. 예상대로였다. 아니, 예상보다 더 좋은 흐름이었다.“작가님도 좋아하시겠어요.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이렇게 화제성까지 잡는 경우는 흔치 않거든요.”유경훈의 말에 휘웅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호가 이 소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드라마가 순항을 시작하자, 휘웅은 그간 고생한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뭔가 보답을 하고 싶었다. 원래대로라면 일정 시청률을 넘겼을 때 해외 포상 휴가를 보내 주는 게 관례였지만, 아직 드라마는 초중반. 그 정도 보상을 약속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점이었다.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넘어가기에는, 그동안 다들 너무 고생한 게 눈에 밟혔다. 특히 지호는 새벽까지 이어지는 대본 작업을 몇 달째 이어 오고 있었다.그래서 휘웅은 다른 카드를 꺼내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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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예상치 못한 얼굴

워크숍 첫날은 예상보다 순조롭게 흘러갔다.낮 동안은 다 함께 바닷가를 걷고, 조별로 나뉘어 간단한 레크리에이션도 했다. 오랜만에 여유를 되찾은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지호도 그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섞여, 오랜만에 마음 편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저녁 여덟 시쯤, 지호는 숙소 앞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낮 동안의 레크리에이션으로 몸은 피곤했지만, 기분 좋은 피로였다. 옆자리에는 진섭이 캔커피를 손에 든 채 앉아 있었다. 촬영장 밖에서 이렇게 편하게 대화를 나눈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내일 일정도 빡빡하대요?”진섭이 캔커피를 홀짝이며 물었다.“그런가 봐요. 오전에 조별 활동 하나 더 있다던데.”그때, 지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유진이었다.“여보세요?”“지호야, 뭐 해?”“어? 나 워크숍 왔어.”“워크숍? 어디로?”“속초.”전화기 너머에서 유진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뭐어?! 어머, 우리도 속촌데!”“진짜?”지호도 반가운 마음에 목소리가 높아졌다.“완전 대박이다. 우리 지금 펜션인데, 여기로 와! 동학이 오빠도 여기 있어.”“진짜 가도 돼?”“당연하지! 뭐 좀 사서 와, 우리 술 좀 부족해.”전화를 끊은 지호의 얼굴에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번져 있었다. 오랜만에 유진을 만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진섭이 물었다.“무슨 일이에요? 표정이 갑자기 확 밝아지셨는데.”“아…. 친구들이 이 근처에 휴가 와 있대요. 몇 년 만에 만나는 건지 모르겠네요. 맥주 한잔 마시러 가려고요.”지호가 들뜬 목소리로 대답하자, 진섭이 눈을 반짝였다.“저도 가면 안 돼요?”“네?”“낯선 사람 껴도 괜찮으면요. 오늘 워크숍 끝나고 딱히 할 것도 없어서.”지호는 잠시 머뭇거렸다. 거절할 뚜렷한 이유는 없었다.“음…. 그럼 같이 가실래요? 제 친구들이 좀 놀라긴 하겠지만.”“그 정도쯤이야 괜찮죠.”진섭이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두 사람은 나란히 밤길을 걸어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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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웃음이 터진 자리

술자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무르익어 갔다.다섯 사람 모두 마음속에 저마다 하나씩 꿍꿍이를 품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누구도 그걸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술의 힘을 빌려 분위기는 한층 더 뜨거워졌다. 웃음소리가 잦아들 만하면 누군가 다시 잔을 채웠고, 그때마다 대화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동학이 안주를 더 시켜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유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음 술을 골랐다. 진섭은 낯선 자리임에도 제법 잘 어울려 들었고, 지호는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계속 휘웅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었다.“노래방 기계 있는데, 한 곡씩 어때요?”유진이 눈을 반짝이며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누구도 마다하지 않았다. 곧 텔레비전 화면에 반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첫 곡은 동학이 골랐다. 오래된 댄스곡이었다. 몸치인 걸 숨기지 않고 신나게 팔을 휘두르는 동학의 모습에 다들 배를 잡고 웃었다. 진섭도 처음엔 어색해하다가, 이내 박수를 치며 분위기에 스며들었다.“동학 오빠, 그거 완전 아저씨 춤이야!”유진이 깔깔거리며 놀리자 동학은 더 신나게 몸을 흔들었다. 마이크를 놓지 않으려는 동학과 억지로 빼앗으려는 유진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고, 결국 노래는 절반쯤에서 흐지부지 끊겼다.뒤이어 유진이 마이크를 낚아채더니 왕년의 인기가요를 목청껏 불러 젖혔다. 음정은 반쯤 나가 있었지만, 그 열창에 다들 박수를 보냈다. 시끄럽고 신나는 노래들이 연달아 이어지며 거실 안의 열기는 점점 더 올라갔다.“다음, 진섭 씨 차례!”유진이 마이크를 진섭에게 떠넘겼다. 진섭도 못 이기는 척 마이크를 받아 들고 최신 가요를 한 곡 불렀다. 프로답게 음정 하나 흔들리지 않는 노래에 다들 박수를 쳤다.“와, 진짜 노래도 잘하시네요.”동학이 감탄하며 엄지를 치켜세우자, 진섭이 겸연쩍게 웃었다.한바탕 흥이 지나가고, 이번엔 휘웅 차례였다.“오빠도 한 곡 해.”유진이 마이크를 건네자, 휘웅은 잠시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다 곡을 선택했다.전주가 흐르기 시작했다. 시끄럽던 분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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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모래사장에서

휘웅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지호는 잠시 그 자리에서 사라진 것 같았다.정확히는, 순간 이동을 한 것 같았다. 마지막 데이트의 그 밤으로. 불꽃놀이가 터지던 밤하늘 아래, 휘웅이 나직하게 불러 주던 그 노래. 그때 느꼈던 몽글몽글한 감정, 가슴 한구석이 간지러웠던 그 느낌까지 고스란히 되살아났다.'아, 이 노래.'전주만 듣고도 알았다. 가사를 직접 쓴 자신이 모를 리 없었다. 그날의 공기, 그날의 온도, 그날 휘웅의 표정까지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지는 듯했다. 손끝에 닿았던 밤바람의 서늘함까지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하지만 그 여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순간, 지호의 눈에서 흘러나온 건 눈물이 아니라 웃음이었다.방금 전까지 애틋했던 마음이, 어느새 스스로에게 향한 헛웃음으로 바뀌어 있었다.'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건가.'지호는 속으로 자조했다. 아직도 이렇게, 몇 년이나 지난 추억에 젖어 감성팔이를 하고 있는 자신이 너무 우스웠다. 이 나이에, 이 마당에, 겨우 노래 한 곡에 무너지려는 스스로가 한심하기까지 했다. 웃음이 나왔다. 자꾸만 웃음이 났다.그런데 웃으면 웃을수록, 오히려 눈물이 차올랐다. 목구멍 안쪽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밀고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아니…… 이거, 울음을 웃음으로 막고 있는 건가.'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 없었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자신도 구분이 되지 않았다. 다만 확실한 건, 이 감정을 더는 이 자리에서 주체할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지호는 벌떡 일어나 방을 뛰쳐나갔다. 뒤에서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은데, 돌아볼 새도 없이 무작정 앞으로 달렸다. 신발이 벗겨질 뻔한 것도, 골목을 몇 번이나 꺾어 돌았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이 감정에서 최대한 멀리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얼마나 뛰었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앞엔 바다가 있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있었지만, 지호는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려온 참이었다.발이 젖는 것도 모른 채, 지호는 그대로 모래사장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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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자꾸만 엇갈리는

속초에서의 이틀이 꿈결처럼 지나가고, 다시 일상이 시작됐다.〈가면의 집〉 후반부 방영이 시작되면서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뜨거웠다. 시청률 그래프는 방영 때마다 조금씩 우상향을 그렸고, 실시간 검색어에도 심심찮게 이름을 올렸다. 지호에게는 다음 작품 논의를 위한 미팅과 인터뷰 요청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한적했던 작업실이, 이제는 걸려 오는 전화와 메일로 하루 종일 분주해졌다.정신없이 바빠진 나날 속에서, 지호는 오히려 마음 한구석이 편했다. 몰두할 일이 있다는 건, 복잡한 생각을 잠시 밀어 둘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속초에서 있었던 일들은 마음 한쪽에 곱게 접어 두고, 지호는 매일 아침 원고와 미팅 자료부터 펼쳐 들었다. 밀려드는 일정을 하나씩 소화해 나가는 동안에는, 적어도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휴대폰이 울린 건 제작사와의 미팅 도중이었다.[강휘웅]발신자를 확인한 지호는 잠시 화면을 바라봤지만, 미팅 중이라 받을 수 없었다. 테이블 맞은편에서는 다음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 오가는 중이었다. 진동으로 몇 번 더 울리다 이내 조용해지는 화면을, 지호는 테이블 아래에서 슬쩍 내려다봤다. 미팅이 끝난 뒤 확인해 보니, 짧은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오늘 저녁에 시간 괜찮아?]지호가 답장을 보내려던 순간, 다음 일정을 알리는 매니저의 연락이 왔다. 자료를 챙기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사이 휴대폰은 다시 가방 속으로 들어갔다. 결국 답장은 늦은 밤이 되어서야 보낼 수 있었다.[미안, 미팅이 계속 이어져서. 내일은 어때요?]메시지를 보내 놓고, 지호는 잠시 화면을 들여다봤다. 확인 표시가 뜨는 걸 보면서도,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조금 무거워졌다. 하지만 그 감정도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다음 날 새벽부터 인터뷰 촬영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다음 날, 이번엔 반대였다. 지호가 시간을 비워 뒀지만, 휘웅 쪽에서 급하게 잡힌 투자 관련 일정으로 연락이 왔다. 지호는 저녁 약속 시간에 맞춰 일부러 일정을 앞당겨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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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종영 회식

〈가면의 집〉 마지막 회가 방영된 날, 시청률은 그해 방영된 드라마 중 최고 기록을 세웠다.실시간 검색어 1위부터 10위까지 관련 키워드가 줄줄이 올라왔고, 각종 매체에서는 앞다투어 특집 기사를 쏟아 냈다.배우들의 인터뷰 영상이 곳곳에 걸렸고, 명장면을 편집한 영상들이 SNS를 타고 빠르게 퍼져 나갔다.몇 달간 쌓아 온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종영 다음 날 저녁, 제작사에서는 성대한 회식 자리를 마련했다.배우와 스태프는 물론, 작가진까지 한자리에 모이는 큰 규모였다.넓은 룸을 가득 채운 사람들, 여기저기서 터지는 웃음소리와 건배 소리.오랜만에 다 함께 모인 자리는 시작부터 떠들썩했다.한동안 서로 얼굴 볼 새도 없이 바빴던 사람들이라, 다들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촬영 뒤풀이 이후 처음 다시 모이는 자리이기도 했다.“작가님,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여기저기서 지호에게 인사와 축하가 쏟아졌다.지호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받았다.얼떨떨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뿌듯하게 차오르는 순간이었다.처음 이 작품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다.밤새 원고를 붙잡고 씨름하던 지난 시간들이, 이 순간만큼은 헛되지 않았다는 걸 실감하게 했다.진섭도 촬영 스케줄을 겨우 조율해 참석한 자리였다.오랜만에 화장기 없는 편안한 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지호를 발견하자마자 다가와 활짝 웃었다.“작가님, 정말 축하드려요. 이 작품 하길 잘했다는 생각, 오늘 백 번은 더 들었어요.”“진섭 씨 덕분이죠.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다음 작품도 저 좀 챙겨 주세요.”진섭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지호도 마주 웃으며 잔을 들었다. 별다른 뜻 없는 가벼운 농담이었지만, 그 편안함이 새삼 고마웠다.두 사람이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사이, 감독과 다른 배우들도 하나둘 지호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휘웅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인사를 건넬 타이밍을 좀처럼 잡지 못하고 있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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