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s les chapitres de : Chapitre 81 - Chapitre 90

100

제81화

단미와 여린은 오전 내내 갑판에서 둘이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놀았다.정오 무렵 경남이 잠에서 깨자 네 사람은 배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식사 중 경남은 어제 준호와 하던 당구 승부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오늘도 몇 판 더 치자고 했다.그래서 네 사람은 밥을 먹은 뒤 당구장으로 가기로 했다.레스토랑을 나설 때 단미는 화장실에 들러야 했다.여린이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단미가 말했다.“괜찮아. 너 방에 가서 충전기 가져온다며. 조금 있다 당구장에서 만나.”“그래. 그럼 나 먼저 갈게.”여린은 준호와 경남과 함께 레스토랑을 나갔다.단미는 혼자 화장실로 향했다.용무를 마치고 룸이 늘어선 복도를 지나는데 한쪽 문이 갑자기 열렸다.안에서 사람이 나오기에 단미는 자연스럽게 걸음을 멈추고 길을 비켜 줬다.그런데 귀에 익은 호칭이 들렸다.“제수씨?”고개를 들어 도진을 보자마자 단미는 괜히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예감은 맞았다.도진은 구세주라도 만난 얼굴로 말했다.“잘됐다. 안 그래도 제수씨 찾으러 가려고 했어요.”“호건이 술을 너무 마셨어요. 죄송한데 객실까지 좀 데려다주세요.”단미가 거절할 틈도 없었다.도진은 단미의 팔을 잡고 룸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며 큰 소리로 말했다.“호건아, 제수씨가 데리러 오셨다.”테이블 주변에는 남자 몇 명이 더 앉아 있었다.그 사람들은 도진의 말을 듣고 모두 단미를 바라봤다.시선을 한몸에 받은 단미는 할 말을 잃었다.‘내가 언제 데리러 온다고 했는데?’한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지 대표님, 사모님께서 정말 걱정 많이 하시나 봅니다. 술 좀 드셨다고 바로 모시러 오시네요.”다른 사람도 맞장구쳤다.“사모님이 현명하고 살뜰하게 대표님을 챙기는 분이라는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역시 괜히 나온 말이 아니네요.”“...”가운데에 앉은 호건의 기분을 맞추려는 듯 사람들이 하나같이 단미를 칭찬했다.그렇게까지 말을 들은 이상 단미도 사람들 앞에서 호건의 아내 역할을 망칠 수는 없었다.호
Read More

제82화

단미는 호건을 부축해 객실로 가는 내내 참지 못하고 투덜거렸다.“대낮부터 취해 놓고 임산부한테 부축받는 게 창피하지 않아?”“술 약하면 적당히 마시지. 뭘 그렇게 무리해?”겨우 객실까지 데려와 침대에 눕힌 뒤에야 단미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몸을 일으키려는데 손목이 붙잡혔다.“여보, 가지 마...”단미는 술기운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보는 호건을 내려다봤다.손을 빼내며 잘라 말했다.“그렇게 부르지 마. 난 이제 당신 아내 아니야.”그 말을 듣자 호건은 몸을 일으켜 앉았다.평소와 달리 풀이 죽은 표정이었다.“역시... 넌 이제 내가 싫은 거지?”단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런 호건의 모습은 처음이었다.호건은 애처롭게 단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눈가에는 술기운 때문인지 붉은 기가 돌았고 목소리에도 억울하고 서운한 기색이 묻어났다.마치 단미가 자신을 버린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어디 안 좋아?”단미도 모르게 목소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호건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응.”“그럼 직원 불러서 당신 좀 봐 달라고 할게...”단미가 돌아서려는 때였다.호건의 큰 손이 단미의 손목을 잡아끌었다.예상하지 못한 단미는 몸의 균형을 잃고 침대 가장자리에 주저앉았다.바로 앞에 간절한 눈빛의 호건이 있었다.“직원은 싫어. 여보, 당신이 나 좀 봐 주면 안 돼?”단미의 긴 속눈썹이 떨렸다.붙잡힌 손을 빼내려고 하며 말했다.“이러지 마. 난 이제 당신 아내가 아니...”말이 끝나기도 전에 호건의 입술이 단미의 입술을 덮었다.단미의 눈이 크게 뜨였다.당황해 굳은 사이 호건은 거칠고 깊게 단미에게 키스를 했다.뜨거운 숨이 닿고 혀끝이 얽히자 단미의 몸이 가볍게 떨렸다.“읏...”단미는 두 손으로 호건을 밀어내며 고개를 뒤로 빼려고 했다.그러자 큰 손 하나가 뒤통수를 단단히 받쳐 더 물러나지 못하게 했다.오랫동안 참아 온 사람처럼 호건의 키스에는 거의 여유가 없었다.거칠고 뜨거웠으며 상대를 놓치지 않겠다는 집요함이 그대로 묻
Read More

제83화

겨우 자유로워진 단미는 호건을 힘껏 밀어냈다.품에서 빠져나와 몸을 일으키는 동시에 손바닥을 들었다.그대로 뺨을 때리려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조금 전까지 제멋대로 자신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던 남자가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단미는 이미 호건의 키스 탓에 머릿속이 엉망이었다.이 광경을 보니 더 어이가 없어졌다.치켜든 손도 그대로 허공에 멈춰 있었다.숨도 아직 제대로 고르지 못한 채 젖은 눈으로 믿을 수 없다는 듯 호건을 바라봤다.뒤늦게 정신이 돌아오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사람한테 이래 놓고 자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잠든다고?’술기운에 잠든 잘생긴 얼굴을 보니 화를 풀 곳도, 따질 곳도 없었다.단미는 결국 호건의 팔을 세게 꼬집었다.“마음대로 사람한테 키스해?”한 번 더 꼬집었다.“누가 나한테 키스하래?”“남의 몸에 함부로 손대?”“아주 꼬집어서 죽여 버릴 거야.”“...”한마디할 때마다 손가락에 힘을 더 줬다.희고 단단한 팔뚝에 손톱 자국이 붉게 남았는데도 호건은 반응하지 않았다.정말 깊이 잠든 것처럼 보였다.아직도 혀끝과 입술이 얼얼한 걸 느끼자 단미의 화는 더 치솟았다.도저히 못 참겠어서 몇 번 더 팔을 꼬집어 화풀이했다.그때 핸드폰 벨이 울렸다.여린이었다.[단미야, 너 어디야? 왜 아직 당구장 안 와? 무슨 일 생겼어?]“아니야. 지금 갈게.”단미는 전화를 끊고 침대에서 자는 호건을 내려다봤다.이를 한번 악문 뒤 더 따져 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하고 몸을 돌려 객실을 나섰다.문이 세게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서야 호건이 작게 신음했다.“아...”호건은 눈을 뜨고 굳게 닫힌 문을 한번 봤다.이어 단미에게 제대로 보복당한 팔을 들어 붉은 자국들을 확인했다.낮게 웃음이 흘러나왔다.“한 성깔 하네.”호건은 방금 훔쳐 온 온기라도 남아 있는 듯 입술을 혀끝으로 가볍게 훑었다.만족스러운 웃음이 번졌다.단미는 엘리베이터에 올라 아래층 버튼을 눌렀다.문이 닫히자 벽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
Read More

제84화

지난 2년 동안 명절마다 호건이 직접 선물을 챙긴 적은 없었다.그래도 민석에게 따로 지시해 단미의 친정에는 빠짐없이 넉넉한 명절 선물을 보내게 했다.올해는 그 선물이 끊기자 결국 직접 찾아온 한 모양이었다.[딸, 네가 오해한 거야. 선물 받으려고 간 게 아니다.]단미가 차갑게 받아쳤다.“선물이 아니면 다른 걸 달라고 하시려는 거겠네요.”의문이 아니라 거의 확신에 가까운 말이었다.윤정해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한동안 침묵한 뒤 서운함을 섞어 말했다.[단미야, 그래도 우리가 부녀 사이인데 꼭 아빠한테 그렇게 말해야 하니?]단미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전에 말씀드렸잖아요. 이나경이 아버지 딸이고, 저는 아니라고요.”전화 너머에서 박미영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여보, 얘랑 무슨 말을 그렇게 오래 해. 그냥 사업 얘기부터 해...]윤정해가 짜증스럽게 끊었다.[당신은 가만있어.]두 사람이 실랑이하는 소리가 들렸다.단미의 입가에 차가운 웃음이 걸렸다.“역시 추석 선물 때문이 아니라 다른 부탁이 있으셨네요.”[단미야.]윤정해는 목소리를 다시 다듬었다.[해율만 복합개발 사업 말이다. 지 서방이 전에 우리 윤성산업도 참여하게 해 준다고 했잖니. 그런데 갑자기 JF그룹에서 우리 회사는 자격 요건이 부족해서 협력 제안이 통과되지 않았다고 연락이 왔다.][왜 그렇게 된 건지 네가 호건이한테 한번 물어봐 줄 수 있겠니?]단미는 조금 뜻밖이라는 표정이 됐다.‘지호건이 지난번 내 말을 들은 건가?’윤정해가 급히 말을 이었다.[혹시 우리가 후반에 수익 배분율을 2%포인트 더 달라고 한 것 때문에 그런 거면 그 조건은 철회해도 된다. 원래 지 서방이 제안했던 배분율대로 할 테니까 윤성산업이 계속 참여할 수 있게만 해 달라고 전해줘.]그 말을 듣자 단미의 미간이 깊게 좁아졌다.윤성산업 같은 규모의 회사는 원래라면 끼어들 기회조차 얻기 어려운 대형 사업이었다.호건이 특별히 참여 기회를 줬는데도 윤정해는 거기서 수익을 더 달라고 요구한 것이
Read More

제85화

크루즈는 저녁 6시에 항구로 돌아갈 예정이었다.단미 일행은 5시가 조금 넘어 당구장에서 나와 각자 객실로 돌아가 짐을 정리하기로 했다.단미가 자기 객실로 향하던 중 모퉁이를 돌다가 앞쪽 비상구 근처에 서 있는 남녀를 발견했다.걸음이 멈췄다.거리가 꽤 있었지만 누군지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겨우 호건을 붙잡은 채림은 진심으로 미안한 사람처럼 순한 표정으로 호건에게 사과하고 있었다.“호건아, 어젯밤 일은 미안해. 그런데 단미의 친구가 그렇게 기본적인 예의도 없는 사람인 줄은 몰랐어.”“사람 많은 자리에서 사회적인 예절은 하나도 안 지키고 분위기를 그렇게 만들어 버렸잖아...”호건이 차갑게 끊었다.“내 앞에서 내 아내의 가장 가까운 친구를 험담하는 건 내 아내를 무시하는 행동이야.”눈빛도 싸늘했다.“그러는 네 예절은 어디 있어?”채림의 눈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급히 설명했다.“아니, 난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야...”“어제 나선 사람이 여린 씨였다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호건의 말에는 온기가 없었다.“내가 직접 말했으면 네가 더 창피했을 테니까.”채림은 눈이 커졌고 표정도 창백해졌다.“같은 얘기를 두 번 하고 싶지는 않아.”호건은 냉정하게 바라봤다.“내일 내가 직접 네 아버지께 전화해서 프로젝트 담당자를 교체해 달라고 할게.”“앞으로 개인적인 일이든 업무든 우리도 거리를 두자.”단미는 이대로 지나갈지, 잠시 다른 곳에 있다가 객실로 돌아갈지 고민했다.그런데 채림이 입을 가리고 울음을 참는 듯한 얼굴로 반대쪽으로 뛰어갔다.단미는 조금 의아했다.‘둘이 싸운 건가?’단미에게 등을 보이고 있던 호건은 채림을 따라가지 않았다.오히려 몸을 돌려 단미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예상하지 못한 움직임이라 단미도 숨을 곳을 찾지 못했다.마침 지나가던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만들고 앞으로 걸었다.호건은 단미를 발견하자 걸음을 빠르게 했다.“왔어?”호건이 가까이 오자 단미의 머릿속에는 본의 아니게 정오의 일이 떠올
Read More

제86화

어쨌든 몰래 키스하는 데 성공한 호건은 아무리 평소처럼 무심한 표정을 지으려 해도 미간과 눈가에 개운한 기색이 남아 있었다.단미가 객실로 들어가 보니 짐은 이미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여행 가방도 소파 위에 올려져 있었다.단미는 뒤따라 들어온 호건을 돌아봤다.호건이 바로 설명했다.“아까 할 일도 없고 해서... 네 짐 좀 정리했어. 빠진 거 있는지 한번 확인해 봐.”단미는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봤다.‘누가 내 짐 정리해 달랬어?’호건은 태연하게 말을 보탰다.“어젯밤 네가 나 재워 줬잖아. 그 답례로 이 정도 일은 내가 할 수 있지.”표정은 마치 감사의 말은 필요 없다는 듯했다.단미는 할 말을 잃었다.그래도 짐이 다 정리된 건 나쁘지 않았다.여기서 더 머물 이유가 없었다.단미는 가방을 들고 바로 문 쪽으로 향했다.호건이 당황해 물었다.“아직 항구에 도착하기도 전인인데 어디 가?”“여린이 방.”단미는 호건을 쳐다보지도 않고 문을 열어 나갔다.호건과 둘이 이 방에 있으면 공기까지 괜히 달라붙는 것 같았다.아까 침대에서 있었던 일이 자꾸 떠올라 견디기 힘들었다.단미는 여린의 객실로 갔다.크루즈가 항구에 도착할 때까지 네 사람이 함께 있다가 같이 하선했다.경남은 단미의 짐을 들고 옆으로 다가왔다.“누나, 제 차 저 앞에 있어요. 저랑 같이 가요. 제가 집까지 모셔다드릴게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경남 손에 들린 가방을 누군가 가져갔다.경남이 돌아보니 언제 나타났는지 호건이 옆에 서 있었다.단미도 굳은 얼굴의 호건을 보고 조금 놀랐다.호건은 경남에게 말했다.“우린 기사님이 데리러 와. 일부러 데려다줄 필요 없어.”경남이 되물었다.“우리요?”경남은 단미를 의아한 눈으로 봤다.“누나, 지 대표님이랑 같이 가기로 하셨어요?”단미가 대답하려는 때 이미 옆에 선 호건이 먼저 말했다.“같은 집에서 사는데 같이 돌아가는 게 이상해?”이어 단미를 봤다.“차가 저쪽에서 기다리고 있어. 가자.”이미 차가 도착해 있다는 말을
Read More

제87화

진지하고 흔들림 없는 눈빛에 단미는 숨을 잠깐 멈췄다.호건에게 잡힌 손을 내려다본 뒤 빠르게 빼냈다.“필요 없어. 안 받을 거야.”호건이 단미를 봤다.“그래도 윤 회장한테 마음이 약해지는 거야?”“그건 아니야.”단미가 고개를 저었다.“나는 사업이나 회사 경영을 잘 모르잖아. 억지로 회사를 가져왔다가 운영을 망치면 멀쩡히 일하는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어.”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호건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그건 걱정하지 마. 전문 경영진을 붙여 줄게. 넌 아무것도 관리하지 않아도 돼. 수익만 받으면 돼.”“싫어.”단미는 다시 분명하게 거절했다.호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당신이 나 때문에 그런 것까지 할 필요 없어. 나도 받지 않을 거고.”단미는 호건에게 빚지고 싶지 않았다.차갑게 거리를 두고 선을 긋는 태도를 본 호건은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였지만 끝내 꺼내지 못했다.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두 사람 사이에는 별다른 대화가 없었다.도착한 뒤에도 각자 방으로 올라갔다....그 뒤 이틀 동안 호건은 꽤 바쁜 듯했다.점심에도 집에 들어오지 못했다.단미는 입덧이 전보다 심해졌다.입맛도 떨어졌고, 어렵게 먹어도 다시 토하는 일이 잦아졌다.기운도 눈에 띄게 줄었다.그래서 이틀 동안은 외출하지 않고 집에서 느긋하게 쉬었다.셋째 날 경남에게서 연락이 왔다.고미술 상가에서 마음에 드는 오래된 염주 한 점을 발견했는데 단미에게 진품 여부와 제품의 상태를 같이 봐 달라는 부탁이었다.집에만 이틀 있던 단미도 바람을 쐬고 싶던 참이라 흔쾌히 승낙했다.두 사람은 고미술품점에서 만났다.경남이 주인에게 염주를 꺼내 달라고 했다.단미는 손에 들고 꼼꼼히 살폈다.오래전 왕조 말기에 제작된 자단 염주였다. 구슬은 쉰네 알이었고 각 구슬에는 작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경남이 물었다.“누나, 여기 글자 몇 군데가 닳고 깨졌어요. 복원할 수 있을까요?”“손상이 심하지는 않아서 복원 자체는
Read More

제88화

“응.”단미의 눈이 비녀에서 떨어질 줄 모르자 경남이 말했다.“그럼 제가 사 드릴게요. 오늘 제 염주 봐 주러 와 주셨으니까 답례해야죠.”단미는 고개를 들어 웃었다.“고맙긴 한데 됐어. 누나가 갖고 싶은 건 누나 돈으로 살 수 있어.”단미는 원래 시대의 특징이 뚜렷하고 손기술이 정교한 옛 공예품을 모으는 걸 좋아했다.오래된 유물은 지나간 시대의 삶과 기술을 전하는 문화의 기록이었다.이 땅에도 긴 세월 동안 여러 시대와 왕조가 이어졌고, 시기마다 만들어진 공예품에는 당시 사람들의 취향과 제작 기술이 서로 다르게 남아 있었다.고유물 복원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시대별로 전해 내려온 여러 유물의 재료와 기법을 끝없이 공부하고 연구해야 했다.그래야 실제 복원 작업에서도 원래의 형태와 제작 방식을 최대한 가깝게 되살릴 수 있었다.단미는 유물의 종류를 특별히 가리지 않았다.시대적 특징이 뚜렷하거나 연구할 가치가 있고, 자신이 부담할 수 있는 가격이라면 직접 사서 소장하곤 했다.눈앞의 정교한 비녀도 그중 하나였다.단미가 직원에게 말했다.“이거 포장해 주세요. 살게요.”“네, 고객님.”직원은 비녀를 포장한 뒤 앞쪽 계산대로 안내했다.경남이 단미보다 먼저 카드를 내려고 했지만 단미가 재빨리 막았다.곧바로 자기 카드를 직원에게 건네 결제했다.단미가 계산을 끝내자 경남은 서운한 얼굴로 말했다.“누나, 저도 한번쯤 누나 앞에서 멋있을 기회를 주시면 안 돼요?”단미가 눈썹을 올렸다.“내 앞에서 네가 보여 줄 건 복원 실력이 느는 거야. 선물 사 주는 게 아니고. 알았어?”“둘 다 해도 되잖아요.”“젊은이는 일단 하나에 집중해.”두 사람이 이야기하는데 문이 열리며 여자 둘이 들어왔다.두 사람은 곧장 진열장 쪽으로 갔다.“어? 여기 있던 비녀 어디 갔지?”직원이 답했다.“죄송합니다, 고객님. 조금 전에 다른 분이 구매하셨습니다.”“말도 안 돼. 잠깐 다른 가게 둘러보고 온 사이에 팔렸어요?”익숙한 목소리에 단미가 멈칫했다.몸을 돌리
Read More

제89화

가게 밖으로 나온 윤희의 친구는 몰래 뒤를 돌아 단미와 그 옆의 경남을 한번 봤다.“윤희야, 새언니 옆에 있는 남자는 누구야?”윤희는 쇼핑백에서 비녀를 꺼내 구경하며 무심히 대답했다.“응? 몰라. 새언니 친구겠지.”친구는 윤희가 아무렇지 않아 하는 게 더 놀라웠다.“새언니가 모르는 남자랑 단둘이 쇼핑하는데 반응이 그게 다야?”윤희가 친구를 봤다.“그게 왜?”“남자잖아.”“그래서?”윤희는 비녀를 다시 쇼핑백에 넣었다.“사람이 여자 아니면 남자지. 무슨 괴물도 아니고 친구랑 쇼핑하는 게 뭐가 그렇게 놀라워?”친구가 다시 물었다.“너희 집안에서는 며느리가 다른 남자를 따로 만나도 괜찮아?”윤희는 기가 막힌 듯 친구를 쳐다봤다.“야,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런 말을 해? 너도 여자면서 그런 소리가 나와?”“새언니가 우리 집에 결혼한 거지 우리 집 소유물이 된 게 아니잖아. 왜 친구를 못 만나?”친구는 더 할 말을 잃었다.가게 안에서 경남은 유리창 너머로 두 여자가 이야기를 나누며 멀어지는 걸 본 뒤 단미를 돌아봤다.“아까 저분이 지호건 대표님 여동생이에요?”“응.”경남의 표정에 걱정이 묻어났다.“누나는 지 대표님이랑 이혼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좋아하는 물건을 그냥 저분한테 주세요?”“예전에도 저랬어요? 누나 물건 마음에 들면 달라고 하고 그냥 가져가고?”경남이 윤희를 못된 시누이로 오해한 걸 알아차린 단미는 바로 설명했다.“아니야. 쓸데없는 상상하지 마. 윤희 씨 성격 괜찮아.”“아까 말했잖아. 학교 행사 때문에 마침 그 비녀가 필요해서 부탁한 거라고.”단미와 윤희가 아주 친한 시누이와 올케 사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그래도 윤희는 늘 단미에게 필요한 예의를 지켰다.한번은 단미를 도와준 적도 있었다.호건과 결혼하고 돌아온 첫 설날이었다.단미는 호건과 함께 본가에 가서 가족 차례에 참석했다.단미와 윤희가 제사상에 올릴 물건을 먼저 들고 안쪽 사당으로 가던 길이었다.단미가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바람에 손에 들고 있
Read More

제90화

호건은 그렇게 단미의 손을 잡고 사당 안으로 들어갔다.그 일은 윤희에게는 그냥 지나가다 한번 도와준 작은 일이었을지도 몰랐다.하지만 단미는 오래도록 고맙게 기억하고 있었다.그래서 윤희가 비녀를 부탁했을 때도 조금도 싫지 않았다.오히려 기꺼이 주고 싶었다.경남이 다시 말했다.“그럼 다른 거 하나 골라요. 이번에는 제가 계산할게요.”단미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난 이런 건 그냥 인연 닿으면 사는 거야. 보자마자 마음에 들면 사고, 아니면 굳이 찾지는 않아.”경남이 정말 다른 선물을 사 줄까 봐 단미는 바로 화제를 돌렸다.“시간도 늦었어. 이제 가자.”...집으로 돌아오니 5시가 조금 넘었다.단미는 호건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오늘 저녁은 늦게 들어갈 테니 기다리지 말고 먼저 먹으라는 내용이었다.단미가 저녁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정란이 작은 접시에 후식으로 먹을 과일을 담아 왔다.단미는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면서 조금씩 집어먹었다.조금 뒤 현관 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호건이 돌아왔다.오정란이 바로 나가 맞았다.“대표님, 오셨습니까. 저녁 바로 차려 드릴까요?”호건은 소파에서 쿠션을 안고 TV를 보는 단미를 한번 바라봤다.“조금 있다 부탁드릴게요.”그대로 거실로 걸어왔다.단미는 호건을 잠깐 한번 보고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호건은 재킷을 벗어 옆에 두고 단미 곁에 앉았다.단미를 바라보는 눈에는 걱정과 다정함이 뚝뚝 묻어났다.“오늘 영양사가 식단 바꿨잖아. 속 울렁거리거나 불편한 건 없어?”지난 이틀 동안 단미는 식사할 때마다 속이 메스껍고 입맛이 없었다.먹고 나서 바로 토한 적도 있었다.그래서 호건이 영양사에게 메뉴를 다시 조정하라고 했다.“안 토했어.”단미는 통통한 토끼 쿠션 위에 턱을 느슨하게 올리고 TV를 보고 있었다.작은 얼굴과 동그란 눈만 쿠션 위로 보였다.대답도 꽤 성의 없었다.지난 이틀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한 걸 떠올리자 호건은 손바닥만 한 단미의 얼굴이 더 야위어 보이
Read More
Dernier
1
...
5678910
Scanner le code pour lire sur l'application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