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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봄을 담다: Chapter 131 - Chapter 140

145 Chapters

131

평창동 저택의 식탁.길게 놓인 원목 테이블 위에 음식은 차려져 있었지만 젓가락이 움직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유철중이 상석에 앉아 있고, 그 옆에 유재원.맞은편엔 김지숙과 유지원.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아 있었다.유철중이 먼저 입을 열었다.식탁 위의 공기가 찢어질 듯 팽팽했다.유철중의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울렸다.“내가 듣자니 응급환자 처치를 잘 못했다던데.”유지원의 손이 떨렸다.“외과에 자질이 없는 거 아니냐. 과를 바꿔보는 게 좋지 않겠니?”차갑게, 단정적으로.“외과는 실력이 우선이다.네가 아무리 대한병원 원장 딸이라 해도 실력이 없으면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김지숙이 급히 말을 꺼냈다.“아버님… 그럼 봄이는”쾅.유철중이 숟가락을 세게 식탁에 내려쳤다.“어디 감히 봄이랑 비교를 해!”식탁 위 국물이 흔들렸다.“지원이, 네가 우리 봄이 발끝이라도 따라갈 실력이 된다고 생각하느냐?”유지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식탁 위에 놓인 간장게장을 보던 유철중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앞으로 감히 우리 봄이랑 비교했다가는 내가 용서하지 않을 테니 그런 줄 알아라.”묵직한 목소리에 공기가 내려앉았다.김지숙이 움찔했다.유철중은 게장 접시를 가리켰다.“이 간장게장… 우리 봄이도 좋아하는 건데.”순간 김지숙의 얼굴이 굳었다.“어떻게 봄이는 부를 생각도 안 하는 거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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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전, 아직 병원 복도는 조용했다.유지원은 가방 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하얀 약국 봉투가 괜히 눈에 띄는 것 같아 몇 번이나 주변을 살폈다.임신테스트기.이런 걸 내가 왜 사야 하지…그녀는 한 번도 이런 검사를 해본 적이 없었다.드라마에서나 보던 물건이었다.병원 화장실 가장 안쪽 칸.문을 잠그고도 불안해서 손잡이를 한 번 더 확인했다.포장을 뜯으며 설명서를 펼쳤다.‘소변을 3초간… 5분 이내 결과 확인.’지원은 손이 떨렸다.“설마…”그날 이후 생리가 늦어졌다는 걸 깨달았을 때도애써 스트레스 때문이라 생각했다.하지만 어젯밤, 간장게장 냄새에 올라오던 구토감.그 순간 스친 강릉의 호텔, 심지호의 얼굴.그 기억을 밀어내듯 고개를 흔들었다.“아니야. 아닐 거야.”검사를 마치고 뚜껑을 닫아 변기 뚜껑 위에 올려두었다.설명서에는 3~5분 기다리라고 적혀 있었지만 1초가 1분처럼 길었다.시계를 볼까 하다 무서워서 고개를 돌렸다.심장이 쿵, 쿵.혹시라도 두 줄이면?아니, 그럴 리 없어.관계 했다고 해서 다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그녀는 억지로 웃었다.“유지원, 정신 차려.”용기를 내어 고개를 돌렸다.하얀 창 안에 선 하나가 서 있었다.“…한 줄.”안도의 숨이 나오는 듯했는데 그 옆에 아주 옅은 그림자가 번지듯 나타났다.처음엔 착시인 줄 알았다.눈을 비볐다.가까이 들여다봤다.선이&hellip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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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가 끝나자 의자 끄는 소리가 잔잔하게 울렸다.유봄은 누구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재원을 향한 인사도, 눈길도 없이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갔다.닫히는 문 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들렸다.잠시 후.남아 있던 교수들이 하나둘 유재원 쪽으로 다가왔다.“원장님.”“저렇게 훌륭한 따님을 두셨으니 얼마나 뿌듯하시겠습니까.”“저는 솔직히 부럽습니다.”형식적인 웃음, 진심이 섞인 감탄.“실력도 실력이지만 태도가 참 단단하더군요.”“대한병원 위상이 저절로 올라가는 느낌입니다.”유재원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본인이 노력한 겁니다.”말은 그렇게 했지만 가슴 한쪽이 묘하게 저렸다.교수들이 회의실을 나가며 낮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같은 핏줄인데…”“어떻게 저렇게 다를 수가 있지?”“한 명은 천재고, 한 명은…”말끝이 흐려졌지만 그 다음 단어는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문이 닫히고 회의실엔 유재원 혼자 남았다.정적.그는 천천히 의자에 등을 기댔다.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같은 핏줄인데…’그 말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봄이의 무심한 눈빛.지원이의 불안한 얼굴.아버지의 분노.교수들의 시선.모든 게 한꺼번에 얽혀 머리를 짓눌렀다.유재원은 두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병원은 잘 돌아가고 있다.매출도, 명성도, 실적도.그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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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앞에서 한참을 서 있던 유지원은 결국 휴대폰을 꺼냈다.수신자 — 엄마.몇 번의 신호음 끝에 김지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왜, 지원아. 무슨 일이야?”유지원은 입술을 깨물었다.“…엄마. 그 남자.”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지난번에 나 찾아왔던 그 남자. 오늘 또 왔어. 자기가… 내 친아빠라고 하던데. 정말이야?”전화기 너머에서 순간 숨이 멎는 기척이 느껴졌다.곧 김지숙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뭐? 또 찾아갔다고? 그 인간이 제정신이 아니야. 돈이나 뜯어내려는 수작이지.”“엄마…”“지원아, 그런 말에 흔들리지 마. 누가 뭐래도 니 친아빠는 유재원이야. 대한병원 원장 유재원. 그 사람 말은 한 마디도 믿지 마.”단호했다. 망설임 없는 부정.하지만 유지원의 가슴은 오히려 더 답답해졌다.“…엄마 믿어도 되는 거지?”잠시 정적.“당연하지. 내가 왜 거짓말을 해.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그 인간이랑은 다시는 만나지도 마.”통화는 그렇게 끝났다.휴대폰 화면이 꺼지자, 병원 앞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번졌다.친아빠.임신.수술실 실수.최재성에게 차이고, 이진성에게 모욕당하고.요며칠은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그녀를 몰아붙이는 것 같았다.유지원은 친구 심미숙이 있는 산부인과 병원을 가려다가 걸음을 멈춘다.지금 가면 끝낼 수 있어.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하지만 다리가 떨어지지 않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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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수는 운전대를 잡은 채 백미러를 흘끗 바라봤다.검은 세단 한 대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붙어 있었다.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저 차… 지난번에도 봤다.유지원을 만나러 가던 날, 똑같은 차가 뒤를 밟았고 결국 갑자기 앞으로 끼어들며 옆 차를 들이받아 접촉사고까지 냈다.그때는 우연이라 여겼다.하지만 오늘은 느낌이 달랐다.너무 집요하게 붙어 있었다.강철수는 속도를 살짝 올려봤다.검은 차도 그대로 따라왔다.차선을 바꿨다.저 차도 바꿨다.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설마… 김지숙?’그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강철수는 급히 방향지시등을 켜더니 갑자기 골목으로 꺾어 들어갔다.굽이진 도로를 몇 번이나 돌고, 일부러 신호가 많은 길을 택해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백미러를 확인했다.…검은 차가 보이지 않았다.한참을 더 달린 뒤, 그는 외곽의 한적한 공터에 차를 세웠다.가로등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는, 사람 그림자조차 없는 곳이었다.엔진을 끄자 정적이 내려앉았다.심장이 아직도 쿵쾅거렸다.강철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내렸다.밤공기가 차갑게 폐 속으로 스며들었다.강철수는 한동안 헤드라이트 불빛을 노려보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김지숙을 처음 만났던 건 김지숙이 유재원과 헤어진 직후였다.그때 그는 작은 중소기업을 운영하며 건실하게, 그러나 빠르게 성장하던 사업가였다.돈도 제법 벌었고, 앞날도 탄탄했다.그녀가 먼저 다가왔다.단정한 옷차림, 적당히 계산된 듯한 애교,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을 홀리는 눈웃음.강철수는 순식간에 빠져들었다.&ldq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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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실 안.심지호의 아내는 소파에 앉아 있었지만 조금도 앉아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당장이라도 터질 듯한 눈빛으로 책상을 사이에 두고 유재원을 노려봤다.“그년을 불러요. 지금 당장.”유재원은 최대한 침착하려 애썼다.“똑바로 알고 이러시는 겁니까? 혹시 오해가”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가 가방을 열었다.두툼한 봉투가 책상 위로 던져졌다.“오해요? 이래도 오해 같아요?”사진들이 흩어졌다.호텔 로비로 함께 들어가는 모습.차에서 내리며 심지호가 유지원의 어깨에 자연스럽게 손을 올리고 있는 장면.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고개를 기울여 입을 맞추는 순간을 포착한 사진.선명했다.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일 만큼.유재원의 손끝이 굳었다.사진을 한 장씩 집어 들수록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이게, 언제죠.”“작년부터 시작됐어요.  아는 사람들은 다 알아요. 둘이 모텔이며 호텔이며 얼마나 드나들었는지.”여자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분노로 단단했다.“우리 집은 그 둘 때문에 끝났어요. 근데 그 여자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서울 병원에서 의사 행세를 해?”유재원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머릿속이 하얘졌다.결국 그는 인터폰을 눌렀다.“…유지원 선생, 원장실로 올라오라고 하세요. 지금 당장.”수화기를 내려놓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그 시각.산부인과로 향할 준비를 하던 유지원은 호출을 받았다.“원장님이 찾으십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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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숨을 고르던 그녀는 곧바로 다른 번호를 눌렀다.몇 번 신호가 가고, 거칠게 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왜요?”김지숙의 눈빛이 서늘하게 식었다.“…그 남자, 처리하세요.”잠시 정적.남자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돈이나 준비하세요.”통화가 끊겼다.김지숙은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눈동자에 흔들림은 없었다.딸을 위해서라면 이번에는 절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주말 아침,유봄의 아파트 앞.검은 세단에 기대 서 있는 강민재는 시계를 몇 번이나 들여다봤다.미국 출장을 앞두고 있는 사람 같지 않게 얼굴엔 설렘이 가득했다.곧 주차장 입구 쪽에서 하얀 원피스를 입은 유봄이 모습을 드러냈다.오늘은 모처럼 공들인 화장에, 은은한 향수까지.강민재의 눈이 그대로 멈췄다.“…안 되겠네.”그는 곧장 유봄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미국 못 가겠어.”“왜요?” 유봄이 웃으며 묻자“이렇게 예쁜 여자친구를 두고 한 달이나 비우라고?이건 국가적 손실이야.”유봄이 피식 웃었다.“사업가가 그렇게 감정적이면 되겠어요?”“당신 때문에 피곤해. 너무 예뻐서.”능청스러운 말에 유봄은 고개를 저으며 그의 팔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둘은 동해로 향했다.둥해의 밤바다는 한여름답게 시원했고, 검푸른 물결 위로 달빛이 부서지고 있었다.모래사장을 천천히 걷던 강민재가 문득 멈춰 섰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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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앞 골목은 유난히 고요했다.강철수는 차를 천천히 세우며 시동을 끄려는 순간 차창 너머로 검은 그림자가 스쳤다.문을 열고 내리려는 찰나, 한 남자가 거칠게 다가오더니 말 한마디 없이 품에서 칼을 꺼내 그의 복부를 향해 내질렀다.“이 자식”강철수는 본능적으로 몸을 틀었다.날카로운 칼끝이 옷자락만 스치고 지나갔다.남자의 숨은 거칠었고, 눈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두 사람은 그대로 엉켜붙었다.강철수가 남자의 손목을 붙잡고 힘껏 비틀자 칼날이 허공에서 흔들렸다.그러나 상대도 만만치 않았다.어깨를 밀치며 다시 칼을 겨누려 했다.“누가 보냈어!”강철수의 낮고 분노 섞인 목소리가 골목에 울렸다.남자는 대답 대신 이를 악물고 몸을 덮쳐왔다.둘은 차 옆에 부딪히며 넘어질 듯 휘청였다.칼이 다시 번뜩였다.이번엔 옆구리를 스치며 얕은 상처를 남겼다.피가 번졌다.강철수는 이를 악물고 마지막 힘을 짜내 남자의 손목을 차문에 세게 부딪혔다.금속음과 함께 칼이 바닥에 떨어졌다.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를 밀쳐내자, 남자는 균형을 잃고 뒤로 물러섰다.멀리서 차 한 대가 들어오는 헤드라이트 불빛이 번쩍이자 남자는 욕설을 내뱉으며 어둠 속으로 달아났다.강철수는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떨어진 칼을 노려보았다.손으로 옆구리를 짚자 따뜻한 피가 묻어났다.그의 머릿속에 스친 얼굴.김지숙.그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강철수는 김지숙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그동안은 참고 또 참았다.과거를 들추고 싶지 않았고, 스스로 선택한 침묵이라 여겼다.하지만 자신의 목숨까지도 하찮게 여기는 김지숙을 보고 이제는 가만히 있을 수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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