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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의 기록을 재생합니다
내 죽음의 기록을 재생합니다
Author: 다섯

제1화

Author: 다섯
임수연은 데스 메모리 운영사에 자신이 죽은 뒤 이 영상을 세상에 공개해 달라고 마지막 부탁을 남겨 두었다.

친부모와 약혼자 신혁준, 그리고 소꿉친구 송지호에게 자신이 죽기 전까지 대체 어떤 일을 겪었는지 꼭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직원이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문이 벌컥 열렸다.

신혁준과 송지호가 다급히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잔뜩 굳은 표정의 두 사람은 임수연의 손목을 붙잡고 다급하게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수연아, 유나가 또 우울증 때문에 손목을 그었어. 얼른 같이 병원으로 가자, 지금 바로 채혈해야 해.”

이번 달에만 벌써 일곱 번째였다.

임유나는 한 달 사이 무려 일곱 번이나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그때마다 과다출혈이 있었고, 그때마다 수혈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두 사람은 어김없이 임수연을 데려와서 임유나의 혈액 공급원으로 삼았다.

이제 임수연의 두 팔에는 크고 작은 주삿바늘 자국이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남아 있었다.

모두 임유나 때문이었다.

병원에 도착한 뒤.

병실 앞에 막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짝-

두 번의 따귀가 임수연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

친부모인 임철수와 강미란이 달려와서, 분노와 질책이 가득한 눈빛으로 임수연을 쏘아봤다.

“또 유나한테 무슨 말을 한 거야?”

“유나가 우울증 있는 거 알면서 왜 또 자극한 거니? 걔는 조금만 자극을 받아도 안 되는 아이잖아!”

신혁준과 송지호가 임수연을 감싸는 듯 나섰지만 그녀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임유나에게 수혈할 시간이 늦어질까 걱정해서였다.

“아버님, 어머님. 일단 그만하세요. 수혈부터 하는 게 먼저입니다.”

임수연은 두 사람의 손에 이끌려 채혈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모두가 함께 임수연의 검사 결과를 기다린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임수연을 걱정하지 않았다.

모두 채혈실 문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초조한 눈빛에는 응급실에 있는 임유나에 대한 걱정만 가득했다.

임수연은 이미 익숙하다는 듯 씁쓸하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가 혈액검사 결과지를 들고 걸어왔다.

“임수연 씨, 암 진단을 받으셨는데 어떻게 헌혈을 하려고 하십니까?”

“이건 너무 무모한 행동입니다.”

그 말을 듣고 모두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얼굴에는 잠시 놀란 기색이 떠올랐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곧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표정도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임철수와 강미란이 가장 먼저 다가와서 검사 결과지를 낚아챘다. 그리고는 펼쳐보지도 않은 채 그대로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수연아, 유나를 그렇게 괴롭힌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우리 관심을 끌려고 의사까지 매수해서 암 진단서를 꾸며낸 거니?”

신혁준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피 뽑기 싫다고 암에 걸렸다는 거짓말까지 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집에서나 그런 연기 좀 하지. 언제까지 이럴 셈이야?”

송지호도 차갑게 비웃었다.

“넌 어릴 때부터 건강했잖아.”

“감기도 좀처럼 안 걸리던 사람이 암이라니.”

“핑계를 대려면 좀 그럴듯한 걸 대야지.”

임수연은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봤다.

세상에서 가장 익숙해야 할 사람들이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낯선 사람들이기도 했다.

임수연은 입술을 천천히 떼며 한 글자씩 또렷하게 말했다.

“거짓말 아니야, 나 정말 암이야.”

하지만 예전과 다를 건 하나도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 임수연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모두 억지로 그녀를 채혈실 안으로 밀어 넣고는 간호사에게 채혈하라고 다그치기까지 했다.

굵은 주삿바늘이 다시 팔을 파고들었다.

수없이 겪은 일이라 이제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바늘이 꽂히는 순간, 임수연의 심장은 누군가가 갑자기 움켜쥔 듯 조여들었다.

숨이 막힐 만큼 아팠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까지 임유나를 좋아했다면, 애초에 날 다시 찾아오지 말지 그랬어?’

‘난 계속 가정부의 딸로 살고, 임유나가 계속 임씨 가문의 아가씨로 살았다면 지금처럼 서로를 괴롭게 하는 일도 없었을 텐데.’

애초에 임수연의 인생은 처음부터 비극이었다.

20년 넘게 엄마라 믿고 살아온 민지선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 갑자기 모든 진실을 털어놓았다.

당시 강미란과 같은 날 딸을 낳았고, 자기 딸을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하고 싶다는 욕심에 두 아이를 일부러 바꿔치기했다고.

그래서 진짜 임씨 가문의 딸은 임수연이었고, 임유나는 가정부의 친딸이었다.

그 비밀을 털어놓은 민지선은 그대로 숨을 거뒀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임유나가 임씨 가문에서 20년 넘게 사랑받으며 자란 뒤였다.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도, 임철수와 강미란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임유나를 곁에 남겨두기로 했다.

반면 뒤늦게 가족을 되찾은 임수연은 오히려 그 가족 사이에 끼어든 불청객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사실 처음 아이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만 해도, 부모는 임수연을 진심으로 안쓰러워했다.

부잣집 아가씨로 부족함 없이 자라야 할 아이가 가정부의 딸로 20년이 넘게 힘겹게 살아왔다는 사실이 너무도 가슴 아팠다.

그래서 잃어버린 시간을 모두 되돌려주겠다고 약속했고,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임수연에게 주겠다고 맹세했다.

심지어 원래 임씨 가문과 XC그룹 집안 사이에 맺어져 있던 혼약마저 임수연에게 돌려주었다.

하지만 임유나는 자신이 가짜 딸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때부터 계속 거짓말을 꾸며내기 시작했다.

임수연에게 뺨을 맞았다고 했고 계단에서 떠밀렸다고도 했다.

부모는 그 말들을 모두 믿었다.

나중에는 임수연에게 괴롭힘을 당한 탓에 우울증까지 생겼다고 말했다.

그 말 역시 조금의 의심도 없이 믿어버렸다.

그 이후, 부모의 눈에 임수연은 악독하고 역겨운 사람이 되어버렸다.

남아 있던 연민마저 모두 거둬들일 만큼.

신혁준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두 집안의 혼약은 결국 진짜 딸인 임수연에게 돌아갔다.

덕분에 모두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 신혁준은 그녀의 약혼자가 되었지만, 신혁준은 어릴 적부터 임유나와 함께 자랐다.

그래서 신혁준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임유나밖에 없었다.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것쯤은 받아들일 수 있었고, 약혼자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인정했다.

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송지호였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소꿉친구마저 어느 순간부터 아무 이유도 없이 임유나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분명 예전에는 누구보다 임유나를 싫어했던 사람이었다.

송지호 역시 가정부였던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였다.

어릴 적 임유나는 자신이 임씨 가문의 아가씨라는 이유만으로 두 사람을 마음껏 괴롭혔다.

그때마다 송지호는 화가 나 이를 악물면서도 눈시울을 붉힌 채 임수연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곤 했다.

“수연아, 조금만 기다려.”

“언젠가 내가 꼭 성공해서 너한테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만 줄게.”

“그때는 네가 직접 걔를 밟고 올라서도 돼. 우리 수연이는 가장 좋은 걸 가져야 마땅하니까.”

하지만 지금 정말 성공하게 되자, 송지호는 오래전 했던 그 약속을 까맣게 잊은 지 오래였다.

이제 송지호의 시선은 자신이 아닌 임유나에게 향하고 있었다.

그것도 20년 넘게 자신들을 괴롭혔던 임유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채혈을 마치고 나온 임수연은 온몸에 힘이 빠져 있었다.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어가다가 앞에 있는 사람을 미처 보지 못해서 하마터면 바닥에 쓰러질 뻔했다.

그때 뒤에서 강미란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것 봐. 일부러 힘없는 척하는 거 보이지?”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가 자기를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거야?”

“정말 연기 하나는 잘한다니까.”

임수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힘겹게 다리를 끌며 그저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 순간, 응급실 문이 열렸고 뒤에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달려갔다.

그리고 임유나가 누워 있는 침대 곁을 둘러싸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쏟아냈다.

송지호가 먼저 물었다.

“유나야, 괜찮아? 좀 나아졌어?”

신혁준도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나야, 네가 원하는 건 뭐든 다 해줄게. 그러니까 다시는 그런 생각 하지 마.”

임철수와 강미란은 눈물을 머금은 채 임유나를 달랬다.

“우리 딸, 왜 이렇게 엄마 아빠를 놀라게 해?”

“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엄마 아빠는 어떻게 살아.”

“앞으로는 절대 이런 바보 같은 짓 하면 안 돼. 알겠지?”

한참 임유나를 달랜 뒤, 임철수와 강미란은 곧바로 차가운 표정으로 임수연을 바라봤다.

“아직도 힘없는 척하고 있을 거니?”

“당장 집에 돌아가서 보양식이나 해 와.”

“유나 몸보신을 해야 하니까.”

“이번에 유나가 자살을 시도한 것도 결국 네가 자극해서 그런 거니까. 그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니니?”

임수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멀지 않은 곳에서 깜빡이는 카메라 렌즈가 임수연의 눈동자에 희미하게 비쳤다.

씁쓸한 웃음이 입가에 걸렸다.

영상이 공개되는 날, 그동안 누가 진짜 연기를 하고 있었는지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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