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천 번의 눈물 끝에 피어난 꽃: Chapter 1 - Chapter 10

18 Chapters

제1장

"흐윽..."한서윤은 잔뜩 긴장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장군! 여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많으니 더 좋지."그는 그녀의 귓불을 깨물며 낮고 음탕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부인을 얼마나 아끼는지 모두에게 보여 줘야지."탁자와 치맛자락에 가려져 있었지만,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면 두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한서윤은 수치심에 얼굴이 새빨개지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장군... 돌아가서 하면 안 되겠습니까? 몇 번이든... 다 받아 드리겠습니다."강무진은 태연히 술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하지만 움직임을 멈추기는커녕 더욱 거칠어졌다."이쪽이 더 자극적이지 않나? 내가 오래 떠나 있었으니 진작 몸이 달았겠지. 음탕한 계집, 내숭 떨지 마라."한서윤은 입술을 깨물었고 눈물이 소리 없이 흘렀다. 지난 삼 년 동안 그가 남들이 있는 곳에서 욕정을 채운 적은 있었지만, 오늘처럼 대담한 짓을 한 적은 없었다. 그녀는 정말 죽을 만큼 두려웠다. 한씨 가문 정실의 딸로서 그녀는 어려서부터 단정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고 배웠다. 연회에서 이런 짓을 한 사실을 들키느니 차라리 죽고 싶었다.그때 누군가 술잔을 들고 다가와 웃으며 물었다."장군 부인께서 어찌 장군의 다리 위에 앉아 계십니까? 몸이 불편하십니까?"한서윤은 순간 몸을 움츠리더니 강무진의 품속으로 필사적으로 파고들었다. 가슴에 얼굴을 묻고 소리 없이 애원했지만 강무진은 그녀를 단단히 끌어안은 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부인의 몸이 불편해 잠시 돌보는 중이오.""두 분의 금실이 참 좋으십니다."그리고 웃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가 떠나자 강무진의 움직임은 더욱 거칠어졌다. 한서윤은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눈물이 소리 없이 옷깃을 적셨고, 흐느낌조차 새어 나오지 않았다.더 많은 사람이 다가오거나 이런 모습을 보게 될까 두려웠다.얼마나 지났을까. 강무진은 만족한 뒤에야 그녀를 밀어 내고 옷을 정리하며 담담하게 말했다."가서 정리하고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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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그림마다 버젓이 가격이 매겨져 있었고, 가장 비싼 그림에는 무려 은자 다섯 냥이라고 적혀 있었다.그림을 쥔 한서윤의 손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떨었다. 날카로운 종이 모서리에 손끝이 베여 핏방울이 맺혔다. 피는 얼굴을 타고 흐르는 빗물과 눈물에 뒤섞여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그림 위로 뚝뚝 떨어졌다."부인, 사실 겁니까? 사지 않을 거면 망가뜨리지 마십시오."노점상이 짜증스럽게 손을 뻗어 그림을 빼앗으려 했다. 한서윤은 불에 데기라도 한 듯 손을 홱 놓았다. 바닥에 떨어진 그림은 비에 젖어 먹물이 번졌고, 그림 속 얼굴도 점점 흐려졌다. 어떻게 그곳을 빠져나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돌아오는 길에는 정신없이 걸음을 재촉했다. 몇 번이나 휘청거리며 넘어질 뻔했는지도 몰랐다.예전의 그녀라면 절대 그렇게 걷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명문가 아가씨라면 느리고 소리 없이 반듯하게 걸어야 한다고 수없이 가르쳤다. 하지만 이제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가슴이 세게 조여 와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절망의 눈물이 빗물과 섞여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아무리 닦아도 마르지 않았다. 예전에는 강무진이 무장이라 다정함을 모르는 줄만 알았다. 상스러운 말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요구도 그저 성정이 거칠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변방에서 오래 지내 주변에 거친 사내들뿐이었으니 부인을 대하는 법을 모른다고 자신을 달랬다.하지만 이 모든 것은 사랑하는 여인의 자리를 차지한 그녀에 대한 복수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그녀도 한때는 기대를 안고 시집왔으며, 부군의 사랑을 받으며 살고 싶었다.지난 삼 년 동안 노부인을 공경하고 집안일을 맡아 장군부를 빈틈없이 관리했다. 그가 출정하면 날마다 향을 피우며 기도하고 밤마다 변방 쪽을 바라보며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를 마음대로 짓밟아도 되는 노리개로만 여겼다. 심지어 그녀의 몸까지 남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비가 점점 거세졌다. 정신없이 달리던 한서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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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한서윤이 간신히 눈을 뜨자 흐릿한 시야 너머로 강무진의 얼굴이 보였다."장군..."그녀는 잠긴 목소리로 힘겹게 말했다."오늘은... 안 됩니다."엄살이 아니라 정말로 아팠다. 안 아픈 곳이 없었고 머리가 몹시 무거웠고 손을 들 힘조차 없어 침상에서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강무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옷깃 안으로 손을 넣었고 뜨거운 숨결이 귓가에 닿았다."열이 나니 더 예민할 테니 오히려 좋구나. 얼마나 더 음탕해졌는지 보자."한서윤은 눈을 감았고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묻고 싶었다.'대체 저를 뭐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부인? 아니면 기생만도 못한 물건입니까?'그러나 이미 답을 알았기에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두 눈을 꼭 감고 절망 속에서 모욕을 견디려는 순간, 문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장군! 큰일 났습니다."호위가 문을 열고 들어와 빠르게 다가와 강무진의 귓가에 몇 마디를 속삭였다. 무슨 말인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강무진의 안색이 순식간에 변하는 것을 똑똑히 보였다.그녀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전장에서 보이던 냉혹함도, 그녀를 대할 때의 차가운 무관심이나 경멸도 아니었다. 그것은 두려움이었다.강무진은 옷을 정리할 겨를도 없이 침상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뛰쳐나갔다. 한서윤은 그가 사라진 쪽을 멍하니 바라보다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무슨 일이기에 저토록 두려워할까?'열 때문에 부서질 듯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겉옷을 걸치고 비틀거리며 뒤를 따라갔다. 마당은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강무진은 피투성이가 된 여인을 품에 안은 채 안으로 달려왔다. 여인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어 알아볼 수 없었다. 핏기 하나 없이 극도로 창백한 손목만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의원! 의원을 불러라!"강무진은 거의 고함을 지르듯 외쳤고 목소리는 심하게 갈라져 있었다.비틀거리며 달려온 의원은 피투성이가 된 여인을 보더니 표정이 굳었다."어서, 어서 안으로 모십시오!"한서윤은 처마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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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그날 밤 강무진은 다시 오지 않았고 한서윤은 홀로 밤새 고열을 견뎠다.이튿날도, 그다음 날도 강무진은 찾아오지 않았다. 장군부 안에는 윤채령에 관한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들었나? 장군께서 윤채령 아가씨를 살리려고 가슴에서 피를 뽑으셨다가 쓰러지실 뻔했대.""그러게 말이야. 장군께서 윤채령 아가씨에게는 정말 온 마음을 다하시더군. 한밤중에 기침을 하자 밤새 곁을 지키며 직접 약과 물을 먹여 주셨다더라.""폐에 좋다고 강남에서 싱싱한 비파(枇杷)까지 가져오게 하셨대. 워낙 귀한 물건이라 쉴 새 없이 말을 몰아 여러 마리가 죽었다더군.""어제는 윤채령 아가씨가 계화떡을 먹고 싶다고 하자 장군께서 직접 거리에 나가 사 오셨대. 장군 같은 분이 언제 그런 일을 해 보셨겠어?"단아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밖으로 달려가 따지고 싶어 했다. 하지만 한서윤은 고개를 저으며 말렸다.나흘째 되던 날, 노부인의 처소에서 소란이 일었다.한서윤이 들은 바로는 노부인이 윤채령을 내보내려 하자 강무진이 목숨을 걸고 맞섰다고 한다."채령을 장군부에서 쫓아내면 저도 집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습니다."노부인은 화가 나 찻잔을 내던졌지만 끝내 아들을 꺾지 못했고, 윤채령은 장군부에 남았다. 한서윤은 여전히 개의치 않고 묵묵히 짐을 꾸렸다.닷새째 저녁, 강무진이 찾아왔다. 마지막 옷 몇 벌을 정리하던 한서윤은 발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빛을 등진 그의 체구에서 위압감이 느껴졌다."할 말이 있다."강무진은 들어와 탁자 곁에 아무렇게나 앉았다. 그녀 옆의 보따리와 개어 둔 옷을 훑어보다 눈썹을 살짝 찌푸렸지만 묻지는 않았다. 한서윤은 하던 일을 내려놓고 맞은편에 앉아 눈을 내리깔고 그를 보지 않았다."요즘 장군부에 사람이 하나 늘었다는 얘기는 너도 들었겠지. 채령이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소꿉친구다. 집안이 몰락한 뒤로는 조모 집에서 지냈고, 얼마 전 크게 다쳐서 당분간 여기서 몸을 추스르도록 데려왔다."강무진이 말을 이었다."한동안 장군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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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아이? 내게 아이가 있었단 말인가?'졸리고 음식을 먹지 못하고 이유 없이 피곤했던 것은 모두 병이 아니라 아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알기도 전에 아이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한서윤은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배를 어루만졌다. 배는 여전히 평평했지만 작은 생명이 잠시 머문 적이 있었다.'어떤 모습이었을까? 나를 더 닮았을까, 장군을 더 닮았을까?'이제 영원히 알 수 없었다. 병풍 너머로 강무진의 차분하고 아무런 감정도 묻어나지 않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라, 애초에 원하지도 않았으니 잘됐군. 번거로울 일이 없겠군."한서윤은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 그의 말투는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가벼웠다.그에게 두 사람의 아이는 사라져 다행인 골칫거리일 뿐이었다. 발소리가 멀어졌고 의원도 한숨을 쉬며 뒤따라 나갔다. 병풍 뒤에는 그녀와 방 안을 가득 채운 차가운 정적만 남았다.눈물이 소리 없이 한 방울, 두 방울 흐르더니 멈출 수 없이 쏟아졌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울음을 삼키려 했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흐느낌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삼 년 동안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셀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픈 적은 없었다.다시 발소리가 들리자 강무진이 돌아온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다. 그녀는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다. 하지만 약그릇을 든 윤채령이 병풍을 밀고 들어왔다."언니."윤채령이 침상 곁에 앉아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아이를 잃어 몸이 많이 약해졌을 테니 우선 약부터 드십시오."그녀는 약을 한 숟갈 떠 한서윤의 입가로 가져갔다. 한서윤은 고개를 돌리고 마시지 않았다."언니, 약을 드시지 않으면 낫지 않습니다."다정한 목소리와 함께 숟가락이 다시 다가왔다. 한서윤은 손을 들어 약그릇을 바닥에 내리쳤다. 깨진 사기 조각과 약물이 윤채령의 치맛자락에 튀었다."여기에는 다른 사람이 없다."한서윤이 낮게 말했다."언제까지 연기할 생각이냐?"윤채령은 잠시 멈칫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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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다시 눈을 떴을 때 한서윤은 침상에 누워 있었다. 가슴의 상처는 싸매져 있었지만 숨을 쉴 때마다 심하게 아팠다.단아는 울어 호두처럼 부은 눈으로 침상 곁에 무릎 꿇고 있었다."아가씨. 드디어 깨어나셨군요."한서윤은 입을 열어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장군은?"단아는 더욱 서럽게 눈물을 쏟았다."장군께서는 윤채령 아가씨 곁에 계십니다. 윤채령 아가씨께서 놀라셨다고 어젯밤부터 줄곧 지키며 직접 안정탕을 달여 떠먹이고 계십니다.""그만."한서윤이 말을 끊자 단아는 입을 가린 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아가씨께서 너무 고생이 많으십니다."한서윤은 휘장을 바라보며 더는 나올 눈물도 없었다.그 뒤 며칠 동안 강무진은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한서윤은 홀로 몸을 추슬렀다. 가슴 통증이 심할 때는 움직이지 않고 누워 있다가 조금 나아지면 다시 짐을 꾸렸다.일곱째 날 밤, 강무진이 갑자기 찾아왔다. 침상 머리맡에 기대 책을 읽던 한서윤은 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술을 마신 듯 몸에서는 옅은 술 냄새가 났고 어두운 촛불 아래 눈빛도 조금 흐렸다.상처가 나았는지 묻지도 않았고, 그날 왜 그녀를 밀쳐 윤채령 대신 말발굽에 짓밟히게 했는지도 설명하지 않았다. 그동안 어떻게 버텼는지조차 묻지 않았다. 침상 앞에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더니 허리띠부터 풀었다. 한서윤이 손에 힘을 주자 쥐고 있던 책장이 구겨졌다."장군. 그동안 한 번도 찾아오지 않으시더니 이러시려고 온 겁니까?"강무진의 손이 멈칫하더니 낮게 비웃었다."그럼 무엇을 바랐느냐?"그는 풀어 낸 허리띠를 아무렇게나 옆에 던지고 몸을 숙였다. 이내 커다란 그림자가 한서윤을 뒤덮었다."며칠 건드리지 않았더니 몸이 달기라도 했느냐? 전에는 그렇게 음탕했으면서."한서윤은 가슴이 몹시 쓰렸다."꼭 그런 상스러운 말로 저를 모욕하셔야 합니까? 저는 장군의 부인입니다. 부인이라면 아끼고 존중해야 합니다."강무진은 아무 말 없이 비웃었다. 조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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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장군! 안 됩니다!"한서윤은 겁에 질려 소리치며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하지만 덩치 큰 호위 둘이 곧장 달려와 사정없이 그녀의 옷을 찢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에게는 얇은 속옷 한 벌만 남았다. 차가운 밤바람 속에서 수많은 탐욕스러운 시선이 그녀의 몸 위를 훑었다."안 돼! 놓아라!"몸을 가리며 울부짖었지만 호위들은 쓰레기를 버리듯 악취 나는 강가의 거지 무리 속으로 그녀를 내던졌다.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거칠고 더러운 손으로 그녀의 몸을 함부로 만졌다."만지지 마! 제발 만지지 마!"한서윤은 절망에 빠져 울부짖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더욱 심해지는 모욕뿐이었다.강무진이 두꺼운 망토를 두른 윤채령을 감싸고 떠나려 하자, 한서윤은 어디서 힘이 났는지 달려들어 그의 바짓자락을 꽉 붙잡았다."장군! 제발, 제발 이러지 마십시오!"한서윤은 눈물로 얼굴을 적시며 가슴이 찢어질 듯 통곡했다."정말 윤채령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두고 가면 이 거지들이 저를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강무진은 걸음을 멈추고 벌레를 보듯 그녀를 냉담하게 내려다보았다."내 여인이니 감히 손대지 못할 거다."그리고 그녀의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 내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이번에는 제대로 혼쭐을 내 줘야겠다. 그래야 앞으로 채령이한테 손끝 하나 못 대지."말을 마친 그는 미련 없이 그녀를 떨쳐 내고 윤채령을 감싸며 떠났다."안 됩니다! 장군! 장군!"한서윤은 울부짖었지만, 거지들은 오히려 더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한 사내가 그녀를 짓누른 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손을 옷깃 안으로 넣고, 흉측하게 웃으며 일행에게 말했다."이 음탕한 계집. 차라리 맛 보는 건 어떨까?"옆에 있던 자가 맞장구쳤다."그래! 요즘 노점에서 파는 그림 속 여인이 이 계집이라던데, 아주 음탕하군! 장군도 내쳤으니 우리가 건드려도 상관없겠지!""뭘 기다려? 모두 덤벼!"수많은 손이 그녀를 바닥에 짓눌렀다. 옷이 찢어지는 소리와 더러운 웃음소리, 역겨운 숨결이 뒤엉켜 그녀를 덮쳤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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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한서윤은 구층탑 앞에 서서 아홉 층의 높은 탑과 층마다 창살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섬뜩한 형구를 올려다보았다.그녀는 문득 웃음을 터뜨렸다. 눈물이 날 만큼, 허리가 굽어질 만큼, 온몸이 떨릴 만큼 웃었다.그리고 그 문을 밀어 열었다.탑 안은 어두웠고 벽에 걸린 등잔만 희미한 빛을 내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첫 번째 층은 채찍형이었다. 소금물에 담근 거친 가죽 채찍이 등을 사정없이 내리쳐 살이 터졌다. 그녀는 비명 한 번 지르지 않고 이를 악문 채 입술이 터져 피가 날 때까지 견뎠다.두 번째 층은 손가락을 조이는 형벌이었다. 대나무 막대 사이에 열 손가락을 끼우고 건장한 두 사내가 힘껏 잡아당기자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온몸이 떨리고 손톱 밑에서 피가 배어 나왔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세 번째 층은 달군 쇠로 지지는 형벌이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쇠가 피부에 닿자 치익 소리와 함께 흰 연기가 피어올랐고, 살이 타는 냄새가 퍼졌다. 자신의 살이 타는 냄새를 맡으며 그녀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그럼에도 그녀는 끝내 애원하지 않았다.그녀는 한 층씩 위로 올라갔다.층마다 끔찍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었고, 올라갈수록 죽음에 가까워졌다.하지만 그녀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두려운 것은 죽어서도 이곳에 남아 강씨 가문의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그 집안의 무덤에 묻히는 것이었다.네 번째 층, 다섯 번째 층, 여섯 번째 층...마지막 형벌이 끝났을 때 한서윤은 더는 일어서지 못했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탑 문이 열리며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자 눈이 부셔 눈을 제대로 뜰 수조차 없었다.어멈이 눈물을 흘리며 그녀를 부축해 밖으로 나왔다."부인, 드디어 나오셨군요."한서윤은 문틀에 기대어 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렀다.그녀는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이것을 장군부에 전해 주거라."그녀는 품에서 편지 한 장을 꺼냈다. 목숨을 걸고 탑을 올라 얻어 낸 부부의 연을 끝내는 문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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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윤채령의 처소에서 막 나온 강무진은 기분이 좋았다.오늘 윤채령은 기운을 차려 몇 걸음 걸을 수 있었다. 그가 부축해 마당을 반 시진쯤 걷는 동안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는 것을 보니, 승리했을 때보다 기뻤다.이때 호위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편지 한 통을 들고 다급히 달려왔다."장군, 사당에서 보내온 것입니다."강무진은 편지를 받아 대수롭지 않게 뜯어보았다. 편지를 펼치는 순간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혼인 관계를 끝내는 문서에서 사당 어른과 구층탑을 지키는 이, 강씨 가문 어른들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선명한 붉은 도장이 빼곡히 늘어서 있었다.맨 아래에는 한서윤의 서명이 있었다. 평소 반듯하고 단정하던 글씨와 달리 삐뚤빼뚤했고, 몇몇 획은 떨린 흔적이 역력했다. 마지막 글자 옆에는 눈물에 번진 먹자국이 남아 있었다.강무진은 문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호위가 의아해할 만큼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다."구층탑에 들어갔단 말이냐?"그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차분했다."네."호위는 고개를 숙이고 긴장한 목소리로 답했다."오늘 아침 홀로 사당으로 찾아가 탑에 들어가 한 층씩 올라가셨습니다. 나왔을 때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한 모습이셨습니다."강무진이 문서를 쥔 손에 힘을 주자 종이 끝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따끔했다."지금 어디 있느냐?""떠나셨습니다. 마차를 빌려 성을 나갔다고 합니다. 어디로 가셨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떠났다고? 성을 나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른다니.'강무진은 문서를 탁자에 아무렇게나 놓고 평소와 다름없는 걸음으로 서재를 향했다.'떠났다니 잘된 일이다. 어차피 채령과 혼인하고 싶었다. 제 발로 떠났으니 번거로움을 덜었구나.'하지만 몇 걸음 가던 그는 멈춰 서서 탁자 위의 문서를 돌아보았다. 햇빛이 종이 위로 비쳐 삐뚤빼뚤한 글씨와 번진 먹자국까지 선명하게 드러냈다.문득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손목을 든 채 한 획 한 획 반듯하게 글씨를 써 내려가던 한서윤의 모습을 떠올렸다.강무진의 어머니는 늘 그녀의 글씨를 칭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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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윤채령은 고개를 들어 눈물이 맺힌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입술을 떨었다."하지만 노부인께서 허락하지 않으실 겁니다."그러자 강무진이 단호하게 말했다."내가 설득하겠다. 허락하지 않으시면 누구와도 혼인하지 않겠다. 강씨 가문의 대가 끊기는 걸 바라시는 거라면 말이다."윤채령은 그의 품에 기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가련한 목소리로 말했다."역시 장군밖에 없습니다."강무진은 윤채령을 안고 있었지만,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그는 품 안의 여인을 내려다보았다. 작고 여린 모습이 마치 누군가 곁에서 보살펴 줘야만 하는 꽃 같았다.그는 거지들에게 넘기지 말아 달라며 자신 앞에 무너져 내리듯 매달리던 한서윤을 떠올렸다. 온몸은 상처로 얼룩져 있었고, 얼굴은 눈물로 젖어 있었다. 마지막 남은 힘으로 그의 바짓자락을 붙잡은 손은 끝내 놓지 못한 채, 손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그는 그녀를 뿌리치고 끝내 뒤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다시 떠올리니, 마음 한구석이 아려 왔다."장군?"윤채령이 딴생각에 잠긴 그를 조용히 불렀다."아무것도 아니다.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오마."노부인은 불당에서 빠르게 염주를 돌리며 경을 외우고 있었다."어머니."강무진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한서윤은 떠났고 혼인 관계를 끝낸 문서도 여기 있으니 채령과 혼인하겠습니다."노부인은 염주를 굴리던 손을 멈추고 몸을 돌려 강무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서윤이가 어떻게 떠났는지 알고 있느냐?"강무진은 눈살을 찌푸렸다."스스로 구층탑에 들어갔는데 저와 무슨 상관입니까?""너와 무슨 상관이냐고?"노부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염주가 바닥에 떨어져 염주알이 사방으로 굴렀다."네가 몰아냈고, 모욕하고 괴롭혀서 떠난 것이다!"강무진은 입을 다문 채 표정을 굳혔다."연회에서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사람을 시켜 그런 그림을 그려 내다 팔았다는 사실을 내가 모를 줄 알았느냐? 강무진, 네가 내 아들이지만 정말 짐승만도 못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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