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혈향연화: 핏빛 운명의 낙인: Chapter 31 - Chapter 40

63 Chapters

제31화. 당신이라는 구원

터질 것 같은 심장 소리.유진은 그에게 들킬까 두려워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새빨갛게 물든 그녀의 귓불이 새벽의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도드라졌다.“절대…… 움직이지 말라는 제 말, 벌써 잊으신 건가요? 무조건 계속 누워 계셔야 합니다. 그리고 한동안은 팔을 올리는 건 절대 금물이고 앉았다 일어나는 것도 안됩니다.”유진은 폭발할 것 같은 정념의 두근거림을 애써 무시하려 몸을 분주하게 움직였다.그리고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무명천으로 요스케의 가슴과 복부 주변에 남은 붉은 피 자국들을 정성스레 씻어냈다.따뜻하게 젖은 천이 살갗을 쓸어내릴 때마다, 사내의 하복부 근육이 통제력을 잃고 단단하게 굳어갔다.그의 몸이 긴장한 듯 부풀어 오르자, 유진의 손끝 역시 작게 떨려 왔다.방 안의 공기가 질식할 것처럼 뜨겁고 농밀했다.드디어 유진은 모든 처치를 완벽히 끝냈다.그녀는 마지막으로 이불을 그의 턱 끝까지 덮어주며 나직하게 속삭였다.“……이제 다 끝났으니, 어서 주무세요.”가슴을 사정없이 헤집는 여인의 고결한 향취.그는 숨을 깊게 들이키며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댁에는 어찌 돌아가시려는 겁니까. 밤이 이리 지독하게 깊었는데…….”“내일 아침에 해가 뜨면 돌아가겠습니다. 지금은 어차피 사방이 너무 어둡기도 하고 밖의 폭풍우가 워낙 심하니까요.”“괜히…… 나 때문에 이 밤중에 이리 험한 일을 당하시고.”사내의 깊은 미안함이 서린 묵직한 목소리에, 유진은 밤하늘의 별빛 같은 황금빛 눈동자를 반짝이며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오늘 그 산길에서 저를 구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유진은 밤새 자신의 심장을 뒤흔든 사내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뒤, 방 안의 초롱불을 하나씩 아주 느리게 꺼트렸다.후우욱ㅡ.암흑 같은 어둠이 방 안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두 남녀의 심장은 문밖에 몰아치는 거친 폭풍우보다 더 사납게 날뛰고 있었다.삐걱거리는 나직한 문소리.방문이 무겁게 닫히며 사방의 정적이 내려앉았다.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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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연정의 박동

축시 경(새벽 1시에서 3시).창밖에는 여전히 폭풍우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깊은 밤.요스케가 머무는 방의 문이 아주 조심스럽게 스르륵 열렸다.그리고 어둠을 뚫고 유진이 그의 곁으로 가만히 다가왔다.숨소리조차 죽인 채, 그녀는 그의 머리맡에 쪼그려 앉아 조심스레 고운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짚었다.밤바람에 식은 서늘하고 부드러운 손의 감각이 사내의 달아오른 이마에 닿았다.순간 지독한 온도의 낙차에 전율이 일었다.잠시 후.유진은 무명천을 물에 적셔 요스케의 굵은 목덜미와 단단한 가슴 윗부분의 민감한 살결을 정성스레 닦아내고 닦아냈다.뜨겁게 달아 올랐던 살갗에 닿는 촉촉한 물기가 서늘함을 선사하며, 호흡이 편해졌다.잠시 후, 유진은 방구석 벽면에 가만히 작은 등을 기대고 무릎을 안고 앉았다.그리고 반 시경이 지나자, 다시금 사내의 곁으로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다가왔다.그 고요하고 부드러운 손길의 반복 속에서, 서로의 살결과 존재를 갈구하는 거친 이끌림이 밤새도록 위태롭게 넘실거렸다.이윽고 동이 터오는 푸르스름한 새벽녘이 다가왔다.유진은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벽에 기대어 앉은 채로 쌔근쌔근 깊은 잠이 들고 말았다.사방이 고요해지자.요스케는 그제야 가만히 감았던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가슴의 봉합 부위가 당겨왔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그는 자신의 흑색 저고리를 조심스레 벗었다.그리고 잠든 그녀의 어깨 위로 부드럽게 둘러주었다.사내의 묵직한 흑색 저고리가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포근히 감싸 안았다.저고리 깃에 짙게 배어 있는 남자의 뜨거운 체온과 쌉싸름한 먹향이 잠든 유진의 뺨을 은밀하게 간지럽혔다.잠결에 찡긋거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의 굵은 손가락이 초조하게 허공을 헤매다 이내 거칠게 주먹을 쥐었다.그리고 코끝이 닿을 듯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잠든 유진의 얼굴을 깊게 응시했다.문득 지난밤 숲속에서 그녀를 마마라 부르며 애타게 찾던 군사들이 뇌리를 스쳤다.[분명 평범한 가문의 여식은 아닐 거라 짐작하긴 했다만…… 도대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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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삼 년 후, 괴물에게 뛰는 심장

새벽의 잔혹한 눈폭풍이 한차례 지나간 나흘째 아침.유독 시리고도 가혹했다.붉은 불꽃을 피워내던 화로의 기운이 까맣게 꺼져가는 별채의 내실.사방을 집어삼킨 서늘한 냉기 속에서, 유진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그리고 시야 끝에 걸린 사내의 뒷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오늘도 쇼는 어김없이 단 한 순간도 등을 대고 눕지 않았다.천하를 짓밟은 정복자가 밤새 웅크린 채, 차가운 장검을 품에 단단히 안아 쥐고 선잠을 자는 모습은 지독하리만치 서글프고도 위험했다.그때 그녀의 턱 끝까지 덮인 붉은 비단 이불자락이 느껴졌다.괴물의 따뜻함이자 유진의 몸을 옭아매는 핏빛 사슬.이불을 쥔 그녀의 손에 가득 힘이 들어갔다.제 풀에 겨워 흐려지기 시작한 원망과 저주.그리고 서글픈 의문들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속절없이 울컥울컥 밀려 올라왔다.[도대체…… 언제부터 이토록 지독하게 지내왔던 걸까. 도대체 가슴속에 무엇을 품었기에, 몸 누일 한 뼘의 안식조차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는 건가.]비단 이불 속 아주 미세하고 작은 몸짓일뿐이었다.하지만 쇼는 그 미세한 인기척을 언제나처럼 매섭게 포착해냈다.그는 번뜩 안광을 빛내며, 급하게 몸을 돌려 침상 위의 그녀를 응시했다.마주친 시선.순간 유진의 심장이 덜컹거리며 저 맨바닥으로 가라앉았다.밀려드는 당혹감.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휙 돌려 시선을 바닥으로 뚝 떨어뜨렸다.아주 잠깐, 자신도 모르게 그를 향했던 염려를 결단코 들키고 싶지 않았다.만약 이 마음을 들킨다면, 영혼마저 그의 노예가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여전히 시선을 잔인하게 비껴내는 유진의 싸늘한 얼굴.그는 그저 처량하고 묵묵하게 바라보아야만 했다.가슴 깊숙이 박혀 있는 자상의 흉터 아래가 다시금 사정없이 아려왔다.그는 턱관절을 악문 채 서늘한 숨을 길게 내쉬었다.이번에는 그 역시 유진의 시선을 차갑게 피했다.다시 그녀와 헤어져야 했다.저 피비린내 나는 전장 속으로 향해야만 했다.그는 이 전쟁을 위해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넘겼다.그저 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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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지독한 미련

쇼가 별채를 떠나간 지, 어느덧 닷새라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그리고 그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온기가 사라진 방 안은 얼음처럼 서늘했고 무거운 정적만이 유진의 온몸을 짓눌러왔다.동이 터오르기 직전의 칠흑 같은 새벽녘.단 한 줄기의 선잠조차 찾아오지 않는 가혹한 밤.기억 저편으로 애써 밀어놓았던 과거의 상처를 기어이 꺼내고 말았다.“하아……. 사랑한다. 자네를 온전히 갖지 못한다면, 난 미쳐버리고 말 터이니. 내 곁에 영원히 있어다오.”3년 전, 영주 태산(太山)의 폐가.뜨겁고 단단했던 그의 품 안에서 온몸이 불타오르듯 달아올라 영원한 연모와 구원을 서로의 귓가에 숨 가쁘게 속삭였던 바로 그곳.그 끔찍하고도 뜨거웠던 기억 속, 서로의 손길이 살결을 쓸어내리던 열기를 떠올리자 가슴을 베어내는 극심한 통증이 혈관을 타고 퍼져나갔다.하지만 그날의 뜨겁던 숨결은 이제 뼈를 파고드는 한기가 되었다.몸이 기억하는 남자의 체온은 지독하도록 끔찍한 형벌이었다.그럼에도 홀로 그 어두운 폐가에 남겨졌던 비극의 순간이 환각처럼 시야를 어지럽혔다.“반드시 너에게 돌아오마. 그러니 꼼짝 말고 기다리고 있거라.”나흘 밤을 단 일각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텅 빈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그의 발소리만을 기다리고 기다렸다.그러나 그 참혹했던 기다림의 끝은 투서 한 장만 남긴 채 사라진 남자였다.그가 자신에게서 영영 도망쳐버렸다는 서늘한 절망뿐이었다.그런데 지금 이 순간.삼 년의 세월을 넘어서고도.이제 그는 그때의 정인도 아닌 자신을 처절히 망가트린 원수임에도.그때와 똑같은 지독한 독수공방과 처절한 기다림을 되풀이하고 있었다.또다시 스스로를 절망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뭘 기억하는 거야. 정명, 정신 차려. 도대체 무슨 부질없는 미련이 남았다고 이리 가슴을 졸이며 그의 발소리를 기다린단 말이냐.]가슴 밑바닥에서 솟아오른 불안함이 흉부를 꽉 죄어와 숨을 쉴 수 없었다.유진은 정신을 차리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반쯤 풀린 얇디얇은 하얀 명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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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적국의 수하, 은밀한 파문

유진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그 남자가 서안에……? 그렇다면 여민국의 가장 든든한 철옹성이자 방어선이었던 서안성마저, 사츠마의 발밑에 완전히 무너져 내렸단 뜻인가? 그곳마저 함락당했다면…… 아바마마와 오라버니가 도망친 의성(義城)이 바로 고작 코앞인데……’순식간에 안색의 핏기가 싹 사라진 그녀.타카오의 미간이 좁아졌다.그리고 그녀의 주변을 가만히 살피기 시작했다.걱정으로 시작된 시선이 이내 감탄으로 변하고 말았다.조국이 무너지는 거대한 비극의 위기 앞에서.천하절색(天下絶色)이라는 말이 가당하기나 한 것일까.더욱이 공주라는 고결한 혈통에 걸맞은 우아하고도 아련한 기품이 서려 있었다.그리고 그의 시선이 자연스레 아래로 향했다.얇은 명주 옷감 너머, 고스란히 비친 가녀린 어깨선과 은밀한 골반의 곡선.그리고 속치마 틈새로 아슬아슬하게 차오른 가슴의 윤곽이 순간 타카오의 시선을 지독하게 붙잡았다.순간 진득한 열감이 온몸의 핏줄을 타고 솟구쳤다.문득 혜민서의 그 피비린내 나는 아수라장 속에서 그녀를 처음 목도했던 순간을 떠올렸다.그리고 매일 밤 자신의 주군에게 짓눌러 정복당하고 유린당하던 그녀.그 문밖을 지키던 타카오의 귓가를 집요하게 때리던 그녀의 흐느끼던 비명소리.순간 그의 심장이 불편하게 아려왔다.스며든 죄책감이 꼬리를 물고 쇼군과 그녀와의 과거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도대체 삼 년 전, 두 분 사이에는 어떤 지독하고도 추악한 정념이 얽혀 들었던 걸까.]기이한 의구심이 스쳐 지나가던 바로 그 찰나.대청마루 끝에 서 있던 유진이 가만히 타카오의 앞으로 다가왔다.그러고는 돌연 타카오의 오른손을 가녀린 손가락으로 가만히 잡아 쥐어 펼쳤다.갑작스레 밀려든 여인의 부드럽고 따스한 살결의 감각.코끝을 스치는 달콤한 여인의 향취에 놀란 타카오가 본능적으로 손을 뒤로 뺐다.그러자 그녀의 황금빛 눈동자가 그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거절을 불허하듯, 그녀는 작은 손으로 그의 손을 다시금 소중히 가져가 감싸 쥐었다.“이미 자상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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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삼 년 전, 길어지는 이별 유예

깊은 밤 산속에서 벌어졌던 도륙의 밤이 지나고.며칠새 사나웠던 폭풍우도 거짓말처럼 걷힌 아침.푸르스름한 해안가 너머로 투명한 햇살이 하얗게 부서져 내렸다.청사 몽돌 해변의 초가집 마당에, 유진이 가녀린 양팔을 넓게 벌리고 서 있었다.기어이 사츠마의 상선을 타겠다며 짐을 챙겨 나서는 사내.그녀는 요스케의 앞을 막아서며, 황금빛 눈동자를 고집스럽게 번뜩였다.“절대 안됩니다. 못 보내 드립니다. 이대로 가시면 탈이 날 게 분명한데 어찌 보내드린단 말입니까.”가슴의 봉합 부위가 찢어질 듯 욱신거렸다.“조심하면 되니, 괜찮습니다.”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요스케는 그녀를 피하려 자신의 시선을 바닥으로 툭 내렸다.유진은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빨리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셔서 속상하시다는 거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아직 살이 벌어져 있는 상황에서. 그것도 저를 구하시려다 그리 되셨는데…… 다시 한번 고려해 주시지요.”요스케는 잠시 미동도 없이 서 있다 툇마루에 놓여 있는 지필묵을 들어 묵직한 필담을 건넸다.‘속상해서 그리 물은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나 오랜 시간 그대에게 신세를 지고 너무도 염치가 없어서 드린 말입니다.’그가 건넨 필담을 읽은 유진은 일부러 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리고 결심을 확고히 굳혔다.그를 보내지 않겠다고. 비록 당분간만일지라도.그녀는 잠시 머리를 굴리다 그에게 거절하기 어려운 부탁을 했다.‘정 그리 마음이 불편하시다면, 이건 어떠실까요? 제게 제대로 된 사츠마 언어를 가르쳐 주셔요. 한번 시작한 공부이니 끝은 명확히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제 무례한 청을 양해해 주신다면, 제게 귀하의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있겠습니까.’그는 깊은 의아함과 염려가 서린 필체로 받아쳤다.‘가녀린 여인의 몸으로, 검술을…… 왜 배우려 하시는 겁니까.’‘원래 활쏘기를 무척 좋아해서, 나름 무예에는 제법 자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어젯밤 그 산속에서 깨달았습니다. 제가 참으로 나약하다는 것을요. 활은 먼 거리에 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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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위험한 호신술, 잔인한 궤적

가혹하고 처절한 살수(殺手)의 검 대신.요스케는 적을 제압하는 호신술의 초식을 먼저 가르치기 시작했다.“호신술은 말 그대로 적을 죽이기 위한 무예가 아닙니다. 그저 찰나의 시간을 벌어 적의 손아귀에서 도망치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그러니 검을 사용하기 전에 도망칠 수 있는 기회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미련 없이 무조건 도망치십시오.”요스케의 나직하게 울리는 이국의 발음을 귀에 담으며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도망…… 알겠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가르쳐 주신 몇 개의 초식들은 전부 저와 덩치가 비슷한 사내들에게나 통할 법한 동작들 같습니다. 만약 저보다 훨씬 덩치가 큰 사내에게 기습을 당한다면 어찌해야 합니까?”요스케의 검은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아가씨의 신장이 여인 치고는 결코 작은 편은 아니나. 만약 나처럼 장신의 사내에게 무력으로 압도당해 공격을 받게 된다면, 애써 그 거구를 밀어내려 하지 마십시오. 힘으론 역부족일 터이니.”설명을 마치자마자, 그가 유진의 등 뒤로 소리 없이 서늘하게 밀착해 들어왔다.거대한 먹빛 그림자가 그녀의 가녀린 등 뒤를 통째로 집어삼켰다.그의 넓은 품 안에 완벽하게 갇혀버렸다.사내의 압도적인 체온.그 특유의 피폐하고도 묵직한 아우라가 유진을 완벽히 감싸 안듯 밀려들었다.맞닿은 사내의 단단한 가슴 너머, 격렬한 심장 박동이 얇은 옷자락을 뚫고 뼈마디까지 울려 퍼졌다.유진의 새하얀 목덜미와 귓가에 사내의 거친 숨소리가 번졌다.은밀한 체온이 닿자 유진의 하얀 귓불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숨 막히는 두 사람의 살결 경계선마다 터질 듯한 긴장감이 차올랐다.그때 그가 단단한 손으로 검을 쥔 유진의 손을 위에서부터 우악스럽게 겹쳐 쥐었다.요스케가 그녀의 가녀린 손을 이끌어 허공에 궤적을 그리며 나직하게 읊조렸다.“오히려 일부러 그 사내의 거구 속으로 바짝 안기듯 깊숙이 파고드십시오. 그리고 가장 가까운 거리를 확보한 상태에서, 그 남자의 왼쪽 어깨죽지를 망설임 없이 깊숙이 찌르는 겁니다. 기회는 오직 단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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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무너지는 선(線)의 경계

검술 수련과 사츠마의 언어 수업에 정신이 팔린 채 살았다.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우치는 그녀의 영민함은 축복이었다.마치 세상에서 가장 흥미롭고 새로운 장난감을 손에 쥔 아이처럼.가을 햇살을 받아 일렁이는 그녀의 황금빛 눈동자가 생기를 띠었다.그는 잠시 넋을 잃고 말았다.“……제가 어디 틀린 구석이라도 있나요, 사부님?”깊고 진한 눈으로 빤히 쳐다보는 그의 시선이 쑥스러운 탓에.유진이 슬그머니 겨누고 있던 검을 아래로 내리며 나직하게 물었다.“아니, 아주 완벽했어.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다. 헌데…… 유진, 자네의 그 눈 색깔은 볼 때마다 무척이나 신기하군. 여민국인들에게는 흔한 편인가?”요스케의 나직하게 묻는 질문에 유진은 배시시 맑은 웃음을 터뜨렸다.“글쎄요. 아직 저 말고는 본 적은 없습니다. 근데 전 이 눈이 싫습니다.”“싫은……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사람들 눈에 너무 튀다보니 허튼 짓을 했다가는 바로 걸리거든요.”[이 아름다운 눈이 싫다…… 내 영혼과 이성이 이 황금빛 시선에 온전히 사로잡혔거늘.]차마 고백할 수 없는 감정을 그는 애써 삼켜내었다.“그러기도 하겠군.”유진은 대답 대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그러고는 묘하게 부끄러운지 뺨을 붉히며, 이내 검을 다시 고쳐 쥐며 마당에 세워진 짚단 인형을 향해 훈련에 집중했다.“아……!”유진이 순간 가늘게 신음하며 얼굴을 확 찌푸렸다.하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검자루를 잡으려 했다.그 미세한 조짐을 놓칠 리 없는 요스케가 큰 걸음으로 다가왔다.그는 검을 쥔 그녀의 작은 손을 단숨에 낚아채 멈춰 세웠다.“괜찮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사부님.”그는 가차 없는 손길로 그녀의 오른손바닥을 강제로 틀어쥐고 펼쳐보았다.강제로 펼쳐진 유진의 손은 물집이 터져 핏방울이 맺혀 있을 정도로 빨갛게 짓물러 있었다.그의 표정이 순간 무섭게 굳어버렸다.“명색이 의원이라 자처하는 자가…… 제 몸뚱이 하나 이리 살피지 못하고.”그의 엄한 질책에, 유진은 순간 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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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삼 년의 침묵을 깬 비극의 소식 한 자락

말도 없이 사라진 쇼.매일 밤 애증으로 헐떡이던 유진의 기다림이 마침내 끝이 났다.타카오의 예언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떨어졌다.정확히 십 일 후 이른 아침.쇼는 희뿌연 안개를 뚫고 별채의 대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그토록 무사하기만을 바랐건만.그의 몰골을 마주한 순간, 유진은 허물어지려던 심장을 잔인하게 내리쳐야 했다.무고한 백성들의 피와 목숨을 마치 승전의 훈장처럼 온몸에 전시한 듯한 끔찍한 모습.자신의 영토를 피로 물들이고 돌아온 사내의 갑옷 틈새마다 아직 채 마르지도 않은 검붉은 핏자국이 엉겨 붙어 있었다.소름끼치는 피비린내가 코끝을 스쳤다.시꺼먼 혐오가 뱃속에서 사정없이 솟구쳐 올라왔다.우읍, 으욱……!유진은 결국 역겨움을 토해냈다.자기 자신을 향한 깊은 환멸이 밀려들었다.유진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시금 단 한 자락의 시선도 그에게 주지 않았다.꼬박 보름만에 그녀를 마주했다.자신의 유일한 구원이자 단 한명의 여인.전장의 구렁텅이 속을 구르는 찰나가 영겁처럼 느껴졌다.그의 거친 마음은 한시가 급했다.여민국 왕실의 완벽한 몰락을 코앞에 둔 정점의 순간이었음에도.그는 자신의 승전보다 오직 유진의 하얀 얼굴이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그래서 자신만을 따르는 수만의 대군의 진격을 멈췄다.그리고 낙성으로 밤낮을 갈아엎으며 돌아왔다.핏빛 시체 더미를 가르고 미치도록 보고 싶어 달려왔건만.그녀는 자신을 마주하자마자 구토를 내뱉었다.구원이라 믿었던 이의 혐오 앞에서, 그의 가슴은 사정없이 바스러져 내렸다.순간 그는 멍하니 자신을 천천히 내려다보았다.핏물로 엉망이 된 전장의 모습 그대로 그녀 앞에 섰다.그제야 자신이 그녀에게 얼마나 잔인한 모습일지 깨달았다.쇼의 거친 안면 위로 순간 감출 수 없는 당황함과 죄책감 그리고 미안함이 사정없이 밀려들었다.비록 그런 자신일지라도 그녀가 딱 한번만 돌아봐 줬다면, 머리를 땅에 박고서라도 ‘미안하다’ 사정하고 싶었다.그러나 유진은 그 어떤 원망의 시선도 비난의 음성도 건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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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심장에 박힌 사모(思慕)

“아직 내 언어를 잊지는 않았군.”“끝……이냐고 물었습니다.”“아직…… 아니다.”유진은 사내를 무섭게 쏘아보았다.“대관절 어디까지 갈 생각인가요? 여민국 왕실의 멸족이라도…… 원하는 건가요?”“아니. 내 요구사항을 절대 거부할 수 없을 만큼, 그들이 가진 모든 패를 쓰고 내 발밑에 무릎 꿇을 때까지.”유진의 입술 사이로 환멸이 흘러나왔다.“삼 년 전. 아니, 애초부터 당신은 이 전쟁을 똑똑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 지옥 같은 만행이 전부 당신의 치밀한 계획이었던 건가요? 나의 조국을 무참히 침략해 파멸시키는 게, 당신의 최종 목표였습니까.”삼 년 만에.그녀가 처음으로 입을 열자마자 쏟아낸 것은 지독한 원망과 비난뿐이었다.쇼는 그저 붉게 충혈된 안광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리고 그의 입술이 비정하게 열렸다.“그렇다면. 삼 년 전 내가 분명히 충고했지. 이 세상 그 누구도 절대로 믿지 말라고.”유진은 눈물이 가득 차오른 증오의 눈동자로 그를 노려보았다.자신을 향해 서슬 퍼런 살기를 뿜어내는 그녀.그는 피하지 않았다.그녀의 원망도 저주도 그는 고마웠다.이렇게라도 자신을 바라봐 주고 있어서. 자신에게 들으라고 말해주고 있어서.그는 들끓는 소유욕을 참지 못하고 다시금 그녀의 입술을 갈구하듯 고개를 숙였다.그러나 유진은 그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녀는 가차 없이 고개를 휙 돌려 그의 숨결을 거칠게 거부했다.그의 움직임이 일순간 멈추었다.그녀에게 닿지 못한 허공에서 심장이 뜯겨 나가는 듯한 극통이 몰려왔다. 그때 유진이 이를 악물며 또다시 매섭게 쏘아붙였다.“이젠 또 누구를…… 단칼에 베어 죽일 건가요? 당신의 그 오만한 심기를 건드린 것은 오직 나 하나뿐이니. 제발 다른 무고한 백성들을 괴롭히지 말고 날 죽여요. 당장 날 죽이란 말입니다…!!!”바로 그 찰나.그가 허리춤에 채워져 있던 거대한 장검을 순식간에 뽑아 들었다.스윽—! 푹—!그 검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깊숙이 박혔다.서슬 퍼런 검날이 살점을 가르고 뼈마디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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