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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적국의 수하, 은밀한 파문

Author: KRYSE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6 06:40:15

유진의 눈동자가 거칠게 소용돌이치며 사정없이 흔들렸다.

순식간에 그녀의 안색에서 핏기가 싹 사라졌다.

‘그 남자가 서안에……? 그렇다면 여민국의 가장 든든한 철옹성이자 방어선이었던 서안성마저, 사츠마의 발밑에 완전히 무너져 내렸단 뜻인가? 그곳마저 함락당했다면…… 아바마마와 오라버니가 도망친 의성(義城)이 바로 고작 코앞인데…….’

타카오는 가만히 공주의 창백해진 얼굴을 샅샅이 훑어내리며 살피기 시작했다.

이내 감탄이 나왔다.

조국이 무너지는 거대한 비극의 위기 앞에서.

천하절색(天下絶色)이라는 말이 가당하기나 한 것일까.

더욱이 공주라는 고결한 혈통에 걸맞은 우아하고도 아련한 기품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자연스레 아래로 향했다.

얇은 명주 옷감 너머, 고스란히 비친 가녀린 어깨선과 은밀한 골반의 곡선.

그리고 속치마 틈새로 아슬아슬하게 차오른 가슴의 윤곽이 순간 타카오의 검은 안광을 지독하게 붙잡았다.

사내로서의 하복부가 묘하게 달아오르며, 진득한 열감이 온몸의 핏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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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혈향연화: 핏빛 운명의 낙인   제42화. 자신을 향한 검

    폐부 깊숙이 밀려드는 유진의 향기.들끓어 오르던 야수의 불안이 기적처럼 가라앉았다.그녀의 온기가 닿은 곳마다.지독하게 휘몰아치던 광기가 아늑한 침묵 속으로 잠식되어 갔다.그와 동시에.지난 3년 동안 몸에 축적되어 왔던 지독한 육체적 피로가 해일처럼 무겁게 덮쳐왔다.[위험하다.]무사로서 이토록 무방비하게 꺼져드는 의식은 명백한 자멸이자 죽음이었다.나른하게 감겼던 쇼의 붉은 안광이 번뜩 뜨였다.그는 비단 침상 위에서 기어이 상체를 꼿꼿하게 일으켜 앉았다.찰나의 휴식조차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그는 어김없이 차갑고 묵직한 흑색 장검을 품에 바짝 끌어안은 채,별채의 좁은 문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언제든 검을 뽑아 피를 볼 준비가 되어 있는 처절한 자세.그 완강하리만치 기괴한 뒷모습을 바라보던 유진의 입술이 서글프게 파르르 떨렸다.“오늘은 안 돼요. 제발 누우셔요.”쇼는 돌아보지 않았다.굳게 닫힌 입술 사이로 서늘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괜찮아. 난 이 자세가 가장 편해.”“안 된다고 했습니다.”유진은 사내의 칠흑 같은 옷자락을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꽉 움켜잡았다.“제발 오늘 단 하루만이라도. 편하게 몸을 뉘어 쉬어야 합니다.”순간 사내의 단단하고 넓은 어깨가 척 굳어졌다.쇼의 가슴속 깊은 곳을 여인의 다정한 다그침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들어왔다.삼 년 전처럼 자신을 향해 유일하게 잔소리를 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그는 머뭇거렸다.수백 명의 목을 베면서도 단 한 번도 망설이지 않았던 사내가 여인의 손길과 목소리에 짓눌려 멈칫거렸다.결국 삼 년이라는 세월을 통틀어 처음으로.그는 이부자리 위에 자신의 무거운 등을 대고 길게 누웠다.스윽—.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조금 전처럼 자연스럽게 유진의 가녀린 허리를 낚아챘다.그의 억센 팔이 유진을 완벽하게 가두어 안았다.유진은 자신을 옭아매는 그의 손길에 그 어떤 반항이나 거친 저항도 하지 않았다.대신 가만히 눈을 감으며 그의 가슴에 이마를 묻은 채 온전히 안겨 들었다.하복부

  • 혈향연화: 핏빛 운명의 낙인   제41화. 내밀한 체온, 애증의 침상

    그제야 유진은 눈앞에서 피를 흘리는 이 잔인한 사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상처가 벌어지니 제발 입을 다물라는 처절한 만류와 눈물 섞인 애원에도 불구하고.쇼는 언제나처럼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사내는 핏기가 가셔가는 입술로 끊임없이 자신의 지독한 연모를 속삭였다.“삼 년 전 그 청사(靑蛇) 바닷가에서, 넌 결코 날 살려내면 안 되는 거였다. 내 배를 가르고 날 이 지옥 같은 세상에 다시 붙잡아 두지 말았어야 했어.”“흐윽…… 흑…!”“네가 힘들다면, 날…… 용서하지 마라. 난 괜찮으니. 날 증오하고 원망해도 다 괜찮다. 대신 내 곁에만 있어다오. 제발 죽으려고만 하지마라. 그것만은 내가 허락할 수 없다.”그의 어깨죽지에서 뿜어져 나온 뜨거운 생혈은 어느새 유진의 고운 두 손을 흥건하게 적시다 못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유진은 급하게 치맛자락을 단단한 손아귀 힘으로 투박하게 뜯어냈다.두두둑—!비단을 거칠게 찢어낸 그녀는 지체 없이 쇼의 깊숙이 파인 어깨 상처 부위를 터질 듯이 꽉 묶었다.그리고 그의 안색이 급격히 창백해졌다.시간이 없다.빨리 지혈해야만 한다.유진은 피가 묻은 발로 허겁지겁 별채 대문 밖으로 뛰쳐나왔다.그때 어둠 속에 대기하던 타카오가 그녀 앞에 귀신처럼 나타났다.“돼지 창자와 바늘, 그리고 가장 독한 소주(燒酒)를 당장 구해다 주세요. 빨리요, 제발……!”핏발이 선 채 다급하게 명령을 내리꽂는 공주의 서슬 퍼런 기백.타카오는 그 어떤 질문도 감히 던지지 못한 채 곧장 어둠 속으로 질주했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타카오는 숨을 헐떡이며 별채 내실 장막을 들추고 들어왔다.밀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쇼군이 검을 찔러 피칠갑을 하고 있는 참혹한 정경.타카오는 단숨에 사색이 되어 바닥 위로 무릎을 꿇었다.“쇼군! 이게 대관절 무슨 일입니까! 침입자가 있었던 겁니까? 즉시 저택을 봉쇄하고 쥐새끼를 쫓겠습니다! 생김새를 소인에게……!”쇼는 사색이 된 심복을 향해 나직하고도 무심한 조소를 지어 보였다.“별거 아니다.

  • 혈향연화: 핏빛 운명의 낙인   제40화. 심장에 박힌 사모(思慕)

    “여민국 왕실이 조만간 국경을 넘어 신국으로 망명할 것 같더군.”쇼가 등을 돌린 채로 유진의 혈육이자 왕실의 파멸 소식을 담담히 뱉어냈다.순간 유진은 무력하게 늘어진 육체를 힘겹게 일으켜 세웠다.풀어헤쳐진 의복 자락 사이로 서늘한 한기가 몰아쳤다.「それで、終わりですか?」“……그럼, 이제 전부 끝인가요?”자신의 조국과 왕실의 완전한 몰락 앞에서.유진은 마침내 그를 향해 삼 년 만에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어놓았다.그가 느리게 몸을 돌려 자신의 침상 위의 여인을 돌아보았다.“아직 내 언어를 잊지는 않았군.”“끝……이냐고 물었습니다.”“아직…… 아니다.”유진은 핏발 선 황금빛 눈동자로 자신의 모든 것을 정복한 사내를 무섭게 쏘아보았다.“대관절 어디까지 갈 생각인가요? 여민국 왕실의 멸족이라도…… 원하는 건가요?”“아니. 내 요구사항을 절대 거부할 수 없을 만큼, 그들이 가진 모든 패를 쓰고 내 발밑에 무릎 꿇을 때까지.”유진의 입술 사이로 환멸이 흘러나왔다.“삼 년 전. 아니, 애초에 당신은 이 전쟁을 똑똑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 지옥 같은 만행이 전부 당신의 치밀한 계획이었던 건가요? 나의 조국을 무참히 침략해 파멸시키는 게, 애초부터 당신의 최종 목표였느냔 말입니다!”자신의 온 영혼이자 생의 전부인 여인.삼 년 만에.그녀가 처음으로 입을 열자마자 쏟아낸 것은 지독한 원망과 저주 서린 비난뿐이었다.그녀의 날카로운 폭언을 들으면서도.그 어떤 억울한 변명도 사소한 감정의 미동도 없이.쇼는 그저 붉게 충혈된 안광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그리고 사내의 입술이 비정하게 열렸다.“그렇다면. 삼 년 전 내가 분명히 충고했지. 이 세상 그 누구도 절대로 믿지 말라고.”유진은 눈물이 가득 차오른 눈동자로 사내의 안면을 잔인하게 노려보았다.자신을 향해 서슬 퍼런 살기를 뿜어내는 그녀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그는 들끓는 소유욕을 참지 못하고 다시금 그녀의 입술을 갈구하듯 고개를 숙였다.그러나 유진은 이 정복자를 도저히 받아들

  • 혈향연화: 핏빛 운명의 낙인   제39화. 피비린내와 침묵의 징벌

    타카오의 예언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떨어졌다.정확히 십 일 뒤, 이른 아침.쇼는 희뿌연 안개를 뚫고 별채의 대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그토록 무사하기만을 바랐건만.사내의 몰골을 마주한 순간.유진은 또다시 허물어지려던 심장을 잔인하게 내리쳐야 했다.무고한 백성들의 피와 목숨을 마치 승전의 훈장처럼.온몸에 전시한 듯한 그의 끔찍한 모습.자신의 영토를 피로 물들이고 돌아온 사내의 갑옷 틈새마다 아직 채 마르지도 않은 검붉은 핏자국이 소름 끼치게 엉겨 붙어 피비린내가 코끝을 스쳤다.그 순간.유진의 내장이 통째로 뒤틀리며 시꺼먼 혐오가 뱃속 깊은 곳에서 사정없이 솟구쳐 올랐다.우읍, 으욱……!그의 무사생환을 바랐던 자신을 향한 뼛속 깊은 환멸이 밀려들었다.유진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시금 단 한 자락의 시선도 그에게 주지 않으려 고개를 차갑게 돌려버렸다.꼬박 보름만에 자신의 유일한 구원이자 자신의 여인을 마주했다.그녀와 떨어져 전장의 구렁텅이 속을 구르는 찰나의 시간이 영원보다 더한 지옥의 유예처럼 느껴졌었다.그의 거친 마음은 그 영겁의 시간을 버틸 수 없었다. 한시가 급했다.여민국 왕실의 완벽한 몰락을 고작 코앞에 둔 정점의 순간이었음에도.그는 자신의 승전보다 오직 유진의 새하얀 얼굴이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그래서 자신만을 따르는 대군을 물린 채 낙성으로 밤낮을 갈아엎으며 돌아왔다.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보자마자 역겨움을 토해냈다.그렇게 미치도록 보고 싶었던 여인이 자신을 마주하자마자 구토를 내뱉는 순간.쇼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단단한 무언가가 산산조각 깨져 나갔다.그의 움직임이 거칠게 굳어버렸다.그는 멍하니 자신을 천천히 내려다보았다.이미 정욕과 그리움에 눈이 멀어버려 핏물로 엉망이 된 전장의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그런 자신이 그녀에게 얼마나 잔인한 모습일지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쇼의 거친 안면 위로 순간 감출 수 없는 당황함과 죄책감 그리고 미안함이 사정없이 밀려들었다.비록 그런 자신이라도 그녀가 딱 한번

  • 혈향연화: 핏빛 운명의 낙인   제38화. 무너지는 선(線)의 경계

    검술 수련과 사츠마의 언어 수업에 정신이 팔린 채 살았다.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우치는 그녀의 영민함은 축복이었다.마치 세상에서 가장 흥미롭고 새로운 장난감을 손에 쥔 아이처럼.가을 햇살을 받아 일렁이는 그녀의 황금빛 눈동자가 번뜩이며 생기를 띠었다.그는 잠시 넋을 잃고야 말았다.“……제가 어디 틀린 구석이라도 있나요, 사부님?”그저 깊고 진한 눈으로 빤히 쳐다보는 사내의 시선이 머쓱했던 탓일까.유진이 슬그머니 겨누고 있던 단검을 아래로 내리며 나직하게 물었다.“아니…… 아주 완벽했어.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다. 헌데…… 유진, 자네의 그 눈 색깔은 볼 때마다 무척이나 신기하군. 여민국인들에게는 흔한 편인가?”요스케의 나직하게 가라앉은 질문에, 유진은 배시시 맑은 웃음을 터뜨렸다.“글쎄요. 아직 저 말고는 본 적은 없습니다. 근데…… 전 이 눈이 싫습니다.”“싫은……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사람들 눈에 너무 튀다보니 허튼 짓을 했다가는 바로 걸리거든요.”이 아름다운 눈이 싫다…… 자신의 영혼과 이성이 이 황금빛 시선에 온전히 사로잡혔거늘.차마 고백할 수 없는 감정을 그는 입안의 핏물처럼 삼켜내었다.“그러기도 하겠군.”유진은 대답 대신 고개를 세차게 크게 끄덕였다.그러고는 묘하게 부끄러운지.이내 단검을 다시 고쳐 움켜쥐며 마당에 세워진 짚단 인형을 향해 훈련에 집중했다.“아……!”검을 잡고 거칠게 공중을 휘두르던 유진이 순간 가늘게 신음하며 얼굴을 확 찌푸렸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검자루를 잡으려 했다.그 미세한 조짐을 놓칠 리 없는 요스케가 큰 걸음으로 다가왔다.그리고 검을 쥔 그녀의 작은 손을 단숨에 낚아채 멈춰 세웠다.“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사부님.”그는 조금 더 거칠고 가차 없는 손길로 그녀의 작은 오른손바닥을 강제로 틀어쥐고 펼쳐보았다..사내의 커다란 손바닥 안에서 강제로 펼쳐진 유진의 손은 무리한 수련으로 인해 물집이 전부 터져 빨갛게 짓물러 핏방울이 군데군데 배어 나와

  • 혈향연화: 핏빛 운명의 낙인   제37화. 위험한 호신술, 잔인한 궤적

    가혹하고 처절한 살수(殺手)의 검 대신.요스케는 적을 제압하는 호신술의 초식을 먼저 가르치기 시작했다.“호신술은 말 그대로 적을 죽이기 위한 무예가 아닙니다. 그저 찰나의 시간을 벌어 적의 손아귀에서 도망치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그러니 검을 사용하기 전에 도망칠 수 있는 기회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미련 없이 무조건 도망치십시오.”요스케의 나직하게 울리는 이국의 발음을 귀에 담으며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도망…… 알겠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가르쳐 주신 몇 개의 초식들은 전부 저와 덩치가 비슷한 사내들에게나 통할 법한 동작들 같습니다. 만약 저보다 훨씬 덩치가 큰 사내에게 기습을 당한다면 어찌해야 합니까?”요스케의 검은 눈동자가 밤의 장막처럼 깊고 진하게 가라앉았다.“아가씨의 신장이 여인 치고는 결코 작은 편은 아니나. 만약 나처럼 장신의 사내에게 무력으로 압도당해 공격을 받게 된다면, 애써 그 거구를 밀어내려 하지 마십시오. 힘으론 역부족일 터이니.”그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유진의 등 뒤로 소리 소문 없이 서늘하게 밀착해 들어왔다.거대한 먹빛 그림자가 여인의 가녀린 등 뒤를 통째로 집어삼켰다.사내의 넓은 품 안에 완벽하게 갇혀버린 유진은, 자신의 어깨를 감싸쥔 거친 악력에 숨조차 제대로 들이쉬지 못했다.그때 사내는 두터운 손으로 유진의 단검을 쥔 고운 손을 위에서부터 우악스럽고 정성스레 겹쳐 쥐었다.사내의 압도적인 체온.그리고 특유의 피폐하고도 묵직한 아우라가 유진의 전신을 완벽히 감싸 안듯 밀려들었다.그녀의 등에 맞닿은 사내의 단단한 가슴 너머, 격렬한 심장 박동이 유진의 얇은 옷자락을 뚫고 뼈마디까지 울려 퍼졌다.유진의 하얗게 드러난 목덜미와 귓가에 사내의 거친 숨소리가 번졌다.은밀한 체온이 닿자 유진의 하얀 귓볼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숨 막히는 두 사람의 살결 경계선마다 터질 듯한 긴장감이 차올랐다.요스케가 그녀의 가녀린 손을 이끌어 허공에 궤적을 그리며 나직하게 읊조렸다.“오히려 일부러 그 사내의 거구 속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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