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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제 81장레베카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그녀의 숨소리는 여전히 가거칠었고, 얼굴은 수치심 때문이 아니라 분노와 실망감으로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녀가 서 있는 층으로 엘리베이터 모터가 서서히 올라오는 아득한 소리만 울릴 뿐 아파트 복도는 고요했다."너 정말 미쳤어…"차가운 대리석 바닥을 응시하며 레베카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으려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절대 용서 안 할 거야."뒤쪽에서 급박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메이드일 거로 생각한 레베카는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갑자기 그녀의 팔이 거칠게 붙잡혔다."새뮤얼 씨! 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새뮤얼에게 번쩍 들어 올려 안긴 레베카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놔요! 당장 내려놔요!!"새뮤얼의 가슴을 사정없이 내리쳤지만,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이렇게 멋대로 도망칠 순 없어, 레베카."무덤덤하게 내뱉는 새뮤얼의 눈동자 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이글거리고 있었다."내려달라고요, 새뮤얼 씨!!"발버둥 치며 발길질까지 했지만, 새뮤얼은 거실을 가로질러 마스터 베드룸을 향해 성성장걸음으로 걸어갔다.방에 도착한 새뮤얼은 어깨로 침실 문을 밀어 열고는 부드러운 발길질로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거칠면서도 조심스럽게 레베카를 침대 위로 던지듯 눕혔다.레베카가 몸을 굴려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녀가 눈을 부릅떴다."도대체 뭘 원하는 건데요? 이제 와서 또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예요?!"새뮤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뚫어지게 레베카를 응시하더니 이내 성큼성큼 다가왔다."이리 오지 마요, 새뮤얼 씨. 제발 다시는 손대지 말라고."하지만 새뮤얼은 멈추지 않고 다가왔다. 한 걸음. 두 걸음. 등 뒤가 침대 헤드보드에 닿을 때까지 레베카는 뒷걸음질 쳤다. 마른침을 삼키며 용기를 끌어모으려 애썼다."당신 미웠어…"레베카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당신한테 이럴 권리 없어—"하지만 새뮤얼이 상체를 숙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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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2장노라가 천천히 눈을 떴다. 방 안의 불은 여전히 켜져 있었고, 앤서니의 커다란 몸뚱이가 그녀의 곁에서 묵직하게 느껴졌다. 남자는 허리에 팔을 두른 채 잠들어 있었다. 거친 숨소리가 거의 코고는 소리처럼 들려왔다.노라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그녀는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여 베개 뒤쪽에 숨겨두었던 머리핀을 더듬어 잡았다. 앤서니의 삼엄한 수색 속에서 유일하게 지켜낸 작은 물건이었다."미안하지만, 당신은 이런 대우받을 자격 없어."노라가 나직하게 속삭였다.순식간에 몸을 일으킨 노라는 확 돌아서더니, 날카로운 머리핀을 앤서니의 팔에 곧바로 내리꽂았다."아아악——!!"잠에서 깬 앤서니가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르며 피가 흘러나오는 팔을 부여잡았다. 침대 끝에 서 있는 노라를 발견한 그의 두 눈이 경악으로 크게 벌어졌다."너 미쳤어?!"고함치며 벌떡 일어난 그가 노라에게 달려들었다.노라는 급히 뒤로 물러섰다. 옷자락이 잡히며 몸이 쏠렸고, 등허리가 옷장에 억세게 부딪혔다. 윽 소리가 절로 새어 나왔지만, 그녀의 시선은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죽여버릴 거야, 노라!!"팔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 때문에 앤서니는 더욱 눈이 뒤집혀 고함쳤다.노라는 허겁지겁 주변을 더듬다 협탁 위에 놓인 화병을 발견했다. 망설일 겨를도 없이 그것을 집어 들어 온 힘을 다해 앤서니의 머리를 향해 내던졌다.챙그랑!화병이 앤서니의 머리통 위에서 박살 났다. 남자가 비틀거렸다. 노라를 향해 손을 뻗어보았지만, 앤서니의 몸은 더 이상 버텨주지 못했다. 결국 그는 쿵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고꾸라졌다.노라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손발이 사정없이 떨려왔지만, 아직 끝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빨리 움직여야 했다. 그녀는 기어가는 듯 앤서니에게 다가가 그의 바지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냈다.액정이 환하게 켜졌다. 다행히 잠금장치는 걸려 있지 않았다. 노라는 곧바로 통화 기록을 열었다."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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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3장"두 사람 지금 뭐 하는 짓이야?!"벼락처럼 내리꽂히는 목소리에 새뮤얼과 레베카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거기에는 얼굴이 분노로 시뻘개지고 눈에는 살기가 이글거리는 노라가 서 있었다."노라?"나직하게 뱉은 새뮤얼의 목소리에는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묻어났다.하지만 노라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예고도 없이 레베카의 긴 머리채를 잔인하게 움켜쥐었다."아악! 이거 놔!"비명을 지르며 레베카가 노라의 손을 떼어내려 발버둥 쳤다."이 천박한 년! 남의 남자에 눈독을 들여도 유분수지, 네가 어디서 호감을 사려고 해?!"노라가 악을 썼다.참을 만큼 참은 레베카도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그녀의 손이 노라의 머리채를 꽉 틀어쥐었고, 두 여자는 서로의 머리를 잡아당기며 짐승처럼 얽혀들었다."네가 먼저 시작했잖아, 노라!"레베카가 쏘아붙였다."내가 네 눈치라도 볼 줄 알았어?""그만해!!"새뮤얼이 끼어들어 노라의 어깨를 붙잡고 억지로 떼어냈다."그만하라고!"하지만 노라는 멈추지 않고 다시 덤벼들었다."저 여자 싸구려 년이에요, 새뮤얼! 당신도 직접 봤잖아, 그렇지?! 저 여자가 먼저 당신을 유혹하고 꼬시려고 했다고요!""누가 누굴 꼬여냈다고, huh?"붉어진 입술가를 슥 닦아내며 레베카가 비웃었다."노라 씨, 그거 알아요? 먼저 치근덕거린 건 새뮤얼 씨 쪽이거든요? 믿기지 않으면 당신 남편한테 직접 물어보시던가!""거짓말 마!"노라가 매서운 눈으로 새뮤얼을 노려보았다."새뮤얼! 설마 레베카 저년 말이 진짜야?!"새뮤얼은 입을 다문 채 고개를 푹 숙인 채 바닥만 응시했다. 그의 반응을 지켜보던 레베카가 씁쓸하게 실소를 터뜨렸다."눈으로 보고도 모르겠어요, 노라 씨? 새뮤얼 씨가 대답을 못 하잖아."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레베카가 쏘아붙였다.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노라가 성큼 다가와 레베카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새뮤얼이 말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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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4장그날 아침 사무실의 분위기는 평소와 다름없이 분주했다. 직원들은 서류를 나르고, 보고서를 타이핑하고, 전화를 받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꼭대기 층에 위치한 대표실에서 레베카는 여러 개의 서류가 든 폴더를 손에 든 채 새뮤얼의 문을 가볍게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갔다."좋은 아침입니다, 새뮤얼 대표님. 오늘 스케줄 보고드리겠습니다."레베카가 폴더를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의자에 앉아 있던 새뮤얼은 읽어내기 힘든 표정으로 레베카를 바라보았다."오늘 일정은 어떻게 되지?"레베카가 폴더를 펼치며 차분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열 시에는 도쿄 투자자들과의 줌 미팅이 있습니다. 그 후 열한 시에는 재무 및 마케팅 부서와 내부 회의가 잡혀 있고요. 오후 두 시에는 BSD 지역의 신규 프로젝트 현장 방문 일정이 있으시고, 네 시에는 비즈니스 매거진 언론 인터뷰가 있습니다."새뮤얼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오늘 서명하셔야 할 결재 서류들입니다. 우선순위대로 정리해 두었습니다."레베카가 서류들을 새뮤얼의 책상 위에 차례로 내려놓은 뒤 자리를 뜰 채비를 했다."레베카."새뮤얼이 불쑥 그녀를 불렀다.걸음을 멈춘 레베카가 뒤를 돌았다."네?""묻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예전에 캠퍼스 화재 사고 때 말이야… 정말 노라가 나를 구해준 게 맞나?"레베카의 행동이 멈췄다. 그녀는 차분한 눈으로 새뮤얼을 바라보다가 이내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네. 그렇게 알려져 있잖아요?"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레베카가 나직하게 대답했다.새뮤얼은 여자의 얼굴에서 진실을 읽어내려는 듯 가늘게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레베카는 그에게 어떤 틈도 내주지 않았다."더 물어보실 게 없다면 이만 가보겠습니다."레베카가 몸을 돌렸지만, 문고리에 손을 얹기도 전에 새뮤얼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잠깐. 네가 서명해야 할 추가 서류가 있어."고개를 돌린 레베카가 물었다.또 어떤 서류요, 새뮤얼 씨?"새뮤얼이 책상 서랍을 열어 얇은 흰색 폴더를 꺼내 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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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5장그날 오후, 바쁜 일정 속에서 레베카는 발신자 표시가 없는 번호로 문자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짧은 내용이었지만 심장이 쿵쾅거릴 만큼 충격적이었다.[레베카, 나야—리엄 엄마야. 네 어머니를 찾았어. 시외 산골짜기에 있는 외딴 병원에 계시더라. 더 빨리 알려주지 못해서 미안해.]레베카는 곧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얼굴이 팽팽하게 굳어졌다. 휴대폰을 쥔 손이 잘게 떨렸다. 망설일 겨울도 없이 그녀는 곧바로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정말 우리 엄마를 찾으신 거예요?"인사도 생략한 채 레베카가 다급하게 물었다."그래, 레베카. 리엄이 누군가와 통화하는 걸 우연히 들었지 뭐니. 뭔가 수상해서 몰래 알아봤어. 네 말이 맞더라고—네 어머니가 그 병원으로 옮겨졌어. 그런데 신분이 위장된 모양이더라. 진짜 이름이 아니었어."레베카가 마른침을 삼켰다. "어머니 상태는요…?""직접 보진 못했어… 병원이 워낙 인적이 드문 곳이라."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꾹 누르며 레베카가 두 주먹을 꽉 쥐었다."정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전화를 끊은 레베카는 미간을 찌푸린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머릿속이 엉망진창이었다. 리엄의 손아귀에서 어머니를 구해내야 했다. 그러고 나면 레베카도 비로소 이곳을 떠날 수 있을 터였다.'거기로 직접 찾아가야 해.'레베카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무작정 행동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한편, 희미한 불빛만 새어 나오는 어두운 지하실에서 새뮤얼의 여동생 신디는 지친 기색으로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녀의 두 손과 두 발은 여전히 꽁꽁 묶여 있었다. 방안의 반대편 구석에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벽에 기대어 비슷한 꼴로 앉아 있었다.다름 아닌 앤서니였다.두 사람은 벌써 거의 2주째 이곳에 감금되어 있었다. 감시하는 이들이 자리를 비운 덕분에 그나마 오늘은 조금 더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앤서니…"신디의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뭐 좀 물어봐도 돼요?"앤서니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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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장답답한 지하실 안에서 신디와 앤서니는 절망에 휩싸이기 시작했다."여기서 빠져나가야 해." 목이 쉰 채 신디가 낮게 웅얼거렸다.앤서니가 고개를 돌렸다. "나도 알아. 하지만 여기 경비들이 너무 삼엄해.""내가 표시해 뒀어. 매일 밤 9시마다 메인 조명이 잠깐 꺼지거든. 아마 그때 교대 근무를 하는 시간일 거야." 기억을 더듬으며 신디가 속삭였다.앤서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 밤에 시도한다. 하지만 먼저 이 밧줄을 끊을 도구가 필요해."신디가 방 구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뒷벽 쪽에 녹슨 못이 하나 있었어. 내가 그쪽으로 조금만 움직일 수 있다면."앤서니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같이 해보자. 네가 발로 밀고, 난 이 방향으로 몸을 끌어볼게."온 힘을 다해 두 사람이 서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임은 더뎠지만 꾸준했다. 한편, 방 밖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는 점점 드물어지고 있었다. 희망은 희미했지만, 그들을 버티게 하기에는 충분했다.도시의 반대편, 비즈니스 지구의 한 우아한 레스토랑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창가 쪽 VIP 테이블에 사무엘과 레베카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건설사의 중요 클라이언트 두 명이 이미 그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미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사무엘은 집중한 채 차분했고, 레베카는 그의 곁에 앉아 가끔 핵심 포인트를 기록하고 추가 정보를 제공했다.거의 한 시간이 지나 마침내 논의가 마무리되었다."그럼 다음 주 계약서 수정본을 기다리겠습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클라이언트 중 한 명이 말했다.사무엘이 그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물론입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클라이언트들이 떠난 뒤, 레베카가 깊은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끝났네요."사무엘이 고개를 돌렸다. "미안한데, 금방 올게."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레베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오세요."사무엘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남자가 레베카의 자리로 다가왔다. 키가 크고 어두운 정차림에 머리칼이 살짝 흐트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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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장아침 7시, 사무엘의 아파트는 조용했다. 사무엘이 막 샤워를 마치고 셔츠를 입으려던 참에 초인종이 울렸다. 그가 현관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어머니? 이른 아침에 무슨 일이세요?! 무슨 일 있어요?!""너한테 할 얘기가 있어서 왔다." 와나 여사가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여사가 소파에 앉자 사무엘도 그 뒤를 따랐다."말씀하세요, 어머니!"와나 여사가 진지한 눈빛으로 아들을 올려다보았다. "사무엘, 너 나이가 이제 몇이냐?"사무엘이 가늘게 눈을 떴다. "5년 전보다 5살 더 먹었죠, 어머니." 반쯤 농담 섞인 투로 사무엘이 대답했다.하지만 와나 여사는 웃지 않았다. "엄마 지금 진지하다. 너 서른한 살이야, 사무엘.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아내와 함께, 가정을 꾸리고 말이야. 엄마도 손주 보고 싶고."사무엘이 입을 다물었다. 그는 말없이 찻잔만 응시했다."또 노라 얘기에요?" 사무엘이 낮게 물었다."그래. 노라는 좋은 여자야, 사무엘. 참을성도 많고, 묵묵히 너를 기다려줬잖아. 네가랑 결혼해 주기를 바라면서 너무 오랜 시간 기다렸어."사무엘이 깊은숨을 내쉬었다. "어머니, 전 이제 노라를 사랑하지 않아요. 그 마음이 언제 식었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녀에게 잘해주고, 원하는 걸 들어주는 건—배우가 되게 도와준 것까지 포함해서—그냥 옛날에 제 목숨을 두 번이나 구해준 은혜를 갚는 방식일 뿐이에요. 그녀와 결혼한다고 해도, 확신이 서지 않아요.""왜 확신이 서지 않는 거냐?" 와나 여사가 말을 가로챘다. "설마 아직도 레베카를 마음에 두고 있는 거니?"사무엘은 대답하지 않았다.와나 여사가 아들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사무엘, 레베카가 어떤 애인지 너도 알잖니. 걔는 너를 갖고 놀았어. 곧 리암과 결혼할 거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잖아. 게다가 아직도 윌슨 부인 신분인데 다른 남자의 아이까지 가졌고."사무엘이 미간을 찌푸렸다. "알아요, 어머니. 하지만 왠지 모르게, 레베카를 놓아주기가 힘들어요. 레베카를 미워하면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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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장그날 오후, 도심 속 야외 카페의 분위기는 활기로 가득했다. 날씨가 꽤 쌀쌀해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에 완벽한 날이었다.레베카는 리암, 레노와 함께 테이블 중 한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세 사람은 편안한 모습으로 나지막이 웃음을 터뜨리며 주말을 즐겼다. 레노는 그들 사이에 앉아 숟가락을 가지고 놀았고, 다섯 살 아이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 묻어났다."레노, 스파게티 먹을래, 아니면 치킨 윙 먹을래?" 메뉴판을 펼치며 리암이 물었다."스파게티!" 레노가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레베카가 미소 지었다. "너 매번 그것만 먹는데 질리지도 않니?""아니요, 엄마! 레노 이거 진짜 좋아요!" 탁자를 탕탕 치며 아이가 대답했다.잠시 후, 웨이터가 주문을 받으러 다가왔다. 주문을 마친 뒤 리암은 편안하게 등받이에 기대며 레베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오늘따라 좀 편안해 보이네." 리암이 부드럽게 말했다.레베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레노랑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기뻐요."리암이 그녀를 깊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네가 이렇게 웃는 모습을 보니까 나도 좋네."레베카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눈빛에는 미묘한 불안감이 스쳤지만, 그녀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즐기려고 애썼다. 여전히 리암이 자기 어머니를 숨긴 것 때문에 속은 상했지만 말이다.음료를 막 즐기기 시작할 무렵, 카페 입구 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우아한 크림색 드레스를 차려입은 여자가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자의 손을 잡고 들어섰다. 노라와 사무엘이었다.레베카는 순간 흠칫했으나 재빨리 시선을 거두었다. 리암도 그들 쪽을 바라보았지만 평정심을 유지했다. 한편 레노는 오렌지 주스를 마시느라 바빠서 주변에 흐르기 시작한 긴장감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사무엘은 그들을 보자마자 걸음을 멈췄다. 그의 시선은 리암, 레노와 함께 웃고 있는 레베카에게 곧바로 꽂혔다. 리암이 작은 숟가락으로 레노에게 밥을 떠먹여 준 뒤 장난스럽게 레베카의 입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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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장레베카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씩씩한 표정을 지으며 테이블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에는 감출 수 없는 슬픔이 서려 있었다. 레노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기 전까지 그녀의 시선은 잠시 허공을 맴돌았다."엄마… 엄마, 왜 그래요?" 레노가 의아한 표정으로 엄마를 올려다보며 물었다.레베카는 옅게 미소 지으며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가. 엄마가 그냥 좀 피곤해서 그래."리암이 레베카를 빤히 바라보더니, 노라와 함께 앉아 있는 사무엘을 잠시 힐끗 보았다. 사무엘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그의 시선은 멀리서 레베카의 움직임을 줄곧 쫓고 있었다."먼저 집에 가고 싶으면, 내가 레노 데리고 나가서 좀 놀다 올까?" 리암이 부드럽게 제안했다.레베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그냥 여기 있을게요. 게다가 레노도 지금 재미있어하잖아요."레노가 스파게티를 먹으며 다시 해맑게 웃었다. 하지만 아이의 작은 눈동자는 가끔씩 엄마의 지친 얼굴을 향했다.사무엘은 건너편 테이블에서 여전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잠시 눈을 감자 과거의 기억들이 물밀 듯이 들이닥쳤다.6년 전, 그날도 사무엘이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였다. 아파트 문이 천천히 열렸다. 당시 그의 아내였던 레베카가 서두르는 발걸음으로 그를 마중 나왔다."사무엘, 굳이 시중들 필요 없다고 하셨죠. 하지만 남편을 모른 척하고는 도저히 마음이 편해서요." 레베카가 사무엘의 구두를 벗기고 실내화를 내어주며 말했다."넌 그냥 대용품일 뿐이야, 그걸 잊지 마!" 사무엘은 지친 나머지 그저 한숨을 내쉬며 논쟁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레베카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가방을 받아 들며 그의 뺨에 짧게 입을 맞췄다."레베카…" 사무엘이 귀찮은 듯 웅얼거렸다. "당신도 오늘 일했잖아. 우리 둘 다 피곤한데, 굳이 안 그래도 돼.""그래도 집에선 제가 여전히 당신 아내인걸요." 레베카가 부드럽게 대답했다. "제 본분은 여전히 당신을 보살피는 거예요.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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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장레베카와 리암, 그리고 레노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 뒤 사무엘은 다시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그는 텅 빈 잔을 멍하니 응시하며 침묵 속에 잠겼다. 슬픔이 서린 그의 눈동자 속에서 마음은 과거로, 레베카가 여전히 그의 아내였던 시간으로 표류하고 있었다.그는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동안 애써 억눌러왔던 모든 기억이 하나둘씩 수면 위로 떠올랐다.살을 에는 듯한 추운 밤이었다. 가랑비가 아파트 창문을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사무엘은 열이 끓는 이마와 무기력한 몸, 불에 타는 듯한 목구멍을 안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는 누군가 자신을 보살피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너무 번거로운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늘 그렇듯, 레베카는 사무엘의 거절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내가 말했지, 보살핌 같은 거 필요 없다고." 레베카가 죽 그릇과 뜨거운 물이 든 보온병을 들고 들어오자 사무엘이 쏘아붙였다.레베카는 차분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고열이에요. 그냥 두면 더 심해질 거예요."사무엘은 고개를 돌려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난 애가 아니야."레베카는 침대 끝에 걸터앉아 보온병 뚜껑을 열고 컵에 생강차를 따랐다. 그러고는 그에게 건넸다. "이거 먼저 마셔요. 그러고 나서 죽 먹고요.""레베카—""사무엘." 레베카가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회사에선 당신이 제 상사지만, 집에선 당신은 제 남편이에요. 당신이 아픈 거 보고 싶지 않아요."사무엘이 화가 난 듯 그녀를 쏘아보았지만,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레베카가 얼마나 고집스러운지, 한번 마음먹으면 꺾을 수 없다는 걸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사무엘은 컵을 받아 들고 천천히 차를 마셨다. 온기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며 통증이 조금은 가시는 듯했다.한 시간이 흘렀다. 사무엘은 여전히 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열은 좀처럼 내리지 않았다. 레베카는 침대 곁을 지키며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레베카, 나 혼자 할 수 있어.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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