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ício / 끝내 닿지 못한 마음 / Capítulo 1 - Capítulo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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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폐하께서는 부디 저와 임지영이 파혼한 일을 당분간 비밀로 해 주시옵소서.” 황제는 한숨을 내쉬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짐도 이제 늙었으니, 너희 젊은이들의 일에는 더는 관여하지 않으마.”조민소는 묵묵히 예를 올리고 대전을 나섰다.‘마음이 그토록 식지 않았다면, 어찌 승전하여 돌아온 바로 그날 다시 변방으로 떠나기를 청했겠는가?’대전 밖으로 나오자 찬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문득 뺨이 서늘해 손을 들어 훔치고서야 조민소는 자신도 모르는 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군영에서 보낸 지난 삼 년 동안 단 한 번도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다.칼날이 살을 꿰뚫고 심장 바로 앞까지 파고들었을 때조차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참아 내지 못했다.조민소는 가슴속에 차오르는 씁쓸함을 애써 눌러 삼키며 황궁을 나섰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서야 장군부 앞에 다다랐다.장군부에는 등불이 환히 밝혀져 있었고, 곳곳에 붉은 비단이 둘러져 온통 경사스러운 분위기였다.하지만 이 떠들썩한 잔치는 조민소의 개선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장군부의 둘째 도련님 조이진의 탄일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다.떠들썩하게 웃고 즐기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조민소의 머릿속에 문득 지난날의 일들이 하나둘 떠올랐다.조이진의 본래 이름은 이진이었다.사 년 전, 노름에 빠진 아버지가 남긴 빚을 갚기 위해 거리에서 제 몸을 팔려던 참이었다.마침 지나가던 한량 하나가 은 한 냥에 이진을 사 가려 하자, 조민소는 은 열 냥을 내어 그의 아버지가 진 빚을 대신 갚아 주었다.조민소가 그대로 자리를 뜨려 하자 이진은 다급히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매달렸다. “도련님, 부디 저를 거두어 주십시오. 이제 집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도련님 곁에서 시중을 들며 밥 한술만 얻어먹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조민소는 한숨을 내쉬었다. 본래 남의 딱한 사정을 외면하지 못하는 성정이었던 터라, 결국 이진을 집으로 데려가 몸종으로 두고 곁을 시중들게 했다.이진은 얼굴이 단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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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조민소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떴다.조정의 법도에 따르면 혼인은 일부일처가 원칙이었다.다만 여인이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사내를 맞아들이려 할 때는 황제의 윤허를 얻어 평부를 따로 둘 수 있었다.조민소는 자신이 떠나 있던 사이 모두의 마음속에서 조이진의 자리가 이토록 커졌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김선희는 조민소의 표정이 굳자 다급히 달랬다. “괜한 걱정은 하지 마라. 너와 지영이의 혼약은 여전히 유효하니, 네가 지영이의 부군이란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형제가 함께 지영이를 보살피면 서로 의지하며 지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임지영도 앞으로 다가와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보탰다. “오라버니, 오라버니와 이진이가 모두 제 부군이 되는 것이니, 결국 한집안이 더욱 돈독해지는 셈이지요.”조민소는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저 모든 것이 한없이 우스울 뿐이었다.잠시 후 그는 임지영을 임지영을 바라보다가 품속에서 옥패를 꺼내 들고 물었다. “내가 출정하던 날, 네가 내게 했던 말을 기억하느냐?”임지영은 순간 흠칫하며 옥패를 바라보았다.그러자 문득 삼 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그날 임지영은 손수 동심결 옥패를 조민소의 허리에 매어 주며 진심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오라버니, 이 옥패에 제 마음을 담았습니다. 오라버니께서 무사히 무사히 개선하시면 그때 우리 혼례를 올려요.”“하늘에 맹세합니다. 평생 오라버니 한 사람만 마음에 품겠습니다. 다른 부군을 들이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조민소의 말에 임지영은 순간 마음에 찔린 듯 눈길을 돌렸다.“오라버니, 전 여전히 오라버니를 연모하고 있습니다. 또한 오라버니와 혼인하겠다는 마음도 변하지 않았습니다.”조민소는 헛웃음을 흘리더니 손에 들고 있던 옥패를 놓아 버렸다.쨍그랑. 옥패는 바닥에 떨어지며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다.마치 오래전부터 조각나 있던 조민소의 마음처럼.“이 옥패가 산산이 깨졌듯, 우리 인연도 오늘로 끝내자꾸나.”임지영은 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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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조민소는 차갑고 눅눅한 나무 침상에 누워 한숨도 이루지 못한 채 밤을 지새웠다.이튿날 아침 일찍, 김선희와 조이진이 조민소의 방문을 두드렸다.조이진의 몸에는 낯익은 장포가 걸쳐져 있었다. 조민소가 예전에 가장 아끼던 최고급 비단으로 지은 옷이었다.금빛 구름무늬가 유려하게 이어진 장포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옷자락이 가볍게 나부껴 조이진의 단정한 풍모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그 장포는 조민소가 성년이 되던 해, 어머니가 생일 선물로 손수 마련해 준 것이었다.그런데 지금은 조이진의 몸에 걸쳐져 있었다.조이진은 옷이 든 보따리 하나를 들고 와 조민소에게 내밀었다. “형님, 형님이 돌아오신 뒤 아직 어머니께서 새 옷을 마련해 드리지 못하셨으니, 괜찮으시다면 우선 제 옷이라도 입으십시오.”보따리를 열어 보니 그 안에는 전부 낡고 유행이 한참 지난 옷뿐이었다.김선희는 미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 “민소야, 네가 돌아온다고 미리 기별도 하지 않았으니, 내가 옷을 준비할 겨를이 없었다. 우선 이것들이라도 먼저 입거라.”조민소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팔뚝 위로 핏줄이 불거졌다.삼 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건만 누구 하나 걱정해 주는 이는 없었다. 살뜰히 챙겨 주기는커녕, 번번이 가슴에 못을 박을 뿐이었다.조민소는 조이진이 가져온 낡은 옷가지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전장에서 입던 수수한 평복으로 갈아입고 흐트러진 머리를 단정히 묶은 뒤 대청으로 향했다.그때 김선희가 뒤늦게 조민소의 뺨에 난 칼자국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민소야, 얼굴의 그 상처는 어찌 된 것이냐?”한때 기개 넘치던 얼굴에는 이제 깊은 칼자국 하나가 선명하게 자리하고 있었다.임지영은 그 흉터를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 모습을 보자 조민소는 문득 어제 개선을 앞두고 처음 거울을 들여다보았던 일이 떠올랐다. “오 어멈, 내 얼굴의 이 흉터가 그리 흉해 보이느냐?”그러자 오 어멈이 웃으며 말했다.“장군님께서는 본디 늠름하고 위풍당당하신 분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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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조민소는 밤새 한숨도 이루지 못했다. 눈을 감기만 하면 어린 시절 임지영과 함께했던 기억이 자꾸만 떠올랐다.여덟 살 때, 임지영은 붉은 면사포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어른이 되면 자신에게 시집오겠다고 했었다.그가 관례(冠禮)를 올릴 때, 그녀는 옥잠을 선물하며 부부의 연을 맺어 백발이 될 때까지 함께하겠다고 했었다.그러나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 모든 약조는 한낱 헛된 말에 불과했다.날이 밝고 나서야 조민소는 가까스로 잠이 들었다. 하지만 밤새 울어 붉어진 눈가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민소는 다시 대청으로 불려 갔다.그곳에는 분홍빛 치마저고리로 곱게 단장한 임지영이 기다리고 있었다.살짝 치켜 올라간 눈매에는 은근한 교태가 어렸고, 화사하게 차려입은 모습은 한층 더 요염해 보였다.하지만 그런 임지영을 보고도 조민소의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한편 조이진은 한 손으로 자연스럽게 임지영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달빛처럼 희고 고운 비단 장포를 걸친 조이진은 검은 머리를 단정히 틀어 올린 채, 온화한 귀공자의 기품 속에 자유분방한 멋을 풍기고 있었다.한껏 들떠 보이던 임지영은 조민소에게 다가와 손을 잡으며 환하게 웃었다. “오라버니, 이제 오라버니와 이진이는 곧 제 부군이 될 텐데, 오늘 함께 혼례복을 고르러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조민소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손을 빼냈다.“둘이 다녀오너라. 나는 몸이 좋지 않아 쉬고 싶구나.”그러자 임지영은 눈살을 찌푸리며 불만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우리 혼례가 이제 한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어찌 이토록 무심하실 수 있습니까?”조민소는 속으로 냉소했다.이미 자신의 군공을 내세워 폐하께 파혼을 청했고, 윤허까지 받아 둔 터였다.이제 나흘만 지나면 이곳을 떠난다. 그때 임지영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문득 궁금해졌다.그때 조이진도 다가와 거들었다.“형님, 나흘 뒤면 저와 누님의 혼례입니다. 함께 가셔서 어떤 혼례복이 어울릴지 골라 주시면 어떤지요.”조민소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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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임지영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도 아랑곳하지 않고 맨손을 뻗어, 한쪽 귀퉁이만 남은 서신을 꺼냈다.속상한 기색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오라버니, 어째서 제가 드린 것들을 전부 태우시는 겁니까?”조민소는 옅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래 두어 눅눅해졌기에 그냥 태운 것이다. 혼인하고 나면 새것으로 다시 주면 되지 않느냐?”임지영은 한숨을 내쉬더니 조민소의 품으로 파고들었다.“오라버니 말씀이 맞습니다. 혼인하고 나면 제가 새것으로 선물해 드리겠습니다.”“오라버니가 돌아오신 뒤로 제가 너무 제가 너무 소홀했습니다. 혼인하고 나면 손수 음식도 지어 드리겠습니다.”그 다정한 말을 듣고도 조민소의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임지영을 품에서 떼어 내며 말했다. “피곤하구나. 이만 돌아가 쉬고 싶다.”임지영은 조민소의 손을 붙잡았다. 손등에 남은 흉터를 가만히 쓸어 보며 안쓰러운 듯 말했다. “오라버니, 내일 연등 축제에 저와 함께 나가 보시겠습니까? 어릴 적에는 연등 구경을 무척 좋아하셨잖아요.”조민소는 잠시 멈칫했다. 이번에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테니, 마지막으로 한 번쯤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이내 조민소가 고개를 끄덕이자 임지영은 그제야 안심한 듯 숨을 내쉬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조민소가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모조리 태우는 모습을 보며, 금방이라도 영영 떠나 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하지만 이제 생각해 보니, 자신이 괜한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한 달 뒤면 혼례를 올릴 텐데, 설마 정말 떠나기야 하겠어?’‘그토록 오랫동안 나와 혼인하기를 바라 왔으니, 나를 두고 떠날 리가 없지.’임지영은 안심한 듯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고 조이진의 방으로 향했다...다음 날, 조민소는 몸놀림이 편한 차림으로 갈아입고 긴 머리도 단정히 묶었다.늠름하고 기개 넘치는 모습에 임지영은 자신도 모르게 넋을 잃었다.조이진은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치미는 질투를 눌러 삼키며 임지영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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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몸종은 그 말을 듣고 벌벌 떨며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했다.“조금 전 둘째 도련님께서 이 방에 다녀가셨습니다. 그러고는 사람들을 시켜 위패를 전부 가져가게 하셨습니다.”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조민소는 몸을 돌려 성큼성큼 자리를 떠났다.조이진의 방에 채 들어서기도 전에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귀한 남목으로 고작 위패나 만들다니, 정말 아깝기 짝이 없군.”“황실과 귀족이나 쓰는 목재를 이름 없는 병사들의 위패에 쓰다니. 가당키나 한가?”순간 분노가 치밀어 오른 조민소는 문을 걷어차고 안으로 들어갔다.방 안으로 들어선 순간 눈앞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정성껏 만든 위패들이 하나같이 화로 속에서 불타고 있었다.조이진은 느닷없이 들이닥친 조민소를 보고 새파랗게 질린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조민소는 조이진의 멱살을 움켜쥐고 눈을 부릅떴다.“감히 내 물건에 손을 대?”조이진은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형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다시는 형님 물건에 손대지 않겠습니다.”조민소는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치솟은 분노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조민소는 그대로 조이진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이 한 대는 죽은 이들의 넋을 모욕하고 함부로 지껄인 죗값이다!”세찬 손길에 조이진의 얼굴이 홱 돌아갔고, 맞은 뺨은 순식간에 부어올랐다.조민소는 조이진의 얼굴을 다시 돌려세우고 또 한 차례 뺨을 내리쳤다.“이 한 대는 은혜를 입고도 고마운 줄 모른 죗값이다!”조이진의 입가에 피가 번지자 조민소는 그를 거칠게 밀쳐 바닥에 쓰러뜨렸다.더는 상대하고 싶지 않아 돌아서려던 순간, 갑자기 누군가가 세차게 부딪쳐 왔다.미처 피하지 못한 조민소는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다.넘어지는 충격에 손에 남아 있던 오래된 상처가 다시 욱신거리기 시작했다.그때 임지영이 다급히 달려왔다.그녀는 조이진을 일으켜 세운 뒤, 입가에 흐르는 피를 보고 몹시 안타까워했다.조이진은 머리칼이 흐트러진 채 눈물을 글썽이며 임지영을 올려다보았다. “누님,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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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조민소가 고개를 들어 옥패를 바라보는 순간,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그는 다급히 달려들며 말했다.“이리 내놓거라.”임지영은 그런 조민소를 보며 얼굴빛이 극도로 어두워지더니, 몸을 살짝 피하며 말했다.“이렇게 애지중지하는 걸 보니, 어느 여인이 준 것이라도 되는 겁니까?”“돌아오신 뒤로 줄곧 저를 차갑게 대하시더니, 혹 밖에 따로 마음에 둔 여인이라도 생기신 겁니까?”“짝!”조민소는 그대로 임지영의 뺨을 후려쳤다. “내 목숨을 구해 준 분을 함부로 모욕하지 말거라!”‘어찌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함부로 입에 담는단 말인가.’임지영이 발끈해 입을 열려던 순간, 조이진이 황급히 달려왔다.조이진은 임지영의 뺨을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아픈 곳을 달래듯 살살 불어 주었다. “형님, 그래도 누님은 장차 형님의 부인이 되실 분입니다. 어찌 이러실 수 있습니까?”“형님께서 돌아오신 뒤로 저희는 줄곧 진심으로 대해 드렸는데, 어찌 사정도 따져 보지 않고 손부터 대십니까?”조이진의 말이 끝나자 임지영은 더욱 화가 났다. “이진이 말이 맞습니다. 아직 저와 혼례도 올리지 않았는데 다른 여인에게 받은 옥패를 품고 계시다니.”“누가 압니까? 이미 그 여인을 밖에 두고 첩으로 삼은 것일지도!”조민소는 두 눈을 크게 떴다.임지영이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후벼 팠다. 조민소의 얼굴은 점점 핏기를 잃어 갔다.끝내 참지 못한 조민소는 붉어진 눈으로 한마디 한마디 힘겹게 물었다. “네 눈에는 내가... 정녕 그런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냐?”눈물을 머금은 조민소를 보자 임지영의 가슴이 순간 아려 왔다. 분노는 조금 누그러졌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 “이미 이렇게 된 이상, 이 옥패는 없애는 편이 낫겠습니다. 그래야 우리 사이에도 더는 앙금이 남지 않을 테니까요.”임지영은 말을 마치자마자 옥패를 바닥에 힘껏 내던졌다. “안 돼!”조민소가 손을 뻗었지만 이미 늦었다. 옥패는 바닥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조민소는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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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조민소는 내일이면 이곳을 떠난다는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저릿해졌다.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원망만 남기고 싶지는 않아 애써 미소를 지으며, 남은 시간만큼은 가족들과 함께 보내기로 했다.하지만 대청으로 들어서려던 순간, 갑자기 눈앞으로 하얀 물체 하나가 날아들었다.미처 피할 새도 없이 찻잔이 이마에 부딪혔고, 붉게 부어오른 이마를 감싸 쥔 채서야 그것이 깨진 하얀 찻잔임을 알아차렸다.고개를 들자 분노로 굳은 부모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그 곁에는 조이진과 임지영이 나란히 앉아 손을 맞잡은 채 조민소를 바라보고 있었다.홀로 서 있는 조민소의 모습과는 너무나 선명한 대비였다.이윽고 아버지 조성원이 잔뜩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 못난 자식. 집에 돌아온 뒤로 말썽만 일으키는구나. 아우에게 손을 대더니 이제는 부인이 될 지영이까지 때려?”“전장에서 삼 년을 보내더니 기본적인 예의마저 잊어버린 것이냐?”조민소의 마음이 차갑게 가라앉았다.부모님께서 평안사(平安寺)에서 한달음에 돌아온 이유도 자신을 걱정해서가 아니었다. 조이진이 당했다는 말을 듣고 그의 편을 들어 주러 온 것이었다.김선희도 가슴을 움켜쥐며 나무랐다. “이진이는 네 아우다. 어찌 그 아이에게 그토록 모질게 대하는 것이냐?”“어서 이진이에게 사과하거라.”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조민소는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띤 조이진을 바라보며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알고 계셨습니까? 저 아이가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장병들의 위패를 태웠다는 사실을요.”그러자 조성원과 김선희는 순간 말문이 막혀 서로를 바라보았다.조이진이 괴롭힘을 당했다는 말에 다급히 돌아왔을 뿐, 앞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그러나 조성원은 이내 냉랭하게 말했다. “그렇다 해도 사람을 그 지경으로 때려서는 안 되지. 이진이는 곧 혼례를 앞두고 있는데.”조민소는 그 말을 듣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러자 조성원은 그 모습에 더욱 화가 나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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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그제야 조민소는 마침내 반응을 보였다.천천히 바닥을 짚고 일어선 조민소의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조이진이 자신을 모욕하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하지만 한때 누구보다 자신을 아껴 주던 친아버지마저 차라리 전장에서 죽었어야 했다고 말할 줄은 몰랐다.조민소는 고개를 숙인 채 나직이 말했다. “그토록 바라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는 곧 다시 전장으로 돌아갈 것입니다.”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는 조민소의 모습에 조성원은 더욱 화가 났다. 이내 차갑게 코웃음을 친 뒤 소매를 털고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김선희는 눈물을 훔치며 입을 열었다. “민소야, 네 아버지도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어찌 아버지께 사과 한마디 하지 못하느냐?”“이진이는 네 아우다. 허니 이제 그만 괴롭히거라.”멀어지는 부모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조민소가 크게 외쳤다. “아버지! 어머니!”두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조민소는 빗속에 무릎을 꿇은 채 부모를 향해 세 번 큰절을 올렸다.이제 마음에는 아무런 미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첫 번째 절은 저를 낳아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두 번째 절은 저를 길러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그리고 마지막 절은... 불효한 아들이 오늘 두 분께 마지막 인사를 올리는 것입니다. 다시는 만날 날이 없으니, 부디 평안하십시오.’쏟아지는 빗속에 무릎을 꿇은 조민소의 눈에는 슬픔도 원망도 없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조성원과 김선희의 가슴이 순간 철렁 내려앉았다.왠지 이번에 돌아서면 정말 다시는 조민소를 볼 수 없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김선희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려는데 조이진이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날이 춥습니다. 그만 안으로 들어가시지요.”김선희는 잠시 망설이다 결국 발걸음을 멈췄다. 이내 모두가 조이진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홀로 남은 조민소는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끝까지 버티려 했지만,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얼마 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별채였다. 곁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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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혼례 의식이 끝나기 무섭게 조이진은 하객들의 술잔을 대충 받아 넘기고 신방으로 향했다.문을 열고 들어서자 침상에 앉아 기다리는 임지영이 보였다. 그 순간 조이진의 입가에 참을 수 없는 웃음이 번졌다.이날을 위해 오 년을 기다렸다. 온갖 수단을 써 가며 바라 온 끝에 마침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은 것이다.붉은 촛불이 일렁이는 신방 안에는 혼례의 들뜬 기운이 가득했다.흥을 돋우는 은은한 향이 번지는 가운데 조이진은 임지영의 얼굴을 가린 면사를 걷어 올렸다.임지영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눈빛은 몽롱하게 흐려져 있었다. “오라버니, 드디어 우리가 혼례를 올렸습니다. 십삼 년이란 시간이 지나서야, 우리가 마침내 부부가 되었군요...”조이진의 눈빛에 순간 원망이 스쳤지만, 곧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누님, 저입니다. 이진이입니다.”그제야 임지영은 조금 정신을 차리더니, 눈가에 머물던 웃음도 조금씩 사라졌다.조이진이 합환주(合歡酒)를 들고 다가오자, 임지영은 눈살을 찌푸리며 밀어냈다.“합환주는 됐다. 밤도 깊었으니 이제 쉬자꾸나.”어째서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마음속은 자꾸만 불안했다.앞서 모두가 두 사람이 천생연분이라며 축하할 때는 기쁨에 취해 있었다.그런데 막상 신방에 조이진과 단둘이 남고 보니, 그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조이진은 조민소와 달랐다. 그의 웃음에는 언제나 상대의 비위를 맞추려는 기색이 배어 있었다.반면 조민소의 웃음은 늘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했다.조이진의 표정이 잠시 굳었지만, 곧 불쾌한 기색을 감추었다.합환주 안에는 이미 미약(媚藥)을 타 두었건만 임지영은 술을 마시려 하지 않았다.더구나 오늘 밤 자신과 잠자리를 함께할 마음조차 없는 듯했다.조이진은 치밀어 오르는 욕망을 가까스로 눌러 삼키고 침상에 올랐다.반면 임지영은 이내 깊은 잠에 빠졌다.조이진은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파고들어 손바닥이 아플 정도였다.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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