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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초하
막 전화를 끊었을 때, 레스토랑 입구 쪽에서 매니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교수님, 예약하신 자리 준비됐어요. 이쪽으로 오시죠.”

나는 ‘이 교수님’이라는 호칭에 유난히 예민했기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정말 이희연이었다.

그 옆에는 유한천이 있었고 두 사람은 나란히 안으로 들어왔다.

이희연은 흰 가운을 벗고 사복을 입고 있었다.

흰 셔츠 소매는 팔뚝까지 걷어 올려져 있었고, 눈가에는 피곤함이 역력했다.

유한천은 이희연의 옆에서 걸으면서 고개를 살짝 돌린 채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한천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이희연이 피식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가운데가 뭔가에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예전에는 이희연이 퇴근해 집에 오면, 나는 늘 붙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하루 동안 보고 들은 새로운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들려주고 싶어 했지만, 이희연의 반응은 늘 시큰둥했다.

웃는 건 고사하고 응하고 한마디만 해 줘도 다행일 정도였다.

나는 그런 이희연 대신 변명까지 만들어 줬다.

일이 너무 힘들어서 내 이야기에 반응해 줄 기운조차 없는 거라고.

근데 이제야 알았다.

이희연이 피곤해도 웃을 줄 알지만, 단지 내 앞에서 웃지 않았을 뿐이었다는 사실을.

“어? 도겸 씨?”

나를 먼저 발견한 건 유한천이었다.

유한천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며 적당히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여기 어떻게 계세요?”

내가 대답하지 않자 유한천은 혼자서 설명을 이어 갔다.

“오늘 큰 교통사고가 나서 부상자가 정말 많았어요.”

“저랑 선배가 오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바빴거든요. 마지막 수술도 방금 끝났고, 너무 배가 고파서 쓰러질 지경이었어요.”

“그런데 선배가 갑자기 여기 남편분이 좋아하시는 해산물 요리가 있다는 생각이 나셨대요.”

“저를 데리고 와서 먹고, 남편분 것도 하나 포장해 가겠다고 하셨어요.”

말을 마친 유한천은 이희연을 돌아보며 얌전하게 웃었다.

“선배가 남편분을 정말 많이 사랑하시나 봐요. 뭘 하고 있든 계속 생각하시는 걸 보면요.”

“정말 부러워요. 저도 이렇게 사랑해 주는 여자가 있으면 좋겠어요.”

‘나를 사랑한다고? 나를 사랑한다는 사람이 오늘이 우리 결혼기념일이라는 걸 잊을 수 있을까?’

‘나를 사랑한다는 사람이 한밤중에 다른 남자와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을 수 있을까?’

‘나를 사랑한다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이모를 위해 500킬로미터를 달려가 수술까지 해 주면서, 내 아버지의 마지막 희망을 그렇게 날려 버릴 수 있을까?’

나는 유한천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 아내가 저를 사랑하든 말든, 그게 본인이랑 무슨 상관이죠?”

날 선 나의 말에 유한천의 얼굴에 걸려 있던 미소는 서서히 사라지더니 몸까지 잔뜩 굳어졌다.

“죄송해요. 혹시 제가 말실수를 했나요? 저는 정말 좋은 뜻으로 한 말이었는데...”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심한 말 한마디 하지 않았는데도 이희연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유한천의 앞을 막았다.

내 시야에서 유한천을 가리는 듯한 그 보호적인 행동이 날 칼로 쿡쿡 찌르는 것처럼 아프게 만들었다.

“당신, 한천이 악의가 없다는 거 알면서 왜 꼭 그렇게 말해?”

이희연의 목소리에는 화가 억눌려 있었다.

“오늘 부상자가 얼마나 많았는지 알아? 다들 죽을힘을 다해서 일했어. 수간호사인 한천이도 하루 종일 밥도 못 먹고 뛰어다녔어. 괜히 억지 부리지 마.”

주변 사람들까지 거들었다.

“의사랑 간호사들은 정말 힘들지.”

“수술 끝나고도 남편 먹을 것까지 챙기려고 했다는데, 그 정도면 잘하는 거 아닌가?”

“어떤 남자들은 통제욕이 너무 심해. 저런 강압적인 남자는 진짜 무섭다니까.”

‘그래. 다 좋은 사람들이네. 나만 나쁜 사람이야.’

나는 더는 얽히고 싶지 않아서 몸을 돌려 나가려 했다.

그리고 이희연의 곁을 지나려는 순간, 내 손목을 붙잡았다.

익숙한 체온에 잠깐 망설였지만, 곧 이희연의 차가운 말이 들려왔다.

“먼저 한천이한테 사과해.”

생각지도 못한 멘트에 난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뭐?”

“방금 그 말 때문에 한천이 난처해졌잖아. 사과해.”

나는 유한천을 바라봤다.

유한천은 이희연의 뒤에 서서 눈시울을 붉힌 채, 겁먹은 사슴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희연은 그런 유한천의 앞을 막아선 채, 나를 무슨 무서운 괴물이라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당신이 말해 봐. 내가 방금 한 말 중에 뭐가 틀렸는데?”

“우리 부부 사이의 일이 당신 동료랑 무슨 상관이야?”

‘동료’라는 두 글자에 유난히 힘을 주자, 이희연은 말문이 막혔는지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이희연의 손을 뿌리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레스토랑을 나왔다.

밤공기의 서늘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자, 가슴속에 쌓였던 분노도 함께 흩어지는 것 같았다.

그제야 문득 한 발만 내딛고 나오면, 나를 붙잡아 둘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이혼 합의서를 출력했다.

다음 주 토요일 전에는 모든 것이 끝날 거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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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때 너를 위해 스스로를 가뒀다   제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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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때 너를 위해 스스로를 가뒀다   제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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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때 너를 위해 스스로를 가뒀다   제15화

    전화를 받은 나는 밤새 차를 몰아 고향으로 돌아갔다.병원 복도에서는 어머니가 여전히 응급처치를 받고 있었고, 의사의 표정은 무거웠다.“환자 상태가 매우 위중해요. 당장 수술해야 해야 하지만 이 병원에서는 수술이 어려워요. 지금 큰 병원으로 전원하는 게 좋아요.”온몸이 차갑게 식었고 마치 3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아버지가 병상에 누워 있었을 때도 의사는 내게 똑같은 말을 했다.그때 나는 아버지를 잃었다.그러면 이번에는 어머니까지 잃게 되는 걸까?다리에 힘이 풀려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고 그 자리에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바로 그때, 이희연이 도착했다.“제가 할게요.”그러자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는데, 다행히 의사가 이희연을 알아봤다.“혹시 이희연 교수님이신가요?”이희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차트 좀 보여 주세요.”불과 몇 분 만에 상태를 확인한 이희연이 판단을 내렸다.“수술할 수 있어요. 최대한 빨리 준비해 주세요. 제가 직접 집도할게요.”수술은 꼬박 8시간 동안 이어졌고,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마침내 수술실 불이 꺼졌다.수술실에서 나온 이희연의 얼굴은 놀랄 만큼 창백했고, 이마에는 땀이 가득 맺혀 있었다.“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어.”밤새 졸이고 있던 마음을 그제야 놓을 수 있었다.나는 이희연의 지친 눈을 바라보고는 잠시 침묵하다 나지막이 말했다.“고마워.”이희연은 그 말에 마치 불에 덴 것처럼 놀라더니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내가 해야 할 일이었어.”어머니가 병실로 옮겨진 뒤에야 나는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다.다음 날 잠에서 깨어난 나는 몇 가지 선물을 준비해 이희연이 묵고 있는 호텔로 향했다.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 이번에는 이희연이 어머니를 살려준 건 사실이었다.그랬기에 그 점은 진심으로 고마웠다.이희연은 내가 준비한 선물 상자를 바라보더니 눈빛이 조금씩 흐려졌다.“여보, 내가 당신한테 빚진 게 많아. 아버님 일은 평생 가도 갚을 수 없을 거야.”

  • 한때 너를 위해 스스로를 가뒀다   제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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