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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os los capítulos de 삼강(三江), 그 등불 아래: Capítulo 61 - Capítulo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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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화: 아버지라 불린 신령 5

부엌으로 돌아오자 휘가 다섯 사람 몫의 수저를 상 위에 놓고 있었다.음식으로 배를 채우지 않는 그도 어느새 자신의 자리를 옥연의 맞은편으로 정해두었다. 상 위의 세 자리는 아직 비어 있었고, 휘의 시선은 그 빈자리를 지나 골방 문에 머물러 있었다."들었습니까.""이 터 안에서 내게 들리지 않는 말은 없다."옥연은 보리밥을 푸고, 장사 끝에 남은 달걀 다섯 알을 하나씩 깨뜨려 물을 조금 섞었다. 소금으로 간한 달걀찜은 전쟁이 멎은 날에만 차릴 수 있는 작은 잔치였다."붙잡지 않는 것이냐.""붙잡고 싶습니다.""그런데도 보내려 하는구나.""제가 외로워서 아이들의 길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부모님을 찾아야 한다면 도울 생각입니다."휘가 국자를 쥔 옥연의 손목을 가볍게 붙잡았다.긴 손가락이 닿은 자리로 차가운 기운이 스몄고, 자꾸만 흔들리던 국자 끝이 멎었다."보고 싶을 것이라 말하는 것은 길을 막는 일이 아니다."옥연은 그의 손을 내려다보았다."도련님도 보고 싶으실 겁니까?""저것들이 사라지면 주막이 조용해질 테니 좋겠구나.""거짓말이 예전보다 더 서투르십니다."휘가 눈썹을 찌푸리는 사이 영희가 대청 끝에 모습을 드러냈다."주모님.""왜 그러니."영희는 손에 쥔 작은 보자기를 만지작거리며 몇 걸음 다가왔다."제가 이제 주모님이라고 안 부르고... 어머니라고 불러도 돼요?"옥연의 손에서 밥주걱이 멎었다.지난 삼 년 동안 아이의 머리를 빗기고 아픈 밤을 지키면서도 재촉할 수 없어 삼킨 호칭이 목 안쪽으로 차올랐다.영희는 대답이 늦어지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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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아버지라 불린 신령 6

막내가 휘의 남색 도포에 달걀 묻은 손을 문질렀다.철수의 눈가가 붉어졌지만 그는 울지 않으려 고개를 깊이 숙였다."그럼... 조금 더 있어도 돼요?""조금으로는 빚을 갚지 못한다. 아주 천천히, 빠짐없이 갚거라."철수의 어깨를 짓누르던 힘이 조금씩 풀렸다.그는 등에 멘 보따리를 내려 문턱 안쪽에 놓았다."남겠습니다. 대신 계속 제 몫은 하겠습니다.""그것이면 된다."휘는 막내를 내려놓고 철수 앞으로 다가갔다.그의 손끝이 소년의 오른쪽 귀 뒤에 남은 흉터를 향하자 푸른빛이 가느다랗게 피어났다."이것도 지워주마."철수가 고개를 피했다."아니요. 이건 남겨주세요.""아프지 않느냐.""가끔 아파요. 그래도 그날 제가 영희랑 막내를 지켰다는 걸 잊고 싶지 않아요."철수는 흉터를 손으로 덮었다."그리고 저희를 찾아온 사람이 있다는 것도 같이 기억하고 싶어요."휘의 손끝에서 피어나던 빛이 사라졌다.그는 소년의 뜻을 꺾지 않고 손을 내려 어깨만 한 번 눌렀다.다음 날 아침, 옥연은 마당에 모인 김 씨와 마을 사람들 앞에서 아이 셋을 제 곁에 세웠다.전쟁 중 부모와 헤어진 아이를 정식으로 거두려면 관청에 신고하고 확인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삼강주막 안에서 누구의 가족인지는 그날 분명히 정할 수 있었다."철수와 영희와 막내를 제 아이로 거두겠습니다."옥연의 목소리가 바람이 잦아든 마당에 곧게 퍼졌다."피를 나눈 사이는 아니지만 삼 년 동안 한솥밥을 먹었고, 함께 일하며 서로의 목숨과 내일을 지켰습니다. 앞으로도 이 아이들이 돌아올 집은 이곳입니다.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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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돌아올 자리 1

- 1964년 4월 (봄 장날을 앞둔 아침) -삼강주막 대청 위로 완행버스의 경적이 길게 지나갔다.예전에는 삿대가 물을 밀어내는 소리로 하루가 열렸으나, 몇 해 전부터는 둑 너머 신작로를 달리는 엔진 소리가 먼저 아침을 깨웠다. 나루로 내려오던 장꾼 가운데 절반은 버스를 탔고, 남은 이들만 봇짐을 진 채 주막 문턱을 넘었다.옥연은 된장을 푼 냉이국을 다섯 그릇에 나누어 담았다.마흔일곱이 된 그녀의 손등에는 푸른 핏줄이 전보다 선명했고, 칼자국과 화상 흔적 사이로 세월이 얇게 겹쳐 있었다. 그래도 국자를 쥔 손놀림만큼은 스무 해 전과 다르지 않았다."철수야, 식기 전에 앉으렴.""한 사람만 더 오면 같이 먹겠습니다."스물여섯이 된 철수는 대청 끝에서 대문을 바라보고 있었다.열두 살 소년의 날카롭던 눈매는 그대로였으나, 마른 어깨는 나룻짐과 장작을 나르며 단단해졌다. 오른쪽 귀 뒤에 남은 흉터는 머리를 짧게 깎을 때마다 드러났고, 그는 그 자리를 굳이 가리지 않았다."아침부터 누구를 기다리는 것이냐."휘가 등불 아래에서 물었다.그는 여전히 서른 안팎의 얼굴이었다. 푸른빛이 도는 긴 머리카락도, 은빛 물결 무늬가 흐르는 남색 도포도 옥연이 처음 보았던 날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철수는 대답 대신 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아무도 아닙니다.""아무도 아닌 자를 기다리느라 국을 식히는구나.""아버지께서도 새벽부터 대문 쪽만 보셨잖아요."휘의 눈썹이 천천히 올라갔다."나는 이 터에 들어오는 기운을 살핀 것이다.""저도 이 집에 들어올 사람을 살피는 중이고요."말을 받아치는 솜씨만큼은 열두 살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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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돌아올 자리 2

영희는 두 번째 봉투를 뜯지 못하고 무릎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스물셋이 된 그녀의 곱슬머리는 단정히 묶여 있었고, 옥연이 낡은 치마를 고쳐 지어준 감색 치마저고리는 다림질한 자국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전쟁 뒤 늦게 학교에 들어간 영희는 또래보다 몇 해 늦게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고, 밤마다 등잔 아래에서 공부한 끝에 대구의 3년제 간호학교 시험을 치렀다."영희야, 왜 열어보지 않니?""떨어졌으면 어머니가 더 속상해하실까 봐요.""네가 속상할 일을 왜 내가 먼저 걱정하니."옥연은 아이의 손에서 봉투를 빼앗지 않았다.영희는 한참 뒤에야 풀칠한 가장자리를 조심스럽게 뜯었다. 종이를 펼친 큰 눈이 첫 줄에서 움직이지 않더니, 이내 입술 사이로 짧은 숨이 빠져나왔다."붙었어요..."목소리는 너무 작아 아궁이 불이 튀는 소리에도 묻힐 것 같았다."어머니... 저 합격했어요."옥연은 국자를 든 채 영희를 바라보았다.기뻐해야 한다는 생각은 분명한데 손이 먼저 그릇 가장자리를 붙들었다. 대구라는 두 글자가 국물 위로 떨어진 기름방울처럼 자꾸만 멀리 번졌다."잘했다."그녀는 겨우 그 말을 꺼내고 영희의 밥 위에 달걀부침 한 조각을 더 올렸다."사람을 살피는 네 눈은 오래전부터 간호원보다 나았으니, 이제 제대로 배우면 되겠구나."영희의 눈가가 붉어졌다."기숙사에 들어가야 한대요. 방학 때는 꼭 올게요.""밥을 거르지 말고, 밤새 공부하지도 마라. 아픈 사람 돌보다 네 몸부터 상하면 안 된다.""아직 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잔소리하세요?""떠난 뒤에는 바로 못 하니까 미리 해두는 거란다."옥연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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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돌아올 자리 3

그날 저녁상에는 흰쌀보다 보리가 더 많은 밥과 냉이된장국, 두부부침과 말린 조기구이가 올랐다.휴전 소식을 들은 날의 달걀찜보다 반찬은 늘었고, 주막은 장날마다 다음 장사 밑천을 남길 만큼 자리를 잡았다. 그렇다고 날마다 고기를 올릴 만큼 넉넉하지는 않았으나, 아이 셋을 떠나보내는 상에 빈 접시는 없었다."저는 첫 월급 받으면 어머니 앞치마부터 사드릴게요."철수가 말했다."앞치마는 아직 멀쩡하다. 네가 쓸 공책이나 사렴.""저는 간호학교에서 배운 걸 편지로 다 써드릴게요."영희가 말을 이었다."글씨가 너무 작으면 도련님께서 못 읽으시니 크게 쓰렴.""내 눈은 인간보다 밝다."휘가 못마땅한 듯 말하자 막내가 조기 살을 발라 그의 사발에 놓았다."저는 편지 대신 문짝 만들어올게요.""너는 먼저 편지부터 쓰는 법을 다시 익혀라.""문짝은 오래 남잖아요.""소식이 없으면 그 문짝을 달 사람이 먼저 사라진 줄 알지 않겠느냐."막내는 휘를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한 달에 한 번 쓸게요.""보름이다.""아까 철수 형은 한 달이라면서요.""너는 철수보다 글을 덜 믿게 하니 두 번 써야 한다."아이들의 웃음이 상 위로 번졌다.옥연은 국을 뜨는 척하며 세 사람의 얼굴을 하나씩 눈에 담았다. 내일이면 비게 될 자리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국자가 같은 그릇을 두 번 채웠다."어머니, 이러다 넘쳐요."영희가 그릇을 들어 올렸다.옥연은 그제야 국자를 멈췄다."마지막이라고... 많이 먹이려 했나 보다.""마지막 아니에요. 방학 때 또 먹을 건데요."영희가 웃었고 철수와 막내도 돌아올 날짜를 앞다투어 말했다.휘는 말없이 그 약속들을 듣다가 빈 사발에 조기 살 한 점을 올렸다. 맛을 느낄 뿐 배가 차지 않는 그가 유난히 천천히 씹는 동안, 등불의 불꽃은 어느 때보다 고르게 타올랐다.다음 날 아침, 세 아이는 신작로에 서는 완행버스를 타기 위해 함께 대문을 나섰다.철수는 예천에서 내리고, 영희는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더 먼 역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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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돌아올 자리 4

첫 편지는 철수에게서 왔다.측량 줄의 눈금을 잘못 읽어 선배에게 하루 종일 다시 배우고, 도면에 먹물을 쏟아 야근했다는 내용이었다. 편지 끝에는 다음번에는 실수하지 않겠다며 주막 터의 경계와 나루 길을 정확히 그려보겠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글씨가 작아졌구나."휘가 옥연의 어깨 너머로 편지를 읽었다."눈은 인간보다 밝다면서요.""읽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라 성의가 줄었다는 뜻이다.""종이를 아끼느라 그런가 봅니다."휘는 코웃음을 치면서도 편지를 다 읽을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영희의 편지는 철수보다 사흘 늦게 도착했다.처음 해부 그림을 보고 밤새 잠들지 못한 일, 붕대를 너무 세게 감아 짝에게 핀잔을 들은 일, 병원 실습실 냄새가 주막 골방과 비슷해 울 뻔했다는 이야기가 가지런한 글씨로 이어졌다.편지 사이에는 말린 토끼풀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어머니가 머리를 빗어주던 날 마당에 피어 있던 것과 닮아서 보냅니다.]옥연이 마지막 문장을 소리 내 읽자 휘는 말없이 토끼풀을 손끝으로 눌렀다.푸른빛이 얇은 잎맥을 훑고 지나가자 바스라질 듯 마른 잎이 제 모양을 되찾았다. 옥연은 그것을 어머니의 집문서와 아이들의 입양 신고서가 든 함 안에 조심스럽게 넣었다.막내의 첫 편지는 종이 절반이 톱밥 자국으로 덮여 있었다.박 목수에게 대팻날을 거꾸로 끼웠다가 종일 놀림을 받은 이야기와, 새로 깎은 숟가락이 너무 얇아 국을 뜨자 부러졌다는 고백이 세 줄뿐이었다."보름에 한 번 쓰라 하였거늘 이것이 편지냐."휘가 편지를 들어 빛에 비춰보았다."뒷면에도 썼을지 모르지요."옥연이 뒤집어보았으나 톱밥만 한 줌 떨어졌다."편지 대신 톱밥을 보냈군요.""문짝을 만들겠다더니 집을 갈아 보내려는 모양이다."휘의 대답에 옥연이 웃었다.그 뒤로 철수와 영희의 편지는 달마다 도착했다.집배원의 자전거 종소리가 둑 아래에서 울리기도 전에 휘는 대문 근처에 서 있었다. 관심 없다는 얼굴로 강물만 바라보다가 봉투가 옥연의 손에 들어오면 어느새 바로 뒤까지 다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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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돌아올 자리 5

- 1964년 8월 (강물이 불어난 날) -철수와 영희의 편지가 두 번씩 도착하는 동안 막내에게서는 소식이 없었다.옥연은 처음에는 일이 바쁜가 보다 여겼다. 보름이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두 달을 넘기자, 대문 밖에서 들리는 낯선 발소리마다 손에 든 일을 멈추게 되었다.비에 젖은 나무꾼 하나가 주막에 들어온 것은 강물이 누런 흙빛으로 불어난 날이었다.그는 상주 쪽 산마을에서 내려왔다며 젖은 버선을 벗었고, 박 목수의 일행도 그 부근에서 집을 짓고 있다는 말을 무심코 꺼냈다."며칠 전 산길이 무너졌다던데 모두 무사합니까?"옥연의 질문에 나무꾼은 젓가락을 멈췄다."사람이 죽었다는 말은 못 들었습니다. 다만 다리가 끊겨 오도 가도 못한다더군요. 목수 하나가 지붕에서 떨어졌다는 소리도 있었고요."그 뒤의 국 맛이 어땠는지 옥연은 기억하지 못했다.손님이 떠나자마자 그녀는 골방에서 짚신과 비옷을 꺼냈다. 강물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보다, 목수 하나라는 말이 먼저 귀 안에서 울렸다."어디로 가려는 것이냐."휘가 대문 앞을 막았다."막내를 데리러 갑니다.""산길이 끊겼다는 말을 듣고도 가겠다고?""그래서 더 가야지요. 다쳤다면 누군가 데려와야 합니다."옥연이 비옷 끈을 묶으려 하자 휘의 손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해가 기울었다. 물이 저렇게 불었는데 네가 어느 길로 갈 수 있느냐.""도련님은 가지 못하시니... 제가 가야 합니다."말이 떨어진 순간 휘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그가 이 터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주막 안에 있을 때에는 누구보다 빠르게 위험을 막았지만, 문턱 밖으로 흩어진 뒤에는 편지 한 장을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옥연은 휘의 눈에서 번지는 붉은 기운을 보고서야 제 말이 어디를 찔렀는지 알아차렸다."미안합니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맞는 말이다... 내가 갈 수 없으니 네가 가야겠지."휘는 손을 놓았으나 대문 앞에서 비키지 않았다."그러나 오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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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돌아올 자리 6

"그 외로움까지... 내가 택한 몫이다."휘가 옥연을 돌아세웠다."네 시간을 멈춰 내 곁에 묶어두지 않겠다. 대신 네가 걷는 동안 한 걸음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 뒤의 일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네가 미리 짊어지지 말라."옥연은 변하지 않는 얼굴을 올려다보았다.휘의 눈에 스민 금빛은 젊은 시절보다 깊었고, 그 빛 안에는 함께 보낸 스물여덟 해가 고스란히 가라앉아 있었다."흰머리가 더 늘어도 뽑지 못하게 하실 겁니까?""전부 헤아릴 것이다.""그 많은 것을 언제 다 세시려고요.""내게는 시간이 많다."휘의 엄지가 옥연의 관자놀이를 천천히 쓸었다.옥연은 우물물에 비친 두 사람을 다시 바라보았다. 흰머리 한 올은 감춰지지 않았고, 그 곁에는 여전히 푸른 눈의 신령이 서 있었다.- 1964년 12월 (첫눈이 내린 날) -첫눈은 아침 장사가 끝난 뒤부터 내렸다.옥연은 아이들이 쓰던 방과 골방에 새 이불을 펴고도 자신이 왜 그런 일을 했는지 휘에게 말하지 않았다. 휘 역시 아궁이 불을 평소보다 오래 살리면서 아무도 돌아온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해가 기울 무렵 대문 밖에서 낯익은 발소리가 한꺼번에 들려왔다.철수가 먼저 문을 열었고 그 뒤로 영희가 눈을 털며 들어왔다. 두 사람의 어깨에는 봄보다 무거운 가방이 걸려 있었지만 얼굴은 떠나던 날보다 밝았다."다녀왔습니다, 어머니."옥연은 대답 대신 두 아이의 볼과 손을 차례로 만졌다."왜 말도 없이 왔니. 눈길이 미끄러운데.""말하면 어머니가 새벽부터 상을 차리실까 봐요."영희가 웃으며 품에서 소독약과 새 붕대를 꺼냈다."제가 모은 돈으로 샀어요. 골방에 두고 쓰세요."철수는 가방에서 말아놓은 종이를 꺼냈다.주막 터와 나루 길, 주변 밭의 경계가 반듯한 선으로 그려진 도면이었다. 아래에는 토지대장 등본을 어디서 떼어야 하는지와 필요한 서류 이름도 적혀 있었다."연습 삼아 그렸습니다. 주막 서류는 앞으로 제가 정리할게요.""집에 왔으면 밥부터 먹어라."휘가 대청 끝에서 말했다.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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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허물 수 없는 집 1

- 1970년 11월 (첫서리가 내린 아침) -삼강주막 맞은편 초가가 사흘 만에 사라졌다.낫으로 이엉을 걷어내고 삽으로 흙벽을 밀어낸 자리에는 잿빛 블록이 허리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 그 옆집 지붕에는 새 슬레이트가 얹혀, 햇빛을 받을 때마다 강물보다 희게 번들거렸다.옥연은 대청에 서서 마을의 달라진 지붕선을 바라보았다.나루로 내려가는 길은 버스가 다니는 신작로에 밀려 좁아졌고, 빈 배를 묶은 말뚝에는 낙엽만 걸렸다. 서른네 해 동안 주막 앞을 채웠던 삿대 소리보다 트럭의 엔진 소리가 더 가까워진 지 오래였다."주모님, 오늘은 무릎이 더 아프십니까?"장작을 들여놓던 젊은 아낙이 물었다."첫서리가 내리면 원래 좀 뻣뻣해진단다. 솥 앞에 서 있으면 곧 풀려."옥연은 대수롭지 않게 답하며 손바닥으로 오른쪽 무릎을 한 번 눌렀다.쉰셋이 된 몸은 예전처럼 속일 수 없었다. 새벽마다 장작 두 단을 나르던 허리는 물동이 하나에도 묵직해졌고, 오래 쪼그려 앉았다 일어나면 무릎 안쪽이 바늘로 찌른 듯 저렸다.그래도 아침 국은 옥연이 직접 끓였다.가을 무를 납작하게 썰고 된장을 푼 뒤, 전날 삶아둔 시래기를 넣었다. 장날에 받은 돈은 보리와 소금으로 돌아왔고, 단골이 맡기고 간 콩과 들깨는 겨울 장사의 밑천이 되었다.주막은 더 이상 한 끼를 내고 다음 날을 걱정하던 집이 아니었다.나루 손님은 줄었으나 버스를 놓친 장꾼과 자전거로 강을 건너온 행상들이 자리를 채웠다. 낮에는 근처 공사판의 인부들이 국밥을 먹었고, 밤이면 길을 잘못 든 운전수가 빈방을 찾았다.옥연이 솥뚜껑을 덮는 순간 대문 밖에서 자전거 방울이 연달아 울렸다.면사무소 직원 둘과 마을 이장이 들어왔다. 한 사람은 겨드랑이에 도면을 끼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붉은 글씨가 찍힌 종이 뭉치와 풀통을 들고 있었다."주모님, 말씀드린 환경 정비 건으로 나왔습니다."면사무소 직원이 대문 기둥을 살피며 말했다."나는 처음 듣는 말인데요.""며칠 전에 이장님께 전달했습니다. 새마을 가꾸기를 시작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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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허물 수 없는 집 2

- 1970년 11월 사흘 뒤 -면사무소 사람들은 약속한 아침에 줄자와 말뚝을 들고 돌아왔다.이번에는 작업복 차림의 인부 둘도 함께였다. 한 명이 도면을 펴고, 다른 한 명은 주막 담장에서 신작로까지 거리를 재기 시작했다.옥연은 장사를 멈추지 않았다.국밥 세 그릇을 내고 받은 돈을 함에 넣은 뒤, 마지막 손님이 대문을 나설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고는 앞치마를 벗어 마루에 반듯하게 접어두었다."그 말뚝은 어디에 박을 겁니까?""담장을 물릴 자리입니다. 오늘 표시만 해두려는 겁니다."인부가 흙벽 모서리 앞에 뾰족한 말뚝을 세웠다.그곳은 벽의 빗금이 시작되는 자리였다. 오래전 김 씨가 목숨을 건져 돌아온 뒤 남긴 첫 감사와, 돈 대신 기도를 두고 간 손님들의 흔적이 겹겹이 남아 있었다.옥연은 말뚝 앞을 막아섰다."아직 면사무소에 출석도 안 하셨다면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출석하기 전에 내 집을 먼저 재겠다는 쪽이 더 이상하지 않습니까. 소유자가 동의하지 않았고, 어디까지 손댈지도 확정되지 않았습니다.""표시만 한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표시가 명령이 되고, 명령이 망치가 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옥연은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인부가 옆으로 자리를 옮기자 그녀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젊을 때라면 밤새 문턱에 서고도 버텼을 몸이었으나, 차가운 바람을 맞은 무릎은 세 번째 걸음에서 힘을 잃었다.다리가 꺾이는 순간 서늘한 팔이 허리를 받쳤다.외부 사람의 눈에는 옥연이 비틀거리다 혼자 균형을 잡은 듯 보였다. 그녀에게만 휘의 가슴과 도포 자락이 등 뒤에서 선명하게 느껴졌다."그만 물러서라."휘의 목소리가 귓가에만 닿았다."아직 서 있을 수 있습니다.""거짓말을 하려면 떨리는 다리부터 숨겨라."옥연은 등 뒤로 손을 뻗어 그의 손가락을 붙잡았다."조금만 받쳐주십시오. 사람들 앞에서는 제가 서 있어야 합니다.""...언제까지 혼자 서려는 것이냐."목소리 끝이 낮게 갈라졌다.옥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신작로에서 버스 한 대가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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