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삼강(三江), 그 등불 아래: Bab 51 - Bab 60

98 Bab

제51화: 만세가 지나간 자리 3

반대편에서는 거의 동시에 다른 무리가 횃불을 치켜들었다."청년단 놈 하나가 이쪽으로 달아났다! 내놓으시오!"서로 다른 완장을 찬 사람들이 대문 앞에서 마주쳤다.잠시 당황하던 두 무리는 곧 상대를 노려보며 몽둥이와 낫을 고쳐 쥐었다."주모, 문을 여시오!""숨긴 놈만 넘기면 주막은 건드리지 않겠소!"옥연은 골방 문을 닫고 대청마루를 가로질렀다.아홉 해 동안 장작과 솥뚜껑을 들며 단단해진 걸음이 문지방 앞에서 멈추었다."두 사람 모두 제 손님입니다.""사람을 죽인 패거리를 손님이라 감쌀 셈이오?"붉은 천을 팔에 묶은 사내가 몽둥이 끝을 문 안으로 들이밀었다."저놈들이 먼저 우리 동무를 잡아갔소!"맞은편의 흰 완장 사내도 고함을 질렀다."안에 숨은 놈을 내놓지 않으면 함께 한패로 보겠소."옥연은 두 무리를 차례로 바라보았다.젖은 머리카락 끝에서 빗물이 뺨을 타고 흘렀지만, 그녀의 손은 문설주를 놓지 않았다."이 문턱을 넘으면 누구나 손님입니다."낮고 또렷한 목소리가 빗속으로 퍼졌다."저는 제 손님을 내쫓지 않습니다."대문 밖의 얼굴들이 굳었다.누군가 욕설을 뱉으며 한 발을 들여놓으려는 순간, 옥연의 뒤에서 푸른 불꽃이 솟아올랐다.휘가 완전한 실체로 모습을 드러냈다.남색 도포 자락이 젖은 마루 위로 길게 흘렀고, 창백한 얼굴 아래의 청색 눈동자가 문밖의 사람들을 차갑게 내리눌렀다.그는 손을 들지도, 바람을 일으키지도 않았다.다만 옥연의 바로 뒤에 서서 한쪽 손을 그녀의 허리에 가볍게 얹었다.지이잉.문지방을 따라 푸른빛과 금빛이 나란히 번졌다.앞으로 나오려던 사내의 짚신이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혀 흙바닥을 미끄러졌다.그가 다시 힘을 주었지만 발끝 하나 문 안으로 들이지 못했다."두 번 말하게 하지 말라."휘의 낮은 음성이 빗물 아래로 가라앉았다."내 주인이 들이지 않겠다는 자는 이 문턱을 넘지 못한다."양쪽 무리 모두 한 걸음씩 물러났다."이, 이 무슨...?!"서로를 향해 남아 있던 살기보다, 사람의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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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만세가 지나간 자리 4

맞닿은 피부의 차이는 아홉 해 전보다 더 선명했다."언젠가는 이 손도 도련님의 손을 제대로 잡지 못할 만큼 늙을 것입니다.""그때는 내가 더 단단히 잡으면 된다.""제가 먼저 떠나면요."휘의 손끝이 멈추었다.우물가를 스치는 새벽바람이 두 사람 사이의 젖은 머리카락을 흔들었다."그날이 오기 전에 저를 놓는 편이 도련님께 낫지 않겠습니까."옥연은 그의 눈동자를 피하지 않았다."칠백 년을 혼자 계셨는데, 제 짧은 생이 끝난 뒤 다시 그 시간을 견디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청색이던 휘의 눈동자에 금빛이 번졌다가, 물결을 맞은 등불처럼 가늘게 흔들렸다.그는 옥연의 손을 놓지 않았다."나를 위한다는 말로 내 뜻을 대신 정하지 말라."낮은 목소리가 평소보다 더디게 이어졌다."너는 내게 상대의 뜻을 꺾어 지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 약속은 너에게도 같다."옥연의 입술이 다물렸다.휘는 그녀의 손바닥을 제 가슴께로 끌어올렸다.남색 도포 아래에서 느린 박동이 차가운 손바닥을 두드렸다."나는 기다릴 수 있다."말은 단정했지만 금빛 눈동자의 가장자리가 불안정하게 일렁였다."네가 없는 뒤의 시간도 견디면 그만이다."옥연은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대신, 가슴 위에 댄 손가락을 살며시 구부렸다.박동 하나가 손바닥 아래에서 거칠게 어긋났다."거짓말이 서투르십니다."휘의 눈썹 끝이 틀어졌다."감히 신령의 말을 의심하느냐.""도련님의 심장이 먼저 알려주었습니다."옥연의 한쪽 볼에 희미한 보조개가 잡혔다.휘는 못마땅한 얼굴로 그녀의 손을 가슴에서 떼어내려 했지만, 옥연이 손가락을 얽어오자 그대로 멈추었다."영원히 늙지 않게 해주겠다는 말씀은 하지 않으시는군요.""인간의 시간을 억지로 멈추면 그것은 삶이 아니라 박제에 불과하다."휘의 엄지가 옥연의 손등에 남은 잔상처를 쓸었다."네가 걸어갈 시간을 내 욕심으로 얼려둘 생각은 없다."옥연의 가슴 안쪽에서 오래 엉켜 있던 매듭 하나가 천천히 풀렸다.그녀는 대야 옆에 놓인 수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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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포탄 아래 마르지 않는 솥 1

- 1950년 8월 초 (한여름, 낙동강 전선) -삼강나루의 길은 사람으로 막혀 있었다.등에 이불 보따리를 진 노인, 젖먹이를 품에 묶은 여인, 한쪽 바퀴가 찌그러진 손수레를 미는 아이들이 강을 건너기 위해 둑 아래까지 줄을 이었다.배는 모자랐고 강 건너에서 들려오는 포성은 아침보다 가까워져 있었다.둔중한 울림이 한 번 번질 때마다 수면 위의 햇빛이 잘게 부서지고, 둑에 웅크린 사람들의 어깨가 한꺼번에 움츠러들었다.옥연은 주막 대문을 활짝 열어 문짝을 벽에 묶었다.서른셋이 된 그녀의 눈가에는 잔주름이 희미하게 자리 잡았고, 젖은 치맛자락 아래로 드러난 발목에는 나루와 부엌을 오가며 묻힌 진흙이 두껍게 말라붙어 있었다."걸을 수 있는 분은 대청으로 오십시오. 누울 자리가 필요한 분은 이쪽 방으로 모시겠습니다."옥연은 자신의 말을 끝까지 들었는지 확인할 틈도 없이 들것 한쪽을 받아 들었다.피로 얼룩진 군복을 입은 젊은 병사가 들것 위에서 눈을 떴다."저는... 북쪽에서 내려왔습니다.""어디서 왔는지는 나중에 말씀하십시오. 지금은 피부터 멎어야 합니다."옥연은 병사의 계급장도, 찢어진 군복의 빛깔도 묻지 않았다.방 안에는 먼저 도착한 노파와 열이 오른 아이가 누워 있었지만, 사람들이 몸을 벽에 붙여 병사 한 명이 들어갈 자리를 만들었다.다섯 해 전 서로 다른 편에 섰던 두 청년을 함께 숨겨준 뒤로도 세상은 한 번도 조용해지지 않았다.말로 나뉜 사람들은 마침내 총을 들었고, 강 건너에서 일어난 싸움은 떠날 곳 없는 이들을 삼강주막 문턱까지 밀어냈다."주모, 쌀이 이제 한 됫박도 안 남았소."김 씨의 아들이 빈 쌀독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일흔을 훌쩍 넘긴 김 씨는 이제 삿대를 아들에게 넘겼지만, 대청에 앉아 숨을 돌릴 새도 없이 배의 차례와 부상자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옥연은 쌀독 바닥에 손을 넣어 손가락 사이로 남은 낟알을 긁어모았다."보리와 감자를 전부 섞겠습니다. 물을 더 붓고 시래기도 잘게 썰어 넣으세요.""이 사람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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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포탄 아래 마르지 않는 솥 2

모두 제 몫을 빼앗길까 두 손으로 그릇을 감싸고 있었다.옥연은 마지막으로 남은 국 한 그릇을 노인에게 내밀었다."제가 이것을 받으면 저 아이가 못 먹지 않소."노인의 눈이 옆에 선 아이를 향했다."그렇다면 어르신께서 아이에게 한 숟갈을 떠주십시오."옥연은 숟가락을 노인의 손에 쥐여주었다."받으신 것을 전부 내놓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한 숟갈이면 됩니다."노인은 잠시 망설이다 국물을 떠서 사내아이의 입 앞에 내밀었다.아이는 허겁지겁 받아먹은 뒤 그릇을 붙잡으려 했지만, 옥연이 고개를 저었다."이번에는 네가 저 아주머니께 건네드리렴."아이가 숟가락에 보리알 두 개를 얹어 팔 다친 여인에게 내밀었다.여인은 입술을 떨며 그것을 받아먹고, 품 안에 감춘 감자 조각을 꺼내 노인의 손에 올려놓았다.솥 안에서 작은 기포 하나가 터졌다.금빛이 아궁이 불보다 느리게 솥 바닥을 훑었다."다음 그릇을 받으신 분은 옆 사람에게 첫 숟갈을 건네십시오. 이름을 아시면 불러주시고, 모르시면 지금 물어보십시오."옥연은 솥을 저으며 마당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우리가 서로의 이름을 알고 있으면, 누구 하나 쓰러져도 찾을 수 있습니다."김 씨의 아들이 먼저 빈 그릇을 받아 국을 한 숟갈 떴다.그는 새벽부터 함께 배를 저은 청년에게 그 숟갈을 건넸다."동식아, 네가 먹어라.""형님부터 드셔야지요.""내 이름을 불렀으면 네가 받아. 다음은 네가 건네면 된다."청년이 국을 삼킨 뒤 곁에 누운 병사의 이름을 물었다.병사는 갈라진 입술로 "박정만입니다"라고 답했고, 청년은 그 이름을 또박또박 부르며 숟가락을 내밀었다.그릇 하나가 세 사람의 손을 거칠 때마다 솥 안의 국물이 조금씩 차올랐다.시래기가 다시 부풀고 감자 조각이 물 위로 떠오르자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그러나 누구도 솥을 향해 달려들지 않았다.자신이 받은 한 숟갈을 다음 사람에게 건넨 뒤에야 제 몫을 먹었고, 이름을 들은 사람은 잊지 않으려 입속으로 한 번 더 되뇌었다.국그릇이 마당을 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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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포탄 아래 마르지 않는 솥 3

옥연은 그의 소매 끝을 잠시 붙잡았다가, 등에 업힌 막내를 내려놓았다."약속드린 밥부터 먹여야 합니다."철수는 다친 다리를 끌어 동생들 앞을 막았다.옥연이 국그릇을 내밀어도 손을 뻗지 않았다."우리를 데려온 대가가 뭐예요."열두 살 얼굴에 어른의 경계가 너무 깊게 박혀 있었다."나중에 살아남아서 갚으렴.""뭘로 갚으라는 건데요.""너보다 더 배고픈 사람을 만나면 밥 한 숟갈을 건네는 것으로."옥연은 철수 앞에 그릇을 놓고 첫 숟갈을 떴다."철수야, 네가 먼저 먹어라."이름을 불린 소년의 눈가가 붉어졌다.철수는 고개를 돌려 영희에게 숟가락을 내밀었고, 영희는 입술을 꾹 다문 채 막내에게 먼저 먹였다.막내는 국을 삼키자마자 빈 입을 벌렸다."밥!""조금만 기다리렴. 네 그릇을 곧 줄 테니."옥연이 새 그릇을 가지러 돌아선 사이 막내는 대청 아래에 선 휘를 발견했다.포탄을 막느라 그의 눈동자는 청색보다 짙은 빛을 띠었고, 남색 도포 자락 주변에는 차가운 안개가 감돌았다.어른들은 휘와 눈이 마주칠까 고개를 숙였지만 막내는 오히려 두 손을 내밀었다.휘가 한 걸음 물러났다."저 작은 것이 왜 내게 오는 것이냐.""안아달라는 것 같습니다.""보아라. 손에... 땟국물이 묻어 있지 않느냐."막내는 휘의 거절을 알아듣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다가갔다.작은 손이 휘의 검지 하나를 덥석 잡았다.휘의 몸이 돌처럼 굳었다.막내의 손바닥에서 나온 아주 작은 온기가 그의 차가운 손가락을 감싸자, 부엌의 등불이 금빛으로 한 번 흔들렸다."도련님을 무서워하지 않는 손님이 오랜만이군요."전란의 화마가 삼강주막마저 집어삼키던 밤, 휘는 마침내 숨겨온 정체를 드러내고야 말았다.오랜 침묵을 깨뜨려서라도, 오직 옥연만은 지켜내야 했기에 내린 피할 수 없는 결단이었다.옥연이 웃음을 머금자 휘가 그녀를 노려보았다."이것을 떼어내거라.""막내야, 도련님 손을 놓고 밥 먹자.""싫어."처음으로 밥 아닌 말을 한 아이가 휘의 손가락을 두 손으로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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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포탄 아래 마르지 않는 솥 4

비녀의 금빛 불씨가 휘의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반려 계약이 두 사람의 맞잡은 손을 따라 열리며 푸른 신력이 옥연의 팔과 심장으로 밀려들었다. 살을 얼리는 냉기가 뼛속까지 파고들었고, 수백 원혼의 울음이 머릿속에서 동시에 터졌다. 옥연의 무릎이 꺾이려는 순간 휘가 허리를 감아 세웠다. "후회하지 말거라." "이미 늦었습니다." 옥연은 이를 악물고 그의 가슴에 이마를 기댔다. "우리는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휘의 팔이 그녀를 더 단단히 감쌌다. 두 사람의 발밑에서 금빛과 푸른빛이 한 줄기로 솟아올라 갈라진 결계를 꿰맸다. 포탄이 주막 지붕 한 길 위까지 떨어졌다. 휘가 한 손을 들었고 옥연도 그 위에 제 손을 포갰다. 합쳐진 결계가 움푹 꺼졌다가 거대한 물결처럼 되솟았다. 검은 포탄은 보이지 않는 힘에 밀려 방향을 틀었고, 주막을 스쳐 강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폭발과 함께 물기둥이 하늘 높이 솟았다. 충격이 결계를 타고 되돌아와 옥연과 휘의 몸을 동시에 대청 안쪽으로 내던졌다. 옥연의 가슴에서 거친 숨이 터졌다. 귀가 먹먹해지고 눈앞이 하얗게 번졌지만, 제 허리를 감싼 휘의 팔과 맞잡은 손만은 놓이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옥연은 뺨에 닿는 작은 손의 감촉에 눈을 떴다. 막내가 그녀의 얼굴을 두드리고 있었다. "밥!" "눈을 뜨자마자 밥부터 찾게 만드는구나." 갈라진 목소리가 머리맡에서 들렸다. 휘는 대청 기둥에 등을 기대고 앉아 옥연의 머리를 무릎에 받치고 있었다. 그의 도포는 어깨와 소매 곳곳이 비쳐 보였지만 얼굴과 손은 남아 있었다. 옥연은 그의 가슴께를 더듬어 은비녀를 찾아냈다. 비녀 끝의 불씨도 작지만 꺼지지 않았다. "하아... 도련님도, 불씨도 다행이 남아 있군요." "네가 절반을 빼앗아 가지 않았느냐. 사라질 힘도 남지 않았다." 휘의 타박에 옥연의 입술 끝이 힘없이 올라갔다. 포격은 멎어 있었다. 지붕 한쪽이 내려앉고 담장에는 긴 금이 갔지만, 주막 안의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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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아버지라 불린 신령 1

- 1950년 8월 초 (포격이 멎은 저녁) -휘는 옥연이 든 빈 그릇과 강가에 늘어선 병사들을 번갈아 보았다."상을 차리거라. 길은 내가 열겠다."옥연은 곧장 솥으로 돌아갔다.산 사람들에게 나누고 남은 보리밥을 한 숟갈 담고, 시래기국도 정갈하게 떠서 작은 상에 올렸다. 영희는 깨끗한 수저 한 벌을 가져왔고 철수는 절뚝이는 다리로 상을 받쳐 들었다. 막내는 옥연의 치맛자락을 붙든 채 강가까지 따라왔다.옥연은 물가의 넓적한 돌 위에 상을 놓았다."성함도 고향도 몰라 한 분씩 불러드리지 못합니다. 어느 편에 서셨는지도 묻지 않겠습니다. 오늘은 그저 저희 주막에 오신 손님으로 모시겠습니다."휘가 손을 들자 등불에서 흘러나온 푸른빛이 강물 위에 잔잔한 길을 만들었다. 국밥의 따뜻한 김이 그 길을 따라 흘러가며 얼굴 없는 병사들의 어깨와 가슴을 차례로 감쌌다.옥연은 두 손을 모았다."이 전쟁이 하루라도 빨리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살아 있는 분들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고, 들판과 강가에 남은 주검도 하루빨리 거두어져 기다리는 가족 품으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그녀의 목소리가 잠시 떨렸다."그러고 나면... 여러분도 총을 내려놓고 편히 쉬십시오. 뜨거울 때 한술씩 드세요."맨 앞의 병사가 천천히 총구를 내렸다.뒤에 선 병사들도 하나둘 무기를 내리고 상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김이 몸을 통과할 때마다 흐릿한 군복 위의 피와 흙이 조금씩 옅어졌고, 강을 뒤흔들던 울음도 잦아들었다.막내가 옥연의 품에서 손을 흔들었다."아저씨, 밥!"맨 앞의 병사가 아이에게 다시 한번 허리를 숙였다. 달빛처럼 엷은 감사가 등불 안으로 스며들자 푸른 불꽃 곁에서 금빛 한 점이 조용히 피어났다.옥연은 국밥의 마지막 김이 사라질 때까지 상을 거두지 않았다.그날 밤, 강가에서는 더 이상 울음이 들리지 않았다.- 1951년 3월 (초봄, 다시 열린 삼강나루) -해가 뜨기도 전에 삼강주막 대청에는 젖은 짚신이 열두 켤레나 놓였다.부엌에서는 보리밥 뜸 드는 냄새와 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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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아버지라 불린 신령 2

옥연은 손님들 앞에 보리밥과 국을 놓았다. 옆 상에서는 뱃사공들이 새벽부터 언 강가에 배를 대느라 곱은 손을 국그릇에 감싸고 있었고, 골방에는 다리를 다친 피란민 하나가 영희가 가져다준 감자범벅을 천천히 삼켰다.돈을 낼 수 있는 이는 돈을 냈다.곡식이 있는 이는 곡식을 놓았고, 가진 것이 없는 이는 장작을 패거나 물을 길었다. 그마저 할 수 없는 사람의 몫은 벽에 빗금 하나로 남았으며, 형편이 나은 손님이 빗금 하나를 대신 지워주는 날도 있었다.솥은 밥을 공짜로 만들어내지 않았다.사람들이 서로 건넨 몫을 한 그릇 더 이어주었을 뿐이었다.아침 손님이 모두 일어난 뒤, 옥연은 영희와 함께 받은 것을 마룻바닥에 펼쳤다.구겨진 지폐 몇 장, 보리 한 되 반, 콩 반 되, 소금 한 종지, 감자 일곱 알. 장작을 패주기로 한 약속과 풍양장에서 돌아올 때 시래기를 가져오겠다는 말도 있었다."음... 오늘 점심과 저녁을 하고, 내일 아침까지는 충분해요."영희가 나무패의 금을 짚어가며 말했다."내일 장에서 보리를 더 사 오면 모레 장사도 할 수 있고요."철수가 소반을 닦던 손을 멈췄다."제가 장에 다녀올게요.""김 씨 아드님과 함께 가거라. 혼자 움직이지 말고.""길은 다 알아요.""길을 안다고 전쟁이 너를 피해 가는 것은 아니란다."옥연이 조용히 말하자 철수의 입술이 굳었다.소년은 여전히 자신이 동생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놓지 못했다. 밥 한 그릇을 받으면 두 그릇의 일을 하려 들었고, 밤이면 누구보다 먼저 대문 빗장을 확인했다.휘가 소반 위의 빈 그릇을 손끝으로 끌어당겼다."네가 없어도 오늘 장사는 돌아갔다."철수가 고개를 들었다."쓸모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네가 혼자 모두 떠맡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그래도 제가 형이잖아요.""형은 동생보다 먼저 굶는 자가 아니라, 내일 먹을 것을 함께 마련하는 자다."휘는 영희가 적은 나무패를 철수 앞으로 밀었다."보아라. 오늘 먹은 것이 내일 장사할 몫으로 바뀌지 않았느냐.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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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아버지라 불린 신령 3

그 뒤에 선 이들도 한 사람씩 그릇 앞에 머물렀다. 누군가는 품에서 닳은 사진을 꺼냈고, 누군가는 마지막까지 업고 있던 전우를 먼저 상 앞에 내려놓았다.강을 뒤흔들던 울음은 길고 고른 숨으로 바뀌었다.그들이 남긴 감사는 산 사람의 것처럼 뜨겁지 않았다. 달빛이 깊은 물속으로 내려앉는 듯한 빛이 등불에 스며들었고, 휘의 반투명한 소매와 어깨를 안쪽부터 천천히 채웠다.옥연은 곁에 선 그의 손을 잡았다.차갑던 손가락이 오늘만큼은 사람의 체온에 가까웠다."이 힘으로 전쟁을 멈출 수는 없습니까?""나는 이 터에 묶인 신령이다. 세상의 전쟁을 끝내거나 사람의 뜻을 꺾을 수는 없다."휘의 손가락이 옥연의 손 사이로 파고들었다."다만 이 문턱에 닿은 자를 지키고, 길을 잃은 혼에게 돌아갈 물길을 열어줄 수는 있다."휘의 옆얼굴을 바라보던 옥연은 손을 더 단단히 맞잡았다.세상을 한꺼번에 바꾸지 못해도 이들은 다음 날 다시 솥에 불을 붙일 수 있었다. 산 사람에게 받은 곡식으로 밥을 지어 팔고, 그 값으로 다음 재료를 마련하며, 마지막 남은 한 그릇은 돌아갈 길조차 잃은 이에게 건넬 수 있었다.그날 이후 영업을 마친 삼강주막의 마지막 상은 늘 강가를 향했다.• 1952년 봄부터 겨울까지 (주막에 쌓인 생활) -봄 장날이면 삼강주막의 마당에는 보리 자루와 봄나물 광주리가 나란히 놓였다.옥연은 냉이와 씀바귀를 다듬어 된장을 푼 국을 끓였고, 철수는 김 씨의 아들과 함께 나루를 오가며 장꾼들의 짐을 날랐다. 품삯으로 받은 보리의 절반은 쌀독에 들어갔으며 나머지는 다음 장에서 소금과 메주콩으로 바뀌었다.여름에는 강에서 잡은 피라미가 손님상에 올랐다.가을에는 감자와 무가 광주리를 채웠고, 겨울을 앞두고는 처마 밑에 시래기와 무청이 줄지어 걸렸다. 계절이 달라질 때마다 국의 건더기도 바뀌어, 주막을 다시 찾은 손님은 솥뚜껑이 열리기도 전에 오늘 무엇을 먹을지 냄새로 알아맞혔다."오늘은 감자전이지요?""기름이 귀하니 전은 장날에만 드립니다. 평소에는 감자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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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아버지라 불린 신령 4

그 사이 철수의 어깨는 넓어졌고 영희의 글씨는 벽의 빗금보다 반듯해졌다.막내는 여전히 가장 바빴다. 도깨비들이 옮긴 장작 수를 세고, 손님의 짚신을 뒤집어놓고, 아궁이 곁에서 졸다가 휘의 염동력에 들려 대청으로 옮겨지기를 되풀이했다."아빠, 번쩍!""네 다리로 걸어라.""다리 졸려.""다리가 잠드는 인간은 처음 보는구나."말이 끝나기도 전에 막내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옥연이 휘의 도포 소매에 묻은 아이의 손자국을 털어주자 그의 눈동자 가장자리에 금빛이 번졌다. 휘는 불평하면서도 그 자리를 제 손으로 닦지 않았다."이제는 호칭을 바로잡으실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무엇을 말이냐.""막내가 아버지라 부른 지 벌써 두 해째입니다.""저것이 제멋대로 부른 세월을 왜 내가 헤아려야 하지?"옥연은 그의 소매를 마저 펴주었다."싫으시면 한 번쯤 제대로 말리셨어야지요."휘는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아궁이 곁에서 잠든 막내가 추울까 등불의 불꽃을 한 치 높였다. 청색과 금빛이 섞인 불빛이 아이의 발끝까지 내려앉았다.• 1953년 7월 말 (휴전 직후, 장맛비가 그친 날) -면사무소에서 가져온 낡은 라디오가 삼강주막 대청 한가운데 놓였다.면서기가 건전지를 아끼겠다며 음량을 줄였지만, 잡음 사이로 흘러나온 말은 마당에 모인 사람들에게 충분히 닿았다. 휴전 협정이 맺어졌으며 1953년 7월 27일 밤 열 시부터 전투 행위를 멈춘다는 소식이었다.누군가는 만세를 외쳤고 누군가는 자리에 주저앉았다.옥연은 국자를 쥔 채 마당을 바라보았다. 총성이 멎는다는 말을 듣고도 웃지 못하는 얼굴이 더 많았으며, 지난 삼 년 동안 벽에 붙여둔 실종자 명단은 바람이 불 때마다 마른 소리를 냈다.철수와 영희는 새 명단이 도착할 때마다 부모의 이름을 찾았다.그러나 살아 있다는 소식도 죽었다는 기록도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끝난 것이 맞는 게요?"여든에 가까워진 김 씨가 삿갓을 가슴에 안은 채 물었다."싸움은 멈춘다고 합니다. 다만 돌아오지 못한 분들의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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