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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os los capítulos de 삼강(三江), 그 등불 아래: Capítulo 81 - Capítulo 90

98 Capítulos

제81화: 다시 그어진 외상 빗금 2

여행 가방을 든 남자는 대구의 신발 공장에서 일했다고 했다. 회사가 부도난 뒤 공장 문이 닫혔고, 기숙사에서도 나와 고향으로 가는 길이었다.종이상자를 든 남자는 건설 현장의 하청업체에서 일했다.사장이 사라져 두 달치 임금을 받지 못했고, 작업복과 안전화만 돌려받았다. 그는 상자 안의 안전모를 보다가 국물을 한 모금 삼켰다.넥타이를 풀어 넣은 남자는 이름도 사정도 말하지 않았다.국밥이 절반쯤 줄어들 때까지 고개를 들지 않았고, 옥연이 물을 더 따라주어도 잔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의 외투 안주머니에서는 접힌 봉투 모서리가 비쳐 나왔다.남자가 몸을 움직이자 봉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옥연은 주워주려다 첫 줄을 보았다.[경영상의 불가피한 사정으로 1997년 12월 5일부로 귀하와의 근로계약을 종료합니다.]남자는 봉투를 빼앗듯 받아 품에 넣었다."보지 마십시오.""...미안합니다."옥연은 더 묻지 않고 빈 반찬 접시를 채웠다."안 드셔도 됩니다.""김치는 돈 받고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국도 돈을 안 받으셨잖습니까.""그러니 김치까지 외상으로 달아두면 장부가 복잡해집니다. 그냥 드세요."옆에 앉은 두 남자가 처음으로 작게 웃었다.넥타이 남자의 굳은 입가도 잠시 풀렸으나 수저는 다시 멈췄다. 그는 가족에게 회사에서 잘렸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아침마다 출근하는 척 집을 나왔습니다."남자의 목소리는 국그릇 안으로 가라앉았다."사흘째입니다. 오늘은 버스를 타고 집에 가려고 했는데... 내릴 곳을 지나쳤습니다.""집은 어디입니까?""구미입니다. 아내하고 아이 둘이 있습니다.""그럼 오늘은 돌아가야겠네요.""무슨 얼굴로 갑니까?"남자가 고개를 들었다."월급이 끊기면 집도 끊깁니까?""저 때문에 생활이 무너집니다. 가장 노릇을 못 하는 사람이 밥을 먹을 자격이 있습니까?"옥연은 그의 앞에 두 손을 내밀었다."그릇을 주세요."남자는 다 먹지 못한 국그릇을 건넸다.옥연은 솥에서 국을 더 떠 그릇을 가득 채우고 남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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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다시 그어진 외상 빗금 3

"이걸 언제 지워야 합니까?""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오면 됩니다.""돈을 못 구하면요?""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 이야기가 외상값입니다."남자는 빗금 옆에 이름을 쓰려다 멈췄다.옥연은 재촉하지 않았다.세 사람이 큰길 버스를 타러 떠난 뒤 주막은 다시 조용해졌다.영희가 설거지를 맡았고 옥연은 끝까지 국자를 놓지 않았다. 마지막 그릇에 국을 담으려는 순간 손가락에서 힘이 빠졌다.국자가 솥 안으로 떨어지기 전에 허공에서 멈췄다.낯선 손님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국자를 내려놓고 옥연의 손목을 감쌌다."이제... 그만두어라.""오늘 장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이 솥을 네가 혼자 드는 일을 말한다."휘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철수도, 영희도, 막내도 있다. 저것들의 자식까지 드나드는 집인데 어찌하여 네가 끝까지 모든 그릇을 들려 하느냐.""아이들이 제 일을 버리고 여기만 지킬 수는 없잖습니까.""네가 아프면 저것들은 하던 일을 더 오래 버려야 한다."옥연은 반박하지 못했다.휘는 떨리는 손가락을 하나씩 펴보았다. 굳은 마디는 쉽게 펴지지 않았고, 손바닥에는 오래된 화상 자국과 칼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내 힘으로 통증을 줄일 수는 있다.""알고 있습니다.""더는 무거운 것을 들지 않게 할 수도 있다.""제 손에서 다 빼앗으면 가능하겠지요."옥연이 그의 손등을 천천히 쓸었다."살게 하는 것과 살던 방식까지 빼앗는 것은 다릅니다."휘의 손가락이 굳었다."나는... 나는... 네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저도 쓰러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완전히 놓지는 않되, 나눠 들겠습니다.""이번에도 말로만 그럴 셈이냐.""내일부터 철수에게 장부를 맡기고, 영희에게 솥을 맡기고, 막내에게 무거운 것을 시키겠습니다."휘의 목소리에 화색이 스며든다."너는 무엇을 할 것이냐.""간을 보아야지요."옥연의 당연한 대답에 휘가 이마를 짚었다."결국 솥을 놓지 않겠다는 말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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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다시 그어진 외상 빗금 4

- 1997년 12월 중순 -다음 날부터 주막의 일은 네 사람의 손으로 나뉘었다.쉰아홉이 된 철수는 예천에서 일을 정리한 뒤 아침마다 주막에 들러 장부와 돈을 살폈다. 면서기보다 토지 서류를 더 잘 안다는 말을 듣던 젊은이는 어느새 안경 너머로 잔돈까지 꼼꼼히 확인하는 노인이 되어 있었다.영희는 솥과 약을 함께 맡았다.옥연이 맛을 보면 영희가 간을 맞췄고, 약 먹을 시간이 되면 국자보다 먼저 물컵을 내밀었다. 옥연이 싫은 얼굴을 하면 대들보의 전구와 등불이 동시에 깜빡였는데, 그것만큼은 휘와 영희가 한편이었다.쉰하나가 된 막내는 문과 지붕뿐 아니라 장작과 쌀가마니를 맡았다.그는 아직도 대문을 들어설 때마다 휘에게 번쩍 들어달라고 두 팔을 벌렸고, 그럴 때마다 몸 대신 모자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머리숱이 전보다 줄었다는 사실을 들키기 싫어 모자를 눌러쓰는 나이가 되었어도 천진한 버릇은 달라지지 않았다."아버지, 이번에는 진짜로 한 번만 들어주세요.""네 허리가 먼저 부러질 나이다.""들리는 사람 허리가 왜 부러집니까?""보는 내 마음이 꺾인다는 뜻이다."막내는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철수를 돌아보았다."아버지께서 나를 걱정하시는 말 맞지?""포기하셨다는 말에 가깝다."철수가 장부에서 눈도 들지 않고 답했다.옥연은 의자에 앉아 웃었다.예전처럼 주막 안을 쉬지 않고 오가지는 못했으나, 혼자 모든 일을 붙든 때보다 손님 얼굴을 오래 볼 수 있었다. 누가 국물을 남겼는지, 누가 돈을 세다 주머니를 닫았는지 먼저 알아보는 일은 여전히 옥연의 몫이었다.그해 12월에는 벽의 빗금이 날마다 늘었다.공장 문이 닫힌 사람, 가게 보증금을 잃은 사람,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한 사람이 큰길 버스를 기다리다 주막으로 들어왔다. 가진 사람에게는 제대로 값을 받았고,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외상을 내주었다.철수는 장부의 수입과 지출을 맞추며 한숨을 쉬었다."이 속도면 장작값이 먼저 모자랍니다.""오늘 값을 낸 손님이 내일 장작을 보낼 거다."옥연이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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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다시 그어진 외상 빗금 5

연말까지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주막을 찾아왔고, 방송국에서 확인 전화도 걸려왔다. 흙벽 앞에서 사진만 찍고 가는 사람도 있었으며, 외상 빗금을 손으로 만지려다 막내에게 제지당한 사람도 있었다."돈을 많이 낼 테니 기적의 국을 달라"고 말하는 손님도 있었다.옥연은 그 사람보다 먼저 대문 밖을 서성이는 실직자를 불러 자리에 앉혔다. 돈을 든 관광객에게는 순서를 기다리라 했고, 배고픈 손님의 그릇부터 채웠다."우리가 먼저 왔는데요."관광객이 불평했다."그분은 어제부터 오고 싶어 했을 겁니다.""그걸 어떻게 압니까?""문 앞에서 돌아서는 얼굴을 오래 봤습니다."옥연의 말에 관광객은 더 따지지 못했다.그가 국을 다 먹고 큰돈을 놓으며 형식적으로 잘 먹었다고 인사했을 때 등불은 평소와 같았다. 그러나 상수가 두 손을 모으고 낮게 고맙다고 말하는 순간, 금빛이 대들보 전체로 번졌다."그날 돌아가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상수의 목소리가 떨렸다."아내가 회사보다 제가 먼저라고 했습니다. 아이들도 같이 방법을 찾자고 했고요.""그 말을 들으려고 국을 드린 겁니다."옥연은 상수의 빈 그릇을 받았다.기사와 함께 철수가 보관해온 자료는 군청 문화공보 담당자에게도 전달되었다.기자는 1970년 철거 보류 기록과 주민 진정서, 시대별 증언이 함께 남아 있으니 향토 자료로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요청했다. 군청에서는 즉시 지정할 수는 없으나 현장 확인과 자료 검토부터 시작하겠다는 답을 보내왔다.[삼강주막의 건축 연혁과 주민 증언 자료를 검토하고, 향토문화 보존 대상 가능성에 관한 현장 조사를 진행한다.]철수는 회신을 장부함 가장 위에 넣었다."1970년에는 철거를 멈추는 데서 끝났습니다. 이번에는 기록이 남았습니다.""기록만으로 집이 지켜지느냐."휘가 물었다."기록이 있어야 다음 사람이 지킬 근거를 찾습니다."철수는 대들보의 등불을 올려다보았다."아버지께서 이 터를 지키셨다면, 이제는 인간들이 남긴 종이도 함께 지키게 해주십시오."휘의 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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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마지막으로 지피는 아궁이 1

- 2005년 9월 1일, 초가을 -삼강주막의 초가지붕 위로 여름 끝의 볕이 내려앉았다.밤새 맺힌 이슬이 마르지 않은 마당에는 사람 발자국이 벌써 여러 겹 찍혀 있었다. 철수와 영희, 막내가 먼저 와 있었고 그들의 자식과 손주들도 대청과 뒤뜰을 오가며 자리를 정리했다.옥연은 부엌 문턱 안쪽의 의자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여든아홉이 된 몸은 지팡이를 짚고도 마당을 한 바퀴 돌기 어려웠다. 국자를 오래 들지 못해 하루에 서너 그릇만 직접 냈지만, 손님이 앉기도 전에 무엇을 먹고 싶은지는 여전히 먼저 알아보았다.휘는 옥연의 의자 뒤에 서 있었다.처음 만난 날과 다르지 않은 젊은 얼굴이었다. 청흑색 머리카락도, 남색 도포도, 등불 빛을 머금은 청색 눈동자도 변하지 않았다.옥연은 주름진 손을 뒤로 내밀었다.휘가 말없이 그 손을 잡았다. 굽은 손가락을 감싼 그의 손은 예전처럼 차가웠으나, 손바닥 사이에는 오랜 세월 함께 길들인 온기가 남아 있었다.대문 밖에서 자동차 한 대가 멈췄다.철수가 안경을 고쳐 쓰며 마당으로 나갔다. 예순일곱이 된 그의 걸음도 예전처럼 빠르지는 않았지만, 서류를 받을 때만큼은 허리를 반듯하게 폈다.예천군청 문화관광과에서 나온 담당자 두 사람이 두꺼운 서류 봉투를 들고 들어왔다.마을 이장과 1997년에 주막을 취재했던 윤미정 기자도 그 뒤를 따랐다. 기자의 카메라는 필름식에서 작은 디지털카메라로 바뀌어 있었다.담당자가 옥연 앞에서 봉투를 열었다.[예천 삼강주막 문화재 지정 조사보고서][경상북도 문화재위원회 심의 안건 상정 준비]종이에 적힌 문장을 영희가 천천히 읽어주었다.담당자는 옥연이 알아듣기 쉽도록 서류를 한 장씩 짚어가며 설명했다."어르신, 지난번에 교수님들과 도청 분들이 와서 벽이랑 기둥 치수를 모두 재어 갔지요?"옥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 조사보고서가 잘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에 마지막으로 남은 나루터 주막이라 보존 가치가 높다고 판단해서, 경상북도 문화재위원회에 정식 안건으로 올릴 준비를 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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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마지막으로 지피는 아궁이 2

- 그날 오후 -옥연은 예천 읍내 병원의 작은 병실에서 눈을 떴다.창밖으로 잎 끝이 누렇게 변하기 시작한 나무가 보였다. 팔에는 수액 줄이 이어져 있었고 침대 곁에는 영희와 철수, 막내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휘는 창가에 서 있었다.터와 떨어진 병원 안에서는 기운을 오래 유지하기 어려워 몸 가장자리가 희미했다. 그동안 많은 신력을 회복하였기에 가능한 일. 하지만 그 역시 오래는 불가능한 일. 그래도 옥연이 눈을 뜰 때까지 한 번도 주막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국자는?"옥연의 첫마디에 영희가 눈을 감았다."어머니는 쓰러지고도 국자부터 찾으세요?""바닥에 떨어졌으면 다시 삶아야 한다.""아버지가 붙잡으셨어요. 국자도, 어머니도 둘 다 안 떨어졌습니다."막내가 대답하다 입술을 깨물었다.의사는 검사 결과를 설명하러 다시 들어왔다.심장과 폐의 힘이 모두 약해져 있었고 혈압도 쉽게 떨어졌다. 한 곳을 치료하면 예전처럼 회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온몸이 오래 살아낸 만큼 지쳐 있다는 말이었다."다시 정신을 잃을 수 있습니다. 입원해서 경과를 보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의사는 가족들을 한 번 둘러보았다."연세를 생각하면 마음의 준비도 하셔야 합니다. 무리해서 걷거나 일을 하시면 안 됩니다."옥연은 의사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영희가 대신 입원 절차를 묻는 동안 옥연은 창가의 휘를 바라보았다. 청색 눈동자에는 화보다 두려움이 짙게 깔려 있었다.의사가 나가자 휘가 침대 가까이 왔다."당장 솥과 국자를 놓아라."명령하는 말투였으나 목소리는 낮게 갈라졌다."의사 선생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그러니 이번에는 말을 들어라.""몸을 조금 추스른 뒤, 하루만 더 장사하겠습니다."병실 안의 네 사람이 동시에 옥연을 바라보았다.영희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안 됩니다. 오늘 쓰러지신 걸 벌써 잊으셨어요?""잊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 날을 제 손으로 정하려는 거다."옥연은 숨을 한 번 고른 뒤 말을 이었다."장사를 하느라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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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마지막으로 지피는 아궁이 3

- 2005년 9월 30일, 마지막 장사 -옥연은 그날 이후 스물아홉 날 동안 국자를 들지 않았다.영희가 약과 식사를 챙겼고 철수와 막내는 번갈아 주막에 머물렀다. 휘는 밤마다 옥연의 굳은 손가락을 주무르며 통증만 덜어주었고, 수명을 억지로 늘리는 힘은 쓰지 않았다.기력이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다만 옥연은 마지막으로 아궁이 앞에 앉아 가족과 손님을 맞을 만큼의 힘을 조용히 모았다.9월 29일 저녁, 옥연이 다음 날 문을 열겠다고 하자 윤미정 기자는 예전에 주막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에게만 소식을 전했다.동이 트기 전, 옥연은 휘의 등에 기대 부엌으로 들어갔다.지팡이는 막내가 들었고 영희는 옥연의 팔을 받쳤다. 철수는 문턱마다 미끄러질 만한 물기가 없는지 먼저 살폈다.옥연은 아궁이 앞의 낮은 의자에 앉았다.막내가 마른 장작을 쌓고 철수의 큰딸이 쌀을 씻었다. 영희의 아들은 채소를 다듬었으며 어린 손주들은 그릇과 수저를 닦아 상 위에 놓았다.후손들은 옥연을 할머니나 증조할머니라 불렀다.휘에게는 모두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는 자신보다 백발이 성성한 철수에게 아이라고 말하면서도 어린 손주가 장작 가까이 가면 누구보다 먼저 바람으로 옷자락을 붙잡았다."도련님, 불씨를 주십시오."옥연이 손을 내밀었다."손을 펴라."휘는 등불에서 좁쌀만 한 푸른 불씨를 떼어냈다.그가 옥연의 손 위에 자기 손을 겹치자 푸른빛 가장자리에 금빛이 피어났다. 두 사람은 함께 마른 짚단 가까이 손을 내렸다.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불이 붙었다.아궁이 안이 밝아지자 옥연의 눈가에 깊은 주름이 환하게 드러났다. 휘는 무릎을 꿇은 채 그녀의 앞치마 끈을 매어주었다.손이 잘 움직이지 않는 옥연을 대신해 허리 뒤에서 매듭을 만들고, 흘러내린 흰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국 한 그릇을 바치던 아이였고, 지금은 그의 손에 온몸을 기대는 노인이었다."너무 세게 묶으셨습니다.""풀리면 네가 또 일어나려 할 것이다.""앞치마로 사람을 의자에 묶는 신령은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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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마지막으로 지피는 아궁이 4

"저희가 적어둔 세상을 다 만들지는 못했습니다."정애가 흙벽의 문장을 바라보았다.[도망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어 이 밥값을 갚겠습니다.]"그래도 예전보다 도망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날은 많아졌습니다. 저희가 받은 밥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며 살았습니다.""그럼 외상은 이미 다 갚았구나."옥연은 두 사람의 이름을 직접 불러 자리를 권했다.민호와 정애가 첫 숟갈을 삼키자 감사의 빛이 솥으로 가지 않았다. 금빛은 옥연의 의자 주위를 맴돌며 굽은 어깨와 흰머리를 따뜻하게 감쌌다.휘는 그 빛을 붙잡아 옥연의 수명으로 바꾸려 하지 않았다.그것이 사람들의 감사이며 옥연이 살아낸 삶의 온기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는 다만 빛이 사라질 때까지 옥연의 손을 감싸고 있었다.해가 기울 무렵, 마지막 손님 한 사람이 대문을 넘었다.김 씨의 증손자는 낡은 노 하나를 들고 왔다. 오래전에 나룻배를 젓던 김 씨가 쓰던 물건은 아니었으나, 집안에서 대를 이어 강가에 세워두었던 노라고 했다."증조할아버지가 주모님께 쌀가마니를 약속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컸습니다."그가 쌀 한 자루를 내려놓았다."몇 대가 지나서, 저도 가져왔습니다."옥연은 웃으며 자루를 두드렸다."쌀은 벌써 여러 번 받았는데 또 가져오셨군요.""그 빚이 아니랍니다. 앞으로 배고픈 사람이 오면 쓸 쌀입니다."마지막 국그릇은 옥연이 직접 들었다.철수와 영희가 말렸고 막내는 아예 상을 옥연의 의자 앞으로 가져왔다. 휘는 국자를 쥔 그녀의 손 위에 손을 포갠 채 한 번 더 물었다."반드시 네가 놓아야 하느냐.""마지막 그릇은 제가 손님께 드리고 싶습니다."휘는 더 말리지 않았다.국자의 무게는 휘가 받치고, 그릇은 영희와 철수가 함께 들었다. 막내가 상이 흔들리지 않게 붙들었으며 후손들은 옥연이 지나갈 한 걸음의 길을 비웠다.옥연은 가족의 손에 기대 그릇을 상 위에 놓았다."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어서 드세요."김 씨의 증손자가 두 손으로 그릇을 받았다."잘 먹겠습니다, 주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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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마지막으로 지피는 아궁이 5

옥연은 웃다가 가슴에 손을 얹었다. 영희가 곧바로 약을 내밀었고 휘는 그녀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숨이 가라앉은 뒤 옥연은 삼 남매를 차례로 바라보았다."내가 떠난 뒤에도 너희 삶을 이 집에 묶지 마라."철수가 수저를 내려놓았다."어머니.""집을 지키는 것과 집에 갇히는 것은 다르다. 너희가 돌아올 수 있게 남겨두면 된다."영희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그런 말씀을 오늘 다 하셔야 해요?""오늘 안 하면 너희가 또 바쁘다고 먼저 갈 테니까."옥연은 영희의 손을 잡았다."철수야, 너는 동생들 앞을 막느라 평생 먼저 어른이 되었다. 이제는 힘들면 동생 뒤에도 서거라.""네, 어머니... 그렇게 하겠습니다.""영희야, 사람들 상처를 살피느라 네 아픈 곳은 늘 나중에 두었지. 이제 네 몸부터 돌보아라."영희는 대답 대신 옥연의 손등에 이마를 댔다."막내야."막내는 웃는 얼굴을 만들려 했으나 입꼬리가 자꾸 내려갔다."네. 어머니.""형과 누나를 웃게 하는 건 좋지만, 네가 울어야 할 때까지 웃기지는 마라."막내는 끝내 고개를 숙였다."저도 오늘은 좀... 울겠습니다."그는 옥연의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한참 뒤 막내가 눈물 젖은 얼굴로 휘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아버지, 마지막으로 번쩍 한 번만 해주십시오.""네가 넘어지면 네 어머니가 다시 일어나려 할 것이다.""안 넘어지게 들어주시면 되잖아요."휘가 손가락을 움직였다.막내의 몸이 대청 바닥에서 손바닥 하나 높이만큼 떠올랐다. 젊은 날처럼 머리 위까지 들리지는 않았지만, 막내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아이처럼 웃었다."이제 됐습니다. 평생 자랑할 겁니다.""내려놓기도 전에 시끄럽구나."막내의 발이 조심스럽게 바닥에 닿았다.옥연은 웃음 속에서 눈물을 닦았다.삼 남매는 한 사람씩 옥연 앞에 절했다. 어머니가 아직 살아 있는데 무슨 절이냐며 손주들이 울었으나, 세 사람은 자신들을 살려 가족으로 받아준 날부터 받은 밥과 이름에 인사하는 것이라 했다.옥연은 세 아이의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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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삼강, 그 등불 아래 1

- 2005년 10월 1일 깊은 밤 -아궁이의 불은 오래전에 잦아들었다.부엌에는 등불만 남아 푸른빛과 금빛을 작게 흔들고 있었다. 마른 장작이 식으며 가끔 내는 소리와 문밖의 강물 소리가 고요한 주막 안에서 번갈아 들렸다.옥연이 눈을 떴다.고개는 여전히 휘의 가슴에 기대어 있었고, 한 손은 남색 도포 자락을 쥐고 있었다. 잠들기 전과 같은 자세였으나 숨을 들이마시는 데에는 전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다.휘는 바로 알아차렸다."깼느냐.""얼마나... 잤습니까?""반 시진도 지나지 않았다."옥연은 눈을 들어 대문 쪽을 보았다.방 안에서 삼 남매와 후손들이 뒤척이는 기척이 들렸다. 누구도 깊이 잠들지 못한 채, 대청에서 작은 소리만 나도 숨을 죽이고 있었다."새벽이 멀었군요.""그렇다.""저는... 새벽까지 갈 수 있습니까?"휘의 손이 옥연의 손목을 감쌌다.맥은 가늘었고 박자는 자주 끊겼다. 신력으로 통증을 덜어줄 수는 있었으나, 멈춰가는 심장을 다시 젊게 만들 수는 없었다.휘는 괜찮을 것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어렵다."짧은 대답이 등불 아래로 떨어졌다.옥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거짓말을 하지 않으셔서... 다행입니다.""거짓말을 하면 네 숨이 늘어나느냐.""아니요... 제가 남은 시간을 잘못 쓰게 되겠지요."옥연은 휘의 소매를 잡고 몸을 조금 일으켰다.휘가 곧바로 등 뒤에 팔을 넣어 받쳤다. 옥연이 가장 편하게 기댈 수 있도록 자신의 몸을 벽처럼 세우면서도, 손끝에는 힘을 거의 주지 못했다."도련님께서는... 제 혼을 붙잡을 수 있습니까?"옥연이 먼저 물었다.휘의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렸다."육신을 떠나는 순간에는 가능하다.""그러면 어제 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붙잡을 수 있다는 말과 붙잡아도 된다는 말은 다르기 때문이다."휘는 옥연의 흰머리에 꽂힌 은비녀를 바라보았다.1936년 첫눈이 내리던 날, 그가 등불의 불씨를 옮겨놓은 비녀였다. 수많은 전쟁과 이별을 지나면서도 옥연은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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