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는 마당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사람들을 한 번 둘러보았다.“인간들은 빼앗겼던 것을 되찾았다고 저리 우는 것이냐.”“그렇지. 이름도, 땅도, 말도 빼앗겨본 사람만 아는 울음이 있네.”김 씨의 쉰 목소리에 휘의 시선이 옥연에게 향했다.옥연은 열기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다시 빈 사발을 채우고 있었다.휘는 잠시 후 팔을 들어 올렸다.그의 손짓을 따라 등불의 황금빛이 주막 지붕 위로 둥글게 퍼져 나갔다.한여름의 햇살보다 따뜻한 빛이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의 어깨에 내려앉았다.그날 밤, 옥연은 흙벽 앞에 서서 젖은 행주를 들었다.빼앗긴 시대에 그어진 외상 빗금들을 해방된 첫날만큼은 말끔히 지워주고 싶었다.“무얼 하려는 게요, 주모.”김 씨가 다급히 행주를 붙잡았다.“오늘로 모두 갚은 셈 아닙니까.”“아니오.”김 씨가 벽의 첫 세로줄을 거친 손끝으로 쓸었다.“이건 돈을 못 내서 생긴 흠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남았다는 자국이오.”사람들이 하나둘 벽 앞에 모였다.누구는 제 빗금을 찾았고, 누구는 돌아오지 못한 이의 선을 대신 짚었다.“지우지 마시오.”김 씨가 옥연의 손에서 행주를 받아 물대야 옆에 내려놓았다.“언젠가 우리 아이들이 이 벽을 보면, 우리가 무엇으로 이 세월을 견뎠는지 알 것 아니오.”옥연은 빗금을 따라 늘어선 손가락들을 바라보았다.등불의 황금빛 아래에서 검은 선들은 더 이상 빚처럼 보이지 않았다.그날을 버텨 다음 날로 건너간 사람들의 발자국처럼, 한 줄 한 줄이 벽 깊숙이 박혀 있었다.- 같은 해 11월 (해방 석 달 뒤, 늦가을) -만세 소리가 지나간 자리에 서로를 의심하는 말들이 자라기 시작했다.누가 어느 모임에 나갔는지, 누구의 형제가 일본 밑에서 일했는지, 누가 어떤 전단을 돌렸는지 따지는 목소리가 국밥 김보다 먼저 주막 안을 채웠다.같은 평상에서 술잔을 나누던 사람들이 완장을 달리 차고 마주 앉았다.한쪽이 나라를 팔았다고 하면 다른 쪽은 나라를 붉게 물들이려 한다고 맞받았고, 숟가락은 자주 그릇
Terakhir Diperbarui : 2026-08-29 Baca selengkapn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