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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화. 다 식은 죽

대리시 보호방의 아침은 죽 냄새로 시작되었다.간밤에 피를 쏟은 수기는 눈을 뜨지 못했다. 유백은 찢어진 어깨를 다시 꿰매고, 열이 오를 때마다 젖은 천을 갈았다. 려화는 침상 곁에서 그릇을 들고 있었다.“한 술도 못 먹었어요.”“억지로 넣으면 토합니다.”“그럼 언제까지 기다려요?”“눈을 뜰 때까지요.”유백은 약병을 닫았다. 위로하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새벽부터 세 번이나 수기의 맥을 짚었다. 려화는 그가 손을 씻는 횟수를 세다가 그만두었다.보호방에는 사람이 눕는 침상보다 지키는 사람이 앉을 걸상이 더 많았다. 밤새 당직을 선 포졸은 벽에 등을 붙인 채 졸았고, 요분은 숯이 꺼질 때마다 발끝으로 화로 뚜껑을 밀었다. 누가 큰 소리를 내면 수기가 깰까 모두 숨을 낮췄지만, 마당의 닭은 사정을 몰랐다. 홰를 벗어난 닭 한 마리가 회랑을 뛰어다니며 꼬꼬댁 울었다.려화는 그 평범한 소리가 고마웠다. 어제 둑에서 죽을 수도 있었던 오라비와 오늘 아침 닭 울음까지 듣고 있다는 사실을 함께 믿게 해주었다.침상 위에서 수기의 입술이 움직였다.“함…….”“가라앉았어요.”려화가 가까이 몸을 숙였다.“족보함은 가라앉았어요. 저는 여기 있고요.”수기의 눈꺼풀이 겨우 들렸다. 그는 누이의 얼굴을 확인한 뒤 다시 눈을 감았다. 그제야 려화는 밤새 쥐고 있던 죽그릇을 내려놓았다.바깥 회랑에서는 곡우와 노탁이 서로를 보지 않는 데 애를 쓰고 있었다.노탁은 오른쪽 기둥에 기대 있었고, 곡우는 왼쪽 기둥 아래에서 젖은 신을 말렸다. 두 사람 사이에는 어젯밤 수차막보다 넓은 마당이 놓여 있었다.“무릎은 어떻소?”“걸을 만해요.”“의원이 보았소?”“돈 안 받는 의원이 안에 있는데 뭘 또 불러요.”노탁이 입을 다물었다. 곡우도 신을 뒤집기만 했다. 노탁은 빈 객방 삯을 알아보겠다고 한 말을 기억했고, 곡우는 그가 정말 허리춤의 돈을 세던 모습을 기억했다. 둘 다 먼저 그 이야기를 꺼낼 배짱은 없었다.노탁은 결국 동전 일곱 닢을 꺼내 곡우 옆에 놓았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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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화. 떠나는 사람의 밥값

계화사 안쪽 집에서는 아침마다 쌀을 되었다.유 마마가 됫박을 채우면 교령이 장부에 사람 수를 적었다. 어른 열둘, 아이 다섯. 재봉 일을 나간 사람에게는 점심 쌀을 덜 주고, 젖먹이가 있는 방에는 땔나무를 하나 더 넣었다.그날은 숫자가 맞지 않았다.“한 사람이 적습니다.”교령이 장부를 다시 세었다.“아이까지 둘이에요.”안방에서 보퉁이를 멘 여자가 나왔다. 한 손에는 잠든 아이가 안겨 있었다. 이 집에 들어온 지 넉 달이 되었지만, 누구도 밖에서 쓰던 이름을 묻지 않았다.그녀가 쓰던 방에는 접은 이불과 바느질 광주리만 남아 있었다. 같은 방을 쓰던 여자는 베개 밑에서 마른 대추 두 알을 찾아 보퉁이에 넣어주었다. 다른 여자는 떠나는 사람 때문에 남은 이들이 더 위험해진다며 문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다.아이들은 어른들의 다툼을 몰랐다. 밥 짓는 솥 가까이에 둘러앉아 누가 누룽지를 먼저 먹을지 손가락으로 순서를 정하고 있었다.“오늘 나가겠습니다.”유 마마는 쌀 됫박을 내려놓았다.“어디로 가십니까?”“남문 밖입니다.”“남문 밖 어디요?”“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들었습니다.”“누구에게요?”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이가 잠결에 칭얼거리자 등을 두드렸다.유 마마가 문 앞을 막았다.“호적도 없이 나가면 첫 검문에서 붙잡힙니다. 전남편 집에서 사람을 풀었을 수도 있어요.”“그럼 여기서는 언제 나갈 수 있습니까?”“먹고살 길이 생기면—”“바느질 삯의 절반을 방값으로 내고 있습니다. 쌀값도, 약값도 냈어요. 더 갚아야 할 목숨값이 얼마나 남았습니까?”유 마마의 얼굴에 주름이 깊어졌다. 이 집을 처음 열었을 때는 사흘만 숨겨주면 되는 여자가 많았다. 사흘이 석 달이 되고, 석 달이 삼 년이 되는 동안 잠그는 문이 늘었다. 밖의 남편과 관청을 막으려고 단 문이 안의 여자까지 가두고 있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방마다 문이 열렸다. 소매를 걷어붙인 여자, 젖은 머리를 빗던 여자, 아픈 아이를 업은 여자가 말없이 마루로 나왔다.교령은 유 마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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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찻잔을 식히는 사람

청묵재는 해가 진 뒤에도 문을 열지 않았다.곡우는 대리시에서 돌아오자마자 무릎이 아프다며 이층으로 올라갔다. 옥선은 맞은편 주가에서 늦은 저녁을 보냈다. 소의는 먹을 갈지 않고 빈 종이 앞에 앉아 있었다.빗장이 한 번 울렸다.경연이었다.검은 겉옷의 어깨에 가는 비가 맺혀 있었다. 소의가 문을 열어둔 채 비켜서자 그는 신발의 진흙을 문밖에서 털고 들어왔다.평소의 경연이라면 젖은 겉옷부터 벗어 물 한 방울도 마루에 떨어뜨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은 처마에서 한참 서 있었는지 소맷단까지 축축했다. 소의는 옷을 받아 걸어주지 못하고 빈 의자 등받이만 가리켰다. 경연도 그녀가 손을 내밀지 않은 까닭을 묻지 않았다.“대리시로 오지 말라 하셨습니다.”“그래서 내가 왔습니다.”그 말 뒤에 둘 다 입을 다물었다. 소의는 어제보다 더 차갑게 굴 생각이었고, 경연은 명령한 일을 사과할 생각이었다. 막상 마주 앉자 준비한 문장들이 지나치게 반듯해 어느 것부터 꺼내도 거짓말처럼 들렸다.소의는 상 위에 차를 놓았다. 물을 너무 오래 끓인 탓에 첫 잔에서는 쓴 냄새가 났다. 경연은 입을 대지 않고 찻잔을 내려다보았다.“매죽원에 혼자 간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그의 눈이 들렸다.“하지만 다시 같은 일이 생겨도 가만히 기다리지는 못할 겁니다.”“알고 있습니다.”“그러면 왜 오셨습니까?”경연은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오래된 기록을 새 종이에 옮겨 쓴 사본이었다.“내 어머니의 사망 기록입니다.”소의의 손이 종이 위에서 멈췄다.“왜 제게 주십니까?”“당신이 매죽원까지 간 까닭을 이제는 압니다.”소의는 부정하지 않았다.“려화 아씨를 찾으러 갔습니다.”“그것만은 아니었지요.”“그 사실을 알면서도 이걸 내주십니까?”“당신 아버지를 믿어서 주는 것이 아닙니다.”“저도 아버지를 믿어달라고 한 적 없습니다.”경연은 잠깐 눈을 감았다. 또 심문하는 말투로 돌아갔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잘못 말했습니다.”소의는 그가 사람 앞에서 자기 말을 거두는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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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묻지 않은 것

소의는 같은 줄을 두 번 읽었다.진문재는 임원기의 시신을 확인했고, 병사로 기록했으며, 매장까지 지켜보았다고 적혀 있었다. 그날 이후 임원기는 세상에서 사라졌다.“아버지가 거짓 증언을 했습니다.”“그렇습니다.”경연은 변명하지 않았다.“어머니가 살아 나갔다면 아버지가 도왔을 수도 있고, 죽었다면 마지막을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둘 중 어느 쪽이든 내가 찾아야 합니다.”소의가 기록을 접었다.“함께 찾겠습니다.”“그 말은 쉽게 하지 마십시오.”“쉬운 말이 아닙니다.”경연의 턱이 굳었다. 그는 매죽원에서 피 묻은 손을 보았던 순간부터 한 번도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화를 내면 다시 혼자 갈 것 같았고, 붙잡으면 자기 곁에서 더 멀어질 것 같았다.“당신이 사라진 줄 알았습니다.”소의의 눈이 커졌다.그는 그제야 대답이 늦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소의는 문서의 모순에는 빨랐지만, 자기 때문에 누군가 두려워했다는 말 앞에서는 아무것도 고르지 못했다.“그래서 대리시에 오지 말라고 하셨습니까?”“내 눈앞에 두고 싶었습니다.”“그건 보호가 아니라—”“압니다.”경연이 먼저 말을 끊었다. 소의는 준비했던 반박을 잃었다.등잔 심지가 타들어가 불꽃이 길어졌다. 소의가 심지를 자르려고 몸을 숙였다. 경연도 같은 순간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맞닿았다.이번에는 둘 다 곧바로 떼지 않았다.소의가 먼저 고개를 들었다. 경연은 평소보다 가까웠다. 서늘하던 눈매 아래로 피로가 짙었고, 반듯한 옷깃 한쪽이 빗물에 젖어 조금 꺾여 있었다.그녀는 손을 들어 옷깃을 바로잡았다.경연의 숨이 멎었다.가느다란 손가락이 목 가까이를 스쳤다. 그 작은 접촉만으로도 그가 수없이 눌러온 장면이 한꺼번에 살아났다. 손목을 붙들어 상 위로 끌어당기고, 붉은 입술을 벌려 숨을 삼키고, 수수한 옷 아래 감춰진 몸을 제 손으로 확인하는 생각.그는 상 가장자리를 움켜쥐었다.“물러나길 바라십니까?”소의는 그 물음의 뜻을 한참 뒤에 알아들었다. 손을 거두어야 하는데 손가락은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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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화. 기원의 새 관복

기원의 집에는 방이 하나뿐이었다.낮에는 부친의 약을 달이고 밤에는 두 사람이 발을 엇갈려 누웠다. 비가 오면 북쪽 벽부터 젖어 이불을 남쪽으로 밀어야 했다.그날 밤 부친은 기침하다 피를 토했다.기원은 피 묻은 수건을 재빨리 접었다. 부친은 못 본 척해주는 아들의 손을 보며 더 미안해졌다.“약이 쓰구나.”“쓴 약이 잘 듣습니다.”“그건 의원이 하는 말이고.”“값이 비싼 약도 잘 듣습니다.”부친이 웃으려다 다시 기침했다. 기원은 약 사발을 받아 바닥에 내려놓았다. 장은이 보낸 약재는 사흘 만에 열을 내렸다. 대리시 녹봉으로는 한 봉지도 사기 어려운 것이었다.벽의 못에는 새 관복감이 걸려 있었다. 정식 관리가 되면 입으라며 부친이 겨울 이불을 팔아 산 것이었다. 아직 옷도 되지 못한 푸른 천이 방 한쪽을 차지했다. 기원은 추운 밤마다 그 천을 이불 위에 덮지 않았다. 한 번이라도 몸을 덥히는 데 쓰면 평생 서리로 남을 것 같았다.대리시에서 경연과 나란히 걸을 때면 사람들은 검은 관복만 보고 먼저 길을 비켰다. 기원이 밤새 작성한 문서도 경연이 펼쳐야 비로소 관리들의 말이 되었다. 그는 그 질서를 미워했고, 어느 날은 경연보다 더 정확히 일한다는 사실만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문밖에서 발소리가 멎었다.장은은 검은 우산을 접고 들어왔다. 젖은 신발을 벗을 곳도 마땅치 않아 문턱에 그대로 섰다.“효자에게 빚을 지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기원이 방문을 등으로 막았다.“원하는 게 무엇입니까?”장은은 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형부 낭중의 추천서였다. 기원의 이름과 경력까지 적혀 있었지만 마지막 관인은 비어 있었다.“한 번만 도와주면 찍힙니다.”기원은 추천서를 펼쳐 빈자리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관인 하나만 찍히면 부친이 이불을 판 일이 어리석지 않게 된다. 그 자리에 손가락을 오래 두는 동안 장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신을 숨겨달라는 겁니까?”“아닙니다. 사람 하나를 만나야 합니다.”“누구를요?”“문려화.”기원의 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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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화. 안쪽 문을 연 사람

묘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기 전, 대리시 동문에 수레 두 대가 들어왔다.낡은 포목 수레였다. 겉에는 빈 광주리와 짚단을 실었고 안쪽에는 사람이 누울 자리를 만들었다. 고환이 바퀴를 확인하는 동안 수레꾼들은 처마 밑에서 비를 피했다.기원은 회랑을 가로질러 뛰었다.“수레를 내보내면 안 됩니다!”당직 포졸이 길을 막았다.“배 대인은 아직 오지 않으셨습니다.”“안에 든 사람부터 내려!”그가 수레 문을 잡는 순간, 뒤에 서 있던 수레꾼이 허리춤으로 손을 넣었다.번쩍.짧은 칼이 빗물을 갈랐다. 기원이 몸을 비틀었다. 칼끝이 소매를 찢고 팔을 스쳤다.“자객이다!”고환의 외침이 마구간 지붕을 울렸다.포졸들이 달려들었다. 앞 수레의 짚단이 한꺼번에 무너졌고 그 속에서 사내 둘이 튀어나왔다. 한 명이 횃대의 말을 풀고, 다른 한 명이 보호방 쪽문으로 달렸다.쨍그랑!약 달이던 질그릇이 회랑 바닥에서 깨졌다. 요분이 문빗장을 밀어 잠그고 안쪽에서 소리쳤다.“려화 낭자, 침상 뒤로 가!”옆방의 포졸 하나가 바깥문을 닫으려 뛰었지만 사내의 발에 걸려 마루 아래로 굴렀다. 다른 포졸은 칼을 뽑다가 좁은 회랑에서 칼집이 기둥에 부딪쳤다. 밤새 같은 길을 지킨 사람들이었으나, 안쪽에서 칼이 나올 줄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말들이 마구간 벽을 차며 울었다. 히이잉! 젖은 짚과 깨진 약 냄새가 한꺼번에 퍼졌다.청도가 수기의 침상 앞에 섰다. 려화는 오라비를 끌어내리려 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유백이 수기의 겨드랑이에 팔을 넣었다.“다리를 드시오.”“어디로요?”“검시방. 시신 두는 곳까지 쫓아오지는 않겠지.”유백도 확신하지 못했다.문밖에서 쿵, 쿵! 빗장이 휘었다. 요분이 어깨로 문을 받쳤다.“뒷문으로 가!”려화와 유백이 수기를 끌고 안채 쪽으로 움직였다. 청도는 뒤따르다 열린 창문을 보았다.검은 손이 창살 사이로 들어왔다. 청도의 입을 막고 머리채를 잡아당겼다.“읍……!”그녀의 이마가 창틀에 부딪쳤다. 손이 풀리는 대신 창살 하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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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화. 빗속의 세 갈래 길

수레는 동관가를 빠져나와 종루 앞에서 남쪽으로 꺾였다.노탁의 말이 젖은 돌길을 차며 뒤를 쫓았다. 다그닥, 다그닥! 비를 피해 처마 밑에 모인 사람들이 놀라 벽으로 붙었다. 뒤집힌 채소 광주리가 길 한가운데 굴렀다.생선 장수가 젖은 좌판을 몸으로 막았고, 짐꾼 둘은 수레바퀴에 깔릴 뻔한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누군가는 대리시 욕을 했고 누군가는 도망가는 수레에 돌을 던졌다. 비는 신분과 사정을 가리지 않고 모두의 얼굴을 때렸다.“대리시다! 길을 비켜!”앞 수레가 시장 수레들 사이로 사라졌다. 같은 덮개를 씌운 수레 세 대가 남시 갈림길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렸다.노탁이 고삐를 당겼다.“빌어먹을.”그는 셋 중 어느 수레도 확신하지 못했다. 곡우가 곁에 있었다면 먼저 지나간 장사꾼에게 물었을 것이다. 노탁은 말 위에서 한 바퀴 돌다가 가장 가까운 과일 노점에 소리쳤다.“안에서 사람 소리 난 수레를 봤소?”노점 주인은 놀라 귤 광주리만 끌어안았다.“비 오는데 내가 수레 속까지 어찌 봐!”틀린 질문이었다. 노탁은 입술을 씹고 다시 길을 보았다.뒤따라온 포졸도 셋뿐이었다. 그는 한 명을 동서대로에, 한 명을 직금방 쪽에 보냈다. 자신은 바퀴가 가장 크게 튄 수레를 따라 남쪽으로 달렸다.그 판단이 맞는지 알 수 없었다.경연의 말이 곧 옆으로 붙었다. 소의는 마차를 타고 오지 않았다. 마차가 장터에 막히자 내려서 곡우와 함께 골목을 가로질러온 참이었다.“왜 또 따라왔습니까?”경연이 말 위에서 물었다.소의는 숨을 고르느라 바로 답하지 못했다.“청도를 압니다. 저 사람들이 어디로 데려갈지도—”“모르지 않습니까.”“그러니 묻고 있습니다.”곡우가 길가의 숯 배달 아이를 붙잡았다. 아이는 넘어진 지게에서 숯을 줍다 수레에 치일 뻔했다.“검은 포목 수레가 어느 쪽으로 갔어?”“두 대나 갔어요.”“사람 소리 난 쪽.”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하나는 비어 있었고, 하나에서는 누가 바닥을 찼어요. 청류교 쪽으로 갔습니다.”노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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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화. 청류교의 검은 수레

“뒤로 물러서!”경연이 소의를 안장에서 내려놓고 수레로 달렸다.검은 덮개 안에서 칼날이 튀어나왔다. 경연이 몸을 젖히자 칼이 턱밑을 스쳤다. 그는 손목을 잡아 수레 벽에 내리쳤다.퍽!칼이 다리 위로 떨어졌다. 사내가 덮개를 걷어차고 나왔다. 둘이 젖은 포목 위에서 뒤엉켰다.수레는 싸울 때마다 삐걱거리며 물 쪽으로 기울었다.“안에 몇 명입니까?”소의가 수레 벽을 두드렸다.“저 혼자예요!”청도의 목소리였다.노탁이 말에서 뛰어내려 수레 뒤를 잡았다. 곡우도 따라붙으려 하자 그가 고함쳤다.“오지 마시오!”“둘로 버텨져요?”곡우는 길가 포목상의 긴 장대를 빼 들었다. 주인이 천값을 외쳤지만 듣지 않았다. 장대를 수레 아래 넣어 바퀴가 더 빠지는 것을 막았다.끼이익.젖은 나무가 휘었다.“지금 열어요!”소의가 문빗장을 당겼다. 안쪽에서 천이 감겨 열리지 않았다. 청도는 손이 묶인 채 몸으로 문을 밀었다.“아래 매듭이에요!”소의가 무릎을 꿇고 수레 밑으로 손을 넣었다. 흙탕물이 소매 안까지 흘러들었다. 손끝에 굵은 밧줄이 잡혔다.밧줄은 물을 먹어 손에서 자꾸 미끄러졌다. 소의는 손톱이 뒤집히는 것도 모르고 매듭 틈을 벌렸다. 안에서는 청도가 묶인 발로 수레 벽을 밀었다.“조금만 더 버텨요.”“아씨부터…… 아씨를 지켜주세요.”“려화 아씨는 대리시에 있습니다. 지금은 당신 차례예요.”청도의 발길질이 잠깐 멎었다가 더 세게 이어졌다.그 순간 수레 위에서 사내가 경연을 밀쳐냈다. 경연의 등이 난간에 부딪혔다. 사내는 떨어진 칼을 향해 몸을 날렸다.기원이 달려와 먼저 칼을 걷어찼다.그는 다친 팔을 쓰지 못해 온몸으로 사내를 들이받았다. 두 사람이 다리 바닥을 굴렀다. 사내의 주먹이 기원의 옆구리에 꽂혔다.“네가 열어준 문이다!”기원이 이를 악물고 사내의 허리띠를 붙들었다.“그러니 내가 닫는다.”경연이 일어나 사내의 뒷목을 눌렀다. 노탁이 포승을 던졌다.“묶어!”포졸 둘이 달려들어 사내의 팔을 꺾었다.수레 아래에서 툭,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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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 문을 연 값

기원은 대리시 심문방이 아니라 검시방 걸상에 앉았다.유백이 찢어진 팔을 씻는 동안 그는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빗물과 피가 손끝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부친에게는 사람을 보냈습니다.”경연이 말했다.기원의 어깨가 움찔했다.“죄를 줄여주시려는 겁니까?”“쓰러진 노인을 혼자 두지 않는 것과 네 죄는 관계없다.”기원은 입술을 깨물었다. 용서보다 견디기 어려운 말이었다.“장은이 약과 추천서를 줬습니다. 문려화에게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습니다.”“믿었습니까?”“안 믿었습니다.”“그런데도 말했군.”“예.”기원은 끝내 핑계를 붙이지 못했다. 병든 부친도, 서리의 낮은 자리도 그가 시각을 넘긴 일을 대신해주지 않았다.“추천서를 어디에 두었지?”“집에 있습니다.”“부친이 보았습니까?”“아직은요.”“고환을 보내 가져오겠다. 네가 받은 약과 남은 은전도 함께 압수한다.”기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약까지 거두면 부친의 열이 다시 오를 터였다. 그는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경연은 유백에게 같은 약을 대리시 비용으로 보내라고 했다. 죄인의 가족을 굶기지 않는 일은 자비가 아니라 관청이 져야 할 몫이었다.경연은 고환에게 그를 옥사가 아닌 당직방에 가두라고 명했다. 상처가 아문 뒤 정식 심문을 받게 될 터였다.문밖에 있던 소의는 기원이 끌려갈 때 한쪽으로 비켜섰다. 기원은 그녀에게도 사과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하든 살아 돌아온 청도에게 먼저 해야 한다는 것만은 알았다.청도는 요분의 방에서 젖은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청석이 달려와 누이의 손목을 보자마자 얼굴을 돌렸다.“또 나 때문이야?”“아니야.”“누나는 거짓말할 때 쓸데없는 말을 길게 하잖아. 이번에는 말이 너무 짧아.”청도는 입을 다물었다.청석은 화를 내고 싶었지만, 누이의 젖은 머리와 붉게 부은 이마를 보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는 요분이 내준 마른 천을 집어 청도의 어깨에 둘렀다.“백류나루 말고 또 들은 것 없어?”“없어.”“누나.”“정말 없어.”청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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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화. 첫 번째 붉은 혼서

백류나루에는 강안개가 내려앉아 있었다.창고 지붕과 돛대 끝만 희뿌옇게 떠올랐다. 짐꾼들은 하루 품삯을 받으려고 마지막 쌀가마를 날랐고, 뱃사공들은 물이 더 차기 전에 배를 띄우라며 서로 욕을 했다.경연은 포졸들에게 칼을 감추게 했다.“사람부터 가려낸다. 창고 안에 누가 있는지 모른다.”일곱 번째 창고의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안에서는 아이 우는 소리가 났다.소의가 먼저 알아보았다. 계화사 안쪽 집을 떠난 여자가 아이를 품에 안고 짐궤 옆에 앉아 있었다. 장은은 주판과 장부를 작은 화로에 넣고 있었다.“불에서 손 떼시오.”경연의 목소리가 창고를 가르자 짐꾼 차림의 사내들이 돌아섰다.장은은 주판알 하나를 끝까지 밀지 않은 채 손을 들었다.“아이 앞에서 칼을 쓰지는 않으시겠지요.”“당신이 그 말을 할 자격은 없습니다.”소의가 말했다.“청도를 납치했습니다.”“나는 말을 전하라고 했습니다.”“손목을 묶고 수레에 던지는 전갈도 있습니까?”장은의 시선이 잠깐 흔들렸다. 그는 자기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산 채로 데려오라고 했다. 청도의 손목에는 아직 밧줄 자국이 남아 있었다.경연이 포졸들에게 손짓했다.사내 하나가 먼저 칼을 뽑았다.챙!창고 안이 터졌다. 쌀가마가 무너지고 먼지가 솟았다.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여자는 아이를 감싸고 짐궤 뒤로 엎드렸다.노탁이 칼등으로 사내의 손목을 쳤다. 다른 사내가 뒷문으로 달아나자 곡우가 문밖에서 빗장을 걸었다.“도망갈 문에도 삯을 내야지!”사내가 문을 걷어차는 사이 포졸 둘이 덮쳤다.경연은 장은 앞에서 칼을 멈췄다. 장은은 달아나지 않았다. 대신 뒤에 놓인 붉은 함을 발로 밀어 배 쪽에 가까이 보냈다.소의가 함을 잡으려 뛰었다.옆에서 칼날이 날아왔다. 경연이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칼이 소의의 소매 끝을 갈랐다. 경연의 칼끝이 사내의 목에 닿았다.“놓아라.”낮은 목소리에 사내의 손이 풀렸다.소의는 경연의 팔 안에서 숨을 몰아쉬었다. 허리를 감싼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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