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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붉은 혼서: Chapter 51 - Chapter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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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화. 려화 아씨가 숨긴 아이

“이 아이는 이제 문씨 집 사람이 아니다. 품삯도, 거처도 우리가 정하지 않는다.”총관은 몇 번 입술을 달싹이다 빈 가마를 따라 돌아갔다.완은 그가 골목 끝으로 사라진 뒤에야 아리에게 궤를 내밀었다.안에는 겨울옷 한 벌과 려화가 쓰던 작은 벼루, 머리빗이 들어 있었다. 궤 바닥에는 아리가 문씨 집에서 받지 못한 지난달 품삯도 놓여 있었다.“려화가 네 몫이라고 따로 적어뒀더구나.”아리는 동전을 세지 않았다.“아씨는 어디 계세요?”“찾고 있다.”“집에서는 정말 찾고 있어요?”완은 대답하기 전에 침선방 안을 둘러봤다. 계단 아래의 작은 요, 손을 데어 찬물에 담그고 있는 채란, 아리가 살린 혼례옷 소매가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나는 이제 찾으려고 한다.”아리는 완의 얼굴을 오래 봤다.“아씨가 꽃병을 깨뜨린 적 있어요.”“려화가?”“제가 깼어요. 내쫓길까 봐 숨어 있었는데 아씨가 자기가 그랬다고 했어요. 글도 가르쳐주고, 침선방에서 맞은 날에는 자기 방에서 재웠어요.”소란이 손등으로 눈을 훔쳤다.완은 궤 뚜껑을 만졌다. 딸과 한집에서 살면서도 처음 듣는 일이었다.교령이 탁자 위에 장부를 펼쳤다.“아리 품삯은 건당으로 줍니다. 먹고 자는 값은 절반을 받고, 나머지는 본인 손에 줍니다.”완이 비녀 하나를 뽑아놓으려 하자 아리가 먼저 궤 속 동전을 꺼냈다.“제 돈 있어요.”“그건 지난 삯이다.”“그래도 제 돈이잖아요.”완의 손이 멈췄다. 그녀는 비녀를 다시 꽂았다.“그래. 네 돈으로 내라.”교령이 장부에 아리 이름과 첫 삯 두 닢을 적었다.완은 곧 돌아가지 않았다. 해가 낮아질 때까지 침선방 구석에 앉아 아리가 잘라낸 실밥을 주워 작은 바구니에 담았다. 평생 시비들이 치워준 것이라 처음에는 붉은 실과 버릴 실도 구분하지 못했다.“그건 버리는 거예요.”아리가 완의 손에서 짧은 실을 빼냈다.“이건?”“그것도요.”“쓸 것은 없니?”아리는 바구니를 뒤져 손가락 두 마디보다 긴 실 하나를 골랐다.“이 정도는 돼야 매듭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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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밤 껍질과 부적

두 사람 앞에는 문씨 별원에서 나온 수레가 빠졌던 진창이 펼쳐져 있었다. 부러진 문짝은 대리시로 옮겼지만 길 가장자리에는 짓밟힌 갈대와 흙 묻은 붕대가 남아 있었다.노탁은 전날 큰길에서 포졸 여섯과 기다렸다. 려화를 지키라는 명을 받고도 빈 길만 지켰다. 덕수가 갈대길로 꺾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언제까지 여기만 볼 거예요?”곡우가 물었다.“어디로 갔는지 생각하는 중입니다.”“생각은 걸으면서도 할 수 있어요.”그녀가 먼저 갈대밭으로 들어갔다. 마른 잎이 치맛자락을 사각사각 긁었다.첫 번째로 만난 숯 장수는 입술이 터져 있었다. 장은의 사람들이 려화 행방을 물으며 숯자루로 얼굴을 쳤다. 그는 말하지 않으려 했지만 곡우가 넘어져 있던 지게를 세우고 흩어진 숯을 자루에 담자 입을 열었다.“다친 아낙이 움막 쪽으로 갔소. 젊은 여자가 부축했고.”“장은 사람들도 그 길을 압니까?”노탁이 묻자 장수가 턱으로 앞을 가리켰다.“방금 셋이 지나갔어.”노탁이 달리기 시작했다. 곡우도 치마를 걷어 들고 뒤를 쫓았다.숯 굽는 움막 앞에서는 늙은 노파가 부지깽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사내 하나가 부지깽이를 빼앗았고, 다른 둘은 문을 걷어찼다.“여자를 내놔!”“내 움막에는 숯하고 늙은이밖에 없다!”문짝이 부서지며 안에 있던 만금이 드러났다. 부은 발목을 묶은 채 벽에 기대어 있었다.노탁이 맨 뒤 사내의 허리를 들이받았다. 두 사람이 숯더미 위로 굴렀다. 검은 가루가 확 피어올랐다.“대리시다! 칼 내려놔!”“혼자 왔잖아!”두 번째 사내가 칼을 뽑아 노탁에게 달려들었다.곡우는 움막 지붕을 받치던 긴 장대를 잡아당겼다. 낡은 천막이 한쪽으로 무너지며 사내의 머리와 팔을 덮었다.“혼자가 아니라 둘이에요!”사내가 천 안에서 칼을 휘둘렀다. 북북, 천이 찢어졌다. 곡우가 장대를 온몸으로 밀어 그를 진흙에 눌렀다.노탁은 첫 번째 사내의 손목을 꺾어 칼을 빼앗았다. 세 번째 사내가 만금을 잡아 세우려 하자 노파가 부지깽이로 그의 정강이를 후려쳤다.퍽!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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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화. 구휼원의 빗장

말 세 필이 머리 위 길을 지나갔다. 발굽이 내리칠 때마다 흙덩이가 우수수 떨어졌다.곡우는 어둠 속에서 노탁의 허리띠를 잡고 있었다. 말소리가 멀어졌는데도 손을 놓지 않았다.노탁의 팔도 아직 그녀의 허리를 감은 채였다. 곡우가 올려다보자 그의 입술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흙과 땀 냄새 사이로 빠른 숨이 오갔다.노탁이 아주 작게 말했다.“이제 지나간 것 같소.”그제야 노탁은 팔부터 풀었다. 곡우의 허리에는 손바닥의 열이 그대로 남았다.곡우는 손을 놓지 않았다.“당 낭자.”“왜요.”“허리띠를 잡고 있소.”곡우가 손을 홱 놓았다. 금속 고리가 노탁의 옆구리를 탁 쳤다.“겁 안 났어요?”노탁은 대답이 늦었다.“당 낭자가 소리 낼까 봐 걱정했소.”“제가 방해됐다는 말이에요?”“아니, 그게 아니라.”노탁은 목소리를 더 낮췄다.“다칠까 봐 그랬다는 말이오.”곡우는 한동안 젖은 흙벽만 보았다.“노 포졸은 혼인하면 어머니랑 누이도 같이 살아요?”“누구 혼인 말이오?”“그냥 물어본 거예요.”노탁은 그제야 질문의 뜻을 짐작했으나 확신하지 못했다.“내 가족은 내 삯으로 먹일 거요. 다른 사람 돈을 달라 하진 않소.”“제가 다른 사람이죠?”“지금은…… 그렇소.”곡우가 노려보자 노탁은 자기가 또 잘못 답했다는 것만 알았다.말발굽 소리가 완전히 사라지자 두 사람은 도랑에서 올라왔다. 북성 위로 초승달이 걸려 있었다.노탁이 앞장서자 곡우가 그의 허리띠 끝을 다시 잡았다.노탁은 이번에는 말하지 않았다. 곡우도 까닭을 설명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무너진 성벽을 따라 옛 구휼원 쪽으로 걸었다. 멀리 검은 지붕 사이에서 등불 하나가 켜졌다가 곧 꺼졌다.구휼원 안에서 려화는 등잔 심지를 손가락으로 눌러 껐다. 무너진 지붕 사이로 두 사람의 발소리가 들렸다. 하나는 무거웠고 하나는 자꾸 마른 나뭇가지를 밟았다.그녀는 벽에서 빠진 벽돌을 두 손으로 들었다. 손바닥에 마른 흙이 붙었다.“문 아씨!”노탁의 목소리가 빈 마당에 울렸다.려화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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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딸의 빈 방

“이미 제 딸 얼굴을 보고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한 어미입니다. 더 나빠질 의심이 남았나요?”세린은 대답하지 못하고 방을 나갔다. 그의 발소리가 회랑 끝으로 사라지자 시비들이 다시 움직였다.완은 붉어진 손목을 소매 안에 감췄다.앞채에서 대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쾅!세린은 마부들에게 말을 내주지 말고 누구도 집 밖으로 보내지 말라고 했다. 완이 대문으로 내려갔을 때 늙은 문지기가 열쇠를 쥔 채 서 있었다. 문씨 총관과 안채 하인 여섯이 문을 사이에 두고 맞섰다.“열어.”완이 말했다.문지기는 열쇠를 자물쇠에 대지 못했다.“대감마님 분부가 먼저였습니다.”“려화가 여섯 살에 열병 났을 때 의원에게 업고 간 사람이 누구였지?”“접니다.”“그 아이를 찾으러 나갈 사람들도 네가 막을 거냐?”총관이 문지기의 팔을 잡았다.“대감 명을 거역하면 네 아들까지 내보낸다.”문지기는 마구간 쪽을 봤다. 그의 아들은 벌써 말 두 필에 안장을 얹고 있었다.열쇠가 자물쇠 안으로 들어갔다.찰칵.대문이 열리자 안채 하인들이 수레와 말을 끌고 나갔다. 완은 마지막 사람이 나갈 때까지 문 앞에 서 있었다. 문지기는 문씨 총관을 보지 않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서쪽 뜰의 유단희가 찾아온 것은 점심 종이 울릴 무렵이었다.그녀는 화려한 비녀를 모두 빼고 옅은 회색 옷을 입었다. 손에는 얇은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대감께서 침방에서 말씀하신 별원 이름을 적어뒀습니다.”완은 책을 받지 않았다.“값은?”“서쪽 뜰을 제 이름으로 남겨주세요. 저를 따르는 시비 둘의 월전도 대감이 무슨 처분을 받든 그대로 주시고요.”“내가 약속하면 믿겠니?”“대감 말씀은 침상에서 나오고 아침이면 사라집니다. 부인마님 약속은 장부에 남으니까요.”단희는 책을 탁자 위에 놓았다. 겉장 안쪽에는 날짜와 함께 세린이 머문 밤, 술을 마신 양, 약속한 물건이 적혀 있었다.“내 사생활을 기록했구나.”“제 생계입니다.”완은 소란에게 안채 장부와 붉은 인주를 가져오라고 했다.“서쪽 뜰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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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관을 여는 밤

‘문려화는 우리 부부가 낳은 딸이 아닙니다. 그 사실부터 제 입으로 말하겠습니다.’그녀가 봉랍을 눌렀다.문밖에서 세린이 문을 열라고 명했지만 완은 서찰이 마를 때까지 빗장을 풀지 않았다.* * *서찰은 해가 지기 전에 청묵재에 닿았다.소의가 봉한 종이를 펼칠 때 경연은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선산에서 다친 손에는 아직 그녀가 찢어준 회색 천이 감겨 있었다. 상처는 이미 아물기 시작했지만 새 천으로 바꾸지 않았다.“문려화는 친딸이 아니랍니다.”소의가 서찰을 건넸다. 경연은 글보다 먹물 밴 그녀의 손가락을 먼저 보았다.“손을 보여주십시오.”그 말은 소의가 했다. 경연이 다친 손을 내놓자 그녀는 회색 천의 매듭을 살폈다.“너무 오래 감았습니다. 새것으로 바꾸세요.”“아직 쓸 수 있습니다.”소의는 뜻밖의 대답을 들은 얼굴로 그를 보았다.“배씨 집안에서 천을 아껴야 할 만큼 사정이 어려운 줄은 몰랐습니다.”경연은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소의가 새 천을 꺼내려 하자 손을 거두었다.“이것이면 됩니다.”그는 천에 남은 그녀의 손길을 버리기 싫다고 말하지 못했다.소의의 눈에 경계가 얇게 올라왔다. 물건 하나도 돌려주지 않는 사람에게 다음에는 무엇을 빚지게 될지 계산하는 얼굴이었다.경연은 서찰로 시선을 내렸다.“심완 부인을 직접 만나야 합니다.”“제가 먼저 만나겠습니다.”“함께 가겠습니다.”“배 대인이 오시면 문씨 집안은 입부터 닫을 겁니다.”“당신 혼자 보내지는 않겠습니다.”소의의 입술이 다물렸다.경연은 그 말이 또 명령처럼 들렸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 *검시방 바깥마당에서는 품팔이 장정 여덟이 접어 둔 흰 천을 베고 누워 있었다.최만복은 가장 두툼하게 갠 것을 차지하고도 잠들지 못했다. 아내 정복례가 밤중에 어깨에 대는 천 수를 세러 왔기 때문이다. 복례는 등잔을 들고 천의 찢어진 곳과 관 멜대의 금 간 곳을 하나씩 확인했다.“여덟 명을 데려온다더니 왜 아홉 장이 나갔어?”“하나는 내가 썼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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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화. 대장공주 별원

“두 번 했어요. 한 번은 은자를 장부방에 가져다줬고, 한 번은 성 서쪽 별원으로 갔어요.”아리의 손이 멈췄다.“별원 이름이 뭐였지.”“기억 안 나면 말하지 마.”황 노파가 실을 당겼다.“억지로 기억하면 없는 말까지 붙는다.”아리는 소매 끝을 접으며 그날을 떠올렸다. 장은이 직접 마차에 태웠다. 높은 담 안에는 겨울인데도 푸른 소나무가 줄지어 있었고, 문을 지키는 호위가 장은을 보고 먼저 허리를 숙였다.“연양대장공주 별원이었어요.”유백의 손이 처음으로 멎었다.“전갈을 누구에게 줬습니까?”“문 안에서 기다리던 호위에게요. 장은 아저씨가 자기 이름을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계화사에서 왔다고만 하랬고.”“전갈 내용은 봤니?”“글을 다 못 읽을 때였어요. 봉한 것도 열지 않았고요.”아리는 바늘을 한 번 더 넣었다.“그런데 그날 돌아오는 마차에서 금연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황 노파가 숨을 멈췄다.“어머니라고는 말하지 않았어요. 이름도 안 불렀고요. 그냥 제 손을 보고 바늘을 너무 세게 잡는다고 했어요.”“너는 알아봤어?”“알아봤어요.”아리는 실을 잘랐다.“그래도 내리라고 했어요.”황 노파는 더 묻지 않았다. 유백도 닦던 도구를 다시 상자에 넣었다.긴 소매를 줄인 뒤에는 짧은 쪽의 솔기를 조금 풀었다. 두 소매 길이가 맞자 아리가 금연의 두 손을 배 위에 나란히 놓았다.“됐어요.”유백이 관 뚜껑을 들었다. 아리는 마지막으로 금연의 손을 봤다.“장은 아저씨가 별원에 전갈을 보낸 건 그 뒤에도 여러 번이에요.”“네가 간 적은?”“한 번뿐이에요. 마지막에는 금연이 갔어요.”관 뚜껑이 천천히 내려왔다.쿵.요분이 문밖에서 장정들을 깨우러 갔다. 황 노파는 남은 실을 감았고 아리는 잘라낸 천 조각을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유백은 대리시 당직 서리에게 연양대장공주 별원과 장은의 이름을 한 장에 적으라고 했다.당직 서리가 종이를 들고 뛰어나가자 복례가 막 꿰맨 흰 천을 들고 마당으로 돌아왔다. 첫 번째 새벽 종이 울렸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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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화. 세탁방의 값

“남의 집 애들 얼굴 보면서 줄 돈이면 똥물에 빠져도 싸요.”임강의 웃음이 사라졌다.“본 것을 말하지 않고 살면 아이들도 조용히 자랄 수 있소.”“누가 못 자게 하는데요?”“시장 밤길은 어두워. 순라꾼 집이라고 늘 안전한 건 아니지.”기수가 보향의 팔을 잡았다.“그만해.”임강은 물에 빠진 은자를 다시 줍지 않았다. 골목을 나서면서 연주에게 손까지 흔들었다.보향은 그가 모퉁이를 돌자 남편의 손을 뿌리쳤다.“저 인간이 누구야?”“예전에 같이 순라 돌던 사람.”“지금은?”“연양대장공주 별원 호위로 들어갔어.”“검은 마차는?”기수는 두 딸을 봤다.“너희는 안으로 들어가.”연화가 수건 더미를 품에 안았다.“이것만 다 개고요.”연주는 언니 옆에 딱 붙어 앉았다. 두 아이 모두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보향은 물속의 은자를 집게로 건져 남편 앞에 내려놨다.“나는 믿지 않지만, 사건 전날 밤 우물가에 검은 마차가 섰다는 말이 돌아요.”“당신도 봤어?”“창문으로 봤어. 당신이 마차 앞의 순라줄을 걷어주는 것도.”기수의 어깨가 내려갔다.“안에 누가 있는지는 몰랐어.”“그래서 돈을 받았고?”“마차를 세우지 말라고 했다. 높은 집 심부름이라 했고.”“얼마?”기수는 입을 다물었다.연화가 세탁 장부를 가져왔다.“지난달 쌀값이 비었어요. 아버지가 채운 돈 열 냥도 어디서 났는지 안 적혀 있고요.”보향이 딸을 돌아봤다.“너는 언제부터 그걸 봤니?”“엄마가 가게를 우리한테 준다며. 장부도 봐야죠.”기수는 큰딸 앞에서 얼굴을 들지 못했다.보향은 세탁 장부를 덮었다.“대리시에 말할 거야.”“안 돼.”“저 사람이 애들까지 봤잖아.”“그래서 더 말해야 해.”“내가 알아서 해.”보향은 남편을 한참 보았다.“당신이 알아서 한 일이 이거잖아.”보향이 두 딸에게 말했다.“겉옷 입어. 오늘은 청묵재에서 잔다.”기수가 그녀 앞을 막았다.“가족은 내가 지켜.”“입 다물고 돈 받은 사람이 어떻게?”“당신이 나서면 다 같이 위험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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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 첫 번째 거짓 자백

기수는 아내를 따라 빈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불 꺼진 탁자 위에 붓과 장부만 놓여 있었다.“집에 가자.”“대리시에 함께 가면.”“안 돼.”“그 말은 이제 못 믿어.”기수가 돌아서려 하자 보향이 그의 허리띠 끝을 잡았다. 새벽 순라를 나가던 날마다 침상으로 끌어당겼던 손이었다.기수의 몸도 그 손을 기억했다. 허리띠가 당겨지자 반걸음 뒤로 물러나 아내의 무릎 사이에 서려 했다. 보향의 손이 매듭에 닿으면 늘 그 뒤에는 뜨거운 입술과 흐트러진 이불이 따라왔다.그날은 매듭 안에서 작은 은자 하나가 떨어졌다.짤랑.기수는 몸을 굽히지 못했다.보향이 은자를 집었다.“이게 그 돈이야?”“보향아.”“누가 줬어?”기수가 눈을 감았다.“임강. 연양대장공주 별원에 있는 옛 순검이야.”보향은 허리띠를 놓았다.기수는 풀어진 매듭을 다시 묶지 않고 가게를 나갔다.* * *원기수는 날이 밝기 전에 대리시 문을 두드렸다.쾅. 쾅. 쾅.밤 당직을 서던 포졸이 작은 창을 열었다.“무슨 일이오?”기수는 허리에서 순라패와 짧은 봉을 풀어 문 앞에 놓았다.“나금연을 죽인 사람이 나요.”옥문을 닫던 소리가 안쪽에서 멎었다.기수는 심문방으로 끌려가지 않았다. 경연은 그를 사람들이 드나드는 대리시 앞마당에 앉혔다. 기원이 젖은 장부를 말리고, 옥졸들은 아침 교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거짓말을 숨기기에는 눈과 귀가 너무 많은 자리였다.소의도 청묵재로 돌아가기 전 마루 끝에 서 있었다. 전날 선산에서 빌려 입은 남색 겉옷은 방여운에게 돌려주고 자기 회색 옷으로 갈아입었다.기수는 우물가에서 금연과 다투다 물에 밀어 넣었다고 말했다. 여자가 살려달라고 매달렸지만 두레박 줄을 걷어냈고, 몸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고 했다.유백이 검시방에서 나와 그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금연은 우물에 들어가기 전에 죽었습니다.”기수의 입이 굳었다.“뒤통수를 크게 맞았고 물을 삼키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말한 대로는 죽을 수 없습니다.”“내가 잘못 기억한 거요.”“사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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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검은 마차가 간 곳

“내 홑이불 다섯 장이 바닥에 떨어질 뻔했어. 숫자까지 기억해.”산파는 기수가 기둥을 세운 뒤 우물 쪽 순라로 돌아가는 것도 봤다고 했다.연화가 장부의 빈칸을 짚었다.“아버지가 받아온 은자 열 냥은 여기에 없습니다.”연주가 언니 뒤에서 말했다.“어제는 한 냥 더 줬어요. 임강이라는 사람이.”기수가 벌떡 일어났다.“애들한테 묻지 마시오!”“아무도 묻지 않았어.”보향이 남편 앞을 막았다.“우리가 들은 걸 말하는 거야.”기수는 두 딸을 봤다. 연화는 장부를 놓지 않았고 연주는 집에서 가져온 수건 하나를 아직 품에 안고 있었다.소의가 연주에게 의자를 내주었다. 아이는 앉지 않고 어머니 곁에 섰다.경연이 포졸들에게 대문을 닫으라고 했다.“원씨 가족과 함께 온 사람은 오늘부터 대리시가 보호한다. 임강에게 이들이 여기 있다는 말이 나가지 않게 하라.”기수가 고개를 들었다.“감옥에 넣겠다는 겁니까?”“잠금장치가 안쪽에 있는 방을 드리겠습니다. 나가고 싶을 때는 나갈 수 있고.”보향이 먼저 말했다.“세탁방은요?”“포졸 둘을 붙이겠습니다.”“손님 빨래를 관청에서 대신해주진 않잖아요.”“세탁방 문을 닫을 수는 없습니다. 맡긴 옷이 아직 남았습니다.”“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이곳에서 머무르십시오.”보향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경연이 소의 쪽으로 몸을 돌렸다.“원씨 가족이 보호방에 드는 것을 도와주시겠습니까?”소의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대리시에도 여인 서리가 있을 텐데요.”“낯선 관원보다 당신이 있는 편이 저 가족에게 나을 겁니다.”“명령입니까?”경연의 입술이 잠깐 다물렸다.“부탁입니다.”소의는 그를 보다가 보향의 두 딸에게 시선을 옮겼다. 연주는 아직 젖은 수건을 품에 안고 있었다.“안에서 잠그는 빗장부터 확인하겠습니다.”그녀가 두 아이를 데리고 안쪽 회랑으로 갔다. 경연은 더 말을 보태지 않았다. 소의도 이번에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걸음은 전보다 느렸다.기수의 거짓 자백은 한 시진도 버티지 못했다.그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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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검은 마차의 주인

죽영별원으로 갔던 말들이 정오가 지나서 돌아왔다.편자에 진흙이 두껍게 달라붙었고, 포졸 하나는 안장에서 내리자마자 다리가 풀려 마구간 벽을 짚었다.“별원은 비어 있었습니다. 문짝은 부서졌고 마당에는 피가 남아 있었지만, 검은 마차는 없었습니다.”경연이 물었다.“수기는?”“집에도, 별원에도 없습니다.”포졸은 품에서 젖은 출입패 하나를 꺼냈다. 대숲길 어귀에서 마을 사람이 주웠다고 했다. 검은 옻칠 위에 은빛 구름이 새겨진 마차패였다.기원이 패를 받아 뒤집었다.배씨 집안 표식 아래에 작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조린.’마당 건너편에서 고환이 급히 들어왔다. 연양대장공주 별원의 마차 출입부와 문지기 진술을 들고 있었다.“검은 마차는 별원 소유가 아닙니다. 닷새 전 정원방에서 빌려왔답니다.”기원이 손에 든 패를 보였다.“어디서 빌렸는지는 찾은 것 같습니다.”경연의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손에 감긴 회색 천만 한 번 조여졌다. 선산에서 소의가 찢어 감아준 소매였다.“기원은 나와 정원방으로 간다. 고환은 임강의 근무처부터 막아. 사람을 붙잡기 전에 가족을 먼저 건드리지 못하게 하고.”* * *배씨 저택 동쪽 협문 안에는 마차 세 대를 나란히 세우는 차고가 있었다.검은 마차 자리만 비어 있었다. 바닥에는 바퀴를 받치던 나무 괴임 두 개가 반듯하게 남아 있었고, 맞은편 벽에는 안왕부 연회에 썼던 청사초롱과 북틀이 쌓여 있었다. 마구간지기들은 말먹이를 나르면서도 차고 쪽을 힐끔거렸다.배조린은 서쪽 청람원에서 나왔다.푸른 겉옷 한쪽 소매를 아직 매지 못했고, 머리도 관 아래로 몇 가닥 흘러내렸다. 밤새 연회 악보를 고쳤는지 손가락에는 먹이 묻고 눈 아래에는 옅은 그늘이 졌다. 그래도 형과 대리시 서리를 보자 먼저 웃었다.“이번에는 제 방 대신 차고를 뒤지러 왔어요?”경연은 마차패를 내밀었다.조린의 웃음이 조금 늦게 사라졌다.“이걸 어디서 찾았습니까?”“죽영별원 길목.”조린은 빈 자리를 돌아봤다.“안왕 전하의 연회에 내줬습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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