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붉은 혼서: Kapitel 61 – Kapitel 70

203 Kapitel

61화. 낳지 않은 딸

경연이 청묵재에 들어온 뒤로 곡우는 찻숟가락을 두 번 떨어뜨렸다.관복을 입지 않았는데도 좁은 가게가 꽉 찬 듯했다. 눈처럼 흰 얼굴에는 밤을 새운 기색도 잘 드러나지 않았다. 반듯한 어깨와 길고 서늘한 눈매가 움직일 때마다 곡우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폈다.소의만 평소와 같았다.“차가 식었습니다.”그녀는 경연 앞의 잔을 가리킨 뒤 다시 먹을 갈았다. 풍성한 검은 머리는 대충 틀어 올려 비녀 하나로 고정했고, 잔머리 몇 가닥이 희고 가느다란 목덜미까지 흘러내렸다.경연은 굳어 있던 어깨가 조금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그녀 앞에서는 자꾸 그랬다. 길게 숨을 쉬어도 되는 것 같고, 찻잔과 붓을 한 치씩 맞추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그 편안함이 찾아오면 곧 다른 것이 뒤따랐다.먹 묻은 손목을 붙들어 제 쪽으로 당기는 생각. 수수한 옷깃을 벌리고 눈처럼 흰 목과 가슴에 입술을 묻는 생각. 통통한 붉은 입술이 제 입맞춤 아래에서 젖고, 무표정하던 눈이 흐려진 채 다문 입술 사이로 낯선 숨을 흘리는 모습까지 너무 쉽게 그려졌다.그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딱, 소리가 났다.소의가 고개를 들었다.“제가 무엇을 빠뜨렸습니까?”“아닙니다.”“그럼 왜 그러십니까?”경연은 화로를 그녀 쪽으로 조금 밀었다.“손이 차 보여서.”소의는 화로와 경연을 번갈아 보았다. 곧 화로를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다.“너무 가까우면 종이가 마르면서 휩니다.”“그렇군요.”경연은 더 권하지 않았다. 소의는 그가 왜 이른 새벽까지 청묵재에 남아 있는지 묻지 않았다.그때 빗장이 세 번 울렸다.덜컹, 덜컹. 잠시 뜸을 들인 뒤 다시 덜컹.곡우가 이층에서 뛰어 내려왔다. 등잔을 든 채라 벽에 비친 그림자가 먼저 계단을 굴렀다.“해도 안 떴는데 누구예요?”“나다.”문밖에서 심완의 목소리가 들렸다.곡우가 빗장을 뽑자 찬바람과 함께 완이 들어왔다. 소란이 뒤따르며 문을 닫았다. 두 사람의 치맛자락에는 서리가 하얗게 붙어 있었다.소의는 뒷방에서 먹을 갈다가 나왔다. 완은 얼굴을 가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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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돌아온 사람의 온기

반월주가의 마지막 손님이 나간 것은 밤이 깊어서였다.옥선은 문을 걸고 탁자를 닦았다. 술동이 뚜껑을 닫고, 잔을 엎어 물기를 빼고, 화로의 재까지 덮었다. 할 일이 없어졌는데도 뒷방으로 들어가지 않았다.골목에서 발소리가 들릴 때마다 고개가 먼저 돌아갔다.쿵, 쿵쿵.정해둔 문 두드리는 소리였다.옥선은 달려가지 않았다. 걸음을 꾹 눌러 문 앞까지 간 뒤 빗장을 열었다.산해가 서 있었다. 머리에는 눈발이 녹아 물방울이 맺혔고, 오른손 마디가 벗겨져 피가 말라붙었다.“늦었어.”“알아.”“낮에 온다며.”“수레가 개울에 빠졌어. 사람부터 끌어냈다.”그가 안으로 들어오자 옥선은 문을 닫았다. 빗장이 홈에 들어가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사람 하나 보내는 것도 개울에 빠졌어?”산해는 대답하지 못했다. 변명할 말을 찾는 동안 옥선은 그의 손목을 잡아 등잔 아래로 끌었다.“앉아.”“괜찮다.”“내가 안 괜찮아.”산해가 긴 의자에 앉았다. 옥선은 더운물에 천을 적셔 상처를 닦았다. 피가 다시 배어나오자 그가 손가락을 움찔했다.“아프면 아프다고 해.”“조금.”“그 말도 사람을 기다리게 하네.”옥선이 천을 내려놓았다. 산해의 손을 놓으려 했으나 이번에는 그가 잡았다.“미안하다.”옥선은 붙잡힌 손을 내려다봤다.“또 가야 해?”“새벽에.”“그럼 지금은?”“여기 있어.”그 한마디가 끝나기 전에 옥선이 그의 입술을 물었다. 산해의 등이 의자에 부딪혔다. 턱, 마른 소리가 났다. 그는 다친 손을 피하고 멀쩡한 팔로 옥선의 허리를 안았다.입술이 떨어지자 두 사람의 숨이 뒤섞였다.“손 아프다며.”“한 손은 멀쩡해.”“그걸로 되겠어?”옥선이 다시 입을 맞췄다. 이번에는 산해가 일어나 그녀를 안아 들었다. 옥선의 다리가 그의 허리를 감았고, 등이 문짝에 닿았다.쿵.걸어둔 빗장이 떨렸다.산해가 멈추자 옥선이 그의 목덜미를 끌어당겼다.“왜.”“문이 부서질까 봐.”“그럼 안쪽으로 가.”그는 그녀를 안은 채 뒷방으로 걸었다. 발에 밀린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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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은 스무 냥의 딸

십구 년 전, 문씨 저택의 안채에는 사흘째 죽 냄새가 났다.심완은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다섯 살 난 딸이 열병으로 죽은 뒤부터였다. 시비가 미음을 들고 들어가면 식은 그릇이 그대로 나왔다.문세린은 매일 문밖에 섰다.“오늘은 먹었느냐?”“두 술 뜨셨습니다.”“약은?”“손도 대지 않으셨습니다.”그는 아내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사랑채로 돌아갔다. 어린 수기가 마루 기둥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아이는 누이의 작은 신발 한 짝을 품에 안고 있었다.닷새째 되던 날, 중매인 백유진이 후문으로 찾아왔다.“대감께서 찾으신다는 아이가 있습니다.”세린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정말 닮았소?”“보시면 압니다. 다만 팔려 나온 아이여서 집안은 따지기 어렵습니다.”“어디 있소?”백유진은 대답 대신 후문 밖으로 그를 데려갔다. 낡은 짐수레에는 천막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 옆에 회색 옷을 입은 여자가 서 있었고, 여자의 손을 잡은 아이는 맨발이었다.아이의 머리는 엉켜 있었고 뺨에는 마른 흙이 묻었다. 그러나 고개를 들자 세린은 숨을 멈췄다. 둥근 눈과 붉은 입술이 죽은 딸과 닮아 있었다.“몇 살이냐?”아이는 여자의 치마 뒤로 숨었다.여자가 아이의 어깨를 앞으로 밀었다.“다섯입니다. 말도 잘 듣고 손도 야무집니다.”“부모는?”“아비는 빚을 지고 달아났고 어미는 죽었습니다. 제 조카인데 제가 먹일 형편이 못 됩니다.”아이는 그 말을 듣고도 울지 않았다. 여자의 치마를 쥔 손만 더 세게 오므렸다.백유진이 세린을 옆으로 불렀다.“은 스무 냥이면 됩니다. 데려가시려면 오늘 데려가셔야 해요. 내일은 남쪽 상단이 삽니다.”“아이에게는 뭐라고 해야 하오?”“큰집에 가서 좋은 옷 입는다고 하면 되지요.”세린은 은을 내주었다. 여자는 돈주머니를 품에 넣은 뒤 아이의 손을 떼어냈다. 작은 손가락이 치맛자락에 걸렸다가 하나씩 풀렸다.“가거라. 배불리 먹여주실 분이다.”천막 수레가 떠나자 아이는 먼지가 가라앉을 때까지 길을 보았다.세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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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불 속에 남은 한 장

심완의 증언이 대리시에 접수되자 심문방 앞 복도가 조용해졌다.경연이 지나갈 때마다 서리들은 쥐고 있던 종이를 반듯하게 맞추고 포졸들은 허리패를 고쳐 찼다. 젊은 서리 하나는 벼루를 옮기다 먹물을 손등에 쏟았다. 경연은 꾸짖지 않았지만 서리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엎질러진 먹을 닦았다.소의는 복도 끝에서 그 모습을 보고도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그녀는 밤새 정리한 심완의 말을 경연 앞에 내놓았다.“틀린 곳은 두 번 확인했습니다.”경연은 기록보다 먼저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오른쪽 뺨에 먹이 손톱만큼 묻어 있었다.그의 손이 들렸다가 멈췄다.“왜 그러십니까?”“뺨에 먹이 묻었습니다.”소의는 소매로 문질렀다. 먹 자국이 오히려 길게 번졌다. 경연이 깨끗한 천을 내밀자 그녀는 받지 않았다.“빨아 돌려드릴 물건을 늘리고 싶지 않습니다.”“돌려받을 생각으로 주는 것이 아닙니다.”“값 없는 물건이 더 곤란할 때가 있습니다.”경연의 손이 천을 쥔 채 내려갔다.“그럼 물을 가져오게 하겠습니다.”소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그녀가 씻으러 간 뒤 경연은 손안의 흰 천을 한참 접지 못했다. 소의가 놓고 간 기록은 다른 문서와 비스듬히 겹쳐 있었다. 곁에 선 서리는 그가 당장 모서리를 맞출 줄 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경연은 비뚤어진 종이를 그대로 펼쳐 읽었다.그 시각 문씨 저택에서는 오래된 문 하나가 안에서 잠겼다.문씨 저택의 사당 뒤에는 오래된 문서를 태우는 작은 벽돌 화덕이 있었다.한낮인데도 문세린은 등불을 들고 족보방으로 들어갔다. 창을 모두 닫아 방 안이 어두웠다. 선반마다 대나무 표찰이 달렸고, 문씨 집안의 출생과 혼인과 죽음이 해마다 묶여 있었다.“려화 것이 어디 있느냐?”족보를 맡은 늙은 서리가 궤 앞에 무릎을 꿇었다.“어느 것을 말씀하십니까?”“처음 것과 고친 것, 전부.”서리는 궤 두 개를 열었다. 하나에는 죽은 딸의 출생 기록이, 다른 하나에는 다섯 살에 들어온 아이를 같은 사람으로 이어 적은 기록이 있었다. 해가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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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아리가 숨긴 심부름

교령의 침선방에는 봄 혼례에 쓸 붉은 천이 천장까지 쌓여 있었다.아리는 계단 아래 자기 자리에 앉아 비단 꽃잎을 뒤집고 있었다. 겉에서 매듭이 보이지 않게 세 땀을 뜨고, 다시 뒤집어 꽃술을 달았다.문밖에 긴 그림자가 멈췄다.한유백이었다.침선방 아이들이 일제히 바늘을 내려놓았다. 검시방에서 일하는 사람은 옷자락만 스쳐도 재수가 없다는 말을 들은 얼굴들이었다.유백이 제 소매를 걷어 냄새를 맡았다.“손은 씻었습니다.”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교령이 붉은 천더미 사이에서 나왔다.“무슨 일입니까?”“아리에게 물을 것이 있습니다.”“아이부터 겁주고 묻는 게 대리시 법입니까?”유백은 문턱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아리는 꽃술을 달던 실을 끊었다.“여기서 물으세요.”유백이 한쪽 무릎을 굽혀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다.“나금연이 죽기 전에 너를 만난 적 있느냐?”아리의 손이 붉은 꽃잎을 구겼다.“없어요.”“목소리를 들은 적은?”“없습니다.”“그 사람 부탁으로 무엇을 옮긴 적은?”아리는 꽃잎을 펴려 했다. 손바닥으로 눌러도 구김이 사라지지 않았다.교령이 유백 앞을 막았다.“그만 물으세요.”“금연은 물에 빠지기 전에 숨이 끊겼습니다. 누가 죽였는지 찾으려면 마지막에 어디로 갔는지 알아야 합니다.”“그 말을 아이한테 그렇게 해야 합니까?”유백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침선방 안에서는 누구도 바늘을 들지 못했다.“미안하다.”그가 아리에게 말했다.“나는 말을 부드럽게 하는 법을 잘 모른다. 그래도 네 어머니가 왜 죽었는지는 찾아야 한다.”아리의 입술이 떨렸다.“어머니라고 부른 적 없어요.”“알고 있다.”“모르잖아요.”아리가 벌떡 일어났다. 머리가 계단 밑판에 딱 부딪혔다. 눈물이 핑 돌았지만 손으로 문지르지 않았다.“그 사람은 저를 팔았어요. 려화 아씨는 제가 병들었을 때 약값을 냈고, 침방에서 맞으면 자기 방으로 데려갔어요. 글도 가르쳐줬습니다.”유백은 가만히 들었다.“그래서 아씨 심부름은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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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화. 신부를 장례에서 꺼내라

“장례 사흘 전이요.”청도가 아리의 말을 잘랐다.“그만해. 남은 말은 내가 하마.”아리가 고개를 저었다.“언니는 그날 없었잖아.”“그래서 너를 보냈어. 내가 잘못했으니 내가 말해.”“언니가 고르면 또 저를 빼놓을 거잖아요.”청도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동생 청석을 구하기 위해 려화를 내보냈던 날에도 자기가 먼저 골랐다. 그 뒤의 일을 아리에게는 설명하지 않았다.아리는 유백을 보았다.“제가 말할게요. 대신 제가 들은 그대로 적으세요. 나금연이 착한 사람이었다고 고치지 말고요.”“그대로 적겠다.”“저를 버린 것도 적어요.”“그것도.”아리는 손에 쥔 붉은 꽃잎을 폈다.장례 사흘 전, 금연은 서문 밖 백로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른 갈대가 허리까지 올라오는 둑 아래에는 관을 메는 틀과 장례 기물을 고치는 낡은 막이 있었다. 지붕 한쪽이 꺼져 비가 오면 안까지 젖는 곳이었다.금연은 사람을 피해 막 뒤에 웅크리고 있었다. 입술이 터졌고 신발 한 짝이 없었다.“누가 때렸느냐고 물었더니 장은이라고 했어요. 아씨가 계화사로 가면 죽는다고 했어요.”“왜?”“죽은 사람을 아씨로 만들고, 아씨는 다른 이름으로 팔아버린다고 했어요.”청도가 벽을 짚었다.아리는 말을 이었다.“그래서 자기가 먼저 장례에 들어가겠다고 했어요.”“어떻게?”“아씨 옷을 입고 검은 마차를 타겠다고요. 그동안 아씨는 백로둑 운구막에서 기다리라고 했어요.”유백의 눈이 들렸다.“려화가 그곳에 갔느냐?”“제가 전하지 못했어요.”아리는 한 손으로 다른 손목을 감쌌다.문씨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에 계화사 사내들이 골목을 막았다. 전할 말을 내놓으라고 했다. 아리는 모른다고 버텼고, 려화가 뒤늦게 나와 그들을 돌려보냈다. 그날부터 려화는 아리에게 다시 심부름을 시키지 않았다.“나금연은 기다렸는데 저는 안 갔어요.”“네 잘못이 아니다.”청도가 말했다.“그건 언니가 고를 말이 아니야.”아리의 목소리가 커졌다가 마지막에는 작아졌다.“나금연이 마지막에 뭐라고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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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먼저 달린 사람

경연은 답 대신 안왕부에 낼 수색 문서를 펼쳤다.“서문 포졸이 교대하는 해 질 무렵에 보냅니다.”“두 시진이나 남았습니다.”“낮에는 둑 위에서 전부 보인다. 숨겨둔 사람이 있으면 우리가 가는 것을 먼저 안다.”소의는 지도 위의 점을 손가락으로 눌렀다.“금연이 죽은 지 여러 날입니다. 려화가 아직 거기 있다면 두 시진도 깁니다.”“그래서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경연은 고환에게 수색패를 내주고 다시 문서를 보았다. 왕족 별원에 들어가려면 도장이 하나 더 필요했다. 소의는 그 절차를 알았다.“노탁이 돌아올 때까지 이 방에 계십시오.”소의는 닫힌 창과 문 앞의 포졸을 보았다. 경연은 자리를 내준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에게는 나가지 말라는 말부터 들렸다.알면서도 벽에서 지도를 떼어 들었다.“청묵재에 다녀오겠습니다.”경연이 고개를 들었을 때 소의는 이미 문밖에 있었다.문이 닫힌 뒤 그는 같은 문장을 세 번 읽었다. 붓을 들었으나 먹이 종이에 닿지 않았다.“진소의를 다시 모셔오게.”문밖의 포졸이 난처한 얼굴로 답했다.“벌써 남문을 나가셨습니다.”경연이 일어나는 바람에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쿵!복도에 있던 서리들이 모두 굳었다. 경연은 넘어진 의자를 세우지 않고 수색패부터 움켜쥐었다.* * *소의는 청묵재로 가지 않았다.서문에서 짐수레 하나를 얻어 타고 백로둑까지 갔다. 바퀴가 녹은 진창에 빠질 때마다 수레가 덜컹거렸다. 그녀는 회색 겉옷 위에 낡은 장옷을 둘렀지만, 길을 묻기 위해 얼굴을 세 번이나 드러내야 했다.“운구막이 어디입니까?”둑 아래에서 갈대를 묶던 사람이 낫으로 서쪽을 가리켰다.“저 버드나무 뒤요. 그런데 요즘은 문씨 별원 사람들이 드나듭니다.”“어느 별원입니까?”“매죽원이라고 부릅니다. 대숲 안쪽 작은 집이에요.”소의는 수레에서 내려 좁은 둑길을 걸었다.백로둑 아래로 겨울물이 검게 흘렀다. 얼음이 풀린 자리에 갈대 뿌리가 드러났고, 낡은 운구막 지붕에는 붉은 천 조각이 걸려 펄럭였다.막 안에는 부러진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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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묻지 않은 까닭

말발굽 소리가 매죽원의 낮은 담을 흔들었다.다그닥, 다그닥. 포졸들이 협문 앞에서 한꺼번에 내렸다. 노탁이 먼저 들어오고 경연이 뒤따랐다.경연의 관복 자락에는 진흙이 튀어 있었다. 머리카락 한 올이 관 아래로 흘러내렸는데도 누구도 올려다보지 못했다. 협문을 지키던 포졸은 그의 얼굴을 보고 창대를 놓칠 뻔했다.소의는 뒤채 문 앞에 서 있었다. 진흙 묻은 손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경연의 시선이 그 손에 닿았다가 빈 방으로 옮겨갔다.그는 두 걸음을 다 가지 못하고 멈췄다. 지금 손을 뻗으면 상처만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살아 있는 몸을 제 품에 끌어안고, 갈대밭에서 놓친 곳이 없는지 손으로 전부 확인하고 싶었다.“언제 도착했습니까?”“반 시진쯤 됐습니다.”“누구와 왔습니까?”“혼자요.”“오는 길에 몇 사람에게 물었지요?”소의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세 사람입니다.”경연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 끊어진 밧줄, 열린 뒤창, 바닥의 핏방울을 차례로 보았다.“사람을 보았습니까?”“뒤뜰에서 한 명이 달아났습니다.”“얼굴은?”“못 봤어요.”경연이 노탁에게 말했다.“북쪽 길을 막아. 말 탄 자다. 둑에서 갈라지는 길마다 두 명씩 보내.”노탁과 포졸들이 뛰어나갔다. 뜰이 갑자기 조용해졌다.경연은 가죽 손싸개를 벗어 창틀에 놓았다. 옷소매에서 깨끗한 천을 꺼내 소의에게 내밀었다.“손부터 감으십시오.”“려화의 피일 수도 있습니다.”“그것은 유백이 볼 겁니다.”“밧줄은 안에서 풀렸어요. 그녀가 스스로 나온 것이라면 멀리 가지 못했을 겁니다.”“진소의.”그가 이름을 온전히 불렀다.“해 질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습니다.”“기다렸다면 이 방도 깨끗이 비웠겠죠.”“당신이 얼굴을 드러내고 길을 물은 순간 이쪽에서 먼저 움직였습니다.”소의의 입이 다물렸다.“확실하지 않습니다.”“둑 북쪽에 말 한 필이 떠난 자국이 있고, 뒤뜰 문에는 방금 끊은 빗장이 떨어져 있습니다. 당신이 본 사내가 알리러 갔습니다.”“그래서 아무것도 하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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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족보보다 먼저

소의가 매죽원에 닿기 반 시진 전이었다.문수기는 뒤채에서 려화의 손목을 묶은 줄을 풀고 있었다. 며칠 동안 쓸려 살이 벗겨진 자리에 피가 맺혔다.려화가 손을 당겼다.“또 어디로 옮기려고요?”“직금방 청사창 뒤채다. 사람이 드나들어도 눈에 띄지 않아.”“광생원에서 데려올 때는 어머니가 기다린다고 했어요.”“어머니는 너를 찾고 계신다.”“기다린다는 말과 같지 않잖아요.”수기는 매듭을 다 풀고도 대답하지 못했다.광생원 문 안에서 곡우와 노탁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려화는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보다 먼저 뒷문으로 들어온 수기가 어머니의 안채 패를 보여주었다. 완이 안전한 집을 마련했다고 했다.려화는 한 번 더 오라비를 믿었다.그 끝이 매죽원의 밧줄이었다.뜰을 지키던 사내가 뛰어 들어왔다.“회색 옷을 입은 여자가 백로둑에서 길을 묻고 있습니다. 진소의 같습니다.”수기가 창밖을 보았다.“뒷수레를 대.”“이 여자를 두고 가세요.”려화가 일어섰다.“소의가 오면 제가 직접 말하겠습니다.”“그 여자가 오면 뒤를 밟던 자들도 온다.”수기는 궤 위의 족보함을 집었다. 아버지가 태운 원본과 다른 방계 사당의 기록이었다. 려화가 들어온 해의 출생 기록과 혼인으로 오간 재산이 함께 적혀 있었다.“이것까지 빼앗기면 너는 누구였는지 증명할 길이 없다.”“지금도 오라버니는 제 이름보다 종이부터 드네요.”수기의 손이 굳었다.뒤뜰에서 수레가 멈췄다. 그는 족보함을 먼저 싣지 않았다. 려화의 어깨에 겉옷을 덮어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이번에는 문을 잠그지 않겠다.”“그 말을 믿으라고요?”수기는 수레 문을 열어둔 채 맞은편에 앉았다.“안 믿어도 된다.”수레는 매죽원 뒤 대숲을 빠져나갔다. 잠시 뒤 멀리서 협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 *백로둑 북쪽 길은 수레 한 대가 겨우 지났다.왼쪽은 물이 불어난 개천이고 오른쪽은 마른 갈대밭이었다. 앞에서 빈 나무수레 하나가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마부가 고삐를 당겼다.히이잉!말이 앞발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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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살아 있는 쪽

려화가 먼저 주웠다.죽은 문씨 딸의 이름 아래에 은 스무 냥을 주고 다섯 살 난 아이를 데려왔다는 기록이 있었다. 백유진의 손도장도 선명했다.려화는 종이를 쥔 채 수기를 보았다.“이것 때문에 저를 가둔 겁니까?”“그것만은 아니야.”“그럼 무엇 때문인데요?”수기는 입을 열었다가 기침을 했다. 입술에 피가 묻었다.“네가 돌아오면 내가 얻은 것이 전부 네 값이 될까 봐 무서웠어.”려화의 손끝이 떨렸다.“그래서 저를 다시 팔려고 했어요?”“아니라고 말하고 싶다.”“그런데요?”“내가 한 일이 그랬다.”려화는 종이를 찢지 않았다. 수기의 안옷 안에 도로 넣어주지도 않았다. 자기 소매에 접어 넣었다.“이제 이건 제가 가질게요.”수기가 고개를 끄덕였다.노탁이 다가왔다.“두 분 다 대리시 보호방으로 갑니다. 싫다고 하셔도 오늘은 안 됩니다.”려화가 수기의 팔을 자기 어깨에 둘렀다.“오늘은 따르겠습니다.”포졸들이 둘을 수레에 태웠다. 피 묻은 갈대와 부러진 칼도 함께 실렸다. 수레가 떠난 뒤 노탁은 그제야 곡우를 찾았다.곡우는 둑 아래 수차막에 앉아 있었다. 넘어질 때 돌에 부딪힌 무릎이 부어오르고 있었다.“왜 말을 안 했소?”노탁이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말하면 싸움이 멈춰요?”“그래도 내가 알았어야지.”“노 포졸은 피 흘리면서 괜찮다고 했잖아요.”그의 왼팔에도 칼끝이 스친 자국이 있었다. 곡우가 소매를 걷자 노탁이 손을 빼려 했다.“가만있어요.”“상처가 얕소.”“얕은 빚도 쌓이면 큰돈 돼요.”곡우는 허리춤에서 천을 꺼내 팔에 감았다. 매듭을 묶는 손이 떨렸다.노탁이 그 손을 덮었다.“겁났소?”“아니요.”“나는 겁났는데.”곡우의 손이 멈췄다.노탁은 무릎의 흙과 찢어진 치맛단을 보고도 무엇부터 만져야 할지 몰랐다. 손이 허공을 헤매자 곡우가 그 손목을 잡아 자기 뺨에 가져다 댔다.“여긴 안 다쳤어요.”거친 손바닥이 차가운 뺨을 감쌌다. 노탁의 엄지가 그녀의 아랫입술을 스쳤다. 두 사람의 숨이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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