บททั้งหมดของ 아줌마의 오지랖으로 하숙집을 구원함: บทที่ 31 - บทที่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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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담벼락 첩보작전

민우가 골목을 걸어 들어오다 대문 앞의 낯선 광경을 발견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강의를 마치고 서둘러 귀가하던 길이었다.낯선 남자 하나가 대문에 딱 붙어서 뭐라 뭐라 애원하고 있었고, 그 안쪽에서 순정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저게 뭐야."민우는 순간적으로 몸을 낮춰 담벼락 뒤로 숨었다.안경을 슬쩍 올리며 상황을 관찰하는 눈빛이 진지했다.처음 보는 남자가 대문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목소리의 톤과 자세, 반복되는 애원의 패턴으로 미루어 볼 때 단순한 지인은 아닐 거라는 판단이 섰다.뒤이어 도착한 도경이 그 자세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다가왔다.공구함을 어깨에 멘 채 터덜터덜 피곤한 걸음으로 걸어오다가, 담벼락 뒤에 웅크린 민우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뭐 하냐, 너. 왜 그러고 있어.""쉿. 저기 좀 봐."도경도 상황을 파악하고는 슬그머니 몸을 숙였다.두 사람이 나란히 담벼락 뒤에 쪼그려 앉아 눈만 빼꼼 내밀고 있는데, 저 멀리서 태성이 훈련 가방을 메고 쿵쿵 걸어오고 있었다.도경이 다급히 손을 휘저으며 신호를 보냈다."어? 형들 여기서 뭐 해요? 뭐 숨기는 거 있어요?""조용히 해, 인마! 이리 와서 숨어! 소리 지르지 말고!"태성이 영문도 모른 채 두 사람 사이에 몸을 구겨 넣었다.188센티미터의 거구가 좁은 담벼락 뒤에 억지로 몸을 접어 넣으니 자세가 더없이 우스꽝스러웠다.세 사람이 나란히 쪼그려 앉은 그 모습이 흡사 첩보 작전이라도 벌이는 듯했다."저 남자 뭔데요? 순정 누나한테 왜 저래요?"태성이 소곤소곤 물었다."몰라, 근데 지금 들어가면 분위기 이상해질 것 같아서……. 일단 좀 지켜보자."민우가 낮게 대답했다.그때 마지막으로 이현이 지방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다, 담벼락 뒤에 나란히 쭈그려 앉은 세 사람을 발견했다.캐리어를 끌던 손을 멈추고 눈을 크게 떴다."……형들, 여기서 뭐 하세요? 다 같이 술래잡기라도 하십니까?""쉿, 이리 와서 숨어. 잔말 말고."이현마저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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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남친 대역 오디션

그날 밤, 순정이 설거지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간 사이, 거실 마루에는 네 사람이 심각한 얼굴로 둘러앉아 있었다. 낮에 있었던 일이 계속 마음에 걸리는 눈치였다. "저놈 또 온다. 저런 놈들은 한번 매달리기 시작하면 안 끝나. 오늘 낮에 보니까 완전히 작정한 얼굴이더라고." 도경이 팔짱을 끼며 운을 뗐다. "확실하게 떼어내려면 순정이한테 새 남자친구가 있는 것처럼 보여주는 게 제일 깔끔하지. 그래야 저쪽도 미련을 완전히 접을 테니까." 민우가 안경을 고쳐 쓰며 진지하게 동의했다. "그럼 누가 그 역할을 맡을 건데요?" 이현의 질문에 순간 거실에 정적이 흘렀다. 네 사람이 서로를 쳐다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먼저 나선 건 민우였다. "내가 하지." "네?" "전남친 퇴치는 완벽한 스펙으로 눌러야 해. 번듯한 사람이 옆에 있어야 상대가 감히 덤빌 엄두를 못 내거든. 의대생이라는 신분 자체가 상대에게 꽤 큰 심리적 압박을 줄 거다. 조건과 스펙을 갖춘 내가 맡는 게 가장 깔끔해." "에이, 형은 너무 딱딱하잖아요." 이현이 나른하게 반박하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진짜 연인처럼 보이려면 스킨십이 제일 핵심이죠. 다들 손 하나 제대로 못 잡고 벌벌 떨 테지만, 난 순정 씨 손잡는 것도, 허리 감싸는 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거든요. 남친 대역으로 가짜 티 안 나게 완벽하게 연기할 사람은 저밖에 없을걸요? 다들 어색해서 발연기할 게 뻔한데. " "뭐? 발연기? 벌벌 떨긴 누가 떠냐!" 태성이 억울하다는 듯 펄쩍 뛰었고, 민우와 도경의 표정도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러나 이현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피식 웃으며 쐐기를 박았다. "어색하게 로봇처럼 굴다가 그 찌질이한테 들키는 것 보다 확실한 게 낫잖아요?" "저도 있습니다!" 태성이 우렁차게 손을 들었다. "전남친 같은 놈들은 덩치 크고 무서운 남친이 옆에 붙어있어야 쫄아서 다시는 못 옵니다! 제가 옆에서 꼭 붙어서 다시는 껄떡거리지 못하게 지켜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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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다들 비켜

태오가 한탕 소동을 피우고 간 지 며칠 지나지 않은 금요일 저녁이었다.가을 저녁의 선선한 바람이 하숙집 마루 창틈으로 옅게 스며들고 있었다.텔레비전 화면에서는 예능 프로그램이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정작 화면을 진득하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도경은 소파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있었고, 이현은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태블릿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민우는 전공 서적을 펼쳐놓은 채 페이지를 넘기는 척했지만 눈은 자꾸 다른 곳을 향했고, 태성은 스트레칭을 하는 척하며 거실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다들 겉으로는 평온한 척했지만, 그날의 소동 이후로 은근한 긴장감이 집안 공기 속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그때 부엌 쪽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순정이 행주로 손을 닦으며 걸어 나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순정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담담했지만, 스피커 너머로 새어 나오는 목소리에 마루에 있던 네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그쪽으로 홱 돌아갔다.취기가 잔뜩 밴, 축축하게 늘어진 강태오의 목소리였다."순정아…… 나야. 나 너무 힘들다……""너 술 마셨어?"순정이 미간을 좁히며 낮게 물었다.통화 너머로 술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왁자지껄한 술집 소음이 뒤섞여 들려왔다."순정아, 나 한 번만 봐주면 안 되냐……"전화기 너머로 울먹이는 소리가 이어졌다.마루에 있던 네 사람은 각자 하던 행동을 멈추고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귀를 기울였다.이현은 태블릿 펜을 쥔 손을 멈췄고, 민우는 책장을 넘기던 손을 그대로 굳혔다.태성은 스트레칭 자세로 멈춰 선 채 눈만 크게 뜨고 있었다."태오야, 우리 이미 끝난 사이야. 앞으론 전화 안받을게, 끊자."순정이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타이르듯 말했다.하지만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점점 다급해지고 있었다."아니야, 나 지금 갈게. 지금 당장 너 보러 가야겠어.""뭐? 야, 오지 마. 오지 말라니까!"순정의 목소리가 순간 날카롭게 높아졌다.하지만 통화는 이미 뚝 끊긴 뒤였다.발신음도 없이 캄캄해진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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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여보. 내가 틀린 말 했어?

골목 저편, 가로등 불빛 아래로 비틀거리는 그림자 하나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강태오였다.셔츠 단추는 반쯤 풀어헤쳐진 채였고, 걸음걸이는 술기운에 잔뜩 흐트러져 있었다.그는 대문 앞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골목길이 울려라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순정아! 임순정! 나 왔어! 나와봐, 순정아!"동네 주민들이 창문이라도 열어볼까 싶을 정도로 소란스러운 고함이었다.마침내 대문 앞에 다다른 태오는 순정을 발견하자마자 반가운 얼굴로 팔을 휘저으며 비틀비틀 달려왔다."순정아!"하지만 몇 걸음 채 다가오기도 전에, 태오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순정의 옆에 서 있는 낯선 남자를 발견한 탓이었다.도경은 딱히 힘을 준 모양새도 아니었다. 편한 홈웨어 위에 낡은 작업복 외투를 대충 걸치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서 있는 모습이었다.하지만 그 무심한 차림새 자체가,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는 동거인 특유의 생활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억지로 폼을 잡는 게 아니라, 그냥 저녁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태도였다.도경은 태오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순정 옆에 툭 붙어 섰다.그러고는 순정의 어깨 위로 팔을 걸치듯 얹었다.순정은 태오가 난동이라도 부릴까 싶어 급하게 나오면서도 마당에서 챙겨 든 스패너를 손에 쥐고 있었는데, 도경이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툭 빼앗아 자기 손에 옮겨 쥐었다.마치 늘 그래왔던 습관처럼 자연스러운 손짓이었다.그 사소한 동작 하나가, 태오에게는 오히려 더 깊은 절망감으로 다가왔다."너, 너 누구야? 너 순정이랑 무슨 사이야!"태오가 술기운 밴 목소리로 소리쳤다.도경은 귀찮다는 듯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누구긴 누구야, 이 집 남편 될 사람이다. 아저씨, 남의 집 대문 앞에서 왜 이렇게 시끄러워? 동네 주민들 신고 들어오겠네.""삼 년이나 만났는데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순정아, 진짜 이 놈이랑 바람나서 나 버린 거야?"도경이 그 말에 순정 쪽으로 슬쩍 고개를 돌리며 피식 웃었다."이 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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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울리지 말고 곱게 가라 할 때 가라

도경의 뻔뻔하고 자연스러운 태도에 완전히 기가 눌린 태오는, 정작 그 모든 상황이 연기라는 의심조차 하지 못했다.순정 옆에 딱 붙어 선 도경의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태오의 눈에는 오래도록 함께 살아온 진짜 연인처럼 보일 뿐이었다.진짜로 순정을 빼앗겼다는 절망감이 밀려들자, 태오는 마지막 발악처럼 과거의 추억에 매달리기 시작했다.술기운에 벌게진 얼굴로 손을 덜덜 떨며, 태오가 순정을 향해 애처롭게 손을 내밀었다."순정아, 우리 좋았던 때 많았잖아…… 나 진짜 너밖에 없어. 우리 서로 사랑했잖아, 응?"눈물까지 글썽이며 간절하게 뻗어오는 그 손을, 순정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그 순간, 순정의 마음속에서 복잡한 감정이 울컥 치솟았다.그건 태오에 대한 미련이나 미안함이 아니었다.사랑이라는 명목 아래 제 삶이 서서히 갉아먹히는 줄도 모르고, 마음을 전부 내어주며 바보같이 버텨냈던 지난날의 자신이 너무나 안쓰러워서 나오는 눈물이었다.그리고 동시에, 가슴 한구석을 짓누르는 아득한 혼란 때문이기도 했다.‘지금 내 눈앞에서 울먹이는 이 스물여덟의 강태오는, 훗날 내 영혼을 서서히 말려 죽였던 그 쉰여덟의 강태오와 과연 같은 사람인가, 다른 사람인가.’그 순간, 순정의 마음속에서 억눌러왔던 감정이 울컥 치솟았다.태오에게 남은 미련이 아니었다.인생을 전부 내어주며 바보같이 버텨냈던 전생의 자신이 너무나 안쓰러워서 나오는 눈물이었다.그리고 동시에 밀려드는 아득한 슬픔 때문이기도 했다.분명 우리에게도 아무 계산 없이 순수하게 함께 웃었던 좋은 날들이 있었는데.서로에게 차가운 비수를 꽂는 비극으로 마침표를 찍게 되었는지.나중에 자신이 순정을 외롭게 죽게 만든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울먹이는 스물여덟의 태오.그 모습을 보자 지난날의 부질없음과 아릿한 씁쓸함이 한데 엉켜 순정의 눈가로 울컥 고여 왔다.그 눈물이 스르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옆에서 태오를 한심하게 내려다보던 도경은, 무던하고 당차던 순정이 뜻밖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가슴이 철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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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아까 왜 울었냐

태오가 골목 모퉁이를 완전히 돌아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도경의 어깨에서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긴장이 순식간에 풀려나갔다.조금 전까지 순정의 어깨를 자연스럽게 감싸고 있던 팔이, 이제는 마치 튕겨 나가듯 툭 떨어졌다."어후, 연기 한번 힘들네."도경이 아무렇지 않은 척 덤덤하게 중얼거렸지만, 귀 끝부터 목덜미까지 이미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조금 전 순정의 어깨를 지그시 감쌌던 손바닥이 화끈거리는지, 도경은 괜히 바지 옆단에 손을 슥슥 문질러 닦았다.그는 그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는 듯 순정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아까 왜 울었냐."한참 침묵이 흐른 뒤, 도경이 먼저 낮게 물었다. 순정이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다."어?""그 병신한테 아직 미련 남아서 울었냐고. 옆에서 열심히 거들어주고 있는 사람 민망하게."도경이 괜히 딴청을 피우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순정은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미련은 무슨. 그냥 옛날에 그놈한테 속아서 바보같이 살았던 내 젊은 날이 불쌍해서 눈물이 살짝 난 거지."그 대답에 도경은 그제야 안도한 듯 표정이 조금 풀렸다.하지만 이내 다시 툴툴거리듯 말을 이었다."하긴. 너 옛날엔 진짜 눈 없긴 했나 보다. 저런 놈한테 바친 시간이 아깝지도 않냐.""아주 이때다 싶어서 사람 은근슬쩍 구박한다?""구박이 아니라 불쌍해서 그렇다, 불쌍해서."도경이 목덜미가 붉어진 채로 시선을 피하며 대꾸했다.두 사람이 그렇게 티격태격하며 대문 쪽으로 걸어가는데, 담벼락 뒤에 숨어 있던 세 사람이 우르르 튀어나왔다."형, 아까 '울리지 말고 곱게 가라' 할 때 눈빛 봤어요? 연기가 아니라 진짜 빡친 눈빛이었는데? 사심 들어간 거 맞죠?"이현이 눈을 반짝이며 다그치듯 물었다."맞습니다! 스패너 손바닥에 툭툭 칠 때는 진짜 조폭인 줄 알았습니다!"태성도 흥분한 얼굴로 거들었다. 민우가 안경을 슥 고쳐 쓰며 무심하게 한마디를 얹었다."‘이 집 남편 될 사람’이라는 대사가 아주 입에 착착 붙던데.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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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대역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방으로 들어간 순정을 뒤로하고, 마당에는 아직 넷이 남아 있었다.도경은 신발끈을 괜히 다시 묶었다 풀었다 하다가, 결국 마루 끝에 걸터앉아 마당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이현이 슬쩍 다가와 옆에 앉으며 낮게 물었다."형, 진짜 괜찮아요? 아까부터 계속 얼빠진 얼굴인데.""괜찮다니까. 신경 꺼."도경이 퉁명스럽게 대꾸했지만, 눈빛은 여전히 순정의 방문 쪽을 향해 있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태성이 부엌 쪽에서 뭔가를 뒤적이더니, 캔맥주 몇 개와 마른오징어를 챙겨 들고 나왔다."형들, 오늘 고생했는데 야식이나 먹으면서 얘기해요! 냉장고에 순정 누나가 만들어둔 김치전도 있던데요!"태성의 제안에 다들 못 이기는 척 마루로 자리를 옮겼다.얼마 지나지 않아 부엌에서 순정도 다시 나왔다. 아직 씻지 않은 채였지만, 얼굴빛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뭐야, 다들 안 자고 여기서 뭐 해.""누나도 오세요! 야식 먹으려고요!"태성이 반갑게 손짓하며 자리를 만들어주었다.순정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못 이기는 척 마루에 걸터앉았다. 도경이 슬쩍 캔맥주 하나를 내밀었다."한 잔 해라. 오늘 놀랐을 텐데."순정이 캔을 받아 들며 툭 부딪쳤다.하루 동안 참았던 긴장이 한꺼번에 풀린 탓인지, 순정은 평소와 달리 캔맥주를 단숨에 반이나 비워냈다.다섯 사람이 둘러앉은 마루 위로 김치전 냄새와 마른오징어 굽는 냄새가 은은하게 퍼졌다.이현이 김치전을 크게 한 조각 찢어 입에 넣으며 슬쩍 운을 뗐다."근데 순정 누나, 아까 그 사람이랑은 진짜 완전히 끝난 거죠?""그럼, 끝났지. 오늘로 확실하게 정리된 것 같아."순정이 담담하게 대답했다.그 말에 도경의 어깨에서 미세하게 힘이 풀렸다.민우가 안경을 고쳐 쓰며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또 연락 오거나 찾아오면 어떻게 할 거야?""그땐 또 대응하면 되지 뭐. 이제 걱정 안 해도 돼."순정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남은 맥주를 마저 비워냈다.도경이 속도가 빠른 순정을 슬쩍 곁눈질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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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마음이 부른 열병

강태오를 완전히 떼어낸 그날 밤, 마당에서 다 같이 맥주 한 잔씩 나누며 웃어넘겼지만, 순정의 속은 그렇게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방으로 돌아와 이불을 덮고 누운 순정은 한참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이게 맞다. 그렇게 인연을 끊는 게 맞아.'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되뇌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자꾸만 시끄러웠다.태오가 어떤 미래를 살게 될지 순정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앞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오늘 밤 그렇게 힘없이 돌아선 태오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연애 초반, 순수하고 다정했던 시절의 태오가 문득 떠올랐다.그때는 참 순정에게 잘해주었던 사람이었는데. 그 기억이 밉고 원망스러운 감정 사이사이로 자꾸 비집고 들어왔다.그렇게 한참을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든 순정은,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몸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다.회귀 전 전생에서도 마음고생이 심할 때면 며칠씩 크게 앓아눕곤 했었다.이번에도 그 여파와 환절기 감기 기운이 겹쳐, 몸이 천근만근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힘든 상태였다.그럼에도 순정은 하숙집 식구들 밥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핏기 없는 얼굴로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비틀거리며 방문을 열고 마루를 지나 마당으로 나서던 순정의 걸음이, 결국 그 자리에서 휘청였다.마침 씻고 나오던 이현이 그 모습을 가장 먼저 발견했다."누나! 얼굴이 왜 이렇게 하얗게 질렸어요?"이현이 놀라 달려와 순정의 어깨를 붙잡았다.손끝에 닿은 순정의 몸이 심상치 않게 뜨거웠다."잠깐만, 온몸이 불덩이잖아!"그 다급한 목소리에, 마루에 앉아 스마트폰 화면을 뒤적이던 도경이 쿵 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나 다가왔다.무심하게 순정의 이마를 짚은 도경의 눈빛이 순식간에 굳었다."미쳤냐? 이 몸으로 밥을 차리겠다고 나온 거야?"도경의 목소리에 날카로운 걱정이 배어 있었다.그 사이 마당 저편에서 운동을 하던 태성이 상황을 파악하고 성큼성큼 달려왔다.순정의 몸이 완전히 힘을 잃고 휘청이자, 태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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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하숙집 비상사태

"토요일이라 문 연 내과가 없다."민우가 체온계 수치를 다시 확인하며 미간을 찌푸렸다.안경 너머 눈빛에는 평소의 태연함 대신 짙은 걱정이 서려 있었다.순정의 시야는 이미 천장과 벽면이 어지럽게 뒤섞이며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눈꺼풀이 천근만근으로 무거웠고,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뇌가 흔들리는 것처럼 세상이 기우뚱거렸다.남주들의 목소리조차 마치 물속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먹먹하고 몽롱하게 귀가를 스쳤다."열이 39.2도까지 올랐어. 우선 열부터 내리는 게 급선무야. 수건이랑 얼음 챙겨서 열 떨어지는지 계속 보고, 안 되면 바로 응급실 가야 해."민우의 침착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목소리에, 어수선하게 서 있던 세 사람이 순간 행동을 정돈했다.늘 하숙집의 중심이던 순정이 이렇게 힘없이 누워버리자, 네 남자는 순식간에 손발이 삐걱거리면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간호에 뛰어들기 시작했다."제가 얼음 가져오겠습니다!"태성이 가장 먼저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달려갔다.냉동실을 뒤져 얼음을 꺼내고, 수건에 감싸 얼음주머니를 만드는 손길이 제법 야무졌다.도경은 소매를 걷어붙이며 낮게 중얼거렸다."죽이라도 끓여야지. 저렇게 아무것도 못 먹고 있으면 안 되잖아."그렇게 말하며 부엌으로 향한 도경은, 낯선 냄비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쌀을 씻어 냄비에 안쳤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부엌에서 타는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야, 타지 마라 좀……"도경이 당황한 얼굴로 불 꺼진 냄비를 잡고 쿡쿡거렸다.죽 하나 쑤는 게 이렇게까지 힘든 일인 줄은 미처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뚜껑을 열자 냄비 바닥에 눌어붙은 밥알이 시커멓게 타 있었다."아니, 죽 하나 쑤는 게 왜 이렇게 힘들어?!"도경이 혼잣말처럼 투덜거리며 다시 새 냄비를 꺼내 들었다.이번엔 불 조절에 신경 쓰며 조심스럽게 젓기 시작했다.그 사이 태성은 얼음주머니와 물통을 양손 가득 들고 순정의 방문 앞을 든든하게 지켰다."누나, 얼음주머니 준비했습니다! 제가 옆에서 계속 부채질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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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혼자 견디던 밤은 지나고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무렵, 민우가 순정의 상태를 다시 한번 살핀 뒤 방 안에 모인 세 사람을 향해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사람 여럿 들어와 있어야 공기만 탁해지고 환자 잠만 깬다. 내가 옆에서 상태 체크할 테니까 다들 나가 있어."그 선언에 방 안이 순식간에 술렁였다. 태성이 가장 먼저 발끈하며 목소리를 높였다."무슨 말씀이십니까! 힘쓰고 수발드는 건 제가 제일 잘합니다!""형 혼자 누나 차지하겠다는 거잖아요! 절대 안 돼요!"이현도 지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경은 팔짱을 낀 채 싸늘한 눈빛으로 민우를 노려보았다."너 의대생인 건 아는데 하루종일 하긴 힘들어, 밤새야 할 수도 있는데 우리랑 돌아가면서 해."세 사람의 격렬한 반발에, 민우도 결국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한참의 실랑이 끝에, 결국 순번을 정해 한 명씩 돌아가며 순정의 방에 들어가 상태를 살피고 젖은 수건을 갈아주기로 타협이 이루어졌다.밤이 깊어지고, 도경의 순번이 찾아왔다.도경은 대야에 미지근한 물을 받아 들고 조용히 방문을 열었다.순정은 여전히 열에 들뜬 채 얕은 잠에 빠져 있었다. 도경은 그 머리맡에 조용히 걸터앉아, 수건을 물에 적셔 조심스럽게 짜기 시작했다.열에 들뜬 순정은 그 순간 깊은 잠 속에서 낯선 풍경을 헤매고 있었다.알싸한 소독약 냄새와 함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전생의 차갑고 삭막한 단독 병실이었다.열이 턱 끝까지 차올라 온몸이 부서질 것처럼 아픈데도, 침대 옆 쇠의자는 기괴할 만큼 텅 비어 있었다.보호자 이름을 적는 칸은 늘 빈칸이었고, 링거 바늘이 빠져 피가 흘러나와도 스스로 벨을 눌러 간호사를 불러야 했던 밤들.옆 침대 환자들에겐 가족이 찾아와 따뜻한 죽을 떠먹여 주고 땀을 닦아주었지만, 순정에겐 창밖으로 노을이 지다 어둠이 깔리는 걸 홀로 바라보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게 싫어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쓴 채 숨죽여 울던, 손을 잡아줄 사람도 이마의 땀을 닦아줄 사람도 없던 그 참담
last updateปรับปรุงล่าสุด : 202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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