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hat ng Kabanata ng 아줌마의 오지랖으로 하숙집을 구원함: Kabanata 41 - Kabanata 50

99 Kabanata

41화. 저 자식도…… 설마

도경이 순번을 마치고 나왔는데도, 마루에 진득하게 앉아 있지 못하고 자꾸만 순정의 방 앞을 서성거렸다.얼음물이 미지근해진 것 같다느니, 문이 살짝 열린 것 같다느니 하며 자꾸 들어가려 하자, 이현이 그 모습을 콕 짚어 태클을 걸었다."형, 아까 턴 끝났잖아요. 왜 자꾸 순정 누나 방 쪽으로 알짱거려요? 물도 아까 내가 새로 바꿨는데?""……문틈으로 바람 들어오는 것 같아서 본 거다, 왜."도경이 괜히 찔려서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이현이 눈을 가늘게 뜨며 그 말을 받아쳤다."아닌데? 문 고친지 얼마 안됐는데 무슨소리예요?"도경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시선을 피하며 자리로 돌아갔다.그때, 약을 챙겨 방에 들어갔던 민우가 나오는 모습을 도경이 문틈으로 우연히 목격했다.평소라면 체온계 숫자만 확인하고 나왔을 민우가, 순정의 이불을 턱 밑까지 꼼꼼히 덮어주고 이마에 맺힌 땀을 손수건으로 직접 닦아주고 있었다.지나치게 다정한 손길로 순정의 머리를 쓸어 넘겨주는 모습에, 도경의 미간이 팍 찌푸려졌다.'어? 저 새끼 봐라? 순정이 보는 눈빛이 왜 저래?'민우가 방에서 나오자마자, 도경이 곧바로 물었다."야, 서민우. 너 아까 약만 주고 나온다며. 안에서 뭐 하다가 이제 나와?""환자 상태를 정밀 관찰했다. 왜, 불만 있냐?"민우가 안경을 슥 고쳐 쓰며 태연하게 대꾸했다.도경은 그 말에 뭐라 더 따지려다가, 결국 헛웃음을 삼키며 물러섰다.하지만 속으로는 낯선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저 자식도…… 설마.'한편 부엌에서는 태성이 순정이 좋아하는 고기를 잘게 다져 넣은 미음을 정성껏 젓고 있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현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다가왔다."태성아, 너 지금 죽 젓는 데만 삼십 분째야. 무슨 죽 장인이야? 왜 이렇게까지 오버해?""오버가 아닙니다! 아까 도경이 형이 끓인 죽 보셨습니까? 건더기도 거의 없고 영양이 너무 부실해서 그걸론 안됩니다. 누나 기운 차리려면 제대로 된 걸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형이야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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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할머니의 부채질

찌뿌둥하고 열에 들떴던 기운이 어느샌가 싹 가시고, 순정의 꿈속은 온통 몽글몽글하고 따스한 햇살로 가득 차 있었다. 꿈속의 계절은 여름이었다. 마당 감나무에는 아직 푸른 감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었고, 마루 밑 그늘에서는 할머니가 챙겨주는 밥을 얻어먹으러 오곤 하던 길고양이 한 마리가 식빵을 구우며 졸고 있었다. 순정은 어느새 열 살 남짓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 평상 위에 깔린 바삭하게 말린 얇은 홑이불 위에 누워 있었다. 머리 밑으로는 할머니의 무릎이 받쳐져 있었다. 삼베 치마 특유의 까끌까끌하면서도 서늘한 감촉이 뺨에 그대로 느껴졌고, 그 위로는 어릴 적 순정이 제일 좋아했던, 할머니 품의 냄새가 배어있었다. 부채가 느릿하게 움직이며 순정의 얼굴에 부드러운 바람을 실어다 주었다. 할머니는 주름지고 서투른,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손길로 순정의 머리칼을 느릿느릿 쓸어 넘겨주셨다. 손끝이 이마를 스칠 때마다, 순정은 그 옛날처럼 눈을 스르르 감았다. 마디마디 굵어진 손가락, 평생 밭일과 부엌일로 거칠어진 손바닥. 하지만 그 손이 이마를 짚을 때만큼은 세상 어느 것보다 부드럽고 따뜻했다. "우리 강아지, 오늘 많이 놀았지? 이렇게 땀을 뻘뻘 흘리고." 할머니의 목소리가 귓가에 나지막이 울렸다. 순정은 대답 대신 할머니의 무릎에 얼굴을 더 깊이 파묻었다. "우리 강아지,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지? 애썼다, 내 새끼. 이제 괜찮다……." 그 말이 어린 시절의 기억인지, 지금 이 순간 할머니가 하늘에서 건네는 위로인지 순정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한마디에, 전생의 쓸쓸했던 병실의 기억과, 태오와의 거북했던 과거의 앙금, 그리고 최근 며칠 사이 쌓였던 온갖 서러움이 한꺼번에 스르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슬프지 않고 그저 편안했다. "할머니……" 순정이 잠꼬대처럼 중얼거렸다. 할머니는 대답 대신 그저 웃으며 부채질을 계속했다. 매미 소리, 바람 소
last updateHuling Na-update : 202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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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더 만져주면 안 돼요?

월요일 아침, 하숙집 대문을 나서는 세 남자의 얼굴엔 수면 부족이 짙게 그늘져 있었다. 주말 내내 순정을 간호하느라 눈 한 번 제대로 붙이지 못하고 등굣길에 나선 탓이었다. 민우는 안경을 고쳐 쓰며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지만, 정작 가방을 챙기다가 전공 서적 대신 냄비 받침을 넣을 뻔했다.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고 멍하니 3초쯤 냄비 받침을 내려다보던 민우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그것을 도로 부엌에 가져다 놓고 다시 가방을 쌌다. 태성은 대문 앞에서 운동화 끈을 묶다가, 그 자세 그대로 일 분 넘게 멈춰 있었다. 자세히 보니 양말도 짝짝이로 신은 채였다. "어이, 정신 차려라." 도경이 충혈된 눈으로 가방을 어깨에 메며 태성의 등을 툭 쳤다. 그러고는 순정 쪽을 슬쩍 돌아보며 낮게 말했다. "어지러우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어라. 무리하지 말고." 정작 그렇게 말하는 도경 본인이, 대문을 나서다가 문틀에 어깨를 세게 부딪쳤다. "윽" 하는 짧은 신음을 삼키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걸음을 재촉하는 도경의 뒷모습을, 순정은 마루에 서서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다들 무리하지 말고 다녀와……" 순정의 인사에 세 사람은 힘없이 손을 흔들며 대문을 나섰다. 골목 저편으로 사라지는 세 사람의 뒷모습이 하나같이 축 처져 있었다. 세 사람이 모두 떠나고 나서야, 하숙집에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순정은 몸이 완전히 개운해진 걸 느끼며 기지개를 켰다. 순정은 부엌으로 들어가 찻물을 끓이려다가, 가스레인지 옆 조리대에 덩그러니 붙어 있는 노란색 포스트잇 세 장을 발견했다. 밤새 넷이서 순정을 간호하며 주고받은 인수인계 메모였다. [물 끓기 시작하면 바로 불 끌 것. 냄비 손잡이 뜨거우니까 장갑 끼고 잡아라.] [03:00 체온 36.8도. 수건 교체 완료. 땀 흘리면 바로 옷 갈아입힐 것.] [누나 깨어나면 바로 미음 데워드릴 것!! 절대로 일하게 하지 마십시오!!] "아니, 무슨 환자 하나 두고 논문들을 썼네……." 메모를 읽던 순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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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외롭지 않은 밤

저녁 무렵, 하숙집 대문 앞에서 세 그림자가 거의 동시에 마주쳤다.평소라면 작업실이나 도서관, 체육관에 남아 있었을 시간인데도, 오늘만큼은 세 사람 모두 저녁 일정을 칼같이 취소하고 서둘러 돌아온 참이었다."……너 작업실 안 가냐?"도경이 힘없는 목소리로 민우에게 물었다."오늘은 일찍 왔다. 너는 훈련 끝났냐?"민우가 태성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되물었다.태성은 대답 대신 고개만 힘없이 끄덕였다.셋 다 턱 밑까지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와 있었고, 눈빛에는 서로를 향한 은근한 신경전보다 피로가 훨씬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세 사람이 나란히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마침 2층에서 이현이 뽀송뽀송한 얼굴로 내려오고 있었다.열두 시간 넘게 꿀잠을 자고, 순정이 챙겨준 간식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은 이현의 얼굴에는 화색이 완연했다."어? 형들 벌써 왔어요? 얼굴들이 왜 그래? 피곤해 보이네."이현이 손에 든 꿀약과를 오물거리며 여유롭게 물었다. 도경이 그 얼굴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너는 왜 그렇게 쌩쌩하냐.""아, 나는 오늘 누나가 방에 직접 간식도 가져다주고, 자는데 이불도 꼭꼭 덮어주고 머리도 다독여줘서 아주 푹 잤거든요. 누나 손 진짜 따뜻하더라."이현이 태연하게 대답하며 다시 약과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그 말에 민우가 안경 너머로 이현을 쏘아보며 이가 갈리는 낮은 소리를 냈고, 태성은 들고 있던 운동가방 끈을 부서져라 꽉 움켜쥐었다.하지만 셋 다 체력이 완전히 바닥나 있어서, 말싸움을 걸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밥 다 됐어. 얼른 씻고 와."부엌에서 순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평소보다 훨씬 푸짐하게 차려진 저녁상이 마루 위에 놓여 있었다.고생한 세 사람을 위한 순정의 고마움이 반찬 가짓수에서부터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씻고 나온 세 사람이 힘없이 밥상 앞에 자리를 잡았다. 도경이 뚝뚝하게 숟가락을 집어 들며 중얼거렸다."뭐 하러 몸도 완쾌 안 됐는데 밥까지 차렸냐?"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작 도경의 눈꺼풀은 중력
last updateHuling Na-update :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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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정전

가을 태풍 소식에 온 동네가 일찍부터 흉흉하게 뒤숭숭한 날이었다.골목길을 스쳐 가는 비바람 소리가 시간마다 거세지자, 하숙집 식구들도 저녁 일정을 서둘러 취소하고 평소보다 훨씬 일찍 발걸음을 돌렸다.가장 먼저 도착한 도경은 들어오자마자 마당 구석에 남아 있던 화분과 잡동사니를 차곡차곡 처마 밑으로 치웠다.뒤이어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돌아온 민우와 태성도 지친 기색으로 대문을 닫고 빗장을 조심스럽게 걸어 잠갔다.젖은 옷가지들을 대충 털어내고 창문을 꼭꼭 닫아걸은 뒤, 각자 방과 마루에서 저녁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각이었다.틱-짧은 마찰음과 함께 하숙집 전체를 밝히던 전등이 일제히 꺼져 버렸다.거실 한쪽에 놓인 와이파이 공유기의 작은 초록 불빛마저 핏기 없이 스르르 꺼져 내렸다.집 안을 채우던 현대적인 기계음들이 한순간에 사라지자, 창틀을 때리는 사나운 비바람 소리가 집 안을 서늘하게 채웠다. 완전히 고립된 어둠이었다."어, 정전인가?"태성이 당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듬직한 체구와는 어울리지 않게 창문이 덜컹거릴 때마다 슬쩍 어깨를 좁힌 태성은, 자연스럽게 순정이가 서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슬금슬금 옮겼다.괜히 헛기침을 하면서도 순정이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태성이다운 모습에,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자그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태풍 때문에 근처 전선이 끊어진 모양이야. 잠시만 있어 봐."도경의 무덤덤한 목소리가 어둠을 갈랐다.도경은 수려한 손놀림으로 마루 구석의 연장통을 뒤적거리더니 두꺼운 양초 몇 개와 성냥을 꺼내 왔다.치익하는 마찰음과 함께 노란 불꽃이 피어오르고, 작고 따뜻한 촛불 하나가 마루 한가운데를 나지막이 비추기 시작했다.도경은 촛불을 안정적으로 세워둔 뒤 곧바로 부엌과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드 센 바람에 거칠게 덜컹거리는 문틀을 손끝으로 꼼꼼히 만져보더니, 창틀 사이에 수건을 끼워 넣고 문고리를 한 번 더 단단히 고정했다. 익숙하고 무던한 손길이었다.민우는 촛불 불빛 아래에서 어떻게
last updateHuling Na-update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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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애쓰지 않아도 돼

달콤한 햇밤 냄새와 알싸한 밀크티 향이 촛불 불빛 사이로 나른하게 퍼져나갔다.태풍의 포효가 지붕 위를 두드렸지만, 하나의 담요 아래 무릎을 맞대고 앉은 마루 위는 이상할 만큼 포근하고 정막했다.그 안온한 정적을 깨뜨린 것은 다름 아닌 묵직한 진동음이었다.징- 징- 징-마루 바닥을 울리는 스마트폰 진동 소리에 네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쏠렸다.소리의 진원지는 민우의 무릎 위였다.진동이 울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민우의 표정은 차갑게 경직되어 있었다.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스마트폰을 꼭 쥐어잡은 민우는, 액정에 떠오른 이름을 확인하고는 숨을 깊게 내쉬며 거절 버튼을 눌렀다.하지만 화면이 꺼지기가 무섭게 다시 진동이 터져 나왔다.징- 징- 징-계속해서 찍히는 익숙한 번호. 민우는 미간을 깊게 찌푸린 채 입술을 바짝 말렸다.안경 너머의 눈동자에는 피로함과 함께 거대한 중압감이 어른거렸다."안 받아도 돼?"순정이 염려스러운 눈빛으로 조심스레 묻자, 민우는 코끝으로 흘러내린 안경을 고쳐 쓰며 나직하게 고개를 저었다."어. 별거 아니야."민우가 다시 한번 거절 버튼을 누르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수면 부족과 피로로 손끝이 미세하게 떨린 탓인지, 아니면 거부하려는 조바심 때문이었는지 손가락이 터치 화면 위에서 미끄러졌다.띯-하필이면 '통화' 버튼과 함께 '스피커폰' 아이콘이 동시에 활성화되고 말았다.촛불만 아른거리는 고요한 마루 한가운데로, 날카롭고 고압적인 여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너 지금 어디야? 당장 위치 보내! 엄마가 너 어떻게 의대 보냈는지 잊었어? 당장 거기서 나와서 원래 집으로 돌아와"마루 위가 얼음물을 끼얹은 듯 차갑게 침묵했다.민우의 얼굴에서 피기라는 피기가 모조리 빠져나갔다.손을 덜덜 떨며 다급하게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화면을 꺼버렸지만, 한번 공기 중에 흩뿌려진 날카로운 고함은 마루를 무겁게 짓눌렀다.민우는 고개를 숙인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평소의 깔끔하고 냉철하던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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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유년의 흔적

민우의 고백으로 마루 분위기가 자못 무거워지려던 찰나, 태성이 밝게 웃으며 그 공기를 풀어보려 애썼다.하지만 정작 본인은 습관처럼 제 옷자락 끝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저는 뭐, 다들 아시겠지만……."태성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순정을 비롯한 세 사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태성에게로 향했다.태성은 테이블 위로 렁이는 촛불 그림자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어릴 때 부모님이 밥도 안 주고 집을 비워서, 부모님이 먹다 남긴 배달 음식 찌꺼기나 피자 꼬다리 같은 걸로 겨우 끼니를 때웠습니다."담담한 말투였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순정이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그러다 이웃 신고로 부모님이 양육을 포기하셔서 보육원으로 갔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없으면, 집이라는 것도 그냥 외로운 공간일 뿐이라는 걸요."태성이 옷자락을 쥔 손에 힘을 더 주며 말을 이었다."형님이 그 집에서 얼마나 외롭고 답답하셨을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같이 사는 가족이 있는데도 혼자 있는 것보다 더 외로운 게 진짜 사람 미치게 만드는 거니까요."민우는 그 말에 순간 말문이 막힌 듯 태성을 바라보았다.방임과 통제라는 전혀 다른 양상의 결핍이었지만,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진정한 안식처를 얻지 못했다'는 밑바닥의 외로움만큼은 이상하게도 닮아 있었다.이번엔 이현이 식어가는 밀크티 잔 테두리를 손끝으로 쓸어내리며, 씁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저도 뭐…… 어릴 때 엄마 돌아가시고 본가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저를 완전히 유령 취급하더라고요."이현의 목소리는 평소의 나른한 톤과는 다르게 낮고 건조했다."거실에 걸린 가족사진에도 제 얼굴은 없었어요. 생일은커녕 명절에 인사를 드려도 다들 못 본 척 지나쳤고…… 식사 시간에도 제 자리는 없어서 늘 다 먹고 남은 상을 혼자 차려 먹거나 방에서 때워야 했죠. 그냥…… 그 집 안에 갇힌 유령처럼 살았습니다."그 말에 태성이 흠칫하며 이현을 바라보았다.자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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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부서진 집을 고치던 소년

태성과 이현의 고백이 지나간 뒤, 마루 위에는 촛불이 은은하게 일렁이는 가운데 조용한 정적이 감돌았다.세 남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아직 제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도경에게로 향했다.도경은 모두의 시선을 느끼면서도, 굳은살투성이인 커다란 손으로 밤 껍질만 묵묵히 까 내려가고 있었다.사박사박, 밤 껍질이 벗겨져 나가는 소리만이 빗소리 사이로 낮게 울렸다.순정은 굳이 도경을 재촉하지 않았다.그저 식어가는 밀크티 잔에 따뜻한 물을 바싹 부어주며, 그가 마음의 준비를 마칠 때까지 조용히 자리를 지켜주었다.한참 동안 밤 껍질을 다듬던 도경이, 마침내 깎아낸 햇밤을 민우의 접시 위에 무심하게 올려놓으며 묵직하게 입을 뗐다."……우리 집은 늘 시끄러웠어."짧고 무던한 첫마디였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감에 마루 안이 순간 물을 끼얹은 듯 정숙해졌다."아버지는 수틀리면 물건을 던지고 때렸고, 어머니는 기분파였어. 기분이 좋을 땐 한없이 다정하다가도, 안 좋을 땐 날 아예 없는 사람 취급했어.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갔지."도경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신세타령도 섞여 있지 않았다.하지만 그 담담함 뒤에는 어린 시절 내내 눈치를 보며 불안에 떠나야 했던 소년의 오랜 그늘이 짙게 배어 있었다."어릴 때 나한테 집은 안식처가 아니라, 언제 깨진 유리창이 날아올지 모르는 공포였어. 문을 잠가도 소용이 없었지."민우가 그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부모의 과도한 통제 속에서 숨이 막혔던 민우와, 폭력과 변덕 속에서 불안에 떨어야 했던 도경.형태는 전혀 달랐지만, '집'이라는 공간이 따뜻함이 아닌 두려움으로 다가왔다는 점에서는 이상하게도 닮아 있었다."그래서였는지 몰라도, 어릴 때부터 손에 도구를 쥐고 뭘 만들고 고치는 걸 좋아했어. 삐걱거리던 문짝 하나 고쳐놓거나 부서진 의자를 다듬어놓으면…… 그 순간만큼은 내 힘으로 이 공간을 통제할 수 있다는 기분이 들었거든."도경이 씁쓸한 표정으로 굳은살 박인 자신의 손가락 마디를 만지작거렸다."건축학과에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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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빛이 밝아오는 새벽

네 남자의 무거운 고백이 차례로 지난 뒤, 거실에는 사그라드는 촛불 하나만이 낮고 아늑한 불빛을 드리우고 있었다.서로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보듬은 네 청년은 각자의 마음을 조용히 정돈하듯 가만히 불빛을 바라보았다.거실 안을 채운 정적은 더 이상 무겁거나 어둡지 않았다.그때, 촛불 그림자를 물끄러미 만지작거리던 이현이 문득 고개를 들어 순정 쪽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물었다."근데 누나는요? 누나는 어릴 때 어땠어요? 누나 이야기는 한 번도 못 들어본 것 같아요."이현의 질문에 민우와 태성, 도경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순정에게로 모였다.남들의 아픔을 다정하게 들어주기만 하던 순정이었기에, 그 남몰래 품고 있을 서사에 다들 호기심과 걱정이 섞인 눈빛을 보냈다.순정은 잠시 멈칫하다가, 깎다 남은 밤 껍질을 다정하게 쓸어 모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나는…… 어릴 때 부모님 사이가 너무 차가웠어. 한 집에 같이 사는데도 대화 한 마디 없었거든. 집안엔 늘 서늘한 침묵만 흘렀지."순정의 나직하고 온화한 목소리가 거실 구석구석을 채워 나갔다."결국 내가 스무 살이 되자마자 두 분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혼하셨고, 각자 재혼해서 새 가정을 꾸리셨어. 내 자리는 어디에도 없더라고. 그래서 도망치듯 내려온 곳이 바로 이 집, 할머니 집이었어."순정은 잠시 말을 멈추고, 빗방울이 가늘어진 창밖 마당 쪽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았다."돌아온 지 몇 년 안 돼서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셨지만…… 할머니는 생전에 사람 챙겨주고 밥 먹이는 걸 참 좋아하셨거든. 동네에 조금이라도 힘들어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못 지나치고 꼭 집으로 불러앉혀서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이셨어. 그래서 어릴 때나 돌아왔을 때나, 나한테 진짜 따뜻함이 뭔지 가르쳐 준 건 늘 이 집이었어."순정이 다시 네 남자를 둘러보며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그래서 이 집엔 아직도 할머니의 그 기운이 깊게 남아있나 봐. 외롭고 지친 사람들을 가만히 끌어당기는 그런 따뜻한 기운 말이야. 너희가 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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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왔어. 나 찾았어.

태풍이 지나간 지 며칠이 채 되지 않은 아침, 순정하숙의 마당은 언제 거친 비바람이 몰아쳤냐는 듯 눈부시게 맑게 개어 있었다.담장 너머로 쏟아지는 햇살은 영롱하게 반짝였고, 깨끗하게 씻겨 나간 감나무 잎사귀마다 청량한 바람이 부드럽게 스쳐 지나갔다."와, 날씨 진짜 좋네요! 누나, 오늘 같은 날은 마당에서 밥 먹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태성이가 기지개를 켜며 신이 나서 평상 위 먼지를 부지런히 쓸어냈다.날씨가 워낙 좋아 순정은 아침 밥상을 마당 평상 위에 차려내기로 했다.구수한 된장찌개 냄새와 강원도 감자를 갈아 노릇노릇하게 지져낸 감자전의 기름진 향이 온 마당에 진동했다."아, 오늘 아침부터 잔칫날입니까?"이현이 삐죽거리는 까치머리에 잠옷 바람으로 비틀거리며 나와 평상 위에 누운 부처처럼 털썩 앉았다.순정이 방금 갓 구워낸 촉촉한 계란후라이 접시를 평상 한가운데 내려놓자마자 소소한 난장이 벌어졌다."아! 순정 누나! 제 건 완숙이라면서요! 이거 덜 익은데다가 노른자 터졌지 않습니까!"태성이가 계란을 보며 억울한 듯 징징거리자, 옆에 앉은 이현이 젓가락을 슬쩍 밀어 넣으며 나른하게 한마디를 보탰다."태성아, 노른자 터져서 밥에 비벼 먹는 게 인생의 진리다. 못 먹겠으면 형 줘라.""아, 이현이 형 손 치우세요! 숟가락으로 손등 맞습니다!"두 막내가 옥신각신하는 사이, 곁에서 묵직하게 식사하던 도경이 아무 말 없이 자기 접시에 있던 동그랗고 깔끔한 반숙 계란후라이를 툭 떼어 민우의 밥그릇 위에 무심하게 얹어주었다.그러고는 바삭하게 잘 익은 감자전 한 조각까지 간장에 콕 찍어 민우 접시로 옮겨주며 툭 던지듯 말했다." 먹어라.""……뭐냐, 뜬금없이."민우가 약간 민망한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도 반숙 계란을 숟가락으로 툭 터뜨려 밥에 얹었다.태성이가 젓가락으로 감자전을 큼직하게 찢어 민우 입 앞까지 내밀며 눈을 반짝였다."민우 형님, 이거 간장 찍어 먹으면 진짜 미쳤습니다! 어서 드셔보십시오!""내가 알아서 집어 먹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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