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 에이든하르트 대공성의 최상층.검은 대리석이 융단처럼 깔린 알현실의 공기는, 숨을 들이마시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만큼 무겁고 서늘했다.그 정중앙, 북부의 안주인만이 앉을 수 있는 육중한 옥좌에 아일라가 앉아 있었다.창백할 정도로 흰 피부, 정교하게 세공된 드레스, 그리고 흐트러짐 없이 늘어진 은빛 머리카락.그녀는 마치 당대 최고의 장인이 뼈와 살을 깎아 빚어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밀랍 인형 같았다.그리고 그 완벽한 인형의 발밑에, 북부의 지배자이자 무소불위의 권력자인 카일락 에이든하르트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아일라."카일락의 낮은 목소리가 텅 빈 알현실을 울렸다.맹수의 그르렁거림 같기도 하고, 신을 향한 맹목적인 기도 같기도 한 음성이었다.아일라의 고개가 아주 천천히, 기계적인 속도로 아래를 향했다.초점을 잃은 흐릿한 눈동자가 카일락의 얼굴에 닿았다. 증오도, 원망도, 공포도 없는, 완벽하게 '비워진' 눈빛이었다.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카일락이 부르기에 시선을 맞췄을 뿐이다.그 텅 빈 시선을 마주하며, 카일락은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승리감이었다.마침내, 이 지독하고도 끈질긴 짐승의 사냥이 끝났다는 완벽한 확신.과거, 그녀는 이 새장 안에서 미쳐갔다. 끊임없이 발버둥 치고, 자신을 저주하고,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것으로 카일락에게 가장 끔찍한 패배를 안겨주었다.회귀한 후에도 그녀는 남부로 도망쳐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려 했다.하지만 카일락은 이번엔 폭력을 쓰지 않았다.대신 남부 전체를 그녀를 옭아맬 거대한 거미줄로 만들었다. 그녀가 웃어준 자, 그녀가 손을 내민 자, 그녀가 지키고자 했던 모든 것들의 목줄을 틀어쥐고 아주 천천히, 명줄을 조였다.'네가 원하거나 저항하면, 네가 아끼는 이 세상이
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7 Leer má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