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미쳐버린 북부대공의 인형 노릇은 사양하겠습니다: Capítulo 51 - Capítulo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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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더미에 묻힌 잔불 (1)

깊고 고요한 물속이었다.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새까만 심해의 밑바닥. 그곳에는 어떠한 소음도, 고통도, 슬픔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일라의 의식은 그 완벽한 무의 공간에 무거운 돌덩이처럼 가라앉아 있었다.숨을 쉬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가려 발버둥 치던 때도 있었다. 살고 싶어서, 남부의 척박한 땅 위에 내 손으로 작은 집을 짓고 소박한 온기를 나누며 사람답게 살아가고 싶어서. 그 처절한 생의 의지는 번번이 끔찍한 절망으로 짓밟혔다. 내가 숨을 쉴 때마다 누군가의 목이 꺾였고, 내가 손을 내밀 때마다 누군가의 심장에 칼이 꽂혔다.네가 원하면 세상이 죽는다.카일락 에이든하르트가 주입한 그 끔찍한 저주는 너무나도 거대하고 완벽한 진리가 되어 그녀의 세상을 덮쳤다. 살기를 욕망하는 것이 곧 누군가를 죽이는 죄악이 되는 세계에서, 아일라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는 자신을 완전히 지워버리는 것뿐이었다.그래서 그녀는 스스로 숨통을 끊고 이 어두운 심해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시각도, 청각도, 감각도 모두 수면 위로 던져버린 채.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거부하지 않는다.완벽하게 부서져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린 그녀의 영혼은, 그렇게 고통 없는 영원한 안식에 빠져들었다. 그녀는 진심이었다. 단 한 줌의 거짓이나 연기도 섞이지 않은, 생명을 포기한 자의 완벽한 자기 파괴였다.그런데.'……왜.'의식의 가장 깊은 밑바닥, 잿더미만 남은 캄캄한 심연 속으로 아주 미세한 파동이 전해져 왔다.수면 저 멀리서 아득하게 들려오는 짐승의 헐떡임.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버린 자신의 뺨을 감싸고 있는 누군가의 거칠고 뜨거운 손바닥. 그 손바닥은 북부의 모진 눈보라 앞에서도 흔들림 없던 거대한 태산의 것이라기엔, 너무나도 비참하게 덜덜 떨리고 있었다.제발 화를 내. 나를 향해 소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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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더미에 묻힌 잔불 (2)

순간, 아일라의 의식 깊은 곳, 차갑게 식어버린 잿더미의 가장 밑바닥에서 아주 작은 이변이 일어났다.티끌보다도 작고 미세한 열기.완벽하게 꺼졌다고 믿었던 자아의 잔해 속에서, 아주 흐릿하고 붉은 불씨 하나가 소리 없이 깜빡이며 숨을 토해냈다.그것은 복수심처럼 거창하고 뜨거운 불길이 아니었다. 남부를 되찾겠다는 희망찬 의지도, 카일락을 찔러 죽이겠다는 날카로운 분노도 아니었다.그저 인식이었다. 서늘하고도 명징한 자각.나의 텅 빈 껍데기가, 나의 이 지독한 무기력이, 오만하고 잔인한 저 북부의 지배자를 서서히 말려 죽이는 가장 잔혹하고 예리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서늘한 진실.아일라의 호흡이 아주 미세하게,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느려졌다.지금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짓밟거나 조롱할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녀의 영혼은 여전히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손가락 하나를 까딱일 의지조차 남아있지 않았다.하지만 그 작은 불씨 하나가 잿더미 속에서 명멸하는 순간, 아일라의 시야를 감싸고 있던 기괴한 무채색의 안개가 아주 미세하게 걷히기 시작했다.자신의 무릎 위에 얹어진 차가운 두 손.그 손을 붙잡고 헐떡이는 남자의 절망적인 호흡.눈부시게 쏟아지는 샹들리에의 불빛과, 자신을 짓누르던 대공성의 거대하고 화려한 감옥의 벽.이 모든 것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질감으로 다가왔다.오랫동안 무채색으로만 존재하던 세상에 아주 옅은 색채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자신을 짓누르던 죄책감의 무게도, 살아 숨 쉬는 것 자체가 죄악이라는 그 지독한 공포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여전히 그녀의 영혼을 무겁게 옭아매는 족쇄였다. 다만 그 두꺼운 절망의 장막 사이로, 이제껏 단 한 번도 보이지 않던 아주 가느다란 틈 하나가 눈에 들어왔을 뿐이었다.내가 부서졌기 때문에, 오히려 그가 부서지고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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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관이라는 단두대 (1)

의식의 가장 깊고 서늘한 밑바닥에서 피어난 불씨는, 아직 타오르지 않는다.아일라는 푹신한 소파에 허리를 세우고 앉아 허공을 응시했다. 시야에 맺히는 화려한 응접실의 풍경은 마치 빛바랜 정물화처럼 어떠한 생동감도 주지 못했다. 그녀의 내면은 여전히 잿더미로 가득한 완벽한 폐허였다. 무엇을 하고 싶다는 의욕도, 살고 싶다는 본능도, 그에게 복수하겠다는 치기 어린 분노조차 그 폐허 위로는 자라나지 못했다.하지만 그 무기력의 잿더미 한가운데서, 아주 미세하고 건조한 인식 하나가 소리 없이 깜빡이고 있었다.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수록, 저 지배자는 스스로 무너져 내린다.그것은 거창한 계략이나 복수의 계획이 아니었다. 그저 눈앞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현상에 대한 서늘한 관찰이자 자각이었다. 카일락 에이든하르트는 자신이 만들어낸 완벽한 통제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짐승처럼 헐떡였다. 그녀가 입술을 다물면 그 침묵에 질식하고, 그녀가 텅 빈 미소를 지으면 그 공허함에 베여 피를 흘렸다.아일라는 자신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움직일 필요가 없다. 굳이 무언가를 시도하거나 그를 속이려 애쓸 이유조차 없다. 그가 남부에서 주입한 지독한 세뇌대로, 그가 깎아 만든 완벽하고 수동적인 밀랍 인형의 껍데기를 유지하는 것. 오직 그것만이 이 지옥 같은 요람 안에서 아일라가 쥔 유일한, 그리고 가장 잔혹한 무기였다.쾅바깥 복도에서 육중한 문이 흔들릴 정도로 거친 소음이 들려왔다."전하. 더 이상은 가신들을 억누를 수 없습니다."문너머로 바르토의 절박한 음성이 희미하게 새어 들어왔다. 북부의 정무가 마비된 지 오래였다. 무소불위의 지배자가 며칠째 대공비의 응접실에만 처박혀 나오지 않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로젤 수도에서 내려온 황실의 견제와 국경 지역의 마물 토벌 건까지, 에이든하르트 영지 전체가 불만을 품고 끓어오르고 있었다."물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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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관이라는 단두대 (2)

자객이 아일라의 눈앞까지 다가왔다. 자객은 너무나도 무방비하게, 심지어 두려움조차 없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아일라의 기괴한 태도에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마치 귀신을 마주한 듯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에 자객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대공 전하를 갉아먹는 남부의 요물이여, 북부를 위해 죽어라."자객이 억눌린 음성으로 저주를 내뱉으며 단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날카로운 칼끝이 아일라의 심장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찰나였다.쾅응접실의 두꺼운 철문이 폭발하듯 뜯겨나가며 거대한 형체가 짐승처럼 쇄도해 들어왔다.서걱단검이 아일라의 살을 찢기 직전, 허공을 가르는 둔탁하고 끔찍한 파음이 방 안을 울렸다.카일락이었다. 그는 자객의 손목을 맨손으로 쥐어뜯어 버린 뒤, 반대쪽 손으로 자객의 목덜미를 틀어쥐고 그대로 대리석 바닥에 짐짝처럼 처박았다.콰직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자객의 입에서 시뻘건 핏물이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카일락의 눈동자는 완전히 까뒤집혀 이성을 상실한 괴물 그 자체였다. 그는 자신의 영지, 그것도 가장 안전해야 할 밀실에 쥐새끼가 숨어들었다는 사실에 미친 듯이 분노하며 자객의 숨통을 무자비하게 짓이겼다.퍼억 퍽주먹이 내리꽂힐 때마다 사방으로 붉은 점도들이 흩뿌려졌다.따뜻하고 비릿한 핏방울 하나가 공중을 날아와 아일라의 창백한 뺨 위로 툭 떨어졌다. 하얀 피부 위로 선혈이 붉은 선을 그리며 주르륵 흘러내렸다.그 끔찍한 살육의 현장 한가운데서, 아일라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그 모든 광경을 가만히 관람하고 있었다.칼날이 자신의 눈앞까지 다가왔을 때도, 살점이 튀고 뼈가 부서지는 굉음이 고막을 찢을 때도, 그녀는 몸을 피하거나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뺨에 묻은 피를 닦아내려는 본능적인 반사 행동조차 하지 않은 채, 얌전히 무릎 위에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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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실 잣기 (1)

자객이 흩뿌리고 간 살육의 흔적은 대공성의 시종들에 의해 밤새 흔적도 없이 닦여 나갔다.화려한 융단은 새것으로 교체되었고, 대리석 바닥은 눈이 부시도록 광이 났다. 방 안을 가득 채웠던 비릿한 피 냄새마저 북부 특유의 차갑고 시린 향신료 냄새에 덮여 완벽하게 소거되었다. 마치 어젯밤 이 방에서 어떠한 소음도, 끔찍한 죽음의 위협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아일라는 어제와 똑같은 자세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죽어 있었고, 호흡은 얕고 느릿했다.하지만 아무도 들여다보지 못하는 그녀의 캄캄한 내면 깊은 곳에서는, 잿더미 아래 파묻혀 있던 아주 작은 불씨 하나가 서늘한 열기를 머금고 소리 없이 명멸하고 있었다.어제 자객의 시퍼런 단검이 목울대를 겨누었을 때, 아일라는 죽음을 피하려 하지 않았다. 그것은 철저한 무위였고 완벽한 방관이었다. 그리고 그 방관은 카일락 에이든하르트라는 거대한 맹수를 단숨에 벼랑 끝으로 밀어 떨어뜨리는 가장 완벽한 단두대가 되었다.내가 아무것도 원하지 않을수록 저 남자는 파멸한다.그 서늘한 자각이 아일라의 의식 속에 희미한 길을 터주었다.카일락은 완벽한 통제를 원했다. 그래서 그녀의 손발을 자르고 시야를 가려 이 요람 안에 가두었다. 하지만 인형이 되어버린 그녀가 생존에 대한 의지마저 놓아버리자, 이제는 카일락 자신이 그녀를 살려두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는 신세가 되었다.아일라는 무릎 위에 얌전히 포개어 둔 자신의 하얀 손끝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만약 내가 이 무위의 늪에서 아주 미세한 파동을 일으킨다면.저 남자가 숨이 막혀 완전히 미쳐버리기 직전에, 아주 작고 투명한 실 한 올을 던져준다면 어떻게 될까.그것은 복수를 위한 거창한 계략이나 북부를 집어삼키겠다는 야욕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무기력이 카일락을 어디까지 무너뜨릴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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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실 잣기 (2)

"허억."카일락의 입에서 숨이 멎는 듯한 기괴한 파음이 새어 나왔다. 그의 거대한 어깨가 사시나무처럼 튀어 올랐고, 아일라의 손을 쥐고 있던 손아귀에 덜덜 떨리는 힘이 들어갔다."아, 아일라?"카일락의 붉은 눈동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기형적으로 크게 확장되었다.방금 나를 본 건가. 내 눈을 마주친 건가. 손끝으로 나를, 내 체온을 쓰다듬은 것인가.극한의 굶주림 속에서 혀끝에 닿은 단 한 방울의 물. 카일락의 뇌리가 이성이 마비될 정도의 엄청난 환희와 희망으로 하얗게 타올랐다. 그녀의 영혼이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았다. 아주 깊은 곳에 자신을 인식하는 파편이 남아있어서, 방금 자신에게 응답을 보낸 것이다."아일라. 아일라, 너 방금."카일락이 환희에 찬 짐승처럼 헐떡이며 아일라의 뺨으로 손을 뻗었다. 그녀의 얼굴을 감싸 안고, 그 작은 온기를 붙잡아 어떻게든 더 큰 불길로 살려내기 위해 미친 듯이 다가들었다.그의 손끝이 아일라의 창백한 뺨에 닿기 직전이었다.뚝.아일라는 속으로 자아내던 그 얇은 실을 가차 없이 끊어버렸다.순식간이었다. 카일락과 시선을 얽고 있던 아일라의 눈동자에서 빛이 탁 꺼졌다. 초점은 다시 흐릿하게 흩어져 허공으로 미끄러졌고, 카일락의 손등을 쓸어내렸던 검지손가락은 생명을 다한 벌레처럼 힘없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방금 전까지 존재했던 아주 미세한 온기와 생동감이, 거짓말처럼 완벽하게 증발해 버렸다.카일락의 손이 허공에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아일라의 입술이 태엽 장치가 돌아가듯 기계적으로 벌어졌다."전하께서, 시선을 맞추라 명하셨습니까."높낮이가 완벽하게 소거된 끔찍한 기계음. 소름 끼치도록 평탄하고 공허한 인형의 목소리가 카일락의 고막을 차갑게 내리쳤다.카일락의 얼굴에서 핏기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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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문을 잠근 유리 온실 (1)

시간의 흐름이 완전히 거세된 듯한 방이었다.눈을 찌를 듯 화려했던 샹들리에의 불빛은 이제 피로에 지친 듯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고, 두꺼운 암막 커튼은 북부의 서늘한 낮빛조차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공기 중에는 숨이 막힐 듯한 침묵과, 한 남자의 짓눌린 호흡만이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었다.아일라는 늘 그렇듯 소파 정중앙에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앉아 있었다. 그녀의 두 손은 무릎 위에 단정하게 포개어져 있었고, 시선은 허공의 먼지 하나를 관통하듯 초점이 없었다.이 고요하고 기괴한 평화 속에서, 아일라의 내면에 웅크린 서늘한 불씨만이 아주 천천히 호흡하며 눈앞의 풍경을 관람하고 있었다.카일락 에이든하르트.대륙의 반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무소불위의 지배자는 지금 며칠째 이 응접실 밖으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그의 몰골은 짐승처럼 처참했다. 은회색 머리카락은 헝클어진 채 이마를 덮었고, 항상 단정하게 날이 서 있던 턱선에는 거뭇한 수염이 자라나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붉은 동공에는 극도의 수면 부족과 편집증적인 불안이 핏발처럼 엉겨 붙어,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경계하는 광인의 늪이 되어 있었다.그는 아일라의 발치에서 조금 떨어진 바닥에 웅크려 앉아, 충혈된 눈으로 아일라의 일거수일투족을 집요하게 감시했다. 아니, 감시라기보다는 맹목적인 관찰이자 처절한 확인에 가까웠다.그녀의 가슴이 미세하게 오르내리며 호흡을 하고 있는지.그녀의 핏기 없는 입술이 메말라 갈라지고 있지는 않은지.자객의 단검이 목을 겨누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아일라의 그 완벽한 방관은, 카일락의 이성에 결코 지워지지 않는 치명적인 흉터를 남겼다. 그는 비로소 자신이 완성한 이 '완벽한 인형'이 지닌 치명적인 결함을 깨달았다.인형은 스스로 생존하지 않는다.명령이 없으면 물을 마시지 않아 기꺼이 갈증으로 말라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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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문을 잠근 유리 온실 (2)

그런데 지금 이 응접실의 꼴은 어떠한가.굳게 닫힌 철문 너머로 북부의 영지가 불타고 가신들의 아우성이 빗발치지만, 저 오만했던 지배자는 제 발로 한 걸음도 방 밖을 나서지 못한다. 외부의 모든 변수와 소음을 차단하고, 오직 둘만이 존재하는 이 기괴한 정적 속에 스스로를 생매장하고 있다.아일라가 텅 빈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아주 느릿하게 숨을 내쉬었다.지배자가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통제하기 위해, 역으로 자신이 만든 유리 온실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영원한 죄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녀가 완벽한 인형이 될수록, 인형을 살아 숨 쉬게 유지해야 하는 주인은 절대적인 감금 상태에 빠진다.이 얼마나 완벽하고 서늘한 인과율의 역전인가.부스럭아일라의 깊은 상념을 깨고, 바닥에 웅크려 있던 카일락이 기어 오듯 다가왔다. 그는 며칠간의 극도의 긴장과 수면 부족으로 인해 한계에 다다른 듯, 거구의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렸다.카일락은 아일라의 무릎 언저리에 자신의 무거운 머리통을 기대며 헐떡였다."아일라."열에 들뜬 듯한 탁한 음성이었다."나는 여기 있어. 아무 데도 가지 않아. 네 곁을 떠나지 않을 거야."스스로에게 거는 최면인지, 그녀에게 갈구하는 애원인지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이 그녀의 드레스 자락 위로 흩어졌다. 그는 아일라의 차가운 손끝을 찾아 자신의 뺨에 억지로 비벼대며, 그 미약한 피부의 마찰에서 그녀가 살아있다는 증거를 짜내려 안간힘을 썼다.아일라는 자신의 다리에 얼굴을 묻고 짐승처럼 앓는 소리를 내는 북부의 대공을 내려다보았다.불과 하루 전, 그녀는 아주 찰나의 눈맞춤과 손끝의 움직임이라는 미세한 보상을 흘려 그를 환희에 빠뜨렸다가 다시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그 끔찍한 불확실성의 맛을 보아버린 카일락은 이제 굶주린 들개가 되어, 언제 다시 떨어질지 모르는 빵 부스러기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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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환상과 재의 요람 (1)

숨이 막힐 듯한 밀실 안에서, 짐승은 마침내 자신이 갇힌 덫의 정체를 깨달았다.카일락 에이든하르트는 충혈된 눈으로 응접실의 허공을 응시했다. 무겁게 내려앉은 암막 커튼 너머로 며칠째 낮과 밤이 바뀌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의 시야에 맺히는 것은 오직 소파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는 창백한 인형뿐이었다.아일라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원망하지 않았다. 그가 주는 물만 마셨고, 그가 허락하는 숨만 쉬었다.그 완벽한 무위의 늪에 발을 들인 대가로, 북부의 지배자는 자신의 모든 통제력을 상실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단 일 초의 순간조차 견디지 못하는 중증의 편집증 환자가 되어버렸다. 국경의 방어선이 무너지고 반란의 불씨가 타오른다는 다급한 전령의 외침조차 이 굳게 닫힌 철문을 열게 하지 못했다.자신이 지배자인가, 아니면 저 텅 빈 껍데기를 살려두기 위해 영원히 복무해야 하는 노예인가.극도의 수면 부족과 신경 쇠약으로 이성이 너덜너덜해진 카일락의 뇌리에, 기괴하고 파괴적인 광기가 불길처럼 치솟기 시작했다.내가 왜 이 방에 갇혀 짐승처럼 헐떡이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나는 대륙의 절반을 공포로 짓밟은 무소불위의 군주다. 저 여자의 숨통을 쥐고 있는 것도, 남부의 그 보잘것없는 영지를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것도 모두 나의 권력이다. 그런데 왜 내가 저 텅 빈 눈동자 앞에서 벌벌 떨며 애정을 구걸하고 있단 말인가.그의 부서진 논리는 필사적으로 탈출구를 찾기 위해 끔찍한 비약을 만들어냈다.그래. 저 여자가 저렇게 완벽하게 비워진 것은, 아직 미련의 뿌리가 세상 어딘가에 남아있기 때문이다.남부 펠루아 구역의 척박한 땅, 로젤 수도의 위선적인 황실, 그녀가 한 번이라도 시선을 주었던 저 바깥세상의 모든 것들이 아직 형태를 유지하고 있기에, 그녀의 영혼이 내게로 온전히 돌아오지 않고 허공을 떠돌고 있는 것이다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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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환상과 재의 요람 (2)

"당장 북부의 전 병력을 몰고 남부로 진군할 것이다. 펠루아 구역의 모든 집과 상단을 불태우고, 네가 길을 걷다 옷깃을 스친 적 있는 자들까지 모조리 잡아들여 목을 치겠다. 황실이 나서면 로젤 수도마저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겠어."그는 아일라를 안은 팔에 뼈가 부서질 듯 억눌린 힘을 주었다."세상에 네가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재로 만들어 버리면. 저 바깥에 오직 죽음과 피비린내만이 진동하게 된다면. 그때는 너도 알게 되겠지. 이 세상에 네가 안심하고 숨을 쉴 수 있는 곳은 오직 내 품안뿐이라는 걸."광기 어린 협박.그것은 통제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폭군이, 자신의 무력감을 감추기 위해 꺼내 든 가장 극단적이고 유치한 발악이었다.카일락은 절박하게 아일라의 얼굴을 살폈다.이토록 끔찍한 학살을 예고했다. 남부가 지도상에서 지워지고 수백만 명의 목숨이 도륙 날 것이라 선언했다. 네가 아끼던 세상의 완전한 멸망을 선고했는데, 과연 이번에도 입을 다물고 있을 텐가.당장 나를 멈춰 세워라. 두려움에 떨며 내 멱살을 잡고 울부짖어라. 제발 이 미친 짓을 멈춰달라고 내 발밑에 무릎을 꿇고 애원해라.카일락의 속내가 짐승처럼 쩍 벌어져 그녀의 살아있는 반응을 탐욕스럽게 기다렸다. 그는 자신이 여전히 그녀의 세상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절대적인 지배자임을, 이 공포를 통해 기어코 증명받고 싶었다.휘이이잉살을 에는 눈보라가 두 사람의 몸을 매섭게 훑고 지나갔다.아일라는 낭떠러지 아래의 까마득한 허공과, 카일락이 불태우겠다고 선언한 남부의 지평선을 텅 빈 눈으로 응시했다.그녀의 캄캄한 내면 깊은 곳에서, 단 하나의 조용한 불씨가 이 소란스러운 광기를 서늘하게 관람하고 있었다.'불쌍하고 초라하구나.'아일라의 의식 속에서 건조한 조소가 일었다.남부를 불태우겠다니. 세상의 모든 미련을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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