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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겨울이 끝나면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11 - チャプター 20

30 チャプター

제11화

설희가 원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강문시에서 두 사람 사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었다.‘설희가 이혼하겠다고 했다니?’강숙경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너 지금 나랑 농담하니? 네가 이혼하겠다고 하면 놀랍지도 않아. 그런데 설희가 왜 이혼해? 그 애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지 네가 제일 잘 알잖아.”“할머니, 이런 이야기까지 하고 싶지 않아요. 설희가 할머니한테 부탁하러 오더라도 거절만 해 주세요.”“그래서 너는 대체 어떻게 할 생각인데?”원호는 몸을 돌리며 차갑게 웃었다. “저랑 설희는 평생 서로를 괴롭히면서 살 사이예요.”강숙경은 기운이 쭉 빠졌다.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됐다. 난 이제 너한테 신경 안 쓸란다. 마음대로 해. 너한테 증손주 보겠다는 기대도 접어야겠구나.”원호는 서재로 들어가 책상 위 서류만 멍하니 바라봤다. 오늘 밤에도 중요한 해외 화상회의가 잡혀 있었지만 노트북을 켤 기운조차 없었다.천현이 들어와 조용히 알렸다. “대표님, 회의 시작 5분 전입니다.”그제야 원호는 짧게 대답하고 노트북을 켰다.평소 원호는 해외 법인 사람들에게 매우 엄격했다. 하지만 오늘은 회의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침묵 때문에 참석자들이 더 불안해했다.회의가 끝난 뒤에는 천현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본사에서 새 책임자를 내려보낼 계획이 있느냐고 떠보는 사람까지 있었다.천현은 적당히 얼버무렸다. ‘아마 사모님 일 때문에 대표님의 신경이 온통 다른 데로 가 있는 것 같은데...’...원호는 회의를 끝내고도 쉬지 않았다. 바로 밖으로 나가 지인들과 술을 마셨다.룸 안에는 모두 원호와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민혁이 술잔을 들고 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오설희가 남의 남자랑 붙어 다니다가 본처한테 맞았다던데, 진짜야? 얘는 불륜녀 소리 듣는 게 취미냐?”원호의 시선이 바로 민혁에게 향했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너 그걸 어떻게 알았어?”예서가 급히 끼어들었다. “민혁아, 내가 그냥 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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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예서가 얼른 민혁의 팔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 하지 마. 원호가 나더러 기다리라고 한 적도 없어. 게다가 지금 법적으로는 설희 씨의 남편이잖아.”“내가 정말 그런 마음으로 원호 곁에 있으면 나도 똑같이 상간녀 되는 거야.”다른 사람들이 바로 말을 보탰다. “예서 누나는 체면을 너무 따진다니까. 누나랑 원호 형이 아무 사이 아니어도 오설희는 둘 사이에 뭔가 있다고 믿을걸? 예전에 누나 봤을 때 손찌검하려고까지 했다며. 그 얘기 듣고 나도 화가 나던데.”“됐어. 그 이야기 그만하자.”예서는 원호를 바라보다가 상태가 평소와 다른 걸 알아챘다. “몸 안 좋아? 먼저 들어갈래?”원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속눈썹이 가볍게 떨렸다. “괜찮아. 생각 좀 하는 중이야.”원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얼마 뒤 룸 문이 열리고 영신이 들어왔다.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영신과 원호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영신은 방 안 사람들을 보고 약간 놀란 듯 룸 번호를 확인했다. 이어 웃으며 말했다. “미안. 방을 잘못 알고 들어왔네.”다들 영신을 알고 있었다. 이 자리는 원호의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예의상 인사를 건넸다.“영신 형, 출장에서 돌아오셨어요?”“응. 너희 계속 마셔. 난 옆방에서 고객들 만나기로 했어.”영신은 워커홀릭으로 유명했다. 성격도 부드럽고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반듯하고 세련된 외모까지 갖춰서 주변에 싫어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그중 영신과 제법 친한 몇 사람은 셔츠 깃에 희미하게 묻은 립스틱 자국을 바로 알아봤다.“영신 형, 여자친구 생겼어요? 셔츠에 립스틱 묻었는데.”주변 시선이 한꺼번에 영신에게 쏠렸다. 다들 호기심 가득한 얼굴이었다.“영신 형이 원호 형보다 두 살 많죠? 원호 형은 벌써 결혼 3년 차인데 형은 아직 아무 소식도 없잖아요. 할머님이 엄청 재촉하시겠는데요?”영신은 옆에 선 채 웃었다. “난 급하지 않아. 그 사람은 지금 사람들 앞에 나올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나중에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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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원호야...”예서는 아쉬움을 숨기지 못하고 뒤따라 나갔다.민혁은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원호가 갑자기 감정을 드러낸 이유가 영신의 이야기 때문인 것 같았다.‘둘이 딱히 크게 부딪친 적은 없지 않았나?’원호는 이미 바 밖으로 나와 있었다. 예서가 급히 쫓아오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손을 저렇게 다쳤는데 병원도 안 간다고? 너 걱정하다 나 잠도 못 자라는 거야? 원호야, 혹시 영신 오빠가 또 뒤에서 무슨 짓 했어?”예서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영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믿지 않았다.예서가 원호를 처음 알게 된 건 원호의 형편이 가장 어렵던 해였다. 투자금을 구하려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원호는 한 룸에서 투자자들과 술을 마시다 위출혈까지 왔다. 거의 성사됐던 투자도 영신이 나타난 뒤 상대가 갑자기 말을 바꾸며 무산될 뻔한 적도 있었다.그때 예서는 영신이 일부러 원호를 방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았다.나중에 생각해 보니 영신은 이미 원호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 당시 영신은 배씨 집안의 유력한 후계자였다. 갑자기 친동생이 돌아오면 자신의 자리가 흔들릴 수 있었다.물론 이런 생각은 훗날 정리된 것이었다. 당시에는 영신이 떠난 뒤 예서가 투자자에게 원호를 두둔하는 말을 몇 마디 해 줬다.예서의 집안은 강문시 사교계에서도 영향력이 큰 편이었다. 오래전부터 배씨 집안과 혼담이 오간다는 소문까지 있었기에 투자자는 예서의 체면을 봐 줬다. 결국 중요한 계약은 원호에게 넘어갔고, 그날 밤 예서는 위출혈로 쓰러진 원호를 병원까지 데려갔다.예서는 그때 원호에게 큰 도움을 줬고, 원호를 처음 본 날부터 마음에 두기 시작했다. 훗날 원호도 예서에게 한 번 큰 도움을 갚았다.하지만 당시 원호가 예서에게 가진 감정은 순수한 고마움이 전부였다.예서는 눈가를 붉힌 채 뒤에서 원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다른 사람들은 다 영신 오빠가 좋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난 알아. 겉만 멀쩡한 사람이야. 또 뒤에서 너 힘들게 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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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천현은 더 말하려 했지만 통화가 끊어졌다.천현은 뜨끔한 마음으로 룸미러에 비친 원호의 시선과 마주쳤다가 어색하게 핸드폰을 내려놓았다.원호가 비웃었다. 눈에는 서늘한 냉소가 가득했다. “누가 그 여자한테 전화하랬어? 내가 빨리 죽어야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갈 수 있다고 생각할 텐데.”천현은 운전대만 더 꽉 쥐고 입을 다물었다.‘지금 구름힐로 가야 하나, 병원으로 가야 하나?’원호는 차 천장을 바라봤다. 어두운 실내로 창밖 불빛이 간간이 스쳐 지나가면서, 눈가에 자기 자신을 혐오하는 듯한 기색까지 비쳤다.한참 뒤 원호가 말했다. “구름힐로 가.”“대표님, 그래도 손은...”“괜찮아.”천현은 원호를 더 말릴 수 없어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집에 도착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본가에서 전화가 왔다. 강숙경이 저녁 산책 중 계단에서 넘어져 병원에 있다는 연락이었다. 바로 와 달라고 했다.원호는 지체할 수 없었다.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배씨 집안이 출연한 의료재단 산하에는 규모가 큰 병원이 몇 곳 있었다. 집안 사람이 다치면 주로 그중 한 곳을 이용했다.설희도 연락받고 급히 옷을 갈아입은 뒤 병원으로 달려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원호가 보였다.걸음을 잠깐 멈췄던 설희는 못 본 척하고 곧장 병원 안으로 뛰어갔다.원호는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마치 마주치지 말아야 할 사람이라도 본 듯한 태도였다.이유 없이 속이 거칠어졌다.설희는 금세 강숙경의 병실 앞에 도착했다. 침대에 누운 할머니는 안색이 조금 창백했지만 주변에 모인 가족들을 달랬다. “난 괜찮아. 계단 내려가다 발을 헛디딘 것뿐이야. 다들 이제 돌아가라.”정혜란은 원호의 어머니이자 강숙경의 며느리였다. 지금은 침대 곁에 앉아 시어머니 손을 잡고 있었다.“어머님, 이제 밤에는 혼자 나가서 산책하지 마세요. 정말 저희 다 놀랐잖아요.”강숙경은 손을 내저으며 문 쪽을 바라보다 설희를 발견하자 눈이 밝아졌다. “설희야, 너도 왔니? 네 몸도 이제 막 나았을 텐데 누가 너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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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한참 망설인 뒤 설희는 사실대로 말했다. “아주버님이 제 회사 근처에 안 쓰는 집이 하나 있다고 했어요. 당분간 갈 일 없으니까 제가 지내도 된다고 해서 지금 거기 있어요.”강숙경은 안도하면서도 못마땅한 듯 혀를 찼다. “영신이는 적어도 누구처럼 자기 아내 하나 챙길 줄 모르는 사람은 아니겠구나.”설희는 힘없이 입꼬리를 당기고 눈을 내리깔았다.강숙경과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눴다. 원래도 몸이 좋지 않았던 강숙경은 오늘 더 지쳐 보였고 하품까지 했다.“할머니, 오늘 밤은 제가 여기 있을게요.”“괜찮아. 간병인도 있고, 다른 사람들도 전부 돌려보냈어. 설희야, 넌 네 일 잘 챙겨. 시간 나면 원호랑 아이도 하나 갖고.”“저 녀석은 갈수록 제멋대로야. 내가 한마디 하면 열 마디를 받아쳐. 아버지가 되면 철이 좀 들지도 모르지.”설희는 대충 대답을 맞춰 주고 병실을 나왔다.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천천히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었다.복도 모퉁이를 돌기도 전에 정혜란과 원호의 대화가 들렸다.“너 대체 무슨 생각이야? 네 형은 여자친구 하나 안 만들고 나 속 썩이고, 넌 결혼 3년이 지나도록 아이도 없잖아.”“설희가 싫으면 예서랑 아이를 가져. 난 예서가 마음에 들어. 아니면 아예 이혼해서 예서가 더 기다리게 하지 말든가. 걔가 계속 너 기다리는 거 내가 모르는 줄 알아?”원호는 벽에 등을 기대고 느슨하게 서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정혜란은 둘째 아들의 속을 가장 읽기 어려워했다. 목소리가 점점 답답해졌다.“너 예서가 좋아하는 거 맞아? 사람 바보처럼 기다리게 하지 마. 난 지금 네 형 일만으로도 기가 다 빠져. 여자 좀 만나라고 해도 꿈쩍도 안 해.”“넌 그래도 곁에 예서가 있잖아. 빨리 아이부터 가져.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놓이질 않는지 모르겠어.”“알았어요.”원호는 짧게 대답하고 창밖의 짙은 밤을 바라봤다. “늦었어요, 어머니. 먼저 들어가서 쉬세요.”정혜란은 그 대답 하나에 표정이 확 밝아졌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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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예서는 언제나 지나치게 예의 바른 말투로 설희에게 안부를 물어왔다.설희는 감정이 가장 불안정했던 시기에는 그런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날이 선 말로 되받아쳤다. 나중에는 그 답장들이 캡처되어 예서가 속한 여러 단체 대화방에 퍼졌다. 그럴수록 설희는 성격이 독하고 못된 여자라는 이미지로 굳어졌다.설희는 알고 있었다. 예서가 이렇게 조금씩 숨통을 조이며 자신이 무너지기를 기다린다는 걸.결과적으로 예서는 성공했다. 지난 3년 동안 설희에게 마음 편한 날은 하루도 없었다.설희는 예서의 메시지에 답하지 않았다. 화장실 안에서 30분가량 마음을 가라앉힌 뒤에야 조용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병원 정문에서 택시를 부르려는데 차 한 대가 바로 앞에 멈췄다.낯익은 차였다. 번호판 끝 네 자리가 연속된 숫자라 멀리서도 원호의 차임을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강문시 재계 사람들에게는 원호의 차로 워낙 유명한 번호이기도 했다.창문이 내려가며 원호의 얼굴이 드러났다.“타.”설희는 못 들은 척 차를 지나쳐 밖으로 걸어갔다. 앞을 가로막고 있으면 택시를 잡기도 불편했다.몇 걸음 떼지 않았는데 뒤에서 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곧 손목이 잡혔다. 거칠게 당겨져 몸이 뒤로 비틀렸다.비릿한 피 냄새가 났다. 설희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원호의 손에 떨어졌다. 상처에서는 아직 피가 흐르고 있었고, 손목에도 붉은 핏자국이 있었다.설희의 미간이 굳고 안색이 새하얘졌다. 다급하게 원호를 밀어내려 했다.예전 교통사고 이후 설희는 피를 심하게 무서워했다. 피만 보면 속이 울렁거리거나 헛구역질이 나기도 했다.원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낮게 욕을 내뱉은 원호는 다친 손을 등 뒤로 숨기고 멀쩡한 손으로 설희를 잡았다.하지만 설희는 예민한 곳이 건드려진 사람처럼 움찔했다. “만지지 마.”원호의 표정이 완전히 굳었다. “오설희, 언제까지 이럴 건데?”설희는 대꾸하지 않았다. 올라오는 구역질을 억지로 참으며 가방에서 소독 티슈를 꺼내 손목을 빠르게 닦았다. 열 장이 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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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설희는 그 벨 소리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처음 원호가 해온재에 누군가를 따로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원호의 핸드폰을 몰래 확인했고, 그 번호에만 설정된 벨 소리까지 기억해 버렸다.상대가 무슨 말을 했는지 원호의 표정이 험하게 굳었다. “알았어. 바로 갈게. 먼저 찾아.”또 그곳에서 특별히 챙기는 사람이 사라진 모양이었다.설희는 그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해온재 주변에는 늘 경호 인력이 붙어 있어 가까이 갈 기회조차 없었다.원호는 그 사람의 존재를 철저히 숨겼다. 처음 몇 달은 해온재에서 전화가 유난히 자주 왔다. 성격도 까다롭고 몸도 약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상하게도 원호가 어렵게 구름힐에 돌아오는 날이면 꼭 일이 생겼다.통화를 끊은 원호가 천현에게 말했다. “길가에 차 세워.”차가 멈추자 설희는 눈치 빠르게 문부터 열었다.원호의 목소리가 얼음처럼 차가웠다. “뭐 하는 거야?”설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차에서 내려 문을 세게 닫고 앞쪽으로 걸어갔다.늦은 시간이라 도로에 차는 많지 않았다. 가로등은 밝았지만 여자 혼자 밤길을 걷는 건 아무래도 무서웠다.하지만 지금 마음속에 가라앉은 서늘함에 비하면 그 정도 두려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몇 걸음 걷자 뒤에서 다른 자동차의 경적이 울렸다.설희의 눈가가 붉어졌다. 돌아봤지만 원호의 차가 아니었다. 영신의 차였다.눈물이 떨어질 뻔했다. 방금 아주 잠깐 기대했던 자신이 한심해 뺨이라도 세게 때리고 싶었다.“아주버님, 어떻게 여기에 있어요?”목소리가 조금 잠겼다.영신은 차 문을 열며 휴지 한 장을 건넸다. “나도 할머니 뵙고 오는 길이야. 넌 왜 원호랑 같이 안 가? 됐다. 일단 타. 집까지 데려다줄게.”“며칠 전에 강문시에서도 늦은 밤 혼자 걷던 여자가 강도 피해를 당했다는 뉴스가 있었어. 혼자 다니면 위험해.”차 안에 들어간 설희는 몸 전체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머리는 이상할 만큼 맑았다.영신과 원호는 둘 다 일에 미쳐 사는 사람들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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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설희는 눈물을 억지로 삼켰다. 다시는 원호 때문에 울고 싶지 않았다. 옅게 웃으며 영신을 부드럽게 밀어냈다.“아주버님, 알겠어요. 고마워요.”설희는 몸을 돌려 주택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머릿속은 아직도 무겁고 흐릿했다.현관에 들어선 뒤 벽의 조명을 켜기도 전에 소름이 돋았다. 어두운 거실 안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통창 밖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불빛만으로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보기 어려웠다.놀란 설희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밖으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남자가 훨씬 빨랐다. 팔을 잡아 거칠게 끌어당기더니 그대로 현관문에 등을 눌렀다.익숙한 향이 코끝에 닿자 누군지 알아차렸다. 설희의 눈가가 뜨거워졌고, 주먹으로 원호의 어깨를 세게 내리쳤다.“배원호, 당신 미쳤어?!”‘내가 대체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남자한테 걸린 거야?’원호는 설희를 집 안으로 끌어들이고 현관문을 닫았다. 그대로 문가에 몰아세웠다.한마디 설명도 없었다. 온몸에서 거칠고 위험한 분노가 느껴졌다.설희도 화가 치밀어 있는 힘껏 몸을 비틀었다. “놔! 이거 놓으라고!”원호가 바지 허리선을 거칠게 잡아 내리자 설희의 몸이 딱 굳었다. 곧 떨기 시작했고 더는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원호는 손을 들어 설희의 뺨을 가볍게 쓸었다. 손바닥에 젖은 눈물이 묻었다.그는 눈을 내리깔고 방금 내렸던 옷을 다시 천천히 올려 줬다.정신을 차린 설희는 몸을 돌려 원호의 뺨을 세게 때렸다.거실에는 여전히 불이 켜지지 않았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바깥에서 들어오는 흐린 빛만으로도 서로의 표정을 어느 정도 볼 수 있었다.원호의 눈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안쪽에서 거센 감정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자신이 먼저 뺨을 때렸는데도 설희는 가슴이 견디기 힘들 만큼 아팠다. 숨까지 막혔다.원호가 아파서가 아니었다. 자기 자신이 너무 억울하고 서러웠다.설희는 입술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불도 켜지 않고 위층으로 올라가려 했다.뒤에서 원호가 말했다. “그렇게 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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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설희가 보기엔 두 사람이 이렇게 계속 붙잡고 있어 봐야 아무 의미도 없었다.원호가 갑자기 낮게 웃었다. 손끝으로 담뱃재를 털며 말했다. “미안한데, 없어.”설희는 말문이 막혔다. 뺨에 열이 오르고 입술을 깨물었다. 눈에는 눈물이 고였지만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저 말없이 원호를 바라봤다.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원호는 그 표정을 보다가 천천히 담배를 빼 쓰레기통에 버렸다. 다치지 않은 손을 들어 설희의 눈가를 닦으려 했다.손끝에는 얇은 굳은살이 있었다.원호는 싸움에 유난히 능했다. 배씨 집안으로 돌아가기 전에도 여러 명을 한꺼번에 상대할 만큼 몸을 잘 썼다. 밑바닥에서 사업을 키우며 많은 사람의 이해관계를 건드린 탓에 습격당하는 일도 잦았고, 자연스럽게 몸을 지키는 법을 익혔다.격투뿐 아니라 검도, 봉술, 활, 사격까지 따로 배웠다. 그래서 거친 손끝의 굳은살이 설희의 뺨을 스치자 조금 따끔했다.설희는 얼굴을 피했다. 하지만 곧 턱이 잡혀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 원호가 물었다. “이제 우리 그만 싸우면 안 돼?”설희는 그 말투가 우스웠다. 마치 자신만 이유 없이 떼를 쓰고 있었고 원호가 넓은 마음으로 받아 주겠다는 듯 들렸다.고개를 돌려 턱을 빼려 했지만 원호가 놓아주지 않았다.원호는 갑자기 몸을 숙여 설희의 입술을 덮었다. 강하게 입술을 벌리려 했다.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입을 맞춘 게 언제인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설희는 몇 초간 굳어 있다가 원호의 혀끝을 세게 깨물었다.원호는 통증에 움찔했지만 설희를 놓지 않았다. 금세 두 사람의 입안에 피 맛이 번졌다.설희의 눈물이 다시 흘렀다. 발로 원호의 구두를 세게 밟았다.원호는 그제야 움직임을 멈췄다. 아래를 한번 내려다보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힘은 남았네.”“배원호, 내가 그렇게 우스워? 내가 평생 당신한테서 못 벗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내가 이혼하자고 하니까 일부러 밀고 당기는 거라고 보는 거잖아.”“아니야?”설희는 속이 뒤집힐 만큼 불쾌했다. 손등으로 입술을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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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설희는 차마 먼저 물을 용기가 없었다. 얼마 뒤 주아에게서 또 메시지가 도착했다.[임재우가 우연히 말했는데, 배원호가 지난 몇 년 동안 이 집에 엄청 자주 갔대. 안에 누가 있는지 너 알아?]설희는 답하지 못했다. 조태광을 데리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오늘은 일찍 움직여서 6시도 되기 전에 조태광 집 앞에 도착했다.주아의 메시지가 다시 왔다.[우리 3년 동안 못 봤잖아. 시간 되면 한번 만나자.]설희는 운전대를 꽉 쥐고 좌석에 등을 기대었다.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조태광이 차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상태가 좋지 않았다. 얼굴에는 여자의 손톱에 긁힌 상처가 여러 줄 나 있었고, 몇 군데는 살이 벌어져 피까지 배어 있었다. 얼마나 세게 할퀴었는지 알 수 있었다.설희는 묻지 않고 차를 회사로 몰았다.회사에 거의 도착했을 때 조태광이 물었다. “경찰에서 연락이 왔어?”“아직요.”“아마 오늘 오후쯤 올 거야. 연락이 오면 합의했고 처벌 원하지 않는다고 말해 줘.”“네.”조태광은 이마를 눌렀다. “그거 알아? 문기정이 어젯밤에 누군가한테 두들겨 맞았대. 술 취한 남자 여러 명한테 집단 폭행당해서 뇌진탕도 심하다고 하더라.”설희의 눈이 조금 커졌다. 곧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저희 계약에는 영향 없겠죠?”조태광은 설희가 걱정하는 게 계약이라는 사실에 어이가 없어 웃었다.“계약은 문제없어. 그 회사에 부서가 몇 개인데. 문기정이 빠져도 실무는 다른 사람들이 진행해. 그런데 이거 배원호가 한 일 같지 않아?”3년 전 조태광을 때렸던 방식과 비슷했다. 원호는 한번 손을 쓰면 쉽게 끝내지 않는 사람이었다.설희는 앞만 바라봤다. 세상에서 가장 우스운 말을 들은 사람처럼 입가에 힘없는 웃음이 걸렸다.“진예서 씨 때문이라면 그럴 수 있겠죠. 저 때문에 그럴 사람은 아니에요. 2년 전에는 진예서 씨를 구하다가 배원호가 죽을 뻔한 적이 있거든요.”조태광은 놀란 얼굴로 몇 초 있다가 호기심을 못 이기고 물었다. “그건 또 언제 있었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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