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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겨울이 끝나면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21 - チャプター 30

30 チャプター

제21화

정혜란과 함께 온 사모님은 설희를 본 적이 없었지만, 정혜란이 이름을 부르는 걸 듣자 눈빛부터 달라졌다.“이분이 바로 사모님의 며느리 오설희 씨예요?”정혜란은 표정이 굳었다. 괜히 이름을 불렀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 와 모르는 척할 수도 없었다.곧 정혜란은 못마땅한 눈으로 설희를 노려보다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조태광까지 발견했다. “왜 남자 옆에 붙어 다녀?”설희는 눈을 내리깔았다. 태도는 차분했고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았다. “취직해서 일하는 겁니다.”정혜란은 기가 막힌 듯 웃더니 손을 들어 그대로 뺨을 후려쳤다. “취직을 한 거니, 남자를 구한 거니? 사람 버릇은 못 고친다더니 딱 너 두고 난 말이구나!”약혼식에서 벌어진 일 이후, 주변 사람들은 설희를 남자 없이는 못 사는 헤픈 여자라고 여겼다. 그렇지 않고서야 겉으로 친오빠나 다름없던 원호에게 약까지 먹였겠느냐며 손가락질했다. 염치도 없는 뻔뻔한 여자라는 욕이 늘 따라붙었다.함께 온 사모님은 정혜란이 다짜고짜 며느리에게 손부터 올릴 줄은 모르고 깜짝 놀랐다. 그래도 자기 며느리가 저랬다면 자신도 참기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집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정혜란은 화가 치밀어 가슴까지 떨렸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신 뒤 쏘아붙였다. “할머니가 널 얼마나 감싸든 난 상관없어. 이혼은 무조건 해! 지금 바로 원호한테 전화할 거야!”설희는 입가에 피가 맺힌 채 그 자리에 서서 정혜란이 원호에게 전화를 거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조금 떨어져 있던 조태광은 그 장면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원호와 설희 사이가 정확히 어떻게 된 건지는 조태광도 몰랐다. 다만 정혜란이 원호의 어머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정혜란이 며느리를 싫어한다는 건 누구라도 알아볼 만큼 분명했다. 게다가 조태광도 정혜란을 단번에 알아봤다. 예전에 BH그룹 임원으로 있던 사람이었다. 조태광이 설희에게 억지로 입을 맞추려다 원호에게 들켜 쫓겨난 일은 배씨 집안에서도 꽤 크게 번졌었다.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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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설희가 회사 위층으로 올라가자 조태광과 마주쳤다.조태광은 설희 뺨에 남은 손가락 자국을 보고도 별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경찰서에 전화부터 해 보라고 했다.설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때까지 일하다 경찰서에서 연락이 오자, 상대방과 합의하기로 했고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전했다.통화를 끝내자 핸드폰에 새 메시지가 하나 더 와 있었다.[진예서가 해외에서 상 받은 다섯 곡이야. 그런데 멜로디가 예전에 네가 나한테 들려준 거랑 똑같은 것 같아. 오설희, 대체 언제까지 나 피할 건데?]설희는 지난 3년 동안 세상과 거의 단절한 채 살았다.3년 전 설희가 결혼하자마자 예서는 해외로 떠났다. 주변에서는 예서가 너무 큰 상처를 받아 떠난 거라고 수군거렸다. 그 뒤 설희는 구름힐에서 혼자 지내며 바깥 소식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예서가 어떤 곡을 만들었는지도 전혀 몰랐다.주아가 보내온 링크를 눌러 재생했다. 3분도 채 듣지 않았는데 설희의 안색이 바뀌었다.분명 7년 전 설희가 만든 곡이었다. 당시 원호가 배씨 집안으로 돌아가고 설희도 집안의 딸처럼 받아들여지면서 두 사람 사이의 처지가 너무 크게 벌어졌다. 주변에서는 돈을 받고 떠나라고 권했지만 설희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원호 곁에서 보낸 지난 7년을 다섯 곡에 담았다.처음의 막막함과 씁쓸함, 중간의 달콤한 행복, 뒤이어 찾아온 불안까지 감정의 흐름이 차곡차곡 이어지는 곡들이었다.나중에 주아를 알게 된 뒤에는 그 다섯 곡을 직접 들려준 적도 있었다.주아는 임씨 집안에서 숨겨 온 혼외 자녀였다. 재우는 서류상 오빠였지만, 이복동생인 주아를 좋아하지 않았다.어느 집안이든 혼외 자녀를 반길 리 없었다. 주아의 존재는 드러낼 수 없는 비밀이었고, 지금도 그쪽 사람 중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친어머니조차 가끔 생활비만 보내 줄 뿐이었다. 주아의 어머니는 뒤늦게 임씨 집안 안주인 자리를 차지해 결혼까지 했고, 본처가 세상을 떠난 지도 이제 겨우 2년이었다. 임씨 집안 가장에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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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설희는 퇴근할 때까지 버티고 나서 택시를 타고 구름힐로 갔다. 그런데 문을 열어 준 사람은 예서었다.예서는 잠옷 차림이었다. 설희가 올 줄 몰랐는지 놀란 기색을 보였다. “설희 씨? 원호가 오늘 설희 씨 여기 안 온다고 했는데요?”설희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집 안을 빠르게 훑어본 뒤 예서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예서는 몇 걸음이나 뒤로 밀렸다. 눈에 차가운 기색이 스쳤지만, 고개를 들었을 때는 다시 부드러운 표정이었다.“원호랑 오해가 있으면 빨리 풀어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설희가 몸을 돌려 예서의 뺨을 세게 때렸다.“진예서, 너 정말 역겹다.”예서는 뺨을 감싼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설희는 등 뒤에서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었다. 곧 누군가 거칠게 밀치는 바람에 옆으로 휘청였다.가장 먼저 예서 곁으로 간 사람은 민혁이었다. 선이 굵고 기세가 강한 인상에 키도 187센티미터쯤 됐다.“예서야, 괜찮아?”예서는 고개를 저었다. 뺨에는 손가락 다섯 개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설희를 바라봤다.“설희 씨, 제가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난 건지 모르겠어요. 적어도 이유는 말해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설희는 민혁을 바라보다 뒤에서 또 발소리가 들리는 걸 듣고서야 원호와 친한 사람들이 모두 집에 와 있었다는 걸 알았다. 조금 전까지 전부 위층에 있었을 뿐이었다.예서가 실수로 주스를 옷에 쏟아 이곳에서 씻고 옷을 갈아입은 모양이었다. 그때 마침 설희가 찾아온 것이었다.하지만 설희가 들어와 있던 몇 분 동안 예서는 그런 설명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일부러 오해하도록 내버려둔 게 분명했다.설희는 이런 상황만 닥치면 무슨 말을 해도 변명처럼 들렸다. 입을 열려던 설희의 시선에 민혁의 혐오가 고스란히 걸렸다.“원호는 진작 너랑 이혼했어야 해. 너 같은 여자랑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불쾌해.”지난 몇 년 동안 설희는 모든 일을 혼자 곱씹으며 자신을 갉아먹었다. 결국 혼자 힘으로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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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거실에 있던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눈마다 놀라움이 가득했다. ‘오설희가 정말 미친 거 아니야?’설희는 몸을 돌려 위층으로 올라가려다 계단 입구에 서 있는 원호를 봤다. 그는 손가락 사이에는 담배가 끼워져 있었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설희는 원호를 아는 척하지 않고 곧장 안방으로 들어갔다.지난 몇 년 동안 설희는 혼자 안방에서 잤고, 노트북도 그 방에 두고 있었다.설희가 들어가자 아래층에 있던 민혁도 정신을 차렸다.“오설희, 내가 너 죽여 버릴 것 같지 않아?”민혁은 화를 참지 못하고 위층으로 쫓아가려다가 원호를 봤다.원호가 손끝으로 담뱃재를 가볍게 털자 민혁의 기세가 바로 누그러졌다. 그래도 이를 악문 채 말했다. “이제 저 여자 본색 알겠지? 진짜 악질이야!”원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비웃는 건지 자신을 조롱하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몇 년 동안 네가 설희 욕할 때 한마디도 안 하다가, 이제 몇 마디 비꼬았다고 그렇게 발끈해? 여자보다 속이 좁아서 어떡하냐?”“씨X!”민혁은 거의 뒤로 넘어갈 만큼 열이 받았다. 다른 사람들은 원호의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원호는 원래 말이 독했다. 누구를 긁을 때도 전혀 봐주지 않았고 친구들은 그 화법에 익숙했다.모두 웃고 있었지만 예서의 표정만 가라앉았다. 원호가 설희의 행동을 문제 삼지 않겠다는 뜻이라는 걸 예서는 알아들었다.설희가 예서의 뺨을 때렸는데도 원호는 그냥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예서는 옆으로 늘어뜨린 손을 천천히 움켜쥐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입을 열었다. “여기 달걀 있어?”설희에게 맞은 뺨에 손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걸 모두에게 상기시키려는 말이었다.사람들도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오설희 너무하네. 들어오자마자 사람부터 때리고.”“예서 누나, 내가 달걀 가져올게. 앉아 있어. 그 손자국 보기만 해도 아프다.”“...”민혁이 다시 원호를 바라보며 빈정거렸다. “이래도 그냥 둘 거야?”원호는 담배를 옆 재떨이에 눌러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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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설희는 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뒤에 있는 책상을 손으로 짚지 않았다면 그대로 주저앉았을 것이다.가슴도 아팠다. 감정이 너무 크게 요동치면 정말 속까지 메스꺼워지는 모양이었다.안색이 지나치게 창백해 보였는지 원호는 설희를 더 자극하지 않았다. 대신 다가와 설희를 부축했다.“됐어. 네가 거짓말한 건 넘어갈 테니까 이제 예서랑 그만 부딪쳐.”설희는 한 손으로 책상을 짚은 채 원호를 거칠게 밀어냈다.원호는 두 걸음쯤 뒤로 밀렸다. 얼굴에는 서늘하고 위태로운 기운이 옅게 번졌다.설희는 노트북을 품에 안았다.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그대로 문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원호가 팔을 잡아 다시 끌어당겼다.“어디 가?”설희는 한마디도 섞고 싶지 않았다. 원호의 발등을 힘껏 밟았다.통증에 원호의 손이 바로 풀렸다.설희는 노트북을 안고 밖으로 나왔다. 아래층 거실을 지나는데 소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보였다.누군가 비웃듯 입을 열었다.“어이, 드디어 원흉이 내려오시네. 무슨 낯으로 다니는지 모르겠다. 수청 누나를 저렇게 만들어 놓고 이제는 사람 뺨까지 때려? 원호 형이 막아 주니까 그렇지, 아니었으면 진작 가만 안 뒀어.”“변변찮은 집안 출신이라 그런지 하는 짓도 딱 그 수준이네. 머릿속에는 하루 종일 남자 생각밖에 없으니까 보는 여자마다 경쟁자로 보이지.”“...”그대로 나가려던 설희는 그 말을 듣고 걸음을 멈췄다. 성큼성큼 소파 앞 테이블로 다가갔다.민혁이 바로 일어나 예서 앞을 막았다. 어두운 표정으로 설희를 노려봤다.“뭐 하려고?”설희의 표정은 고요했다. “내가 보는 여자마다 경쟁자로 보인다고 했지? 좋아. 진예서, 맹세해 봐. 배원호 안 좋아한다고.”“배원호한테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네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평생 불행해질 거라고 맹세해.”민혁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이마에 핏줄이 설 만큼 화가 치밀어 본능적으로 손을 들려다가, 곁눈질로 원호가 내려오는 걸 봤다.공중에 올라갔던 손이 그대로 멈췄다. 민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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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설희는 노트북을 품에 안고 수리점으로 향했다. 사라진 문서를도 되살릴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수리 기사는 노트북 안을 한참 살펴보다 미간을 찌푸렸다.“고객님, 이 문서는 디스크 전체를 암호화한 다음 포맷한 흔적이 있어요. 웬만한 전문가가 와도 복구하기 어렵습니다.”“저보다 실력이 좋은 분이 데이터를 일부 살려 낸다 해도 원본 암호를 풀 수가 없어요. 안에 정말 중요한 자료가 들어 있었나요?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포기하시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설희는 머릿속에서 큰 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목이 바짝 말랐다.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정말 복구가 안 되나요?”수리 기사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게다가 이 노트북은 출시된 지 꽤 오래됐어요. 지금은 완전히 구형이고요.”이 노트북은 설희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원호가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모아 사 준 것이었다.그때 두 사람은 형편이 너무 어려워 동전 하나도 아껴 써야 했다. 그래서 선물을 받았을 때 설희는 기쁘기보다 마음이 아팠다. 당시에 원호는 두 사람의 생활비와 등록금, 각종 학비까지 감당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설희는 그 노트북을 줄곧 소중하게 다뤘다. 지난 3년 동안 여러 차례 켜 보기는 했지만 늘 안방에 두었고 밖으로 가지고 나간 적도 없었다.실수로 물 한 방울이라도 떨어지면 오랫동안 정성스럽게 닦아 냈다.수리 기사가 계속 점검하던 중 화면이 갑자기 완전히 꺼졌다.“고객님, 이 정도면 적어도 9년은 된 제품이에요. 지금까지 큰 고장 없이 버틴 걸 보면 당시에도 200만 원이 훌쩍 넘는 고급 모델이었을 겁니다.”“지금 형편이 아주 어려워 보이시지도 않는데 새로 하나 장만하시는 게 나아요.”설희는 입술만 달싹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멍하니 점검비를 결제한 뒤 노트북을 품에 안고 밖으로 나왔다.바깥은 어느새 어두워졌고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강문시는 이 계절이 돌아오면 비가 잦아 공기까지 눅눅하고 후텁지근했다.설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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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예전 같았으면 설희는 바로 말대꾸했을 것이다. 원호가 성가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마디는 받아쳤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원호를 몇 번 쳐다보는 것조차 역겨웠다. 설희는 손을 다 씻고 일어나 그대로 가려 했다.오늘 제대로 먹은 게 없어서인지 저혈당 증세가 올라왔다. 갑자기 눈앞이 어두워지며 그대로 쓰러질 뻔했다.예상했던 통증은 오지 않았다. 원호가 설희의 허리를 붙잡아 품에 안았다.원호의 값비싼 수트에도 흙물이 묻었다. 급히 차에서 내리느라 우산조차 챙기지 못해 가는 빗줄기가 두 사람 위로 떨어졌다.운전석에 있던 천현이 그 모습을 보고 바로 내려 우산을 펼쳤다.원호가 타고 다니는 차는 롤스로이스였다. 차량에 전용 우산이 기본으로 들어 있었는데, 따로 사면 가격이 2천만 원에 가깝다는 말까지 돌았다.설희는 머릿속의 어지럼증이 조금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손을 들어 원호를 밀어내려 했다.하지만 원호는 오히려 더 세게 끌어안더니 거의 끌다시피 차 안으로 데려갔다.“놔!”몸싸움하던 중 설희가 들고 있던 노트북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액정이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설희의 몸이 굳었다. 바로 고개를 숙여 확인했다. 조금 전부터 전원조차 들어오지 않던 노트북은 이제 더 처참하게 망가져 있었다.원호는 그 틈에 차 문을 닫았다. 설희가 굳은 표정으로 노트북만 확인하자 손을 뻗어 가져갔다.“내 노트북 건드리지 마!”설희는 제 것을 빼앗길까 경계하는 사람처럼 노트북을 끌어안고 차갑게 원호를 노려봤다.그 눈은 원수를 보는 것처럼 서늘했다.원호는 그 시선을 받고 잠시 굳었다. 곧 속에서 불길이 치솟듯 화가 올라와 힘으로 노트북을 빼앗았다.설희는 거의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달려들어 되찾으려 했다. 하지만 기운이 없어서 원호가 한 손으로 막는 것조차 뚫지 못했다.원호는 설희보다 노트북을 잘 알았다. 몇 군데만 확인하고도 하드웨어까지 완전히 망가졌다는 걸 알아챘다.“못 고쳐. 다음에 새 걸로 사.”몸부림치던 설희가 그대로 멈췄다. 입꼬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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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설희는 어이가 없어 원호를 바라보았다. “곧 이혼할 거야. 당신이 이혼 서류에 서명만 안 하고 있을 뿐이지. 우리 결혼한 지 3년인데 얼굴 보고 산 날보다 따로 지낸 날이 더 많아.”“당신도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예서랑 보냈잖아. 그렇게 진예서를 못 놓겠으면 내가 자리 비켜 주겠다는데, 당신은 기꺼이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니야?”원호는 설희의 차분한 얼굴을 보다가 팔을 잡아 거칠게 끌어당겼다. “지금 질투하는 거야?”3년 전부터 설희가 울고 소리치며 따질 때마다 원호는 늘 이런 태도였다. 두 사람 사이의 문제를 정면으로 풀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설희가 통제력을 잃고 망가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데 익숙한 사람처럼 굴었다.설희는 지쳤다. 더는 다툴 힘도 없었다.“배원호, 당신이 진예서랑 침대가 부서지도록 뭘 하든 이제 나랑 상관없어. 내가 원하는 건 단 하나, 이혼이야.”말이 떨어지자 턱에 날카로운 통증이 번졌다.앞좌석에 있던 천현은 이미 자리를 비운 뒤였다. 차 안에는 두 사람만 남아 있었다.원호의 눈은 폭풍이 몰아치기 직전의 고요처럼 위험했다. 설희가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듯했다.원호는 설희의 목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눈가가 붉어진 걸 보자 손에 들어간 힘을 천천히 풀었다. “예전에는 내가 회식 때문에 조금만 늦게 들어와도 개처럼 내 옷 냄새를 맡았잖아. 다른 여자 향수 냄새라도 날까 봐.”“그때는 나를 그렇게 꽉 붙잡고 살더니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해? 정말 그렇게 빨리 이혼하고 싶어?”입가에는 웃음이 걸려 있었지만 눈에는 웃음이 없었다. 뒤엉킨 감정 속에는 분명 증오까지 섞여 있었다.설희는 오히려 황당했다. ‘배원호가 무슨 자격으로 나를 미워해?’3년 동안 설희를 구름힐에 내버려 두고, 해온재에는 다른 사람을 숨겨 두고, 예서와 밖에서 붙어 다닌 쪽은 원호었다. 명목뿐인 아내 설희는 강문시 사교계의 웃음거리가 됐다. 모두가 설희를 나쁜 여자라고 욕했지만, 원래 그 자리의 마땅한 주인은 설희였다.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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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내가 어떻게 알아?”원호는 설희의 손을 잡고 있었다. 이마에는 아직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재우도 원호가 다급하다는 걸 알아 우선 체온부터 쟀다. 열은 없었다. “따뜻한 물에 설탕 좀 타서 가져오라고 해. 저혈당이야.”원호는 바로 도우미에게 당이 든 따뜻한 물을 가져오라고 했다.재우가 계속 설희의 상태를 살피는데 설희가 작게 울면서 아래가 아프다고 중얼거렸다.흰 의료용 장갑을 끼고 있던 재우가 그 말을 듣자 원호를 바라봤다.원호는 드물게 난처한 기색을 보이며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못 참았어.”재우는 아무 말 없이 이불을 걷어 상태를 확인하려 했다. 원호가 바로 손목을 움켜잡았다.“어딜 보려고?”재우는 미간을 좁혔다가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고 연고 하나를 꺼냈다. “하루에 세 번 발라. 찢어진 데가 심한지 먼저 확인하고, 가벼운 상처면 금방 나을 거야.”“원래 몸이 약한 데다 몇 년 전 교통사고 후유증도 아직 남아 있어. 요 몇 년 제대로 먹지도 않은 것 같으니까 당분간 몸부터 회복시켜.”원호는 연고를 받아 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재우가 돌아간 뒤 원호는 먼저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 왔다. 수건으로 설희의 몸을 꼼꼼히 닦아주었다. 마지막에 이불을 걷고 아픈 곳을 직접 확인한 뒤 연고도 발라 줬다.눈으로 보기에는 크게 다친 곳이 없었다. 저혈당 증세까지 겹쳐 울고 몸부림치며 할퀸 모양이었다.원호는 그제야 안도했다. 이것저것 챙기고 나니 밤 열두 시가 가까워져 있었다.도우미가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원호는 수건으로 설희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닦아주고 있었다. 깨지기 쉬운 물건이라도 다루듯 손끝까지 정성스럽게 닦았다.지금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얼마 전에 전부 새로 바뀌었다. 이전 도우미들은 모두 내보낸 뒤였다.“대표님, 설탕물은 더 필요하세요?”“됐어. 치워.”원호는 설희를 바라봤다. 안색이 한결 나아진 걸 확인한 뒤에야 수건을 대야에 내려놓았다.도우미는 오래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바로 그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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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원호는 침대 옆에 앉아 설희의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설희가 왜 우는지는 알 수 없었다.“무슨 꿈을 꾸는 거야?”원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설희가 대답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이럴 때만 두 사람 사이에 날 선 대립이 없었다.원호는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왔다. 설희는 똑바로 눕지 않고 옆으로 돌아 몸을 잔뜩 웅크린 채였다. 마치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세처럼 보였다.원호는 침대에 누워 설희를 힘으로 끌어와 품에 안았다.예전의 설희는 원호 품에 파묻혀 자는 걸 좋아했다. 새벽에 깨서 옆자리가 비어 있으면 집 안을 돌아다니며 원호를 찾기도 했다.당시 원호는 너무 바빴다. 밤새 전화를 붙들고 일하는 날이 많았고, 설희의 잠을 깨울까 봐 단지 안을 걸어 다니거나 베란다로 나가 통화하곤 했다.설희는 원호를 찾아내도 아무 말 없이 곁에 붙어 함께 걸었다.이제는 원호 품에 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불편해 보였다.원호가 몇 번이나 몸을 돌려 자신 쪽으로 안으려 해도 설희는 웅크리며 제 몸을 끌어안았다.화가 난 원호가 침대 옆 조명을 켰다. “지금 자는 척하는 거야?”하지만 설희는 정말 잠들어 있었다. 열 때문에 뺨에 붉은 기가 올라와 있었고 긴 속눈썹은 얌전히 내려앉아 있었다. 잠든 모습이 아주 유순해 보였다.그 모습을 본 원호는 몸을 멈췄다. 마음이 금세 약해져 아무 말 없이 조명을 껐다. 뒤에서 설희의 허리를 감싸안은 채 그대로 잠들었다.설희가 눈을 떴을 때는 아래쪽이 조금 불편했다.몸을 조금 움직이자 연고가 닿은 곳에서 서늘한 감각이 느껴졌다.옆으로 돌아누운 뒤에야 바로 곁에 누군가 있다는 걸 알아챘다.설희는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꿈이 아니었다. 원호가 정말 같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지난 3년 동안 설희는 잠결에 수도 없이 눈을 뜨고 옆으로 팔을 뻗었다. 하지만 침대 반대편은 언제나 텅 비어 있었다.처음에는 무너질 듯 괴로워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혼자 회복하는 법을 배웠다.이제는 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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