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 대표님은 당분간 정말 일정이 꽉 차 있습니다. 큰 인수 건을 막 끝내셨고, 새로 편입한 회사 관련 정리할 일도 많습니다.]설희는 더 말하지 않았다. 원호가 바쁘다는 건 알고 있었다. 지난 3년 동안 결혼기념일도, 설희의 생일도 잊을 만큼 바빴고, 모든 기념일을 설희는 혼자 집에서 보냈다.“알았어요. 돌아오면 전화 한 번만 부탁드려도 될까요?”[사모님, 그렇게까지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전화를 끊은 설희는 가정법원 민원실을 오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혼인 관련 서류를 들고 웃는 연인도 있었고, 이혼 절차를 밟으러 온 부부는 서로가 보기 싫은 사람이라도 되는 듯 한 발이라도 더 멀어지려 했다.설희는 핸드폰을 켜고 근처 회사들의 채용공고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력서는 이미 만들어 두었다. 당장 일부터 구해야 했다.대학 시절 설희의 전공은 성악이었다. 하지만 진수청에게 일이 생긴 뒤부터 노래하는 것 자체가 두려워졌다. 지금은 한 소절도 입 밖으로 내지 못했으니 전공을 살릴 길이 없었다.설희는 천천히 채용공고를 넘겼다. 그중 중견 규모의 한 회사가 임원 수행비서를 뽑고 있었다. 전공이나 경력 조건은 없고, 이상할 정도로 키와 체형, 외모 기준만 적혀 있었다.이력서를 넣은 지 3분 만에 전화가 왔다. 오후에 바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었다.직장생활을 해 본 적 없는 설희는 뭔가 수상하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실제로 면접관 앞에 앉자, 여성 면접관은 설희의 얼굴을 한 번 훑어보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어요?”설희는 놀랐다. “업무 능력은 아무것도 안 물어보셨는데요.”“음악 전공이잖아요. 이 자리는 전문업무를 깊이 보는 게 아니에요. 임원 모시고 외부 일정이나 접대 자리 따라다니는 일이 많고, 급여도 높은 편이에요. 대신 오래 할 수 있는 직종은 아니니까 잘 생각해 봐요.”“하겠습니다.”설희는 곧바로 입사 절차를 밟았다. 해당 임원을 직접 만나고 나서야 아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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