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날 버린 건 너야, 뒷북치지 마!: Capítulo 1 - Capítulo 10

30 Capítulos

제1화

“함부로 소리 내지 마,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이정빈은 유소담의 허리를 꽉 끌어안으며 장난스럽게 속삭였다.밖에서 위층과 아래층을 오가는 발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유소담은 입술을 꼭 깨물고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이렇게 대놓고 제 방에 들어오면서 식구들한테 들킬까 봐 걱정하는 거예요?”겉으로는 그의 비서이자 명목상의 여동생이었지만 둘의 관계는 이미 선을 넘은 지 오래였다.오늘은 이씨 가문의 가족 연회가 있는 날, 이정빈의 할아버지 이한철 어르신께서 중대 발표를 한다고 하여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런데 이정빈은 굳이 이곳에 남아 그녀를 애태우는 중이었다.달콤하고도 불타오르는 시간 속에서 애써 참아왔던 유소담은 결국 그에게 멈춰달라고 애원했다.“벌써 항복하는 거야? 언제부터 이렇게 약해 빠졌어, 응?”더는 견딜 수 없었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손톱으로 남자의 팔뚝에 거친 흠집을 남겼다.이정빈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 뜨거운 입김을 불어 넣었다.“이렇게 벌해야만 내 말을 들어주는 거야?”아직 약간의 이성이 남아 있던 유소담은 그의 말에 불쾌감을 느끼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되물었다.“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이정빈에게 찍힌 그날부터 그녀는 언제나 그의 말에 따랐건만 ‘말을 안 듣는다’라는 건 대체 무슨 소리인지...“그럼 어젯밤 일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 호텔로 오라고 해놓고 약속을 어긴 것도 모자라 딴 여자를 내게 보내?”유소담의 허리가 이정빈의 손에 제압당한 채 억지로 고개가 젖혀졌다. 그녀는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전부 대표님 취향대로 고른 거예요.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해서...”어느 날 밤 만취한 이정빈이 잠든 사이, 그녀는 우연히 그의 회중시계 속에서 한 여자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말했지! 멋대로 내 마음을 추측하지 말라고.”그때, 닫혔던 방문 손잡이가 돌아가는 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유소담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소담아...”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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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가족 모임에서 마침내 이정빈의 결혼 소식이 전해졌다. 유소담에겐 예상했던 수순이라 전혀 놀랍지 않았다.다만 이한철은 누구인지 콕 집어 말하지 않고 여운을 남겼다.식탁 위, 축복의 말들이 오갔지만, 이정빈의 표정은 읽기 어려웠다. 늘 그렇듯 느긋하고 제멋대로인 얼굴이었다.“회사에 볼일이 생겨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실례할게요.”이정빈이 유소담을 힐끗 보았다. 이에 그녀는 곧장 눈치채고 일어나 인사한 뒤 식탁을 벗어났다.저택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소담아.”유소담은 재빨리 마음을 다잡았다. 뒤따라온 이는 다름 아닌 이정빈의 형 이건후였다.“너 괜찮아?”이건후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유소담은 깊은숨을 들이쉬고 돌아섰다. 이어서 억지웃음을 지으며 태연한 척 대답했다.“괜찮죠 그럼.”이건후는 부드러운 눈매에 감미롭게 속삭였지만, 왠지 머뭇거리는 투가 느껴졌다.“아까 식탁에서 들었겠지만, 할아버지가 정빈이 혼담을 정하셨어. 너랑 정빈이는 질질 끌다가 결국 탈이 나는 법이야. 나야 널 친동생처럼 아끼니까 하는 말인데 빨리 결정을 내리는 게 좋을 거야.”유소담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담담하게 대답했다.“네, 오빠. 조언 감사해요. 신중하게 생각해 볼게요.”이건후는 그녀의 망설임을 알아차린 듯 안타까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소담아, 네가 정빈이하테 마음이 있다는 거 알아. 하지만 정빈이가 너한테 그렇게까지 했는데 계속 옆에 있고 싶어?”그 말은 무형 중에 유소담의 깊은 상처를 건드렸다. 그녀 입가의 미소가 싸늘하게 굳었고 눈에는 조소가 서렸다.“제가 왜 대표님 곁에 있는지 오빠가 누구보다 잘 아시잖아요?”그녀는 이건후와도 명확히 선을 긋고 싶었다.“그때 제가 가장 먼저 손 내민 건 건후 오빠였어요.”그녀는 지난날을 회상했다. 이동준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후, 이한철은 자신과 엄마를 이씨 가문에서 내쫓으려 했다.당시 이씨 가문에서 이건후만이 유소담에게 친절했기에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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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유소담은 나른한 표정의 이정빈에게 고개를 돌렸다. 다만 유소담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아니요. 별생각 안 했어요.”이정빈의 입가에 덧붙는 미소가 짙어졌다. 겉으로는 무심한 듯했지만, 그의 말에는 의미심장한 뼈가 있었다.“거짓말하지 마. 티 나니까. 방금 우리 형이랑 무슨 은밀한 이야기이라도 나눈 거야? 나한테까지 숨겨가면서?”유소담이 냉랭하게 대답했다.“넘겨짚지 마세요.”이에 이정빈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그래? 과연 내가 넘겨짚은 걸까 아니면 네가 일부러 날 속이는 걸까?”그의 집요한 시선에 유소담은 순간 심장이 철렁거렸다. 그녀는 미리 준비해둔 서류를 집어 들며 화제를 돌렸다.“기씨 가문의 창운 그룹 인수를 위한 종합적인 검토안이 나왔어요. 본사에서 위험 평가와 자산 가치 분석을 마쳤으니 검토 후 서명해주시면 됩니다.”이씨 가문에서는 유소담은 이정빈의 명목상 여동생이지만 회사에서는 그의 사업에 있어 가장 든든한 비서였다.하지만 이정빈은 그녀를 동생으로 인정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한때 자신을 ‘오빠’라고 불렀다고 엄청 크게 화냈었다. 비서라는 그녀의 신분 또한 못마땅해하는 눈치였다.유소담은 현재 상황을 차분히 설명했다.“현재 창운 그룹 홍보팀은 이 상황을 맡으려 하지 않습니다. 서원 쪽은 순조롭지만, 대표님께서 시장 점유율을 노리시는 만큼 기 대표님께서 아직 마음을 열지 않으셨습니다.”이정빈은 짜증스럽다는 듯 말을 끊었다.“잔말 말고! 창운 그룹의 이슈 열기가 식기 전에 어떻게든 불을 더 지필 방법을 찾아봐.”그의 다혈질적인 성격을 잘 아는 유소담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대표님. 지시대로 처리하겠습니다.”이대로 사건이 마무리되는 줄 알았는데 이정빈이 느릿하게 물었다.“건후 형이 요즘 창운 그룹이랑 가깝게 지낸다는 소문이 있던데 너도 들었어?”그는 눈꺼풀조차 들지 않고 손목에 찬 염주 팔찌를 무심하게 만지작거렸다.순간,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유소담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 남자에게 숨길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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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이 질문에 대해 유소담은 매우 솔직하게 대답했다.“네, 안 궁금해요.”이정빈은 그녀의 태도에 자극을 받은 듯 얇은 입술을 꽉 다물었다. 그녀가 정말로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곤 창밖 풍경을 흘긋 보며 화제를 돌렸다.“인수안은 사인했어. 내일 인수합병팀이랑 관련 사항 조율하고 창운 그룹 책임자 만나서 1차 협상해.”유소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업무에 관해서는 토를 달지 않는 것이 그녀의 원칙이었다.다만 이번 창운 그룹 인수 건은 생각보다 복잡한 실타래가 엉켜 있었다.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이정빈이 훅 다가와 서늘한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앞에 편의점이야. 갓길에 대.”차가 부드럽게 멈춰 서자 남자는 턱짓으로 편의점을 가리켰다.“가서 콘돔 좀 넉넉하게 사 와. 지난번에 쟁여둔 거 다 썼어. 이런 건 두둑이 쌓아두고 써야지.”유소담은 오늘 밤 있었던 일로 약간 짜증이 난 상태였다“싫어요. 갈 거면 혼자 가세요.”하지만 이정빈은 특유의 비열하고도 나른한 웃음을 지으며 쐐기를 박았다.“안 사 오면 오늘 밤은... 그냥 할 거야.”경구 피임약은 몸에 해롭고 덜컥 아이라도 생기면 그야말로 파국이었다.콘돔을 사용하는 것은 확실히 쾌감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지만 다행히 이정빈은 언제나 콘돔을 사용했고 그 덕에 그녀도 피임약을 먹을 필요가 없었다.유소담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몇 분 후, 그녀는 편의점 진열대의 콘돔들을 가리키며 말했다.“이것들 전부 다 봉투에 담아주세요.”점원은 놀란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며 뒤에서 웅성거렸다.한편 유소담은 못 들은 척하며 계산을 마치고 콘돔이 담긴 두 개의 커다란 봉투를 뒷좌석에 던져 넣었다.이정빈이 봉투를 확인하더니 픽 웃음을 흘렸다.“도매라도 하게?”유소담은 무표정한 얼굴로 시동을 걸었다.“넉넉하게 사두라면서요.”“우리 소담이, 내 체력을 테스트하겠다는 건가?”남자가 ‘우리 소담이’라고 부르는 순간, 마치 주문을 거는 듯 온몸이 짜릿해지고 몽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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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다음 순간, 이정빈의 길고 늘씬한 손가락이 유소담의 이마를 톡 하고 쳤다. 모기 물린 것보다는 조금 더 따끔한 충격이었다이마의 따끔함에 유소담은 살짝 놀랐다. 다만 옆에 있던 한이설은 순식간에 안절부절못하며 소리쳤다.“정빈 씨!”“알아서 해결해.”그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 남자는 유유히 사라졌다.유소담의 눈짓 한 번에 경비원들이 한이설을 끌어내렸다.66층에 도착한 유소담은 인수합병팀으로 가 배정원과 매입 협상을 하려던 참인데 놀랍게도 그가 먼저 서류를 들고 나타났다.“배 상무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대표님께서 옆에서 참관하겠다고 하시니 대표이사실로 이동해서 논의하죠.”‘난 전혀 들은 바가 없는데?’유소담은 이정빈이 무슨 속셈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토를 달지 않고 따랐다.대표이사실에 들어서자 이정빈은 정말로 참관만 할 뿐 아예 끼어들지 않았다.한편 유소담은 방금 화장을 고쳐서 뺨에 맞은 붉은 자국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오늘 그녀는 옆트임이 있는 치마를 입었는데 늘씬한 몸매에 이정빈의 눈동자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는 태연하게 다리를 꼬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옆에 있던 배정원은 이 광경을 눈치채지 못하고 혼자 말을 이어갔다.“유 비서님, 보내주신 매입안을 검토했는데 결제 대금이 좀 이상하더군요. 기존에 논의했던 현금 40%, 주식 발행 60% 구조가 아니라 주식 발행을 아예 빼버렸던데 이건 너무 공격적인 거 아닙니까? 창운 그룹을 전액 현금으로 인수했다간 우리 그룹 자금줄에 무리가 갑니다. 보험 차원에서도 주식 발행이 안정적이에요.”유소담이 빨간 입술을 살짝 열었다.“겨우 창운 그룹 하나 인수하는 건데 배 상무님은 너무 몸을 사리시는 거 아닌가요?”“유 비서님, 그래도 제 생각에는...”“내가 생각해요. 상무님 생각은 필요 없습니다.”일에서만큼은 타협을 모르는 유소담이었다. 그녀의 탄탄한 실력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였기에 누구도 그녀의 말에 쉽게 토를 달지 못했다.배정원은 인수합병팀 상무로 이정빈 앞에서도 유능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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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유소담이 회사에 도착하자 원지안은 마치 자신이 더 큰 은혜를 받은 사람처럼 입이 귀에 걸렸다.“소담 언니! 대표님이 언니를 위해 복수해 줄 줄 알았으면 우리가 굳이 언론사 컨택하고 애쓸 필요도 없었잖아요. 전에는 언니도 괜히 마음 약해져서 망설이더니 이것 좀 보세요. 대표님이 제대로 판을 쳐서 한이설 인생을 송두리째 날려버렸잖네요.”원지안조차 이정빈이 배후에서 판을 짰다고 굳게 믿고 있으니 남들은 오죽할까?유소담은 굳이 해명하지 않았다.‘어차피 대표님께서 한이설을 도울 생각이 없다면 모두가 대표님이 나를 지켜준다고 믿게 하는 편이 낫지.’이렇게 되면 자신에게 쏟아질 귀찮은 시선들을 줄일 수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오늘따라 하늘은 유난히 차갑고 음산했다. 짙은 구름이 세상의 모든 어둠을 삼켜버릴 듯 낮게 드리워졌다.본가에서 나온 이정빈은 들어갈 때보다 표정이 훨씬 굳어 있었다.세상만사 다 귀찮다는 듯 제멋대로에 오만하던 남자에게서 좀처럼 보기 힘든 표정이었다.그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라이터 불꽃이 파르르 떨리며 담배 끝을 태웠고 회색 연기가 피어오르며 그의 얼굴을 흐릿하게 뒤덮었다.그때, 강렬한 오렌지색 애스턴 마틴 한 대가 곁에 멈춰 섰다. 운전석 창문이 천천히 내려가며 장난기 가득하고 자유분방한 주민찬의 얼굴이 드러났다.“회사에 찾아갔는데 헛걸음만 했네.”이정빈은 담배를 문 채 삐딱하게 허리에 손을 얹고 대충 대꾸했다.“할 말 있냐?”한편 주민찬은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한 손은 차창에 걸치고서 나른하게 기대앉았다.“용건 없으면 못 와? 술이나 한잔하자는 거지.”이정빈이 말없이 조수석 문을 열고 올라탔다.“결혼한다며?”주민찬이 불쑥 물었다.이정빈은 담배를 지그시 물고 눈꺼풀을 내리깔며 심드렁하게 답했다.“누가 그래? 건후 형이야?”“그 형 말고 또 누가 있겠냐?”차 밖에서 엔진 소리가 요란하게 터져 나왔다. 주민찬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질문을 이어갔다.“아니 근데 갑자기 웬 결혼? 상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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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이정빈이 출장에서 돌아온 건 사흘 뒤 오후 세 시였다. 이 남자는 유소담에게 공항까지 직접 마중 나오라고 못 박았다.그날따라 하늘은 눈부시도록 쨍쨍했지만,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잿빛 구름이 거대한 우리처럼 세상을 뒤덮었고 숨통을 조여오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유소담은 창밖으로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았다. 이건 분명 불길한 징조였다. 오늘 같은 날은 외출하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남의 집 숟가락’ 신세로는 거절할 수 없는 요구였다.그녀는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챙겨 입고 차를 몰아 공항으로 향했다.역시나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길 위에서 차가 고장 나 멈춰 섰다. 다행히 공항과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기에 유소담은 수리 기사를 부르고 다시 다른 차량을 수배했다.통로까지 우산을 쓰고 걸어가야 했는데 몰아치는 비바람에 코트가 거의 다 젖었고 지나가던 차가 튀긴 흙탕물까지 뒤집어썼다. 어차피 이정빈을 데리러 가는 길일 뿐 공식적인 자리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VIP 통로 앞에 선 유소담은 이정빈이 나오길 기다렸다.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공항 통로는 쌀쌀했고 젖은 옷 때문에 그녀는 연신 몸을 떨었다.비행기 착륙 소리가 들리고 십여 분이 지났을까? 드디어 이정빈의 모습이 보였다.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꽃무늬 셔츠는 그의 오만함을 더욱 부각하는 듯했다.그런데 이 남자는 유소담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마치 그녀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된 듯했다. 또 무슨 잘못을 저지른 걸까, 아니면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말을 건네려던 찰나, 이정빈의 곁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말았다. 아무리 침착하고 냉철한 유소담이라도 순간적으로 멈칫했다.이정빈의 팔짱을 끼고 있는 아름답고 당당한 여자는 초라한 행색의 유소담과는 달리 눈부시게 찬란했다.그들이야말로 마치 같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처럼 보였다.주변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으며 요란한 파열음이 터져 나오는 듯했다.수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녀는 눈앞의 여자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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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이정빈의 무심한 말투는 예리한 칼날이 되어 유소담의 심장을 찔렀다.백미러로 보니 강하리가 그의 팔을 살짝 잡아끌며 짐짓 나무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정빈아!”곧이어 그녀는 유소담을 향해 다정하게 말했다.“소담 씨, 정빈이가 농담이 좀 심하죠. 너무 마음 쓰지 말아요.”목구멍에 가시라도 걸린 듯 뻐근했다. 유소담은 옷자락을 꽉 움켜쥐며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밀려드는 서러움을 억지로 삼키며 그녀가 쓴웃음을 지었다.“대표님 말이 맞아요. 사람은 자고로 제 주제를 알아야 하는 법이니까요.”말끝에 서린 날 선 자조, 이건 누가 들어도 오기였다.이정빈은 줄곧 그녀의 옆얼굴을 응시하며 일말의 감정 동요를 읽어내려 했으나 돌아오는 건 차디찬 침묵뿐이었다.그녀는 그 누구보다 냉정했다.좁고 답답한 차 안은 순식간에 정적이 감돌며 팽팽한 기류가 흘렀다. 공기 중에 섞인 미묘한 신경전이 숨을 조여왔다.강하리는 이정빈과 유소담을 번갈아 보더니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로 서늘한 정적을 깼다.“소담 씨가 MIT에서 석, 박사 통합 과정을 밟고 경영, 재무, 홍보까지 세 전공을 마친 수재라 들었어요. 이런 분이 정빈이 비서로만 머물기엔 너무 아까운 인재죠. 능력도 출중한데 본인 커리어를 쌓아볼 생각은 안 해봤나요? 소담 씨 정도 실력이면 남주시에서 금방 독보적인 자리에 오를 텐데요.”생각해 보지 않을 리가 있을까?다만...유소담이 입을 떼기도 전에 이정빈의 비웃음 섞인 냉소가 터져 나왔다.“지금 얘가 누린 모든 건 다 우리 집안 덕분이야. 공부 마치고 돌아왔으면 당연히 이강 그룹에 몸담으며 은혜를 갚아야지. 무슨 자기 커리어 타령이야.”이정빈의 태도는 노골적인 경멸 그 자체였다. 외부인이 보기엔 그저 유소담이라는 존재가 끔찍하게 싫어 죽겠다는 태도였다.강하리 앞에서 이토록 잔인하게 자신의 자존심을 짓밟을 줄이야. 유소담의 가슴에 또다시 생채기가 났다.과거 그녀는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타협을 선택했지만, 뼛속 깊이 새겨진 자존심까지 버린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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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유소담의 신음에 이정빈은 반사적으로 몸을 앞으로 숙였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 찰나에 멈칫했다. 곧이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여유롭게 다리를 꼬고 앉았지만, 시선만은 끈질기게 유소담을 쫓고 있었다.강하리가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물었다.“소담 씨, 괜찮아요?”운전기사가 곁에서 변명하듯 덧붙였다.“대표님, 그게 실은... 아까 짐을 옮기다가 유 비서님 손이 짐에 좀 눌렸습니다.”이정빈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는 체면 따위 잊은 듯 몸을 앞으로 바짝 당기며 말했다.“손 이리 줘 봐.”하지만 유소담은 고개를 돌려 그를 철저히 무시했다.이정빈은 혹여나 아플까 봐 억지로 잡아채지는 못하고 눈으로만 훑었다.그녀의 손은 이미 붉다 못해 보라색으로 퉁퉁 부어 있었다.이정빈이 운전기사를 차갑게 노려보았다.“짐 옮기는 건 네 일이지. 내가 비서를 둔 건 나를 위해, 회사를 위해 일하라고 둔 거야. 널 대신해서 짐꾼 노릇이나 하는 게 아니라고.”기사는 찍소리도 못했다.그때 강하리가 미안한 듯 입을 열었다.“다 내 탓이야. 소담 씨랑 얘기하느라 손 다친 줄도 몰랐어.”자신이 너무 격하게 반응했다는 걸 깨달은 이정빈은 아무렇지 않은 척 셔츠 소매를 걷어 올렸다.한편 유소담은 무미건조하게 대꾸했다.“하리 씨 잘못 아니에요.”그때, 옆에 둔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눈썰미 좋은 이정빈은 화면에 뜬 [이건후]라는 세 글자를 단번에 포착했다. 내용까지 확인할 틈도 없이 유소담이 서둘러 화면을 꺼버렸다.“그래도 병원은 가봐야 하지 않을까요?”강하리의 말에 이정빈의 표정이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었다. 방금 본 문자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태도 때문인지 말투가 차갑게 식었다.“남한테 문자질할 정신은 있는 걸 보니 그리 심각하진 않나 봐. 병원 안 가도 되겠어.”“정빈아, 소담 씨는 나 때문에 짐 옮기다 다친 거야. 그렇게 말하지 마.”강하리가 고개를 홱 돌리고 기사에게 명령했다.“가까운 병원으로 가주세요.”병원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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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텅 빈 병원 복도,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유소담은 차가운 대리석 의자에 앉아 있었다.외과 부원장에게 진료를 받고 대기하던 중이었다. 별다른 이상은 없다는 진단이었지만 이정빈은 골절이나 미세한 금이 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굳이 정밀 검사까지 밀어붙였다.그는 봉투를 들고 다가와 유소담을 의자에서 일으켜 세우더니 다짜고짜 그녀가 입고 있던 코트를 벗기려 했다.화들짝 놀란 그녀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여기 병원 복도예요! 게다가 저 지금 손도 다쳤다고요!”이정빈은 유소담의 엉뚱한 반응이 어이없다는 듯 픽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내리쳤다.“머릿속에 도대체 뭐가 들었길래 맨날 그런 엉큼한 생각만 하는 거야? 네 눈엔 내가 그렇게 막 나가는 놈으로 보여?”유소담이 나지막이 투덜거렸다.“아니면 뭔데요?”“뭐? 방금 뭐라고 했어?”“아니요. 아무 말 안 했어요.”이정빈은 봉투에서 새하얀 캐시미어 코트를 꺼내 그녀에게 걸쳐주었다. 아까 입고 있던 외투는 헌신짝처럼 벗어 던지고 말이다.“그건 전혀 따뜻해 보이지가 않아. 다른 거로 챙겨왔어.”전 세계에 단 한 벌뿐인 최고급 맞춤 코트, 묵직한 캐시미어가 몸을 감싸자마자 훈훈한 온기가 온몸으로 퍼졌다. 아까 입었던 옷보다 한결 따뜻했다.유소담이 아무 말 없이 눈을 내리깔고 있는데 이정빈은 아까 벗겨낸 코트를 망설임 없이 쓰레기통에 처박았다.그러고는 옆에 앉아 다른 봉투에서 큼직한 텀블러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뭐예요 이건?”“보면 몰라?”그녀는 이정빈을 흘겨보며 텀블러를 받아들었다. 안에는 따뜻한 대추 생강차가 들어 있었다.남자는 팔짱을 낀 채 상전처럼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헝클어진 머리카락이 그의 눈을 다 가렸다.“우 비서도 참, 옷 좀 갖다 달랬더니 무슨 생강차야. 그 녀석 설마 너 좋아하는 거 아니야?”유소담이 기가 찬다는 듯 쏘아붙였다.“제발 피해망상 좀 그만두면 안 돼요?”“내가 뭐?”이정빈이 양손을 벌리며 짐짓 억울한 척했다.“왜? 걔는 생강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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