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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os os capítulos de 3년 그리고 다시 5년: Capítulo 61 - Capítulo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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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화. 이름없는 사이

격정의 밤이 지나고 펜트하우스의 공기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도윤은 더 이상 수아를 향한 소유욕을 숨기려 들지 않았다. 아침 식탁에서도. 퇴근해서 돌아온 뒤에도. 수아가 거실 소파에 앉아 과제를 하고 있을 때도. 도윤의 시선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녀를 찾았다. 그리고 이제는— 다가오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다 과거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일상처럼 벌어졌다.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을 시간, 휴대전화 화면에 찍히는 도윤의 발신자 표시는 수아를 당황케 하기에 충분했다. “지금 어디야.” “……미술학원이에요. 수업 방금 끝났어요.” “누구랑 있어? 마치면 곧장 아저씨차 타”. “네, 내려가는 길이에요. 도윤 씨도 아직 회사죠?” “아니, 퇴근길이야. 먼저 들어가 있어.” 전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굳이 긴 말을 나누지 않아도,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수아의 위치를 확인하고 일거수일투족을 자신의 손아귀에 쥐려 했다. 과거의 차갑고 무심하던 냉철한 경영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더 자주 자신을 찾았다. 더 많이 궁금해했다. 퇴근하면 가장 먼저 수아가 있는 곳부터 확인했고, 함께 있을 때는 거리낌 없이 가까이 다가왔다. 때로는 지나가며 머리를 쓰다듬었고, 둘만 있으면 자연스럽게 허리를 감싸기도 했다. 밤이면 수아를 자신의 품에 안았다. 오직 수아라는 존재를 온전히 독점하려는 거친 집착만이 그의 모든 행동을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노골적인 애정과 집착 속에서도 수아의 마음 한구석은 늘 시리도록 허전했다. 몸도 마음도 이미 저 남자에게 완벽하게 묶여 버렸다는 무력감이 수아를 짓눌렀다. 도윤은 그녀를 밤마다 제 품에 안고 온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처럼 다루면서도, 단 한 번도 ‘사랑한다’는 흔한 말이나 ‘결혼’ 같은 미래에 대한 약속은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 그에게 자신은 여전히 ‘펜트하우스라는 감옥에 숨겨둔 임시 요양처’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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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둘만 남은 아침 그리고 달콤한 침묵

“수아 씨, 며칠 동안 괜찮겠어요?” 유진이 여행 가방을 현관 앞에 세워두며 몇 번째인지 모를 질문을 했다. 수아가 웃었다. “이모, 아까부터 그 말만 다섯 번째예요.” “그래도 신경 쓰이죠.” 유진의 시선이 수아의 팔로 향했다. 깁스를 푼 지는 꽤 되었지만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무거운 거 들지 말고요. 재활치료도 빼먹으면 안 돼요.” “네.” “여보.” 옆에서 기다리던 태수가 결국 웃으며 끼어들었다. “결혼식 끝나고 올 거야. 이민 가는 거 아니고.” 유진의 친정 조카 결혼식이 지방에서 있었다. 오랜만에 친정 식구들도 만날 겸 유진과 태수는 며칠 휴가를 받았다 그동안 펜트하우스에는— 도윤과 수아. 단둘만 남게 되었다. 그 사실을 생각하는 순간 수아는 괜히 마음이 이상해졌다. “도련님은 아침 안 챙겨주면 커피만 마시고 나갈 때가 있으니까…….” “제가 챙길게요.” 수아가 무심코 말했다. 그리곤 얼굴이 빨개졌다. 유진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그래요.” 그 이상은 묻지 않았다. 그게 수아는 더 민망했다. “잘 다녀오세요.”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하고요.” “네.” 현관문이 닫혔다. 갑자기 집이 조용해졌다. 수아는 한동안 닫힌 문을 바라봤다. 그리고 뒤를 돌아봤다. 넓은 펜트하우스. 오늘부터 며칠 동안— 정말 도윤과 자신뿐이었다. 유진은 출발하기 전 명희에게도 며칠 자리를 비운다고 연락했다. 도윤을 어릴 때부터 돌봐온 유진에게 그것은 오랜 습관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도윤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을 본 그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어머니. “네.” “김집사 며칠 지방에 간다면서?” “네.” “그동안 본가에 와 있어.” 도윤은 보고서를 넘기며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뭐가 괜찮아. 집에 아무도 없다며.” 도윤의 손이 잠시 멈췄다. 아무도 없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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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어머니의 경고

태하그룹 본사, 38층 집무실. 철저하게 계산된 시간표대로 움직이던 차도윤이 인생 최초로 ‘지각’을 했다는 사실은 비서실을 거쳐 즉각 이명희 여사의 귀에 들어갔다. 그 사소하고도 이례적인 틈새는 이명희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던 팽팽한 의심을 순식간에 단단한 확신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명희는 수화기를 집어 들어 비서실장 민철을 직접 호출했다. 민철은 집무실 밖에서 울리는 개인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화면에 뜬 이름을 보는 순간 눈빛이 달라졌다. 이명희 여사. 민철은 주변을 한번 확인한 뒤 전화를 받았다. “네, 사모님.” 이명희의 냉기가 서린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김 실장. 도윤이가 최근 만나는 여자가 누구지?" 예상치 못한 단도직입적인 추궁에 민철은 순간 마른침을 삼키며 식은땀을 흘렸다. 완벽한 태하그룹의 수족인 그조차도 이명희의 서슬 퍼런 기세 앞에선 쉽사리 입을 열 수 없었다. 민철은 가까스로 숨을 고르며 흐트러짐 없는 목소리를 짜내어 답했다. "사모님, 전무님께서는 공과 사가 엄격하신 분입니다. 태하그룹에 조금이라도 불이익이나 손해가 될 만한 일은 결코 하지 않으실 겁니다." "……." 이명희는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민철의 대답을 가만히 음미했다. 그 대답으로 충분했다. 정말 아무도 없었다면 그냥 없다고 했을 것이다. 아들이 사적인 감정에 휩쓸려 큰그림을 망칠 사람이 아니라는 점만큼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제 소생인 도윤의 냉철한 성품을 믿었다. 그리고 그간 도윤은 한 번도 그 기대에 어긋난적이 없었다. 하지만 한서희와의 정략결혼이라는 거대한 혼담이 공식적으로 오고 가는 예민한 시기였다. 만약 하찮은 여자 때문에 그 완벽한 판에 생채기를 낸다면, 그것은 불미스러운 스캔들이 되기 전에 자신의 손으로 가볍게 도려내야 마땅했다. ‘내 아들의 발목을 잡을 잡초 같은 존재는 애초에 싹을 잘라내야 해.’ 평소 이명희는 아들의 업무에 방해가 된다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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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엇갈린 경고, 그리고 뜨겁게 삼킨 불안

"오늘 저녁은 일찍 들어갈 테니까, 기다려." 도윤의 짧은 문자메시지를 확인한 수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퇴근길에 홀로 장을 봐온 수아는 곧바로 주방으로 향했다. 어린 시절 보육원을 나와 세상에 홀로 던져진 후, 살아남기 위해 전전했던 수많은 식당 알바와 고생 속에서 자연스럽게 익힌 솜씨였다. 비록 화려하진 않아도 정성이 가득 담긴 소박한 한 상을 차려내기엔 충분했다. 매콤하고 감칠맛 나는 오징어 삼겹살 볶음에 뜨끈하고 맑은 소고기 무국, 그리고 집사 유진이 미리 준비해 둔 정갈한 밑반찬까지 더해지자 제법 그럴듯한 저녁 식탁이 완성되었다. 얼마 뒤, 현관문이 열리고 도윤이 거실 안으로 들어섰다. 낮에 어머니 이명희 여사가 던지고 간 서슬 퍼른 경고 때문에 머릿속이 무겁고 복잡했던 도윤이었으나, 식탁 앞에 서서 수줍게 자신을 반기는 수아를 마주한 순간 거짓말처럼 그 모든 무거움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상 위에 차려진 음식들을 내려다보던 도윤의 눈빛이 깊어졌다. "이걸 네가 직접 다 만든 거야?" "네.…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어요." 수아가 조심스럽게 웃어 보였다. 그 소박하고 따뜻한 미소를 마주하는 순간, 도윤의 가슴 깊은 곳에서 묘한 충만감과 함께 무거운 죄책감이 동시에 치밀어 올랐다. ‘언젠가는 이 여자를 내 곁에서 떠나보내야 한다.’ 어머니의 매서운 눈망울과 태하그룹의 후계자라는 가혹한 운명이 정해둔 결말을 생각하면, 수아를 이토록 깊이 품어선 안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수아와 함께 마주 앉아 평범한 저녁을 나누는 이 순간이 너무나도 행복해서, 도윤은 차마 그 잔인한 진실을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소중한 시간을 망치고 싶지 않은 비겁한 이기심이 이성을 덮쳤다. 도윤은 지금까지 먹었던 어떤 화려한 저녁보다— 이 밥상이 좋았다. 자신을 기다린 여자가 수아라서 행복했다.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음식앞에서 수아랑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이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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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다른 자리의 여자

태하그룹 전무 비서실은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음에도 여전히 분주했다.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걸어 나왔다. 순간 몇몇 직원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향했다. 한서희였다. 긴 브라운빛 머리카락은 굵은 웨이브를 넣어 한쪽 어깨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렸다. 화장 역시 완벽했다. 깨끗하게 정돈된 피부 위에 은은한 음영을 넣은 눈매. 선명하지만 과하지 않은 붉은 입술. 빛나는 진주가 박힌 샤넬의 우아한 오프화이트 트위드 투피스 정장에, 다리 라인을 아슬아슬하게 살리는 스레토치 스틸레토 힐, 그리고 손목에는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박힌 롤렉스 시계를 차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값비싼 것들이었지만— 무엇 하나 과하게 보이지 않았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것만 보고 자란 여자가 어떤 모습인지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비서실의 직원이 당황한 기색으로 다가와 가로막았다. "죄송합니다, 한서희 씨. 전무님께서는 현재……." 서희는 피식 코웃음을 치며 직원의 말을 가볍게 잘라냈다. "내가 누군지 몰라? 비서실에서 손님 운운할 상대로 보이나 보네. 난 차도윤 오빠의 약혼자이자, 앞으로 이 태하그룹의 안주인이 될 사람이야." 서희는 직원의 제지를 무시하고 당당하게 도윤의 집무실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집무실 안에서 서류를 검토하던 도윤은 예고도 없이 밀고 들어오는 서희의 기척에 미간을 거칠게 찌푸렸다. 고개를 든 도윤의 눈앞에 화려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서희가 들어찼다. "도윤 오빠! 어머님이우리가 요즘 너무 얼굴을 안 본대. 그래서 오빠 바쁜 거 알지만, 오늘 저녁은 나랑 같이 먹어요." 서희의 목소리에는 이뤄내고야 말겠다는 확신과 은근한 독점욕이 묻어났다. 불쑥 찾아온 서희가 눈곱만큼도 달갑지 않았지만, 도윤의 머릿속에는 며칠 전 본사로 찾아와 서슬 퍼런 경고를 날렸던 어머니 이명희의 목소리가 스쳤다. 태하그룹의 후계 구도와 판도를 위해 지금은 불필요한 파열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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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화. 도윤의 방, 그리고 눈물어린 화실

미술학원에서의 수업을 마치고 펜트하우스로 돌아온 수아는 늘 그랬듯 가방을 들고 자신이 묵던 손님방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문을 연 순간, 수아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방 안은 휑할 정도로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그동안 자신이 쓰던 옷가지와 화장품, 소품들까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방이 너무 깨끗했다. 아니. 깨끗한 정도가 아니었다. 자신이 사용하던 흔적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마치 처음 이 집에 들어왔던 날처럼 방이 텅 비어 있었다. 수아의 얼굴이 굳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도윤이 자신의 물건을 치웠을까. 왜? 나가라는 뜻인가? 어젯밤까지만 해도 아무 말도 없었다. 오히려— 늦은 밤 자신의 방으로 찾아와 함께 잠들었다. 당황한 수아가 거실로 나와 마침 정리를 하던 집사 유진에게 다급히 물었다. "유진 이모…… 제 방에 있던 물건들이 다 어디 갔어요? 혹시 청소하시느라 치우신 거예요?" 유진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수아를 돌아보았다. "아, 수아 아가씨. 깜빡했네요.” “오늘 아침 출근하시기 전에 도윤 도련님께서 직접 지시하셨어요. 아가씨 짐을 모두 도련님 방으로 옮겨놓으라고요." "네……? 도윤 씨 방에요?" 펜트하우스에 들어온 지 어느덧 두 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동안 밤마다 도윤이 자신의 방으로 찾아와 머물긴 했어도, 두 사람의 공간은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의 모든 흔적을 그의 방으로 옮기라니. 유진의 안내를 받아 따라 들어간 도윤의 침실은 수아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웬만한 소형 아파트 한 채 크기만큼이나 넓은 공간이었다. 몇 사람이 누워도 넉넉할 만큼 거대한 맞춤형 킹사이즈 침대 너머로, 호텔 스위트룸을 방불케 하는 드레스룸과 화려한 대리석 욕실이 눈부시게 펼쳐졌다. 장식은 거의 없었다. 모든 것이 정돈되어 있었다. 도윤다웠다. 필요한 것은 최고급으로 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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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판을 흔드는 남자

늦은 저녁. 태하건설 사장실에는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서울의 야경이 통유리창 너머로 화려하게 펼쳐져 있었지만— 차진만의 시선은 그곳에 있지 않았다. 책상 위에는 몇 장의 서류가 펼쳐져 있었다. 태하그룹 주요 계열사의 지분 구조. 우호 지분. 기관 투자자 현황. 그리고— 현성그룹과 태하그룹이 추진 중인 사업 자료까지. 진만은 한참 동안 서류를 바라보다 안경을 벗었다. “들어와.”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도진이었다. 오늘 도진은 짙은 브라운 수트에 검은 셔츠를 입고 있었다. 넥타이는 하지 않았다. 단정하게 넘긴 머리 사이로 은은한 골드빛 하이라이트가 조명 아래에서 드러났다. 도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도윤이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차가운 정제미를 가진 남자라면— 도진은 세련되고 자유분방했다. 웃을 때는 부드러웠지만, 그 웃음 뒤에는 쉽게 속을 알 수 없는 날카로움이 있었다. “이 시간에 부르신 이유가 뭡니까.” 도진이 소파에 앉았다. 진만은 대답 대신 앞에 놓인 서류 하나를 밀었다. 도진이 내려다봤다. “현성그룹?” “그래.” “한서희 집안 자료를 왜 보십니까?” 진만이 천천히 의자에 등을 기댔다. “요즘 명희 형수가 그쪽 혼담을 꽤 적극적으로 밀고 있다더군.” 도진이 피식 웃었다.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잖습니까.” 진만은 아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진만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도윤이하고 한서희 결혼.” 짧은 침묵. “막아야겠다.” 도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현재 그룹의 핵심 사업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인물. 회사 안에서도 차도윤을 차기 회장으로 보는 시선이 압도적이었다. 도윤은 단순히 회장의 아들이라는 이유가 아니라 실적이 있었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도윤의 자리는 단순히 혈통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결과를 만들어왔다. 진만이 낮게 말했다.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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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도윤의 약점

도진의 눈빛이 바로 달라졌다. “확인됐습니까?” “아직.” “그럼 소문 아닙니까.” “단순한 소문이라고 보기에는 움직임이 이상해.” 도진은 말없이 들었다. 도진의 입가에 천천히 미소가 번졌다. “재미있네요.” “어떤 여자일까요?” “그걸 알아내야지.” 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생각해봐.” 진만의 목소리가 느려졌다. “현성그룹에서 귀한 딸을 태하에 시집보내는데.” “…….” “결혼할 남자가 따로 숨겨둔 여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도진의 눈빛이 깊어졌다. “한 회장이 좋아할 리 없겠죠.” “그렇지.” “특히 그 여자가 단순한 몇 번의 만남이 아니라면.” “더 좋고.” 진만의 입가에 얇은 미소가 번졌다. 차가웠다. “도윤이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면 한 회장 입장에서는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어.” “혼담을 미룰 수도 있고.” “깨질 수도 있고.” “그리고 그 사이.” 도진이 말을 이었다. “우리는 태하 안에서 지분하고 사람을 더 확보한다.” 진만이 만족스럽게 아들을 바라봤다. “이제야 알아듣네.” 도진은 소파 팔걸이에 손가락을 두드렸다. 머릿속 계산이 빨라졌다. 시간. 그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결국 시간이었다. 도윤과 현성이 결합하기 전에— 우호 지분을 늘리고. 계열사 내부 인맥을 확보하고. 도윤에 반감을 가진 임원들을 자신들 쪽으로 끌어들여야 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후계 구도를 바꿀 수도 있었다. 도진은 잠시 아버지를 바라봤다. 그리고 웃었다. “역시 아버지시네요.” “서희한테 접근해서 친해져라.” “…….” “도윤이보다 네가 자기한테 더 관심 있다는 걸 보여줘.” 도진의 입가에 묘한 흥분과 비웃음이 섞인 미소가 번졌다. "차도윤 그 냉혈한 같은 사람에게 여자가 생겼다고요? 완벽한 척 하더니, 그 녀석도 결국 본능에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군요." "그렇지. 만약 네가 그 빈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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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그녀의 흔적

오후 두 시가 조금 넘은 시간. 예고도 없이 현관문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명희 여사가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주방에서 차를 정리하던 유진은 순간 굳었다. 미리 연락을 받은 적은 없었다. 유진은 잠시 숨을 골랐다. 우아한 베이지색 투피스에 진주 귀걸이를 한 이명희는 세월이 흘러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이었다. 짙은 갈색 머리는 단정하게 뒤로 정리되어 있었고, 손에는 고급 가죽백이 들려 있었다. 그녀의 뒤로 운전기사와 수행비서가 서 있었다. “사모님. 어쩐 일이세요? 미리 연락을 주셨으면 준비했을 텐데요.” “내 아들 집에 오는데 무슨 준비까지 필요해.” 차분한 목소리였다. 다행히 이 시간에는 수아가 미술학원 수업을 나가고 없어 두 사람이 직접 마주치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이명희의 예리하고 차가운 눈빛은 이미 거실 구석구석을 매섭게 훑고 지나간 뒤였다. 하지만 유진은 알았다. 이명희가 아무런 연락도 없이 이곳을 찾은 것은 이유가 있다는것을. “들어오세요.” 유진이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다가갔으나, 이명희는 대답 없이 거실 소파에 품위 있게 자리를 잡았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그 주변의 공기는 금세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수행비서가 들고 있던 고급 보자기 상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산삼이야.” “네?” “좋은게 들어왔다기에 가져왔어. 도윤이 아침마다 잘 달여서 먹이도록 해.” “네, 사모님.” 말을 마친 이명희는 자연스럽게 거실을 가로질러 복도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유진의 이마에 미세한 식은땀이 맺혔다. 이명희는 도윤의 침실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더니, 그 옆에 딸린 서재와 새로 꾸며진 화실의 문까지 차례로 열어젖혔다. 방 안에는 명백한 타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도윤의 넓은 드레스룸 한쪽을 채운 여성용 옷들과 화장대 위의 화장품들 이명희의 눈빛이 서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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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몇 달이면 끝날 일

늦은 오후, 집사 유진으로부터 이명희 여사가 다녀갔다는 전화를 받은 도윤의 미간이 날카롭게 굳어졌다. “도련님.” 평소와 달리 유진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웠다. 도윤의 손이 멈췄다. “무슨 일 있어요?” “오늘 사모님께서 다녀가셨어요.” 도윤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어머니가요?” “네. 연락 없이 오셨어요.” 도윤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짧게 물었다. “수아는요?” “학원에 있어서 마주치지는 않았어요.” 그제야 도윤의 굳었던 표정이 조금 풀렸다. 도윤은 천천히 의자에 등을 기댔다. 결국 알게 된 것이다. 생각보다 조금 빨랐을 뿐. “죄송해요, 도련님.” “아주머니가 죄송할 일이 아니에요.” “사모님께서 수아 아가씨에 대해 물으셔서 제가 아는 정도만 말씀드렸어요.” “괜찮습니다.” 도윤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전화를 끊은 도윤은 한동안 말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어머니가 알았다. 그렇다면 이미 조사가 시작됐을 것이다. 이명희는 확인되지 않은 일을 가지고 먼저 아들을 몰아세울 사람이 아니었다. 도윤은 인터폰을 눌렀다. 잠시 후 민철이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전무님?” "오늘 저녁은 본가에서 먹을 테니 그렇게 전해." “네, 전무님.” 문이 닫혔다. 도윤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피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한 번은 해야 할 이야기였다. 저녁 일곱 시 반.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춰 도착한 본가는 평소와 다름없이 무겁고 고요한 기품을 풍기고 있었다. 이명희 여사는 아랫사람들이 지켜보는 식사 자리에서는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완벽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태하그룹의 회장이자 남편인 차태하 회장, 그리고 아들 도윤과 함께 차분하고 정제된 분위기 속에서 저녁 식사를 마쳤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이명희는 서늘한 눈빛으로 아들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서재로 따라오거라." 차태하 회장의 넓은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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