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hat ng Kabanata ng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Kabanata 161 - Kabanata 170

178 Kabanata

161화. 놓지 못한 손

방문을 열고 나오자 곽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곁에는 양재가 서 있었고, 마당 한쪽에는 포박당한 사내 둘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양재는 얼굴이 창백했으나 다행히 눈에 띄는 상처는 없었다.무겸은 먼저 양재를 돌아보았다.“군에 이름을 올린 자가 허락 없이 영문을 나간 까닭부터 말해라.”양재가 고개를 숙였다.“아버지께서 급히 부르셨습니다. 누이 일로 할 말이 있다고 하셔서…….”“그 말을 믿었느냐?”“아버지께서 직접 보내신 사람이었습니다.”“그런데 아까는 어찌하여 부인께 문서를 보지 말라고 했느냐?”양재는 잠시 포박당한 사내들을 바라보았다.“저자들이 아버지를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서씨 상단주께 문서를 건네는 순간 빼앗겠다고 했습니다.”“그 사실을 언제 알았느냐?”“별장에 갇혀 있는 동안 들었습니다. 문서가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양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부인께서 문서를 펼치시면 저자들이 달려들 것 같았습니다. 너무 급하여 그리 외쳤습니다.”무겸은 잠시 양재를 바라보다가 곽진에게 눈짓했다.“저자들을 앞으로 데려와라.”곽진이 포박당한 사내들을 끌어왔다. 그중 하나는 아까 무겸에게 팔이 꺾인 탓인지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누구의 명으로 이곳에 왔느냐?”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곽진이 그중 하나의 품에서 꺼낸 나무패를 내밀었다. 자사부의 창고를 드나드는 자들에게 지급되는 출입패였다.“신분을 확인했습니다. 자사부에서 부리는 자들입니다.”무겸은 사내들을 내려다보았다.“문서를 빼앗으라는 명을 받았느냐?”“장군께서는 관아의 일에 관여하지 마십시오.”“관아의 일이라면 내 군사를 감금하고 내 부인에게 칼을 겨누어도 된다는 것이냐?”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사내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문서를 회수하라는 명만 받았습니다. 부인을 해칠 생각은 없었습니다.”“칼을 뽑고도 그런 말을 하는군.”사내는 더는 대꾸하지 못했다.무겸은 곽진에게 두 사람을 군영으로 압송해 조사하라고 명했다. 자사부의 출입패와 빼앗으려 했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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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화. 손을 놓지 않는 이유

“왜 그러시오?”“이번에는 제가 여며 드려도 되겠습니까?”무겸이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예령은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못하고 손을 뻗었다. 벌어진 겉옷의 깃을 모아 단정히 여미는데, 손등이 그의 턱 아래를 스쳤다.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였다. 고개를 조금만 들면 서로의 얼굴이 닿을 듯했다.무겸은 몸을 숙이지도, 물러서지도 않았다.그저 그녀가 매듭을 고쳐 묶는 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이제 되었습니다.”예령이 손을 거두려 하자 무겸이 그녀의 손목을 가볍게 붙잡았다.“부인.”“예.”“오늘 아침에 하신 말씀 말이오.”예령은 그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장군께서 지켜 주시지 않겠습니까.그 말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계약에 따른 보호 의무라고 하셨지.”“……예.”“나는 그 말이 조금 서운했소.”예령이 놀라 고개를 들었다.무겸은 그녀의 손목을 놓았다. 그러나 눈길만은 거두지 않았다.“부인이 나를 믿고 하신 말씀인 줄 알았기 때문이오.”예령의 입술이 조금 벌어졌다.그녀는 자신이 무심코 꺼낸 말 하나를 그가 얼마나 소중하게 받아들였는지 그제야 알았다. 계약이라는 말로 얼버무린 것은 그를 믿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믿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장군.”그녀는 잠시 망설였다.“저는…… 장군을 믿습니다.”무겸의 눈빛이 깊어졌다.“계약 때문이 아닙니다.”그 말까지 하고 나자 예령은 더는 그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었다. 눈이 내리는 마당에서 자신의 심장 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렸다.한참 뒤 무겸이 대답했다.“그 말이면 되었소.”그는 예령의 손을 잡았다.이번에는 미끄러운 길 때문도, 위험한 곳을 지나야 하기 때문도 아니었다. 마차까지는 평평한 돌길이 이어져 있었다.예령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런데도 손을 빼지 않았다.마차에 올라서도 무겸은 한동안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예령 역시 창밖을 바라보는 척하면서 손가락을 조금 움직여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그 작은 움직임에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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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화. 닫힌 창고의 장부

“그날 백운상회 창고는 아예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양소정의 말에 예령은 장부를 넘기던 손을 멈추었다. 무겸 역시 그녀를 돌아보았다.“어찌 그리 확신하십니까?”“그날 창고지기가 장례를 치렀습니다. 아버지께서 사흘 동안 문을 닫으라 하셨고, 저도 직접 장부에 적었습니다.”소정은 날짜를 짚으며 덧붙였다.“그런데 이 문서에는 그날 곡식 이백 석이 나간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예령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신의 수레가 관문에 묶여 있었고, 백운상회의 창고마저 닫혀 있었다면 거래 자체가 성립할 수 없었다.“창고를 닫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까?”“예. 열쇠를 맡긴 사람과 품삯을 지급하지 않은 날까지 적혀 있습니다.”무겸이 물었다.“그 장부는 지금 어디 있소?”“상회 안쪽 장부방에 있습니다. 다만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가져오기 어렵습니다.”예령은 소정의 표정을 살폈다. 아버지가 또다시 자사의 압박에 굴복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도 괴로울 터였다.“소정 낭자에게 아버지를 거스르라는 뜻은 아닙니다. 필요한 것은 기록이니, 제가 직접 상단주께 요청하겠습니다.”소정은 입술을 깨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어느 장부인지 제가 압니다.”무겸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가 곽진을 불렀다. 관문에서 근무했던 군사들의 명단을 확인하고, 당시 통행 기록을 가져오라는 지시가 내려졌다.“관아에서 기록을 고쳤을 가능성도 있습니다.”예령의 말에 무겸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니 기록을 본 사람도 찾아야 하오.”그는 탁자에 펼쳐진 문서를 가리켰다.“부인은 거래가 없었다는 것을 밝히시오. 나는 누가 거짓 기록을 만들었는지 알아보겠소.”예령은 그 말에 잠시 무겸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빼앗지 않고,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을 맡겠다는 뜻이었다.“알겠습니다.”무겸의 시선이 그녀의 목덜미에 머물렀다.“다만 오늘 밤은 여기까지 하시오.”“아직 확인할 것이 남았습니다.”“상처가 다시 벌어지면 어찌하려 하오.”예령은 대답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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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화. 그 까닭을 묻는 밤

예령은 무겸이 내민 손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약병을 건넸다. 연화와 소정이 자리를 비운 방에는 등잔 타는 소리만 남았다.“장군께서는 참으로 고집이 세십니다.”무겸이 희미하게 웃었다.“부인만 하겠소.”그가 가까이 다가왔다.“이쪽으로 앉으시오.”예령은 순순히 의자에 앉았다.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넘기자 무겸의 손끝이 목덜미 가까이 다가왔다.그때 예령이 나직이 물었다.“장군께서는 어찌하여 제게 이토록 잘해 주십니까?”무겸의 손이 멈추었다.등잔불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겹쳤다.“부인은 아직도 그 까닭을 모르시겠소?”예령은 대답하지 못했다.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짐작하는 마음을 입 밖에 내었다가 그가 다른 뜻이었다고 하면, 지금껏 조심스레 쌓인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았다.“알 것 같다가도 자신이 없습니다.”무겸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약을 묻힌 손끝으로 상처 가장자리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예령이 살짝 움찔하자 그의 손길이 곧바로 멎었다.“아프오?”“조금 따갑습니다.”“곧 끝나오.”그는 마치 깨지기 쉬운 물건을 다루듯 천천히 약을 발랐다. 가까이서 느껴지는 숨결에 예령은 손을 무릎 위에 모았다. 상처보다도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가만히 앉아 있기가 어려웠다.약병의 뚜껑을 닫은 무겸이 말했다.“내가 부인께 답을 재촉하지는 않겠소.”“무슨 답을 말씀하십니까?”“부인께서 이미 짐작하고 계신 그 까닭 말이오.”예령의 얼굴이 붉어졌다. 무겸은 그 모습을 보고도 놀리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넘겨 주었다.“오늘은 쉬시오. 내일은 긴 하루가 될 테니.”“장군께서도 쉬셔야 합니다.”“그러겠소.”그는 일어서려다 예령이 자신의 소매를 붙잡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예령 역시 그제야 손을 거두려 했으나, 무겸이 먼저 그 손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무슨 말씀이 더 남으셨소?”“아닙니다. 그저…….”예령은 잠시 머뭇거렸다.“내일 관아에 가게 되면 장군께 폐가 될지도 모릅니다.”“부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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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화. 거짓의 빈틈

예령은 무겸의 손을 잡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새벽의 냉기가 옷자락 사이로 스며들었으나, 맞닿은 손바닥에는 전날 밤의 온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관사 문 앞에는 두 대의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는 관아로 향할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백운상회로 갈 참이었다.“소정 낭자는 상회로 가십시오. 장부를 확인하되, 원본을 억지로 가져오지는 마세요. 누가 보관하고 있는지만 알아도 됩니다.”소정이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짓 장부에 얽혀 있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예령은 그녀의 손에 열쇠 인계증 사본을 돌려주었다.“이것도 낭자가 가지고 계세요. 원본과 대조하기 전에는 함부로 내놓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소정이 떠난 뒤 무겸은 예령을 마차까지 바래다주었다. 관아로 가는 길에 군사를 늘어세우는 일은 오히려 자사에게 빌미를 줄 터였다. 무겸은 호위 장호만 마차 곁에 세우고, 곽진에게는 관문 근무자의 진술을 별도로 보전하도록 명했다.“관아 안에서는 내가 먼저 나서지 않을 것이오.”“알고 있습니다. 제 장부에 관한 일은 제가 설명하겠습니다.”무겸은 그녀의 목에 감긴 천을 한 번 살폈다. 손을 뻗으려다 거두는 기색이 보이자 예령이 먼저 웃었다.“약도 발랐고, 상처도 괜찮습니다. 오늘은 걱정을 조금 덜어 두셔도 됩니다.”“부인이 그리 말씀하셔도 걱정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오.”무겸은 낮게 대답하고 마차의 문을 닫아 주었다. 그 담담한 고백에 예령은 한동안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관아 앞은 이른 시각부터 소란스러웠다. 군량을 빼돌렸다는 소문이 이미 장터에 퍼졌는지, 문 앞에 모인 상인들이 서씨 상단의 마차를 알아보고 수군거렸다. 그중에는 얼마 전까지 서씨 상단과 거래하던 얼굴도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들은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억울함을 호소하기 전에 이미 평판이 저울 위에 올랐다는 사실이 서늘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소문을 쫓아다니며 해명할 수는 없었다. 오늘 이곳에서 밝혀야 할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나 소문이 아니라, 곡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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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화. 사라진 원본

장호의 말이 떨어지자 대청에 내려앉은 침묵이 한층 짙어졌다. 예령은 자사의 얼굴을 살폈다. 조금 전까지 여유롭게 찻잔을 기울이던 사내의 눈가에 희미한 긴장이 스쳤으나, 그는 곧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백운상회의 장부가 없어졌다고? 그것을 어찌 이곳에 와서 알리는 것이오?”“제가 확인을 부탁한 장부입니다.”예령은 차분히 대답했다. 사라진 물건의 이름을 듣자마자 자사가 그 중요성을 알아챘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의심만으로 사람을 몰아붙일 수는 없었다. 그녀는 장호에게 고개를 돌렸다.“소정 낭자는 무사합니까?”“예. 장부방을 살핀 뒤 곧장 사람을 보냈답니다. 지금은 상단주와 함께 있다고 합니다.”그제야 예령의 굳었던 어깨가 조금 풀렸다. 원본이 사라진 것도 심각한 일이었지만, 그것을 찾으러 간 소정까지 위험해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자사는 느릿하게 수염을 쓸었다.“증거가 있다더니 정작 내놓을 장부가 없다는 말이구려.”“원본 장부가 사라졌다고 해서, 그날 창고에서 곡식이 출고되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말은 누구나 할 수 있소.”“그래서 장부를 관리하던 사람과 열쇠를 맡았던 사람을 불러 확인하려 합니다. 관아에서도 함께 조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예령의 대답에 자사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원본이 없다는 사정이 곧바로 서씨 상단의 죄를 입증해 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그 역시 알고 있을 터였다. 예령은 탁자 위에 놓인 거짓 장부를 다시 바라보았다. 잉크의 농담은 고르고 종이는 지나치게 깨끗했다. 오래전 거래를 적은 장부라기보다 누군가 한꺼번에 베껴 쓴 문서에 가까웠다.“이 장부는 언제 백운상회에서 받으셨습니까?”“며칠 전이오.”“누가 가져왔는지 기록이 있겠군요.”자사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서 상단주가 지금 관아를 심문하는 것이오?”“아닙니다. 제게 제기된 혐의를 확인하고 있을 뿐입니다. 장부가 언제, 누구의 손을 거쳐 이곳에 왔는지는 거래의 진위를 가리는 데 필요한 일 아닙니까?”대청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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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화. 문밖의 목격자

사내의 외침에 대청 안의 시선이 일제히 문으로 쏠렸다. 문지기에게 팔을 붙잡힌 그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낡은 외투의 어깨에는 눈이 녹아 검은 얼룩이 번졌고, 한쪽 신발에는 진흙이 두껍게 붙어 있었다.“누구냐?”자사의 물음에 사내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백운상회에서 창고를 지키는 박칠입니다. 서 상단주께 꼭 드릴 말씀이 있어 왔습니다.”“상단의 일이라면 돌아가서 말하면 될 것을, 어찌 관아에서 소란을 피우느냐?”박칠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예령을 바라보았다. 눈빛에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예령은 그가 말을 삼키기 전에 조용히 물었다.“장부를 가져간 사람을 보셨다고요?”“예. 새벽에 장부방 뒤뜰을 지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심부름꾼인 줄 알았는데, 품에 안은 것이 장부처럼 보였습니다.”“얼굴도 보았습니까?”박칠은 대답하지 못하고 문가에 선 관리들을 훑어보았다. 그가 무서워하는 것이 누구인지 예령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여기서 말씀하기 어렵다면 밖에서 듣겠습니다.”예령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자사가 손바닥으로 탁자를 쳤다.“잠깐. 관아에 들어와 증언하겠다는 자를 마음대로 데리고 나갈 수는 없소.”“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듣겠습니다. 자사께서도 함께 들으시면 되겠군요.”무겸은 예령의 뒤로 반걸음 물러섰다. 그녀가 스스로 말을 이어 갈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 준 것이었다. 그 작은 배려에 예령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박칠은 마른침을 삼켰다.“그 사람이 서쪽 담으로 나갈 때, 제가 뒤에서 불렀습니다.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옷자락이 걸려서 소매가 찢어졌습니다. 제가 그 조각을 주웠습니다.”그가 품에서 꺼낸 것은 손바닥만 한 짙은 남색 천이었다. 예령은 천을 받아 들지 않고 손에 펼쳐 보이게 했다. 가장자리에는 은빛 실로 작은 무늬가 수놓아져 있었다.“이 옷을 입은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얼굴은 못 봤습니다. 다만 그날 아침, 관아에서 왔다며 장부방을 찾던 사람이 같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대청이 술렁였다. 자사는 불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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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화. 닫힌 창고의 비밀

소정이 내민 종이는 여러 번 접혔다 펴진 탓에 모서리가 닳아 있었다. 예령은 그것을 곧장 받아 들지 않고 먼저 소정의 얼굴을 살폈다. 추위에 언 뺨보다 붉게 충혈된 눈이 더 마음에 걸렸다.“천천히 말씀하세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창고를 닫으라고 지시한 사람이 따로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저 따랐을 뿐이에요.”자사의 표정이 굳었다.“양씨 상회의 집안 사정까지 이 자리에서 들을 필요는 없소.”“그날 창고에서 곡식이 나갔는지를 확인하는 일입니다. 관계가 없을 수 없습니다.”예령이 대답하자 소정은 작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손에 쥔 종이를 펼쳤다. 그것은 창고지기가 남긴 짤막한 쪽지였다. 장례를 치르기 전날, 병석에 누운 창고지기가 아들에게 맡겼다는 글이었다.‘사흘 동안 문을 열지 말 것. 관아에서 사람이 오더라도 열쇠를 내주지 말 것.’글 아래에는 창고지기의 이름과 날짜가 적혀 있었다.“아버지는 그분이 돌아가셔서 창고를 닫았다고만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그렇게 알았고요. 그런데 이 쪽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쓰신 겁니다.”“왜 미리 문을 닫으라고 했는지는 들었습니까?”소정은 고개를 저었다.“아버지도 이유를 모른다고 하셨어요. 다만 그 전날 관아 사람이 창고에 와서 곡식 수량을 적어 갔답니다. 창고지기는 그 뒤로 몹시 불안해했고요.”예령은 종이에 적힌 날짜를 다시 확인했다. 거짓 장부에 곡식 이백 석이 옮겨졌다고 적힌 날보다 하루 앞이었다. 창고지기가 무언가 잘못될 것을 미리 눈치챘다면, 문을 닫은 까닭도 달리 보였다.“그분의 아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백운상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그 사람만은 내보내지 않으셨대요.”그 말을 듣고 예령은 양석을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자사의 협박에 굴복했지만, 창고지기의 아들을 곁에 남겨 두었다. 죄책감 때문인지, 언젠가 진실을 밝힐 날을 기다렸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자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죽은 사람의 글 한 장으로 관아의 기록을 뒤집겠다는 것이오?”“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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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화. 남겨 둔 한 자루

찻집 안에는 볶은 찻잎 냄새와 젖은 나무가 타는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예령이 안으로 들어서자 구석에 앉아 있던 젊은 사내가 벌떡 일어났다.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몹시 조심스러웠다.“창고지기의 아들이라 들었습니다.”“예. 이름은 강복입니다.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창고 일을 맡고 있습니다.”강복은 소정을 보고서야 조금 안도한 얼굴을 했다. 소정이 자리를 권하자 그는 앉지도 못한 채 품속에서 낡은 열쇠를 꺼냈다.“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제게 맡긴 것입니다. 창고 뒤편 곡식 자루 하나를 열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다만 일이 시끄러워지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보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그 자루 안에 무엇이 있습니까?”“관아에서 가져간 곡식의 수량을 적은 종이입니다.”예령의 눈길이 열쇠에 머물렀다. 강복은 손가락으로 열쇠의 녹슨 부분을 문질렀다.“아버지는 관아 사람이 창고에 들렀던 날부터 잠을 이루지 못하셨습니다. 곡식을 실어 간 것도 아닌데, 실어 갔다고 적으라 했답니다.”소정이 입을 가렸다. 예령은 서둘러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그 종이를 직접 보셨습니까?”“예. 아버지의 글씨입니다. 창고에 남은 곡식 수와 열쇠를 맡긴 날짜가 적혀 있습니다. 그날 이후 사흘 동안 창고 문을 열지 않았다는 말도요.”“그렇다면 왜 가져오지 않았습니까?”강복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오늘 아침 누군가 자루를 뒤진 흔적이 있었습니다. 겁이 나서 종이만 꺼내 다른 곳에 감추었습니다. 혹여 제가 들고 다니다 빼앗길까 봐…….”무겸이 그를 바라보았다.“감춘 곳은 안전하냐?”“제 어머니가 계신 집입니다. 아무도 모릅니다.”“곽진.”“예, 장군.”“믿을 만한 병사 둘을 붙여라. 강복과 함께 다녀오되, 종이를 가져오는 동안 그 집 사람들도 지켜라.”곽진이 고개를 숙이고 나가자 강복은 그제야 자리에 앉았다. 예령은 그 앞에 따뜻한 찻잔을 밀어 놓았다. 뜨거운 김이 오르는 잔을 바라보던 사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아버지는 평생 창고 문을 지킨 분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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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화. 거짓 장부의 주인

창고지기가 남긴 종이는 얇았으나, 그 위에 적힌 글씨는 이상하리만큼 힘이 있었다. 예령은 마지막 문장을 다시 읽었다. 이백 석을 옮겼다는 장부에 제 이름을 쓰지 말라. 죽음을 앞둔 사내가 굳이 그런 말을 남겼다면, 누군가 그의 이름을 빌려 거짓을 꾸미려 했다는 뜻이었다.“관아에 제출된 장부를 보았을 때, 창고지기의 이름이 있었습니까?”소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도 그 이름 때문에 한동안 의심하지 못하셨습니다. 오랫동안 창고를 지킨 사람이었으니까요.”“그럼 두 기록을 나란히 놓으면 되겠군요.”곽진이 미간을 좁혔다.“관아에서 순순히 장부를 내놓겠습니까?”“내놓지 않으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지요. 이미 서씨 상단의 죄를 입증하는 증거라며 사람들 앞에 펼쳐 보였으니까요.”무겸은 종이를 곽진에게 건넸다.“원본은 네가 보관해라. 사본을 따로 준비하고. 자사가 손댈 틈을 주지 마라.”“예, 장군.”예령은 무겸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승리를 앞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일이 끝날 때까지 마음을 놓지 않겠다는 듯 눈빛이 차분했다.“오늘 안에 끝낼 수 있을까요?”“적어도 더는 부인이 같은 장부를 쫓아다니게 두지 않겠소.”뜻밖의 대답에 예령이 웃었다.“제가 그리 지쳐 보입니까?”“아침마다 찻잔보다 장부를 먼저 찾으니 그렇소.”“장군께서도 밤마다 보고서를 읽으시지 않습니까.”“그러니 둘 중 하나라도 먼저 끝내야지.”그 말이 우스워 예령은 소리 내어 웃었다. 소정 역시 입가를 가리며 웃다가 곽진과 눈이 마주치자 급히 표정을 거두었다. 곽진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오후가 되자 관아의 마당에 사람들이 모였다. 자사는 무겸이 직접 왔다는 말을 듣고도 한참을 기다리게 했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그는 예령의 손에 들린 종이를 보자 눈썹을 꿈틀거렸다.“또 무슨 종이를 들고 와 소란을 피우려는 것이오?”“소란을 피우려는 것이 아니라, 대감께서 내놓으신 증거를 확인하러 왔습니다.”예령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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