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정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소주를 잔에 부었고, 고개를 젖혀 단숨에 넘겼다. 뜨거운 액체가 목을 타고 내려가기도 전에, 죄책감이 먼저 뱃속을 태웠다.‘취하기라도 하면…’잔을 따르는 손이 거듭할수록, 전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고 익숙해지고 있다는 걸 그녀는 부정할 수 없었다.몇 번이나 이어진 인사 뒤 전화는 짧게 ‘뚝’ 끊어졌다. 그 순간, 거실에 남은 것은 조용한 죄의식과 말 없는 숨소리였다.준호도, 혜정도 서로를 보지 못한 채 시선을 접시에 박고 있었다.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무엇은 말하지 않아야 할지, 입술은 열리지 않았지만, 감정은 확실히 흔들리고 있었다.준호가 먼저 시선을 들었다. 눈앞의 혜정은 소주잔을 내려놓고 또다시 병을 들고 있었다.“…잠깐만요.”준호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에서 병을 받았다. 그리고 잔을 들어 조용히 술을 부었다.“갑자기 이렇게 많이 마시세요?”살짝 웃는 듯한 말투였지만, 그 안에는 확실한 걱정이 배어 있었다. 혜정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고개를 젓지도 않았다. 대신, 다시 고개를 젖혀 잔을 단숨에 비워냈다.— 벌컥
Last Updated : 2026-09-10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