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븐 / 스칼렛의 시점“예, 알파.”후들거리는 다리로 뒷걸음질 쳐 연결된 문으로 향하는 동안, 심장은 갈비뼈를 부술 듯 요란하게 요동쳤다. 목에 두른 스카프를 고쳐 매며 내 방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등 뒤로 닫히는 문의 나지막한 딸깍 소리가 비정상적일 만큼 유독 크게 울려 퍼졌다.문에 등을 기댄 채 한참 동안 눈을 감고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었다.알파 디미트리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끊임없이 맴돌며 양옆으로 늘어뜨린 손끝을 여전히 파르르 떨리게 만들었다.‘네가 모르는 것은 세상에 아주 많다, 스칼렛.’‘내일 마녀들을 만나러 갈 것이다.’그 말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어느 쪽이 나를 더 끔찍하게 뒤흔드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머릿속을 비워내기 위해 억지로 몸을 움직여 무엇이든 손에 잡히는 대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침대 위로 어지러이 흩어져 있던 책들이 먼저였다. 닳아 해진 표지들을 조심스레 쓸어내리며 한 권씩 모아 작은 선반 위에 책등을 맞추어 정갈하게 쌓아 올렸다.‘어둠의 혈통 저주’에 손이 닿았을 때, 손가락이 잠시 멈칫했다. 페이지들이 거칠게 뜯겨 나간 상처투성이 가장자리를 엄지손가락으로 쓸어내리는 동안, 빛바랜 책 제목이 나를 빤히 마주 보았다.오로스타라는 이름이 마음 한구석에 불안하게 가라앉았다. 불과 한 시간 전과는 사뭇 다르게, 어딘가 훨씬 더 묵직한 무게감으로 다가왔다.그 책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다음 정리를 이어갔다.다음은 식기들이었다. 먹고 남은 잔여물을 작은 쓰레기통에 털어 넣은 뒤, 그릇을 씻어 본래의 자리에 정돈해 두었다. 탁자와 협탁, 심지어 바닥에 떨어진 몇 조각의 부스러기까지 훔쳐내며, 마치 아무도 머물지 않았던 것처럼 방 안을 말끔히 닦아냈다.몸에 밴 오랜 습관이란 이토록 떨쳐내기 어려운 법이었다.루칸이 광기에 휩쓸려 난동을 부리고 난 뒤, 피로 얼룩진 바닥을 박박 문질러 닦던 시절이 있었다. 모든 것을 깨끗하게 되돌려놓기만 하면 그 끔찍한 일들도 없던 일로 지워낼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모든 정리를 끝
Last Updated : 2026-09-28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