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투자자 측에서 연락이 끊겼습니다.”긴급 주주총회장은 한마디에 얼어붙었다. 칠천억을 약속했다던 투자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화상 연결 화면에는 회색 대기 표시만 떠 있었다.최명희가 백나리를 노려봤다.“분명 오늘 입국한다고 했잖아.”“비행기가 지연된 것 같아요. 제가 다시 연락해 볼게요.”나리의 손가락이 휴대전화 위에서 헛돌았다. 건우는 굳은 얼굴로 회의를 수습했다.“십 분 휴회하겠습니다. 기존 주주 변동 내역부터 재확인하세요.”그때 회의장 밖이 소란스러워졌다.“등록되지 않은 분은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오늘 오전 아홉 시 기준 주주명부를 다시 보시죠.”재하의 목소리였다. 문이 열렸다. 나는 검은 정장 차림으로 회의장 안에 들어섰다. 어제까지 며느리의 자격으로도 밀려났던 문이 오늘은 내 이름으로 열렸다.건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은채야, 여긴 어떻게…….”“주주총회에 주주가 참석했습니다. 문제 있나요, 이 대표님?”재하가 전환청구 확인서와 변경된 주주명부를 의장석 앞에 놓았다.재하는 아크파트너스가 보유한 전환사채 전액이 금일 보통주로 바뀌었고, 의결권 제한 없는 단일 최대 지분이라고 설명했다.이사들의 서류 넘기는 소리가 한꺼번에 났다. 최명희가 책상을 쳤다.“아크의 실소유주를 밝히지도 않고 지배권을 넘기겠다는 건가?”“밝히러 왔습니다.”나는 주주 신원 확인서 첫 장을 돌려 보였다.“아크파트너스 창업자 겸 대표, 서은채입니다.”숨 삼키는 소리가 번졌다. 나리는 고개를 저었다.“말도 안 돼. 언니는 그냥 컨설턴트였잖아요.”“그 직함조차 당신들이 없앴죠.”“누가 이름만 빌려준 거겠지. 아크 같은 회사가 어떻게…….”나는 첫 위기 때 매출채권을 인수했고, 두 번째엔 면세점 지급보증을 세웠으며, 세 번째엔 지금의 채권을 발행했다고 밝혔다. 최종 승인도 모두 내 몫이었다.화면에 계약서 세 장이 차례로 떴다. 내가 밤새 살린 회사에서 내 이름만 지워졌던 시간들이 이제 숫자가 되어 돌아왔다.건우의 입술이 하얗게 질렸다.
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4 Leer má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