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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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화 — 내 손을 놓지 않는 회의

“감당할지는 제가 정합니다.”내 대답에도 김문호는 두 번째 도면의 행방을 말하지 않았다. 대신 해원과 소송을 끝내면 건우를 버릴 수 있느냐고 물었다.같은 요구가 그날 이사회 안건으로 올라왔다.“재혼설을 부인하고 이건우 씨와 결별했다고 공표하십시오.”사외이사 한 명이 주가 그래프를 화면에 띄웠다. 해원의 가처분 신청 뒤 하락한 선이 붉었다.“사적인 관계를 왜 이사회가 결정하죠?”“최명희 전 부회장의 아들입니다. 해외 브랜드가 지배구조 회귀로 받아들입니다.”“그 우려를 보낸 브랜드 명단을 주세요.”그는 자료를 넘기지 못했다. 홍보 자문사의 의견과 윤세라가 흘린 기사 제목만 반복했다.나는 회의 탁자 위에 이해충돌 통제안을 놓았다.“건우 씨의 회복센터는 태림과 거래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제 임기 동안 수의계약을 금지하고, 관련 안건이 생기면 제가 사전 공개하고 표결에서 빠지겠습니다.”“그 정도로 여론이 돌아서겠습니까?”“통제할 위험은 통제합니다. 그러나 제 사생활을 주가 부양 수단으로 팔지는 않겠습니다.”다른 이사가 끼어들었다.“대표의 연애도 평판 자산입니다.”“자산이면 누가 소유합니까?”회의실이 조용해졌다.“회사가 제 관계를 소유한다는 규정은 없습니다. 대신 실제 이해충돌은 감사위원회가 검사하게 하죠.”나는 건우의 옛 한시 자문 계약과 종료 확인서를 화면에 띄웠다. 접근권은 계약 종료일 오후 여섯 시에 폐기됐고, 지난 일 년간 태림 결재선에 그의 이름은 한 번도 없었다.“그가 조언하지 않았다는 걸 어떻게 믿습니까?”“믿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회의록, 통신 기록, 의사결정 책임자를 감사하세요.”“연애 중이라는 사실은 인정합니까?”“네. 숨기지 않습니다.”“그럼 헤어질 수 없다는 겁니까?”“그 결정은 이사회의 권한이 아니라는 겁니다.”건우는 회의장 밖 방문객 대기실에 있었다. 내가 참석을 요청하지 않았고, 그는 해명하겠다며 문을 열지 않았다. 비서가 한 번 그의 의사를 물어 왔다.“이사회가 부르면 사실관계만 답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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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 폐업한 장인의 증언

“녹음기부터 끄시오.”김문호는 공방 문을 반만 열었다. 유리에는 압류 딱지가 붙어 있었고, 안쪽 선반은 텅 비어 있었다.“해원에 들키면 내 집까지 넘어가.”나는 기록 담당자에게 장비를 끄게 했다.“오늘은 증언을 받으러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먼저 선생님이 처한 조건을 듣죠.”건우도 문밖에 멈춰 물었다.“센터 직원으로 동석해도 되겠습니까?”노인은 그의 얼굴을 알아보고 비웃었다.“태림 아들이 빚을 해결해 주겠다는 거요?”“제 돈으로 입을 사러 온 게 아닙니다. 동의하시면 채무조정 절차만 설명하겠습니다.”김문호는 한참 뒤 문을 열었다. 공방 안에는 오래된 프레스와 불에 그슬린 작업대 하나만 남아 있었다.그가 내 반지를 보며 말했다.“그 문양도 지안 씨가 그린 거요.”“어머니와 코드를 만드셨습니까?”“내가 금속 인장과 일련 틀을 만들었지. 지안 씨는 물건을 팔고 끝내면 안 된다고 했소. 만든 사람, 고친 사람, 거쳐 간 손까지 남겨야 한다고.”그는 먼지 쌓인 장부를 펼쳤다. 나침반의 네 방향마다 숫자를 배치하는 규칙이 적혀 있었다. 루미에르 패스포트의 원형이었다.“이 필체를 확인하는 진술을 해 주실 수 있습니까?”“말했잖소. 내 빚부터 보라고.”김문호가 내민 독촉장은 해원캐피탈의 것이었다. 원금은 오천만 원인데 연체 이자와 장비 위약금이 세 배로 불어 있었다. 증언이나 언론 접촉을 하면 담보권을 즉시 실행한다는 특약까지 붙었다.재하가 계약서를 읽고 표정을 굳혔다.“증언을 막는 조항은 무효로 다툴 수 있습니다.”“다투는 동안 난 길바닥에 나앉아.”“그래서 법원 채무조정과 담보 집행정지를 같이 신청해야 합니다.” 건우가 말했다.“누가 비용을 대지?”“센터의 공동기금입니다. 태림이나 서 대표와 관계없는 공익 기금이고, 증언 여부를 묻지 않습니다.”김문호는 믿지 않았다. 나는 건우에게 그 자리에서 약속하지 말라고 했다.“선생님 사건이 지원 기준에 맞는지 심사부터 받아야 합니다.”“당신 어머니 종이를 가진 사람인데도?”“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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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 도움의 값을 묻다

“오늘 증언은 하지 않겠소.”김문호는 기록실에 들어오자마자 말했다. 집행정지는 이미 접수됐고 해원은 담보 처분을 멈춘 상태였다.모두가 내 반응을 기다렸다.“알겠습니다.”나는 녹음 시작 버튼에서 손을 뗐다. 그의 옆에는 그가 직접 고른 변호사가 앉아 있었다.“채무조정도 취소할 거요?”“아니요. 증언과 별개입니다.”“내가 영원히 입을 닫아도?”“지원 기준을 충족했다는 결정은 바뀌지 않습니다.”김문호는 건우를 바라봤다.“센터장은 어쩔 거요? 서 대표에게 쓸모없는 사람이 됐는데.”건우가 차분히 답했다.“선생님은 서 대표에게 쓸모를 증명할 의무가 없습니다. 센터 결정은 외부 위원회가 내렸고 저도 뒤집을 권한이 없습니다.”“둘이 미리 맞춘 답 같군.”“확인하셔도 됩니다.”나는 회복센터 규정과 심사 회의록을 내밀었다. 증언, 자료 제공, 태림과의 협조를 지원 조건으로 삼지 않는다는 조항이 선명했다.김문호의 변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철회해도 불이익을 줄 근거가 없습니다.”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도 붙잡지 않았다. 문 앞까지 간 그가 다시 돌아와 작은 나무 상자를 탁자에 놓았다.“이제야 지안 씨 물건을 맡길 수 있겠군.”상자 안에는 사진에서 본 나침반 인장이 있었다. 그슬린 것은 손잡이뿐이었고, 금속 면의 네 갈래 선은 살아 있었다.“증언하지 않으신다고 했잖아요.”“빚 때문에 하는 말인지 아닌지 나부터 확인한 거요.”그는 독립 변호사에게 새 진술 동의서를 달라고 했다. 언제든 철회할 수 있고, 채무조정에는 영향이 없다는 문장을 직접 적었다.누구도 재촉하지 않는 동안 그는 물을 마시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두 손은 여전히 떨렸다.“녹음해도 되겠습니까?” 기록 담당자가 물었다.“하시오.”김문호의 목소리가 떨렸지만 내용은 정확했다.“서지안 디렉터와 나는 루미에르 이력 코드를 함께 만들었습니다. 이 인장은 첫 시험품에 사용했고, 해원의 오리진 패스 등록보다 열일곱 달 앞섭니다.”“두 장의 도면도 보셨습니까?”“내 작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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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 윤세라의 빈 명함

“윤세라 전무가 루미에르 권리 협상을 맡았다고요?”해외 브랜드 준법책임자는 해원 보도자료를 보고 회의를 멈췄다. 세라는 우리보다 먼저 접속해 화면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다.그러나 그녀에게는 협상 권한 위임장조차 없었다.“제 명함이면 충분하지 않나요?”세라가 카메라 앞에 금박 명함을 들었다. ‘해원그룹 글로벌 원권리 협상 총괄’이라는 직함만 컸고, 법인명과 책임 범위는 빠져 있었다.나는 브랜드 측에 말했다.“태림은 제 권한을 등기와 이사회 결의서로 확인시켜 드리겠습니다. 해원 측도 같은 자료를 내면 됩니다.”세라가 웃었다.“이런 자리에서 서류부터 찾으니 협상이 늘 느린 거예요.”“그럼 기본 조건부터 확인하죠. 오리진 패스 라이선스의 지역 범위는 어디까지입니까?”“글로벌이죠.”“병행수입품의 권리 소진은 어느 법을 따릅니까?”“그건 실무팀이…….”“수선 이력이 누락됐을 때 보증 책임자는요?”세라는 옆을 봤다. 화면 밖 직원이 종이를 밀어 줬지만 질문에 맞는 답은 없었다.“세부 조항으로 본질을 흐리지 마세요.”브랜드 책임자가 표정을 굳혔다.“저희에게는 그 세부 조항이 본질입니다.”그는 세라에게 계약 해지 뒤 고객 이력을 누가 보관하는지도 물었다. 세라는 해원이 계속 관리한다고 답했다.“그럼 개인정보 국외 이전 동의가 없으면요?”“명품을 사는 고객이 그런 걸 거절하겠어요?”“전무님, 승인된 답변 범위가 아닙니다.”“내가 승인하는 사람인데?”“위임장에는 회장님 서명만 있습니다.”그 말로 빈 명함의 정체가 끝났다. 세라가 가진 것은 직함을 인쇄한 카드와 아버지가 골라 준 대사뿐이었다.나는 세라를 조롱하지 않았다. 답하지 못한 질문과 권한 없는 참석 사실만 회의록에 남겼다.세라는 준비한 문구를 빠르게 읽기 시작했다.“해원은 원권리자의 수익 ‘귀속율’을 보장하며 장인 공동 참여를…….”나는 펜을 멈췄다. 귀속률을 귀속율이라고 쓴 표기는 윤태성 비서실이 블루코스트에 보낸 옛 합의서와 같았다. 김문호가 제출한 문서에서만 발견된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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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 해원의 인수제안

“경영권 전부라니, 고용 보장의 값이 비싸군요.”윤태성은 내 앞에 앉자마자 계약서부터 펼쳤다. 악수도 없이 태림 의결권 위임 기한을 가리켰다.사흘 안에 서명하지 않으면 가처분을 끝까지 밀겠다는 조건이었다.“직원 이만 명을 생각하면 싼 값이지.”“이만 명이 어디에 적혀 있습니까?”그의 미소가 멎었다.“전 직원이라고 썼잖나.”“별지의 ‘인수 대상 법인 직접고용자’만 해당합니다. 협력사와 면세 계열사, 기간제까지 빼면 육천삼백 명이에요.”나는 다음 조항을 짚었다. 인수 뒤 ‘합리적 경영상 판단’이 있으면 보장 기간 안에도 인원을 조정할 수 있었다.“이 문장까지 두면 육천삼백 명도 숫자일 뿐입니다.”“경영자가 손발 묶고 회사를 운영하나?”“그러니 고용 보장이라는 표현을 빼세요. 구조조정 권한을 사겠다는 제안이라고 정확히 쓰시죠.”재하가 기록을 위해 계약서 조항을 읽었다. 윤태성은 녹음에 동의한 자리였지만 불편한 문장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세부 문구는 고치면 돼.”“그럼 고친 확약서를 먼저 보내셨어야죠.”“소송에서 지면 그 육천삼백 명도 못 지켜.”“패소가 확정된 것처럼 말하지 마세요.”그는 찻잔을 밀어 놓고 나를 훑었다.“외조부 돈으로 회사를 산 사람이 법을 너무 믿는군.”“아크가 태림 채권을 인수할 때 유성의 공동투자 비율은 이십팔 퍼센트였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만든 펀드 실적과 투자자 동의였어요.”“결국 상속녀라는 간판이 문을 열었지.”“회장님은 따님 명함의 문도 직접 열어 주시던데요.”나는 세라 이야기를 더 끌지 않았다. 실력 없는 딸을 비웃는 것이 윤태성의 계약을 깨 주지는 않았다.대신 해원 채권 만기표를 꺼냈다. 다음 석 달 안에 돌아오는 단기채가 일조 이천억 원이었다. 오리진 패스의 해외 사용료를 담보로 발행한 채권도 두 개였다.“공시 전 자료를 어떻게 구했지?”“룩셈부르크 거래소에 영문으로 공시하셨습니다. 국내 투자자가 안 읽을 거라고 생각하셨나요?”윤태성의 손가락이 멈췄다.원권리 보증이 흔들리면 조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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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화 — 지켜 달라는 말

“대표님 차량을 따라온 차가 또 확인됐습니다.”경호팀이 익명 사진의 촬영 지점을 대조했다. 번호판을 바꾼 같은 승용차가 내 집과 회사 앞을 세 번 돌았다.그 사이 김문호에게는 ‘다음엔 손을 못 쓰게 하겠다’는 상자가 배달됐다.상자 안에는 부러진 모조 인장과 피처럼 보이는 붉은 물감이 들어 있었다. 감정 결과는 물감이었지만 위협의 뜻은 달라지지 않았다.“선생님을 안전 숙소로 옮길까요?” 내가 물었다.김문호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또 숨어 살라는 거요?”“강제로 옮기지 않습니다. 공방 경비를 늘리는 선택도 있어요.”“공방에 있겠소.”“그럼 경찰 순찰과 출입 기록 장치를 설치해도 될까요?”그는 그 조건에는 동의했다. 나는 증인 보호 신청서와 협박물을 수사팀에 넘겼다. 내 경호도 해원과 계약 이력이 없는 업체로 바꿨다.건우에게는 저녁 약속을 취소한다는 메시지를 쓰다가 지웠다. 혼자 정하고 통보하는 버릇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나는 전화를 걸었다.“오늘 루미에르 복원실에서 인장을 시험할 거예요.”“위협 때문에 시간을 바꿀 생각이야?”“경호팀은 내일 낮을 권했어요. 하지만 법원 제출 기한이 내일 오전이라 오늘 해야 해요.”“내가 뭘 하면 좋겠어?”그 질문 앞에서 잠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예전의 나는 지켜 달라는 말이 약점인 줄 알았다.“그날 곁에 있어 줘요.”건우는 곧장 가겠다고 하지 않았다.“경호 역할로, 아니면 연인으로?”“연인으로요. 경호는 전문가에게 맡길게요.”“어디까지 같이 있을까?”“복원실 안까지. 이동 경로와 출입 통제는 경호팀 지시를 따라요.”“오늘 밤 혼자 있지 않았으면 하는 뜻도 포함돼?”나는 잠시 생각했다.“작업이 끝날 때까지예요. 그 뒤에는 다시 물어봐 줘요.”“알겠어.”“왜 그냥 괜찮다고 말하지 않아요?”“내가 듣고 싶은 범위까지 넓혀 해석할까 봐. 당신이 정한 거리를 정확히 알고 싶어.”그의 조심스러움이 때로는 느렸지만, 그 느림 덕분에 내 부탁은 의무로 변하지 않았다.“그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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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 닫힌 금고의 목소리

“은채야, 이걸 듣는다면 내가 제시간에 말하지 못한 거겠지.”어머니의 목소리 뒤로 심한 잡음이 끼었다. 파일 파형은 중간부터 검게 끊겨 있었다.가처분 심문까지 남은 시간은 열두 시간이었다.“복구할 수 있습니까?”감정인이 원본에서 손을 뗐다.“사본으로 시도하겠습니다. 지금 들리는 부분부터 기록하시죠.”나는 재생을 계속해 달라고 했다. 건우의 손이 내 손을 감쌌지만 힘을 주지는 않았다.어머니가 천천히 말했다.“윤태성이 루미에르 이력 코드를 사겠다고 했다. 거절하자 장인들 공방부터 끊겠다고 했어.”김문호의 증언과 같은 시기였다.“그는 자기가 먼저 등록하면 내가 만든 것도 해원의 것이 된다고 웃었다. 원본을 넘기면 화재 손실을 덮어 주겠다고도 했지.”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최명희는 계약하라고 했다. 태림이 살려면 이름 하나쯤 포기하라고. 내가 거절하면 납품 장부 책임을 내게 씌우겠다고 했다.”건우의 손끝이 떨렸다.“잠깐 멈출까요?” 재하가 물었다.“아니요. 끝까지 들을게요.”건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다는 말로 어머니의 목소리를 덮지 않았다.녹음 속 어머니는 두 사람의 역할을 정확히 나눴다. 최명희는 태림 내부 장부와 화재 책임을 이용해 누명을 만들었고, 윤태성은 자료가 훔친 것임을 알면서 돈을 제시했다.“윤태성은 자기 비서가 가져온 흰 계약봉투를 내 앞에서 열었다. 거기에는 내가 김문호 선생과 만든 시험 인장 사진이 있었다.”“돈을 받으면 공동 창작자를 지우라고 했다. 받지 않으면 최명희가 가진 장부로 나를 횡령범으로 만들겠다고 했어.”“명희가 내 서랍을 열었다. 도면을 해원에 넘길까 두렵다. 윤태성 비서는 벌써 등록 서류의 날짜를 비워 뒀어.”재하가 시간을 표시했다.“악의 취득을 입증하는 직접 진술입니다.”“어머니 목소리라는 감정도 필요해요.”“생전 인터뷰 원본과 대조하겠습니다. 편집 흔적 검사도 같이요.”나는 음성 전체를 제출하기로 했다. 우리에게 유리한 부분만 잘라 내면 어머니가 또 누군가의 주장에 맞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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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 첫 번째 패소

“가처분이 인용됐습니다.”서지안의 음성이 멎은 지 십 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재하가 내민 결정문 첫 장에는 해외 판매 임시 금지라는 문장이 선명했다.“두 번째 장을 찾을 때까지 버틸 수는 없다는 뜻이군요.”“재판부는 등록 시점을 우선했습니다. 해원의 오리진 패스가 십칠 년 먼저 등록됐다는 이유입니다.”나는 방금 들은 어머니의 마지막 문장을 떠올렸다.두 번째 장은 불 속에 없었다.없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 가져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손에는 그 한 문장을 뒷받침할 종이가 없었다.“즉시항고는 하겠습니다.”“판매를 계속할 수 있나요?”“안 됩니다. 위반하면 하루 단위로 간접강제금이 붙고 본안에도 불리합니다.”“그럼 멈춰요. 오늘 출고분까지 전부.”재하가 나를 똑바로 봤다.“은채야, 이건 패배야.”“알아. 그래서 정확히 멈추는 거야.”나는 해외사업실과 물류 책임자를 불렀다. 이미 공항 보세창고로 향하던 트럭이 세 대였다.“봉인을 뜯지 말고 회수하세요. 브랜드에는 법원 결정문과 예상 일정을 같이 보내고요.”해외사업실장은 오늘 선적을 놓치면 위약금만 사십억이라고 했다. 그래도 법원 명령을 어기면 더 큰 것을 잃었다. 나는 직원들에게도 졌다는 사실부터 전하라고 했다. 설명은 내가 맡을 일이었다.비상회의가 열리자 재무팀은 가장 먼저 인건비 절감안을 띄웠다. 해외 매출이 막히면 석 달 뒤 운전자금이 위험했다. 계약직 삼백 명의 갱신을 미루자는 숫자가 맨 위에 놓였다.침해 소송을 일으킨 적 없는 사람들의 이름이었다. 재무팀은 현금부터 지켜야 한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지킬 현금의 순서를 바꾸죠.”나는 내 배당 예정액과 아크에 지급될 자문 수수료를 화면에 올렸다.“제 배당을 전액 유보합니다. 아크 수수료도 본안 판단 전까지 후순위로 돌리겠습니다.”“대표님 개인 몫으로는 부족합니다.”“알아요. 임원 성과급은 자진 동의만 받고, 협력사 대금은 손대지 마세요. 감축안은 마지막 순서입니다.”직원 몫을 남겨 두고 대주주가 먼저 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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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 싼값에 모인 적들

“사외이사 두 명이 해원 측 의향서에 서명했습니다.”재하가 합산표를 내려놓기도 전에 한 명이 비상회의 불참을 통보했다. 공개매수 방어안을 표결할 이사회부터 갈라지고 있었다.“의결권을 먼저 막아야 합니다.”준법팀은 해원과 여섯 법인이 공동 보유자라는 가처분을 오늘 신청하자고 했다. 표에 찍힌 합계는 십사 점 이 퍼센트였다.“입증 자료는요?”“대출 담보와 매수 시기가 같습니다.”“같은 것과 지시받은 것은 다릅니다.”“주총 뒤에 밝혀지면 늦습니다.”“근거가 약한 채 막았다가 풀리면 더 늦어요. 자금이 어디서 끝나는지 먼저 봅니다.”법인 이름은 제각각이었다. 온유문화재단, 세림물산, 동해성장투자. 태림과 무관한 척했지만 모두 주가가 낮았던 여섯 달 동안 조금씩 지분을 샀다.공시 기준 바로 아래에서 멈췄고, 매입일 다음 날마다 같은 은행에서 담보 설정이 이뤄졌다.“은행에 실소유주 확인 자료를 요구하죠.”“영장 없이는 거절할 겁니다.”“거절한 기록도 받으세요. 금융당국에는 공동행위 의심 신고를 넣고요.”나는 법인별 의결권을 막는 대신 질문서를 동시에 보냈다. 자금 제공자, 손실 보전 약정, 공개매수 참여 계약을 밝히라고 했다.답변 기한은 여섯 시간이었다. 섣불리 도망갈 틈도, 서로 말을 맞출 시간도 줄였다.재무담당이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정직하게 답할 거라고 보십니까?”“아뇨. 서로 다르게 거짓말하길 기다리는 겁니다.”첫 답은 한 시간 만에 왔다. 세림물산은 자체 자금이라고 했다. 그러나 첨부한 잔액증명서 발급번호는 동해성장투자의 것과 연속이었다.온유문화재단은 의결권 행사를 정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 시각 해원 홍보자료에는 ‘확보된 우호지분’으로 이미 포함돼 있었다.“이 정도면 공동 보유 아닙니까?”“의심은 충분해요. 자금 원천 한 줄만 더 찾죠.”나는 특별감사팀에 해원의 납품 계약까지 범위를 넓히게 했다. 지분을 산 법인들은 모두 지난 일 년 사이 해원 매장에 입점하거나 용역을 따냈다.가격은 시세보다 높았고 계약 해지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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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화 — 팔지 않는 직원들

“대표님이 들어오시면 투표를 연기하겠습니다.”직원주식신탁 위원장은 회의실 문을 막았다. 해원의 공개매수 마감은 이틀 뒤였고, 나는 직원 지분을 팔지 말라고 설득하러 왔다는 항의를 받고 있었다.“설득하러 온 게 아닙니다.”“대표님 얼굴 앞에서 팔겠다고 누를 직원은 없습니다.”그 말이 맞았다. 나는 가지고 온 자료 봉투만 위원장에게 건넸다.“해원 제안서 원문과 우리 현금흐름표입니다. 찬반 의견은 빼 달라고 법무 확인도 받았어요.”“그럼 설명은 누가 합니까?”“양쪽이 같은 시간 동안 하되 저는 빠지겠습니다.”“결과가 경영권을 바꿔도요?”“그래도 여러분 주식입니다.”나는 투표장 밖 구내 카페로 내려갔다. 직원들이 지나가다 나를 보고 말을 멈췄다. 누구도 어느 표를 눌렀는지 묻지 않았다.투표 링크는 외부 노무법인 서버에서만 열렸다. 사번 대신 일회용 번호를 썼고, 임원과 부서장은 참여 독려 메시지를 보내지 못하게 했다. 내 비서실에도 중간 집계가 공유되지 않았다.해원은 주당 삼십이 퍼센트의 프리미엄과 삼 년 고용 보장을 내걸었다. 태림이 당장 줄 수 없는 현금이었다.반면 내 자료에는 가처분이 길어질 경우 성과급 지연과 사업 축소 가능성까지 적혀 있었다. 안전한 쪽을 고르라고 말하기 어려운 표였다.해원의 보장문은 첫 장만 보면 단단했다. 세 번째 부속서에는 물류 통합, 점포 재배치, 외주 전환을 고용 보장의 예외로 뒀다. 직접 해고하지 않고도 사람을 밀어낼 수 있는 문장이었다.우리 계획은 더 초라해 보였다. 국내 판매 전환 비율과 확보한 운전자금, 버틸 수 있는 달 수를 적었다.한 시간 뒤 위원장이 다시 내려왔다.“해원 쪽 설명이 끝났습니다. 대표님께 사실 확인 질문만 받겠습니다.”“기록 담당자를 동석시켜 주세요.”투표장 앞에는 열두 명의 직원대표가 앉아 있었다. 화면에는 해원의 고용 보장 조항이 확대돼 있었다.“여기 ‘통합 뒤 중복 기능은 제외한다’고 돼 있습니다. 우리 중 누가 중복입니까?”“해원에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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