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 개장 테이프를 잘라 주십시오.”일 년 뒤, 루미에르관의 문 앞에서 나는 가위를 받지 않았다. 대신 화재 희생자 유족과 복원팀 막내 직원에게 양쪽 손잡이를 건넸다.“이 문은 제가 혼자 연 게 아니니까요.”금빛 테이프가 끊어지자 복원된 아치 너머로 햇빛이 쏟아졌다. 가장 먼저 보이는 벽에는 서지안의 원본 설계와 이름, 그 아래에는 화재 희생자들의 명패가 같은 높이로 놓여 있었다.기자가 물었다.“태림을 인수한 최종 목적을 이룬 겁니까?”“인수가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지워진 책임과 이름을 제자리로 돌리는 일이 목적이었어요.”“향후 경영권을 가족에게 승계할 계획이 있습니까?”“태림의 자리는 혈연이 아니라 검증된 절차로 정합니다.”새 전문경영인과 직원 대표가 내 옆에 섰다. 아크는 최대주주로 감시와 투자를 맡았고, 일상 경영은 독립 이사회가 책임졌다. 누구도 한 사람의 호의에 회사를 기대지 않았다.위조 상품 피해 고객에게는 보상이 모두 끝났고, 해고될 뻔했던 협력사 직원들도 새 공급망에 복귀했다. 루미에르의 첫해 수익 일부는 화재 안전기금과 신진 디자이너 지원에 쓰기로 했다.“서지안 이름을 브랜드로 만들려는 겁니까?” 한 기자가 물었다.“아니요. 이름은 소유물이 아닙니다. 지원 사업도 심사위원회가 독립적으로 운영합니다.”나는 어머니의 명예마저 내 권력을 장식하는 간판으로 쓰지 않았다.서문석은 어머니 사진 앞에 흰 꽃을 놓았다.“지안아, 네 딸이 나보다 낫구나.”“엄마가 들으면 당연한 소리라고 했을걸요.”외조부가 웃었다.“오늘 그 녀석도 왔느냐?”“초대했어요. 올지는 본인이 선택하고요.”건우는 행사가 거의 끝날 무렵 일반 초대객 출입구로 들어왔다. 태림 임원 배지도 수행원도 없었다. 그가 지난 일 년간 세운 협력사 회복센터 직원들과 나란히 서서 박수를 쳤다.우리는 일 년 동안 서른두 번 만났다. 미술관에서 시작해 시장 골목과 도서관, 서로의 일터 근처를 천천히 걸었다. 다툰 날에는 시간을 달라고 말했고, 다음 약속 시각을
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4 Leer má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