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 여기부터는 철거를 멈춰야 합니다.”루미에르관 지하에서 반쯤 뜯긴 벽이 검은 속살을 드러냈다. 현장소장은 도면에 없는 철문을 가리켰고, 나는 곧바로 안전모 끈을 조였다.“전 공정 중지하세요. 안에 있는 건 하나도 손대지 말고요.”“개장 일정이 사흘은 밀립니다.”“일정보다 증거가 먼저예요.”봉인 테이프에는 십칠 년 전 태림 시설관리팀 직인이 남아 있었다. 화재 뒤 폐쇄됐다는 제3창고의 기록보관실. 그런데 준공 도면상 그 방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재하가 장갑을 끼며 내 옆에 섰다.“법원 증거보전 절차가 끝날 때까지 개봉하면 안 돼.”“알아. 그래서 당신부터 불렀잖아.”두 시간 뒤 집행관과 감식팀이 도착했다. 철문이 열리자 탄 종이 냄새가 시간을 건너왔다. 안에는 열에 휜 방재함 세 개와 낡은 영상 저장 장치가 있었다.나는 발을 들이지 못했다. 불길 속에서 누군가 기침하던 소리, 손바닥을 찢던 뜨거운 철판의 감각이 되살아났다.“은채야.”재하가 낮게 불렀다.“괜찮아. 기록부터 확인해.”괜찮지 않았지만 물러서지는 않았다. 감식원이 방재함의 봉인 번호를 읽었다.“화재 당일 근무일지, 출입 카드 백업, 폐쇄회로 원본 테이프입니다.”“원본이라고요?”“복사본이 아니라 장비에서 자동 배출된 매체로 보입니다. 복구는 해 봐야 압니다.”나리가 은인이라고 주장할 때마다 사라졌던 바로 그 영상이었다. 사고 보고서에는 ‘열 손상으로 전량 폐기’라고 적혀 있었다.뒤늦게 내려온 최명희가 철문 앞을 막았다.“공사장에서 나온 폐기물에 무슨 호들갑이니?”“폐기물인지 증거인지는 감식 결과가 정합니다.”“루미에르 개장까지 망칠 셈이야?”“망가진 채 덮는 개장은 하지 않습니다.”그녀의 시선이 영상 장치에 꽂혔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놀람보다 두려움이 먼저 지나갔다. 나는 그 표정도 현장 기록 카메라에 남겼다.복구에는 하루가 걸렸다. 다음 날, 특별감사실 모니터 앞에는 나와 재하, 감식 책임자, 건우가 앉았다. 최명희 측 변호인도 참관했지
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4 Leer má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