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이십억, 새 여권, 그리고 면책 확인서.”폐업 호텔 옥상에서 백나리는 장부 위에 라이터를 올려놓았다. 야간 조명도 꺼진 난간 너머로 강바람이 몰아쳤지만, 나는 표시된 안전선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당신이 요구할 수 있는 건 수사 협조에 따른 감형 의견서뿐이에요.”“장부가 타도 그래요?”“사본은 있어요. 원본이 있어야 최명희의 지시와 당신의 증거인멸까지 완성될 뿐이죠.”나리는 당황한 눈으로 장부를 내려다봤다. 협상 상대에게 정보가 얼마나 있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금액부터 부른 사람의 표정이었다.나리는 그 장부가 있어야 내 혐의가 완전히 벗겨진다고 우겼다. 나는 이미 무혐의 발표가 났다는 사실부터 알려 줬다.그녀는 휴대전화 배터리가 꺼졌다는 변명을 중얼거렸다. 도주 계획도, 해외 계좌도 없이 옥상에서 이십억을 외친 이유가 고작 기사 몇 줄을 놓쳤기 때문이었다.나는 재하가 작성한 협조 계약서를 꺼냈다.나는 장부 원본과 관련 계정, 저장 장치를 제출하고 사실대로 진술하면 피해 회복에 협조했다는 의견을 전달하겠다는 조건을 읽었다.나리는 최명희 몫도 없애 줄 수 있느냐고 매달렸다. 먼저 버림받았다고 외쳤지만, 이용당한 사실은 책임을 지우지 못했다. 할 일은 자기 행위를 부풀리거나 빼지 않고 말하는 것뿐이었다.나리는 장부 첫 장을 손톱으로 긁었다.“언니는 왜 하나도 안 무서워?”“무서워요. 그래서 혼자 해결하는 척하지 않고 수사 절차를 밟았죠.”호텔 아래층에는 안전요원과 수사관이 대기했고, 난간 쪽 접근선도 미리 표시돼 있었다. 나는 영웅이 될 생각이 없었다. 증거를 온전히 돌려받는 것이 목적이었다.“면책은요?”“없습니다.”“그럼 내가 왜 해?”“안 해도 돼요. 당신 선택이니까.”나는 몸을 돌렸다. 나리가 다급히 라이터를 집어 들었다.“최명희가 시킨 증거가 여기 있어!”“구체적으로 말해요.”“먼저 돈부터.”“자금 출처 확인도 없이 현금을 받으면 출국장에서 바로 잡힙니다. 당신 이름으로 된 해외 계좌는 잔액이 사십칠만 원이고요
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4 Leer má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