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30

310 فصول

21.괜히 듣고 싶지 않은 말

월요일 오전. 송유지는 출근하자마자 바빴다. 주말 동안 쌓인 메일을 확인하고, 회의 자료를 정리하고, 팀장에게 수정안을 넘겼다. 정신없이 오전을 보내다 보니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휴대전화를 제대로 확인했다. 채도하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점심 먹어. 유지는 화면을 보고 피식 웃었다.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도하는 여전히 이런 식이었다. 다정하게 묻기보다 짧게 말하고. 챙겨놓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사람. 유지는 답장을 보냈다. —먹을 거예요. 몇 초 뒤 읽음 표시가 떴다. —진짜? 유지는 웃었다. —네. —사진 보내. 유지는 눈썹을 올렸다. —왜요? —안 믿겨서. 유지는 점심으로 받은 샐러드와 샌드위치 사진을 찍어 보냈다. 잠시 후 답장이 왔다. —이건 밥 아니잖아. —샌드위치인데요. —저녁 제대로 먹어. —또 잔소리. —응. 유지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도하와 이렇게 사소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너무 자연스러워지고 있었다. 그게 가장 문제였다. 오후 세 시쯤. 강현민에게 메시지가 왔다. —이번 주 금요일 저녁 시간 괜찮으세요? 유지는 한참 화면을 바라봤다. 현민과는 이미 몇 번 만났다. 좋은 사람이었다. 부담스럽지 않았고, 대화도 편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음 약속을 잡을 때마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좋아서 만나고 싶은 게 아니라. 만나도 되니까 만나는 느낌. 유지는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네. 괜찮아요. 곧바로 답장이 왔다. —좋아요. 이번엔 제가 장소 정할게요. 유지는 짧게 웃었다. 그 순간 책상 위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채도하였다. —금요일 약속 있어? 유지는 그대로 멈췄다. 시간이 묘했다. 방금 현민과 약속을 잡은 직후였다. 물론 우연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유지는 일부러 답장을 늦게 보냈다. —왜요? 읽음. 잠시 뒤. —그냥 물어봤어. 유지는 미간을 찌푸렸다. 또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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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기다린 적 없는데

금요일. 송유지는 퇴근 준비를 하면서도 이상하게 휴대전화가 신경 쓰였다. 오늘은 강현민을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그리고 채도하는 말했다. 늦어지면 연락하라고. 현민이 데려다줄 수도 있다고 했는데도. 그래도 연락은 하라고. 유지는 그 말을 떠올리다 스스로 웃었다. “왜 내가 신경 쓰고 있어.” 채도하가 자신을 챙기는 건 이제 익숙했다. 문제는 그 익숙함이었다. 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짧은 메시지 하나에도 요즘은 이유를 찾게 됐다. 도하도 알고 있다고 했다. 자신의 행동이 유지에게 신경 쓰이게 한다는 걸. 그런데도 멈추지 않았다. 왜일까. 유지는 그 질문을 애써 밀어냈다. 오늘은 현민을 만나는 날이었다. 다른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강현민은 오늘도 먼저 와 있었다. “오늘은 안 피곤해 보여요.” 유지가 웃었다. “지난번에 제가 그렇게 피곤해 보였어요?” “조금요.” “미안해요.” “왜 미안해요.” 현민은 자연스럽게 의자를 빼줬다. “오늘 즐거우면 됐죠.” 좋은 사람이었다. 유지는 다시 한번 그렇게 생각했다. 현민은 자신을 헷갈리게 하지 않았다. 좋으면 좋다고 말했고. 만나고 싶으면 약속을 잡았다. 무엇을 궁금해하는지도 분명했다. 채도하와는 달랐다. 둘은 저녁을 먹고 근처를 조금 걸었다. 현민이 말했다. “요즘 유지 씨한테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뭔데요?” “혹시 마음에 둔 사람 있어요?” 유지의 걸음이 아주 잠깐 느려졌다. “왜 그렇게 생각해요?” “가끔.” 현민은 웃었다. “저랑 있는데 다른 사람 생각하는 얼굴을 해서.” 유지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제가요?” “제가 틀렸으면 좋겠는데.” 현민의 말투는 부드러웠다. 책망하는 느낌도 없었다. 오히려 그래서 더 미안했다. 유지는 바로 부정하지 못했다. 현민도 그걸 알아차린 듯 더 묻지 않았다. “괜찮아요.” “현민 씨.” “아직 제가 물어볼 단계도 아니잖아요.” 유지는 입술을 깨물었다.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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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보고 싶지 않은 사진

토요일 오후. 송유지는 엄마와 약속한 카페로 향하면서도 전날 밤 일을 계속 떠올렸다. 아파트 앞에서 한 시간 넘게 앉아 있던 채도하. 기다린 게 아니라고 끝까지 우기던 사람. 그리고 자신이 말했다. 누군가 자꾸 신경 쓰인다고. 좋아하는 건지 아직 모르겠다고. 도하는 그 말을 듣고도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혹시 자신이냐고도. 그저. —잘 모르겠으면 급하게 결정하지 마. 그 말뿐이었다. 유지는 카페 문을 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내가 대체 뭘 기대하는 거야.” 엄마는 이미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여기.” 유지는 맞은편에 앉았다. “일찍 왔네.” “근처에 볼일 있어서.” 주문한 음료가 나오고 한동안 별것 아닌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러다 엄마가 휴대전화를 만지며 말했다. “아, 맞다.” “뭐?” “도하 소개해주려고 했던 사람.” 유지의 손이 멈췄다. 또 그 이야기였다. “왜?” “사진 보여줄까?” “나한테 왜 보여줘.” 대답은 빨랐다. 엄마가 눈썹을 올렸다. “왜 그렇게 정색해?” “정색 안 했어.” “궁금하지도 않아?” “안 궁금해.” 거짓말이었다.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화면을 몇 번 넘겼다. “도하한테도 보냈는데.” 유지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휴대전화로 향했다. “봤대?” “응. 사진은 봤대.” 21화에서 도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진만 보고 뭘 알아. 그때는 별 관심 없는 것처럼 말했었다. 엄마가 휴대전화를 유지 쪽으로 돌렸다. “괜찮지?” 보지 않으려고 했다. 정말 그럴 생각이었다. 그런데 결국 시선이 화면에 닿았다. 사진 속 여자는 단정한 인상이었다. 긴 머리. 차분한 미소. 잘 꾸민 사람. 그리고. 도하 옆에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여자였다. 유지는 바로 시선을 거뒀다. “괜찮네.” 말은 아무렇지 않게 했다. 하지만 가슴 한쪽이 묘하게 답답했다. “그렇지?” 엄마는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성격도 좋대. 직장도 괜찮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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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좋아하면 안 되는 사람

일요일 오후. 송유지는 소파 위에 놓인 검은 코트를 한참 바라봤다. 전날 채도하가 자신의 어깨에 직접 걸쳐준 코트였다. 집에 들어와 벗어놓은 뒤에도 이상하게 치우지 못했다. 그 사람의 향이 희미하게 남아 있어서였다. 유지는 결국 코트를 집어 들었다. “돌려줘야지.” 굳이 오늘일 필요는 없었다. 다음에 만나면 주면 됐다. 그런데도 이미 가방까지 챙기고 있었다. 유지는 현관 앞에서 잠시 멈췄다. 이제는 자신도 알았다. 핑계라는 걸. 코트를 돌려주러 가는 게 아니라. 채도하를 보러 가는 것이었다. 도하의 집 초인종을 누른 뒤에야 조금 후회가 됐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도하는 편한 티셔츠 차림이었다. 유지를 보자 눈썹을 조금 움직였다. “웬일이야?” 유지가 코트를 들어 보였다. “이거요.” 도하의 시선이 코트로 내려갔다. “다음에 줘도 되는데.” “계속 가지고 있기 그래서요.” “왜.” 유지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왜라니. 그 코트가 자꾸 눈에 들어와서. 향이 남아 있어서. 어젯밤 일이 계속 생각나서.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남의 옷이니까 그렇죠.” 도하가 코트를 받아 들었다. “커피 마실래?” 유지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안 바빠요?” “안 바빠.” “그럼 조금만.” 그렇게 또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은 지난번보다 많이 정리돼 있었다. 유리의 물건이 담겨 있던 상자도 절반 이상 사라져 있었다. 유지는 자연스럽게 주위를 둘러봤다. 그때 테이블 위에 놓인 도하의 휴대전화 화면이 잠깐 켜졌다. 알림이 하나 들어온 모양이었다. 화면 위로 엄마의 이름과 짧은 메시지가 보였다. —어제 말한 사람, 생각해봤니? 유지의 시선이 잠깐 멈췄다. 어제 엄마와 카페에서 봤던 여자 사진이 떠올랐다. 긴 머리. 차분한 미소. 도하 옆에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 보였던 여자. 유지는 바로 시선을 돌렸다. 도하가 주방에서 말했다. “커피 뭐 마실래?” “아무거나요.” “아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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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피하려고 했는데

월요일 아침. 송유지는 눈을 뜨자마자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채도하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일어났어? 평소라면 별생각 없이 답했을 말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손가락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어제까지와 달라진 건 하나뿐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버렸다는 것. 채도하를 좋아하고 있었다. 아직 사랑이라고 부를 만큼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다른 여자를 만난다고 생각하면 싫었고. 그의 연락을 기다렸고.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더는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래서. 오히려 전처럼 행동할 수 없었다. 유지는 한참 뒤에야 답장을 보냈다. —네. 곧바로 메시지가 왔다. —출근 준비해? —네. —아침은? 유지는 화면을 바라보다 짧게 답했다. —먹을게요. 잠시 후. —먹을게요 말고 먹었냐고. 평소라면 웃었을 것이다. 또 잔소리한다고 답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회사 가서 먹을게요. 그리고 휴대전화를 내려놨다. 더 답장이 오기 전에 욕실로 들어갔다. 회사에 도착한 뒤에도 일부러 휴대전화를 보지 않았다. 메일을 확인하고. 회의 자료를 정리하고. 평소보다 더 일에 집중했다. 그런데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할수록 이상하게 더 또렷해졌다. 휴대전화가 한 번 울릴 때마다. 혹시 도하인가 싶었다. 결국 점심시간이 되기 직전 화면을 확인했다. 채도하. —바빠? 한 시간 전 메시지였다. 그리고 그 아래. —점심은 먹어. 유지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이런 걸 좋아했던 것이다. 별것 아닌 말. 누구에게나 할 수도 있는 말. 그런데 자신은 그걸 하나씩 모아서 의미를 붙이고 있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도하에게는 정말 가족을 챙기는 일이면 어떡하지. 자신만 다른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거라면. 유지는 결국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뭐 봐?” 옆에서 나현이 물었다. 유지는 놀라 휴대전화를 뒤집었다. “아무것도.” “수상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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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대답하지 않은 이유

월요일 밤. 송유지는 집에 돌아온 뒤에도 채도하의 마지막 질문을 떨쳐내지 못했다. —나 때문이야? 그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라고 하면 됐다. 평소처럼 웃으면서 넘길 수도 있었다. 그런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도하를 좋아한다는 걸 알아버린 뒤 처음 마주한 질문이어서였을까. 아니면. 거짓말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 유지는 침대 위에 휴대전화를 던졌다. “미쳤어.” 대답하지 않은 게 더 이상했다. 도하라면 눈치챘을 것이다. 자신이 왜 갑자기 거리를 두려고 했는지. 왜 그의 연락 하나하나에 예민해졌는지. 그런데 헤어지고 한 시간이 넘도록 도하에게서는 아무 연락도 없었다. 평소라면 벌써 왔을 시간이었다. —집에 도착했어? —저녁은? 적어도 둘 중 하나는 왔을 텐데. 유지는 휴대전화를 뒤집었다. 보지 않기로 했다. 십 분쯤 지나 다시 확인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 자신이 먼저 말했다. 연락하지 않아도 된다고. 예전처럼 지내자고. 도하는 그 말을 들어준 것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정말 연락이 없으니 마음이 허전했다. 유지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답이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알람을 끄자마자 또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알림은 여러 개였다. 회사 단체방. 쇼핑몰 광고. 나현의 메시지. 채도하는 없었다. 유지는 화면을 끄려다 다시 켰다. 메신저를 열었다. 도하와의 대화창은 어젯밤 그대로였다. 자신이 먼저 연락하면 되잖아. 손가락이 입력창 위에서 움직였다. —일어났어요? 썼다가 지웠다. —어제는 잘 들어갔어요? 이것도 지웠다. 결국 아무것도 보내지 못했다. 자기가 거리를 두자고 해놓고 하루도 못 버티고 연락하는 건 너무 우스웠다. 회사에서도 집중이 잘되지 않았다. 오전 열한 시가 조금 넘었을 때 나현이 의자를 끌고 왔다. “왜.” 유지가 먼저 물었다. “너 오늘 휴대전화 몇 번 보는지 세어볼까?” “안 봤거든.” “방금도 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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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멀어지는 게 더 어려워서

화요일 저녁. 송유지는 퇴근 준비를 하면서도 자꾸 휴대전화를 내려다봤다. 채도하와의 마지막 대화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퇴근하면 연락해. —네. —저녁 꼭 먹고. —또 시작이네요. —네가 먼저 연락했잖아.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지막 문장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네가 먼저 연락했잖아. 맞았다. 거리를 두겠다고 한 건 자신이었다. 그런데 하루도 제대로 버티지 못하고 먼저 연락한 것도 자신이었다. 유지는 가방을 들었다. “송유지.” 나현이 옆에서 불렀다. “왜.” “오늘은 표정 좀 괜찮네.” “내 표정이 뭐.” “어제는 세상 끝난 사람 같았거든.” 유지는 피식 웃었다. “그 정도는 아니었어.” “연락 왔지?” “……응.” “역시.” 나현이 가방을 어깨에 걸쳤다. “근데 너.” “응?” “내가 떨어져 있어 보라고 한 건 그 사람 반응 보라고 한 말 아니야.” 유지가 걸음을 멈췄다. 나현이 말했다. “네 마음부터 보라는 거였어. 그 사람이 쫓아오는지 안 오는지 시험하지 말고.” “시험한 거 아니야.” “알아. 근데 너 지금 그 사람 행동 하나하나로 답 찾으려고 하잖아.” 유지는 부정하지 못했다. 연락하면 왜 연락하는지 궁금했고. 연락하지 않으면 왜 하지 않는지 궁금했다. 자신을 챙기면 의미를 찾았고. 조금이라도 멀어지면 서운했다. 나현이 한숨처럼 웃었다. “그냥 네 마음만 생각해.” “그게 제일 어려워.” “왜?” 유지는 잠시 망설였다. “내 마음만 생각하면 너무 쉬워져서.” “뭐가?” “좋아한다고 인정하는 거.” 나현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유지는 먼저 시선을 피했다. 말하고 나니 더 선명해졌다. 이제는 정말 부정하기 어려웠다. 회사 건물을 나오자 찬 바람이 불었다. 유지는 코트 깃을 여몄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채도하였다. —끝났어? 유지는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 답했다. —네. 지금 나왔어요. 답장은 금방 왔다. —저녁은? 유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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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가까워진 만큼

집에 들어온 뒤에도 송유지는 한동안 현관 앞에 서 있었다.방금 전 자신이 한 말이 자꾸 떠올랐다.—도하 씨가 멀어지는 건 싫어요.왜 그렇게까지 말했을까.조금만 생각했으면 다른 말로 돌릴 수도 있었다.그런데 채도하가 자신의 앞에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보다 입이 늦었다.유지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며 휴대전화를 꺼냈다.메시지를 보내야 했다.도하가 분명 말했다.들어가면 연락하라고.—들어왔어요.보내자마자 답이 왔다.—응.유지는 화면을 보며 기다렸다.그게 끝이었다.“뭐야.”아까 그렇게 의미심장한 말을 주고받아 놓고.또 아무렇지 않은 척이었다.유지는 괜히 입력창을 눌렀다.—잘 가고 있어요?—응.—운전 중인데 답장해도 돼요?잠시 뒤.—신호야.유지는 피식 웃었다.—운전이나 해요.—네.딱딱한 ‘네’ 한 글자가 이상하게 웃겼다.휴대전화를 내려놓으려는데 다시 메시지가 왔다.—유지야.유지의 손이 멈췄다.—네?이번에는 답장이 조금 늦었다.—아까 한 말.심장이 조금 빨라졌다.유지는 침대 끝에 앉았다.—어떤 말이요?알면서도 물었다.—내가 멀어지는 게 싫다는 말.유지는 입술을 깨물었다.지금이라도 농담이었다고 할까.별 뜻 없었다고 할까.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왜요?한참 뒤.—아니야.유지는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또요?—뭐가.—말하다가 또 멈추잖아요.읽음 표시가 뜬 뒤에도 한동안 답이 없었다.그리고.—나도 그 말이 계속 생각나서.유지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그게 전부였는데.그 한 문장이 오늘 들은 어떤 말보다 오래 남았다.*수요일.유지는 평소보다 일찍 회사에 도착했다.커피를 들고 자리에 앉았는데 나현이 옆에서 빤히 바라봤다.“왜.”“너 어제 누구 만났지?”유지가 컵을 내려놓았다.“어떻게 알았어?”“얼굴.”“내 얼굴이 뭐.”“사람이 너무 티가 나.”유지는 괜히 모니터를 켰다.나현이 의자를 가까이 끌었다.“그 사람?”“응.”“뭐 했는데?”“밥 먹었어.”“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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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가까워지고 나면

목요일 아침.송유지는 눈을 뜨자마자 손가락부터 확인했다.어제 채도하가 붙여준 밴드가 그대로였다.종이에 조금 베인 것뿐인데.굳이 밴드까지 붙여줄 필요는 없었다.그런데도 떼고 싶지 않았다.유지는 한참 손가락을 바라보다 이불을 걷어냈다.“별걸 다.”혼잣말을 해놓고도 입가에는 웃음이 남았다.휴대전화를 집어 들자 도하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손 괜찮아?시간은 오전 일곱 시 십 분.유지는 화면을 보며 웃었다.—멀쩡해요.곧바로 읽음 표시가 떴다.—밴드 갈아.—이 정도에 밴드까지 또 붙여요?—응.—과보호예요.잠시 후.—싫어?유지의 손이 멈췄다.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 질문이었다.그런데 요즘 도하는 가끔 이렇게 대답하기 어려운 말을 했다.—그런 말 한 적 없는데요.답장을 보내고 나니 심장이 괜히 빨라졌다.도하에게서 짧은 답이 왔다.—알았어.그 두 글자가 이상하게 만족스러워 보였다.*점심시간.나현이 유지의 손을 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그 밴드는 뭐야?”“종이에 베였어.”“그걸 아직 붙이고 있어?”유지는 아무렇지 않은 척 물을 마셨다.“아침에 갈았어.”“왜?”“왜긴. 상처 나니까.”나현이 빤히 바라봤다.“채도하가 붙여줬지?”유지가 컵을 내려놓았다.“어떻게 알았어?”“네가 종이에 베인 거였으면 평소에는 휴지로 한번 눌러놓고 끝냈어.”“…….”“근데 지금 밴드를 저렇게 소중하게 붙이고 있잖아.”유지는 황급히 손을 테이블 아래로 내렸다.나현이 웃었다.“진짜 큰일 났다.”“뭐가.”“너.”“나 멀쩡하거든.”“응. 밴드 하나에 웃는 멀쩡한 사람.”유지는 대꾸하지 않았다.반박하기 어려웠다.*오후에는 일이 몰렸다.휴대전화를 볼 틈도 거의 없었다.세 시가 넘어서야 화면을 확인했는데 도하에게서 메시지가 세 개나 와 있었다.—점심 먹었어?한 시간 뒤.—바쁜가 보네.그리고 마지막.—끝나면 연락해.유지는 마지막 문장을 한동안 바라봤다.예전에는 그저 도하의 습관처럼 느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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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언니의 자리

토요일 오후.채도하는 약속한 시간보다 십 분 일찍 도착했다.송유지는 창문 아래에 세워진 익숙한 차를 보며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오늘 가는 곳은 부모님 집이었다.언니의 물건을 정리하러.평소 같으면 그냥 가족 일정이라고 생각했을 일이었다.그런데 오늘은 달랐다.도하와 함께 간다는 사실 때문에.유지는 거울을 한 번 더 봤다.굳이 신경 쓸 필요 없는 날인데도 옷을 세 번이나 갈아입었다.결국 가장 평범한 니트와 바지를 골랐다.“뭐 하는 거야.”스스로에게 말하고 가방을 들었다.*차에 타자 도하가 먼저 물었다.“밥 먹었어?”“먹었어요.”“진짜?”“왜 맨날 못 믿어요?”“네가 맨날 대충 먹으니까.”유지는 안전벨트를 매며 웃었다.“오늘은 진짜 먹었어요.”“뭐.”“김밥.”“한 줄?”“반 줄.”도하가 유지 쪽을 바라봤다.“봐.”“왜요.”“그게 먹은 거야?”“배 안 고파요.”“끝나고 밥 먹자.”“언제 끝날 줄 알고요.”“끝나면.”너무 자연스럽게 나온 말이었다.마치 오늘 일정이 끝난 뒤에도 둘이 함께 있는 게 당연한 것처럼.유지는 괜히 창밖을 바라봤다.“왜.”“아무것도 아니에요.”“또 그냥?”“그냥이라고 안 했어요.”도하가 작게 웃었다.그 웃음 때문에.오늘이 무엇을 하러 가는 날인지 잠시 잊을 뻔했다.*부모님 집 거실에는 상자가 여러 개 나와 있었다.어머니가 정리해둔 유리의 물건들이었다.옷.책.화장품.작은 소품들.유지가 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살아 있을 때는 별것 아니었던 물건들이.사람이 사라진 뒤에는 전부 흔적이 됐다.“왔어?”어머니가 주방에서 나왔다.“응.”어머니는 뒤따라 들어온 도하를 보며 말했다.“도하도 왔네.”“네, 어머니.”“내가 괜히 불렀나 싶기도 하고.”“아니에요.”도하는 평소처럼 대답했다.하지만 유지에게는 그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낮게 들렸다.어머니가 상자를 가리켰다.“유리 거야. 내가 계속 두고 있다가 이제 좀 정리하려고.”도하는 잠시 상자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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