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언니의 남편을 사랑하게 됐다의 모든 챕터: 챕터 11 - 챕터 20

23 챕터

11. 기다리지 않으려 했는데

금요일이 됐다. 송유지는 아침부터 괜히 시간이 신경 쓰였다. 오늘 저녁에는 강현민과 두 번째 약속이 있었다. 그리고 채도하는 말했다. 늦으면 연락하라고. 데리러 가겠다고. 유지는 그 말을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소개팅이 끝나는 시간까지 왜 신경 쓰는지. 왜 다른 약속까지 비워두는지. 그 이유를 자꾸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평범하게 준비했다. 평소보다 조금 단정한 원피스. 과하지 않은 화장. 딱 소개팅을 위한 모습. 거울 앞에 선 유지는 한참 자신을 바라봤다. 오늘만큼은 채도하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정말로. 현민은 약속 시간보다 먼저 와 있었다. “오늘도 예쁘시네요.” 유지는 어색하게 웃었다. “감사해요.” “지난번보다 덜 긴장하신 것 같아요.” “그래 보여요?” “네. 조금 더 편해 보여요.” 유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첫 만남보다는 편했다. 현민은 여전히 좋은 사람이었다. 말도 잘 통했고, 유지의 이야기를 잘 들어줬다. 식사를 하면서도 대화는 끊기지 않았다. “요즘 일 많이 바쁘세요?” “조금요.” “그래도 지난번보다 얼굴이 좋아 보여요.” “그런가요?” “좋은 일 있으세요?” 유지는 순간 멈칫했다. 좋은 일. 있었나. 머릿속에 채도하의 얼굴이 스쳤다. 유지는 바로 물을 마셨다. “그냥 요즘 잠을 좀 잘 자서 그런가 봐요.” 거짓말이었다. 오히려 요즘 잠은 더 늦게 들었다. 누군가를 자꾸 생각해서. 현민은 더 묻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그가 말했다. “다음에는 영화 볼까요?” 유지는 대답을 조금 늦게 했다. “네.” 또다시 다음 약속이 잡혔다. 싫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쁘지도 않았다. 현민이 좋은 사람일수록 마음이 더 복잡했다. 이 사람을 계속 만나면. 정말 괜찮아질까. 채도하를 덜 생각하게 될까. 유지는 자신도 모르게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아무 연락도 없었다. 그걸 본 순간 괜히 마음이 내려앉았다. “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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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괜히 기다린사람

토요일 아침.송유지는 평소보다 늦게 눈을 떴다.눈을 뜨자마자 어젯밤 일이 떠올랐다.강현민과의 두 번째 만남.그리고 약속이 끝날 시간에 맞춰 나타난 채도하.가족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목소리.좋은 사람 같다고 말하면서도 너무 빨리 결정하지 말라고 했던 말.네가 상처받을까 봐.유지는 이불을 끌어당겨 얼굴을 덮었다.“또 생각하네.”그만하려고 했다.그런데 생각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특히 마지막.진짜 그냥 늦어서 그런 거죠?그 질문에 도하는 분명 고개를 끄덕였다.응.그게 전부였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유지에게는 그 한마디가 완전히 믿기지 않았다.그렇다고 다른 의미가 있다고 확신할 수도 없었다.그게 더 답답했다.휴대전화가 울렸다.유지는 반사적으로 화면을 봤다.강현민이었다.—어제 잘 들어가셨어요?유지는 잠시 멈칫했다.—네. 잘 들어왔어요.곧바로 답장이 왔다.—다행이네요. 다음 주 영화도 기대할게요.유지는 화면을 바라봤다.현민은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자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도 숨기지 않았다.그래서 오히려 편했다.모호한 말도 없고.왜 신경 쓰는지 묻게 만들지도 않았다.그런데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유지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그때 다시 화면이 켜졌다.이번에는 채도하였다.유지는 바로 열지 않았다.괜히 기다렸던 사람처럼 보일까 봐.몇 초 뒤 메시지를 확인했다.—어제 많이 피곤했지?유지는 입술을 깨물었다.—괜찮아요.잠시 뒤.—오늘은 뭐 해?그 질문이 유난히 자연스러웠다.유지는 한참 고민하다 답했다.—별일 없어요.이번에는 읽음 표시만 뜨고 답장이 오지 않았다.유지는 화면을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그럼 왜 물어봐.”휴대전화를 던지듯 소파 위에 놓았다.그런데 십 분쯤 지나자 다시 메시지가 왔다.—그럼 집에 있어?유지는 눈썹을 찌푸렸다.—왜요?답장은 조금 늦었다.—그냥.또.유지는 작게 웃었다.—도하 씨는 진짜 맨날 그냥이네요.잠시 후.—그러게.그게 끝이었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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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방해하면 안 되잖아

송유지는 한동안 채도하의 마지막 메시지만 바라봤다.—방해하면 안 되잖아.짧은 문장이었다.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강현민이 와서 자리를 비켜준 것뿐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소개팅 상대가 찾아왔으니 자기가 더 있으면 불편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었다.그게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이었다.그런데 유지에게는 자꾸 다른 쪽이 떠올랐다.왜 그렇게 갑자기 나갔을까.왜 커피도 다 마시지 않고.왜 현민이 오자마자 표정이 굳었을까.물론 착각일 수도 있었다.요즘 자신이 채도하의 행동에 의미를 너무 많이 붙이고 있으니까.“유지 씨?”현민의 목소리에 유지가 고개를 들었다.“네?”“괜찮으세요?”“아, 네.”현민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조금 전까지 채도하가 앉아 있던 자리였다.유지는 그 사실이 괜히 신경 쓰였다.“갑자기 찾아와서 불편하셨죠?”“아니에요.”“진짜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현민은 쇼핑백을 열었다.“이거 좋아하신다고 했잖아요.”유지는 안을 들여다봤다.작은 케이크와 마들렌이 들어 있었다.“감사해요.”“지난번에 카페에서 이거 보시길래.”유지는 멈칫했다.“제가요?”“네. 한참 보시던데요.”유지는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다.채도하도 비슷한 말을 했다.먹고 싶은 게 있으면 계속 쳐다본다고.현민도 두 번 만났는데 그걸 봤다.그렇다면 도하가 자신을 유난히 많이 보고 있는 게 아닐 수도 있었다.그냥 자신이 생각보다 티가 많이 나는 사람일지도 몰랐다.그렇게 생각하자 조금 마음이 가라앉았다.“커피 드릴까요?”“좋죠.”유지는 주방으로 갔다.물을 끓이면서도 휴대전화가 신경 쓰였다.채도하에게 다시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왜 방해라고 생각했냐고.현민이 온 게 왜 도하에게 방해가 되는 상황이라고 느껴졌는지.하지만 묻지 않았다.그 질문을 하는 순간 자신이 너무 많은 걸 기대하고 있다는 게 드러날 것 같았다.--현민은 한 시간 정도 머물렀다.대화는 편했다.다음 주 영화 이야기도 했고, 최근 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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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연락하지 않았는데

화요일이 됐다.송유지는 아침부터 괜히 신경이 쓰였다.오늘 저녁에는 강현민과 세 번째 약속이 있었다.그리고 며칠 전 채도하와 했던 통화가 자꾸 떠올랐다.—이번에도 데리러 올 거예요?—필요하면.—제가 연락하면요?—응.—연락 안 하면?—그럼 안 가야지.너무 당연한 대답이었다.그런데 유지에게는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정말 연락하지 않으면 안 올까.그걸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그게 가장 위험했다.유지는 스스로에게 말했다.오늘은 연락하지 말자.정말로.*강현민은 오늘도 먼저 와 있었다.“이번엔 제가 늦을까 봐 일찍 왔어요.”유지가 웃었다.“항상 먼저 오시네요.”“기다리는 건 괜찮아요.”별것 아닌 말이었다.그런데 ‘기다린다’는 단어에 유지의 머릿속에 다른 사람이 떠올랐다.유지는 바로 메뉴판을 펼쳤다.“뭐 드실래요?”현민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세 번째 만남이라 그런지 처음보다 훨씬 편했다.서로 농담도 했고, 일 이야기 외에 가족이나 여행 이야기도 나왔다.“유지 씨는 가족이랑 친한 편이에요?”질문에 유지의 손이 잠깐 멈췄다.“네.”“형제는요?”“언니가 있었어요.”현민은 바로 표정을 조심스럽게 바꿨다.“있었어요?”유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지금은 없어요.”“아.”현민은 더 묻지 않았다.“죄송해요.”“괜찮아요.”유지는 웃었다.그런데 이상하게 가슴이 조금 답답해졌다.언니 이야기를 하면 채도하가 따라왔다.언니의 남편.형부였던 사람.그리고 이제는.자꾸 마음에 걸리는 사람.현민이 말을 바꿨다.“영화는 다음 주로 미룰까요?”“왜요?”“오늘 유지 씨 좀 피곤해 보여서요.”“아니에요.”“진짜 괜찮아요?”유지는 고개를 끄덕였다.“네.”현민은 더 묻지 않았다.그런 점이 좋았다.선을 넘지 않는 사람.묻고 싶어도 기다려주는 사람.유지는 잠시 생각했다.채도하도 그랬다.항상 한 번 물었다가 자신이 말하지 않으면 물러났다.그런데 왜 도하가 물러날 때는 서운하고.현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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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확인하고 싶은 마음

수요일 아침.송유지는 출근 준비를 하면서도 전날 밤 일을 계속 떠올렸다.연락하지 않았는데도 찾아온 채도하.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그리고 자신이 강현민의 차에서 내리는 걸 보고 있었다는 말.—잘 웃고 있길래.—다행이라고.그 말만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그저 자신이 잘 지내는지 확인한 것뿐일 수도 있었다.그런데 유지에게는 자꾸 다른 장면들이 이어졌다.소개팅이 끝나는 시간을 묻던 도하.현민을 다시 만난다고 하자 말수가 줄었던 도하.자신이 연락하지 않아도 결국 나타난 도하.그리고.다음에는 늦으면 그냥 연락하라고 하던 사람.유지는 거울을 보다가 작게 중얼거렸다.“진짜 모르겠네.”도하는 대체 무슨 마음일까.그저 가족이라서 신경 쓰는 걸까.아니면 자신처럼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걸까.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그래서 더 궁금했다.*점심시간.나현이 맞은편에 앉자마자 물었다.“소개팅 어땠어?”“괜찮았어.”“또 보기로 했어?”유지는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응.”나현이 눈을 반짝였다.“오, 그럼 잘되고 있는 거네?”“그런 건 아니고.”“세 번 봤으면 거의 그런 거 아니야?”유지는 물컵을 만지작거렸다.현민은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람을 몇 번 만났는지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머릿속에는 다른 사람이 있었다.“근데.”나현이 유지를 빤히 바라봤다.“너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뭐가?”“소개팅 얘기할 때.”유지는 순간 멈칫했다.“아니야.”“진짜?”“응.”나현은 잠시 유지의 얼굴을 보더니 어깨를 으쓱했다.“뭐, 네가 알아서 하겠지.”유지는 고개를 숙였다.자신도 알고 싶었다.지금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오후 다섯 시쯤.휴대전화가 울렸다.채도하였다.유지는 메시지를 확인했다.—오늘 늦어?짧은 문장이었다.유지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일부러.왜 그런지 자신도 몰랐다.어쩌면 반응을 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몇 분 뒤 두 번째 메시지가 왔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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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아무렇지 않은 척

목요일 아침.송유지는 눈을 뜨자마자 휴대전화부터 확인했다.알림은 없었다.정확히는 채도하에게서 온 연락이 없었다.유지는 화면을 잠시 바라보다가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당연하지.”어젯밤에는 잘 들어갔는지 확인했고.자라고 인사까지 했으니까.아침부터 또 연락할 이유는 없었다.그런데도 이상하게 허전했다.유지는 침대에서 일어나며 어제 통화를 떠올렸다.—왜 너한테 자꾸 신경이 쓰이는지.—나도 모르겠어서.그 말을 들었을 때는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그런데 마지막에는 또 이상한 뜻으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했다.도하답다면 도하다웠다.한 걸음 다가왔다가 두 걸음 물러나는 사람.유지는 세수를 하며 거울 속 자신을 바라봤다.“나도 아무렇지 않게 하면 되지.”별것 아니었다.도하가 신경 쓰인다고 말한 것뿐이었다.좋아한다고 한 것도 아니고.자신이 좋아한다고 말한 것도 아니었다.그러니까 평소처럼 하면 됐다.*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서였다.유지가 업무 메일을 확인하고 있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화면에 익숙한 이름이 떴다.채도하.유지는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 했다.그러고는 일부러 몇 초쯤 기다렸다가 메시지를 열었다.—점심 먹었어?유지는 화면을 보다가 피식 웃었다.어제 그렇게 애매한 말을 해놓고.오늘은 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밥부터 묻는다.—먹었어요.잠시 후.—뭐 먹었어?유지는 손가락을 멈췄다.예전 같으면 그냥 메뉴를 적었을 것이다.그런데 오늘은 괜히 시험해보고 싶었다.—비밀이요.읽음 표시가 떴다.한동안 답이 없었다.유지는 괜히 휴대전화를 한 번 뒤집었다가 다시 들었다.잠시 후 메시지가 왔다.—그래.딱 한마디.유지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그래?”그게 끝이었다.평소 같으면 제대로 먹었는지, 또 대충 때운 건 아닌지 한마디쯤 더 했을 텐데.유지는 괜히 기분이 이상해졌다.자신이 먼저 비밀이라고 해놓고.대답이 짧다고 섭섭해하는 것도 우스웠다.휴대전화를 내려놓으려던 순간 다시 메시지가 왔다.—커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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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잘됐다고 했잖아요

금요일 저녁.송유지는 퇴근 후 집 근처 카페에 앉아 있었다.노트북은 펼쳐놓았지만 화면은 한참 전부터 그대로였다.휴대전화에는 강현민과 나눈 메시지가 떠 있었다.—내일 여섯 시에 지난번 말씀드린 레스토랑 앞에서 뵐게요.—네. 내일 봬요.평범한 약속이었다.그런데 답장을 보내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웠다.내일 현민을 만나는 게 싫은 건 아니었다.그렇다고 기대되는 것도 아니었다.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채도하.어젯밤 자신이 먼저 집에 도착했다고 알려준 뒤부터 오늘 하루 동안 연락이 한 번도 없었다.유지는 휴대전화를 엎어놓았다.“왜 또 기다려.”그러면서도 몇 분 지나지 않아 다시 확인했다.아무것도 없었다.그때 카페 문이 열렸다.유지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그대로 멈췄다.채도하였다.도하도 유지를 발견했다.잠시 눈이 마주쳤다.유지는 괜히 자세를 바로 했다.“여긴 웬일이에요?”“근처에 볼일 있어서.”도하는 자연스럽게 맞은편에 앉았다.“혼자?”“네.”“저녁은?”유지가 헛웃음을 흘렸다.“또 시작이네요.”도하가 잠시 멈췄다가 웃었다.“안 물어보려고 했는데.”“뭘요?”“밥 먹었냐고.”“결국 물어봤잖아요.”“그러네.”도하는 테이블 위에 놓인 유지의 빈 컵을 바라봤다.“커피만 마셨어?”“아니요. 샌드위치 먹었어요.”“다행이고.”유지는 도하를 바라봤다.평소와 똑같았다.너무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어제 자신이 현민을 만난다고 말했을 때도.오늘도.정말 아무렇지 않은 걸까.“도하 씨.”“응.”“내일인 거 기억해요?”도하의 시선이 잠시 멈췄다.“뭐가?”유지는 눈을 가늘게 떴다.“진짜 몰라요?”도하는 대답하지 않았다.그 짧은 침묵만으로 충분했다.알고 있었다.유지는 괜히 컵을 만지작거렸다.“현민 씨 만나는 날이요.”“응.”“기억하고 있었네요.”“말했잖아.”“근데 모르는 척했잖아요.”“굳이 내가 먼저 말할 필요는 없으니까.”유지는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왜요?”“왜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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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토요일 오후.송유지는 거울 앞에 서서 귀걸이를 한 번 만졌다.평소보다 조금 신경 쓴 옷차림이었다.너무 꾸민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나온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정도.현민을 만나는 날이었다.유지는 가방을 들다가 휴대전화를 확인했다.아무 연락도 없었다.채도하에게서도.당연했다.어제 자신이 말했다.헷갈리니까 그런 말 하지 말라고.도하는 더 이상 붙잡지 않았다.잘 만나고 오라고까지 했으니까.유지는 휴대전화를 가방 안에 넣었다.“오늘은 진짜 신경 쓰지 말자.”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약속 장소에는 강현민이 먼저 와 있었다.유지를 발견한 현민이 웃었다.“오늘은 제가 먼저 왔네요.”“많이 기다렸어요?”“아니요. 한 오 분?”“그럼 다행이고요.”현민은 자연스럽게 레스토랑 문을 열어줬다.유지는 안으로 들어가며 가볍게 웃었다.편했다.현민과 있으면 어렵지 않았다.무슨 말을 해야 할지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됐고, 상대의 표정을 하나하나 읽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었다.그게 좋은 점이었다.“지난번에 파스타 좋아한다고 했죠?”“기억했어요?”“그 정도는 기억하죠.”유지는 순간 멈칫했다.기억.별것 아닌 단어인데 또 다른 사람이 떠올랐다.—오늘은 약속 없다고 했잖아.—그걸 기억해요?—기억나니까.유지는 바로 생각을 끊었다.“유지 씨?”“네?”“뭐 드실래요?”“아, 저는 이거요.”유지는 메뉴판을 가리켰다.현민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식사는 편안하게 이어졌다.현민은 회사 이야기를 했고, 유지는 적당히 웃었다.가끔 유리 얘기가 떠오를 때도 있었지만, 굳이 꺼내지 않았다.오늘만큼은 다른 생각을 하고 싶었다.“요즘 좀 괜찮아 보여요.”현민이 말했다.“제가요?”“처음 봤을 때는 계속 어딘가 신경 쓰는 얼굴이었거든요.”유지가 웃음을 멈췄다.“그랬어요?”“네.”현민이 물잔을 내려놓았다.“누구 기다리는 사람처럼.”유지의 손끝이 미세하게 굳었다.똑같은 말을 나현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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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그러면 안 되는 이유

일요일 오전. 송유지는 평소보다 늦게 눈을 떴다. 햇빛이 커튼 틈으로 길게 들어와 있었다. 휴대전화를 확인하자 알림은 몇 개 있었지만, 채도하에게서 온 메시지는 없었다. 유지는 화면을 한참 바라보다가 이불을 걷어냈다. 어젯밤 통화가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잘 안 되네. 그리고. —내가 그러면 안 될 것 같으니까. 그 말이 가장 신경 쓰였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게 뭘까. 자신에게 신경 쓰는 것? 현민을 신경 쓰는 것? 아니면. 그보다 더한 어떤 감정. 유지는 세면대 앞에 서서 찬물로 얼굴을 씻었다. “생각하지 말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늦었다. 도하가 하지 않은 말까지 자꾸 상상하게 됐다. 점심 무렵. 어머니에게 연락이 왔다. —오늘 저녁에 시간 되니? 도하도 온대. 유지는 메시지를 보고 한참 멈춰 있었다. 도하도 온다. 별것 아닌 문장이 심장을 괜히 빠르게 만들었다. —응. 갈게. 답장을 보내고 나서 유지는 옷장을 열었다. 평소 같으면 아무 옷이나 골랐을 텐데, 오늘은 괜히 몇 벌을 꺼냈다 다시 넣었다. 그러다 스스로 어이가 없어졌다. “엄마 집 가는데 뭘.” 결국 가장 평범한 니트를 골랐다.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저녁 여섯 시. 유지가 집에 들어갔을 때 도하는 이미 와 있었다. 거실에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던 도하가 현관 쪽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쳤다. “왔어?” 평소와 같은 목소리였다. 유지도 평소처럼 대답했다. “네.” 끝. 그런데 이상하게 어젯밤 통화 때문에 모든 게 다르게 느껴졌다. 도하가 물을 마시는 것도. 소매를 한 번 접어 올리는 것도. 자신을 잠깐 바라보는 것도. 전부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유지야.” 어머니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응?” “접시 좀 가져다줄래?” “아, 응.” 유지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릇을 꺼내는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도하였다. “뭐 찾으세요?”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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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아무렇지 않은 얼굴

일요일 저녁.송유지가 부모님 집에 도착했을 때, 채도하는 이미 와 있었다.거실 소파에 앉아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테이블 한쪽에는 그가 가져온 과일 상자가 놓여 있었다.유지는 현관에서 신발을 벗다가 잠깐 멈췄다.예상은 했지만 막상 얼굴을 보니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도하와 마지막으로 제대로 마주한 뒤 며칠이 지났다.연락은 했다.하지만 전처럼 자주 하지는 않았다.유지도 일부러 먼저 연락하지 않았고, 도하 역시 별다른 이유 없이 메시지를 보내지는 않았다.그래서 괜찮아진 줄 알았다.막상 마주 보니 아니었다.도하가 먼저 고개를 들었다.“왔네.”“네.”짧은 인사.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신경 쓰였다.“유지 왔니? 손 씻고 앉아.”주방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유지는 가방을 내려놓고 식탁 쪽으로 갔다.잠시 뒤 가족들이 자리에 앉았다.도하는 유지 맞은편이었다.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반찬을 더 꺼냈다.“도하 너 좋아하는 갈비 해놨어.”“많이 안 하셔도 되는데.”“뭘. 너 요즘 제대로 먹고 다니긴 해?”유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도하와 눈이 마주쳤다.그가 아주 미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유지는 곧바로 시선을 피했다.자신에게는 그렇게 밥을 먹으라고 잔소리하면서.정작 본인도 똑같았다.식사는 평범하게 시작됐다.회사 이야기.날씨 이야기.아버지가 요즘 시작한 운동 이야기.유지는 의도적으로 도하를 보지 않았다.그런데 신경을 안 쓰려고 할수록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더 잘 느껴졌다.컵을 드는 손.엄마 말에 가끔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잡채 접시가 비어갈 때쯤 아무 말 없이 접시를 유지 쪽으로 밀어놓는 행동까지.유지가 젓가락을 멈췄다.도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국을 먹고 있었다.“이거 왜 이쪽으로 줘요?”“좋아하잖아.”“도하 씨도 먹어요.”“난 됐어.”엄마가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도하는 예전부터 유지 먹는 건 잘 알더라.”유지의 손이 굳었다.도하도 잠깐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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