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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os los capítulos de 소문난 강제 결혼: Capítulo 31 - Capítulo 40

117 Capítulos

31화 불청객

 사진만 봤을 때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몇 장의 장면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도 우스웠고, 무엇보다 태호가 굳이 그런 식으로 행동할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둘을 한자리에서 마주하니 아침까지 붙들고 있던 확신이 흐려졌다. “처음에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요.” 한 박자 늦게 지안이 덧붙였다. “지금 보니까 잘 모르겠네요.” 태호에게서 대답이 돌아오기 전에 세림이 먼저 끼어들었다. “정말 오해야, 지안아. 이 일 때문에 확인할 게 있어서 온 것뿐이야.” 그런데 정작 지안의 신경을 건드린 건 세림이 아니었다. 자신이 왜 여기까지 왔는지는 뻔히 알면서 설명은커녕 오히려 기사를 믿느냐고 되묻는 태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의심한 쪽이 잘못이라도 되는 것처럼. 지안은 헛웃음과 비슷한 숨을 흘렸다. “제가 나가야 하는 상황인 거죠?”  “아니야, 지안아. 나 금방 갈 거라—”  “됐어.” 지안이 세림의 말을 자르며 손끝에 힘을 줬다. 더 듣고 있다가는 아침부터 애써 눌러두고 있던 말까지 전부 쏟아낼 것 같았다. “그럼 민 비서님이랑 얘기하겠습니다. 두 분 대화 나누세요.” 지안이 그대로 몸을 돌려 문 쪽으로 향하자 뒤에서 태호가 이름을 불렀다. “서지안.” 이름이 들리는 순간 걸음이 아주 조금 느려졌지만 지안은 끝내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가자 묵직한 문이 천천히 닫히며 두 사람의 모습까지 시야에서 가려졌다. 집무실 안에 남은 세림은 지안이 나간 쪽을 바라보다 슬며시 태호를 살폈다. 방금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분위기가 예상보다 훨씬 냉랭하다는 걸 확인하자 굳어 있던 입가도 조금씩 느슨해졌다. “지안이가 많이 화났나 봐요.” 세림이 조심스러운 척 운을 뗐다. 태호는 비식 웃으며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러게.” 라이터 불빛이 짧게 일렁였다. 태호가 불을 붙인 뒤 연기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덕분에 애기가 단단히 화났네.” 세림이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자 태호가 곧장 본론으로 넘어갔다.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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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아쉬운 며느리

 한영백화점 본점 명품관은 평일 오후에도 제법 붐볐다. 세림은 자신을 알아보고 허리를 숙이는 직원들에게 건성으로 눈인사만 건넨 채 전용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굳이 매장을 일일이 둘러볼 필요는 없었다. 연락만 해두면 신상품은 알아서 VIP 살롱으로 올라왔다.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자 브랜드 직원들이 준비한 가방과 구두를 차례로 꺼내 보였다. “이번 시즌 신상품 위주로 준비했습니다.” 직원이 새로 들어온 가방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 세림은 몇 초 보지도 않고 말했다. “별로.” “그럼 이쪽은 어떠세요? 이번에 국내에 소량만 들어온 제품인데—” 두 번째 가방까지 본 세림이 시큰둥하게 중얼거렸다. “요즘 신상 왜 이렇게 별로예요? 예쁜 게 하나도 없네.” 담당 직원은 다른 브랜드에서도 몇 점 더 준비해보겠다며 물러났다. 세림이 손을 휘휘 저어 보내고 있을 때 복도 건너편에서 여자의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내가 이걸 보여달라고 했어요?” “지난번에 분명히 말했잖아요. 새 상품 들어오면 연락부터 하라고. 여기는 고객 관리를 대체 어떻게 하는 거예요?” 직원이 연신 사과했지만 목소리의 주인은 좀처럼 화가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입고가 안 됐으면 다른 지점에서라도 가져와야지. 내가 누군지 몰라요?” 어지간한 VIP가 아니고서야 이 층에서 저렇게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은 드물었다. 대체 누구야? 궁금증을 못 이긴 세림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란이 나는 쪽으로 향했다. 복도를 사이에 둔 맞은편 살롱을 들여다본 순간 걸음이 멎었다. 강태호의 새어머니, 채유경이었다. 세림은 반갑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 안녕하세요. 혹시 저 기억하세요? 윤세림이에요.” 채유경은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이름을 듣자 금세 반색했다. “윤세림…… 아! 맞다. 한영 윤 회장님 손녀딸!” “하하, 네. 회장님께서 저 엄청 예뻐하시는데.” “맞아. 그이가 얘기하는 거 들었어요. 한영 쪽 손녀딸이 그렇게 괜찮다고.” 채유경은 반갑다는 듯 세림의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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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열 살 무렵이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늘 밤늦게까지 집에 머물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저녁이면 하나둘 집을 나가기 시작했다. 주방을 정리하던 아주머니도, 복도를 오가던 직원들도 해가 지기 전이면 가방을 챙겨 돌아갔다. 처음에는 지안도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사람들이 집 안을 오갔고, 엄마와 아빠 역시 며칠씩 집을 비우는 일이 드물지 않았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아주머니가 현관에서 구두를 신는 모습을 보던 지안이 문득 물었다. “아주머니, 엄마랑 아빠는요?” 가방을 챙기던 손이 잠시 멎었다. “두 분 다 미국에 가셨어요.” “미국?” 지안은 계단을 몇 칸 더 내려왔다. “왜요? 언제 갔어요?” “일이 있으신가 봐요.” “그럼 언제 와요?” 이번에는 대답이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지안은 그 침묵의 뜻도 모른 채 다시 물었다. “내일 와요?”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말도 없이 미국까지 가버렸다는 게 조금 서운했지만 엄마와 아빠는 원래 바빴고 출장도 자주 다녔다. 이번에도 며칠이면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사흘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두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조용하고 텅 빈 집에 혼자 남아 있으니 무서웠다. 그래서 거실과 복도에 있는 불을 모조리 켜두고 보지도 않는 텔레비전 소리를 크게 틀어놓았다. 방문도 닫지 않았다. 혹시라도 현관에서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뛰어나갈 수 있게. 실제로 자다가 벌떡 일어나 맨발로 계단을 내려간 적도 있었다. 대문 앞을 지나는 차 소리만 들려도 혹시 아빠가 돌아온 건 아닐까 싶어 창문에 붙어 한참을 내려다보곤 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고, 아빠의 번호를 누르면 대부분 비서가 대신 전화를 받았다.  - 네, 아가씨. “아빠 바꿔주세요.”  - 회장님께서 지금 회의 중이십니다. “그럼 끝나면 전화해달라고 해주세요.”  - 네, 그렇게 말씀드리겠습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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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도둑고양이

 지안은 말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원래도 썩 좋아하지 않는 계절이었다. 화려해지는 거리만 봐도 오래된 기억이 따라붙곤 했다. 그런 날이면 유난히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하필 오늘은 갑작스럽게 터진 일을 수습하느라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정신이 없었다. 이제는 잠깐이라도 머리를 식힐 시간이 필요했다. “하준 씨.” “네, 사모님.” “저 여기서 내려주세요.” 하준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여기서요?” “네. 조금 걷고 싶어서요.” “죄송하지만 그건 좀 어렵습니다. 부회장님께서 댁까지 모시라고 하셔서요.” 지안은 차창 밖을 바라본 채 조금 지친 목소리로 덧붙였다. “좀 답답해서 그래요. 잠깐 바람도 쐬고 싶고.” 하준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뻔히 알고 있었고, 백미러 너머로 보이는 지안도 평소보다 많이 지쳐 보였다. “……알겠습니다.” 차에서 내리자 서늘한 밤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지안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사람이 드문 보도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멀리 갈 생각은 없었다. 생각이 조금 가라앉을 때까지만 걷고 싶었다. 차 안에 갇혀 있을 때보다 찬 공기를 맞는 편이 오히려 숨쉬기 편했고, 적어도 지금만큼은 사람들의 말도, 기사도, 자신을 향해 쏟아지던 시선도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지안은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 발길이 닿는 대로 걸었다.*** 같은 시각, 태강그룹 부회장실. 늦은 업무 보고를 마친 도윤이 태블릿 화면을 정리하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덧붙였다. “사모님께서 아직 댁에 들어가시지 않았습니다.” 태호가 읽고 있던 자료에서 눈을 들었다. “어디 있는데.” “서한 본사에서 퇴근하신 뒤 중간에 내려달라고 하셨답니다.” “혼자?” “네. 하준이가 몇 번 말렸는데 잠깐 바람을 쐬고 싶다고 하셨답니다. 지금은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태호가 피식 웃었다. “지가 강아지야? 밤에 산책을 왜 해.” 도윤은 대답을 고르듯 잠시 머뭇거렸다. 태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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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뽑기방 데이트

 태호는 입구에 멈춰 서서 벽을 따라 늘어선 기계들 쪽으로 눈을 돌렸다. 투명한 상자 안에는 토끼며 곰이며 온갖 인형이 뒤엉켜 있었다. 알록달록한 조명이 천장과 바닥을 번갈아 물들이고, 집게가 움직일 때마다 전자음과 짧은 환호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그 사이에 선 태호의 무표정한 얼굴만 유독 딴 세상 사람처럼 떠 있었다. “……이걸?” 지안은 벌써 토끼 인형이 든 기계 앞에 붙어 있었다. “네. 저 여기 지나갈 때마다 꼭 해보고 싶었어요.” “저걸 왜 뽑아.” “귀엽잖아요.” “사면 되잖아.” 지안이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럼 재미없죠.” 태호의 시선이 기계 앞에 선 지안의 얼굴에 잠시 머물렀다. 유리 안의 토끼와 지안을 번갈아 보더니 한쪽 입꼬리를 틀었다. “왜 그렇게 봐요.” 지안은 곧장 손바닥을 내밀었다. “현금 있어요?” “너 돈 많다며.” “현금은 없는데요.” 태호가 헛웃음을 흘리며 코트 안쪽에 손을 찔러 넣었다. 가죽 지갑에서 지폐 몇 장을 뽑아 지안의 손바닥 위에 얹었다. “아주 당당하네.” 지안은 받은 지폐를 투입구에 밀어 넣었다. 버튼을 누르자 집게가 윙 소리를 내며 레일을 미끄러졌고, 지안은 유리창에 몸을 붙여 토끼 위로 집게를 끌어왔다. 첫 번째 집게는 귀 끝만 긁고 지나갔다. 두 번째에는 몸통을 제법 단단히 물었지만 출구 코앞에서 힘을 풀어 인형을 툭 떨어뜨렸다. “아, 거의 됐는데.” “떨어졌는데.” “알아요.” 세 번째 집게마저 허공을 긁고 올라왔다. 지안은 볼을 살짝 부풀린 채 유리 너머 토끼를 노려보다 옆으로 몸을 틀었다. “부회장님, 저거 뽑아주세요.” “싫어.” “왜요.” “네가 하고 싶다며.” “제가 했는데 안 되니까 그렇죠. 한 번만요. 진짜 딱 한 번.” 지안이 그의 소매 끝을 붙잡아 두어 번 흔들었다. “제발요. 제 소원인데…….” 태호의 입술 사이로 낮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한동안 주머니에 박아두었던 손을 빼낸 뒤 기계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비켜봐.” 지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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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선 넘는 인사

 밤 열한 시가 가까운 시각. 태강이 추진 중인 대형 개발사업을 두고 주요 협력사 대표들과 가진 저녁 자리는 네 시간을 훌쩍 넘겼다. 식사가 끝난 뒤에도 위스키 병이 몇 번이나 바뀌었고 태호 역시 상대가 권하는 잔을 대부분 받아 마셨다. 차에 오른 뒤 흐트러진 건 느슨하게 풀어둔 넥타이 정도였다. 희미한 술 냄새가 남아 있었지만 도윤의 보고가 시작되자 태호는 평소처럼 짧게 물었다. “그다음은.” 조수석의 도윤이 태블릿을 넘겼다. “내일 오전 전략회의 자료는 수정해서 올려두겠습니다. 그리고 서한 쪽에서 연락이 하나 왔습니다.” “뭔데.” “서한재단을 태강 쪽으로 넘기겠답니다.” 감겨 있던 눈이 천천히 뜨였다. “뭔 개소리야.” “정확히는 운영권 전반을 넘기는 방향으로 협의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애기가?” 서한재단은 지안이 제 손으로 만들어낸 곳이었다. 그걸 위해 자신과 결혼까지 받아들인 여자였다. 그걸 제 발로 내놓는다고? “아닙니다. 서정욱 회장님이 직접 지시하셨다고 합니다. 미국 지사에서 전달된 내용입니다.” 태호가 낮게 음, 하고 목을 울리더니 재킷 안쪽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애기는 뭐래.” “사모님 의견은 아직 전달받지 못했습니다.” 도윤이 태블릿을 덮으려다 말을 덧붙였다. “아, 그리고 사모님께서 지금 강 회장님 저택에 가 계신답니다.” 태호가 담배를 문 채 눈을 들었다. “애기가?” “네.” “거길 왜 가.” “채유경 사모님께서 직접 부르신 것 같습니다.” 태호가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턱 근육이 단단히 경직됐다. “또 무슨 지랄이실까.” 태호가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짓눌러 껐다. “차 돌려.” 조수석의 도윤이 어깨 너머로 돌아봤다. “부회장님, 이십 분 뒤에 경영진 회의가 있습니다.” “돌려.” 도윤이 잠시 태호를 확인하다 운전기사 쪽으로 턱짓했다. 기사는 더 묻지 않고 방향지시등을 켰다. 검은 세단이 다음 교차로에서 방향을 틀었다.*** 지안은 빈손으로 올 수 없어 나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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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술집 여자

“그런 여자요?” “적어도 사람한테 살갑게 굴 줄은 아는 여자.” 채유경은 별일 아니라는 듯 덧붙였다. “세림 양은 집에 들어오면 분위기라도 좀 달라질 것 같더라고.” 태호가 누구와 결혼하든 원래 채유경이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다만 세림은 달랐다. 자신에게 살갑고 강덕수에게도 예쁨받는 애라면 가까이 둬서 나쁠 건 없었다. “지안 씨도 알다시피 사랑 많이 받고 자란 사람들은 아무래도 다르잖아.” 이제야 갑작스럽게 인사를 오라던 이유를 알았다. 결국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지안은 내색하지 않았다. 그 무덤덤한 태도가 채유경의 신경을 은근히 긁었다. 어른 앞에서도 주눅 드는 기색 하나 없이 제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꼭 누구를 닮아 있었다. 강태호. 그 이름이 떠오르자 채유경의 심사가 뒤틀렸다. 태호 앞에서는 좀처럼 제 뜻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적어도 저 여자한테까지 밀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서지안 씨는 좀 의외였어.” “뭐가요?” “딸이 결혼했는데 부모는 얼굴 한 번 안 비치고, 양가끼리 인사도 없고.” 지안은 대꾸하지 않았다. “아무리 정략결혼이라도 그렇지. 보통은 부모가 먼저 나서지 않나?” 그 짧은 침묵을 채유경은 놓치지 않았다. “하긴.” 채유경이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받아본 적 없는 걸 남한테 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지안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퇴근까지 미뤄가며 찾아온 자리였다. 처음부터 환대까지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부모까지 들먹이는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이럴 거면 괜히 왔네.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안은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낮게 숨을 뱉었다. “말씀 다 하셨어요?” “뭐?” “좋은 얘기 나누면서 웃고 끝날 자리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이건 좀 심하시네요.” 채유경의 말끝이 서늘해졌다. “아니, 내가 뭐 틀린 말했어? 딸이 결혼했는데 얼굴 한 번 안 비추는 부모가 정상으로 보여?” “그렇게 따지면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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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바보 같은 짓

 낮게 떨어진 한마디에 거실 안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아니, 그게…….”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태호가 채유경 쪽으로 다가가자 그녀가 흠칫 뒤로 물러섰다. “얘가 먼저 말버릇을 그렇게 하잖아. 사람을 어떻게 모욕했는지 알아? 내가 가만히 있으려고 했는데 자꾸—.” “그래서 때렸습니까?” “나한테 먼저 싸가지 없게 구니까!” 태호의 얼굴에서 마지막 남은 여유마저 사라졌다. 한 걸음 더 거리가 좁혀지려던 순간 거실 안쪽에서 묵직한 고함이 터졌다. “내 집에서 이게 무슨 소란이야!” 강덕수였다. 셔츠 위에 카디건만 걸친 차림이었고, 뒤에는 비서가 몇 걸음 떨어져 따라오고 있었다. 강덕수의 시선이 세 사람을 훑었다. “뭐 하는 짓들이야.” 태호가 채유경 쪽으로 턱을 틀었다. “먼저 제 와이프 얼굴 이렇게 만든 사람은 저 사람입니다.” 그제야 강덕수의 눈이 지안에게 향했다. 한쪽 뺨에 선명하게 남은 자국을 확인하자 깊은 한숨부터 새어 나왔다. 하여간 나서지 말라고 했건만. 굳이 또 일을 만든 모양이었다. “쯧. 하여튼 일을 꼭…….” “아니, 회장님. 내가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 얘가 나한테 무슨 말을 했냐면—.” “방에 들어가!” 호통이 거실을 울렸다. “회장님, 그래도—” “내가 두 번 말해야 알아들어?” 채유경은 억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도 더 버티지는 못하고 태호와 지안을 번갈아 노려본 뒤 안쪽으로 사라졌다. 강덕수가 혀를 차며 태호를 돌아봤다. “강태호. 그래도 네 새엄마다. 좋든 싫든 예의는 지켜야 한다는 소리야.” “대접받을 짓을 해야 대접을 하죠.” 강덕수의 눈썹이 꿈틀했다. 저렇게 노골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아들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더구나 회의까지 제쳐두고 제 와이프 하나 데리러 여기까지 달려왔다. 도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나와.” 태호가 지안의 손목을 낚아채듯 잡았다. “…….” 뒤에서 강덕수가 무어라 더 말했지만 태호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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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지안이 휴대전화를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두 시. 이렇게 일찍 퇴근해본 게 얼마 만이더라. 서한재단에 서한호텔 업무까지 맡은 뒤로 야근은 거의 일상이 됐다. 지하주차장에 내려온 지안은 운전석에 앉고서야 난감한 얼굴로 앞을 바라봤다. 갈 곳이 없었다. 시동까지 걸어놓고 한동안 핸들 위에 손을 얹은 채 고민하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어디 가지.” 그러고 보니 이렇게 혼자 운전대를 잡은 것도 꽤 오랜만이었다. 태호가 수행팀을 붙여놓은 뒤부터는 어딜 가든 하준이 따라다녔고, 오늘도 마찬가지로 본사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하지만 일찍 퇴근한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직원용 출입구를 통해 내려온 덕에 모처럼 혼자 빠져나온 셈이었다. 그때 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 [어디야? 오랜만에 밥이나 같이 먹을래?] 정도현이었다. 뭐야. 내가 일찍 퇴근한 건 어떻게 알았대. 때마침 잘됐다 싶어 곧바로 메시지창을 열었다. [좋아. 나도 오늘 간만에 일찍 퇴근했어.] 몇 번의 메시지가 오간 뒤 지안은 휴대전화를 조수석에 내려놓고 액셀을 밟았다. 검은 차가 천천히 지하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병원 말고 밖에서 먹어도 되는데.” 도현이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두 사람이 있는 곳은 혜성병원 구내식당이었다. 처음에는 도현이 밖으로 나가자고 했지만 지안이 먼저 거절했다. 어차피 응급 콜이라도 오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돌아와야 할 게 뻔했다. “됐어. 응급 콜 신경 쓰여서 제대로 먹지도 못할 거면서.” 지안은 제 식판에 놓인 계란말이를 집어 먹었다. “괜히 멀리 나갔다가 뛰어오느니 여기서 먹어. 대신 커피까지 오빠가 쏴.” “당연히 그래야지. 귀하신 분이 오셨는데.” “여기 오빠보다 귀한 사람이 있나. 요즘 소아과 의사 없어서 난리라는데.” 지안이 입안 가득 음식을 넣은 채 웅얼거리자 도현이 픽 웃었다. “그런데 요즘 바쁘다더니 오늘은 왜 이렇게 빨리 퇴근했어?” “나? 황 실장님이 안색이 너무 안 좋다고 얼른 들어가래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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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감당할 수 있는 사람

 태호는 별다른 대답 없이 눈을 지긋이 감았다. 태강 입장에서는 운영권을 넘겨받는 쪽이 나쁠 게 없었다. 오히려 향후 사회공헌 사업과 대외 이미지까지 생각하면 훨씬 유리한 조건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안이 먼저 걸렸다. 자기 모르게 결정됐다고 하면 가만있을 성격도 아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문득 어젯밤 일이 떠올랐다. 새하얀 얼굴에 벌건 손자국이 박힌 걸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눈이 돌아갔다. 정신을 차렸을 땐 걱정은커녕 애한테 쓸데없는 말까지 쏟아낸 뒤였다. 태호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네가 전달해.” “예.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도윤은 짧게 인사한 뒤 집무실을 나갔다. 그리고 삼십 분쯤 뒤. 서정욱이 수행비서와 법무 담당자를 대동한 채 부회장실로 들어섰다. 태강 쪽에서도 도윤과 법무팀 실무자가 함께 자리를 잡으면서 테이블 위에는 미리 준비된 서한재단 관련 자료가 차례로 놓였다. 도윤은 자리에 앉는 서정욱을 잠깐 바라봤다. 지안이 누구를 닮았는지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곧게 뻗은 눈매와 가만히 있어도 어딘가 날카롭게 느껴지는 인상이 묘하게 닮아 있었다. 얼굴의 선은 달라도 사람을 쉽게 가까이 두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만큼은 부녀가 빼닮았다. 그런데 왜 자기 딸한테는 그렇게까지 냉정한 건지. 형식적인 인사가 짧게 오간 뒤, 서정욱은 별다른 사담 없이 곧장 서류를 펼쳤다. “서한재단 운영권 이전 건부터 말씀드리죠.” 태호의 시선이 잠깐 서정욱에게 머물렀다.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잡은 자리라면서도 지안의 안부는 한마디 묻지 않았다. “따님은 안 궁금하십니까.” “다 큰 딸 소식 알아서 뭐합니까.” 서정욱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받았다. 굳이 사사건건 확인할 나이는 지났다는 투였다. 태호의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가라앉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대답이었지만 굳이 티를 낼 생각은 없었다. “그렇군요. 넘어가시죠.” 그 한마디로 사적인 이야기는 끝났다. 서정욱이 턱짓하자 양쪽 법무 담당자들이 곧바로 서류를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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