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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소문난 강제 결혼: Chapter 1 - Chapter 10

117 Chapters

1화 강제 결혼

 “서지안.” 도윤의 걸음이 잠깐 흐트러졌다. “……서지안 이사님이요?” “어.” 대답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오늘까지 예정되어 있던 맞선은 모두 끝난 참이었다. 한영백화점 윤 회장의 손녀 윤세림을 비롯해 대신그룹을 포함한 몇몇 집안의 딸들까지. 그중 강덕수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한 상대는 단연 윤세림이었다. “하지만 회장님께서는 윤세림 씨를 가장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습니다. 한영 쪽에서도 긍정적인 분위기라고 하고요.” “됐고.” 서늘한 음성이 말을 끊었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예.” 엘리베이터 앞에 다다르자 도윤이 빠르게 호출 버튼을 눌렀다. 그래도 궁금했다. 몇 년을 곁에서 지켜봤지만 강태호가 여자를 두고 이렇게까지 단번에 결정을 내리는 건 처음이었다. “그럼 혹시…… 서지안 이사님으로 결정하신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태호는 슈트 바지 주머니에 한 손을 찔러 넣었다. “예뻐.” “……예?” 도윤의 눈이 순간 커졌다. “제일 예뻐.” 몇 시간 전 마주 앉아 있던 지안의 얼굴이 떠올랐다. 맑고 단정한 얼굴에 살짝 치켜 올라간 눈매. 얌전한 낯을 해놓고선 이 맞선에는 일말의 미련도 없다는 듯 굴던 앙큼한 태도까지. 제법 흥미로웠다. 다른 여자들은 하나같이 그와의 다음을 기대했다. 유독 서지안만이 오늘을 마지막이라고 확신하는 얼굴이었다. 도윤은 잠시 얼떨떨한 낯으로 태호를 바라보다 태블릿 PC로 시선을 내렸다. “그럼 서한 쪽에 먼저 연락하고 기사 준비할까요?” “아니.” 태호가 무심히 잘라 말했다. “그냥 바로 기사 띄워.” 도윤의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멈췄다. “……기사부터요?” 태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짙은 눈동자에 미묘한 흥미만 어렸다. *** 요란한 벨소리가 고요한 침실을 울렸다. 한 번. 두 번. 끊어질 만하면 다시 울렸다. “아…… 진짜.” 결국 이불 밖으로 손을 뻗어 한참을 더듬은 끝에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어젯밤 과음한 탓에 머리가 깨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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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원래 예쁜 여자한테 소문은 액세서리 같은 거죠

 전날 저녁. 한남동의 프렌치 레스토랑. 지안은 약속 시간보다 이십 분이나 일찍 도착해 있었다. 이번 맞선은 아버지 서정욱이 일방적으로 잡아놓은 자리였다. 상대가 태강그룹 부회장 강태호라는 사실도 며칠 전에야 비서를 통해 전해 들었다. 더 황당했던 건 자신이 유일한 상대조차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한영백화점 윤세림을 비롯해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집안의 여자들이 후보로 올라 있었다. 그 명단을 본 지안이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구색 맞추기. 어차피 자신이 선택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한 남자가 다가왔다. 강태호였다. 짙은 남색 슈트가 큰 체격을 따라 군더더기 없이 떨어졌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사람을 긴장시키는 묘한 압박감이 있었다. ……이거 쉽지 않겠는데. 기선을 제압해보려던 생각은 삼 초 만에 접었다. “많이 기다리셨습니까.” “아니요. 저도 방금 왔어요.” 태호가 맞은편에 앉았다. “주문은 편하신 걸로 하시죠.” “네.” 지안은 메뉴를 몇 장 넘겨보다 무난한 코스를 골랐다. 잠시 뒤 직원이 물러나자 테이블 위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부회장님은 평소에 어떤 음식 좋아하세요?” 먼저 입을 연 건 침묵을 견디다 못한 지안이었다. “가리는 건 없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서지안 씨는.” “저도…… 딱히 가리는 건 없어요.” 대답을 마친 지안은 잠시 맞은편의 태호를 살폈다. 사실 아까부터 궁금했던 게 하나 있었다. “그런데 제가 왜 맞선 후보인지 알고 계세요?” “저도 모릅니다. 근데 그건 왜 묻습니까?” “사실 제가 좀 알아봤거든요. 다른 후보들이요.” 태호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다들 어마무시하시던데. 제가 왜 거기에 껴 있는지…… 혹시 아버지가 돈을 막 엄청 찔러줬나 싶어서요.” “돈을 찔러줬다면 뭐가 달라집니까?” 지안이 잠시 고민했다. “달라질 건 없는데, 이젠 하다 하다 딸 팔아먹으려고 그러시는 건가 싶어서요…….” 평생 사랑이라곤 제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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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겁 먹은 토끼

 “주가는 어떻게 됐어요?” 전날의 기억에서 빠져나온 지안이 물었다. 민준이 태블릿 PC 화면을 몇 번 넘겨봤다. “기사 뜨고 나서 오전 장에서 강세로 출발했습니다. 태강이랑 서한이 전략적으로 손잡는다는 기대감이 붙은 것 같습니다.” “하, 미치겠네……. 많이 올랐어요?” “그룹 전체가 움직인 건 아니지만 서한호텔이랑 태강건설 쪽 거래량이 평소보다 확실히 늘었습니다.” 지안의 표정이 서서히 굳었다. “그럼 이게 오보로 밝혀지면…….” “일이 좀 커질 겁니다.” 민준의 목소리도 무거워졌다. “이미 관련 기사들이 계속 붙고 있습니다. 지금 와서 아니라고 하면 두 그룹 사이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억측까지 나올 수 있고요.” “…….” 지안이 관자놀이를 지긋이 눌렀다. 안 그래도 숙취 때문에 아픈 머리가 더 지끈거렸다. “회사에서는 아직 입장 안 냈죠?” “네. 제가 일단 홍보팀에 아무것도 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태강 쪽 확인이 먼저일 것 같아서요.” ***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 태강그룹 본사 앞에 멈췄다. 태강은 서한과는 회사 분위기부터 달랐다. 지안이 로비에 들어서며 주변을 둘러봤다. 절제된 공간 전체에 묵직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태강건설은 국내 건설업계 정상을 지키는 대기업이었다. 하지만 이름 앞에는 아직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오래된 꼬리표가 하나 붙어 있었다. 조직폭력배 출신 기업. 현 회장 강덕수가 젊은 시절 조직을 이끌었다는 사실은 워낙 유명했다. 지금은 아들 강태호가 경영 전면에 나서며 기업의 색이 많이 달라졌지만, 태강 곳곳에는 과거의 흔적이 조금씩 남아 있었다. 그리고 지안은 곧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됐다. 로비 한쪽에 서 있던 남자 둘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검은 정장. 큰 체격. 표정 하나 없는 험상궂은 얼굴. “서지안 이사님 맞으십니까?” “……네.” “모시겠습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지안과 민준이 나란히 굳었다. “……가, 가시죠.” 민준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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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강제 결혼

 남자가 문을 열어주자 지안은 저도 모르게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쫄지 말자. 짧게 마음을 다잡은 뒤 안으로 들어섰다. 집무실은 예상보다 훨씬 넓고 조용했다. 짙은 회색과 검은색으로 정돈된 공간에는 불필요한 장식 하나 없이 묵직한 분위기만 내려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태호가 있었다. 책상에 앉아 서류를 훑고 있던 그가 지안이 들어서자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오늘은 짙은 차콜 컬러의 스리피스 슈트 차림이었다. 베스트까지 흐트러짐 없이 갖춰 입은 모습이 삭막할 만큼 정돈된 집무실과 묘하게 잘 어울렸다. “앉아.” 태호가 턱끝으로 맞은편 소파를 가리켰다. 지안은 태연한 척 소파에 앉았지만 불안한 마음은 숨기지 못한 채 엉덩이만 살짝 걸터앉았다. 그러고 보니 제 몰골도 영 말이 아니었다. 서둘러 나오느라 화장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머리도 대충 묶은 상태였다. 지금은 술 냄새만 안 나면 다행이었다. 멀찍이 떨어진 책상 너머에서 태호가 잠시 이쪽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 다시 서류로 시선을 내렸다. 그 태도가 지안은 영 이해되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결혼 기사가 터졌는데도 조급한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서류를 넘기는 손길도, 무심한 낯빛도 지나치게 태연했다. 지금 애가 타는 건 나뿐인가? 지안이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왜 이렇게 한가하신 거예요?” 태호의 미간이 희미하게 좁혀졌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한가한 건 네 쪽 같은데.” 태호가 손에 들린 서류를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형식적으로나마 존댓말을 붙이던 사람이 이제는 아주 자연스럽게 말을 놓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반말 따위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지금 오보 기사가 났는데, 적어도 사과든 해명이든 먼저 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안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섰다. 가만히 앉아 있기엔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던 태호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책상 위에 내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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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애기가 감당은 되고?

“왜지?” “저랑 결혼하시는 게 부회장님한테도, 태강그룹에도 오히려 손해일걸요? 부회장님도 알고 계시잖아요. 저 소문 안 좋은 거.”  “소문은 예쁜 여자의 액세서리 같은 거라며.”  “…….” 지안의 입이 벌어졌다. 어제 레스토랑에서 제가 내뱉었던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되돌려준 것이다. “그, 그건 농담이었고요.”  “진지하게 들었는데.” 담담한 말씨와 달리 묘하게 사람을 놀리는 뉘앙스가 섞여 있었다. 망했다. 완전히 말려들었다. 당황한 지안은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려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한 번 꼬이기 시작한 말은 머리를 거칠 새도 없이 자꾸만 튀어나왔다.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결혼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잖아요. 부부가 되면 같이 살아야 하고, 또…….” 말끝이 흐려졌다. 태호가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자 지안은 외려 마음이 급해졌다. “그, 부부끼리는 뭔가…… 그런 것도 있을 거고. 근데 저는 그런 거 안 해봐서 잘 모르기도 하고…….” 말을 뱉고 나서야 지안은 제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 깨달았다. ……미쳤나 봐. 눈을 질끈 감았다. 차마 태호의 얼굴을 확인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그때 태호가 픽 웃고는 꼬고 있던 다리를 풀며 이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나랑 자려고?”  “네?!” 지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말을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건지. 정작 태호의 낯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얼굴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귀 끝까지 화끈거리는 게 느껴졌다. “아니, 그게 아니라…….” 다급하게 변명거리를 찾는데 태호가 한발 먼저 입을 열었다. “애기가 감당은 되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지안의 귓가를 울렸다. 애기라니. 아무리 열 살 차이가 난다고 해도 그렇지. 스물다섯이나 먹은 사람한테 애기라니. 조금 전 횡설수설했던 제 모습까지 떠오르자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저를 여자로 보는 게 아니라 그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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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한영백화점, 윤세림

부회장실을 나선 태호는 도윤과 함께 복도를 걸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느긋한 걸음이었지만 묘하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도윤이 옆에서 슬쩍 눈치를 살폈다. “서 이사님께는 잘 말씀하셨습니까? 아까 보니까 엄청 당황하셨던 것 같던데요.” 태호는 대답 대신 입매를 희미하게 풀었다. 결혼은 절대 못 한다더니 재단 지원 얘기가 나오자마자 망설임 없이 손부터 내밀던 모습이 떠올랐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셈이 빠른 애였다. 그 점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잘했어.” 짧게 답한 태호가 여유롭게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회장님께서 오늘 퇴근 후에 바로 들어오시랍니다. 아마 기사도 보고받으신 것 같습니다.”  “알아.” 아침부터 전화가 몇 통이나 와 있었으니 모를 리 없었다. 태호가 피곤한 듯 뒷목을 한 번 쓸어내렸다. “화가 꽤 많이 나신 것 같았습니다.”  “그러시겠지.” 강덕수가 그토록 공들였던 한영백화점 쪽 혼담이 보기 좋게 틀어졌으니. *** 비슷한 시각. 한영백화점 윤 회장 자택에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윤세림은 소파 앞에 선 채 잔뜩 성이 난 얼굴로 아버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빠가 분명히 그랬잖아!” 윤세림은 소파 앞에 선 채 잔뜩 성이 난 얼굴로 아버지를 노려봤다. “강태호 부회장이랑 나 거의 확실한 거라며. 근데 서지안이 뭐야?” 맞은편에 앉은 윤정환이 골치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눌렀다. “세림아. 아빠도 강 회장님께 연락드려 봤어. 그런데 강 회장님도 모르셨다더라.”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세림은 이번 혼담에서 자신이 가장 유력하다고 믿고 있었다. 실제로 강덕수도 그녀를 마음에 들어 했고, 두 집안 사이의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세림 자신도 태호가 꽤 마음에 들었다. 처음에는 집안에서 시키니 나간 맞선이었다. 하지만 직접 만나고 나서는 욕심이 생겼다. 말수가 적고 무뚝뚝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불편해하거나 선을 긋는 기색은 없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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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우리 언제 집 올 거야

 “그게 무슨 상관이십니까.”  “뭐?”  “집안일에 신경 쓰지 마시고, 그냥 아버지 돈이나 펑펑 쓰시면서 얌전히 사시죠.” 유경의 안색이 굳었다. 마치 이 집에서 제 위치가 어디인지 똑똑히 상기시키는 말이었다. “너, 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발끈한 목소리와 달리 기세는 이미 한풀 꺾여 있었다. 태호는 더 상대할 생각이 없는 듯 몸을 돌렸다. 유경이 뒤에서 급히 말을 보탰다. “아버지 안에 계셔. 엄청 화나셨더라. 저러다 쓰러지실까 걱정이야.”  “퍽이나 쓰러지시겠습니다.” 태호가 비식 웃었다. 강덕수는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기세만큼은 웬만한 장정을 눌렀다. 한때 조직의 우두머리로 수많은 사람을 거느렸던 사람답게,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주변을 숨죽이게 만드는 위압감이 아직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희끗한 머리와 깊어진 주름만 아니었다면 세월이 비껴간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무엇보다 성질머리까지 여전히 팔팔했다. 저 양반이 저 정도로 쓰러질 사람이었으면 진작 몇 번은 쓰러지고도 남았다. 태호는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서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똑똑. “들어와.” 문 너머로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태호가 문을 열었다. 강덕수는 넓은 책상 뒤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오늘 아침 기사가 출력된 채 놓여 있었다. 강덕수가 종이를 손끝으로 툭 밀었다. “이게 뭐야.” “잘 보셨네요. 서지안이랑 결혼하는 거 맞습니다.”  “내가 그걸 몰라서 묻냐!” 강덕수의 일갈이 서재를 울렸다. “네가 미쳤어? 서지안이랑 결혼한다고 기사를 먼저 내?” 태호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곤하다는 듯 넥타이 매듭을 느슨하게 풀었다. “적당히 하시죠.”  “뭐?”  “제 결혼입니다.” 강덕수의 눈매가 서늘하게 좁혀졌다. “맞선 보라 하셔서 바쁜 일정 겨우 쪼개가지고 봤고, 결혼하라고 하셔서 결혼도 하는데 도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이신 겁니까.”  “내가 윤세림이랑 결혼하라고 판을 다 짜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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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사랑 없는 결혼

아침부터 서한그룹 안이 온통 뒤숭숭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탕비실에서도, 사내 메신저에서도 온통 같은 이름이 오르내렸다. 서지안. 그리고 강태호. 오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서한그룹은 공식 입장을 냈다. 태강그룹과의 혼담은 사실이며 현재 양가가 구체적인 일정을 조율 중이라는 짧은 내용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확인 중’이라는 말만 반복하던 홍보팀이 하루 만에 입장을 바꾸자 사내는 더욱 술렁였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지안은 놀랄 만큼 태연해 보였다. 쏟아지는 연락은 진작 무음으로 돌려놓은 채 평소와 다름없이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쾅. 노크도 없이 집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지안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누군지 확인하기도 전에 알 것 같았다. “너 진짜 강태호랑 결혼해?” 역시나 윤준표였다. 준표는 서한그룹 대표이사이자 지안의 엄마인 윤서경 쪽 친척이었다. 서정욱이 해외에 머무는 동안 본사를 맡고 있었지만 경영 능력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유독 지안을 경계했다. 아무리 아버지에게 외면받는 딸이라 해도 결국 서한의 유일한 직계 자녀는 지안이었으니까. “기사 보셨잖아요.”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된 거냐고. 네가 어떻게 강태호를 꼬셔?” 그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고 손짓까지 커진 채 당장이라도 팔짝팔짝 뛸 기세였다.  “그러게요, 어떻게 했을까요.” “아니, 네가 뭐 볼 게 있다고 갑자기 강태호가 너랑 결혼을 해. 설마 잤냐?” 지안의 잇새 사이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받아줄 가치도 없는 말이었다. “아침부터 개소리 할 거면 좀 나가요. 내가 좀 피곤해서 오늘은 받아주기 힘들거든요.”  “너 진짜 뭐라도 해보려고 이러는 거야? 그렇다고 회장님이 너 봐주기라도 할 것 같아?” 지안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기대도 안 하고요. 그 회장님께서 먼저 맞선을 주도하셨네요. 하나뿐인 딸 아주 단물까지 쏙쏙 빼먹으실 생각인가 보죠.”  “아니, 회장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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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남의 와이프

 본사에서 오후 업무를 마친 지안은 리뉴얼을 끝낸 객실과 라운지를 최종 점검하기 위해 서한호텔로 넘어와 있었다. 마지막으로 스위트룸까지 둘러보고 나니 어느새 해가 제법 기울어 있었다. 업무를 모두 마친 지안은 고층 스카이라운지 앞을 천천히 걸었다. 통유리 너머로 저물어가는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빌딩 사이로 노을이 옅게 번지고, 라운지 안쪽에서는 저녁 영업을 준비하는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안은 별생각 없이 휴대전화를 확인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때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생각은 다 했어?” 지안의 걸음이 멎었다. 설마. 고개를 돌리자 몇 걸음 떨어진 곳에 태호가 서 있었다. 딥 네이비 슈트 차림의 태호는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지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텔의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모습이었다. “……부회장님?” 태호가 긴 다리로 성큼 다가왔다. “왜 그렇게 놀라.”  “아니, 갑자기 뒤에서 말하시니까 그렇죠.” 지안은 괜히 휴대전화를 손안에서 고쳐 쥐었다. 하루 종일 문자 하나 때문에 사람 신경 쓰이게 해놓고 정작 답은 없더니. 태호가 지안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내가 답장 안 해서 서운했어?” 지안의 눈이 동그래졌다. ……귀신인가. “전혀요? 제가 언제 서운해했다고 그래요.”  “표정에 다 써 있는데.”  “진짜 아니거든요.” 지안이 바로 받아치자 태호의 입가에 옅은 웃음기가 스쳤다. 태호는 오늘 오후 서한호텔 레스토랑에서 외부 업체와 미팅이 있었다. 일정이 끝나고 돌아가려던 참에 복도 끝에서 지안을 발견했다. 서류를 품에 끼고 직원과 무언가를 이야기하며 종종걸음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쪼그만 게 제법 열심히도 다니네. “근데 여긴 무슨 일이세요?”  “너 보러.” 지안이 잠시 말을 잃었다. 저런 말을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건지. 그러다 태호 뒤쪽에 서 있는 비서를 발견하고 눈을 가늘게 떴다. “……여기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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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사모님이 된 서지안

주말이 되자 지안은 약속대로 태호의 집으로 향할 준비를 마쳤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 순간 지안의 걸음이 우뚝 멎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본 순간 머릿속에 딱 한 가지 생각만 스쳤다. ……그냥 혼자 간다고 할걸. 지안은 뒤늦게 후회했다. 아파트 입구에는 검은 세단 네 대가 나란히 줄지어 서 있었다. 다행이라면 이른 시간이었고, 평소에도 단지 안에서 사람을 마주치는 일이 드물다는 정도였다. 외부 차량 출입도 까다로운 편이라 오가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하필 오늘은 그 드문 사람들의 시선마저 일제히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안은 괜히 제 차림을 내려다봤다. 오늘은 어차피 차만 타고 이동하면 된다는 생각에 편하게 나온 참이었다. 넉넉한 후드 집업에 트레이닝 팬츠, 운동화까지. 눈앞에 줄지어 선 검은 세단들을 보고 있자니 괜히 자신의 옷차림이 신경 쓰였다. ……좀 꾸미고 나올걸 그랬나. 그때 기다렸다는 듯 앞차의 문이 열렸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차례로 내리더니 지안을 발견하자 동시에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조용하던 단지 안에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안의 얼굴이 그대로 굳었다. 이 차림으로 저 사람들 사이에 서 있으니 영락없이 어디 끌려가기 직전인 사람 같았다. 그 틈에서 단정한 인상의 남자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안녕하세요. 사모님, 임하준입니다. 이 차 타시면 됩니다. 짐은 저희가 옮기겠습니다.” 사모님. 그 호칭까지 더해지자 주변의 시선이 한층 더 따갑게 느껴졌다. “……네.” 지금은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일단 여기서 사라지는 게 먼저였다. 지안은 아무렇지 않은 척 걸음을 옮겼지만 어느새 보폭이 빨라져 있었다. 거의 도망치듯 뒷좌석에 올라타 문을 닫고 나서야 후, 하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무조건 혼자 다녀야겠다. 굳게 다짐하는 사이 차가 부드럽게 출발했다. 창밖으로 익숙한 단지 풍경이 멀어졌다. 지안은 턱을 괸 채 줄곧 바깥만 바라봤다. 잠시 후. 운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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