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마물 연구원은 대공을 표본으로 삼았습니다: Chapter 21 - Chapter 30

55 Chapters

아홉 마리의 설표가 한 사람을 사냥했습니다

라그넬이 먼저 움직였다.아니.세레나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검은 마력이 폭발한 순간 그의 몸이 시야에서 사라졌고, 다음 순간에는 조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서 십여 미터나 떨어진 곳에 검은 잔상만 남아 있었다. 인간의 근육이나 마력 강화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속도였다.“오른쪽!”세레나가 외쳤다.콰앙—!라시엘이 몸을 틀었다.라그넬의 팔과 거대한 앞발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인간의 팔이라고 부르기에는 이미 형태가 너무 많이 무너져 있었다. 검은 털과 비늘이 뒤섞인 피부 아래에서 서로 다른 마력들이 꿈틀거렸고, 손끝에는 아르젠의 것보다 훨씬 길고 뒤틀린 발톱이 자라 있었다.라시엘의 거대한 몸이 옆으로 밀렸다.바닥이 길게 갈라졌다.“라시엘!”크르릉—!대답.세레나는 그 짧은 울음만으로도 알아들었다.괜찮다.정확히는.아직 괜찮다.“역시.”라그넬이 웃었다.“완성도가 다르군.”그가 라시엘에게 다시 달려들려는 순간.카시안이 옆구리를 물었다.콰득!라그넬의 몸이 휘청였다.노아와 마르가 동시에 반대편에서 덮쳤다. 시온은 다리를, 테오와 리안은 등을 노렸다. 엘렌은 정면으로 뛰어들지 않고 라그넬이 피할 방향을 막았다.세레나의 펜이 빠르게 움직였다.「개체별 역할 분담 존재.」「카시안—전면 제압.」「노아·마르—측면 압박.」「시온—하체 움직임 제한.」「테오·리안—후방.」「엘렌—퇴로 차단.」그리고.라시엘.세레나의 시선이 움직였다.그는 처음부터 라그넬의 목을 노리지 않았다.심장.정확히는.마물핵이 몰려 있는 가슴.“알아챘어요.”카른이 검을 든 채 세레나 앞을 지키며 물었다.“뭘 말입니까?”“전하도 보고 있어요.”“뭘요?”“마물핵.”세레나는 라그넬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전하는 마력생리학을 모르는데.”“연구원님 옆에 얼마나 있었는데요.”“그것만으로는—”말하다가.세레나가 멈췄다.그렇다.얼마나 있었지.자신이 밤마다 라시엘의 마력 흐름을 측정하고, 인간 회로와 마물핵의 충돌을 설명하고, 무엇이 변할 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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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은 백탑에 있었습니다

펜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이상할 만큼 크게 울렸다.딱.세레나는 그것을 곧바로 줍지 않았다. 시선은 여전히 라그넬에게 고정되어 있었지만, 머릿속에서는 방금 들은 문장들이 하나씩 분리되고 있었다.팔 년 전.백탑.로웬 브리엘.살아 있었다.그리고 R.B.를 없애려고 했다.가슴부터 반응했다. 당장이라도 라그넬의 멱살을 잡고 로웬이 어디에 있는지, 왜 살아 있으면서 돌아오지 않았는지, 자신을 그렇게 오랫동안 혼자 두고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묻고 싶었다.하지만 세레나는 손가락을 말아 쥐었다.그리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지금 자신이 들은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그넬의 증언이다.그것도 자신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증거.”라그넬의 눈썹이 올라갔다.세레나는 그제야 몸을 숙여 바닥에 떨어진 펜을 주웠다.“증거를 보여 주세요.”“내 말을 믿지 않는 건가?”“당연하죠.”즉답이었다.라그넬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방금 그렇게 놀라 놓고?”“놀란 것과 믿는 건 별개입니다.”세레나는 기록장을 펼쳤다. 손끝이 조금 떨렸지만 글씨는 흐트러지지 않았다.「라그넬 증언.」「1. 로웬 브리엘을 마지막으로 본 시점—8년 전.」「2. 장소—백탑.」「3. 로웬이 R.B. 제거를 시도했다고 주장.」그리고 마지막 문장에는 밑줄을 두 번 그었다.「검증되지 않음.」라그넬이 그것을 바라보다 낮게 웃었다.“정말 지독하군.”“칭찬으로 듣겠습니다.”“로웬도 그랬어.”세레나의 펜 끝이 아주 잠깐 멈췄다.하지만 이번에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계속 교수님 이야기를 꺼내서 저를 흔드셔도 소용없습니다.”“흔든다?”“네.”그제야 세레나가 라그넬을 바라봤다.“당신은 제가 교수님과 어머니 이야기에 약하다는 걸 알아요. 조금 전에도 그랬죠. 필요한 정보와 감정적인 정보를 일부러 섞어서 제가 질문하게 만들었습니다.”라그넬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다.“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제가 질문합니다.”“대답하지 않겠다면?”“괜찮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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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의 밤에 누가 있었습니다

라시엘은 열세 살의 밤을 기억하지 못했다.정확히 말하면, 그날이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열세 살.초겨울.월식증의 첫 증상이 나타났다.그 뒤로 청각이 예민해졌고, 후각이 달라졌으며, 열여덟 살에는 손톱과 이빨이 변하기 시작했다. 스물넷에는 처음으로 완전한 아르젠의 모습이 되었다.그 모든 순서는 기억했다.그런데 시작점만 없었다.“이상합니다.”세레나는 같은 말을 벌써 세 번째 하고 있었다.서쪽 연구실의 긴 탁자 위에는 라시엘의 어린 시절 기록이 연도별로 펼쳐져 있었다. 가문 의무관 기록, 기사단 훈련 일지, 시종장 기록, 북부성 출입 명부까지 가능한 것은 모조리 가져왔다.문제는.열세 살 겨울만 지나치게 깨끗하다는 것이었다.“이상한 게 뭐지?”라시엘은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세레나가 종이를 넘겼다.“기록이 없습니다.”“그게 이상한가?”“네.”즉답이었다.“전하는 에른하르트의 유일한 후계자였습니다. 열세 살이면 이미 검술 훈련과 후계 교육을 받고 있었고, 황실에도 정기적으로 성장 보고가 올라갔을 겁니다.”“그랬겠지.”“그런데 이 시기만 없습니다.”세레나가 손가락으로 날짜를 짚었다.“그해 10월 17일까지는 정상이에요. 검술 훈련 기록도 있고, 마력 검사도 있습니다. 당시 전하의 마력 수치는 평균보다 높지만 비정상 범위는 아니었습니다.”손가락이 아래로 움직였다.“그리고.”빈칸.“11월 전체가 없습니다.”라시엘의 눈이 가늘어졌다.“12월은?”“다시 있어요.”세레나는 다음 장을 펼쳤다.“하지만 이상합니다.”“또?”“12월 3일 기록부터 담당 의무관이 바뀌었습니다.”라시엘이 종이를 가져갔다.「에른하르트 소공작 건강 상태 양호.」「마력 회로 이상 없음.」「야간 수면 정상.」「특이사항 없음.」“거짓말이군.”라시엘이 말했다.세레나가 고개를 들었다.“왜 그렇게 생각하세요?”“열세 살에 처음 증상이 나타났다면.”그의 손가락이 마지막 문장을 짚었다.“특이사항 없음일 리가 없잖아.”세레나의 입꼬리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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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처음 만난 게 아니었습니다

처음이 아니었다.세레나는 그 사실을 이해하는 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북부 설원에서 피투성이가 된 검은 설표를 발견했던 날. 멸종했다고 믿었던 아르젠을 눈앞에 두고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먼저 움직였던 순간. 거대한 앞발을 붙잡고 상처를 살피고, 아무렇지도 않게 꼬리까지 잡아 놓고는 ‘까망이’라는 이름을 붙였던 그날.세레나는 그게 시작이라고 생각했다.라시엘도 그랬을 것이다.그런데 아니었다.열여덟 년 전.열세 살의 라시엘과.아홉 살의 세레나는 이미 만났다.그것도 우연이 아니라.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자리에서.“……처음이 아니었다고요?”세레나가 다시 말했다.질문이라기보다는 확인에 가까웠다.에블린은 대답하지 못했다. 거대한 설표의 모습으로 딸 앞에 앉아 있는 그녀의 보랏빛 눈이 흔들렸다.라시엘도 말이 없었다.세레나는 그를 돌아봤다.평소라면 차갑고 단단한 얼굴에서 무엇을 생각하는지 읽어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혼란.분노.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불쾌감.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시작점이라고 믿었던 기억 하나가 사실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세레나는 알 것 같았다.자신도 비슷했으니까.“엄마.”에블린의 귀가 움직였다.“처음부터 설명해 줘.”“세레나.”“괜찮아.”괜찮지 않았다.그래도 들어야 했다.“대신 하나씩.”세레나는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그리고 기록장을 펼쳤다.에블린의 눈이 그것을 보고 아주 조금 흔들렸다.“왜.”힘겨운 목소리.“왜 기록……해?”“나중에 내가 잘못 기억할 수도 있으니까.”세레나는 펜을 들었다.“그리고 엄마가 말한 것도 전부 사실이라고 바로 믿지는 않을 거야.”에블린의 눈이 커졌다.세레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엄마를 못 믿어서가 아니야.”한 번.“기억은 틀릴 수 있고, 엄마가 알고 있는 사실도 누군가에게 들은 정보일 수 있으니까.”에블린은 한참 딸을 바라봤다.그리고.아주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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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잊지 않는 방법

기억은 생각보다 사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다.세레나는 그 사실을 새벽 세 시가 넘어서야 깨달았다.누군가를 기억한다고 하면 보통 중요한 순간부터 떠올린다. 처음 만난 날, 목숨을 구한 날, 처음 손을 잡은 날, 입을 맞춘 날처럼 분명한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순간들.그런데 종이를 채운 것은 그런 것들만이 아니었다.「라시엘은 홍차에 설탕을 넣지 않는다.」「보고서를 읽을 때 오른손 검지로 책상 끝을 두 번 두드리는 습관이 있다.」「설표일 때 오른쪽 귀 뒤를 만지면 좋아하면서 아닌 척한다.」「사람일 때도 머리를 만지면 아주 조금 기댄다. 본인은 모르는 것 같음.」맞은편에서 펜이 멈췄다.“마지막 줄.”세레나가 고개를 들었다.“왜요?”“지워.”“싫습니다.”“세레나.”“사실인데 왜 지웁니까?”“사실이 아니야.”세레나는 잠시 라시엘을 바라보다 손을 뻗었다.그의 머리카락에 손끝이 닿기 직전.라시엘이 몸을 뒤로 뺐다.“뭐 하는 거지?”“재현 실험.”“안 기대.”“그러니까 확인해 보려고요.”“안 한다고.”“그럼 왜 피하세요?”“…….”“전하?”라시엘은 대답하지 않았다.세레나는 아주 진지하게 기록장에 한 줄을 추가했다.「자각한 상태에서는 피함.」“세레나.”“귀환자의 행동 특성 기록입니다.”“지금 기억을 보존하는 게 목적 아니었나?”“행동 기억도 기억입니다.”“편리한 말이군.”세레나는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연구는 원래 그렇습니다.”라시엘이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다 자기 종이로 시선을 내렸다.세레나는 슬쩍 몸을 기울였다.“뭐 적으셨어요?”라시엘이 손으로 종이를 가렸다.“보지 마.”“서로 확인하려고 적는 건데 왜요?”“다 적고.”“이상한 거 적으신 것 아닙니까?”“네가 할 말인가?”“저는 전부 객관적인 관찰입니다.”“‘키스한 뒤 내 얼굴을 오래 봤다’도?”세레나의 펜이 멈췄다.“……그걸 적으셨어요?”“기억이니까.”“지우세요.”“싫어.”“라시엘.”“사실인데 왜 지우지?”그대로 돌려받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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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져간 것은 당신의 기억이었습니다

빛이 닿는 순간.세레나는 가장 먼저 라시엘의 손을 찾았다.보이지 않았다.소리도 사라졌다. 성벽을 뒤흔들던 폭발음도, 기사들의 고함도, 로웬의 목소리도 한꺼번에 잘려 나갔다. 눈앞을 가득 채운 것은 희고 보랏빛이 섞인 빛뿐이었다.그런데.손은 있었다.꽉.라시엘이 세레나의 손을 잡고 있었다.“라시엘.”대답이 없다.“라시엘!”다시 불렀다.이번에는 아주 희미하게.“……세레나.”목소리가 들렸다.세레나는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제 이름 기억하세요?”잠깐 침묵.세레나의 심장이 철렁했다.“라시엘?”“이 상황에서 첫 질문이 그건가?”“대답하세요.”“세레나 브리엘.”숨.“스물일곱. 왕립 마물생태연구소 연구원. 고대 마물 생태학 전공. 멸종했다는 아르젠 하나 주워서 까망이라고 부른 사람.”“마지막은 필요 없습니다.”“중요한 기억이라며.”정상이다.세레나는 손에 힘을 줬다.“전하는요?”“라시엘 에른하르트.”“또.”“서른하나. 북부 대공.”“또.”“네가 좋아하는 남자.”세레나의 심장이.쿵.“……그건 제가 아직.”“내가 널 좋아하는 건 사실이잖아.”그렇다.정상.세레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은 똑같았다.“여기가 어디죠?”“성벽은 아닌 것 같군.”“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발밑의 감각이 이상했다.돌이 아니다.눈도 아니다.마치.아무것도 없는 곳에 서 있는 것 같다.세레나는 라시엘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다른 손을 앞으로 뻗었다.아무것도 닿지 않는다.“전하.”“응.”“마력 느껴집니까?”잠시.“네 것.”“그거 말고요.”“아르젠 핵도.”“외부 마력은?”“……있어.”“어디서요?”“전부.”세레나의 미간이 좁아졌다.전부.그 말이 맞았다.공간 전체가 마력이다.정확히는.회로 안쪽.“이건 전이 마법이 아닙니다.”“그럼.”“인식 공간.”세레나는 천천히 말했다.“아마도.”“아마도.”“확정할 자료가 없잖아요.”라시엘이 낮게 웃었다.그 소리를 듣자 이상하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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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라시엘 에른하르트입니다

『내 몸 돌려줘.』어린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귀로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세레나의 머릿속보다 더 깊은 곳, 심장과 마력 회로가 맞닿은 어딘가에서 직접 울리는 목소리였다.열세 살의 라시엘.열여덟 년 전 무너지는 인간 자아에서 떨어져 나와 아홉 살의 세레나에게 보관된 원본.그 아이가.깨어났다.“세레나.”현재의 라시엘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나 봐.”세레나는 고개를 들었다.검은 머리.은빛 눈.익숙한 얼굴.자신이 설원에서 처음 다시 만났던 사람.까망이라고 불렀다가 죽을 만큼 싫어하는 표정을 봤던 사람. 상처를 숨겼다가 자신에게 혼나고, 설표일 때 귀 뒤를 만지면 좋아하면서도 인간으로 돌아오면 모르는 척했던 사람. 자신에게 좋아한다고 말했고, 기다리겠다고 했고, 자신이 대답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답을 재촉하지 않았던 사람.라시엘 에른하르트.분명하다.그런데.『내 몸.』안쪽에서 다시.『저 사람이 가지고 있어.』세레나의 숨이 멎었다.라시엘의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들었습니까?”“그래.”라시엘의 목소리는 놀라울 만큼 차분했다.“저 아이 목소리.”“들려.”“뭐라고 했는지도.”“전부.”세레나는 입술을 깨물었다.좋지 않다.단순한 기억 재생이 아니다.독립적인 자아 반응.자기 인식.타인 인식.신체 소유권 인식까지 있다.“엘리엇!”세레나가 소리쳤다.“측정기!”“여기!”엘리엇이 달려왔다.카른과 기사들은 성벽 아래 백탑 병력을 막고 있었다. 클로드 역시 황실 기사들을 움직여 서쪽 전이진을 차단하고 있었고, 조금 전 자유를 되찾은 로웬은 바닥에 쓰러진 채 숨을 몰아쉬었다.전투는 끝나지 않았다.그런데 세레나에게는.지금 이쪽이 더 위험했다.“가슴에.”세레나가 말했다.“제 회로와 전하 회로 둘 다 연결해 주세요.”“세레나, 지금 네 몸에 뭘 연결하는 건—”“외부 마력 주입 안 합니다. 측정만.”엘리엇이 이를 악물고 수정선을 연결했다.첫 번째.세레나.보랏빛 파동.두 번째.라시엘.은빛과 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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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라시엘이 너무 많았습니다

문이 열릴수록.심장 소리가 많아졌다.쿵.쿵.쿵.서로 다른 박자였다. 빠른 것, 느린 것, 두 번 뛰었다가 길게 멎는 것, 마물핵 특유의 낮은 진동이 섞인 것까지. 하나의 생명체에게서 나올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그런데.문 너머의 눈동자들은 모두 같은 색이었다.은빛.라시엘과 같은.세레나는 본능적으로 앞으로 나가려다가 손목을 붙잡혔다.“여기.”라시엘이 낮게 말했다.“내 뒤.”“아직 공격하지 않았습니다.”“그래서 보고만 있잖아.”“검 잡으셨는데요.”“보는 데 검이 방해되나?”“상대 입장에서는 충분히 위협적으로—”“세레나.”라시엘이 고개를 돌렸다.그 눈빛을 보고 세레나는 입을 다물었다.화가 난 게 아니다.긴장했다.아니.그보다 더 정확히는.두려워하고 있다.라시엘 에른하르트가.문 너머를.세레나는 그의 손을 봤다. 검을 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손등의 힘줄이 선명하게 드러났지만 검끝은 흔들리지 않았다.평소라면 놓쳤을 변화.지금은 안다.“전하.”“왜.”“무서우십니까?”카른과 엘리엇의 시선이 동시에 움직였다.라시엘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문 안쪽에서.쿵.또 심장이 뛰었다.그제야 그가 말했다.“그래.”짧고.정확했다.세레나는 그의 옷소매를 잡았다.손을 잡지는 않았다.지금은 동조율을 불필요하게 높이고 싶지 않았다.그저.여기 있다는 걸 알릴 만큼.“저도요.”라시엘이 그녀를 내려다봤다.“그런데.”세레나는 문 안을 바라봤다.“무섭다고 안 볼 수는 없잖아요.”“알아.”“들어가도 됩니까?”“안 된다고 해도 갈 거지?”세레나는 잠깐 고민했다.“……이번에는 허락받고 가려고 했는데요.”“발전했군.”뒤에서 카른이 작게 중얼거렸다.“저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카른.”“기침입니다.”“기침 아닌 것 같은데요.”“연구원님은 앞을 보십시오.”긴장이 아주 조금 풀렸다.그 정도면 됐다.세레나는 다시 문을 봤다.은빛 문은 절반쯤 열려 있었다.그리고.안쪽의 모습이 드러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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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린다는 말로 사람을 지우지 마세요

“기억만 돌려주면 돼.”아델의 말이 끝난 뒤에도 세레나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유리관 안에서 눈을 뜬 레비안 브리엘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분명 살아 있다.가슴은 움직였다. 느리지만 호흡하고 있었고, 피부 아래로 흐르는 마력도 끊기지 않았다. 인간 회로도 존재했다. 손가락 끝에는 아주 미세한 근육 반응까지 있었다.그런데.눈이 비어 있었다.세레나는 그 눈을 알고 있었다.정확히는.비슷한 눈을 너무 많이 봤다.기억을 잃어 가던 아르젠.자기 이름을 잊은 실험체.라그넬이 완성체라고 부르던 사람들.몸은 살아 있지만.자기 자신을 붙잡고 있지 못하는 눈.세레나는 천천히 측정기를 들었다.아델이 눈썹을 움직였다.“뭐 하는 거지?”“확인합니다.”“뭘.”“당신 말이 사실인지.”아델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굳었다.“내가 거짓말한다고 생각해?”“모릅니다.”“…….”“처음 뵀으니까요.”카른이 뒤에서 아주 작게 숨을 삼켰다.엘리엇은 익숙하다는 듯 눈을 감았다가 떴다.라시엘은.세레나의 손을 잡은 채 가만히 있었다.세레나는 측정봉을 5번 유리관 쪽으로 뻗었다. 유리 너머라 세부 파동은 흐렸지만, 살아 있는 인간 회로를 확인하기에는 충분했다.하나.신체 유지 회로.둘.마력 순환.세 번째.없다.기억 회로.정확히는.“없는 게 아니네요.”세레나가 중얼거렸다.아델의 표정이 변했다.세레나가 측정값을 다시 확인했다.“잘라 냈습니다.”로웬이 다가왔다.“뭐?”“레비안의 기억 회로가 자연적으로 소실된 게 아니에요.”세레나는 유리관 아래쪽으로 측정봉을 움직였다.“절단 흔적이 있습니다.”엘리엇도 보조 측정기를 들었다.잠시 후.그의 얼굴이 굳었다.“맞아.”“얼마나 오래됐어요?”“잠깐.”엘리엇이 수치를 비교했다.“최소 십 년 이상. 더 오래됐을 수도 있어.”“열여덟 년?”“가능해.”세레나는 아델을 봤다.“당신이 했습니까?”아델은 대답하지 않았다.“레비안 브리엘의 기억을 당신이 제거했습니까?”“제거가 아니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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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사람에게 원본은 필요 없습니다

“너도 Return Body로 살아 있는 아이야.”아델의 말이 떨어진 뒤.세레나는 움직이지 않았다.놀라지 않은 건 아니다. 심장은 분명 빠르게 뛰고 있었고, 손끝은 차가워졌다. 바로 옆에 선 라시엘의 마력이 순식간에 날카로워진 것도 느껴졌다.하지만.이상하게도.머리는 차가웠다.아니.차가워져야 했다.이럴 때일수록.“증거는요?”아델의 눈이 흔들렸다.“……뭐?”“제가 Return Body로 살아 있다는 증거.”“세레나.”“당신 말 말고요.”세레나는 유리관 속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바라봤다.갈색 머리.보랏빛 눈.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얼굴.너무 닮았다.하지만.닮았다는 것과.자신의 몸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저 사람이 저와 같은 얼굴이라는 건 확인했습니다. 마력 회로도 유사하고요. B-32라는 표기와 BODY SOURCE : S.B.도 있습니다.”한 번.“그런데 그게 왜 제 몸이라는 뜻이죠?”아델의 표정이 서서히 굳었다.“네가 아홉 살 때—”“죽었다고요?”“그래.”“시신은.”“뭐?”“제 시신을 확인했습니까?”아델이 입을 다물었다.세레나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직접.”“…….”“사망을 확인했어요?”“네 몸은.”“제 질문에 대답해 주세요.”정적.라시엘의 손이 세레나의 손을 감쌌다.세레나는 이번에는 놓지 않았다.“확인했습니까?”아델이 천천히 말했다.“심장이 멈췄다.”“얼마나.”“세레나.”“몇 분.”“…….”“몇 시간.”아델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스쳤다.“정확히 기억 안 나.”“그럼.”세레나는 단호하게 말했다.“죽었다고 확정하지 않겠습니다.”아델의 눈이 커졌다.“심장이 멈췄어!”“심정지와 사망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그 시대에 네 몸은—”“그 시대라니요.”세레나가 끊었다.“열여덟 년 전입니다. 삼백 년 전도 아니고.”엘리엇이 바로 움직였다.“맞아.”그가 세레나 옆으로 다가왔다.“마력생리학 기준으로도 심장 정지만으로는 사망 확정 못 해. 특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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