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성검은 드래곤과 혼인하고 싶어 합니다: Chapter 11 - Chapter 20

51 Chapters

칠색 의회는 제 혼인부터 의심했습니다

칠색 의회는 드래곤들조차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아르카디아의 일곱 영지가 맞닿는 중앙 산맥, 어느 색의 드래곤에게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중립지대. 일곱 개의 거대한 첨탑이 원을 그리듯 세워져 있었고, 중앙에는 오래된 원형 궁전이 자리하고 있었다. 궁전 외벽에는 적색, 은색, 금색, 흑색, 청색, 녹색, 그리고 지금은 거의 사라진 백색의 마력석이 차례로 박혀 있었다.칠색 의회.드래곤들이 전쟁을 결정하고, 영지 간 분쟁을 조정하며, 인간 왕국과의 외교 문제를 논의하는 곳.아르셀리아는 그 앞에 도착하자마자 생각했다.귀찮다.아주 많이.“왜 그런 얼굴을 하십니까?”옆에서 아스테리온이 물었다.“돌아가고 싶어.”“아직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그래서 더.”아르셀리아는 원형 궁전 위로 떠 있는 일곱 개의 마력 고리를 올려다봤다.평소라면 이 장소에는 가까이 오지도 않는다. 칠색 의회의 소집장이 날아와도 웬만한 문제라면 대리인을 보내거나 아예 무시했다. 레드 드래곤 중에서도 아르셀리아 로하르트의 괴팍함은 제법 유명해서, 최근 백 년 사이에는 굳이 그녀를 부르지 않는 분위기까지 만들어져 있었다.그런 자신이.직접 왔다.그것도.아르셀리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갔다.맞잡힌 손.자신의 왼손과.아스테리온의 오른손.아침부터 계속 이 상태였다.황금령에서 의회까지 이동하는 동안 아스테리온의 인간형이 두 번이나 흔들렸기 때문이다.아직 균열이 완전히 안정되지 않았다.직접 마력을 공급하면 인간형을 오래 유지할 수 있었고, 손을 잡는 방식이 가장 부담이 적었다.문제는.“또 봅니다.”아스테리온이 말했다.아르셀리아가 고개를 돌렸다.“뭘.”“손.”“확인한 거야.”“무엇을요?”“문양.”“분명 제 손을 보고 계셨는데요.”“문양도 손목에 있잖아.”“그러면 손목을 보셨어야죠.”아르셀리아의 눈이 가늘어졌다.“놓을까?”아스테리온이 손가락에 힘을 줬다.“그건 안 됩니다.”“그러니까 조용히 해.”“예.”그는 순순히 대답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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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검을 돌려줘도 전쟁은 끝나지 않습니다

“시작됩니다.”에드릭의 말이 칠색 의회 한가운데 떨어졌다.그 한마디 뒤로 이상할 만큼 긴 정적이 이어졌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스테리온의 반환과 아르셀리아의 신전 출두를 두고 팽팽하게 갈리던 시선들이 이번에는 일제히 에드릭에게 모였다. 성왕국의 정식 사절로 들어온 용사가, 정작 자신을 보낸 신전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말라고 말했다.그것도.전쟁이 시작될 거라는 말과 함께.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에드릭 옆에 서 있던 사제였다.“용사님.”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지 알고 계십니까?”에드릭은 그를 보지 않았다.“알고 있습니다.”“성왕국의 공식 사절로 이 자리에 오셨습니다.”“그것도 압니다.”“그런데 왕국의 뜻을 거스르는 발언을―”“왕국의 뜻입니까.”그제야 에드릭이 고개를 돌렸다.피로가 짙게 남은 얼굴.붕대 아래로 아직 완전히 낫지 않은 상처가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흐리지 않았다.“아니면 신전의 뜻입니까?”사제의 표정이 굳었다.에드릭은 아주 천천히 말을 이었다.“제가 알기로 성왕국 의회에서는 아직 드래곤 영토에 대한 공식적인 군사 행동을 승인하지 않았습니다.”“용사님.”“국왕 폐하의 친서도 없고.”“그만.”“대신관의 명령만 있지요.”낮게 깔린 마지막 말에 회의장 분위기가 바뀌었다.아르셀리아는 옆에 선 아스테리온의 손을 여전히 잡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미세하게 차가웠던 손끝이 지금은 완전히 멈춰 있었다.그도 에드릭의 말을 듣고 있었다.집중해서.아르셀리아는 조용히 물었다.“그게 다른 거야?”에드릭이 그녀를 봤다.“많이 다릅니다.”“인간들끼리는?”“성왕국이라 해도 왕과 신전은 하나가 아닙니다.”“신을 믿는 나라잖아.”“그렇다고 대신관이 왕인 건 아닙니다.”아르셀리아는 잠시 생각했다.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신전이 멋대로 한 거네.”“현재까지는.”에드릭이 대답했다.“그렇게 봐야 합니다.”사제가 결국 앞으로 나섰다.“용사 에드릭 벨로안.”호칭이 바뀌었다.조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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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가 아니라는데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칠색 의회의 불꽃이 가라앉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정확히는.아르셀리아의 불꽃이 아니라.회의장 안의 분위기가.“그러니까.”아르셀리아는 아직도 붉어진 귀 끝을 숨기지 못한 채 아스테리온을 노려봤다.“다시는 의회에서 그런 말 하지 마.”아스테리온은 매우 온순한 얼굴로 물었다.“어떤 말씀이요?”“키스.”“아.”“아, 하지 마.”“알겠습니다.”너무 순순하게 대답해서 오히려 수상했다.아르셀리아의 눈이 가늘어졌다.“진짜 알아들었어?”“예.”“다시는 안 해?”“의회에서는.”“아스테리온.”“예.”금빛 눈이 웃었다.아르셀리아가 손을 들었다가 멈췄다. 한 대 치고 싶은데 아직 검신에 금이 가 있었다.그 사실을 떠올리는 순간 화가 조금 누그러졌다.그게 더 짜증 났다.이제는 화를 내다가도 ‘얘 아프지’가 먼저 생각났다.“왜 한숨을 쉬십니까?”“너 때문에.”“그렇게 자주 저를 생각하십니까?”“진짜 검으로 만들어 버릴까.”“그건 원래도 가능합니다.”“…….”“다만 지금은 인간형이 더 좋습니다.”아르셀리아가 이를 악물었다.옆에서는 세레니스가 이미 웃다가 지친 얼굴로 의자에 기대 있었다.“둘이 정말 반려 아니야?”“아니야.”아르셀리아가 즉시 대답했다.“정말?”“응.”“그럼 하나만 물어보자.”“뭔데.”세레니스가 턱으로 둘의 손을 가리켰다.“그건 언제 놓을 거야?”아르셀리아가 내려다봤다.손.아직도 잡고 있었다.정확히는 아스테리온의 손가락이 자신의 손가락 사이에 얽혀 있었다.회의가 거의 끝나 가는 지금까지.한 번도 놓지 않았다.아르셀리아가 바로 손을 빼려 했다.그러자.아스테리온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왜.”“아직 마력이 필요합니다.”“진짜?”“예.”아르셀리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거짓말 아니고?”“확인해 보시겠습니까?”“어떻게.”“놓아 보시면 됩니다.”아르셀리아가 잠시 고민했다.그리고 손을 놓았다.하나.둘.셋.아스테리온의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금빛으로 만들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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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침실에 남자가 둘은 필요 없습니다

화염궁으로 돌아온 첫날 밤.아르셀리아는 자신의 침실 앞에서 두 남자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한 명은 검은 머리에 금빛 눈.다른 한 명은 검은 머리에 검은 눈.색만 놓고 보면 비슷했지만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아스테리온은 아주 자연스럽게 침실 문 옆에 서 있었다. 마치 원래부터 이 방을 사용하던 사람처럼 태연했다. 반면 카르디안은 팔짱을 낀 채 그런 아스테리온을 노골적으로 못마땅하게 바라보고 있었다.그리고 아르셀리아는.피곤했다.“왜 둘 다 여기 있어.”카르디안이 먼저 대답했다.“의회에서 정한 동행 감시.”“그래서.”“네가 자는 동안도 주변을 확인해야 한다.”아르셀리아의 눈이 가늘어졌다.“내가 잘 때까지?”“그래.”“안 돼.”“뭐가.”“귀찮아.”카르디안이 한숨을 쉬었다.“네 편의를 위해 온 게 아니다.”“그럼 누구 편의인데.”“칠색 의회.”“내 집이잖아.”“그러니까 더 문제다. 신전에서 이미 화염궁 위치와 구조를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그 말에는 아르셀리아도 바로 반박하지 못했다.자신은 화염궁의 결계를 믿었다.적염령에서도 가장 깊은 곳.용암 계곡과 붉은 절벽 사이에 숨겨진 궁전.허락받지 않은 인간이 들어오기 어려운 곳.하지만 얼마 전까지도 신전이 아스테리온의 위치를 감지했고, 황금령까지 추적대를 보내지 않았던가.그래도.“침실까지는 안 돼.”아르셀리아가 단호하게 말했다.카르디안이 눈썹을 올렸다.“왜.”“내 방이니까.”“저 검은 들어가면서.”아르셀리아가 즉시 옆을 봤다.아스테리온이 얌전히 서 있었다.너무 얌전해서 더 수상했다.“얘는.”아르셀리아가 잠시 말을 고르다가 말했다.“마력 때문에.”“손 잡고 충전하면 보물고에서도 버틴다며.”아스테리온이 아주 부드럽게 끼어들었다.“요즘은 균열 때문에 인간형 유지가 불안정합니다.”카르디안이 눈을 가늘게 떴다.“그래서 꼭 침실 안이어야 하나.”“주인님의 마력에 가장 가까운 곳이니까요.”“보물고가 더 가까울 수도 있지.”“침실이 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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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건 이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방음 마법은 훌륭했다.아주 훌륭해서.아르셀리아는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카르디안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는데, 방음 마법을 걸고 나니 옆방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졌다. 발소리도, 문이 닫히는 소리도, 심지어 드래곤 특유의 마력 흔들림조차 희미하게 느껴졌다.조용했다.너무.그리고 침실 안에는 자신과 아스테리온 둘뿐이었다.아르셀리아는 괜히 방음 마법이 걸린 벽을 한 번 바라봤다.소파 끝에 앉아 있던 아스테리온이 그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왜 그러십니까?”“아무것도 아니야.”“카르디안 님이 안 들려서 허전하십니까?”아르셀리아의 시선이 천천히 돌아왔다.“풀어?”“방음 마법을요?”“응.”“제가 잘못했습니다.”대답이 빨랐다.아르셀리아는 그를 잠시 노려보다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조금 전까지 잡고 있던 손은 여전히 놓지 못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한 번 놓아 보았다가 아스테리온의 인간형이 다시 희미하게 흔들리는 바람에 금세 잡은 상태였다.문제는 거리였다.손만 잡고 소파와 침대에 따로 있기에는 너무 멀었다.두 사람 사이에 마력을 연결한 채 거리를 벌려 보자 손목의 문양이 몇 번 뜨겁게 뛰었고, 아스테리온의 어깨와 손끝이 금빛으로 흐려졌다.“진짜 이상해.”아르셀리아가 낮게 중얼거렸다.“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전에는 손만 잡으면 됐잖아.”“예.”“그 전에는 가까이만 있어도 됐고.”“그렇죠.”“점점 까다로워져.”아스테리온이 아주 조금 웃었다.“계약이 욕심이 많아지는 모양입니다.”아르셀리아가 바로 쳐다봤다.“좋아하지 마.”“안 좋아했습니다.”“입꼬리.”“제 의지와 상관없이 올라갔습니다.”“내가 그걸 믿을 것 같아?”“조금은.”“안 믿어.”아르셀리아는 그의 손을 한 번 들어 올렸다가 놓지 못하고 다시 내려놨다. 손바닥이 맞닿은 곳에서는 붉은 마력과 금빛 힘이 아주 얇게 얽혀 있었다.처음에는 낯설었다.이제는.너무 익숙해졌다.그 사실이 오히려 이상했다.다른 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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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검은 하나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결계 핵이 있는 방은 화염궁에서도 유난히 고요했다.궁 전체를 흐르는 불의 마력이 이곳에서 시작됐고, 아르셀리아의 용핵과 이어진 방어 결계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평소 같았으면 문이 열리는 순간 묵직한 열기와 붉은빛이 가장 먼저 느껴져야 했다.그런데 지금 가장 선명한 건.“저것들부터 정리하고 이야기하시죠.”아스테리온의 목소리였다.아르셀리아는 열린 문 안쪽과 그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뭘 정리해.”“검이요.”“저거?”“예.”아스테리온이 아주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 보물 더미 한쪽을 가리켰다.열일곱 자루.크기도 다르고 모양도 달랐다. 장식용 세검부터 전쟁에서 쓰였을 법한 대검, 손잡이에 보석이 촘촘히 박힌 의장검까지 종류도 제각각이었다.아르셀리아는 고개를 갸웃했다.“왜.”“필요 없지 않습니까.”“필요 없어도 보물이잖아.”“검이 열여덟 자루나 필요하십니까?”“너 포함하면 그렇지.”그 말이 떨어지자 아스테리온의 표정이 더 미묘해졌다.아르셀리아는 그 반응을 가만히 보다가 물었다.“왜 그런 얼굴이야.”“저와 저것들을 같은 숫자에 넣으셨습니다.”“검이니까.”“아르셀리아.”“응.”“조금 전에는 제가 다르다고 하셨습니다.”목소리가 지나치게 차분했다.그래서 오히려 안에 든 감정이 보였다.질투.정말로.검한테.카르디안은 옆에서 이미 웃음을 참을 생각이 없는 얼굴이었다. 결국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아스테리온의 시선이 곧바로 그에게 돌아갔다.“재미있습니까?”“아니다.”“웃고 계십니다.”“네가 검 열일곱 자루를 경쟁자로 보는 상황이 조금.”카르디안은 말을 멈추더니 결국 고개를 돌렸다.“상당히 재미있군.”아스테리온의 금빛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아르셀리아는 둘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를 보다가 보물 더미로 걸어갔다.“봐.”가장 가까운 검 한 자루를 집었다.청록색 보석이 박힌 가느다란 세검이었다.아스테리온의 시선이 즉시 그녀의 손을 따라왔다.“이건 옛날에 청해령 상인한테 샀어.”“왜요.”“예뻐서.”아스테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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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 소파에 이름표까지 붙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아르셀리아가 화염궁 결계 핵에서 올라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침실 문 앞에 모여 있는 불 정령들이었다.하나.둘.셋.세어 보니 일곱이었다.평소라면 아르셀리아가 지하에서 올라오는 기척만 느껴도 제 할 일을 하러 흩어졌을 녀석들이, 오늘은 하나같이 침실 근처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가장 작은 정령은 문틈을 들여다보려다 아르셀리아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몸을 숨겼고, 그 뒤에 있던 녀석들은 숨을 곳조차 찾지 못하고 그대로 굳었다.아르셀리아의 눈이 가늘어졌다.“뭐 해.”정령들이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아무것도 안 했어요.”“아직 아무것도 안 했어요.”“저희는 그냥 지나가다가.”“일곱이 같이?”정적.아르셀리아가 가장 앞에 있던 정령을 내려다봤다.“왜 모였는데.”녀석이 옆을 봤다.옆의 정령도 또 옆을 봤다.그 시선이 차례차례 넘어가다가 마지막 정령에게 멈췄다.졸지에 대표가 된 정령이 울상으로 입을 열었다.“성검 님 자리를… 확인하려고요.”아르셀리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무슨 자리.”뒤에서 아스테리온이 대답했다.“제 자리 말하는 것 같습니다.”아르셀리아가 천천히 돌아봤다.아스테리온은 아주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카르디안은 그 옆에서 벌써부터 피곤해 보였다.“아.”아르셀리아가 기억해 냈다.침실 안 소파.아까 자신이 분명 말했다.소파를 아스테리온의 자리로 해도 된다고.그런데.“그걸 왜 얘들이 확인해.”불 정령들이 다시 서로를 봤다.이번에는 대답이 늦었다.아르셀리아의 눈빛이 조금 더 날카로워졌다.“누가 시켰어.”정령 하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아무도 안 시켰어요.”“그럼.”“그냥… 자리 정해졌으면 준비해야 하니까요.”“뭘 준비해.”이번에는 정말 이해가 안 됐다.정령들은 원래 화염궁 안에서 필요한 것들을 알아서 관리했다. 손님이 오면 방을 정리하고, 보물이 들어오면 위치를 기록하고, 마력석이 부족하면 교체했다.그렇다고 해서.침실 소파 하나를 준비할 일이 뭐가 있다는 건지.정령 하나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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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관은 연애를 기록하러 온 게 아닙니다

아침부터 날아온 베개는 아스테리온의 얼굴에 닿지 않았다.그가 한 손으로 가볍게 받아 냈기 때문이다.“위험했습니다.”“베개잖아.”“주인님께서 던지시면 베개도 무기가 됩니다.”“그럼 맞아.”“싫습니다.”“싫은 거 잘 말하네.”“훌륭한 가르침 덕분입니다.”아르셀리아는 침대 위에 앉은 채 눈을 가늘게 떴다. 아스테리온은 아무렇지 않게 베개를 품에 안고 있었다. 문제의 기록지는 그의 반대편 손에 들려 있었다.침실 소파의 위치는 현 상태 유지 권고.그리고 아르셀리아가 그어 놓은 굵은 선.연구와 무관함.그 아래.당사자에게는 매우 중요함.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저걸 발견한 순간의 황당함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그거 내놔.”“관찰 기록입니다.”“내가 쓰는 거야.”“공동 관찰 대상이지 않습니까.”“그래서 네가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뜻은 아니야.”“틀린 내용은 없습니다.”“소파 위치가 왜 관찰 내용인데.”아스테리온은 잠시 생각하는 척하더니 아주 진지하게 대답했다.“제 심리적 안정에 영향을 줍니다.”“…….”“정신적 안정도 인간형 유지에 중요할 수 있습니다.”“그걸 지금 생각했지.”“예.”너무 당당했다.아르셀리아는 두 번째 베개를 찾았다.아스테리온이 재빨리 첫 번째 베개를 내려놓았다.“아침 식사하러 가시죠.”“말 돌리지 마.”“오늘 손님도 온다고 했습니다.”아르셀리아의 손이 멈췄다.“누구.”“칠색 의회에서요.”아르셀리아의 표정이 서서히 굳었다.“세레니스 또 와?”“아닙니다.”“그럼.”침실 문이 두드려졌다.똑똑.불 정령의 목소리가 들렸다.“아가씨.”“왜.”“의회에서 오신 분이 도착하셨어요.”아르셀리아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어제 세레니스가 떠난 뒤 의회에서 추가 관찰 담당자를 정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뒤늦게 떠올랐다.하지만.벌써?“누군데.”문 밖 정령이 대답했다.“녹림령에서 오신 리엔 브리어 님이요.”아르셀리아의 눈썹이 조금 올라갔다.처음 듣는 이름은 아니었다.리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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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제안은 관찰 항목이 아닙니다

다음 날 아침.아르셀리아는 식탁에 앉자마자 자신 앞에 놓인 종이를 보고 얼굴을 굳혔다.어젯밤 분명 침실 밖으로 나갔던 리엔이 작성한 관찰 기록이었다.관찰 2일 차.대상 A: 아스테리온. 인간형 안정 양호. 응력선 부위에 직접 용마력 주입 후 마력 흐름 18% 안정.여기까지는 괜찮았다.문제는 그다음이었다.대상 B: 아르셀리아 로하르트. 치료 직후 체온 상승 추정. 정확한 측정은 거부로 인해 시행하지 못함.아르셀리아의 눈썹이 꿈틀했다.그 아래.특이사항: 치료 종료 후 두 대상이 약 1보 이내의 거리에서 상당 시간 대치함. 외부 자극에 의해 종료.“…대치?”아르셀리아가 낮게 중얼거렸다.맞은편에 앉아 차를 마시던 리엔이 고개를 들었다.“예.”“우리가 싸웠어?”“아닙니다.”“그런데 왜 대치야.”“다른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했습니다.”“그냥 서 있었던 거잖아.”“서로 마주 본 상태로 약 이십칠 초간 움직이지 않으셨습니다.”아르셀리아의 얼굴이 굳었다.“그걸 셌어?”“관찰관이니까요.”옆자리에서 아스테리온의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아르셀리아가 바로 그를 봤다.“웃어?”“아닙니다.”“웃었어.”“차가 뜨거워서.”“너는 적염룡도 아닌데 왜 갑자기 더워.”아스테리온이 잔을 내려놓으며 웃었다.“주인님께 배웠습니다.”“뭘.”“곤란한 질문에는 더위 탓을 하면 된다는 걸.”아르셀리아의 입이 다물렸다.리엔의 펜이 움직였다.사각.아르셀리아가 바로 돌아봤다.“그건 왜 적어.”“생활 관찰.”“방금 건 필요 없잖아.”“동의합니다.”리엔이 선을 하나 그었다.“삭제했습니다.”“…….”이상하게 더 기분이 나빴다.그때 식당 문이 열렸다.카르디안이었다.검은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채 들어온 그는 평소보다 일찍부터 화염궁 외곽 결계를 확인하고 돌아온 듯했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아르셀리아 앞의 기록지를 발견했다.“뭐지.”“보지 마.”아르셀리아가 종이를 뒤집었다.카르디안의 눈썹이 올라갔다.“왜.”“그냥.”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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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검을 잃은 용사가 드래곤의 궁에 왔습니다

에드릭 벨로안은 처음 화염궁에 왔을 때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그때의 그는 성왕국의 문장이 새겨진 흰 망토를 두르고, 신전이 축복했다는 은빛 갑옷을 입고 있었다. 허리에는 아스테리온을 찬 채 자신이 신에게 선택받은 용사라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정확히는.의심할 수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지금은 아니었다.망토는 회색에 가까울 만큼 낡았고, 갑옷은 없었다. 허리에 찬 검은 어디서나 구할 수 있을 법한 평범한 철검이었다. 황금령에서 입었던 상처도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는지 왼쪽 어깨를 움직일 때마다 미세하게 얼굴이 굳었다.무엇보다.눈이 달랐다.“돌아갈 곳이 없어졌습니다.”에드릭이 그렇게 말했을 때.아르셀리아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녀는 한동안 인간 용사를 바라봤다.처음 만났을 때라면.귀찮으니 돌려보냈을 것이다.그런데.돌아갈 곳이 없다는 말이.이상하게 걸렸다.아르셀리아의 시선이 아주 잠깐 옆으로 움직였다.아스테리온.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평소 같으면 에드릭이 나타난 순간부터 한마디쯤 했을 텐데.이번에는.그저 조용히 보고 있었다.아르셀리아가 다시 에드릭에게 물었다.“왜 없어졌는데.”에드릭의 입술이 조금 굳었다.“제가 신전 명령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나 데려오라는 거?”“그것도 있습니다.”“아스테리온도.”“예.”에드릭은 잠시 아스테리온을 바라봤다.그리고.예전처럼 성검이라 부르지 않았다.“아스테리온을 돌려보내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했습니다.”아스테리온의 눈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아르셀리아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그래서 쫓겨났어?”“정확히는.”에드릭이 씁쓸하게 웃었다.“파문 여부를 심의받기 전에 도망쳤습니다.”아르셀리아의 눈썹이 올라갔다.“용사가?”“이제는 아닙니다.”“누가 그래.”“신전이.”아르셀리아는 고개를 갸웃했다.“신전이 용사 시켜 준 거야?”에드릭이 멈칫했다.“신께 선택받은 자를 신전이 공인합니다.”“그럼 신이 취소한 건 아니네.”정적.에드릭의 얼굴이 굳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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