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검은 드래곤과 혼인하고 싶어 합니다

성검은 드래곤과 혼인하고 싶어 합니다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9-12
Por:  유월Atualizado agora
Idioma: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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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이 ‘재앙의 붉은 용’이라 부르는 레드 드래곤 아르셀리아. 어느 날 자신을 죽이러 온 용사를 가볍게 쫓아낸 그녀는 그가 들고 온 아름다운 성검만 전리품으로 챙긴다. 그런데 그날 밤, 보물고에 넣어둔 검이 아름다운 남자로 변해 나타났다. “성검 아스테리온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주인님.” 드래곤을 죽이기 위해 태어난 용살성검이 하필 드래곤을 자신의 진짜 주인으로 선택해 버렸다. 게다가 이 뻔뻔한 검은 보물고도 모자라 침실까지 따라오더니 매일같이 청혼한다. “주인님, 혼인합시다.” 그저 예쁜 검 하나를 주웠을 뿐인데, 아무래도 아주 귀찮은 것을 보물로 삼아 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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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ítulo 1

프롤로그. 용사를 쓰러뜨렸더니 검이 남았습니다

아르셀리아는 인간을 싫어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인간은 짧게 살았고, 빨리 늙었고, 아주 사소한 일에도 자주 흥분했다. 드래곤인 그녀가 보기에는 눈 깜짝할 사이에 태어나서 서로 싸우고, 사랑하고, 나라를 세우고, 나라를 무너뜨리다가 사라지는 존재들이었다.

굳이 싫어할 이유도 없었다.

문제는 인간 쪽에서 자꾸 그녀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귀찮은 방식으로.

콰아앙―!

화염궁의 남쪽 절벽 아래에서 굉음이 울렸다.

황금빛 햇살을 받으며 느긋하게 소파에 기대 있던 아르셀리아가 눈을 떴다. 손에 들고 있던 책이 무릎 위로 미끄러졌다.

잠시 뒤.

콰앙!

이번에는 조금 더 가까웠다.

아르셀리아는 말없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화염궁은 적염령에서도 가장 높은 화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었다. 검붉은 현무암과 붉은 수정으로 만들어진 궁전 주변으로는 용암이 강처럼 흘렀고, 인간이라면 몇 발짝도 버티지 못할 열기가 사방을 감싸고 있었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애초에 올라올 생각부터 하지 않아야 했다.

그런데 인간들은 가끔 정상적이지 않았다.

특히 스스로를 ‘용사’라고 부르는 인간들이 그랬다.

콰아아앙―!

세 번째 폭발음.

아르셀리아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또 왔네.”

소파 옆 탁자 위에 엎드려 자고 있던 작은 불도마뱀이 고개를 들었다. 붉은 꼬리 끝에서 조그만 불꽃이 팔랑거렸다.

“키륵?”

“응. 인간.”

“키륵.”

불도마뱀마저 질렸다는 듯 다시 고개를 내려놓았다.

아르셀리아는 책갈피를 끼운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을 스치는 검붉은 실내복 자락이 느릿하게 흔들렸다. 짙은 적발은 허리 아래까지 흘러내렸고, 머리카락 사이로 작은 붉은 뿔 한 쌍이 드러나 있었다.

오늘은 인간형으로 쉬고 있었다.

귀찮았다.

본체로 돌아가면 날개를 접는 것도 일이고, 인간들이 자신을 보고 더 크게 비명을 지르는 것도 시끄러웠다.

아르셀리아는 맨발로 창가까지 걸어갔다.

남쪽 절벽 아래.

인간 하나가 검을 들고 올라오고 있었다.

검.

아르셀리아의 시선이 잠시 멈췄다.

“…….”

인간은 별로였다.

정말로.

붉은 망토를 두르고 있었고, 반짝이는 은빛 갑옷도 입었다. 얼굴도 인간 기준으로는 꽤 잘생긴 편일 것이다.

하지만 아르셀리아의 관심은 인간에게 있지 않았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이었다.

길고 곧게 뻗은 검신 위로 금빛 문양이 흘렀다. 손잡이 중앙에는 핏빛처럼 붉은 보석이 박혀 있었고, 햇살이 닿을 때마다 검 전체에서 희미한 신성력이 번졌다.

아르셀리아의 붉은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예쁘다.

상당히.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그대로 창문을 열었다.

뜨거운 바람이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절벽을 거의 다 올라온 인간이 그녀를 발견했다. 곧장 검을 치켜들며 외쳤다.

“적염의 재앙, 아르셀리아 로하르트!”

아르셀리아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또 저 이름이다.

인간들은 이상하게 그녀의 본명보다 ‘적염의 재앙’을 더 좋아했다.

처음 누가 붙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에드릭 벨로안! 성왕국의 검이자 신에게 선택받은 용사다!”

“…….”

“수백 년간 인간들을 괴롭혀 온 사악한 드래곤이여! 오늘 그 죄를 심판하겠다!”

아르셀리아가 창틀에 팔꿈치를 괴었다.

그리고 꽤 진지하게 물었다.

“내가 뭘 했는데?”

에드릭의 기세가 순간 멈칫했다.

“뭐?”

“인간을 괴롭혔다며.”

아르셀리아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누구?”

“그, 그것은…….”

“이름.”

“…….”

“몇 명?”

“…….”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르셀리아는 예상했다는 듯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늘 이랬다.

그녀가 인간 마을 하나를 불태웠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왕국의 공주를 셋이나 납치했다는 전설도 있었다. 심지어 아기를 잡아먹는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전부 사실이 아니었다.

아르셀리아는 인간 아기를 본 적조차 몇 번 없었다.

아기 인간은 너무 작고 약해서 가까이 가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난 네 나라가 어디 있는지도 몰라.”

“거짓말!”

“이름이 뭐였지?”

“……벨로안 왕국.”

“처음 듣는데.”

용사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르셀리아는 그 모습에 별 관심 없이 그의 검을 다시 바라보았다.

아까보다 가까이서 보니 더 마음에 들었다.

붉은 보석 안쪽에서 무언가 살아 있는 것처럼 빛이 움직이고 있었다.

좋다.

아주 좋다.

보물고의 세 번째 방.

붉은 수정 왕관과 황금 술잔 사이가 딱 비어 있었다.

저걸 두면 예쁘겠다.

아르셀리아가 말했다.

“그거 두고 가.”

에드릭이 눈을 크게 떴다.

“……뭐?”

“검.”

“…….”

“두고 가.”

용사의 표정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변했다.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하는 말인가?”

“검.”

“성검이다!”

“그래.”

“신께서 직접 축복하신 용살성검 아스테리온! 수많은 드래곤의 피를 마신 전설의 검이다!”

아르셀리아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용살성검.

그 말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검 자체는 여전히 예뻤다.

“그래서?”

“그래서라니!”

에드릭이 검을 꽉 움켜쥐었다.

금빛 신성력이 검신을 타고 폭발하듯 피어올랐다.

“이 검으로 오늘 네 심장을 꿰뚫겠다!”

아르셀리아는 잠시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창문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럼 직접 가져가야겠네.”

“……무슨?”

에드릭이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콰앙―!

화염궁의 창문에서 붉은 불꽃이 폭발했다.

아르셀리아의 모습이 사라졌다.

다음 순간.

에드릭의 눈앞에 그녀가 나타났다.

너무 빨랐다.

“……!”

용사는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성검에서 찬란한 금빛이 터져 나왔다.

아르셀리아는 피하지 않았다.

맨손으로 검날을 잡았다.

콰아아앙―!

금빛 신성력과 붉은 화염이 충돌했다.

폭발적인 충격이 절벽을 흔들었다. 바위가 갈라지고 뜨거운 바람이 사방으로 퍼졌다.

에드릭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성검의 날이.

아르셀리아의 손바닥을 베지 못했다.

정확히는, 붉은 비늘이 손등과 손바닥 위로 솟아올라 검날을 막고 있었다.

아르셀리아는 자신의 손에 잡힌 검을 내려다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더 예뻤다.

금빛 문양의 결도 섬세했고, 붉은 보석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맑았다.

“마음에 들어.”

“……뭐?”

“이거.”

아르셀리아가 손목을 틀었다.

그것뿐이었다.

에드릭의 손에서 검이 빠져나왔다.

“잠깐!”

성검이 공중을 돌았다.

아르셀리아가 자연스럽게 손잡이를 잡았다.

그 순간이었다.

웅―

이상한 진동이 검신을 타고 울렸다.

아르셀리아의 붉은 눈이 커졌다.

따뜻했다.

검에서 느껴질 리 없는 체온 같은 것이 손바닥에 닿았다.

곧이어 검에 새겨져 있던 금빛 문양들이 한 번에 밝아졌다.

촤아악―!

찬란한 빛이 산 정상 전체를 뒤덮었다.

에드릭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말도 안 돼.”

아르셀리아도 검을 내려다보았다.

“왜 이래?”

에드릭의 입술이 떨렸다.

“성검이…….”

“응.”

“주인을 인정할 때 나타나는 빛인데…….”

아르셀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너 주인 아니었어?”

에드릭의 얼굴이 처참해졌다.

“…….”

“아니었나 보네.”

“그럴 리가 없어!”

용사가 달려들었다.

아르셀리아는 귀찮다는 듯 한 손을 들었다.

퍽!

붉은 마력이 에드릭의 이마를 정확히 때렸다.

그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으악!”

다행히 절벽 아래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바위 위를 몇 번 구른 뒤 널브러졌다.

아르셀리아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안 죽었지?”

“으…….”

“그럼 됐어.”

“성검…….”

에드릭이 떨리는 손을 뻗었다.

“돌려…….”

“싫어.”

단호했다.

“그건…… 성왕국의…….”

“이제 내 거야.”

아르셀리아는 검을 한 번 들어 올렸다.

붉은 햇살이 검신을 타고 반짝였다.

역시 예뻤다.

마음에 들었다.

아주 많이.

그녀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내려가.”

“…….”

“검은 두고.”

그렇게.

성왕국에서 삼백 년 만에 나타났다는 용사는 적염령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아르셀리아에게는 새 보물이 생겼다.

그날 오후.

아르셀리아는 꽤 오랜 시간을 보물고에서 보냈다.

화염궁 아래에는 일곱 개의 보물고가 있었다.

각 방마다 용도가 달랐다.

첫 번째 방에는 금화.

두 번째에는 보석.

세 번째에는 아름다운 장식품.

네 번째에는 마도구.

다섯 번째에는 고대 유물.

여섯 번째에는 이상한 물건.

일곱 번째에는 아직 분류하지 않은 것.

아르셀리아는 새로 가져온 성검을 세 번째 방으로 들고 갔다.

붉은 수정으로 만든 왕관 옆.

황금 술잔 맞은편.

검 하나를 세워 두기 딱 좋은 자리가 있었다.

“여기.”

아르셀리아는 만족스럽게 성검을 세워 두었다.

금빛 검신이 주변 보석의 빛을 받아 반짝였다.

역시 잘 어울렸다.

그녀는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았다.

조금 왼쪽.

아니다.

다시 오른쪽.

아르셀리아가 검의 위치를 아주 조금 옮겼다.

“이게 낫네.”

웅―

성검이 희미하게 떨렸다.

아르셀리아가 눈을 깜빡였다.

“왜?”

당연히 대답은 없었다.

검이니까.

아르셀리아는 별생각 없이 검신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아까 전투하면서 먼지가 조금 묻어 있었다.

손끝으로 검신을 천천히 쓸었다.

순간.

웅!

검이 크게 떨렸다.

아르셀리아가 손을 멈췄다.

“……?”

다시 한번.

손가락으로 검신을 문질렀다.

이번에는 더 선명하게 떨렸다.

“고장 났나?”

용살성검이라더니 생각보다 이상했다.

아르셀리아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부드러운 천을 하나 집어 들었다.

검을 깨끗하게 닦아 둘 생각이었다.

그렇게 한참.

검신을 닦았다.

이상하게도 닦을 때마다 검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지만 아르셀리아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래된 마도구는 가끔 그랬다.

마력이 흐르면 울거나 빛나거나, 심지어 비명을 지르는 것도 있었다.

이 정도면 얌전한 편이었다.

“됐다.”

반짝반짝해진 검을 바라보며 아르셀리아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붉은 보석이 유독 밝게 빛나는 것 같았지만 그것 역시 마음에 들었다.

“예쁘네.”

웅―

검이 아주 작게 울었다.

아르셀리아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이제 내 보물이야.”

그 순간.

성검 전체에서 금빛이 한 번 번쩍였다.

아르셀리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곧 다시 평범한 검으로 돌아왔다.

“이상한 검이네.”

그녀는 그대로 보물고를 나갔다.

그리고 문을 잠갔다.

철컥.

그날 밤까지는.

정말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한밤중.

아르셀리아가 눈을 떴다.

처음에는 자신을 깨운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화염궁은 조용했다.

창밖으로는 붉은 달빛이 흘러들었고, 멀리 용암이 흐르는 낮은 소리만 들렸다.

아르셀리아는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붉은 머리카락이 어깨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때.

달칵.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다.

아르셀리아의 눈동자가 세로로 가늘어졌다.

보물고 방향이었다.

잠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드래곤의 보물고를 건드리는 것.

그것은 인간이든 드래곤이든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아르셀리아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맨발이 바닥에 닿았다.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그녀의 손끝에서 붉은 화염이 피어올랐다.

누구든.

오늘 꽤 크게 잘못했다.

보물고로 내려가는 계단.

첫 번째 방은 이상 없음.

두 번째도.

그리고 세 번째.

문이 열려 있었다.

아르셀리아의 눈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분명 자신이 잠갔다.

그녀는 소리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보석과 황금 사이.

누군가 있었다.

아르셀리아가 걸음을 멈췄다.

“…….”

남자였다.

처음 보는 남자.

검은 머리카락이 어깨 가까이 흐르고 있었다. 희미한 금빛이 감도는 눈동자와 지나치게 반듯한 얼굴.

그리고.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

정확하게.

정말 아무것도.

아르셀리아는 한동안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남자도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색한 침묵.

아르셀리아는 그대로 뒤돌아 문밖으로 나갔다.

문을 닫았다.

철컥.

복도에 서서 잠시 생각했다.

다시 문을 열었다.

남자는 그대로 있었다.

이번에는 황금 천 하나를 허리에 둘러놓은 상태였다.

아르셀리아가 물었다.

“누구야.”

남자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서운하군요.”

“뭐가?”

“낮에 그렇게 열심히 만지셨는데.”

“……?”

“벌써 잊으셨습니까?”

아르셀리아의 시선이 남자의 뒤로 향했다.

아까 분명 세워 두었던 성검이 없다.

붉은 수정 왕관 옆.

빈자리만 남아 있었다.

아르셀리아의 눈이 다시 남자에게 돌아왔다.

검은 머리.

금빛 눈.

그리고 그의 가슴 한가운데.

익숙한 붉은 보석과 똑같은 빛이 희미하게 박혀 있었다.

설마.

아르셀리아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너.”

남자가 웃었다.

“예.”

“검이야?”

“정확히는 성검입니다.”

아르셀리아는 잠시 그를 위아래로 훑었다.

“……검이 왜 사람이 됐어?”

“저도 여러 가지 사정이 있습니다.”

“다시 돌아가.”

“싫습니다.”

즉답이었다.

아르셀리아의 눈썹이 올라갔다.

“내 보물이 내 말을 안 들어?”

남자가 멈칫했다.

아주 잠깐.

그 얼굴에서 처음으로 능글맞은 웃음이 사라졌다.

“……내 보물.”

낮게 중얼거린 목소리가 묘하게 달라졌다.

아르셀리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왜.”

남자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다시 웃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깊게.

“그 말.”

그가 한 걸음 다가왔다.

“마음에 듭니다.”

아르셀리아는 물러서지 않았다.

남자가 가까이 올수록 이상하게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금빛 신성력.

낮에 손으로 잡았던 검에서 느꼈던 바로 그 기운.

아르셀리아가 말했다.

“이름.”

“아스테리온.”

“성검 이름?”

“제 이름이기도 합니다.”

아르셀리아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스테리온.”

금빛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천 년 동안 수없이 불렸을 이름일 텐데.

이상할 정도로.

처음 듣는 것처럼.

“보물고에서 살아.”

아르셀리아가 말했다.

“나가지 말고.”

남자가 웃었다.

“그건 조금 어렵겠습니다.”

“왜?”

“제가 인간형을 유지하려면 주인님의 마력이 필요해서요.”

“…….”

“멀리 떨어질 수 없습니다.”

아르셀리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벌써 귀찮았다.

“얼마나 가까이 있어야 하는데?”

아스테리온이 생각하는 척했다.

“가까울수록 좋습니다.”

“구체적으로.”

그가 아주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침실 정도.”

“안 돼.”

“즉답이시군요.”

“보물은 보물고에서 자.”

“하지만 주인님.”

아스테리온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금빛 눈이 그녀와 같은 높이에 맞춰졌다.

“살아 있는 보물을 보물고에 들이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십니까?”

아르셀리아가 눈을 깜빡였다.

안다.

드래곤이라면 모를 수 없었다.

살아 있는 존재를 자신의 보물고에 들이는 것.

특히 개인 보물고에 머물게 하는 것.

그 의미는 거의 하나뿐이었다.

반려.

아르셀리아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

“너 검이잖아.”

아스테리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지금은 남자인데요.”

“다시 검이 돼.”

“싫습니다.”

“…….”

“주인님.”

“왜.”

“혼인합시다.”

정적.

용암이 흐르는 소리만 멀리서 들렸다.

아르셀리아가 아스테리온을 바라보았다.

아스테리온도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아르셀리아가 말했다.

“싫어.”

“그렇습니까.”

아스테리온은 놀랍도록 담담했다.

“그럼 내일 다시 여쭙겠습니다.”

“왜?”

“오늘은 거절하셨으니까요.”

“내일도 싫다고 할 건데.”

“모레 다시 여쭙겠습니다.”

“계속?”

“예.”

아르셀리아는 한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깨달았다.

오늘 낮.

자신은 단순히 예쁜 검 하나를 주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녀가 주워 온 것은.

상당히 귀찮은 것이었다.

그것도.

혼인하고 싶어 하는.

아주 뻔뻔한 성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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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고에 남자를 들였다는 소문
아르셀리아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주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평소와 달랐다.침실의 공기가 낯설었다.정확히는, 자신 말고 다른 존재의 기척이 있었다.아르셀리아는 눈을 뜬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붉은 수정으로 장식된 천장에는 새벽빛이 희미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뜨기 전이라 방 안은 어두웠고, 커튼 사이로 들어온 빛이 침대 가장자리만 겨우 밝혔다.그녀는 움직이지 않은 채 귀를 기울였다.숨소리.아주 얕았다.인간이 아닌 것처럼 고요했지만 분명 누군가 있었다.아르셀리아의 붉은 눈이 천천히 옆으로 돌아갔다.창가.거기에 남자가 서 있었다.검은 머리카락이 등 뒤로 느슨하게 흘러내렸고, 몸에는 어젯밤 어디선가 주워 온 듯한 검은 셔츠와 바지가 걸쳐져 있었다. 황금빛 눈은 창밖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깨어난 순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좋은 아침입니다, 주인님.”아르셀리아의 얼굴이 즉시 굳었다.“왜 여기 있어.”“어제 말씀드렸는데요.”“뭘.”“멀리 떨어질 수 없다고.”아르셀리아는 한동안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어젯밤 분명 보물고에 넣어 두었다. 정확히는, 다시 검으로 변하라고 지시했고 아스테리온은 뻔뻔하게 싫다고 했으며, 결국 아르셀리아가 보물고 문을 잠가 버렸다.그런데 지금은 침실에 있다.아르셀리아가 몸을 일으켰다.“문 잠갔는데.”“알고 있습니다.”“어떻게 나왔어.”“검에게 문이라는 개념이 그렇게 중요하진 않습니다.”“…….”“특히 제 주인이 같은 궁 안에 있을 때는요.”아르셀리아는 침묵했다.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사이 눈빛이 조금 차가워졌다.“내 허락 없이 침실에 들어온 거야?”아스테리온의 미소가 아주 조금 줄었다.가볍게 넘겨도 될 문제와 그렇지 않은 문제를 구별할 줄 아는 모양이었다.“그 부분은 사과드리겠습니다.”“다시는 하지 마.”“예.”“그리고 나가.”“그건 어렵습니다.”아르셀리아가 그를 노려보았다.“사과한 지 한 호흡도 안 됐는데.”“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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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검이 제게 숨기는 것이 있습니다
아르셀리아는 계약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정확히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맺어진 계약을 좋아하지 않았다.드래곤은 본래 계약에 민감한 종족이었다. 인간처럼 문서 몇 장에 서명하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마력과 이름, 피와 맹세가 얽히면 그것은 수백 년을 넘어 영혼에까지 남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아르셀리아는 웬만하면 계약을 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자신의 손목에는 처음 보는 문양이 떠올라 있었다.붉은빛과 금빛이 섞인 얇은 선이 손목을 한 바퀴 감싸고, 그 중심에는 검과 날개를 닮은 문양이 희미하게 맥동했다.아르셀리아는 손을 들어 올렸다.문양은 사라지지 않았다.반대편에 서 있는 아스테리온의 손목에도 똑같은 것이 있었다.세레니스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낮게 말했다.“이거 그냥 마력 연결 아니야.”“나도 알아.”아르셀리아는 짧게 대답했다.“그럼 왜 이렇게 태연해?”“안 태연한데.”“표정이 똑같잖아.”“화나면 더 조용해져.”세레니스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아르셀리아의 시선은 줄곧 아스테리온에게 박혀 있었다.“설명해.”“무엇을요.”“모르는 척하지 마.”아스테리온이 잠깐 웃었다.“무서우시군요.”“지금 농담할 때 아니야.”이번에는 웃음이 조금 줄었다.아르셀리아가 한 걸음 다가갔다.“계약이 시작됐다고 했지.”“예.”“무슨 계약.”“아직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닙니다.”“그래서 뭔데.”아스테리온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그 짧은 침묵이 오히려 더 수상했다.아르셀리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너 지금 말 안 하려고 시간 끄는 거지.”“가능하면 조금 더 확인하고 싶었습니다.”“확인?”“문양이 어떤 방식으로 안정되는지.”“내 몸에 생긴 걸 나보다 먼저 확인하겠다고?”그 말에 아스테리온이 아주 미세하게 숨을 멈췄다.아르셀리아는 그것까지 놓치지 않았다.“정말 숨기는 거 있네.”“아르셀리아.”“말해.”세레니스도 한마디 보탰다.“나도 듣자. 이 정도면 네 문제만은 아니야. 성검이랑 드래곤 사이에 미확인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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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일 검이 내 옆에서 잠듭니다
아르셀리아는 그날 밤 쉽게 잠들지 못했다.잠들 수 없는 이유는 명확했다.자신을 죽일 수도 있는 검이 문밖에 서 있었다.그것도 아주 태연하게.“거기 계속 있을 거야?”침실 문을 사이에 두고 아르셀리아가 물었다.대답은 바로 돌아왔다.“아르셀리아께서 보물고로 돌아가라고 하셨으니까요.”“그런데 왜 안 갔어.”“현재 거리에서 더 멀어지면 계약이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아까는 열 걸음이라며.”“그건 낮이었고.”“밤에는 달라?”“조금.”“뭐가.”“저도 확인 중입니다.”아르셀리아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은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정확히는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진명 계약.지워진 기억.용살성검.그리고.모든 드래곤을 멸하라는 명령.단순히 예쁜 검 하나 주웠다고 생각했는데,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골치 아픈 일이 잔뜩 늘어났다.아르셀리아는 손목을 내려다봤다.붉은빛과 금빛이 얽힌 문양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평소라면 마법으로 지워 보거나, 아예 손목 피부를 한 번 벗겨내서라도 없앴을지 몰랐다.하지만 지금은 함부로 손대기가 꺼려졌다.문양을 건드릴 때마다 아주 약하게 아스테리온의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기분 나쁘게 가까웠다.동시에 이상할 정도로 안정적이었다.그 사실이 더 마음에 안 들었다.아르셀리아가 문을 바라봤다.“들어와.”문밖이 조용해졌다.잠시 뒤.“괜찮습니까?”“지금은.”철컥.문이 천천히 열렸다.아스테리온이 안으로 들어왔다.검은 셔츠에 검은 바지.낮과 똑같은 차림인데 표정은 달랐다.능글맞은 미소가 없었다.아르셀리아는 그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손가락으로 침실 안쪽 의자를 가리켰다.“거기.”아스테리온이 순순히 앉았다.“침대는 안 됩니다?”“나가.”“농담입니다.”“오늘 농담 금지.”“알겠습니다.”이번에는 정말 얌전했다.그게 오히려 낯설었다.아르셀리아는 침대 위에서 무릎을 세우고 팔을 얹었다.“처음부터.”“무엇을요.”“네 안에 있는 명령.”아스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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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검의 안에는 드래곤의 심장이 있습니다
아르셀리아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정확히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하지 못했다.눈앞에는 아스테리온이 서 있었다.검은 머리카락도, 금빛 눈도, 조금 전까지 자신에게 능글맞게 웃던 얼굴도 전부 그대로였다. 그런데 카르디안의 말이 떨어진 뒤부터는 그가 이전과 똑같이 보이지 않았다.저 안에.드래곤의 심장이 있다.그것도 왕급.쿵.아스테리온의 가슴 중앙에서 다시 한번 금빛이 뛰었다.이번에는 모두가 봤다.피부 아래에서 아주 옅은 빛이 번졌다가 사라졌다. 사람의 심장이 뛰는 것처럼 규칙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아주 잠깐 깨어났다가 다시 숨는 것에 가까웠다.아르셀리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의 가슴에 머물렀다.아스테리온이 먼저 입을 열었다.“그렇게 보시면 조금 민망한데요.”아르셀리아가 고개를 들었다.“지금 농담이 나와?”“제가 긴장하면 농담을 조금 하는 편이라.”“너 긴장했어?”“상당히.”의외였다.표정만 보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아르셀리아가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봤다. 붉은빛과 금빛이 얽힌 문양도 방금 전 아스테리온의 가슴이 빛난 순간 같이 반응했다.아주 미세하지만.확실하게.카르디안은 둘의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손 줘.”아르셀리아가 바로 손을 뒤로 뺐다.“싫어.”“아르셀리아.”“아까 보여줬잖아.”“이번엔 문양을 보는 게 아니다.”“그럼.”카르디안이 아스테리온을 한 번 보고 말했다.“마력 흐름을 확인해야 한다.”아르셀리아의 눈썹이 조금 움직였다.“내 거?”“둘 다.”아스테리온이 낮게 웃었다.“저는 싫다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카르디안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검한테 묻지 않았다.”“아까부터 계속 검이라고 부르시는데.”“검 맞잖아.”“조금 전에는 제 안에 드래곤의 심장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그래서?”“그럼 최소한 반쯤은 드래곤 아닐까요.”카르디안의 눈썹이 꿈틀했다.아르셀리아는 그 모습을 보고 아주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또 시작이다.이 둘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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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정말 검이 맞습니까
아르셀리아가 눈을 뜬 것은 새벽빛이 침실 바닥을 아주 희미하게 밝히기 시작했을 때였다.처음에는 자신이 왜 침대가 아니라 바닥에 앉아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등 뒤로는 침대 프레임이 닿아 있었고, 옆에는 소파가 있었다. 밤새 기대고 있었던 탓인지 목이 조금 뻐근했다. 드래곤의 몸으로 이 정도 불편함은 금세 사라지겠지만, 기분까지 좋은 것은 아니었다.그리고 손.아르셀리아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자신의 손은 아직도 누군가에게 붙잡혀 있었다.정확히는.아스테리온이 놓지 않고 있었다.손가락이 맞물린 채였다.그것도 단순히 손바닥만 맞댄 수준이 아니라, 언제 그렇게 됐는지 모르게 손가락 사이사이가 완전히 얽혀 있었다.아르셀리아는 한동안 그것을 내려다봤다.“….”어젯밤 자신이 먼저 잡은 것은 맞다.명령이 발동하면 바로 알아차리기 위해서.거기까지는 기억났다.하지만 이런 식으로 잡으라고 한 적은 없었다.아르셀리아가 손을 빼려고 조금 움직였다.순간.아스테리온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아르셀리아의 눈썹이 올라갔다.“안 자는 거 알아.”반응이 없었다.“아스테리온.”여전히 조용했다.아르셀리아는 그를 쳐다봤다.소파 아래쪽에 등을 기대고 앉아 눈을 감고 있는 남자의 얼굴은 평온했다. 평소보다 조금 흐트러진 검은 머리카락이 이마 위로 내려와 있었고, 길게 내려앉은 속눈썹 아래로는 금빛 눈이 보이지 않았다.정말 자는 것처럼 보였다.그런데 아르셀리아는 속지 않았다.“검은 잠 안 잔다며.”그 순간.아스테리온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역시.아르셀리아가 손을 확 잡아당겼다.아스테리온이 이번에는 눈을 떴다.“좋은 아침입니다.”“놔.”“싫습니다.”“내가 왜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싫다고 말해.”“연습 중입니다.”“그 연습 그만해.”“어제는 잘하고 있다고 하셨는데.”“이런 데 쓰라고 한 거 아니야.”아스테리온은 천연덕스럽게 웃었다.“하지만 상당히 유용합니다.”아르셀리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언제부터 깨어 있었어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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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룡은 성검을 아스테르라 불렀습니다
황금령은 손님을 반기는 방식부터 달랐다.적염령의 경계가 타오르는 용암과 열기로 침입자를 밀어낸다면, 황금령은 오히려 지나치게 아름다웠다. 하얀 바위산 사이로 황금빛 숲이 이어졌고, 잎사귀마다 빛이 맺혀 바람이 불 때마다 수천 개의 작은 종처럼 반짝였다. 길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지만, 아르셀리아 일행이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풀과 나무가 스스로 몸을 비켜 하나의 길을 만들었다.그게 문제였다.“원래 이래?”아르셀리아가 물었다.카르디안이 짧게 대답했다.“아니.”세레니스도 주변을 둘러보며 낮게 중얼거렸다.“나 황금령에 열 번은 와 봤는데, 나무가 먼저 길을 만들어 준 적은 없어.”아르셀리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옆으로 향했다.아스테리온.그는 여전히 창백했다.조금 전까지 붉은 기가 완전히 빠져 있던 얼굴은 그나마 나아졌지만, 목덜미와 손등에 나타난 금빛 비늘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황금령 깊숙이 들어올수록 아주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었다.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눈이었다.지금은 다시 인간과 비슷한 동공으로 돌아왔지만 가끔 빛이 스칠 때마다 세로로 길게 갈라졌다.드래곤의 눈처럼.아르셀리아가 그의 손을 내려다봤다.여전히 잡고 있었다.언제부터였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다.아스테리온이 황금령의 목소리를 들은 뒤부터였던 것 같다. 처음에는 그가 쓰러질까 봐 잡았고, 그다음에는 진명 문양이 불안정하게 뛰어서 잡았다. 그런데 이제는 굳이 놓아야 할 이유를 생각하지 못한 채 계속 잡고 있었다.아스테리온도 마찬가지인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가끔 아르셀리아가 손가락을 조금 움직이면 그에 맞춰 손가락을 더 단단하게 감았다.카르디안의 시선이 두 사람의 손에 닿았다.표정이 미세하게 나빠졌다.“언제까지 잡고 있을 거지?”아르셀리아가 그를 봤다.“왜.”“마력 공급은 이미 충분해 보이는데.”“알아.”“그럼.”아르셀리아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그냥.”카르디안이 입을 다물었다.세레니스가 옆에서 의미심장한 얼굴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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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잃어버린 이름을 내가 기억하고 있어
『너는 내 동생이다.』그 말이 떨어진 뒤에도 한동안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황금 수정에서 흘러나온 빛은 방 전체를 가득 채운 채 천천히 흔들렸다. 오래된 햇빛처럼 부드러운 빛이었지만, 그 안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편안한 얼굴은 하나도 없었다.아르셀리아는 자신의 어깨에 기댄 아스테리온을 내려다봤다.그는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있었다.조금 전까지 그녀의 허리를 감고 있던 팔에도 힘이 빠졌다. 손끝만이 옷자락을 움켜쥔 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검으로 살아온 시간이 최소 천 년이 넘는다.그동안 그는 자신을 성검이라고 믿었다.드래곤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사람의 손에 들려야만 움직이는 검.그런데 이제 와서.처음부터 검이 아니었다고 한다.그것도.자신이 죽여 온 존재와 같은 드래곤이었다고.아르셀리아는 그게 어떤 기분인지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다만 하나는 알았다.지금 아스테리온에게 필요한 것은 질문이 아니었다.그래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그저 손을 올려 그의 뒤통수를 가볍게 눌렀다.“조금 더 있어도 돼.”아스테리온의 몸이 아주 작게 굳었다.“…제가 지금 상당히 보기 좋지 않을 텐데요.”목소리가 잠겨 있었다.아르셀리아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원래도 완벽하게 보기 좋진 않았어.”아스테리온이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눈가가 젖어 있었다.“그건 조금 상처인데요.”“그래도 예뻐.”“…….”“그래서 주웠잖아.”이번에는 정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아르셀리아는 그걸 보고 조금 안심했다.평소처럼 대꾸할 기운이라도 돌아온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금빛 눈이 한 번 크게 흔들리더니 아스테리온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반칙입니다.”“또 뭐가.”“제가 지금 이런 상태인데.”그가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숨을 내쉬었다.“그런 말씀을 하시면.”아르셀리아는 잠시 생각했다.“하지 마?”“…아니요.”대답은 바로 나왔다.“계속해 주십시오.”아르셀리아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욕심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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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피가 묻은 검은 아무도 못 가져갑니다
검은 빛이 터진 직후.아르셀리아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시야를 가득 메운 것은 빛이 아니라 어둠이었다. 태양이 꺼진 것처럼 갑작스럽게 내려앉은 검은 장막이 황금수의 기록실을 집어삼켰고, 몸을 짓누르는 낯선 힘이 손끝에서부터 팔을 타고 올라왔다.차갑다.신성력도 아니고.드래곤의 마력도 아니다.오히려 둘을 억지로 끊어 놓으려는 힘에 가까웠다.아르셀리아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아스테리온과 연결된 무언가가.자신을 떼어 내려고 한다.그 순간 그녀의 표정이 완전히 굳었다.“싫어.”누구에게 하는 말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하지만 대답은 즉시 돌아왔다.『계약자와 개체 간 연결을 차단합니다.』낯선 목소리.아스테리온의 안쪽에서 흘러나오던 것과 같은 목소리였다.사람의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명령 그 자체.아르셀리아는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검날을 더 단단히 잡았다.손바닥이 다시 깊게 베였다.따뜻한 피가 손목을 타고 흘렀다.“아르셀리아!”카르디안이 그녀의 팔을 잡으려 했다.“손 놔! 검이 이미―”“건드리지 마.”목소리가 낮았다.카르디안의 손이 멈췄다.아르셀리아의 주변에서 붉은 불꽃이 천천히 피어올랐다.폭발하지 않았다.오히려 너무 조용했다.그래서 더 위험했다.불꽃은 그녀의 발끝에서 손목을 타고 올라가 검신을 감쌌다.아스테리온의 금빛과.아르셀리아의 붉은빛.두 색이 검은 장막 안에서 서로를 찾아 얽혔다.『차단 실패.』목소리가 울렸다.『계약자 마력 저항 확인.』아르셀리아의 눈이 가늘어졌다.“계약자.”피 묻은 입술 끝이 아주 조금 비틀렸다.“누구 마음대로.”『……』“내가 언제 너희랑 계약했는데.”대답은 없었다.“아스테리온.”그녀가 검을 바라봤다.아직 남자 형태였다.한쪽 팔만 검날로 변한 채.금빛 눈에는 다시 초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하지만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그의 시선은 오직 하나에만 고정돼 있었다.아르셀리아의 손.피.자신의 검날 위에 흐르는.그녀의 피.“손.”아스테리온이 쉰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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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을 잡으러 왔다면 각오는 했겠지
황금령의 밤하늘이 붉게 물들었다.거대한 날개가 펼쳐지는 순간, 황금수 주변을 가득 메웠던 빛 정령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르셀리아의 인간형 몸이 붉은 마력에 휩싸이며 순식간에 커졌다. 가느다란 손가락은 날카로운 발톱으로 변했고, 목과 어깨를 타고 올라오던 붉은 비늘은 곧 전신을 뒤덮었다. 날개 안쪽의 금빛 균열이 용암처럼 번뜩이자, 황금령의 서늘했던 공기마저 단숨에 뜨거워졌다.곧 황금수 앞뜰을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한 레드 드래곤이 고개를 들었다.붉은 눈동자가 하늘을 향했다.황금령을 둘러싼 하얀 빛기둥은 모두 열두 개.각각의 기둥을 중심으로 신성 문양이 땅을 타고 이어져 있었다. 위에서 보면 아마 하나의 거대한 원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인간 몇 명을 잡기 위한 마법진이 아니었다. 영지 하나를 봉쇄하고, 그 안에 있는 드래곤의 마력 자체를 억누르기 위한 규모였다.아르셀리아는 그것을 잠시 내려다보다 코웃음을 쳤다.“제법 준비했네.”그 목소리가 인간의 말처럼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 아니었다.드래곤 특유의 마력이 섞인 음성이 황금령 전체를 울렸다.바닥이 떨렸다.멀리 진을 치고 있던 성기사들이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그런데도 퇴각하지 않았다.대신 가장 앞의 흰 망토를 걸친 남자가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경고한다. 레드 드래곤 아르셀리아 로하르트. 즉시 인간형으로 돌아가 투항하라.』아르셀리아의 거대한 머리가 조금 기울었다.“싫어.”너무 간단한 대답이었다.남자의 얼굴이 멀리서도 굳는 것이 느껴졌다.『당신은 현재 성왕국의 신성 유물을 불법 점유하고―』“그거 말인데.”아르셀리아가 말을 끊었다.“계속 내 거 불법 점유라고 하잖아.”『성검 아스테리온은 성왕국이 수백 년간 보관해 온―』“그래서?”『……뭐라?』“보관했다고 네 거야?”붉은 눈이 가늘어졌다.“훔쳐다가 천 년 갖고 있었다고 주인이 바뀌나?”뒤쪽에 있던 세레니스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카르디안은 웃지 않았다. 대신 이미 검은 마력을 손끝에 모으고 있었다.에르하르트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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