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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침실에 남자가 둘은 필요 없습니다

Author: 유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2 02:07:56

화염궁으로 돌아온 첫날 밤.

아르셀리아는 자신의 침실 앞에서 두 남자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한 명은 검은 머리에 금빛 눈.

다른 한 명은 검은 머리에 검은 눈.

색만 놓고 보면 비슷했지만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아스테리온은 아주 자연스럽게 침실 문 옆에 서 있었다. 마치 원래부터 이 방을 사용하던 사람처럼 태연했다. 반면 카르디안은 팔짱을 낀 채 그런 아스테리온을 노골적으로 못마땅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르셀리아는.

피곤했다.

“왜 둘 다 여기 있어.”

카르디안이 먼저 대답했다.

“의회에서 정한 동행 감시.”

“그래서.”

“네가 자는 동안도 주변을 확인해야 한다.”

아르셀리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가 잘 때까지?”

“그래.”

“안 돼.”

“뭐가.”

“귀찮아.”

카르디안이 한숨을 쉬었다.

“네 편의를 위해 온 게 아니다.”

“그럼 누구 편의인데.”

“칠색 의회.”

“내 집이잖아.”

“그러니까 더 문제다. 신전에서 이미 화염궁 위치와 구조를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그 말에는 아르셀리아도 바로 반박하지 못했다.

자신은 화염궁의 결계를 믿었다.

적염령에서도 가장 깊은 곳.

용암 계곡과 붉은 절벽 사이에 숨겨진 궁전.

허락받지 않은 인간이 들어오기 어려운 곳.

하지만 얼마 전까지도 신전이 아스테리온의 위치를 감지했고, 황금령까지 추적대를 보내지 않았던가.

그래도.

“침실까지는 안 돼.”

아르셀리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카르디안이 눈썹을 올렸다.

“왜.”

“내 방이니까.”

“저 검은 들어가면서.”

아르셀리아가 즉시 옆을 봤다.

아스테리온이 얌전히 서 있었다.

너무 얌전해서 더 수상했다.

“얘는.”

아르셀리아가 잠시 말을 고르다가 말했다.

“마력 때문에.”

“손 잡고 충전하면 보물고에서도 버틴다며.”

아스테리온이 아주 부드럽게 끼어들었다.

“요즘은 균열 때문에 인간형 유지가 불안정합니다.”

카르디안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서 꼭 침실 안이어야 하나.”

“주인님의 마력에 가장 가까운 곳이니까요.”

“보물고가 더 가까울 수도 있지.”

“침실이 더 가깝습니다.”

“거리 계산이라도 했나?”

“예.”

카르디안의 표정이 굳었다.

아르셀리아도 고개를 돌렸다.

“했어?”

아스테리온이 너무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인간형으로 변했을 때부터요.”

“왜.”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은 멀쩡했다.

정말 합리적이었다.

그런데 왜.

아르셀리아는 묘하게 납득하기 싫었다.

카르디안이 낮게 말했다.

“저건 핑계다.”

아스테리온이 웃었다.

“절 상당히 잘 아시는군요.”

“알고 싶지 않다.”

“저도 비슷합니다.”

“둘 다.”

아르셀리아가 손을 들었다.

“그만.”

두 남자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아르셀리아는 잠깐 고민했다.

카르디안은 의회 때문에 머물러야 한다.

아스테리온은 현재 상태 때문에 가까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카르디안.”

“왜.”

“내 방 앞 복도.”

카르디안의 미간이 좁아졌다.

“거기서 자라는 거냐?”

“아니.”

“그럼.”

“옆방 써.”

카르디안이 문 하나 건너편을 바라봤다.

원래 비어 있는 손님방.

“문제 생기면 바로 올 수 있잖아.”

“그 정도면 된다.”

아르셀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스테리온을 봤다.

“너는 소파.”

“예.”

너무 순순하다.

아르셀리아가 의심스럽게 쳐다봤다.

“왜 오늘은 안 우겨.”

“무엇을요.”

“침대.”

카르디안의 얼굴이 순간 험악해졌다.

아스테리온은 오히려 눈을 휘었다.

“제가 침대를 요구한 적이 있었습니까?”

“계속 보물이 왜 창고에서 자냐고 했잖아.”

“그건 침실을 요구한 겁니다.”

“같은 말 아니야?”

“상당히 다릅니다.”

카르디안이 낮게 물었다.

“뭐가 다른데.”

아스테리온이 그를 보며 아주 친절하게 대답했다.

“침실에 있는 것과 침대에 있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까.”

“나가.”

카르디안이 말했다.

“여긴 네 방 아니야.”

“저도 알고 있습니다.”

아르셀리아가 이마를 짚었다.

“진짜 피곤하다.”

두 사람 모두 조용해졌다.

그 순간만큼은.

조금.

아주 조금.

아르셀리아는 세레니스도 데려올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적어도 저 둘 사이에 세레니스를 끼워 넣으면 둘이 직접 싸우는 시간은 줄어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니 아닐 것 같았다.

세레니스는 구경했을 것이다.

더 부추기면서.

아르셀리아는 바로 생각을 접었다.

“나 잘 거야.”

“벌써?”

카르디안이 물었다.

“피곤해.”

“저녁은.”

“먹었어.”

“세 숟갈.”

“먹은 거잖아.”

“그걸 식사라고 하나?”

아르셀리아가 인상을 썼다.

“왜 네가 내 밥까지 봐.”

카르디안이 대답하기 전에.

아스테리온이 말했다.

“저도 적다고 생각합니다.”

아르셀리아가 그를 봤다.

“너까지 왜.”

“몸을 회복하려면 잘 드셔야 합니다.”

“나 안 다쳤어.”

“손.”

“나았어.”

“뺨.”

“이것도 다 나았어.”

“사냥진에서 마력 많이 쓰셨습니다.”

“드래곤이잖아.”

아스테리온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말로 전부 넘어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아르셀리아가 멈췄다.

카르디안도 잠깐 아스테리온을 봤다.

아스테리온은 장난기 없는 얼굴이었다.

“강한 것과 지치지 않는 건 다릅니다.”

아르셀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저런 얼굴로 말하면 듣기 싫지가 않았다.

조금 귀찮긴 했지만.

“뭐 먹어야 돼.”

아스테리온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조금 더.”

“뭘.”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너 아직 인간형 불안정해.”

“그럼.”

카르디안이 끼어들었다.

“내가 가져오지.”

아스테리온의 표정이 즉시 굳었다.

“괜찮습니다.”

“왜.”

“제가 하겠습니다.”

“방금 불안정하다며.”

“주인님 손을 조금만 잡고 가면 됩니다.”

아르셀리아가 둘을 번갈아 봤다.

“그냥 정령 부를게.”

둘 다 입을 다물었다.

아르셀리아는 문 옆의 작은 불꽃 종을 흔들었다.

딩.

잠시 후.

불 정령 하나가 머리만 빼꼼 내밀었다.

“부르셨어요?”

“먹을 거.”

정령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가씨 더 드시려고요?”

“응.”

“좋아요!”

녀석은 신나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던 아르셀리아가 문득 눈을 가늘게 떴다.

“쟤 왜 저렇게 좋아해.”

카르디안이 대답했다.

“네가 요즘 제대로 안 먹었나 보지.”

아르셀리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랬나.”

아스테리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주 미묘한 얼굴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왜.”

아르셀리아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뭔데.”

“제가 온 뒤에.”

잠시.

“조금은 달라졌나 싶어서요.”

“뭐가.”

“당신 생활.”

아르셀리아가 눈을 깜빡였다.

“어떻게.”

“전에는 식사도 자주 거르고.”

카르디안이 바로 말했다.

“맞아.”

“밤에도 보물고에 있다가 아무 데서나 잠들고.”

“그것도 맞다.”

아르셀리아가 카르디안을 노려봤다.

“왜 네가 대답해.”

“사실이니까.”

아스테리온이 말을 이었다.

“요즘은 그래도 침실로 돌아오시고.”

아르셀리아가 입을 다물었다.

“식사도 제가 같이 있으면 조금 더 드십니다.”

“네가 계속 쳐다보잖아.”

“효과가 있군요.”

“귀찮아서 먹는 거야.”

“결과가 중요합니다.”

아르셀리아는 더 대꾸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자신은 분명 아스테리온을 주운 뒤 귀찮은 일이 늘었다.

아침마다 침실에 사람이 있고.

식사를 같이 하고.

마력 때문에 손을 잡고.

검을 닦으려다 이제는 허락을 물어야 하고.

혼자 있던 공간에.

계속 다른 존재가 끼어들었다.

원래라면 싫어야 했다.

그런데.

정작 지금 생각해 보니.

예전의 화염궁이 어땠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너무 조용했던 것 같기도 했다.

아르셀리아는 그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둘이 그녀를 봤다.

“먹고 자.”

“누가.”

카르디안이 물었다.

“다.”

“나는 손님인데.”

“그래서.”

아스테리온이 웃었다.

“화염궁에서는 주인님 말씀이 법인가 봅니다.”

아르셀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카르디안은 반박하려다 그냥 포기했다.

야식은 생각보다 거창했다.

불 정령들이 신이 난 모양이었다.

붉은 과일을 졸인 소스가 올라간 고기.

구운 뿌리채소.

따뜻한 빵.

용암 열로 익힌 향신 버섯.

그리고 아르셀리아가 좋아하는 붉은 포도즙.

“너무 많아.”

아르셀리아가 말했다.

정령들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아스테리온이 의자를 빼 줬다.

“앉으십시오.”

“왜.”

“먹기로 하셨잖습니까.”

“서서도 먹을 수 있어.”

“싫습니다.”

아르셀리아가 눈썹을 올렸다.

“네가?”

“예.”

“왜.”

“제 앞에서 대충 드시는 것 보기 싫습니다.”

“싫은 거 잘 말하네.”

“주인님이 가르쳐 주셨으니까요.”

아르셀리아는 결국 앉았다.

카르디안도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아스테리온은 아르셀리아 옆.

그 배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카르디안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세 사람은 조용히 식사를 했다.

정말 잠시만.

“아르셀리아.”

카르디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왜.”

“내일부터 화염궁 결계를 다시 볼 거다.”

“왜.”

“신전 쪽에서 추적 흔적이 남아 있을 수 있어.”

“내 결계 튼튼한데.”

“그걸 믿고 방치하면 안 돼.”

“방치한 적 없어.”

“마지막으로 결계 구조 전체를 점검한 게 언제지?”

아르셀리아는 포크를 든 채 멈췄다.

“…최근.”

카르디안이 눈을 가늘게 떴다.

“언제.”

“최근.”

“몇 년.”

“…….”

“아르셀리아.”

“백 년 안쪽.”

카르디안이 눈을 감았다.

아스테리온은 웃음을 참았다.

“웃지 마.”

“아직 안 웃었습니다.”

“얼굴이.”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카르디안이 한숨을 쉬었다.

“내일 내가 본다.”

“맘대로 해.”

“허락한 거다.”

“응.”

“결계 핵에도 들어간다.”

아르셀리아의 포크가 멈췄다.

“거긴 안 돼.”

카르디안이 바로 그녀를 봤다.

“왜.”

“내 개인 공간이야.”

“결계 핵인데.”

“보물도 있어.”

카르디안의 얼굴이 굳었다.

“왜 결계 핵에 보물을 넣어 놨지?”

“안전하잖아.”

“무슨 보물.”

“여러 개.”

아스테리온이 관심을 보였다.

“제가 모르는 보물고입니까?”

아르셀리아가 바로 말했다.

“넌 더 안 돼.”

아스테리온의 표정이 조금 상했다.

“왜 저는 더 안 됩니까.”

“넌 보물이잖아.”

“…예?”

“보물이 다른 보물 보관실까지 알 필요 있어?”

아스테리온은 잠시 말을 잃었다.

카르디안이 처음으로 아주 작게 웃었다.

아스테리온이 그를 봤다.

“지금 웃으셨습니까.”

“아니다.”

“분명히.”

“기분 탓이다.”

아르셀리아가 빵을 뜯으며 말했다.

“아무튼 결계 핵은 내가 같이 갈 거야.”

카르디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된다.”

“아스테리온도.”

카르디안의 얼굴이 바로 굳었다.

“왜.”

아르셀리아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떨어지면 인간형 흔들리잖아.”

“검으로 두면 되지.”

아스테리온이 말했다.

“저도 가겠습니다.”

“너한테 안 물었다.”

“아르셀리아가 허락했습니다.”

카르디안이 아르셀리아를 봤다.

“꼭 데려가야 하나.”

“응.”

“왜.”

아르셀리아가 잠깐 고민했다.

마력 때문.

그 이유면 충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냥.”

카르디안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르셀리아는 포도즙을 마셨다.

“같이 가는 게 편해.”

옆에서 아무 소리가 없었다.

아르셀리아가 아스테리온을 봤다.

그는 완전히 멈춰 있었다.

“왜.”

“방금.”

“뭐.”

“제가 같이 있는 게 편하다고 하셨습니까?”

아르셀리아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응.”

아스테리온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다시.”

“싫어.”

“한 번만.”

“싫어.”

“정확히 듣지 못했습니다.”

“잘 들었잖아.”

“확신이 필요합니다.”

“안 해.”

아스테리온이 아쉬운 얼굴로 물러났다.

카르디안은 그 모습을 보며 묘한 얼굴을 했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아르셀리아를 한 번 봤다.

그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아무것도 아니다.”

“뭔데.”

“말하면 화낼 거다.”

“그럼 하지 마.”

카르디안은 정말 하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

식사를 마치고.

카르디안은 결국 옆방으로 갔다.

아르셀리아는 침실로 들어왔다.

아스테리온도 따라왔다.

문이 닫히자.

갑자기 조용해졌다.

회의장도.

정령들도.

카르디안도 없었다.

둘만.

아르셀리아는 드레스를 벗기 위해 손을 올리다 멈췄다.

그리고 뒤를 돌아봤다.

아스테리온이 소파 쪽으로 가고 있었다.

“너.”

그가 돌아봤다.

“예.”

“거기 있어.”

아스테리온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

“왜요.”

“옷 갈아입게.”

그는 한 박자 늦게 이해했다.

“아.”

아르셀리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뭐.”

“아무것도 아닙니다.”

“뒤 돌아.”

아스테리온은 얌전히 돌아섰다.

“눈 감아.”

“뒤를 보고 있는데요.”

“그래도.”

“알겠습니다.”

눈까지 감았다.

아르셀리아는 옷장 앞으로 갔다.

정령을 부를 수도 있었지만.

귀찮았다.

혼자 갈아입는 데 익숙했다.

그런데 오늘 입은 드레스는 의회용 정장이라 등 뒤에 끈이 복잡하게 묶여 있었다.

손을 뒤로 뻗었다.

한 번.

두 번.

안 닿는다.

아르셀리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다시.

손끝에 끈이 걸렸다가 빠졌다.

“…….”

아스테리온이 물었다.

“문제가 있습니까?”

“없어.”

다시.

툭.

끈이 빠졌다.

“아르셀리아.”

“가만있어.”

“예.”

몇 초.

또 실패.

아스테리온이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도와드릴까요?”

“안 돼.”

즉답.

“왜.”

“너 남자잖아.”

정적.

아스테리온이 천천히 고개를 아주 조금 기울였다.

눈은 감은 채였다.

“좋은 변화군요.”

아르셀리아가 멈췄다.

“뭐가.”

“저를 남자로 인식해 주셔서.”

“그 말이 왜 그렇게 돼.”

“처음에는 검이라고만 하셨으니까요.”

아르셀리아가 입을 다물었다.

맞았다.

처음에는 정말 그랬다.

예쁜 검.

사람 모습은 덤.

그 정도.

지금은.

아스테리온을 검이라고만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말이 너무 많고.

웃는 얼굴도 알고.

화난 얼굴도 알고.

무서워하는 것도 봤고.

손의 체온도 안다.

검을 닦을 때 왜 떨었는지도.

아르셀리아는 괜히 끈을 더 세게 잡아당겼다.

툭.

매듭이 이상하게 꼬였다.

“아.”

아스테리온이 바로 물었다.

“왜요.”

“꼬였어.”

“무엇이.”

“끈.”

잠시.

“제가 풀겠습니다.”

“안 돼.”

“그럼 밤새 그 옷을 입고 주무시려고요?”

아르셀리아가 뒤를 돌아봤다.

아스테리온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눈 감고 할 수 있어?”

“아마도요.”

“어떻게.”

“손으로 찾으면 됩니다.”

그 말이.

왜 이상하게 들리는지.

아르셀리아는 잠깐 멈췄다.

“그냥 정령 부를게.”

그러자.

아스테리온이 말했다.

“아르셀리아.”

“왜.”

“저를 그렇게까지 경계하십니까?”

“뭘.”

“옷 끈 하나 푸는 것도 못 맡기실 만큼.”

그 목소리는 장난스럽지 않았다.

아르셀리아가 그를 봤다.

등.

검은 머리.

곧게 선 어깨.

아스테리온은 정말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기다리고 있었다.

아르셀리아가 말했다.

“경계하는 건 아닌데.”

“그럼.”

“그냥.”

잠시.

“이상하잖아.”

“무엇이요.”

“남자가 내 옷을 푸는 거.”

아스테리온이 아주 오래 침묵했다.

아르셀리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왜 대답 안 해.”

“…생각보다.”

“뭐.”

“상당히 의식하고 계시는군요.”

아르셀리아의 귀가 뜨거워졌다.

“정령 부른다.”

“잠깐.”

아스테리온이 급하게 말했다.

“안 놀리겠습니다.”

“이미 했어.”

“정말 안 하겠습니다.”

“못 믿어.”

“이번에는 진심입니다.”

아르셀리아는 잠시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한숨.

“눈 뜨지 마.”

“예.”

“뒤돌아보지도 마.”

“예.”

“손만.”

아스테리온의 목소리가 아주 낮아졌다.

“알겠습니다.”

아르셀리아는 그의 등 뒤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뒤로 돌아섰다.

서로 등을 마주한 채.

“손.”

그가 천천히 오른손을 뒤로 뻗었다.

아르셀리아는 그 손을 잡아 자신의 등 쪽으로 가져갔다.

순간.

둘 다 멈췄다.

손끝이.

드레스 위.

등 중앙에 닿았다.

아스테리온의 손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

“여기.”

아르셀리아가 말했다.

“매듭.”

“예.”

그의 손끝이 천천히 움직였다.

천.

끈.

매듭.

찾는 동작은 정말 조심스러웠다.

괜히 피부에 닿지 않으려는 것처럼.

아르셀리아는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씩 매듭이 풀릴수록.

드레스가 아주 조금 느슨해졌다.

등 뒤로 아스테리온의 체온이 느껴졌다.

닿지는 않았다.

그런데 가까웠다.

너무.

“아르셀리아.”

“왜.”

“이 매듭.”

그의 목소리가 조금 낮았다.

“정말 복잡합니다.”

“의회 옷이야.”

“다시는 입지 마십시오.”

아르셀리아가 웃었다.

“왜.”

“풀기 힘듭니다.”

“누가 또 네가 푼대.”

손이 멈췄다.

아르셀리아도.

뒤늦게.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아스테리온이 조용히 말했다.

“그러게요.”

목소리에 웃음기가 돌아왔다.

“다음에도 제가 풀면 좋겠습니다.”

“아스테리온.”

“안 놀린다고 했습니다.”

“방금 놀렸잖아.”

“희망을 말한 겁니다.”

“그게 더 나빠.”

마지막 매듭.

툭.

풀렸다.

아스테리온이 바로 손을 거뒀다.

“됐습니다.”

아르셀리아가 드레스를 앞쪽에서 잡았다.

“응.”

“이제 눈 떠도 됩니까?”

“안 돼.”

“왜.”

“내가 옷 갈아입어야 하잖아.”

“아.”

아르셀리아는 급히 옷장 안쪽 가림막 뒤로 들어갔다.

편한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에야 말했다.

“이제.”

아스테리온이 눈을 떴다.

그리고 돌아봤다.

잠깐.

정말 잠깐.

금빛 눈이 멈췄다.

아르셀리아가 자신의 옷을 내려다봤다.

목선이 조금 넓은 붉은 실크 잠옷.

평소에 입는 것.

“왜.”

아스테리온이 눈을 피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닌데.”

“이번에는.”

그가 소파 쪽으로 걸어갔다.

“모르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아르셀리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

“전에 검 닦을 때도 그랬잖아.”

아스테리온의 걸음이 아주 조금 빨라졌다.

아르셀리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

“주무시죠.”

“너 지금.”

“피곤합니다.”

“성검은 잠 안 잔다며.”

“오늘부터 잡니다.”

“거짓말.”

“배우겠습니다.”

아르셀리아는 웃었다.

조금.

정말 조금.

재밌었다.

그런데.

그 순간.

아스테리온의 몸이 휘청했다.

웃음이 바로 사라졌다.

“아스테리온.”

아르셀리아가 다가갔다.

그는 소파 팔걸이를 잡았다.

“괜찮―”

붉은 눈이 차갑게 올라왔다.

아스테리온이 입을 다물었다.

“미안합니다.”

“뭐가.”

“방금 금지된 말을 할 뻔했습니다.”

아르셀리아가 그의 팔을 잡았다.

체온이 낮았다.

“마력?”

“조금.”

“앉아.”

그가 순순히 앉았다.

아르셀리아도 옆에 앉았다.

손을 내밀었다.

“잡아.”

아스테리온이 손을 잡았다.

붉은 마력이 천천히 흘러갔다.

금빛이 손목에서부터 올라왔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했다.

평소보다 더 많이 필요했다.

아르셀리아가 눈썹을 찌푸렸다.

“왜 이렇게 안 차.”

아스테리온도 이상한 듯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봤다.

“모르겠습니다.”

“아파?”

“아니요.”

“균열?”

“그건 아까보다 안정됐습니다.”

아르셀리아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 더 가까이 앉았다.

손만으로 부족하면.

거리.

그게 원래 원리였다.

아스테리온의 어깨와 자신의 어깨가 닿았다.

금빛이 조금 더 안정됐다.

“이제.”

“조금 나아졌습니다.”

아르셀리아가 더 가까이 붙었다.

“지금.”

“많이.”

“그럼 이렇게 있어.”

아스테리온이 천천히 그녀를 봤다.

너무 가까웠다.

“아르셀리아.”

“왜.”

“혹시.”

“응.”

그가 아주 천천히 말했다.

“각인이 더 깊어진 뒤 필요한 거리가 줄어든 게 아니라.”

“아니라?”

“반대로.”

금빛 눈이 가늘어졌다.

“필요한 접촉이 늘어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르셀리아가 굳었다.

“뭐?”

“마력량보다.”

아스테리온의 시선이.

맞잡은 손으로 향했다.

그리고.

닿은 어깨.

“접촉 자체가.”

아르셀리아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다.

“설마.”

아스테리온도 잠시 말이 없었다.

둘 다.

의회에서 들은 말을 떠올렸다.

귀속.

서로를 삶 안에 어디까지 들이는가.

지나치게 친밀한 접촉은 조심하라는 경고.

아르셀리아가 천천히 물었다.

“그럼.”

“예.”

“앞으로 더 가까이 있어야 된다고?”

아스테리온의 표정이 아주 미묘해졌다.

좋아하면 안 되는 상황인데.

좋아하고 있었다.

너무 티가 났다.

아르셀리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웃지 마.”

“안 웃었습니다.”

“속으로 웃었어.”

“그것까지 아십니까.”

“얼굴에 보여.”

아스테리온이 결국 입꼬리를 올렸다.

“곤란하군요.”

“뭐가.”

“이대로라면.”

한 박자.

“혼인이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아르셀리아가 손을 놓았다.

“검으로 자.”

그 순간.

아스테리온의 몸이 바로 흐릿해졌다.

아르셀리아가 놀라 다시 잡았다.

“야!”

금빛이 복구됐다.

아스테리온이 웃음을 터뜨렸다.

“놓으시면 안 되겠습니다.”

“너 지금 일부러 그런 거 아니지?”

“맹세코.”

“뭘로.”

아스테리온이 잠깐 생각했다.

“제 검신으로.”

아르셀리아의 얼굴이 굳었다.

그건.

지금 장난으로 걸기에는 무거웠다.

“그런 걸로 맹세하지 마.”

아스테리온의 웃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알겠습니다.”

아르셀리아는 한숨을 쉬었다.

결국.

손을 놓지 않았다.

잠시 뒤.

아스테리온이 조용히 말했다.

“주인님.”

“왜.”

“오늘.”

“응.”

“소파에서 자라는 명령.”

그가 그녀의 손을 아주 조금 들어 올렸다.

“취소해 주셔야 할 수도 있습니다.”

아르셀리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왜.”

“이 거리로는.”

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밤새 버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르셀리아는 소파와.

자신의 침대를 번갈아 봤다.

그리고 다시.

아스테리온.

그 순간.

바로 옆방에서.

쿵.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카르디안이었다.

아르셀리아의 표정이 굳었다.

아스테리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들었나 봅니다.”

“뭘.”

“침대 이야기.”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하지만 곧 하실 것 같아서.”

“안 해.”

“그럼 오늘 밤 제 인간형은.”

“…….”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아르셀리아가 그를 노려봤다.

아스테리온은 세상 억울한 얼굴을 했다.

“저도 이런 방식으로 가까워지고 싶었던 건 아닙니다.”

“거짓말.”

“조금은 맞습니다.”

“아스테리온.”

그가 웃었다.

그리고.

옆방에서 카르디안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르셀리아.”

벽 너머인데도 선명했다.

“절대 안 된다.”

아르셀리아의 관자놀이가 욱신했다.

한쪽은 들어오겠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안 된다고 한다.

정작 자기 침실인데.

아르셀리아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주 진지하게 생각했다.

역시.

제 침실에 남자가 둘은 필요 없었다.

문제는.

둘 중 누구를 내보내야 하는지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아르셀리아가 벽 너머를 향해 말했다.

“카르디안.”

“왜.”

“자.”

정적.

“뭐?”

“네 방 가서 자.”

“지금 저 검을 침대에―”

“아직 안 올렸어!”

아르셀리아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아스테리온이 옆에서 낮게 말했다.

“‘아직’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르셀리아가 즉시 그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너도 조용히 해.”

아스테리온은 입이 막힌 채 웃었다.

손바닥에.

입술의 움직임이 그대로 느껴졌다.

아르셀리아의 손이 굳었다.

그리고.

아스테리온도.

순간 웃음을 멈췄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너무 가까운 거리.

아르셀리아의 손은 아직 그의 입술 위에 있었다.

아스테리온의 금빛 눈이.

천천히.

조금 깊어졌다.

아르셀리아는 그제야 손을 떼려 했다.

그런데.

그의 손이 먼저 올라왔다.

손목을 잡지는 않았다.

그저.

떨어지려는 손끝을 아주 가볍게 받쳤다.

“아르셀리아.”

목소리가 낮았다.

조금 전까지의 장난이 사라졌다.

“왜.”

“지금은.”

금빛 눈이 그녀를 바라봤다.

“제가 검이 아니라는 거.”

한 박자.

“분명히 알고 계시죠?”

아르셀리아의 심장이.

쿵.

예상보다 크게 뛰었다.

손목의 문양까지 함께 뜨거워졌다.

그 순간.

두 사람 모두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벽 너머에서 카르디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내가 아직 안 잔다.”

아르셀리아가 눈을 질끈 감았다.

아스테리온은.

고개를 숙인 채.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그날 밤.

화염궁에서 가장 먼저 강화된 것은.

신전 침입을 막는 결계가 아니라.

아르셀리아의 침실과 옆방 사이의 방음 마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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