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연회장을 채우고 있던 서늘한 마력의 잔흔이 채 가시기도 전, 저택의 깊은 회랑 너머에서는 가문의 늙은 집사와 상급 기사단원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본회의 수장과 상위 집행위원회가 완벽하게 궤멸되고, 디에고 공작마저 수치스러운 패배를 안고 물러난 지금, 제국 전체의 판도는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 그 어떤 오만한 순혈 귀족 가문도, 변방의 잔여 척살단도 이제는 가주 엘리자의 이름 앞에 납작 엎드려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처지였다.그러나 밤의 세계를 완벽하게 통치하기 위해서는 단지 피를 뿌리는 도살만으로는 부족했다.제국 모든 순혈 가문과 늑대 왕가의 잔여 세력에게 '누가 이 밤의 제국의 진짜 주인인가'를 명확히 각인시킬 거대한 의식이 필요했다. 가문의 유일한 가주이자 밤의 여왕인 엘리자와, 그녀의 곁에서 피의 사슬을 그러쥐고 있는 늑대 소년 카엘의 공식적인 혼약— 바로 '핏빛 대결혼식'이었다."가주 님, 제국 전역에서 도착한 축하 전갈과 마석 공물이 저택 창고를 메우고 있습니다."늙은 집사가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올리며 무릎을 꿇었다."본회의 멸문으로 공석이 된 밤의 수장 자리를 공식화하고, 가문과 늑대 왕가의 완전한 결합을 선포할 대결혼식의 준비가 모두 완료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국 보수파 귀족들 사이에서 늑대 포로 출신인 카엘 님을 밤의 왕으로 세우는 것에 대해 불미스러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상석의 화려한 검은 대리석 의자에 앉아 있던 엘리자가 붉은 눈동자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가주를 상징하는 붉은 로브 깃 너머로, 그녀의 차가운 피부가 은은한 촛불 빛을 받아 하얗고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엘리자는 서늘한 손가락으로 찻잔 둘레를 살포시 쓸어내렸다. 과거 본회의 압박과 가문의 저주에 시달리며 차가운 가면을 쓰고 있던 오만한 영애의 모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그녀의 옆, 의자 팔걸이에 나른하게 턱을 괴고 앉아 있는 미소년이 있었기 때문이다.카엘이었다.소년은 피 칠갑이 되었던 옷을 벗어던지고,
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25 Leer má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