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달빛의 구원:너의 피는 달콤해서: Chapter 1 - Chapter 10

63 Chapters

1화 : 씹어먹고 싶은 원수

창백할 정도로 흰 피부에 서늘한 눈빛. 겨울의 정적을 닮은 엘리자의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그녀의 발치에는 차가운 바닥에 엎드려 짓눌린 소년이 있었다."치워."엘리자가 차갑게 읊조렸다. 소년의 목에 채워진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냈지만, 소년—카엘은 굴복하지 않았다.헝클어진 검은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얼굴은 앳되고 선이 얇아 보호본능을 자극할 만큼 예뻤다. 하지만 그 깊은 눈동자만큼은 사납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카엘은 으르렁거리며 엘리자를 노려보았다. 침을 뱉어낼 듯한 증오가 가득한 눈빛이었다."죽여라, 피 한 방울도 순순히 줄 생각 없으니까.""죽이는 건 쉽지. 하지만 네 그 더러운 피가 내 허기를 채우는 유일한 쓰레기라는 게 문제야."엘리자는 서늘한 손가락으로 카엘의 턱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카엘이 반항하며 고개를 틀려 했지만, 여주의 가느다란 손가락은 바위처럼 단단하게 그를 고정했다.카엘은 늑대인간 부족의 어린 포로였다. 얇은 옷가지 사이로 드러난 몸선은 과하게 우람하지 않고 미소년 특유의 매끄러운 선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마른 근육 사이로 야성적인 기운이 도사리고 있었다."네 의사는 상관없어."엘리자가 그를 바닥으로 내리눌렀다. 카엘은 어떻게든 벗어나려 발버둥 쳤지만, 목에 채워진 구속구에서 붉은 주술 문양이 타오르며 그의 사지를 강제로 묶어버렸다."아악…! 이 짓거리 당하느니 차라리…!""조용히 해. 피 맛 떨어지니까."엘리자는 카엘의 가느다란 목덜미에 머리를 묻었다. 그리고 주저 없이 날카로운 송곳니를 살점 깊숙이 파묻었다."윽…!"카엘의 몸이 찌르르 떨려왔다. 단순한 통증이 아니었다. 뱀파이어의 독소가 몸에 퍼지며 본능을 흔드는 기괴한 감각이 밀려왔다. 서로를 죽이도록 태어난 천적의 피와 독이 얽히는 순간, 카엘은 저도 모르게 엘리자의 어깨를 거칠게 움켜쥐었다.'죽이고 싶다. 당장 이 여자 목을 꺾어버리고 싶다.'생각은 그렇게 외치고 있었지만, 그가 쥔 손에 힘이 들어갈수록 엘리자의 목덜미는 매혹적이게 차가웠다. 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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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길들여지지 않는 짐승

철컥, 무거운 쇠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지하 감옥은 다시 차가운 정적 속에 잠겼다카엘은 바닥에 엎드린 채 거친 숨을 내쉬었다. 목덜미에 뚫린 두 개의 구멍에서 흐른 피가 체온을 빼앗아가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의 몸을 강제로 구속했던 붉은 주술 문양이 서서히 빛을 잃었지만, 피부를 태우는 듯한 잔열은 여전히 남아있었다."하… 윽…!"카엘은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고 겨우 몸을 일으켰다. 얇은 셔츠 사이로 드러난 가녀린 어깨와 매끈한 몸선이 괴로운 듯 부르르 떨렸다. 선이 예쁜 얼굴에는 여전히 분노와 수치심이 번져 있었다.뱀파이어 가문의 영애, 엘리자. 그녀는 자신을 사냥개나 축생보다 못한 '피주머니'로 취급했다. 늑대인간 부족이 뱀파이어 사냥꾼들에게 궤멸당하던 날, 혼자 살아남은 카엘을 주워온 것도 순전히 그의 피가 특이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죽일 거야. 반드시…!'카엘은 송곳니로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하지만 머릿속을 스치는 것은 증오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차가운 손가락이 턱을 거칠게 움켜쥐었을 때, 그리고 서늘한 입술이 목덜미에 닿아 피를 빨아 올렸을 때. 몸 깊은 곳에서 사정없이 뒤틀리던 기괴한 전율. 천적의 독소가 몸에 퍼지며 본능을 자극하던 그 소름 끼치는 감각이 잔상처럼 남아 그를 괴롭혔다."젠장…!"카엘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 감정이, 그 쾌감이 지독하도록 혐오스러웠다.같은 시각, 감옥 위층의 화려한 집무실.엘리자는 얼음처럼 차가운 와인을 잔에 따라 입에 대었다. 하지만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방금 아래층에서 마신 그 미소년의 뜨겁고 진한 피가 여전히 혀끝에 감돌아, 다른 어떤 것도 만족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도련님의 피를 마시고 기운을 좀 차리셨습니까, 엘리자 님?"그림자 속에서 늙은 집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엘리자는 시크한 눈빛으로 잔을 내리놓으며 서늘하게 응수했다."그저 허기를 채웠을 뿐이야. 그 짐승의 피는 여전히 비리고 더러워.""하지만 오직 그 늑대의 피만이 님께 걸린 가문의 혈통 병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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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사슬을 쥔 손

지하 감옥의 아침은 달빛 대신 서늘한 쥐색 빛으로 밝아왔다.카엘은 밤새 한시도 잠들지 못했다. 목에 남은 송곳니 자국은 여전히 가려우면서도 화끈거렸고, 그 통증이 올 때마다 어제 마주했던 뱀파이어의 차가운 눈동자가 떠올라 소름이 돋았다."식사다, 짐승 놈."묵직한 철문창 너머로 덜컥 소리와 함께 조잡한 식판이 밀려 들어왔다. 감옥을 지키는 뱀파이어 하수인들의 거친 태도에 카엘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가 노리는 것은 식사가 아니었다.'주술 문양이 새겨진 건 이 목줄뿐이다.'카엘은 가만히 제 목을 감싼 쇠사슬을 만지작거렸다. 엘리자가 건 주술은 강렬하지만, 그녀의 직접적인 통제가 없을 때에는 사슬 자체의 물리적 강도만 유지될 뿐이었다. 소년의 얇은 가슴속에서 늑대의 본능이 서서히 틀을 틀고 있었다. 이 예쁘장한 외껍데기 속에 숨겨진 야성의 피는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았다.그때였다. 구두굽 소리가 정적을 깨며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또각, 또각.규칙적이고 도도한 걸음걸이. 카엘의 몸이 본능적으로 경직됐다.쇠창살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엘리자는 여전히 완벽했다. 빛조차 반사하지 않을 것처럼 흰 피부, 붉은 입술, 그리고 서늘한 얼음 같은 쿨톤의 얼굴. 그녀는 시크한 눈빛으로 감옥 안을 내려다보았다."생각보다 멀쩡하네. 내 독소 때문에 하루는 누워 있을 줄 알았더니."엘리자가 창살을 통해 손을 내밀었다. 가느다란 손가락 끝에는 작고 세련된 은색 열쇠가 쥐어져 있었다."나와. 오늘부터 네 자리는 지하 감옥이 아니야."카엘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를 노려보았다."무슨 짓이지?""내 곁에 두겠다는 뜻이야. 내 가슴이 뒤틀릴 때마다 언제든 피를 뽑아낼 수 있도록 가까운 곳에."엘리자의 입꼬리가 매혹적이게 올려졌다. 하지만 그 미소 뒤에는 살벌한 주도권 싸움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녀에게 카엘은 옆에 둬야 할 가장 위험한 시한폭탄이자, 결코 놓칠 수 없는 유일한 생명줄이었으니까.철컥.열쇠가 돌아가고 무거운 감옥 문이 열렸다. 자유가 주어진 순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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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차가운 침실과 독이 든 잔

카엘은 목에 채워진 쇠사슬을 끌며 엘리자의 뒤를 따랐다. 복도를 지나는 내내 저택의 하수인들은 포로로 잡혀온 늑대 미소년을 향해 노골적인 멸시와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카엘의 고개는 꺾이지 않았다. 앳되고 선이 예쁜 얼굴 위로 시퍼런 야성이 도사리고 있었다.철컥.엘리자의 개인 침실 문이 열렸다. 지상층에 위치한 방은 감옥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고풍스럽고 화려했지만, 카엘에게는 그저 벽지 모양만 바뀐 또 다른 감옥일 뿐이었다. 방 한구석,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에 굵은 사슬로 연결된 묵직한 철제 고리가 벽에 박혀 있었다."거기가 네 자리야."엘리자는 화장대 앞에 앉아 고딕풍의 장신구를 하나씩 풀어내며 무심하게 말했다.카엘은 카펫 위에 웅크려 앉아 거울에 비친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했다. 차갑고 도도한 쿨톤의 미인. 하지만 겉보기와 달리 그녀의 상태는 이상했다. 창백한 피부 위로 옅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손가락 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저 여자, 상태가 이상해.'마침 어제 제 피를 마셨음에도 엘리자의 호흡은 여전히 가빴다. 카엘의 늑대다운 예리한 감각이 그녀의 미세한 허점을 포착해냈다.그때, 문이 살짝 열리며 늙은 집사가 들어왔다. 그의 은쟁반 위에는 푸르스름한 액체가 담긴 작고 화려한 유리잔이 올려져 있었다."엘리자 님, 숙부님께서 보내신 오늘 자 영약입니다. 몸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고마워."엘리자는 피로함이 가득한 얼굴로 잔을 들었다. 서늘한 붉은 눈동자가 스르륵 감기며, 잔을 입가로 가져가려던 그 순간이었다."컥…!"카엘의 코끝으로 지독하게 거슬리는 향이 스쳤다. 달콤한 영약의 향 뒤에 숨겨진, 은은하고 치명적인 독의 냄새. 늑대인간 특유의 예민한 후각은 그 액체 속에 섞인 '성수(聖水)'의 독성을 정확히 가려냈다. 뱀파이어의 생명력을 아주 천천히 갉아먹는 희귀한 독이었다.'숙부라는 자가 이 여자를 조금씩 죽이고 있었어.'카엘의 머릿속이 짧은 순간 복잡하게 뒤엉켰다. 비웃어야 마땅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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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사슬이 허락한 경계

침실의 문이 닫히자, 정적만이 무겁게 침전했다.바닥에는 여전히 푸른 연기가 희미하게 번져 있었고, 그 서늘한 독향이 두 사람의 코끝을 자극했다. 엘리자는 바닥에 웅크린 카엘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앳되고 선이 얇은 얼굴 위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억지로 주술 사슬의 장력을 이겨내고 손목을 쳐낸 대가로, 소년의 목덜미는 주술의 열기에 시뻘겋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츳."엘리자가 차갑게 혀를 차며 다가갔다. 그녀는 구석에 있던 단단한 쇠사슬을 집어 들어, 카엘의 목에 채워진 구속구와 자신의 침대 기둥을 짧게 연결했다.철컥.이제 카엘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엘리자의 침대 발치, 딱 다섯 걸음 이내로 제한되었다."뭐 하는 짓이지?"카엘이 바위처럼 단단하게 당겨진 사슬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엘리자는 시크한 얼굴로 침대 끝에 걸터앉아 가느다란 다리를 꼬았다. 차가운 쿨톤의 시선이 소년을 지그시 짓눌렀다."숙부는 네가 독을 알아챘다는 걸 눈치챘을 거야. 오늘 밤 당장 사람을 보내 너를 처리하려 들겠지.""…….""네 말대로 딴 놈의 손에 죽기 싫다면, 내 시야 안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마. 날 지키는 게 곧 네 목숨을 보존하는 길이니까.""내가 왜 너 따위를 지켜야 하지?""지키지 않으면, 네가 먼저 죽으니까."엘리자의 손가락이 카엘의 부풀어 오른 목덜미 상처에 살포시 닿았다. 서늘한 뱀파이어의 체온이 닿자, 카엘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하며 고개를 틀려 했다. 그러나 엘리자는 상처 부위를 지그시 누르며 소년의 턱을 들게 만들었다."아… 읏,"단순한 통증이 아니었다. 어제 피를 빨렸을 때 퍼졌던 그 독소의 잔향이 다시금 온몸으로 번지는 감각. 카엘의 깊고 투명한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앳된 미소년의 얼굴 위로 수치심과 기괴한 전율이 뒤엉켜 붉은 기운이 올랐다."이것 봐. 넌 여전히 내 독에 반응하고 있어."엘리자가 낮게 속삭였다. 붉은 눈동자가 잔혹할 만큼 아름답게 빛났다."넌 날 증오하면서도, 내가 주는 통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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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어둠 속의 그림자

달빛조차 숨어버린 깊은 밤, 침실 안은 무거운 정적에 잠겨 있었다.침대 기둥과 연결된 쇠사슬은 차가운 바닥을 그으며 미세한 울림을 냈다. 대리석 바닥에 웅크려 있던 카엘은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늑대 특유의 예민한 감각이 어둠 속에서 낯선 기척을 잡아냈다.‘왔군.’바람 소리가 아니었다. 방음이 철저한 영주관의 복도를 따라 조용히 죽여 오는 발소리. 족히 셋은 되는 기척이었다.카엘은 가만히 고개를 돌려 침대 위를 바라보았다. 엘리자는 서늘한 얼굴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창백한 달빛을 받은 그녀의 목덜미는 매혹적일 만큼 희고 무방비했다. 평소의 오만하고 차가운 태도는 온데간데없고, 그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아슬아슬한 시체처럼 보였다.‘지금 저 여자 목을 꺾으면….’카엘의 머릿속에 위험한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이내 목에 채워진 주술 사슬이 경고하듯 찌릿하게 열을 내뿜었다. 그리고 방금 전 숙부의 암수를 떠올렸다.엘리자가 여기서 죽으면, 자신은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니라 숙부의 해부대로 끌려가 가죽이 벗겨진다. 이 오만한 흡혈귀가 죽는 순간은, 오직 자신의 이빨에 목이 뜯겨나갈 때여야 했다.스윽—침실 문이 소리 없이 열리고, 검은 복면을 쓴 세 개의 그림자가 기어 들어왔다. 그들의 손에는 뱀파이어의 심장을 꿰뚫기 위해 특수 제작된 은장도가 쥐어져 있었다."…비켜, 짐승 놈."가장 앞에 선 자객이 바닥에 웅크린 카엘을 발견하고 낮게 짓껄였다. 카엘을 그저 사슬에 묶여 아무것도 못 하는 불쌍한 포로 취급하는 눈빛이었다.카엘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앳되고 선이 얇은 미소년의 얼굴 위로, 비틀린 실소가 번졌다."누구 마음대로.""뭐?""내 음식을 건드리려고 하는데, 얌전히 보고 있을 리가 없잖아."카엘이 소리 없이 전력으로 몸을 날렸다.쇠사슬이 침대 기둥에 걸려 팽팽하게 당겨졌지만, 소년의 마른 근육에서 터져 나온 야성의 악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카엘은 단숨에 맨앞 자객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거칠게 바닥으로 내리꽂았다.콰창—!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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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상처를 머금은 밤

어둠 속에서 자객들의 시체가 바닥에 뒹굴었다. 자극적인 피 비린내가 서늘한 침실 안에 가득 찼다."……."엘리자는 침대 위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창백한 발밑으로 어두운 핏방울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녀의 붉은 눈동자는 오직 한곳만을 향하고 있었다.카엘.옆구리를 움켜쥔 채 거친 숨을 몰아쉬는 소년. 앳되고 매끈한 피부 위로 튄 붉은 피가 달빛을 받아 잔혹하게 빛났다. 분명 사슬에 묶인 포로일 뿐인데, 방금 보여준 원초적인 야성과 폭발력은 포식자의 그것이었다."너, 옆구리가….""신경 꺼."카엘이 시크하게 차가운 목소리로 끊어냈다.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 때문에 얇은 셔츠가 붉게 물들어갔지만, 소년은 이를 악물며 엘리자를 똑바로 노려보았다."네가 죽으면 내 자유도 날아가니까 움직인 것뿐이야. 오해해서 다정하게 굴 생각은 버려.""오해?"엘리자의 입꼬리가 서늘하게 올려졌다. 그녀는 다가가 카엘의 어깨를 밀어 침대 기둥에 바짝 밀착시켰다."내가 너 따위한테 다정해질 리가 없잖아."엘리자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카엘의 옆구리 상처를 움켜쥐었다."아윽…!"카엘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새어 나왔다. 상처를 거칠게 지압당하는 통증이 밀려왔지만, 이내 그녀의 손길에서 전해지는 얼음처럼 차가운 체온이 상처의 열감을 식혀주었다.엘리자는 손가락에 묻어난 카엘의 붉은 피를 내려다보았다. 미치도록 알싸하고 달콤한 늑대의 피. 가문의 저주로 장기가 비틀리던 고통이, 그 피 향을 맡는 것만으로도 거짓말처럼 가라앉고 있었다."이 피가… 날 살려."엘리자가 낮게 속삭이며 카엘의 귓가로 다가갔다."날 노린 놈들은 숙부가 보낸 자객들이야. 내가 죽지 않자 결국 본색을 드러낸 거지. 하지만 카엘… 저들은 오늘 밤 네가 날 구했다는 걸 몰라."엘리자는 카엘의 턱을 들게 하고 붉어진 소년의 눈을 응시했다."숙부는 네가 그저 내 사슬에 묶여 징징대는 가여운 사냥개인 줄 알겠지. 그렇다면 그 방심을 이용해야 해.""내 몸을 미끼로 쓰겠다는 뜻인가?""아니."엘리자의 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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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핏빛 만찬

상처 부위에 남아있던 엘리자의 서늘한 체온이 지워지기도 전에, 저택의 분위기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자객들이 실패했다는 소식은 숙부의 귀에도 들어갔을 터였다."오늘 밤 가문 집행위원회의 응접회에 참석해야 해."엘리자는 거울 앞에 서서 진한 핏빛 립스틱을 입술에 얹으며 차갑게 읊조렸다."숙부는 내가 독 때문에 사경을 헤매고 있거나, 어젯밤 자객의 손에 죽었을 거라 믿고 있겠지. 내가 멀쩡히 걸어 나가는 것만으로도 그 늙은 뱀의 목을 죄는 꼴이 될 거야."카엘은 엘리자의 발치에서 목줄을 매만지며 코웃음을 쳤다."늙은 뱀을 잡으러 가는데, 왜 날 끌고 가려는 건데?""네가 어젯밤 날 구했잖아?"엘리자가 돌아섰다. 서늘한 쿨톤의 피부 위로 핏빛 입술이 선명하게 대비되어, 잔혹할 정도로 매혹적인 자태를 자랑했다. 그녀는 카엘의 앞으로 다가가 소년의 헝클어진 검은 머리칼을 가만히 정돈해 주었다. 카엘은 그녀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몸을 움찔거렸지만, 이번엔 쉽게 뿌리치지 못했다."숙부에게 보여주는 거야. 네가 그토록 탐내던 특이체질 늑대가 내 개가 되어 내 곁을 지키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애완동물이 숙부가 보낸 벌레들의 목을 깔끔하게 꺾어놓았다는 것도.""…….""준비해, 카엘. 오늘 밤은 핏빛 만찬이 될 테니까."가문의 대연회장은 화려한 샹들리에와 순혈 뱀파이어 귀족들의 차가운 웃음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중심에는 짐짓 인자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엘리자의 숙부, '빅토르'가 서 있었다.그가 다른 귀족들과 잔을 맞대며 엘리자의 부재를 핑계로 가문 승계권을 논하려던 그 순간, 연회장의 육중한 문이 열렸다.쿵.화려한 블랙 고딕 드레스를 입은 엘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의 피로함도 느껴지지 않는, 완벽하고 도도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바로 뒤, 단단한 쇠사슬을 쥔 채 걸어 나오는 미소년이 있었다.앳되고 선이 예쁜 얼굴. 하지만 얇은 셔츠 사이로 느껴지는 마른 근육과, 세상을 씹어먹을 듯 번뜩이는 늑대의 눈빛. 카엘의 등장에 연회장이 순식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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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서늘한 체온, 더운 숨결

연회장은 완벽한 엘리자의 승리로 끝났다. 빅토르는 수치심과 공포로 하얗게 질린 채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고, 가문의 귀족들은 달라진 엘리자의 기세와 그녀의 발치에 선 늑대 미소년의 존재감에 숨을 죽였다.침실로 돌아온 후, 엘리자는 고풍스러운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하아…."사람들의 눈을 피해 긴장이 풀리자마자,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 짙은 피로감이 몰려왔다. 손끝이 찌릿하게 마비되며 가슴 깊은 곳에서 장기가 비틀리는 듯한 고통이 또다시 피어올랐다. 혈통의 저주, 극심한 빈혈과 허기가 그녀를 갉아먹기 시작한 것이다.카엘은 목에 채워진 쇠사슬을 끌며 엘리자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화려한 연회복을 입고 온 가문을 쥐락펴락하던 도도한 영애는 온데간데없었다.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것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작게 떨고 있는 창백한 '여자'였다."…피가 모자라나 보군."카엘의 낮은 목소리에 엘리자가 천천히 눈을 떴다. 서늘했던 붉은 눈동자가 허기와 통증으로 아련하게 흔들리고 있었다."다가오지 마, 카엘. 지금의 난… 나 자신도 통제하기 힘들어.""통제 못 하면 어쩔 건데? 날 잡아먹기라도 하게?"카엘은 코웃음을 치며, 엘리자가 말릴 새도 없이 그녀의 의자 팔걸이에 한쪽 무릎을 올렸다.앳되고 선이 예쁜 얼굴. 하지만 바짝 다가온 소년의 몸에서는 뜨거운 체온과 함께 늑대 특유의 짙은 피 내음이 뿜어져 나왔다. 카엘은 스스로 셔츠 깃을 거칠게 젖혀, 가느다랗고 매끈한 목덜미를 노출했다."마셔."엘리자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너… 지금 무슨 짓을….""바보냐? 네가 여기서 쓰러지면 또 복잡해져. 늙은 뱀 놈이 다시 기어 나올 테니까."카엘은 엘리자의 하얗고 차가운 손을 잡아 끌어, 제 가슴팍에 올렸다. thin한 옷가지 너머로 카엘의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리는 것이 엘리자의 손끝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카엘이 서늘해진 엘리자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읊조렸다."날 사냥개로 쓰겠다고 선언한 건 너잖아, 오만한 여자."'흡혈귀'라는 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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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피의 각인

피를 탐하는 소리가 침실 안의 정적을 집어삼켰다.엘리자는 카엘의 가느다란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그의 뜨겁고 달콤한 피를 삼켰다. 차갑게 식어 가던 그녀의 몸으로 생기와 열기가 돌아오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가슴을 짓누르던 장기의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지고, 마비되었던 손끝에 피가 도는 느낌."하아…"카엘의 입에서 야릇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단순히 피를 빼앗기는 통증이 아니었다. 엘리자의 송곳니를 통해 퍼지는 서늘한 뱀파이어의 독소가 그의 늑대 혈통과 부딪히며, 뇌수를 뒤흔드는 기괴한 쾌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카엘은 몸을 떨며 엘리자의 얇은 허리를 단단하게 끌어안았다.선이 얇은 미소년의 팔이었지만, 힘이 들어간 근육은 제법 야성적인 악력을 품고 있었다. 그는 엘리자의 옷자락을 움켜쥐며 그녀의 목덜미에 제 이마를 묻었다. 서늘한 여자의 향기가 코끝을 찔렀다."이제… 됐잖아…."카엘의 낮게 갈라진 목소리가 엘리자의 귓가를 간지럽혔다.엘리자는 서서히 입술을 떼어냈다. 붉은 피 한 방울이 그녀의 창백한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붉은 눈동자에는 여전히 피에 취한 아른함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내려다보는 카엘의 예쁘장한 얼굴을, 그리고 자신을 강하게 끌어안고 있는 소년의 손길을 가만히 응시했다.이전과 달랐다. 강제로 피를 빨릴 때 카엘의 눈에 서려 있던 것은 순수한 증오와 반항이었다. 하지만 지금, 엘리자를 안은 소년의 눈빛은 깊고 투명한 유리알처럼 위험하게 타오르고 있었다."너… 날 안고 있잖아."엘리자가 서늘한 손가락으로 카엘의 아랫입술에 묻은 피를 슬쩍 문질렀다."죽이고 싶다며. 턱을 쳐내고 도망칠 수도 있었을 텐데."카엘은 고개를 돌려 그녀의 손가락을 피했다. 하지만 여전히 엘리자의 허리를 쥔 손에는 힘이 들어간 채였다."도망쳐봤자 네 목줄에 묶여 바닥이나 굴러다니겠지."카엘이 시크하게 응수하며 엘리자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다."그리고 말했잖아, 네 목을 꺾는 건 나라고. 이렇게 허무하게 병으로 죽어가게 둘 순 없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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