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건 말대로 궁이 번잡하다. 궁녀들과 환관들과 금군들이 서넛씩 짝을 이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궁인들답게 걸음은 조급하지 않지만, 표정에는 긴장이 어렸다. 자미궁은 느긋하고 따스한 궁이었다. 적어도 후궁은 그랬다. 그래서인지 이리 바쁜 걸 보니 조금 어색하다. 그만큼 손님 접대에 정성이란 뜻이겠지. 그런데 사룰로 분한 내 딸은 왜 체했느냔 말이다. 작약궁이 보이기 시작하니 속이 뒤집힌다. “아참, 네 딸 예쁘더라.”카사르는 본능적으로 허리에 손을 갖다 댔고, 익숙한 도병이 잡히지 않자 신경질이 확 올라왔다. 단숨에 기건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너! 이익!”덧붙일 말이 없다. 키와 덩치가 카사르보다 큰 기건은 급히 잡힌 멱살 따위는 쉽게 뿌리쳤다. “네가 없어지고 갑자기 나타난 고아 아기인데 뻔하지. 어떤 궁녀 건드려서 낳았는지 모르겠는데, 예쁘게 잘 컸어. 벌 받기 싫어서 튄 건 알겠는데, 이왕 올 거면 좀 일찍 오지. 그랬으면 만났을 텐데.”하. 진짜 이 새끼는 감이 좋은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다. 기건이 먼저 어깨동무를 하더니 쭉쭉 앞으로 밀고 나간다.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거든? 네가 왕자면 딸도 연의 왕족이잖아. 그럼 궁에서 붙들고 있지 굳이 보내줬나 싶더라고.” “어. 그래. 생각하느라 고생 많았네.” “야! 그래도 친구 딸이라고 내가 멀찍이서 혹여 다칠까 아플지는 않을까 유심히 지켜봤거든? 고마워하진 않아도 돼. 알아서 잘 크더라고. 연으로 돌아가기 전에 화산에 들러 봐. 현덕 마마님 따라갔어. 너랑 달리 눈이 참 높아. 자고로 사내라면 현덕 마마님처럼 생겨야지.”바보다. 바보 맞다. 이 새끼는 진짜 바라보기만 했다. 고마워하지 않아도 되겠다. 다만 이렇게 정신이 번쩍 든 채로 작약궁에 이르게 된 것은 고마워해야겠다. 카사르는 작약궁 대문 앞에 당도하자마자 팔꿈치로 기건의 명치를 퍽 쳤다. “이제 가 봐.”
Huling Na-update : 2026-10-27 Magbasa 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