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사극 로맨스 / 철향 / Chapter 111 - Chapter 120

All Chapters of 철향: Chapter 111 - Chapter 120

122 Chapters

철향鐵響 一百一十一

“야! 그건 나랑 자고 나서 들을 말이거든?!” “그럴 만한 일이 아냐, 그건.”지금이구나. 물어볼 때가. 걸음 속도를 높여 강현의 옆에 나란히 걷는다. “마지막 기억이 엄청 끔찍한가 봐?” “꺼져.”이렇게 앙칼지게 굴면 더 궁금해지는데.도라는 강현을 좀 더 구석으로 몰았다. 흰 붕대가 드러나지 않게 검은 무복을 입은 몸으로 완전히 가린다. 궁녀 둘과 환관 하나가 지나간다. 담장과 나무 사이에 강현을 끼워 넣은 채 잠시 머물렀다. “난 원래 무사로 키워졌어. 화국 사람들은 키가 작아서 키 큰 호위무사를 과시용으로 쓰지. 실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서 무거운 철갑옷을 입을 정도의 몸만 만들면 돼.”몸을 빼내어 담장을 따라 그림자처럼 걷는다. 그림자는 의외로 마냥 검지 않다. 빛이 있어야 만들어지기에 번들거리며 빛의 찌꺼기를 흘린다.그러나 달과 별처럼 그런 찌꺼기 같은 빛마저 반사시키며 존재를 과시하는 자들이 있다. 강현이 그랬다. 어디서든 아름다운 흑록빛을 묵직하게 퍼뜨렸다. 그러나 이번에 형에게 맞으면서 뭔가가 꺼져버린 걸까? 아니면 매령과의 대화가 어딘가 잘못된 부분을 건드린 걸까?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장작처럼 그림자보다 검게 변해버렸다. 그게 도라는 속상했다. “내가 모시던 장군님께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말이야. 내 다리 길이가 어느 정도 길어져 기마를 배울 수 있게 됐을 때, 두 도련님이 오셔서 훈련을 도와줄 테니 너른 곳으로 가자더군. 영광스러웠지. 민들레와 제비꽃이 하염없이 펼쳐져 있는 들판에서 그 둘에게 번갈아가며 범해졌어.”강현이 우뚝 멈췄다. 그러나 돌아보지는 않는다. 망설임이 그림자를 타고 발끝에 닿는다. 도라는 싱긋 웃었다. 강현의 몸에 배인 예의가 좋았다. “나는 열네 살이었고, 아주 화창한 봄날이었지. 한 놈이 나랑 그짓을 하는 동안 다른 한 놈은 말을 타고 빙빙 돌았는데, 짓이겨진 풀냄새랑 찢겨져 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1
Read more

철향鐵響 一百一十二

“인기 많았나 보네?” ”하, 별다른 거 없어. 아무튼 걘 정말 나를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어. 날 멀리서 보기만 해도 심장 소리가 요동쳤으니까. 눈만 마주쳐도 숨 막히는 소리를 냈으니까. 내 생명이나 다름없는 무기의 날을 완벽하게 갈아 줬으니까.”도라는 다시 숨을 다스렸다. 어차피 강현의 귀에는 다 들린다. 속일 수 없다는 거, 애정 관계에서 참 불리하다. “서둘러 끝내고 옷을 추스려 입는데 뒤에서 울면서 고맙다는 거야. 그게 너무 끔찍해서. 내가 너무 쓰레기 같고, 정신이 바스라지는 느낌이 들어서. 이를 악물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부어서 몇 번 더 안아 줬는데, 그때마다 오히려 뭐가 뭔지 모르게 되어 버리고. 나중에는 혼이 나가서 나를 구경하듯 바라보는데 짐승 같고 역겹고 더러웠어. 걘 쾌락에 겨워 영원히 잊지 못할 거라고 속삭이는데, 그냥 당장 다 잊어줬으면 좋겠고. 할 수만 있다면 모두 없던 일로 만들고 싶었어.”강현답지 않게 말이 두서없이 쏟아져 내린다. ”매령에게도 네게도 미안하지만, 난 누군가의 진심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마음의 깊이가 깊은 사람이 아냐.”겨우 약관에 이른 나와 아직 어린 네가 과연 그게 가능할까? 누구나 남의 감정을 자신의 감정보다 위에 두지 못한다. 네게 교접을 강요한 그 아가씨도 자신의 감정이 더 중요했던 것이니까. “그리고 관례를 치른 날부터 내 생일이나 매령의 생일, 그리고 군역을 떠나기 전날이면 매령 아버지는 나를 불러다 기녀를 붙여주었어.”도라의 발걸음이 멈췄다. ”뭐?” “그럴 때면 매령 아버지가 술을 마시는 정자에 붙은 작은방에서 일을 치러야 했지. 즐거운 술안주거리가 될 소리를 내어가며. 내 자리는 이 정도라는 거지. 매령을 넘볼 생각 따위 전혀 없었는데, 그런 식으로 경고를 한 거야. 매령은 어차피 월의 왕자 중 하나와 혼인할 예정이었어. 나도 바라는 바였는데, 간택에 올라 여기까지 왔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2
Read more

철향鐵響 一百一十三

“그러고 보니 너희는 원래 알던 사이인가? 제인과도 친해 보이고.”비질을 끝낸 도라가 이연 뒤에 바로 서서 응답했다. ”전 강현에 대한 개인적인 호감이고, 제인은 원래 여인을 업수이 여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우 소저에 대한 지속적인 음해를 가까이서 들었기에 강현의 편에 선 것입니다. 민하 아가씨나 사룰 공주님에 대해서도 비슷한 발언이 있었다면 화를 많이 냈을 겁니다.” “아, 홍루족이지. 그러고 보니 강현 자네가 호위할 대상은 우 소저가 아니라 손 소저이지 않은가?”제인은 민하의 호위로 들어왔지만 지금은 은령의 호위다. 그리고 강현은 매령의 호위로 들어왔지만 민하를 호위하던 중이었다. 이연은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묶여 있는지도 몰랐던 매듭이 풀리는 걸 느꼈다. ”민하가 뭔가를 부탁했군.”강현은 전에도 매령에 대해 보고를 했지만 툴가와 바트의 하극상에 대해서만이라고 못 박았다. 자신이 민하의 호위임을 명확히 했었다. “네, 툴가와 바트가 금군이 되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누군가를 금군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면 어려웠겠지만, 되지 못하게 하는 건 가능하니까요. 툴가가 그때 활을 쐈더라면 명령 불복종으로 금군 발탁에서 제외될 수 있었으리라 봅니다.”어차피 황자 앞에서 숨겨 봤자 의미가 없다. 다만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며 답을 하고 있자니 머리가 쭈뼛쭈뼛 일어선다. ”자네가 죽을 수도 있는데도?” “하오나 제가 누견하여 그런 방법밖에는 떠오르지 않았습니다.”이연은 어두운 눈으로 강현을 비스듬히 바라보았다. 강원의 연년생 아우. 난형난제인가. 아마도 비슷한 정도의 식견은 가지고 있겠지. ”넌 어째서 민하를 그리 섬기는 거지?” “궁에 온 이후 제 직속 상관이셨으니 그 뜻을 따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금군 전체와 대척하게 된다 하여도 말인가?” “금군은 본디 황실의 무사와 안녕을 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2
Read more

철향鐵響 一百一十四

이연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강현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성급히 답할 질문도 아니지만, 딱히 답변이 떠오르지도 않는다. 뭘 들킨 거지? 제인이 말을 했나?강현은 이연의 무표정에서 조금의 답을 읽었다. 생각할수록 이 간택은 매령에게 너무 불리한 판이다. 이연 마마의 옥성을 듣기가 요원해 보이기에 나름의 구실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첫날 우 소저를 보러 오셨으니 사룰 공주와 독대한 것도 마찬가지라 여기겠습니다.”차이는 있다. 사룰 공주와는 밤에 단둘이 만났다. 그러나 매령은 대낮에 호위가 다 있는 곳에서 만났다. “그것과 별개로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전 제가 모시고 온 아가씨께서 태자비가 되는 것이 제가 금군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전혀 별개가 아닐 텐데.”이연의 입에서 말이 겨우 흘러나왔다. 그러나 아직 고민이 끝나지 않은 말이다. 강현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정자가 있는 간택이다. 연극이나 다름없다. “바트와 툴가는 처음에 사룰 공주를 욕보이면서까지 제인을 쳐내려 했습니다. 화살의 방향이 저로 틀어졌을 뿐 방법은 똑같습니다. 아마 그들은 사룰 공주님이 간택되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금군이 되는 것에만 힘쓰는 듯했습니다. 도라보다는 저와 제인이 손쉬운 상대지요. 도라는 여자에게 관심이 없기에 같은 방법으로는 도발하기 힘듭니다. 실력도 가장 뛰어나니 단기간에 올라서기 어렵고요.”은령은 도대체 연과 무슨 거래를 한 것인가. 이연은 은령이 궁에서 저지르는 사건에만 치중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전 호위 선발에서 발생한 모함과 술수가 간택에까지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들이 벌인 일들이 아가씨들께 누를 끼쳐서는 안 됩니다.” “넌 간택이 우선이고 그들은 금군이 우선이었으며, 그 차이가 충돌을 만들었다는 거군. 그러나 판단은 네가 아니라 여가 내리는 것이다. 네가 한 짓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3
Read more

철향鐵響 一百一十五

사신관에서 머무는 자들이 반이나 줄었는데도, 요란함은 가시지 않았다. 오히려 불은 더 밝게 밝혔고, 음식과 술이 끊이지 않고 드나들었다. 열기와 술냄새로 들끓는 가운데 바트가 누워 있는 방만은 정결하고 시원했다.카사르Хасар는 잠이 든 바트를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시자마자 이런 꼴 보여서 면목이 없습니다.]툴가는 뒤에서 울지 않으려 노력했다. [네가 보기엔 이대로 살려두는 게 의미가 있을 거 같으냐?] [중부!]카사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툴가는 짓눌리는 느낌에 몸을 뒤로 물렸다. 그러자 오히려 날카로운 시선이 곧게 박혀들었다. 가까이 서 있었으면 툴가의 키가 크기에 내려다봐야 했을 것이다. [소리 지르지 마라.]툴가는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했다. [잘못했습니다. 절대 중부께 대들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쯧. 아니다. 내가 늦게 와서 미안하다.]카사르는 머리를 긁적이며 바트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워낙 우람하고 듬직한 몸집이었기에 비어진 자리가 비현실적으로 크게 느껴진다. [넌 계속 여기 있을 거냐?] [네.] [쳐다보고 있는다고 팔이 돋아나진 않아.]툴가는 몸을 돌려 침상 끄트머리에 걸터앉은 카사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찌 보면 냉정하고 어찌 보면 친절한 중부님은 같이 놀기에는 좋은 분이셨지만, 이럴 땐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분이셨다. [이렇게라도 해야…. 지금 형의 곁에 있어 주지 않는다면, 나중에 나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카사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툴가를 바라보았다. 이해는 안 가지만 사람들은 저렇게 시간을 버리곤 한다. 그럴 땐 내버려 두어야 한다는 건 안다. [그래. 그럼.]카사르는 일어나 툴가를 지나치며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근데 나라면 말이야. 팔 잘린 나를 누가 밤새 그딴 동정 어린 눈깔로 바라보고 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3
Read more

철향鐵響 一百一十六

술잔을 탁자에 소리 나게 내려놓은 카사르는 주변을 훑어봤다. 사신관 1층에 그득한 연에서 온 이들과 밖에서 데려온 듯한 여인들이 뒤엉켜 있다. [아, 근데 분위기가 왜 이따우야? 오늘만이라도 좀 진중하게 깔고 있어야 하는 거 아냐?]협상을 유리하게 이끌려면 자중해야 한다. 며칠간은 속상한 티를 팍팍 내면서 무게 잡고 있어도 모자랄 텐데 술과 여자를 끼고 노는 꼬락서니들이 평상시보다 더 더럽다. 아무도 바트를 신경 쓰지 않는 것인가? 같은 주치로서 비참하기 짝이 없다. [호호호호호. 협상 조건으로 요구할 것들이 아주 매력적이란다.]오드게렐은 품에서 폭죽을 하나 꺼내 앉은 자세 그대로 불을 붙였다. 가느다란 쇠꼬챙이 끝에서 불꽃이 지랄맞게 쏘아져 나간다. 그리고 타닥타닥 튀는 불이 꾸물거리며 꼬챙이를 타고 올라간다. 카사르는 무표정을 유지하려 했지만 인상이 조금 구겨졌다. 신기한 광경이라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걸 하늘로도 쏘아 올린단다. 쓰기에 따라서는 주변을 다 불태워 버릴 수도 있겠지.] [바트 팔 값 치곤 너무 비싸 보이는데?] [그럼. 당연히 안 주겠지. 근데 협상의 주체가 이걸 만든 놈이거든.] [아…. 아아. 쓸 만해?] [태자놈보다 훨씬.]바트를 대신할 놈을 데려갈 거라면 굳이 분위기를 험악하게 할 필요가 없다. 괜한 분노를 키우고 적개심을 만들어 내서 반발심을 일으켜서는 오히려 일을 그르친다. 다들 오늘 일이 별일 아니라고 느껴야 한다.무인으로서 팔을 잃은 바트가 느낄 절망은 오롯이 그의 몫일 뿐이다. 타인들마저 거기에 공감할 필요는 없다. 여기 있는 이 시커먼 전사들에게 중요한 건 우리가 얻어 갈 이득뿐이다. 그게 돈이 아닌 사람이라면 더욱더 동질감을 바트에게서 얻으면 곤란하다. 떨어뜨려야 한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그 인간이 그만큼 맘에 드셨나 보다. 하긴 식을 올리자마자 도둑맞은 세자빈은 이 년이 지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4
Read more

철향鐵響 一百一十七

기건이 손가락 두 개로 눈을 찔러 오기에 카사르는 재빨리 기건의 손을 붙잡았다. “우리 애 팔병신 만든 것도 모자라 나까지 장님으로 만들려고?” “장난도 못 쳐.” “나라도 장난치지 말아야지. 그 녀석이 그래 보여도 내 조카거든. 걔 엄마한테 가서 이러쿵저러쿵 주절거리려면 그 정도는 참아 줘야 해.” “아, 네 조카였어? 맞다. 형이 죽었댔지. 조카까지 그렇게 돼서 미안하다.”이것도 아니다. 형은 멀쩡히 살아서 게르드족을 갈구며 잘 살고 있다. 딸만 다섯을 낳아 의도치 않게 막내 동생을 안심시키고 베르케의 후계를 공고히 했다. 어디서 저런 잘못된 정보가 들어갔을까. 군인은 정보를 잊어서도 안 되지만 왜곡하면 절대 안 된다. 기건을 빤히 쳐다보니 녀석이 제 발 저린 표정을 짓는다. “상대가 안 좋았어. 그 새끼가 그렇게 독이 오른 상태인 줄 몰랐는데……. 내가 전에 슬쩍 도발해 봤었거든? 그때는 잘 흥분하지 않더라고. 꽤 냉정한 놈인 줄 알았는데.” “팔 자른 꼬라지 보니. 냉정하긴 하던데……?”카사르는 말끝을 흐리며 팔짱을 끼고 고개를 삐뚜름하게 꺾었다. 내가 냉정할지언정 경우에 대해서는 배운 바가 많다. “어이구 씨발. 등신아, 등신아. 이 상등신아. 지금 내 앞에서 누구 편을 드는 거냐? 아무리 그 새끼가 맘에 들었어도 팔 잘린 애새끼 삼촌 앞에서 그러면 안 되지.” “어? 어, 야. 미안하다고 했잖아. 그리고 편든 거 아니잖아. 아, 씨발. 못 본 새 엄청 예민해졌네. 애라도 뱄냐?”비슷할지도? 카사르는 또 딸이 떠오르자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서 헤실거리며 기건의 배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기건의 거체가 한순간 위로 둥실 떠올랐다가 주저앉았다. “크헉!”바로 뛰어올랐으니 충격도 거의 없었을 텐데 아픈 시늉을 한다. “그럼 낮에 오지.” “언제든지 오라고. 나 보러도 오고. 볼 수 있을 때 자주 보자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4
Read more

철향鐵響 一百一十八

은령은 살금살금 네 발로 걸으며 궁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아마 궁녀들끼리만 이동하는 걸 금한 모양이다. 금군이나 환관이 한 명이라도 끼어 있으면 내가 건드리지 못할 거라 생각한 걸까. 이연은 여전히 깜찍하다. 은령의 입매가 자연스럽게 위로 끌어당겨졌다. 그리고 이연의 말을 듣지 않는 건 나 하나로 족하다. 어디 건방지게 이연의 방침에 토를 다는 것이냐. 머리끈을 풀려다 생각을 바꿔 허리끈을 풀었다. 상의 도련을 허리춤에 꼼꼼히 집어넣고 목소리를 따라 걸었다. 야심한 시각이라 아무도 듣지 않으리라 여기는지 할 말 못 할 말 다 흘러나온다. “근데 말이야. 간택, 누가 될까?” “그거야, 뭐. 공주님이 오셨는데, 그 사람이 되겠지.” “우 소저도 월국 왕족이라던데?” “월보다 연이 훨씬 가깝지. 점점 강해지는 중이고.” “그래도 우리가 딴 나라 눈치 볼 필요 있나? 솔직히 난 손 소저가 귀엽고 사랑스럽던데. 하아, 여자인 내가 봐도 그 정도인데 남자들이 보면 환장하겠지?” “환장은 무슨. 여자들이 좋아하는 여자랑 남자들이 좋아하는 여자랑 같냐. 남자들은 안고 싶은 여자를 탐내고, 여자들은 되고 싶은 여자를 선망하는 법이야. 어휴, 이 떡대야. 남자들이 보기엔 가슴 쪼물딱거리기 좋은 네가 압승이다.” “야! 이 미친 년이. 하긴 암만 봐도 이연 마마님보다 미모가 뛰어난 상대는 없더라.” “쉽지 않지. 그러나! 어차피 간택은 미모가 중요한 게 아니야. 실리라고. 려에서는 후궁의 주인들을 미모로 뽑으면 지탄을 받게 되어 있다고. 철저히 집안과 성품만 따져야 해.” “아, 너 려에서 왔지.”은령은 저도 모르게 숨소리조차 죽여가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연이 가장 아름답다는 말에는 고개까지 끄덕여가며 집중해서 목소리를 따라갔다. “아무튼 사룰 공주가 될 거야. 생긴 것도 은령이랑 비슷하잖아. 아-. 보고 싶네. 우리 은령이. 내가 지 뒤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5
Read more

철향鐵響 一百一十九

입에 넣고 있는 건 숙수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음식이건만 자꾸 숨통이 조여왔다. 덕비는 예의도 잊고 젓가락으로 허공을 배회했다. 이렇게 불러놓고 눈도 못 마주치겠다.은령은 예의 바르게도 한 점 한 점 다소곳이 입에 넣고 오물거린다. 그래. 너는 그렇게 조용하고 얌전한 아기였지. 뱃속에 들어앉은지도 몰랐는데, 자그마하게 태어나 잔뜩 웅크리고 제대로 울지도 않았다.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다. 핏덩이가 그렇게 눈치를 봤다.이른 아침 눈을 뜨자마자 은령에게 점심을 함께하자는 요청을 보냈고, 알겠다는 답과 함께 카사르가 오후에 온다는 기별이 전해졌다. 미친놈이 여기까지 왔다. 이번 일은 카사르가 모르게 진행하는 걸로 오드게렐님과는 뜻이 통했다고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나.오전 내내 마음을 다잡았다. 차라리 잘 되었다. 다 말하자고. 모든 것을 꺼내어 드러내자고, 그렇게 네 앞에 엎드리자고,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사과를 하자고 마음먹었다.그러나 오찬장에 나타난 네 파리한 얼굴을 보는 순간 모든 결심이 날아가 버렸다. 안절부절 모든 걸 망설이게 되었다. 요즘 까다로운 황후 아래서 교육을 받더니 많이 피곤했던 걸까. 모처럼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방해를 한 것 같아 많이 미안해졌다. 좀 더 편히 와도 될 것을 완벽히 성장을 하고 나타났다.새빨갛게 칠한 입술 안으로 여러 향신료를 넣어 볶은 양고기 한 점이 들어간다. 입술이 다물리고 작은 움직임으로 조곤조곤 씹어 먹는다. 덕비는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은령이는 식감이 재미난 음식을 좋아한다 하였다. 은령이는 향이 짙고 맛이 강한 음식을 좋아한다 들었다. 그렇게 들은 대로 요청해 준비했다. 내가 먹이지 못한 그 한 번을 이렇게라도 보상할 수 있을까. 너무 얄팍해 자조적인 미소가 떠오른다. “입맛엔 맞느냐?”은령이도 계속 먹어 온 궁의 음식일 터다. 그래도 묻고 만다. 서두르지 않고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맞추는 은령의 자태가 우아하다. 날카로운 눈매 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6
Read more

철향鐵響 一百二十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은령은 숨이 점점 차올랐다. 그게 대비전에서였는지 지금인지 모르겠다. 눈에 힘을 주어 젓가락이 집은 것에 집중했다. 바삭하게 튀긴 후에 간장과 황주를 넣어 조린 황어 부레다. -엇, 은령이 왔니? 마침 네가 좋아하는 황어 부레가 남아 있어!- 달그락- 틱 티르르르륵-은령이 소리를 내었다. 덕비는 입에 넣으려던 당면볶음을 내려놓고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은령이 일어나 있다. 양손으로 귀를 막고 엉거주춤 서 있다. 은령의 앞에는 젓가락과 고깃점 같은 것이 나뒹군다. “독이니?”덕비는 재빨리 뒤에 서 있는 궁녀를 불러 은령에게 보냈다. “아닙니다.”은령은 손을 뻗어 궁녀가 다가오는 것을 제지했다. “전하. 하아. 이건 제가 정말 좋아하는 황어 부레입니다. 그러나 지금 갑자기 체기가 올라와 먹을 수가 없었을 뿐입니다. 절대 숙수를 혼내지 말아 주십시오. 어, 송구하옵니다만 이대로 물러남을 허락해 주시옵소서.”아니나 다를까. 은령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다. 그걸 보자마자 덕비의 심장이 훅 하고 내려앉았다. 내가 네게 먹을 걸 주니 네가 탈이 난다. “뭣들 하느냐. 공주님을 어서 방으로 뫼시지 않고. 너는 궁의를 불러오너라.”덕비는 다급히 명령을 내리면서도 은령이 아픈 걸 핑계로 카사르의 방문을 막을 궁리를 하는 스스로가 참을 수 없이 역겨웠다. 역시 아이는 친부모가 키워야 한다. 바트나 에르든이나 친부의 손에 크지 못해 이렇게 인생이 말린 것이다. 도대체 애를 어떻게 했기에 급체를 해. 카사르는 어머니를 따라온 어의들을 닦달해 소화기에 좋은 약이란 약은 다 챙겨 나왔다.하긴 에르든도 어릴 때부터 얼마 먹지 않았지. 맛있고 몸에 좋은 거 보이는 족족 챙겨다 주면 뭐 하겠는가, 보는 데서는 반도 먹지 못하는 걸. 에잇.카사르는 다급히 달려 사신관으로 돌아왔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6
Read more
PREV
1
...
8910111213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