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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철향: Chapter 71 - Chapter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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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七十一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손에 받아 마시던 민하는 강현이 보이자 치마를 양손으로 대충 집어들고는 달려왔다. 우산을 들고 있던 환관이 겅중겅중 그 뒤를 쫓았고, 궁녀들도 머리를 숙이며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강현은 멈춰서서 골머리가 썩는다는 표정으로 그 작당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발 체통 좀.” “윗사람들 앞에선 착실히 지키고 있으니 신경 꺼. 어디 다치진 않았어?” 그저께 결국 밤늦게 몰래 들어왔더니 민하가 방문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피하려면 피할 수도 있었지만, 수면시간을 지켜주는 것도 호위의 업무인지라 돌려보내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붙잡혀서 다친 것에 대해 추궁을 들어야 했다. -네가 혼자일 때, 이렇게 다쳐서 나타나면. 내가 네게 나를 맡길 수 있을까?- 정말 뭐라 대구할 말이 없었다. 그 후로는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놀리듯 이렇게 묻는다. 그때마다 귓바퀴의 상처가 간질간질 달아올랐다. 도라가 정말 거추장스러운 혹을 달아줬다. “여기 저기 아파 죽겠습니다. 비가 오면 예전에 다친 곳들이 비명을 질러대거든요.” “아, 괜히 돌아다니자고 했나?” “됐습니다. 어디로 모실까요?” 강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궁 안을 흐르는 해자가 이곳에 이르러 비정형의 연못이 되어있고, 주변을 자연스럽게 꾸며두었다. 창포와 수선화가 군락을 이루며 피어있고, 버드나무와 물푸레나무가 드문드문 크게 자라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이 자리에도 없다. 호반새도 도요새도 두더지도 없다. 소동물의 아기자기한 소리가 부재하다. 신성한 곳으로 여겨질 정도로. “여기가 좋아.” 민하는 연못가에 주저앉으며 우산을 물렸다. “너희끼리 써. 난 괜찮아.” 환관이 머뭇거리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서고, 궁녀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강현은 어차피 자신에겐 더이상 의미도 없는 우비를 탁탁 털어 민하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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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七十二

고즈넉한 설화궁이 어쩐 일로 요란스러웠다. 이제는 검은 무복에 제법 익숙해졌다 여겼건만, 검은 우비에 삿갓까지 쓴 건장한 사내들이 몰려있으니 조금 위축되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어서 들어오시지요.” 설화궁에 속한 환관이 달려와 우산을 받아들고, 궁녀들이 나와 매령의 시야를 가리며 닦아둔 길로 안내한다. 매령은 그들이 이끄는대로 설화궁 안으로 들어섰고, 뒤에서 문이 닫혔다. 호위들은 뒤에 없었다. 빗소리가 먹먹해지고, 시야가 밝아졌다. 불을 환히 밝힌 설화궁 내부는 하얗고 파랗게 질려 창백하다. 그 가운데 주희가 서있는 모습이 너무 이질적이라, 저 불꽃의 화신을 다른 곳으로 옮겨주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좀 더 어둑하고 따스함이 필요한 곳으로…. 궁에서 만난 은인이나 다름없는 주희에게 몹쓸 생각을 했다는 당혹감에 매령은 잠시 멍해졌다. 그런 매령의 앞으로 다가온 주희가 방긋 웃었다. 다소곳이 모은 손을 주희가 겹쳐쥐고 조물조물 만져주었다. 온기가 퍼져나간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몸이 살짝 얼었나보다. “날씨가 짖궂지요. 오랜만에 방에 불을 피워두라 일렀습니다. 그동안 응접실에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주희의 뒤로 소우 장군과 덩치가 크고 검게 그을린 피부색의 장군이 한 명 더 서 있다. 아마 이들이 가져온 용건인가보다. 변수가 생긴다는 건 좋은 일일 수도 있고 나쁜 일일 수도 있다. 기껏 태자비가 되겠다 마음 먹었는데, 지난 번에 주희 앞에서 너무 성급히 말을 쏟아내었던 탓일까.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면서도 머리가 차갑게 굳어간다. 앞서가는 주희의 뒤를 따라 응접실에 자리를 잡으니 두 장군이 맞은 편에 나란히 섰다. 주희는 둘 사이 상석에 자리잡았다. 작은 몸집에도 전혀 모자라지 않는 존재감이다. “그럼 말씀하시지요.” 주희의 명에 소우 장군이 옆에 선 장군의 옆구리를 쿡 찔렀고, 매령을 멍하니 바라보던 장군은 깜짝 놀라 소우의 등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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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七十三

그 때 이제껏 조용히 있던 주희가 입을 열었다. “강원 공자를 잠시 들여도 되겠습니까?” 소우 장군이 주희를 향해 몸을 돌리고는 표정을 살폈다. 황궁의 예가 뼛속까지 배인 소녀의 담담한 얼굴은 속내를 파악하기 어렵다. “마마님 그건 제게 허락을 구할 일이 아니십니다. 궁의 손님으로 모신다면 제가 할 일은 그분을 보호하는 일입니다.” “임시 호위를 맡기는 건 어떻습니까?” “안됩니다. 그가 맡을만한 명분이 없습니다.” “납득했습니다.” 의외로 주희는 순순히 물러났다. “우수한 자로 네 명 늘려주십시오. 이왕이면 설화궁 금군들과 손발이 잘 맞는 자들이면 좋겠습니다.” 소우 장군의 눈썹이 한없이 올라간다. 얼굴을 가로지르는 흉터가 자기주장을 시작하고,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목울대가 여러 번 오르락내리락 한다. 그러나 한참을 망설이다 나온 답은 주희의 청을 받아들이는 쪽이다. “알겠습니다. 바로 선발하여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소우 장군이 인사를 올리고 물러나자 기건 장군도 서둘러 주희와 매령을 향해 인사를 올리고 따라갔다. “야아야아. 야익! 감기인가봐 감기! 오늘 무리했는데 비까지 내리니, 아-아-, 목이 칼칼하네. 아유, 설마! 내가 언감생심!” 기건 장군의 앓는 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그동안 주희와 매령은 아무 말 없이 앉아있었다. 매령은 앞선 대화를 곱씹었다. 얼굴이 달아오른다. 강현이 알아서 잘 하고 있는데 도와준답시고 제 실력도 제대로 내보이지 못하는 어수룩한 반푼이로 만들었다. 뱉어낸 말은 주워담지 못하고, 뒤쫓아가봤자 바로 잡을 방도도 요원하다. 더 말을 꺼냈다간 강현을 걱정만 끼치는 천둥벌거숭이로 만들 뿐이다. 제 머리를 쾅쾅 치고 싶다. 내가 제일 바보 천치다. 주희가 빙긋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방이 충분히 덥혀졌겠지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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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七十四

목련궁 서궁 주방 옆에 간이 목욕탕이 마련되었다. 강현은 처마에 맺힌 물방울이 빗방울일지 욕탕의 열기가 만든 수증기일지 의미없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저 녀석은 도대체 언제 돌아가는거야? 쭈굴쭈굴해진 손을 욕조 밖으로 꺼내 끝에 바가지가 달린 장대를 붙잡았다. 솥에서 팔팔 끓는물을 한가득 담아 욕조에 부었다. 서궁의 거실에서 도라와 환관의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분명 오늘은 빗소리가 있으니 괜찮다고 오지말라고 언질을 했건만 이렇게 또 찾아왔다. 심지어 궁 안으로 들어왔다. 대부분의 궁에서 서궁이 아무리 궁인들의 거처라고는 하지만 저리 물색없이 들어와 앉아있을 줄이야. 나이가 들대로 든 환관은 목소리가 잘게 떨려 나왔다. 무례할 수 밖에 없는 도라의 신상에 대한 질문을 연륜이 묻어나는 어투로 담담히 한다. 목련궁 환관 중 귀비의 곁을 불철주야 지키는 환관이다. 의외로 도라도 느물거리지 않고 착실하게 답을 한다. 얼마나 가감을 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들리는대로라면 곡절이 많은 삶이다. 그러나 아마 사실일 것이다. 하나하나 잘 따져보면 용병으로서의 장점만 이야기하고 있다. 아마 새로운 일거리를 찾았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지. 그간 밤마다 도라가 가져온 도구들을 떠올렸다. 하나같이 소리를 내는 도구들이었다. 얼핏 작은 악기처럼 보이는 그것들은 비둘기 소리를 내고 박새 소리를 내며 빗소리를 만들었다. 모두 화에서 암살자들 사이에서 신호와 잠복용으로 쓰는 것들이라고 했다. “네가 제일 잘 알겠지만, 소리가 너무 없어도 정신이 이상해지지. 암살 대상이 방심하게 만들려고 쓰기도 해. 기척을 덮기 위해 소리를 이용하는 것도 있고.” 일상에서 자주 듣던 소리를 생소한 곳에서 듣게되면 순간 옛기억이 소환되며 정신이 흐트러진다. 특히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새소리는 사람 마음을 쉽게 풀어지게 만든다. 비둘기모양 토기 피리를 들고 이리저리 구경하는데, 도라가 엄지손톱만한 얇은 널판지 같은 걸 꺼내 입 안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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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七十五

사룰이 남긴 핏자국과 빗물의 잔상을 읽어 그녀가 이른 곳에 다다랐다. 텅 빈 궁 처마 아래에 방만하게 앉아서 곡도의 도신을 쓰다듬고 있다. “피가 잘 안닦이는군.” 강한 자성을 띠는 흑철은 피의 붉은 부분을 흡착하여 놔주지 않았다. 얼룩처럼 자리잡은 혈흔을 보며 은령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래서야. 꼭 녹슨 거 같지 않은가.” 어쩌면 흑철로 만든 무기는 앗아갈 목숨 수가 정해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곡도를 눈앞에 세워들고서 한참을 쳐다보더니 일어나 칼집에 집어넣었다. 그때까지 제인은 말라 비틀어진 이국의 풀들이 삭막함을 더하는 중정에서 비를 맞으며 서있었다. “쯧. 홀딱 젖은 꼴이라니.” 은령은 시신보다 더 싸늘해보이는 제인을 흘겨보고는 먹물보다 검게 물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지체없이 따라붙는 발소리가 질척거리며 들려왔다. 한 번도 들어와보지 않은 궁이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후궁과 동궁의 궁들은 대부분 구조가 비슷하다. 주방에 다다른 은령이 제인에게 명을 내렸다. “태워.” 비가 오는 밤이다. 연기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정말 살인을 하라고 주어진 날같다. “어째서…….” 은령은 웅얼거리는 제인의 코 앞까지 다가와서 까맣게 번진 제인의 동공을 빤히 바라보았다. 불을 피우면 예쁜 녹색눈이 다시 나타나겠지. “내가 그 은령이야. 이연의 충실한 암캐.” 이연의 탄신일 이후 작약궁에 머물던 지소 공주와 부마인 한겸 공이 떠났다. 딸이 떠나고 비가 오자 적적해진 덕비는 일찌감치 침소에 들었고, 그동안 손님을 치르느라 알게 모르게 고생한 궁인들도 쉬러 들어갔다. 붕대 감긴 얼굴로 자신을 빤히 바라보던 한겸 공이 떠나니 은령은 홀가분해 날아갈 것 같았다. 그리고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땋은 머리를 바짝 틀어올리고 새카만 건으로 이마를 동여멨다. 진작 준비해 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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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七十六

제인은 창의 떨림이 낯설어 이를 악물고 척추를 타고 흐르는 충격을 버텼다. 창을 놓을 수는 없다. 그런다고 이 여인이 살아나지는 않는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제인은 창대를 타고 흐르는 목숨을 끝까지 받아냈다. 이건 내가 감내해야 한다. 속에서 뜨거운 응어리가 울컥울컥 솟아오른다. 성인식 때 크고 아름다운 돛새치를 잡아 인정을 받았다. 나를 내려준 배를 따라가던 돛새치는 금세 돌아와 주변을 빙빙 돌았다. 서른 번쯤 돌았을까 결국 마음을 굳힌 듯 암초 위에 선 나를 향해 거대한 지느러미를 펼치며 날아올랐다. 길고 날카로운 주둥이가 정확히 내 배를 향해 겨눠졌다. 뒤로 꺾여 있던 왼다리를 펴고 일보 앞에서 살짝 들려있던 오른발의 방향을 틀며 꾹 내디뎠다. 몸의 방향이 틀어졌고 작살을 수평으로 잡아 쭉 내밀었다. 공중에서 속도를 전혀 죽이지 못한 돗새치의 거체는 작살을 부러뜨리지 못하고 제 몸을 꿰뚫었다. 단련된 어깨 근육과 발디딤으로 버텼다. 돛새치의 저항은 뒤늦었을지언정 약하지는 않았다. 돛새치의 몸을 타고 흘러내린 바닷물이 돌바닥에 떨어져 하얗게 비산했다. 그러나 점차 빨간 물방울이 사방에 퍼지기 시작했다. 저항이 격렬할수록 굵은 핏방울이 터져나와 제인의 몸을 때리고 얼굴을 뒤덮었다. 그러나 눈을 감을 수는 없었다. 피와 파도로 미끄러운 암초에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다리를 조금씩 벌리며 버티자 허벅지 근육이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작살을 벌려 잡은 양손바닥은 찢어지고 벗겨져 장대에 피가 흥건히 묻어났고, 악문 잇새에서 찝찔한 피맛이 났다. 어깨가 더 굳기 전에 손을 놓고 올라타 여분의 작은 작살로 눈이나 미간을 찔러야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고 싶지 않았다. 돛새치의 마지막 발악까지 온전히 다 받아주고 싶었다. 그것이 예의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이 일은 서로 합의가 된 목숨을 건 대결이 아니다. 그렇다고 우연으로 치부할 수도 없다. 내 손에 든 무기는 내 책임이다. 사룰을 막되 찌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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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七十七

밀어내려 물었는데 움직임이 뚝 멈췄다. 손을 쑤셔넣어 제인의 가슴팍을 밀어내는데 움쩍도 하지 않는다. 흐느낌이 멎은 단단한 남체는 살아있는 것 같지 않다. 섬뜩한 느낌에 다급히 밀었다. 다리까지 발버둥치며 제인의 품에서 벗어나려 하였으나 바위에 깔린듯 갑갑해지기만 한다. 애꿎게도 몸이 달아올랐다. 이성을 날려버리는 압박감에 어디든 물어뜯으려 입을 벌렸을때, 제인의 폐부가 크게 부풀며 내 숨통을 눌렀다. 그리고 먹먹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용한 살인에 대한 값은 제가 치르겠으니, 저를 끌어드린 책임은 지셔야 할 겁니다.” 제인은 푸석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바로 고개를 돌렸다. 어두워 보이지도 않겠지만 보이기 싫었다. 아까는 떨어지는 눈물이 당황스러워 짓눌러버렸다. 냉정하고 무자비한 자다. 그럼에도 따뜻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 싫고 미운데 그래도 살아있어서 다행이었다. 내 목을 베려했고 내가 쳐낸 자지만 살아 숨쉬며 움직이고 심장이 날뛰었다. 산 자의 온기와 몸부림이 첫 살인의 끔찍함을 조금 씻어내주었다. 죽어가는 움직임과 현격히 다른 생동감이 숨을 쉴 수 있게 해주었다. 제인은 사룰에게 다가가 칼집을 풀었다. 제인이 다시 다가오기에 바짝 긴장했던 은령은 몸이 굳어 제때 대응하지 못했다. 그대로 칼집을 빼앗기고 나서야 말을 꺼낼 수 있었다. “말은 바로 해야지. 끌어들인 게 아니잖아? 네가 나를 귀찮게 따라다닌 거지. 나는 분명 네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어.” 제인은 묵묵히 걸어가 창대에 박힌 곡도를 뽑아냈다. 곡도를 칼집에 넣고 창대와 함께 내려놓았다. 그리고 차분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야! 너 뭐하는 거야!” 은령은 다급히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옷은 말려드렸습니다. 여기는 왜 비어있는 것입니까?” 은령은 제 몸을 내려보았다. 비에 젖은 옷이 말라있다. 멍청한 기분으로 펄럭이는 옷감을 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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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七十八

“고향이 어디십니까?” 내가 나온 걸 어찌 알았는지 제인이 질문을 했다. “태어난 곳이라면 모른다. 자란 곳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연이 있고,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현덕이 있었으며, 세상에서 가장 강한 폐하께서 계신 곳이다. 푹푹- 규칙적인 소리가 들린다. 기와에 모여 떨어지는 물소리도, 제인이 땅을 파는 소리도 규칙적이다. 이래서 음악처럼 들리는구나. “그럼 죽은 후 묻히고 싶은 곳은 있으십니까?” 너도 꽤나 성격이 꼬였어. “바다에. 강이 끝나는 곳에 대충 썰어서 뿌려줬으면 좋겠군.” 그러면 어. 그러면……. “저기 제인? 바다에 사는 물고기 중 가장 크고 예쁜 물고기는 뭐지?” 픽- 삽이 빗나가는 소리다. “아귀입니다.” 푹푹- “그건 귀신 이름이지 않은가?” “물 속에서 신출귀몰하고 먹성이 좋아 그리 불립니다만 예쁩니다.” “그래. 그렇게 아귀에게 먹혀 아귀가 됐으면 좋겠군.” 그래서 이연이 놀러올 때마다 훔쳐봐야지. 바닷물 속에서 바라보는 이연의 모습은 어떨까? 가끔 욕조 물 속에서 이연을 바라보곤 했다. 미약한 불빛 속에서 흔들리는 물결은 이연을 짙고 그윽하게 만들었다. 생각에 잠겨있는데, 지척에서 제인의 말소리가 들린다. “아귀보다는 뱀상어가 어울리시겠군요.” 정말 깜짝 놀랐다. 언제 삽질하는 소리가 멎었을까. 물기 하나 없는 보송한 몸으로 지나간다. “상어가 크고 난폭한 물고기라는 건 나도 알아. 상어 지느러미를 먹으며 들어봤으니까. 그럼 이연에게 다가갈 수 없잖아.” 거리를 조금 두고 제인을 따라갔다. 아무리 그래도 발가벗은 남자를 바로 뒤쫓을 수야 없지. “아니다. 그럼 내가 슬며시 다가가면 이연이 나를 사냥할까? 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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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七十九

제인이 내 어깨를 살짝 밀어 치우고는 시체를 안아들고 나간다. 이 작당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가. “야. 내일 해.” “제가 죽으면 태워서 황하에 뿌려주십시오. 홍루족은 죽은 후 모두 고향으로 돌아와 태워지지만 아들만은 그 권리를 누릴 수 없습니다. 아들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말이죠.” “쓸데없이 고집이 세니 그렇겠지.” 제인이 덜컥 멈췄다. “아, 그거 아무도 모르는 건데. 비밀로 해주시겠지요?” 실없는 얘기를 한 제인이 다시 걸어간다. 고작 칠주야를 지낸 나도 알겠는데 누가 그걸 모를까. 제인과 나란히 걸으며 그를 올려다본다. 희미한 반사광만이 감도는 어두운 복도에서도 붉은 머리칼은 따스하게 빛난다. “몇 명 남았습니까?” “왜. 그 궁녀에게 길동무라도 미리 알려주게?” “그러면 안 됩니까?” “그래. 안될 건 없군. 그 궁녀와 같이 이연궁에서 일하던 궁녀가 하나 더 있다. 주희와 휘운을 받은 궁의도 보고를 하러 목련궁으로 갔다가 이연의 생부를 봤다고 하지. 그때 목련궁에 있던 환관 하나와 궁녀 둘 그리고 금군이 있다. 그 금군은 소우 장군이라 무리할 생각은 없어.” “많기도 하군요.” “그리고 설화궁의 궁녀 둘과 환관 하나도 있다. 궁녀 둘은 모란궁으로 옮겼다던가.” “그들이 이야기를 전한 이들도 있겠고요.” 은령은 입을 꾹 다물었다. 밖이 가까워지자 빗소리가 점점 강해졌다. 제인은 거침없이 빗속으로 걸어간다. 그러나 은령은 처마가 그린 선을 아직 넘지 못한다. “공주님은 아카라阿㻔蘿님을 실제로 뵌 적이 있으십니까?” 은령은 멍하니 서서 제인이 하는 양을 바라보았다. 구덩이에 시신을 정중히 내려두고 묵념을 한 뒤, 한참을 서서 직접 판 구덩이와 그 속의 시신들을 바라보고 있다. 보다못한 은령이 뭐라 소리치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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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八十

“아바마마 어찌하여 그를 살려두셨습니까.” 무탄은 조금 열린 창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날에는 살가운 눈이 조용히 내렸었지. 오늘은 장막 같은 비가 내린다. 잘 자라서 태자가 되어 줄 아들은 이런 약은 결정을 하였다. 비가 소리를 야금야금 먹어줄 때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기로 한 모양이다. ”이연, 내 아들아. 내가 너와 닮은 이를 죽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느냐.” 예상했던 답이고 가장 어리석으며 허술한 답이다. 이연은 황제 무탄에게 상처 주지 않는다. 이때까지 그래왔다. 내 존재의 이유를 만들어 준 사람이다. 처음으로 감히 황제에게 반항한다. “그러지 마셔야 했습니다. 원하는 걸 얻으셨을 때 없애셔야 했습니다. 후환을 남기지 마셔야 했습니다.” 무탄은 결국 이연의 얼굴을 마주했다. 얼마나 울었는지 희게 빛나던 얼굴이 불그죽죽해졌다. 눈의 흰자는 실핏줄이 다 터졌고, 입술은 얼마나 깨물었는지 피딱지가 검게 앉아 있다. 독한 마음을 먹었으면 이런 얼굴일랑 하지 말았어야지. 그를 닮은 표정일랑 감추었어야지. 그간 감정을 속이고 제 뜻을 감추며 스스로 잘 벼린 한 자루의 검이 되고자 하는 이연의 모습을 지켜만 보았다. 그것이 네가 그리는 지도자의 모습이라면 인정해 주려 하였다.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들어주려 하였다. 그러나 그건 네 성정에 맞지 않는 짓이다. ”그래. 지금 막 후회하는 참이다. 네게 왜 그를 죽였느냐는 말을 듣는 것이 낫지. 네 입에서 그의 죽음을 원한다는 말을 듣는 것은 지독히도 괴롭구나. 그리고 네게 그런 괴로움을 줬다는 것 또한 미안하고 아프다.” 황제는 희로애락이 뚜렷하여 숨김이 없는 사람이었다. 권력자로 보이지 않았다. 여염집 아버지처럼, 아니 그보다도 더, 따뜻한 둥지를 짓고 먹이를 끊임없이 잡아 오는 수컷 새처럼 그렇게 헌신적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화려하고 멋있었다. 그런 아비이기에 그런 지배자였다. 이 나라의 아버지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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