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향

철향

last updateHuling Na-update : 2026-10-27
By:  김굉In-update ngayon lang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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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Mga Kaban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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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께서 원하는대로 하십시오.” “널 죽이고 태자 자리를 빼았는 것이어도 말이냐?” “그걸 원하신다면 그리 하십시오.” 하얀 얼굴에 떠오른 미미한 미소가 거슬렸다. 우는 표정에 가까워서 더 그랬다. 현덕은 더이상 저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아졌다. 네 얼굴에 어울리는 표정은 그것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곁에 있는 한 네 표정은 항상 그러하겠지. 현덕은 티끌 하나 없이 맑은 미소가 저 아름다운 얼굴에 떠오를 수 있도록 이연의 곁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월식이 일어나는 날 궁을 떠나겠다.” 쇳소리가 섞인 미련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미 저주는 사라졌을텐데, 내 지저분한 목소리가 칼날이 되어 심장을 찌른다. 네가 끝내 풀어주었건만, 저주의 고통이 버릇처럼 고인 이 몸뚱이는 끊임없이 너를 갈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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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banata 1

철향鐵響 一

달이 늑대에게 먹히는 오늘, 어둠을 틈타 세 필의 말이 낙양의 성문을 나섰다. 모조리 검은 말에 말발굽에는 털가죽을 씌웠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일 앞을 달리는 사내의 존재감은 감출 수 없었다. 거대한 군마에 어울리는 큰 체격의 사내다. 뒤덮어 씌우면 무엇이든 작아보이게 만드는 검은 옷을 입었건만 위용이 넘친다. 검은 사내의 짙은 그림자가 월식의 어둠과 기싸움을 하듯 쏘아져 나간다.

 “마마님! 위험합니다!”

기탁起晫은 연신 고삐를 휘두르며 말을 재촉했다. 정신없이 내달리는 현덕玄德의 말을 앞질러야했다.

금군이 가진 흑마 중에서 가장 침착하고 노련한 말을 골랐건만 시야가 탁 트이자마자 폭주하기 시작했다. 궁 안의 좁은 연무장과 후원 이외의 곳에서 말을 타 본 적이 없는 현덕이다. 낙마해서 잘못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아니 웃기는 짓이다. 스물여섯 살이 되어서야 겨우 궁 밖으로 나오게 되었는데, 성문을 나서자마자 낙사했다는 오명을 쓰게 둘 수 없다.

그러나 기탁의 애마는 놀라운 지구력으로 천 리를 쉼없이 달릴 수는 있었지만 순간적으로 뛰쳐나갈 배짱은 없었다. 별 수 없이 안장 아래에서 말채찍을 꺼내려는데 옆에서 바람이 인다. 아, 안 돼. 은령銀玲의 말까지 붙잡을 여력은 없다. 이건 내 능력을 벗어난 일이다.

은령에게는 미안하지만 마마님을 택한다. 이건 너도 뭐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기탁이 말채찍을 손에 들었을 때, 현덕의 말고삐를 잡아채고 그쪽으로 날듯이 넘어가는 은령의 뒷모습이 보인다. 곡예와 같은 매끄러운 움직임이다. 현덕의 말이 서서히 느려진다. 은령의 말은 기수가 여전히 타고 있는 양 곁에서 속도를 맞춘다.

 “하하하하하하!”

기탁이 다가가자 낮게 울리는 현덕의 웃음소리가 커진다. 한껏 느려져 도각거리는 말발굽 소리를 현덕의 허망한 웃음 소리가 뒤덮는다. 말발굽을 덮고 있던 털가죽은 이미 벗겨져 날아가고 없다.

기탁의 걱정은 기우였다. 현덕은 일부러 내달린 것이었고, 은령은 먼 북부에 있는 기마민족의 후예였다. 피와 뼈에 새겨진 승마술이 발휘되었을 뿐이었다.

 “하아. 제가 주제넘게 두 분의 승마솜씨를 우습게 여겼나봅니다.”

이에 답하듯 해맑게 웃는 현덕의 얼굴이 서서히 밝아진다. 늑대가 차가운 달을 뱉어내고 있다. 궁문을 나선지 한 시진은 족히 지난 것이다.

 “은령, 저기다. 저쪽으로 말을 몰아.”

기탁은 멀리 보이는 어둠에 잠식된 참나무숲을 가리켰다. 은령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현덕의 앞에 앉은 채 능숙하게 말 두 필을 다스린다.

------

“그륵, 그륵, 꿀꿀꿀꿀.”

참나무 사이사이 풀어 둔 돼지들이 나즈막하게 울어댄다. 잠들어 엎드려있지만 이방인의 방문은 눈치챘다고 게으르게 티를 낸다.

 “뀨르르르. 끼융, 끼융. 뀽뀽.”

현덕은 어미 곁에 바짝 달라붙어 젖을 먹고 있는 새끼들을 가까이서 보고싶어 살살 다가갔다. 그러나 어깨를 붙드는 강한 힘에 더이상 다가가지 못한다. 등 뒤로 한껏 죽인 목소리가 들린다.

 “마마님, 어미는 사납습니다. 물러서십시오. 손가락이 물리면 잘려나갑니다.”

정말 손이 많이 가는 마마님이시다. 기탁은 현덕이 천천히 돌아보는 모습을 보며 손을 놓았다.

 “언제까지 마마라고 부를거냐. 아주 동네방네 여기에 황자가 있다고 소문을 내려고 그러느냐.”

현덕은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는 시선을 새끼돼지쪽으로 한 번 더 돌려본 다음에 기탁과 마주한다.

기탁은 입을 꾹 다물고 고민한다. 현덕님이라 불러야하나. 황실의 이름이 전부 사가에 전해지지는 않는다지만, 황제와 황자의 존명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다. 그래서 사가에서는 같은 나이대와 더 어린 아들에게는 황자와 같은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이십 대 중반의 범상치 않은 체격의 남자를 일황자의 존명으로 부른다면 미친 사람으로 보거나 황자로 보겠지. 곤란하다.

“은령은 어디갔느냐? 여기 들어오지 않은거 같은데?”

기탁은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현덕을 바라본다.

“손을 한번 들어보시지요.”

현덕은 양손을 눈앞에 들어보였다. 지난 이 년간 무예 수련과 승마 연습만 집중적으로 했기에 굳은 살이 제법 박여있다.

 “말고삐는 어쩌셨습니까?”

 “아, 그래. 내가 돼지에 정신이 팔려서.......”

현덕은 겸연쩍어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생각보다 역한 냄새는 나지 않는다. 관리가 철저한 황궁 마구간보다도 분뇨 냄새가 나지 않는다. 아래 두껍게 깔린 낙엽들 때문일까.

 “생각보다 냄새가 짙지 않구나.”

 “돼지들은 개만큼 똑똑하니까요. 이렇게 너른 구역에 풀어 키우면 몇 군데 지정하여 변을 봅니다. 진흙 목욕을 수시로 해서 몸도 정결하고요. 저기 은령이 오네요. 사람 손을 탄 돼지들이라 사람에 대한 경계는 덜하지만 말은 해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밖에 메어두라 했습니다.”

 은령은 현덕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절을 한다.

 “접선하기로 한 자들과 만났습니다. 이만 물러남을 허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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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ang Komento
122 Kabanata
철향鐵響 二
궁을 빠져나간다는 목적을 이루면 각자 갈 길을 떠나기로 했다만, 이렇게 금방일 줄은 몰랐다. 아니 알고는 있었다. 그럼에도 이별은 들이닥칠 때까지 마음의 준비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 모쪼록 이연理淵을 잘 부탁한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한 번 보여줬으면 좋겠는데, 은령의 고개가 더 숙여진다. “마마께옵서도 부디 옥체 만강하시길 빕니다.” 현덕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흔해빠진 인삿말이지만,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이연이 고쳐 준 몸뚱이를 이연을 위해 멀리 내다 버리러 간다. 내가 떠나는 이유를 잘 아는 은령이 이런 말을 꺼내는 이유 역시 짐작하기에 굳이 고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당장 헤어지기에 은령이 읊은 칭호 역시 지적하지 않는다. 은령이 정한 마지막 인사다. 그러면 나도 마지막 표정을 지어줘야한다. 다행히 은령이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여준다. 기탁도 그간 같이 일해 온 은령이기에 몸을 일으켜 준 다음 작별을 한다. 자그마한 여자아이였는데, 대나무처럼 길쭉이 자라 숙녀가 다 되었다. 고아로 궁에 들어와 황자의 매 맞는 아이로 자랐다. 자신이 지나온 삶과 같은 삶을 살아내는 것을 지척에서 지켜보았다. 측은하면서도 기특했다. 그래서 혈연은 아니지만 여동생처럼 여겼다. “무리하지 마라. 넌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우는 경향이 있어.”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이것도 이제 마지막이다. 넌 나와는 달리 까마득히 높은 곳으로 올라가겠지. 가만히만 있는다면. “우리 뿐만이 아니라 태자 전하께서도 네가 하려는 일에는 결코 동의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건 알고 있지?” 은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 욕심임을 안다. 그러나 스스로 찾아낸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필히 해낼 것이다. “장군께 마마님을 떠맡기게되어 송구합니다.” 모두의 뜻이 이리 엇갈린다. 은령은 기탁이 떠나는 이유 역시 이연을 위한 것임을 안다. 현덕의 끝을 지켜보고 이연에게 전하는 일. 입이 쓰게도 그 무엇 하나 이연이 원하는 일이 아니다. “하하. 무얼. 호위는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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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三
“그래. 장가 가. 장가 가렴. 내 참한 소저가 보이면 재깍재깍 데려다 주도록 하마.” “아니요, 아니요. 유이님께선 저랑 떨어져 계시는게 도와주시는 겁니다.” 기탁은 침상 주위에 물이 든 대통과 당과가 담긴 목기를 놓아두고, 부시를 쳐 유등 하나에 불을 붙였다. 노랗게 밝혀진 현덕의 얼굴을 잠시 바라본다. 본래도 선이 굵은 얼굴에 짙은 음영이 더해져 남자가 봐도 반할 얼굴이 되었다. “어휴, 과일이나 받으면 좀 나눠주십쇼. 제 색시는 제가 알아서 구하겠습니다.” “과일은 왜?” “으으. 머지않아 알게 되실겁니다. 누추하여 죄송합니다만, 곧 해가 뜰 것입니다. 그때까지만 참고 눈 좀 붙여두십시오. 낙양에서 멀어지면 역원이나 객잔에 들를터이니 오늘만 참아주십시요. 그럼 저도 쉬어야하니 물러나겠습니다.” 기탁은 천막에서 나와 활과 화살통을 둘러메고 나무를 올라탔다. 아무래도 이쪽이 주변을 경계하기 더 좋다. 기탁은 금군이 되면서 황궁 밖의 근무도 여러 번 떠나봤기에 야영이 익숙하다. 현덕은 궁 밖에서 자는 것이 처음이다. 아무리 봄비에 적셔져 부드러워진 낙엽을 깔고 양모 담요를 두툼히 위 아래로 깔고 덮고 잔다지만, 곧바로 적응하긴 힘들다. 밖에서는 돼지의 꾸륵거림이 계속 들려오고, 어디서 농염한 바람이 스산하게 들어온다. 그리고 의외로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다. 평생 살아온 곳을 벗어났다는 흥분과 서글픔이 동시에 밀려온다. 목표는 있지만 그걸 이룩하기 위한 막막함도 견뎌야 한다. 비록 툴툴대긴 했지만 의지할 이도 기탁 뿐이다. 현덕에겐 기탁이 황제의 마효장군과 다름없다. 그런 기탁에게 조금이라도 신세를 덜 지려면, 그의 말을 착실히 들어야한다. 조금이라도 잠을 자두기 위해 눈을 감는다. 역시나 이연의 얼굴이 바로 떠오른다. 핏줄이 비쳐보이는듯한 투명한 흰피부에 조각같은 이목구비. 그 가운데 맑은 하늘을 담아 박아넣은듯한 눈동자에 물기를 담아 나를 직시한다. “형님께서 원하는대로 하십시오.” 이연은 목소리조차 아름다웠다. 청아하게 울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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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四
정오의 빛을 받아 매끈하게 빛나는 황금 궁문 앞에 잘 차려입은 일단의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다. 무리의 대표는 시야를 압도하는 금빛을 충분히 감상한 후 동행들의 정렬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문 가운데 서있는 수문장에게 봉해진 서신을 전달했다. 수문장은 대표의 얼굴을 바라보며 봉인을 뜯고 서신을 완전히 펼친 후에야 고개를 내려 서신을 읽는다. 길지 않은 서신이다. 수문장은 대표의 뒤에 나란히 서있는 남녀를 빠르게 훑어본 후 왼쪽에 있는 병사에게 짧막한 수신호를 보낸다. 병사는 수신호를 보자마자 파란 깃발을 들어올렸고, 궁문 위에서부터 부우우우- 뿔피리 소리가 울린다. 무리의 사람들이 동시에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리는 근원지를 찾는 동안 서서히 궁문이 열린다. 뒤늦게 사라지는 금빛을 깨닫고 고개를 내리면 벌써 반쯤 열린 문 사이로 하얗게 빛나는 긴 화강암 길과 붉은 기둥 위에 황금 지붕을 얹은 장엄한 건물이 길 끝에 놓여있는 것이 보인다. 세상이 파란 하늘과 하얀 바닥으로 양분되었다. 그 가운데를 금빛 지붕이 가로지른다. 지극히 인공적인 아름다움에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정신을 차리면, 중앙의 수문장이 사라졌다는 것과 이렇게 큰 문이 부드럽고 빠르게 열렸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어느새 무리의 양옆에 도열한 수문장들이 몸을 숙이며 인사를 한다. 고개 숙인 수문장들을 지나 천천히 궁문 안으로 걸어간다. 머나먼 운남에서부터 여기까지 무리를 무사히 이끌고 입궁하게 된 강원姜元은 스스로가 대견하여 얼굴 가득 미소를 띠었다. 뒤따르고 있는 강현姜鋧은 보지 않아도 보인다는 듯 형의 뒷통수를 시선으로 있는 힘껏 후려쳤다. 그러나 그걸 알 리 없는 강원은 히죽히죽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좌우에 보이는 회랑이 멀기도 하다. 그 회랑을 바쁘게 오가는 궁인들이 개미같은 크기로 보인다. 바쁜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아슬아슬했다는 생각이 든다. 바특하게 도착하긴 하였다. 태자 전하의 탄신일 당일에 도착하다니.“저기 앞을 좀 봐.” 구경에 정신팔린 형과 그런 형을 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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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五
태자비 간택과 함께 앞으로 태자를 보위할 금군을 선발한다는 공문이 내려왔다. 보통은 삼 년에 한 번 치뤄지는 무과 합격자 중에서 뽑지만, 올해는 무과가 없다. 올해 태자 책봉이 있으니 다음 무과 전까지 측근이 될 두 명을 뽑아두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건 핑계다. 궁에 차고 넘치는게 금군일진데, 그 중에서 뽑으면 된다. 다만 태자비 후보의 입궁을 도와줄 호위가 필요했던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황실의 일이니 황군을 보내줬어야한다. 하지만 태자비 후보 중에는 제후국의 공주도 있다고 하였다. 타국에 군대를 보낼 순 없다. 침략으로 간주될 것이다. 사신단에 준하는 규모의 호위를 꾸려서 올 타국의 공주와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호위는 알아서 구색을 맞추라는 것이다. 매령의 경우 관료의 딸이니 성을 넘어갈 때마다 관군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은 이참에 지방의 귀족이 가진 사병의 수준도 파악하겠다는 꼼수도 숨어있을 것이다. 우리집은 매령의 집과 가까이 지냈다. 매령의 아버지는 지금의 황제가 운남을 정복할 때 대장군이었던 자로 현재 운남성 현령이다. 우리집은 그때 찌그러진 운남의 족장 가문이고. 황제는 전쟁을 치르며 공을 세운 군인들에게 정벌한 땅을 하사하고, 그 자리에 있던 왕실이나 호족들은 혼인을 맺어 중앙으로 불러들였다. 그래서 패퇴한 백부님은 낙양으로 끌려가셨고, 막내였던 아버지는 운남에 그대로 남았다. 매령의 아버지는 운남의 백성들을 구슬릴 겸 우리 아버지를 양자처럼 대했다. 서로서로 어떤 계산 속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현령의 늦둥이 고명딸 매령과 동갑인 나는 매일같이 어울려 다녔다. 어른들의 사정 따위 우리가 알 필요는 없었다. 수박을 서리하고 뱀을 때려잡는 일에 그런 것들은 전혀 상관이 없으니까. 그랬는데 매령이 태자비 후보로 간택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버지는 이것을 기회로 삼기로 하고 나와 형을 끌고왔다. 방계인 우리집은 어차피 장남 외엔 다 필요없다. 그래서 아들들 중 유독 속썩이는 셋째, 넷째를 수도로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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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六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작은 은빛 두상이 보인다. 너무 쉽게 납득하시는 것 아닙니까? 고개를 든 휘운의 회색 눈이 이글거리며 나를 응시한다. “곤륜의 제자가 점창의 제자를 뵙습니다. 태자 전하를 보위해 주시고자 뜻을 밝혀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서궁에 무관들의 연무장과 숙소가 있습니다. 일단 대전의 서편으로 돌아 서궁으로 이동하신 후 후궁의 설화궁으로 모실터입니다.” 포권을 한 손이 지나치게 앙증맞고 하얗다. 주먹 위에 얹어진 작은 손톱이 은빛으로 빛난다. 저것이 황후의 혈통이 가지고 있다는 저주를 막는 은린銀鱗이구나. 그리고 황족은 모두 곤륜파의 속가제자라더니 진짜인가보다. 나는 도관에 등록도 안 되어있는데, 저 반짝이는 눈에 제대로 응해야겠다는 생각에 포권을 하고 고개를 숙인다. “점창의 제자가 곤륜의 제자를 뵙습니다.” “동궁은 지금 태자 전하의 탄신제 준비로 번잡합니다. 매령님과 강현님을 제외한 나머지 분들은 저녁 연회 때 태자 전하를 뵈실 수 있으실겁니다. 그럼 천천히 따라오시지요.” 말을 마친 주희와 휘운이 뒤로 돌자, 도열하여 고개 숙이고 있던 궁인들이 좌우로 갈라진다. 그 사이를 주희와 휘운이 호흡을 맞춰가며 천천히 미끄러지듯 걷는다. 좌우로 팔랑이는 적발과 은발이 스르르 멀어지자, 궁인들이 빈 자리를 채우듯 그 뒤를 따른다. 궁인들의 발걸음 소리 속에 매령의 작은 목소리가 섞였다. “무서워.” “응?” “기이할 정도로 아름다운 걸 보니까. 이 세상에 있어선 안 되는 걸 봐버린 것 같아. 오히려 내가 어딘가 잘못된 거 같다는 기분이 들어.” 강현은 아직 쌍둥이 남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매령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어딘가 잘못 되긴 했다. 이 녀석이 이런 표정을 짓는 건 처음이다. 미소 띈 입매를 하고 눈은 두려움에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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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七
너른 공간에 크고 작은 발소리와 수레 바퀴 소리가 절묘히 섞여 들어간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움직이며 자아내는 신묘한 박자감에 몸이 젖어갈 때쯤 왼쪽의 문으로 빠져나왔다. 사람 서너명은 한 번에 지날 수 있는 너른 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으니 누런 물이 흐르는 해자가 보인다. 그 위에 얹어진 다리를 건너는데 오른쪽으로 회랑과 같은 높이의 담장이 쭉 이어져있고 그 너머로 높고 큰 황금지붕 건물이 보인다. 아까 대전이라고 생각했던 건물도 그저 문일 뿐이었다. 강현은 까마득한 거리와 규모를 찬찬히 눈에 담았다. 해자의 폭과 깊이도 유심히 바라보고, 왼쪽의 성벽에서 오른쪽 담장까지의 거리와 정면에 보이는 서궁의 대문을 보며 전체적인 윤곽을 머릿속에 심기 시작했다. “들리냐?” 형의 말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강현은 귀가 너무 좋다보니 오히려 모든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익숙한 소리에만 반응한다. 그래야 쉬이 피곤해지지 않는다. 주변으로 청력을 확장하는 순간 내달리는 말발굽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여러 마리가 아니다. 단 한필의 말이며 기수가 타고 있다. 아주 빠르지만 규칙적이다. 훈련이 잘 된 말이며, 울림의 크기로 보아 덩치도 작지 않다. 짐작건데 기수도 그리 작은 체구는 아닌듯하다. 바닥은 흙바닥이 아닌 돌바닥이다. 말발굽에 좋은 환경은 아니다. 그리고 어딘가 소리의 합이 어색했다. 강현은 좀 더 집중해서 들어본다. 궁 안에서 홀로 말을 타고 달리고 있는데 주변인들의 사소한 응원이나 염려도 들리지 않는다. 사람이 내지르는 소리는 청아한 웃음소리 하나 뿐이다. “한필, 한 명. 명마 그리고 아마도 태자 전하.” 형에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한다. 오래 같이 지내온 매령은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웅얼대는 내 목소리가 들리면 내 입술을 읽는다. “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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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八
궁중예절과는 다르지만,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인사다. 그리고 매령을 처음보는 자들은 위아래로 지저분하게 훑기 마련인데, 반듯하게 서서 눈만을 응시한다. 목소리부터 자세까지 고요하면서도 흔들림이 없다. 강현은 매령의 금빛 얼굴이 점점 새빨갛게 익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부끄러움에 연신 입술을 감쳐무는 매령을 보며 강현이 오히려 민망해질 지경이었다. 진짜 별짓을 다한다. “운남성 우씨 매령이 인사올립니다. 이연 마마님을 뵙습니다.” 아슬아슬하게 실수하지 않았다. 강현의 고막은 이연이 주희에게 전하라는 호칭은 이르다 일컫는 것을 분명 들었다. 그러나 강현도 정신이 없기에 미처 매령에게 전달하지 못했다. 다행히 매령이 평상시 버릇대로 입술을 읽은 모양이다. 하긴 저 얼굴을 보는 순간 시선을 뗄 수 없었겠지. 매령이 숙였던 얼굴을 간신히 들어올려 눈을 마주하자, 이연은 천천히 말을 꺼내었다. “아무리 궁의 예법이 그러하다하나 신부될 이를 모셔두고 성혼식까지 얼굴도 못보게 한다는 것은 옳지 않은 일로 여겨져서 말이죠.” 이연이 매령을 향해 은은히 미소를 짓는다. 미소를 받은 매령의 붉게 달궈진 얼굴이 점점 희게 질렸다. 매령은 궁 안에 들어섰을 때부터 계속되던 압박감이 지금 최고조에 달했다고 느꼈다. 잘못한 거 하나 없음에도 벌 받는 기분이다. 심지어 저 인간같지 않은 자와 혼인을 하기위해 여기 와있다니 눈 앞이 아득해졌다. 혼미해지는 매령의 정신을 이연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붙잡는다. “궁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시길 빕니다.” 궁에서 쓰는 사소한 인삿말인 양 알쏭달쏭한 말을 내뱉고는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눈인사를 한다. 마지막으로 강현에게 눈을 두고는 이채롭다는듯 반짝였다. 강현은 한숨을 삼켰다. 가끔 이런 미친 놈들이 있다. 미녀보다 미녀 옆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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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九
매령은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듣지 못하고 큰눈을 깜박였다. 그러나 일그러진 강현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순식간에 이해가 되었다. 두 명의 호위, 세 명의 후보. 각자 한 명씩 욕보이면 매령이 태자비가 될 수 있다. 삼남과 사남 정도는 혈기를 못참아 우를 범하고 처벌받아도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집안의 평판에는 별 타격은 없을 거다. 게다가 여태껏 여러 번 현이를 버리려 했던 강 가장이다. 놀랍지도 않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매령 집안 하나 외척이 되기 위해 벌이는 일치고는 강씨 집안의 손해가 너무 심하다. 그러나 두 집안의 돈독한 연결을 생각하면 두 아버지 사이에 큰 거래가 있었으리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현이도 데려가.” 매령의 떨리는 동공을 보며, 강원은 설핏 웃었다. ‘내가 뭐라고? 바늘 가는 데 실 가야지.’ 이런 생각을 말로 꺼낼 수는 없다. “내가 손을 뗐는데, 쟤 혼자서 뭘 어쩌겠어. 금군이나 되라고 해. 고향에 발도 못 붙이게.” 너무 오래 마주보고 있었다. 강원은 몸을 돌려 연무장을 향해 바라보았고, 곧은 자세로 기다리고 있는 주희와 눈이 마주쳤다. 언제나 충동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편이지만, 이번만큼 근거없는 선택은 처음이었다. 본래 매령이 태자비가 되는 것을 막고, 강현도 금군이 되지 못하게 만들 심산이었다. 언제나 하는 짓이 귀여운 저 둘을 어디 멀리 보내버리고 나만 금군이 되려 하였다. 그러나 저 강물 같은 눈동자가 기억을 끄집어냈다. 강물을 오가는 상선에서 칼질을 팔아 빌어먹으며 살고 있을 때, 양자강이 울며 떠내려보내던 시신을 기억한다. 갈빛 피부에 적발을 가진 여인. 칠주야 동안 범람이 일어났고 사흘간 강물이 역류했다. 강원이 일하던 상선은 망가져 쓸 수 없게 되었고, 선사는 사실상 망해버렸다. 강원은 미련없이 모은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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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十
마지막으로 낙양의 백부님 댁에 들르라는 아버지의 언질이 있었지만, 그것 역시 지키지 않았다. 우리에게 임무가 주어지기 앞서 백부님이 저지른 일들을 들었기 때문이다. 현 황제의 후궁 중 두 명은 우리 가문에서 들여보냈었다. 둘 다 백부가 아름다운 여인을 집안의 양녀로 들인 후 임신시킨 다음 입궁시켰다. 처음에는 운남을 빼앗긴 것에 대한 앙심이었다. 당시 하나 있는 황자는 황제의 친아들이 아닌 황제의 둘째 형님의 유복자였다. 태자였던 첫째 형님과 둘째 형님이 한날에 죽자 뒤이어 태자의 자리에 오르며 임신한 형수를 처로 들였다. 황실의 태를 지닌 여인을 내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바로 동쪽의 제齊나라를 정복하고 공주를 후비로 들였다. 형수를 태자비로 받아들이되 취하지는 않겠다는 뜻이었다. 멸망한 제나라의 공주는 귀비가 되어 딸을 하나 낳았을 뿐 더이상 후사는 없었다. 백부는 낙양에서 정복당한 지방의 호족으로서 존중은 받았지만 실권은 없었다. 그에 방법을 찾았다. 자신의 핏줄을 임신한 여인을 궁으로 들여보냈다. 이미 빼앗긴 땅과 권력. 들켜서 멸문당해도 상관없다는 막무가내의 마음이었다. 잘되면 황자의 생부가 된다. 숙비가 된 그 여인은 아들을 낳다 산통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 황제는 그 아들을 이황자로 정성껏 키웠다. 그걸 본 백부는 또 한 번 그짓을 벌였다. 사돈된 마음으로 여동생이 그리 박명하여 송구스럽다며, 또 한 명의 여인을 임신시켜 집어넣었다. 선비가 된 그녀 역시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은 삼황자가 되어 황실의 비호를 받았다. 그렇게 백부는 자신의 아들 둘을 황자로 만들었다. 그러나 태어나서부터 몸이 약했던 삼황자가 요절하자, 선비는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지만 자신과 같은 처지였던 여인의 아들인 이황자를 정성껏 키웠다. 사실은 백부의 은근한 압력이었다. 일황자도 병약하다. 어떻게든 키워내면 백부의 친자인 이황자가 태자가 될 지도 모를 일이었다. 황궁에서는 아들 잃은 어미와 어미 잃은 아들과의 친애를
last updateHuling Na-update : 202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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