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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불온한 정착: Chapter 231 - Chapter 240

322 Chapters

231화

서희는 한동안 화면만 내려다봤다.받고 싶지 않았다.조금 전까지 사라와 통화했고, 이제는 강수까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도 진동이 끊어질 때까지 바라보다 결국 통화 버튼을 눌렀다.“왜.”평소 강수가 하던 것처럼 짧게 말했다.전화기 너머가 잠시 조용했다.-사라한테 한 말.역시 그 얘기였다.서희가 헛웃음을 흘렸다.“사라가 바로 말했어?”-어.“그래서 전화한 거야?”-어.서희는 눈을 감았다.결국 또 사라였다.“나 아이한테 뭐 하겠다는 말 안 했어.”-알아.“미워한다고도 안 했고.”-들었어.“그럼 왜 전화했는데?”강수는 잠시 말이 없었다.사라가 차에 올라타 안전벨트를 매는 동안에도 그는 차 밖에 서 있었다. 조금 전 단단하게 굳었던 사라의 얼굴이 아직 눈에 남아 있었다.“애는 빼.”서희의 입술이 굳었다.“뭘 빼.”-우리 문제에서.낮고 단정한 목소리였다.-나한테 화내. 사라한테 화내는 것도 내가 막을 수 없어.강수의 시선이 차 안의 사라에게 향했다.-애는 건들지 마.“내가 뭘 건드렸는데?”-말도.서희의 눈에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내 감정까지 당신이 정해?”-안 정해.“근데 미워할까 봐 무섭다는 말도 하지 말라며.”-사라한테 하지 마.강수는 말을 길게 늘이지 않았다.서희가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까지 통제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 감정을 사라와 아이에게 직접 쏟아내는 건 다른 문제였다.서희가 입술을 깨물었다.“당신은 정말 그 아이가 그렇게 중요해?”강수의 대답은 바로 떨어졌다.-어.“사라보다도?”강수의 미간이 좁아졌다.-비교하지 마.“왜? 대답 못 해?”-할 필요 없어.서희는 결국 웃었다.눈물을 흘리면서도 웃음이 났다.“당신 진짜 많이 달라졌다.”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나랑 살 때도 아이 얘기한 적 있었잖아.”강수의 시선이 가라앉았다.그런 적이 있었다.결혼하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아이를 생각할 수도 있다고. 서희가 언젠가 아이가 생기면 어떨 것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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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화

강수는 바로 출발하지 않았다.핸들 위에 올려둔 손이 그대로 멈춰 있었다.사라는 옆에서 대답을 기다렸다.“끝까지 안 해주면?”“진행해.”“어떻게?”“방법 있어.”강수는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서희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지금의 상태를 그대로 두고 살 생각은 없었다. 이미 이혼하겠다고 결정했고, 그 결정에 사라의 허락도 서희의 납득도 필요하지 않았다.사라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구나.”그걸로 첫 번째 질문은 끝난 듯했다.강수가 기어에 손을 올렸다.그런데 사라가 다시 불렀다.“오빠.”“왜.”“나랑은 결혼할 거야?”강수의 손이 다시 멈췄다.사라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얼굴이었다.눈을 반짝이지도 않았고 긴장해서 손을 모으지도 않았다. 결혼해달라는 사람의 표정이라기보다는 그냥 갑자기 궁금한 게 생긴 얼굴에 가까웠다.강수가 사라를 봤다.“왜.”“궁금해서.”“갑자기?”“응.”사라는 안전벨트에 등을 기대며 강수를 바라봤다.“오빠는 서희랑 이혼할 거라며.”“어.”“그럼 그다음에는?”“뭐가.”“나랑.”사라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나랑 결혼할 생각도 있는 건가 해서.”강수의 눈이 가늘어졌다.“넌.”“나는 뭐?”“하고 싶어?”이번에는 사라가 잠깐 생각했다.“음…….”강수는 재촉하지 않았다.사라는 정말로 고민하는 얼굴이었다.결혼이라는 걸 진지하게 상상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누군가와 만나도 끝을 먼저 생각하지 않았고, 미래를 약속받으려 한 적도 없었다.강수와도 마찬가지였다.좋아서 만났고.같이 있으면 즐거워서 같이 살았다.그러다 뜬금이가 생겼다.그렇다고 갑자기 결혼이 당연해진 것도 아니었다.“모르겠어.”사라가 솔직하게 대답했다.강수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근데 싫지는 않아.”“뭐가.”“오빠랑 결혼하는 거.”사라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해도 재미있을 것 같아.”강수의 미간이 좁아졌다.“결혼이 재미로 하는 거냐.”“그럼 울면서 해?”“민사라.”“왜.”사라가 웃었다.“나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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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화

강수는 잠깐 사라를 봤다.조금 전까지 결혼을 할지 말지 생각해봐야겠다던 여자가 이번에는 프러포즈를 묻고 있었다.“왜.”“그냥 궁금해서.”사라는 배 위에 손을 얹은 채 태연했다.“결혼하려면 프러포즈 하는 거 아니야?”“한다고 했어?”“결혼한다며.”“네가 한다고 해야 하지.”사라가 눈을 깜빡였다.맞는 말이었다.자기는 아직 결혼하겠다고 확실하게 대답하지 않았다.“그럼 내가 한다고 하면?”“해.”“프러포즈를?”“어.”사라의 얼굴에 금세 웃음이 번졌다.“어떻게?”강수의 미간이 좁아졌다.“그걸 왜 지금 말해.”“미리 알아야지.”“뭘.”“내 마음에 드는지.”“그럼 네가 해.”사라가 황당하다는 듯 강수를 봤다.“내가 나한테?”“원하는 게 많잖아.”“아니, 프러포즈 받을 사람이 원하는 게 있는 건 당연하지.”“뭔데.”사라는 기다렸다는 듯 손가락을 하나씩 꼽았다.“일단 사람 많은 데서 무릎 꿇는 거 싫어.”“안 해.”“전광판에 ‘민사라 나랑 결혼해줘’ 이런 것도 싫고.”“안 해.”“사람들 박수 치는 것도 싫어.”“안 해.”“식당에서 반지 음식에 넣는 것도 싫어. 모르고 삼키면 어떡해.”강수가 어이없다는 듯 한번 쳐다봤다.“누가 넣어.”“영화에 나오잖아.”“영화를 그만 봐.”사라는 웃다가 다시 진지한 얼굴을 했다.“꽃은 있어도 돼.”“어.”“근데 너무 많으면 치우기 귀찮아.”“그래.”“반지는…….”말하다가 강수의 왼손을 내려다봤다.사라의 목소리가 잠시 멎었다.결혼.반지.그 두 단어가 이어지자 자연스럽게 떠오른 게 있었다.서희와의 결혼반지.사라는 그걸 알고 있었다.강수가 오래전부터 끼지 않는 것도.회사 서랍 안에 있다는 것도.그렇다고 갑자기 기분이 나빠지지는 않았다. 그 반지는 강수와 서희가 함께했던 시간의 물건이었다. 자신이 지워야 할 것도 아니고 빼앗아야 할 것도 아니었다.사라는 다시 말했다.“나는 새로 사줘.”“당연한 소리 하지 마.”“서희 거랑 비슷한 거 안 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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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화

사라가 돌아섰다.“뭔데?”강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지하주차장 한가운데서 사라를 바라보다가 먼저 걸음을 옮겼다. 사라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 뒤를 따라갔다.“오빠.”“왜.”“정리할 게 뭐냐니까.”“집에서 얘기해.”“여기서 하면 되잖아.”“가.”“또 혼자 말 정리하지.”강수는 대꾸하지 않았다.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사라가 먼저 들어갔다. 강수는 자연스럽게 뒤따라 타 23층을 눌렀다.사라는 거울에 비친 강수를 흘겨봤다.“설마 뭐 또 숨긴 거 있어?”“없어.”“그럼 뭔데.”“민사라.”“왜.”“조용히 있어.”사라가 입을 삐죽였다.정말 딱 십 초 조용했다.“오빠.”강수가 눈을 감았다 떴다.“왜.”“십 초 지났어.”“그래서.”“이제 말해.”강수는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23층에 도착하자 사라가 먼저 나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신발까지 벗자마자 뒤따라온 강수를 돌아봤다.“자. 집.”가방을 소파 위에 내려놓았다.“말해.”강수는 사라의 가방부터 제대로 옮겨놓고 재킷을 벗었다.사라의 눈이 가늘어졌다.“나 궁금한 거 못 참는 거 알지?”“알아.”“그런데 왜 뜸 들여.”강수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소파에 앉았다.“앉아.”“나 서 있을래.”“앉아.”“왜?”강수가 한번 쳐다보자 사라는 결국 맞은편이 아니라 그의 옆에 털썩 앉았다.“이제 말해.”강수는 잠시 손을 맞잡고 있었다.이혼은 이미 결정했다.서희에게도 말했다.사라와 결혼할 생각도 있었다.하지만 그 전에 끝내야 할 게 있었다.“사뇌파.”사라의 표정이 달라졌다.“사뇌파가 왜?”“정리할 거야.”“뭘?”“내 자리.”사라가 강수를 빤히 바라봤다.농담할 얼굴이 아니었다.“보스 그만두게?”“어.”사라의 눈이 커졌다.강수가 CH건설 회장이라는 것과 사뇌파의 보스라는 것은 지금까지 분리할 수 없는 삶처럼 붙어 있었다.그 세계 때문에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강수 역시 그 안에서 살아남으며 온몸에 흉터를 남겼다.그런데 갑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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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화

사라는 강수가 내려놓은 휴대전화를 한번 보고 물었다. “몇 시에?” “오전.” “몇 시.” “열 시.” 사라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되겠다.” 강수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뭐가.” “나도 갈 곳 있어.” “어디.” 사라는 대답하지 않고 강수의 팔에 다시 기대었다. 조금 전까지 덕배가 보스가 된다며 신나 있던 얼굴과 달리 금세 다른 생각에 빠진 듯했다. “같이 가자.” “어딜.” “내가 갈 곳.” “그러니까 어디.” “가면 알아.” 강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말해.” “싫어.” “민사라.” “왜.” “어디 가는데.” 사라는 입꼬리를 올렸다. “비밀.” 강수가 한동안 내려다봤지만 사라는 태연했다. 내일은 회사에 갈 생각이 없었다. 병원에서도 아직 무리하지 말라고 했고, 마침 주말이 지나기 전에 다녀오고 싶은 곳이 생겼다. 원래 혼자 갈 수도 있었지만 오늘 강수와 결혼 이야기를 하고, 그의 삶을 정리한다는 말까지 듣고 나니 이상하게 같이 가고 싶어졌다. “오전 열 시에 덕배 오빠 만나면 오래 걸려?” “몰라.” “한 시간?” “그쯤.” “그럼 점심 먹고 가면 되겠네.” 강수는 사라가 혼자 일정을 다 정하는 걸 가만히 듣다가 물었다. “멀어?” “조금.” “얼마나.” “차 타고 가면 돼.” “그건 나도 알아.” 사라가 킥킥 웃었다. “오빠 운전하면 되겠다.” “기사냐.” “남자친구.” “네가 운전해.” “나 임산부인데?” 강수의 눈이 바로 내려왔다. 사라는 그 반응을 기다렸다는 듯 웃었다. “봐. 이러면 아무 말도 못 하잖아.” “할 수 있어.” “해봐.” “걸어가.” 사라의 입이 벌어졌다. “차강수.” 강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씻어.” “나보고 걸어가라며!” “안 갈 거야?” “갈 거야.” “그럼 준비해.” 사라는 소파에 앉은 채 강수의 등을 노려봤다. 하지만 잠시 뒤 혼자 웃더니 배를 한번 쓸었다. “뜬금아, 아빠 말하는 것 좀 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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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화

강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차에서 먼저 내린 사라가 가방을 챙기는 동안 기다렸다가 옆으로 붙었다. 사라는 주차장에서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었다. 조금 전까지 차 안에서 갈비를 먹고 배부르다며 투덜거리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다고 슬퍼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했다. 강수는 그런 사라의 속도에 맞춰 걸었다. 한동안 길을 따라가던 사라의 걸음이 어느 곳에서 멈췄다. 익숙한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민서후. 강수의 시선이 이름에 머물렀다. 그제야 사라가 어디를 데려온 건지 알았다. 사라는 아무 말 없이 앞에 쪼그려 앉았다. 가방 안에서 오는 길에 샀던 작은 꽃다발을 꺼내놓고 꽃의 위치를 몇 번 만졌다. “오랜만.”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나 왔어.” 강수는 몇 걸음 뒤에 서 있었다. “나 요즘 좀 바빴어. 회사도 다니고.” 사라는 잠깐 생각하다가 웃었다. “나 회사 오래 다니지? 나도 신기해.” 처음 CH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여행 갈 돈을 벌면 다시 떠날 사람처럼 굴었다. 어디에도 오래 머물지 않던 사라가 지금은 내일 출근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라는 서후의 이름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리고 나 남자친구 생겼어.” 강수의 눈이 사라에게 내려갔다. 사라가 뒤를 돌아봤다. “오빠, 이리 와.” 강수가 다가오자 사라는 자기 옆을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여기.” 강수는 사라 옆에 한쪽 무릎을 굽혔다. 29센티미터나 차이 나는 키가 그제야 비슷하게 낮아졌다. 사라는 다시 앞을 봤다. “얘 차강수. 나보다 열두 살 많아.” “그걸 왜 말해.” “소개하잖아.” “계속해.” 사라가 작게 웃었다. “키 엄청 크고 성격 더럽고 말도 별로 없어.” “민사라.” “근데 나한테 잘해.” 강수의 입이 닫혔다. “내가 이상한 소리 해도 그냥 듣고 있고, 잔소리도 엄청 하고, 먹을 것도 자꾸 챙겨줘.” 사라는 꽃잎 하나를 손끝으로 살짝 건드렸다. “그리고 나 좋아한대. 많이.” 잠깐의 정적이 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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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차 안은 조용했다.강수는 운전했고 사라는 조수석에 몸을 기대고 창밖을 바라봤다. 올 때와 같은 길이었지만 기분은 조금 달랐다.울지도 않았고 마음이 무겁지도 않았다.오히려 오래 가지고 있던 물건 하나를 제자리에 내려놓고 온 것처럼 이상하게 편했다.사라는 한참 밖을 보다가 휴대전화를 꺼냈다.화면이 켜졌다.익숙한 사진이 나타났다.서후였다.오랫동안 바꾸지 않았던 대기화면.여행을 다니면서 휴대전화를 몇 번이나 바꿨는데도 사진만큼은 다시 옮겼다. 새로운 나라에 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대로였다.그걸 붙잡고 산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그냥 당연히 거기 있는 사진이었다.사라는 화면을 가만히 바라봤다.아까 했던 말이 떠올랐다.이제 내가 돌아갈 곳은 민서후, 네가 아니야.그 말이 슬프지는 않았다.서후를 지우겠다는 뜻도 아니었다. 함께했던 시간도, 자신을 살려놓고 떠난 그날도 없어지는 게 아니었다.다만 이제는 알았다.과거를 기억하는 것과 그곳을 계속 바라보며 사는 건 다른 일이었다.사라는 화면을 몇 번 눌렀다.대기화면 설정을 열고 사진을 해제했다.익숙했던 얼굴이 사라졌다.강수는 운전하며 힐끗 옆을 봤다.“뭐 해.”“잠깐만.”“뭘.”“기다려.”사라는 이번에는 사진첩을 열었다.손가락이 빠르게 화면을 넘겼다.음식.회사에서 찍은 사진.덕배가 이상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진.강수 몰래 찍은 뒷모습.둘이 함께 먹었던 것들.그러다 손가락이 멈췄다.침대 위에서 잠든 강수였다.언제 찍었는지도 정확히 기억났다.새벽에 먼저 눈을 떴는데 옆에서 강수가 너무 깊게 자고 있었다. 평소에는 눈만 뜨고 있어도 인상이 사나운 남자가 잠들어 있으니 묘하게 얌전해 보여서 몰래 찍었다.한쪽 팔은 베개 아래에 들어가 있었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이마에 내려와 있었다.사진을 찍는 순간 강수가 움직이는 바람에 사라는 휴대전화를 급하게 이불 아래로 숨겼었다.사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이거 괜찮네.”강수가 또 한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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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는 휴대전화를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대기화면에 잠깐 나타났던 강수의 얼굴도 화면이 꺼지면서 사라졌다. 차 안에는 다시 엔진 소리만 잔잔하게 깔렸다.한동안 창밖을 보던 사라가 별안간 입을 열었다.“서후는 화재로 죽었어.”강수의 손이 핸들 위에서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사라는 그걸 보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내가 불냈거든.”강수의 시선이 옆으로 움직였다가 다시 도로로 돌아갔다.“정확히는 실수였어. 불날 줄 모르고 한 거였는데.”목소리는 담담했다.오래전부터 수없이 혼자 되풀이했던 이야기라 이제는 울면서 꺼내야 하는 기억도 아니었다.“그래도 내가 한 거니까.”사라는 손가락으로 안전벨트 끝을 만지작거렸다.“나 때문에 불났고, 서후가 나 구하러 들어왔다가 죽었어.”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이미 알고 있었다.그 화재가 사라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까지.당시 자료를 확인했고, 뒤늦게 드러난 진실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 사실을 지금 자신이 말해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다.사라는 이미 서후 앞에서 끝냈다고 말했다.돌아갈 곳이 아니라고.그런 사람에게 오래 묻어둔 과거를 다시 끌어내는 게 맞는지 판단하기 어려웠다.침묵 끝에 강수가 낮게 말했다.“너 탓 아니야. 그건.”사라가 고개를 돌렸다.눈이 가늘어졌다.“오빠가 그걸 어떻게 알아?”강수는 입을 다물었다.사라의 표정이 달라졌다.“잠깐.”몸을 조금 돌려 강수를 제대로 바라봤다.“민서후 죽은 거 알고 있었어?”“어.”“어떻게?”강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사라가 몇 초 기다리다가 다시 물었다.“일부러 알아본 거야?”침묵.“아니면 우연히?”강수의 턱이 굳었다.사라는 그 얼굴을 가만히 보다가 더 묻지 않았다.강수가 자신에 대해 알아본 적이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서후의 이름도, 화재도, 자신의 과거에 얽힌 일들도 강수의 손이 닿으면 찾아내지 못할 게 없었다.그런데 지금은 이상하게 듣고 싶지 않았다.“됐어.”강수가 옆을 봤다.“뭐가.”“말하지 마.”“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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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은 잠깐 말이 없었다.사라와 관련해 처음 모았던 신상 자료부터 과거 입양 기록, 민서후와 화재 사건을 추적하며 확보했던 것까지 적지 않았다. 이미 끝난 조사였지만 강수의 지시로 별도 보관하고 있던 자료들이었다.-어디까지 말씀하시는 겁니까?“전부.”-민서후 관련 자료도요?“어.”강수는 소파에 앉지 않은 채 거실 창가에 서 있었다.“복사본까지.”-알겠습니다.“서버에 남은 것도 지워.”-예.정민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강수가 한번 내린 지시는 그대로 처리하면 됐다.통화를 끝낸 강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창밖으로 청담의 불빛이 내려다보였지만 오래 보고 있지는 않았다.침실로 돌아갔다.사라는 침대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자고 있었다. 분명 자기 자리에서 잠들었는데 어느새 강수 쪽으로 넘어와 베개 하나까지 밀어낸 상태였다.강수는 침대 옆에 서서 내려다봤다.“…….”이불도 배 아래까지 내려가 있었다.끌어올려 어깨까지 덮어주자 사라가 몸을 뒤척였다. 눈은 뜨지 않은 채 손만 움직여 강수의 손목을 잡았다.“오빠…….”“자.”“어디 갔었어.”“거실.”“왜.”“전화.”사라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면서 질문은 했다.“누구랑.”“정민이.”“왜?”강수는 잠시 사라를 내려다봤다.“지우라고 했어.”감겨 있던 사라의 눈이 느리게 떠졌다.“뭘?”“네 자료.”잠이 덜 깬 눈으로 몇 번 깜빡이던 사라가 그제야 알아들었다.“벌써?”“어.”“다?”“어.”“서후 것도?”“전부.”사라는 가만히 강수를 바라봤다.낮에 차 안에서 자신이 한 말을 강수는 설명도, 설득도 없이 그대로 처리했다.“잘했어.”짧게 말한 사라가 강수의 손목을 놓지 않은 채 안쪽으로 몸을 움직였다.“자자.”강수도 옆에 누웠다.사라는 기다렸다는 듯 가까이 붙어 그의 팔을 끌어다 베었다. 얼굴을 가슴께에 묻고 편한 자리를 찾느라 몇 번 꼼지락거리더니 금세 움직임이 줄었다.강수의 손이 사라의 머리 위에 얹혔다.“오빠.”“왜.”“나 오늘 서후한테 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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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화강수의 시선이 메시지에 멈췄다.옆에서는 사라가 그의 팔을 베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 갈비를 먹고 싶다며 떠들던 입술은 다물려 있었고, 한 손은 강수의 티셔츠 자락을 느슨하게 쥐고 있었다.강수는 움직이지 않은 채 한 손으로 답장을 보냈다.[뭔데.]정민에게서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강수는 사라의 머리 아래 있던 팔을 천천히 빼냈다. 대신 베개를 밀어 넣고 이불을 배 위까지 제대로 덮은 뒤 휴대전화를 들고 거실로 나갔다.“말해.”-형님, 삭제하기 전에 자료 목록을 최종 확인했습니다.“그래서.”정민이 잠깐 말을 골랐다.-민서후 화재 사건 관련해서 예전에 확보했던 원본 자료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강수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지우랬어.”-삭제했습니다.“그럼 끝이야.”-그런데 내용이 기존에 확인했던 것과 조금 다릅니다.강수는 입을 다물었다.정민이 이어 말했다.-당시 소방 조사 초기에 작성됐다가 정식 기록에서는 빠진 진술이 하나 있었습니다. 민사라 씨가 불을 냈다는 내용과 맞지 않는 부분입니다.강수의 턱이 굳었다.이미 사라의 잘못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그걸 오늘 사라에게 말하려다 멈췄고, 사라는 더 듣지 않겠다고 했다.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까지 지워달라고 했다.“정민아.”-예, 형님.“걔가 듣기 싫대.”정민의 말이 멎었다.“나도 안 들어.”-……예.“남은 거 없어?”-없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자료까지 전부 삭제했습니다. 별도 백업도 없습니다.“됐어.”강수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무슨 진술이었는지 묻지 않았다.예전 같았으면 끝까지 확인했을 것이다.사라와 관련된 일이면 더 그랬다.모르는 게 남는 걸 싫어했고, 위험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 사라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먼저 확인했다.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사라가 끝냈다고 했다.그럼 끝이었다.강수는 휴대전화를 식탁 위에 내려놓고 물을 한 잔 마셨다.침실로 돌아왔을 때 사라는 아까와 다른 방향으로 돌아누워 있었다. 강수가 없는 사이 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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